No. 11대학에서 누리는 자유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자유를 얻는 것과 같다.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시키는 것만 해왔던 수동적인 생활과는 다르게 우리는 대학을 입학하며 바로 자유를 누릴 권리를 부여받는다.하지만 우리가 대학생이 되었다고 그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한다거나 계획있게 활용한다고 할 수는 없다.과도적인 과정이나 시기가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된 대학생들은 많은 혼란을 겪기도 한다.억압되어 있었고,대학 진학만이 목표였던 고등학교를 지나 자유를 얻은 대학생들은 목표를 이루었다는 생각에 자유를 헛되이 보내고 있기도 하다.그런 대학생들에게 대학은 어떻게 그 자유를 활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학생들은 학교생활을 하며 그 방법을 스스로 깨달아 가야 한다.새로운 학교에 새 학년으로 들어와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기도 하지만 곧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친구도 새로 사귀어야 하고,선배들의 얼굴도 익혀야 한다.게다가 수업은 내가 스스로 알아서 배워나가야 하고 출석도 하든지 말든지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다.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대학의 자유를 몸소 실감한다.그러면서 우리는 친구를 사귀고,열심히 출석하며 수업을 듣는다.남는 시간에는 친구와 카페를 가서 이야기도 하고,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얻는 자유를 쓰고 어떻게 써야 더 효율적인지를 경험하며 깨닫는다.대학은 교육방법에서도 자율성이 나타난다.수강신청이나 출석과 같은 면에서 자신이 알아서 해 나가야 한다는 자유를 줌으로써 학생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행동한다는 주체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대학에서 주는 자유는 대학생에게 자주성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대학에서는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을 듣는다.전공과목도 물론 중요하지만 교양과목은 대학생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과목이다.그 전까지 공부했던 과목들이 정말 공부만을 위했던 것이라면 대학의 교양과목들은 조금 다르다.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것이나 새로운 종류의 학문을 접할 수 있다.그런 학문을 배우며 우리의 감성은 더 풍부해진다.전공과목은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전문적으로 배우며 지성을 쌓는 것이다.나는 철학교양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교양이 아니었다면 쉽게 접할 수 없는 과목이었다.깊게는 아니지만 철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보람있었다.전공과 교양을 균형있고 조화롭게 들을 수 있다면 대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대학의 방학은 매우 길다.그래서 대학생들은 그 방학기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1학년에 입학해 처음 맞이하는 방학이 지나갔다.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거나,집에서 그냥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나도 방학동안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했지만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는 않았다.지금 생각해보면 긴 방학동안 책을 좀 더 읽는다던가,자격증을 따려는 시도라도 해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이렇게 대학은 방학도 자율적으로 계획을 세워 알차게 보내야 한다.아무리 자유를 준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자유인 것이다.대학은 좀 더 학생들에게 자유를 어떻게 활용하고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가르쳐야 한다.나처럼 별다른 계획 없이 방학을 보내다가 4년이 지나면 그것은 전부 헛된 시간이 되는 것이다.대학생 스스로도 방학이 헛된 시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순수함을 잃어가고 세상을 알아가며 너무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본다는 말을 배운다. 누군가 나에게 다정한 말과 행동을 하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요즘의 세상은 사람들은 모두 순수함을 잃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싸우는 모습이 더 많은 세상 같기도 하다. 게다가 장애인은 더 보살펴주고 챙겨주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면서도 장애인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가위손에 나오는 에드워드는 가위손을 가진 장애가 있으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순수했다.가위손은 어떤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를 잠재우기 위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매우 평범하고 작은 마을에 사는 화장품을 파는 팩은 어느 날 마을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성을 찾는다. 그 으스스한 성에는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가 혼자 살고 있었고, 팩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에드워드는 손이 일반사람들과 다른 가위로 되어있다. 그래서 자신의 얼굴도 만질 수 없고 얼굴 가까이에만 가도 상처를 입히게 된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성에 갇혀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에드워드는 사실 성에 살던 발명가가 만든 기계인간이다. 하트 모양 쿠키를 본 발명가가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만든 것이 에드워드였고 정상적인 손이 아닌 가위를 손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발명가가 에드워드를 만든 이유는 외로워서일 것이다. 홀로 큰 성에 살며 이야기할 사람 하나 없이 지내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외로울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에게 정상적인 손을 선물로 주려던 발명가는 에드워드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죽고 만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성에서 혼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발명가가 에드워드를 매우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손을 에드워드에게 선물하기 위해 보여주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선물로 정상적인 손을 선물하는 것은 그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서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팩에 의해 마을에 내려온 에드워드는 마을 사람들 전부에게 화제가 되었다. 팩의 집에서 에드워드를 환영하는 파티를 하는 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에드워드를 반기고 다정하게 대해준다. 어떤 사람은 에드워드에게 누군가 자네에게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해준다. 일반적인 손가락이 달린 손 대신에 가위가 달린 손은 장애라고 할 수 있는 요소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장애를 나쁘거나 틀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다정한 말을 해 준 것이다. 요즘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장애인이라고 하며 우리의 사회에서 쫓아내려고 하는데 그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영화 속의 사람들은 친절했다.에드워드는 팩의 집에 살며 정원의 나무들을 멋지게 손질하고 강아지의 털을 깎아주며 마을 아줌마들의 머리를 다듬어 주며 마을 생활에 적응해간다. 마을 사람들도 에드워드의 가위손을 사용하는 재능을 인정하며 매우 좋아한다. 평범한 마을생활은 에드워드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에드워드는 팩의 딸 킴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킴은 짐이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짐은 킴을 좋아하는 에드워드를 이용해 범죄를 계획하지만 실패하고 모든 죄를 에드워드가 뒤집어쓰게 된다. 킴은 에드워드에게 매우 미안해하며 왜 진실을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데 순수한 에드워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킴의 부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답한다. 에드워드의 순수한 사랑은 보는 사람까지 감동받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가.하지만 에드워드는 그 사건 때문에 마을에서 평판이 나빠지게 되고 에드워드를 좋아하던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드를 둘러싼 소문들을 믿고 등을 돌리게 된다. 사람이란 간사한 존재인 것 같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할 때에는 옆에 붙어서 칭찬하고 다정하게 대해주다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는 소문을 듣자마자 바로 돌변해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에드워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그렇지만 에드워드는 끝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얼음을 조각하며 킴에게 처음 눈을 보여주지만 짐의 방해로 실수로 킴의 손을 찌르고 도망치고 만다. 팩과 남편은 에드워드를 찾기 위해 나서고 킴은 에드워드를 집에서 다시 찾는다. 킴은 에드워드의 순수한 사랑을 알고 자신을 안아달라고 하는데 에드워드는 자신의 손 때문에 또 킴이 다치게 될까봐 주저한다. 이 장면은 정말 가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안아달라고 하는데 다치게 할까봐 선뜻 안아주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불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