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부독서 적용 보고서방With이름장 복 근제출일2019. 10. 14.책혼인, 가정과 교회저자김 홍 전1. 내용을 요약 정리하십시오.혼인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의 혼인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고, 더군다나 그 당사자들은 더욱 이 문제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복수로 계시면서 동시에 단수로 계신다. 이 신비한 것이 가장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 것이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즉 교회는 각각 두 개의 인격이지만 신비하게 연합해서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큰 몸을 이룬다. 그러므로 부부의 원형은 교회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교회는 부부가 배우고 표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형이다. 그 표준은 먼저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이 아내는 남편을 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 하시는 모습이 남편이 아내에게 해야할 모범이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그리스도인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세우는 목적은 가정을 이 땅에 두시어 세상 앞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셔서 구원과 심판의 도전을 제시하려는 뜻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일을 역사상 끊임없이 계속해 나가시기 위해 당신의 백성을 그런 가정 안에서 길러 내게 하시려는 뜻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정 제도를 통해 보여주신 크신 뜻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땅에 충만하도록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여자는 아내가 되었을 때 그 남편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명을 돕는데 혼인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자녀들을 양육할 때 신실함과 근면함을 가지고 돌보아야 하며, 또한 자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은사, 하나님께서 그 속에 불어넣어 주시는 거룩한 사상과 능력과 은혜가 풍성하게 드러나며, 부모들은 그릇들로 사용되어 그 임무를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마지막으로 혼인에 있어서 남자의 역할과 남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가정의 가장, 즉 남편 된 자는 자기 가정에 있어 왕,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유리하고 이상적이며 구체적인 최소단위이다. 우리는 남자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최초의 가장인 아담을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창조하실 때처럼 인간도 한 번에 쌍을 창조하실 수 있으셨지만 굳이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계명을 주시고 여자를 창조하시는 그 순서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보이시기 위함이며 이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해석해 주셨다. 그리고 가장은 가족이 자발적으로 순종하도록 유도하는 자이어야 한다.그리고 혼인에 있어서 여자의 역할과 여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은 하나님은 여자를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주신 지위와 의무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여인이 교회에서 지휘하고 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성경은 ‘너희가 밤낮 싸움을 해라. 의견을 달리해서 밤낮 싸우며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이 가르치는 아내의 도리는 ‘남편이 갈지자 걸음으로 걸으면 갈지자로 따라 걷고, 남편이 구덩이에 빠지면 같이 빠지고, 고생하면 같이 고생하고, 헤어 나오면 헤어 나온 데로 같이 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전에 여자는 남편으로 삼을 사람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2.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내용은 무엇입니까?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결혼관이 얼마나 세상의 기준들에 물들어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단지 세상이 주는 결혼의 기준들 ‘그저 많이 사랑하니까, 나의 심적인 만족이나 행복을 위해서 가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내가 없는 집이나 차나 돈이나 뛰어난 능력이나 내세울 만한 학벌과 지식과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예쁘고 잘 생긴 외모와 연예인 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거나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라서 날 채워줄 수 있기 때문에, 남들 다 가는데 때가 차서 어쩔 수 없이 지금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등등, 성경에 없는 기준들로 결혼을 생각한다. 물론 위의 기준들이 완전히 잘 못된 것만은 아니며 결혼에 있어 필요한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준은 세상이 말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결혼에 실패하는 원인이며 결혼이 기독교 신앙을 지킴에 있어 저주가 되는 원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며 그렇게 살기 원하는 자로서 결혼에 앞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이 무엇이며 결혼에 있어 남, 여의 역할은 무엇이고 결혼하면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 또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은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결혼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광주지부독서 적용 보고서방with이름장 복 근제출일2019. 11. 19.책신앙의 자태 1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저자김홍전1. 내용을 요약 정리하십시오.본서는 그 내용상 총 3부로 나눌 수 있다. 제1부는 제1-2강에 해당되는데 여기서는 노아와 롯의 때에 표출되었던 두 사람의 신앙의 자태를 다루고 있고, 제2부는 제3-7강으로 구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자태를 그리고 있다. 제3부인 제8-9강에서는 히브리서 11장의 신앙의 용사들을 중심으로 하여 올바른 신앙의 상을 제시하는데 특히 9강에서는 삼손의 예를 들어서, 일반적인 표준에 의하여 자기의 열심히 어떤 종교 행위를 하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성신의 쓰임을 받는 것을 비교함으로써 바른 신앙이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그럼, 바른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곧 “구원에 이르는 신앙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저자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바른 신앙이란 정당한 신지식에 근거한 믿음이어야만 하다고 한다. 그는 삼손의 예를 들면서 “바른 신앙의 자세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상당히 관대하고 훌륭한 품성을 나타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계획과 경륜의 내용 안에서 분명한 목적을 향해서 진행하는 데 있다”고 한다(p.279) 이것은 일반적으로 믿음 좋은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을 분간하는 시금석과는 현저히 대조되는 선언이다. 그 까닭은 신앙의 도덕적 윤리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 윤리에 해당하는 것이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지녀야 할 신앙의 바른 자태는 아니기 때문이다(p.243-245).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서 생각해야 된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 하나님이 제시한 목표와 방향을 분간하여 인식하는 것과 매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p.245-250).?저자는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과 신자의 역사의식이 상관관계에 있음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신자 각자가 서 있는 역사의 실존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성격을 유지하고 그 나라를 세상에 증거하는 여하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그의 거룩한 부르심의 의의를 자각하는 데에 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 의의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하고…의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문화 건설”에 있었다(p.83,144-150). 이러한 인식이 없던 광야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거룩함이 없는 형식만을 꾸며 내는” 신앙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민족의 수호신 수준으로만 인식하였을 뿐, 그들이 정당하게 지녀야 할 바, “주권자”요 “거룩하신 속성을 나타내는 인격신이요 만유의 주”로서 역사를 주재하는 분으로는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p.158-160). 롯의 경우에 있어서는 멸망해 가는 사회 속에서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기는 하였지만 거기에 안주해 버려, 거룩하고 의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롯은 사회에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고 증거를 상실하였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출 3:14)과 그들의 아이덴터티였던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출 19:5,6)에 대한 자각이 없었고, 도리어 애굽에서 살던 때의 의식주에 대한 저급한 욕구에 이끌려 줄곧 원망이라는 불신앙으로 일관하였던 것이다. 사명 의식을 상실한 그들의 40년 광야 생활은 “죽기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았다”(p.150-151).?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님에 대한 건실한 지식과 신자들의 존재 의의에 대한 바른 인식은 교회의 사명을 바로 각성하게 한다. 만약 교회가 역사의 실존에서 그 존재 의의에 대한 자각이 결여되어 있다면, “교회 부재의 현실”을 초래하게 된다(p53,56). 이는 교회가 “교회의 참된 속성과 참된 능력과 사명에 대한 각성이 없으면 정통성을 주장하더라도 교회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p.56). 이런 현실이 롯의 때와 원망하던 광야 이스라엘의 예에서 현저하게 드러났다. 현대 교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비록 교회가 아무리 화려하고 구실 좋은 종교적 잡일들에 치중하고, 교회의 세력을 구축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적인 자태를 상실하고 있으면 이는 벌써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것이다. 아무리 자기 암시로써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서도 자기네 식의 종교 행위를 하며, 역사 내에서 의의 공동체로서 증거할 만한 것이 그 속에 하나도 없을 경우에는(p55,67) 거짓된 신앙 상태를 유지했던 이스라엘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왜냐하면 바른 신앙이란 행동주의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건전한 인식의 터 위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자세이기 때문이다.?교회사를 통해 바른 교회의 성격을 갖지 못한 배교의 세력이 수없이 일어났던 점들을 볼 때, 이러한 통찰력에 공감한다. 그 세력을 궁극적으로 반신국적인 행위들이며 이런 교회들은 불의하고 강포한 세대에 아무런 외침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뿐 아니라 노아의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대상에서처럼 교회는 패역한 세대와 더불어 멸망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현대 교회는 노아의 경우처럼 그런 흐름에서 나와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자태를 보존하는 것 외에는 달리 길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