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의 이해]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우리 고유문자체계에 대한 조사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은 역사상 중세 국어 시기이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언어체계에 대한 분류는 크게 훈민정음이 창제되게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의 사람들의 문자 체계에 대해 살펴보았다.우리의 문자 생활에서 훈민정음 창제 이전까지는 치자표기(借字表記)가 주류를 이루었다. 차자표기법은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다. 차자표기법은 우선 어휘 표기와 문장 표현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장을 표기한 차자표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이두(吏讀), 구결(口訣), 향찰(鄕札)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을 이두문, 구결문, 향찰문 등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 중 구결은 한문의 원문을 전제로 한 번역문으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이와는 달리 이두와 향찰은 번역문이 아닌 우리말을 표현한 문장 표현에 쓰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두는 실용문이나 공사(公私) 문서에 주로 사용된 것이고, 향찰은 주로 우리의 시가(詩歌)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주목하기도 한다.이두는 서기체 표기 방법에 문법 형태소 표기가 보충된, 한 단계 발전된 한자차용 표기의 수단으로 음과 훈을 빌려 표기한 것이다. 이두는 다시 ‘이두’와 ‘이찰’로 나누어진다. 이두는 한문과 거의 유사하나 어순만 우리말에 맞게 바꾼 것이다. 예를 들어 "과실이 없기를 맹세 한다"라는 문장을 표현하고 싶다면 한문으로는 '서무과실'(誓无過失: 맹세할 서, 없을 무, 지날 과, 잃을 실) 이지만 이두로 표기하면 문장 순서 그대로 '과실무서'가 된다. 이것은 주로 실용문이나 공식문(公式文)에 쓰였다. 이두는 일반적으로 공식 문서 등에 사용되었지만 한문을 번역할 때 사용한 경우도 있다.이두가 단지 어순을 바꾼 한문이라면 이찰은 이두에 이두토를 달아 우리말을 더 명확하게 표현하도록 만든 표기법이다. 여기에 더 나아간 것이 '향찰'이다. 향찰은 이두토 뿐만 아니라 고유어의 일부까지 한자로 표기한 이두어를 포함한 표기법이다. 이두어는 이찰에서도 발견되지만 향찰에 와서 훨씬 풍부해진다. 비록 이두 서사 체계의 발전은 이두-이찰-향찰 이지만 그 중심엔 이찰이 있으며 우리가 별다른 언급 없이 '이두'라고 말하면 이찰을 말한다. 이찰은 향찰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19세기 말까지 남아 사용되었다.이것들을 다르게 보아 비교해 보자면 향찰(鄕札)과 이두와 구결은 문장을 표기한 차자표기로 차자표기 전체 체제에서 보면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향찰은 우리말 문장을 전면적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에 비해 구결문은 한문의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읽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이두문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두문은 주로 실용적인 문장으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이들과 차이를 보인다. 이두와 음독구결(音讀口訣)은 큰 차이를 보이는바, 토(吐) 부분을 삭제해서 완전한 한문 문장이면 음독구결이고, 토 부분을 삭제하여도 한문 문장이 아닌 것이 이두문(吏讀文)이다.이두는 사용된 시기와 이두문의 특징에 따라 제1단계의 이두문과 제2단계의 이두문으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1단계 이두문의 특징은 제2단계 이두문과는 달리 토 표기가 나타나지 않으며, 어순에 있어서 우리말 어순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구결은 한문을 우리말로 해석하면서 읽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의 한문독법 방법으로 개발된 것이다. 구결은 신라 의상시대부터 발달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한문 독법으로 발달되어 온 구결에는 세 가지가 있다. 부호구결(符號口訣)과 석독구결(釋讀口訣), 음독구결(音讀口訣) 등이 그것이다.정리하자면 구결, 향찰, 이두는 모두 한자를 빌어쓴 문자체계인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나 시대에 따라 어떤 목적과 범위에서 차이를 보였고 그 당시 민족의 욕구를 충당시켰다. 인명, 지명, 관명 등에서부터 신라 향가의 문학적 창작에까지 미치는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글과 같은 완벽한 우리 고유의 문자 체계는 아니지만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도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변화시킨 문자 체계는 존재하고 있었다.
신발의역 사세계문화의 이해머리말1. 최초의 신발샌들과 모카신2. 보호용 신발부츠에서 나막신까지3. 신발과 권위지도자가 신었던 것4. 신발과 지위맨발에서 전족까지5. 신발과 유행히로가 그 이상의 것6. 신발과 마술신화와 문학7. 신발과 인생의 사건들탄생, 죽음 그리고 결혼8. 신발과 운동크로케 샌들에서 에어 조던까지맺음말「신발의 역사」-로리 롤러머리말신발에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람들의 신발을 잘 살펴보면, 그들이 어디에 갔으며,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신발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노동 양태 그리고 여가 생활에 대해 다른 어떤 개인 소유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적으로 신발은 …오늘날 우리가 공유하고 찬양해 마지않는 전통 속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1. 최초의 신발-샌들과 모카신……신발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아프리카 남쪽 끝에서 시작됐다. 인도양 부근 클레이지 강어귀에 암석으로 된 거주지와 동굴 속에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최초로 공동체를 이루며 무리지어 살았다. …클레이지 강 유역은 사냥감이 풍족하고 기후가 온화했기 때문에 남아프리카의 거주자들은 옷을 거의 입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신발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7만년 동안,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초기 해변가 생활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거대한 얼음 덩어리인 빙하의 영향으로 지구 전반에 걸쳐 기후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초기 인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들은 먼저 동물 가 등을 손질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신발이라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발바닥을 보호하는 기능성만은 살아 있었다 하겠다. 수년에 걸친 시도 끝에 누군가가 샌들을 고안해 냈다. 이 초기의 샌들은 두가지 기본 형태로 되어있다. -발가락 주위로 풀로 엮은것 하나와 가죽끈으로 동여맨 것 하나.최초의 샌들이 어디서 기원되었는지는 과학자들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결국 고고학자가 그 신발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보존된 샌들은 거계인 티롤린 알프스 고원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인류가 유럽에서 북으로 동으로 아시아의 좀더 추운 지역으로 여행할 때 스노슈즈와 함께 가죽으로 된 긴 양말을 만들어 신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결국은 이 가죽 양말이 스노슈즈가 벗겨졌을 EO 그대로 신발이 되었다는 것이다.1만 2000년전 베링 해협을 건너간 아시아 사람들은 이 새로운 종류의 신발을 북아메리카로 가져갔다. 동앨곤퀸 방언에서 유래한 ‘모카신’(Moccasin)이라는 명칭은 1612년 …최초로 등장했으며, 이후로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발을 설명하는 데 사용돼 왔다.막간 재미-이 모카신들은 때로는 우정의 징표로, 때로는 식량이나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확보하기 위한 교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모카신을 만들고 수선하는 작업은 전적으로 여성들에게 맡겨졌다. 특별한 성인식 기간중 소녀들은 한 달가량 마을에서 떨어져 고립되어 지냈다. …모카신을 솜씨있게 만드는 소녀에게는 마을 남자들의 청혼이 쏟아졌다.2. 보호용 신발-부츠에서 나막신까지.전 역사를 통틀어 군인들은 두 다리와 발을 보호하기 위해 부츠를 신었다. …이런 형태의 신발류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가 2700년 된 사르곤 2세의 궁궐 벽화에서 발견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후세대 병사들의 부츠가 눈에 잘 띄지 않게 만들어 진 것과는 달리, 아시리아의 부츠는 밝은 색으로 수놓고 반짝이는 동과 놋쇠로 장식한 매우 화려한 것이었다. 수백 년 후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 병사들은 보다 더 화려하고 눈부신 붉은 색 가죽 부츠를 신었는데, 이는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감출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었다.몇몇 역사가들은 고대 그리스와 아시리아 이전부터 부츠를 신었다고 주장한다. 4500여 년 전, 아마도 부츠는 추위를 막고 가지덤불로부터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분리 가능한 레깅스를 부착시킨 모카신의 한 형태로서 개발되었을 것이다.다른 신발들과 마찬가지로 부츠의 모양도 그것을 만들어 신는 사람들의 필요성과 이용 가능한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막간 재미200년 저항하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사보타주’라는 새로운 단어가 탄생하게 되었다.3.신발과 권위-지도자가 신었던 것.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양말만 신고 일어섰을 때는 키가 160센티미터 정도 였다. …그는 키 문제를 해결하고자 위로 치솟은 가발을 쓰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 공식적인 자리에 나설 때면 그는 특별히 13센티미터 높이의 코르크로 만든 굽이 달린 구두를 신었다.루이 14세의 붉은 굽처럼 구두 색으로 권력을 상징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자주색은 왕족을 상징하는 또 다른 색이었다. 로마제국 초기에는 황제만이 ‘찬거’를 신을 수 있었다. 몇몇 통치자들은 하인의 신발 색과 장식에 대해 매우 까다롭게 굴었다.신발은 정치적 지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정치 철학을 대변하기도 한다.1640년 초반 ‘옥스퍼드’라고 불리는 발목이 낮은 구두를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소개 했을 때, 구두끈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그들은 구두끈이 좀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제퍼슨이 제시한 구두끈의 상징성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구두끈은 단지 새로운 유행이었을 뿐이다.군인용 부츠 또한 상징성을 가진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4년 교황 피우스 7세가 주재한 황제 대관식에서 신발에 대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냈다.100년 전 사람들은 승리한 군대 장군의 구두 모양을 본뜸으로써 승리를 축하했다.4. 신발과 지위-맨발에서 전족까지.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발로 노예와 자유민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맨발은 노예의 비천함의 표시다”라고 썼다. 노예는 신발을 신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역사적으로 신발은 한 개인의 부를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사회적 지위, 정치 성향,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알 수 있었다.세계의 가난한 노동 계층 사람들에게 구두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그 당시 구두 한 켤레는 노동자들의 거의 반 달치 봉급과 같았다. …따라서 궁핍한 사람에게 새 구두를 선물하는 것이 지쓰고, 수수한 색의 코트를 입고, 평평하고 발끝이 뭉툭하게 모가 난 신발을 신음으로써 자신들의 진지한 정치성을 알리고자 했다. 그런가 하면 신발은 결연한 종교 의지를 표현하는 데도 그만이었다.신발은 우리에게 많은 다른 종교에 관한 단서들을 제공한다.5. 신발과 유행-힐과 그 이상의 것.우리가 선택하는 신발의 형태는 우리의 감정뿐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꿈까지도 이야기한다. 혼돈과 분쟁의 시대에는 딱딱하고 실용적인 부츠가 선택되는 경향이 있다.신발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옛날에는 왕이나 왕비, 그리고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때로는 노동자 계층의 신발과 유사한 형태가 유행하기도 했다.……굽의 발명은 가장 극적인 유행의 변화 중 하나를 가져왔다. 근본적으로 굽은 비와 눈, 진흙 속에서 스커트 자락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근동의 여성들은 이미 500여 년 전에 ‘초핀’이라는 것을 발명했다.16세기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는 너무도 많은 여성이 초핀을 신고 다녔다.이 죽마 같은 신발은 결코 완전하게 퍼지지 못했다. 1500년대 초 이탈리아의 한 무명 구두 디자이너가 높이를 조절하여 초핀의 불편함을 없앰으로써 화제를 불러 모았다.이 신발 덕분에 캐서린은 훗날 헨리 2세가 된 그녀의 남편과 눈높이를 맞출수 있었다. 이것이 프랑스에서 최초로 선보인 굽 높은 신발이었다.유행하는 신발의 형태를 건축 양식을 반영 한다.그보다 200여 년 전에는 첨탑에 있는 성당이 유럽 곳곳에 생겨났다. 여성의 의상은 새로운 고딕 양식을 모방했다.수년 전만 해도 유행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느리게 바뀌었다.……신발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의복의 모양을 반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유행을 선택할 때 그것은 진정한 ‘유행’이 된다. 마지막으로 유행은 더욱 과장되어 가고 우스꽝스러워지며 불편해지고, 그리고 나면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 구조는 다시 새로운 유행하는 신발 유형과 함께 반복된다.6.신발과 마술-신화와 문학라는 어린이를 위한 그의 책은 언젠을 보호해 왔다. 중국 사람들은 신년을 맞아 새 신발을 사서 신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7. 신발과 인생의 사건들-탄생, 죽음 그리고 결혼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신발은 청혼에서 결혼까지, 탄생에서 죽음까지 삶의 중요한 사건들을 축하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신발로 미래의 남편이나 아내와의 만남을 점쳐보기도 한다.1860년 레스터셔 마을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신부의 아버지가…징이 박힌 부츠를 막 출발하려는 신부의 마차 위로 힘껏 집어 던진 것이다. 그가 미쳤던 것일까? 아니다. 그는 단지 방금 결혼한 신랑과 신부를 위해 행운을 비는 고대 의식을 따랐을 뿐이다.신부 들러리들이 소리를 지르며 울타리로 뛰어들었다. 낡은 부츠를 먼저 잡는 사람이 다음번 신부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풍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구두는 죽음과 장례식의 상징이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 때는 기수가 타지 않은 한 마리 말이 맨 앞에서 행군을 한다. 이 말의 등자에는 뒤쪽을 향한 부츠가 하나가 올려져 있는데 이는 죽은 지도자를 의미한다. 서부 아프카의 아산티 족에게는 왕이 죽으면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신발을 검은색으로 칠하는 풍습이 있다.8. 신발과 운동-크로케 샌들에서 에어 조던 까지.아마도 당신은 하루 평균 만 보쯤은 걸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발명가이며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물여섯 개의 뼈, 열아홉개의 근육, 백여섯 개의 인대로 된 인간의 발을 “공학의 결정체요,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편안하고 여유있는 운동 경기용 신발이 세기의 전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국에서 등장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거의 20년 동안 굿이어는 ‘인도 고무’로 알려진 신기한 물질의 실용화에 매달렸다. …방수도 되었고 가벼운 데다 내구성도 좋았다.문제는 고무가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었다.굿이어는 고무의 특성을 연구하는 데 수십 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온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고무의 경화’라는 열 가공 처리 기술을 개발해 냈다.1868년에는 고무 밑다.
시의 현대성김소월 作 「 가는 길 」시의 현대성김소월 作 「가는 길」은 왜 현대적인가?일반적으로 우리 국문학에서 현대시는 갑오개혁(1894년)을 기준으로 하여 이전의 시는 고전시가로 그 이후의 시는 현대시로 분류되어진다. 개화기 이후부터의 시를 현대시라고 통칭해서 부르기도 하고 보통 1920년대 이후의 시를 근대시, 혹은 현대시라고 한다. 1920년대에 들어서 자유로운 형식과 다양한 주제, 정서를 담아 근대시로 발전하게 되고, 현대시는 좀 더 자유로운 발상과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의 시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러한 현대시의 개념에 기초를 두고 보았을 때 근본적으로 현대시라고 부르기 위해선 그 시대의 민중들의 정서와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론에 초점을 두고 왜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은 현대적인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시를 분석해보았다.이 시는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사랑받는 시 중 하나이다. 그 이유 중 한 가지 는 이시의 정서가 우리 민족 공통의 감정인 “한”의 정서를 가져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소월의 시는 희로애락의 표출에 충실하며 슬픔과 외로움, 애달픔과 서러움의 감정 표현이 두드러짐으로서 인간의 기본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으며, 또한 이 시를 창작했을 당시의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시대가 주는 절망감과 허무의식 등으로 도 표현 될 수 있어 좀 더 심층적으로 우리 민족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또한 이러한 정서들을 표현하는 여성적 정조는 우리의 서정 민요가 지닌 보편적인 특성중 하나인 것으로 김소월의 시 에 나타나는 여성편향성은 근대시의 중요한 특성 중 한가지로, 이러한 점에 근거하여 김소월의 시가 전통문학의 현대적 계승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민요적 율격의 특성 또한 특이성을 담고 있다. 1920년대 초기의 시는 서구사조를 모방한 상징주의나 퇴폐적 낭만주의 계열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김소월의 시는 이 시기 다른 시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가는 길」은 7.5조의 율격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7.5조는 일본에서 도입되었으나 이는 3,4,5의 3음보로 다시 나뉠 수 있다. 3음보와 4음보는 우리 시행을 이루는 기본 율격으로써 특히 이 시를 이루는 3음보는 우리의 미의식과 결부된 고유리듬이며 자연적, 서정적 리듬을 지니고 있어 가창에 적합한 민요적 율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의 율격인 7.5조 는 현대시에서 많이 채용되고 있는 율격인데 이유는 이 시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3음보의 율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소월 시인의 율격은 민요의 율격과 상통하며 그로인해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보편적으로 잘 담아 낼 수 있는 리듬감을 가져 현대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과 예술을 향한 시선최제훈 作 「미루의 초상화」「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 예술을 향한 시선최제훈 作 「미루의 초상화」, 「퀴르발 남작의 성」1. 작가 소개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제7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소설부문)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2010년 데뷔작을 포함한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을 발표했고 이후 2011년 『일곱 개의 고양이 눈』, 2013년 『나비집』을 발표하며 주목받는 현대 작가들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작품 안에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적절하게 집어넣어 독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빠르게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모든 심각한 이야기들을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혀 심각하지 않게, 이른바 재미있게 다뤄냄으로 ‘이야기꾼’의 계보에 놓인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꾼’의 자질 뿐만 아니라 구조적 상상력을 가짐으로 인해 여타 ‘이야기꾼’과는 차별성을 보인다.「미루의 초상화」1. 두 시점의 불분명한 가상선소설은 노인이 회상하는 과거 시점과 노인에게 미루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현재 시점이 반복된다. 이 때 두 시점은 ‘미루의 초상화’라는 소재를 통해 연결되어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난 봄. 대학로 어느 거리에서 ‘나’는 노인이 그려준 진희의 초상화를 선물 받는다. 진희와 헤어진 뒤, 우연히 초상화의 얼굴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되고, ‘나’는 반년 만에 노인을 찾아간다. 그림이 달라진 것을 보면서도 당황하지 않던 그는 ‘나’에게 자신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시작한다.미루라는 가상노인이 묘사하는 미루와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많다. 특히 마지막에 시신이 없어지고 자신의 캔버스로 들어가 버린 미루의 이야기는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또한 미루는 노인이 원하는 뮤즈의 모습에 따라 바뀐다. 그가 새로운 자극제를 바라고 있다는 점과 매우 비현실적인 미루의 모습과 상황들은 결혼식장 사건 속 여인을 노인이 미루라는 인물로 가상화함으로써는 미루를 찾아가 그녀에게 면도를 받으며 그녀가 차던 팔찌가 덜 화려하고 칼날이 조금만 더 무디었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이는 그녀의 화려함과 날카로운 칼날이 그에게 얼마나 큰 매력으로 다가오며 그가 그녀를 원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우린 너무 오랜 세월을 반쪽으로 살아왔어. 그 불완전한 몸뚱이에 더 익숙해진 거야. 완전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갉아먹고 사는 생활에. 그러니 어쩌겠나. 나의 오리지널 반쪽임을 확신한 순간, 이젠 달아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수밖에.「미루의 초상화」p.317노인은 미루를 만나 지금껏 그를 짓누르던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예술을 지탱해주던 그림에 대한 열망까지도 함께 잃어버리고 만다. 곧 그는 그녀와 나누는 행복이 그를 유지해줄 수 없음을, 그녀가 그의 뮤즈가 되어 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들의 성스러운 ‘면도 의식’은 계속 된다. 노인의 폭언과 만취에도 미루는 묵묵히 그에게 면도를 해줌으로써 노인의 얼굴을 멀끔하게 만들어준다.미루와 노인은 아프리카 초원의 바오밥나무 군락지를 돌아다니던 중에 구멍이 뚫린 고사목 한그루를 발견한다. 미루는 그 구멍에 들어가 한참동안이나 잠에 든다. 바오밥나무는 아프리카에서 신성한 나무 중 하나로, 구멍을 뚫고 사람이 살거나 시체를 매장하기도 했다. 이는 미루의 성스러운 면도 의식이나, 그녀가 노인에게 주었던 행복을 묻어버리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다시 노인을 찾아온 미루의 모습은 이전과 많이 변해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면도를 해주지 않으며, 자신을 그려 달라 재촉한다. 또한 그가 그린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진실한 자신을 바란다. 결국, 노인은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얼굴 형체와 표정을 모두 망가뜨린 후에야 미루의 초상화를 완성한다.‘나’의 현실노인과 미루의 이야기에 비해 ‘나’의 이야기는 초상화가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유학을 가는 진희를 현실적으로 붙잡지 못하고 그녀의 이별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또한, 노인의 이야기매한 나의 행동에 함께 혼란스러워 한다.소설의 마지막, 나는 노인과 헤어진 후에 가로등 아래에 서서 초상화를 펼쳐 본다. 나는 초상화 속 미루의 얼굴이 무척 낯이 익다고 느낀다. 게다가 한 부분씩 관찰하여 보고 정말 초상화가 변하긴 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진희의 초상화가 미루의 얼굴로 바뀌어 노인을 찾아가기까지 한 ‘나’가 노인과 헤어진 후에 진희의 얼굴이라고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통해 이것이 정말 미루의 얼굴로 바뀐 환상인지, 아니면 단지 나의 오해로 인해 생긴 착각의 현실인지 헷갈리게 만든다.2. 예술지상주의최제훈의 「미루의 초상화」속에는 두 명의 예술가가 등장한다. 눈동자가 없는 그림을 그리는 모딜리아니와 노인이다. 작가는 이 작품 속 노인의 말을 통해 예술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나’에게 들려주는 노인의 이야기는 예술가가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예술을 향한 욕망은 우연히 듣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발현된다. 그는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영혼이 없는, 마네킹 같은 자신의 그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서, 정상과 광기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여자’로 심장이 뛰는 떨림을 안겨주는 존재이다. 예술과 사랑의 완전한 합일을 갈구하던 그에게 기회가 다가온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뮤즈 잔느와 같이, 그는 그녀를 자신의 뮤즈로 사랑하게 된다. 이후 이어지는 노인의 이야기는 ‘미루’와의 관계를 통해 예술가의 고뇌를 드러내고 있다.그림만이 전부였던 예전과 사랑에 만족하는 룸펜 생활에 대한 갈등, 그리고 아틀리에로 자신을 찾아온 그녀의 초상을 그려주는 모습 등을 통해 예술가의 고뇌와 열정을 살펴 볼 수 있다. 특히 미루가 아틀리에로 찾아온 부분은 그의 예술적 욕망이 증폭되는 순간으로 광기의 예술을 강조한다. 그녀는 내게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나’를 그려주기를 요구한다. 나는 홀린 듯 초상을 그리고, 그녀는 내가 작품을 완성해낸 순간 캔버스를 찢어 버린다. 마치 숙제 검사와 같이 진행되이 죽는 순간 튄 먹물방울이 그녀의 눈동자를 그려내면서 완성된다.모딜리아니에게는 잔느라는 연인이 있었다네. 연인인 동시에 최고의 모델이자 뮤즈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였지. 사랑과 예술의 극적인 합일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까. ……모딜리아니는 그런 잔느를 그릴 때조차도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았어.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소.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나. 영혼이라니. 그 양반 욕심도 참.「미루의 초상화」p.307이들은 그림 속 초상의 ‘눈동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이에 따르면 모딜리아니는 끝내 잔느의 영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솔거는 그녀의 눈동자를 완성했으나, 그 속에 담긴 원망 서린 눈길을 잊지 못해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 「미루의 초상화」의 노인은 미루의 영혼을 완벽히 담아낸 것일까.그는 독특한 분위기만큼이나 그리는 과정도 범상치 않았다.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선글라스 너머로 진희를 잠시 관찰하더니, 대강의 윤곽선도 잡지 않고 왼쪽 눈부터 거침없이 그려나가기 시작했다.「미루의 초상화」p.296노인은 진희의 초상화를 그릴 때 제대로 된 스케치 없이 ‘왼쪽 눈’부터 제일 먼저 그려 넣었다. ‘나’는 도화지 위에 그려진 초상을 ‘야릇한 초상화’라고 느낀다. 진희의 초상화지만, 진희가 아닌 것이다. 노인은 환상 속에서 미루를 죽임으로써 그녀의 영혼을 온전히 그림에 담아낸다. 환상의 순간, 그녀를 완성한 것이다. 결정적인 무언가가 결여된 그림에서 벗어나, 눈동자에 대상의 마음을 담아내게 된 것이다.이를 통해 ‘나’가 진희의 초상에서 미루를 발견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노인은 그녀가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며, 그의 그림에는 끊임없이 그녀의 영혼이 묻어나온다. 작품의 마지막, ‘나’는 다시 한 번 진희의 초상화를 본다. 눈에 초점을 두고 다시 살펴본 그림은 진희가 미루로 분장한 듯한 느낌을 풍긴다. 이처럼 이 작품은 끝까지 예술 작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어떤 것도 내리지 않는다. 예 주관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지는 문학 작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퀴르발 남작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영화로 그리고 그 영화가 다시 다른 문화권의 영화로 변해가는, 즉 이야기가 다양한 문화장르를 통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이처럼 연관성 없는 다양한 매체들에 의해 제 3의 텍스트─ 퀴르발 남작 성─를 만들어 내지만, 작품 어디에도 ‘퀴르발 남작의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소설진행 내내 ‘퀴르발 남작’의 이야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매체들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정작 이야기의 진실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의 실제 '퀴르발 남작‘이 살았던 시대인 1697년의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퀴르발 남작‘의 실체를 추측할 뿐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작품은 끊임없이 하나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핵심이야기는 교묘하게 숨김으로써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이야기에 대한 욕망을 집요하게 이끌어내고 있다.1-2. 주제 의식이 소설은 주제 의식을 콕 집어 이야기 할 수 없다. 소설의 형식에서 계속 언급했듯이 작품 어디에도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에 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독자의 상상과 독자의 해석, 독자의 판단이 모든 이야기의 의미와 주제를 생성해낸다. 또 한 가지 주제를 정의 할 수 없는 이유는 역시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글들 때문이다. 교수의 강의, 뉴스, 블로그의 글, 감독의 인터뷰, 저널리스트의 글과 같이 그 의미도 목적도 저마다 다른 글들이 모여 있다. 각각의 글은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이야기 외에도 독자에게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된다. 예컨대 퀴르발 남자의 성을 공산주의라고 정의하고 쓰여진 저널리스트의 글은 그 자체로 저널리즘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만다. 또한 글을 계속 읽어 나갈수록 독자는 어떤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7시의 청춘-김난도作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한 감상지금의 나는 내 삶의 인생에서 얼마만큼이나 온 것 일까. 이 책을 읽고 가장 강하게 남았던 내용이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한다는 20대들을 위해 김난도 교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책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또는 외로움 막연함의 고통에 힘들어 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멘토링이다. 이 책을 수능이 갓 끝나고 우울감에 빠져있는 시기에 읽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불안하게만 느껴졌고 힘들게만 받아들여졌는데 이 책의 글자 하나하나가 지금 현재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처음 부분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인상 깊었던 것은 인생시계에 대한 것이다. 입시라는 것에 매달리면서 지금 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을 80세 까지라고 생각한다면 현재까지는 4/1정도 밖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아직 절반도 살지 않았고 남은 시간동안은 지금까지의 인생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게 될 것이다. 한번쯤은 들어 보았고 생각해 보았던 사실 이지만 이렇게 시계에 비유해서 인생을 표현한다는 것에서 묘한 짜릿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아직 오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허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지금까지의 내가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 더 적고 실수를 한 것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인생 끝자락에 들어가서 본다면 지금까지의 실수들은 한낱 시행착오에 불과하지 않는 것이다. 내 인생은 아직 초반에 접어들지도 않았다. 시계 초침 속에서 조급해 하지 않고 즐기는 청춘을 보내고 싶다.지금까지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을까. 무언가가 착착 진행되던 일이 조금 만 틀어질 때 마다 지금 슬럼프다,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고 노력했었다. 지난 시간까지의 내말들에 반성하기로 결심했다. 잘 되지 않는 것에 핑계를 대기 위한 노력은 해봤지만 이 게으름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더 열성적으로 도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나”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건 그에 따른 결과가 좋고, 나쁘게 나오는 것에 관계없이 나는 나일뿐이다. 너무 자신감에 가득 차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말이지만 계속 생각해 볼수록 정말 자신감을 끌어 올려주는 말이 되었다. 이제 20살, 앞으로 경험하게 될 모든 것들은 다 새로울 것이고 그만큼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때 마다 좌절하며 마냥 괜찮아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배움을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