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와 강원도의 인구분포 변화를 통해 본우리나라 인구1962년 전국인구추계피라미드(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 테마통계 > 인구피라미드)2012년 전국인구추계피라미드(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 테마통계 > 인구피라미드)우리나라의 인구 연령층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았을 때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를 인구피라미드를 통해 손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인구피라미드란 어떤 지역의 일정한 시점에서 연령 계층별 인구를 저 연령층에서 고 연령층으로 쌓아 올려 만든 도표를 말한다. 인구 피라미드는 어떤 지역의 인구 발전 단계 및 인구 변동의 역사적 과정을 잘 나타내므로 그 지역의 사회적 특성과 추세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이 우평, Basic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왼쪽 위에 제시된 인구피라미드는 1962년 전국인구 추계피라미드이다. 이 인구피라미드는 전형적인 피라미드형으로 유소년층의 비중이 크고 노년층의 비중이 적은 다산 다사 형태를 띠고 있다. 1962년 우리나라는 1953년 한국전쟁 후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베이비붐을 겪게 된다. 베이비붐이란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어떤 시기의 공통된 사회적 경향을 일컫는 현상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전쟁이 끝난 후 또는 불경기가 끝난 후 등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풍요롭게 안정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우평, Basic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을 말한다. 베이비붐을 통해 우리나라 출산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급격한 산업화로 사회 전반적 질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의료, 보건 기술의 부족으로 사망률이 높았고 평균수명은 52.4세 정도였다. 이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의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이에 반해, 왼쪽 아래에 제시된 인구피라미드는 2012년 우리나라 전국인구 추계피라미드이다. 2012년 우리나라는 유소년 층의 인구 증가가 감소하고 노년층의 인구가 증가하는 소산 소사형태를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남자 73.5세, 여자 82.2세로서 1960년대와 비교했을 때 약 30세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우리나라 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른 발전을 이루면서 증가해왔다. 평균 수명의 연장은 노인인구의 증가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전체인구 중 노인인구 비율이 7.2%로 이미 고령화 사회(ageing society)에 들어섰고, 향후 2018년에는 14.3%로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진입하며 2026년에는 20.8%로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Super-aged society)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2008), 고령자통계) 노인인구의 증가는 출산율 저하로 말미암은 유소년층 인구 감소와 맞물려 사회에 노인 인구의 비중을 크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인구피라미드는 소산 소사의 선진국형을 따르게 되었으며, 미래에는 에스키모와 유럽 일부 국가에서 볼 수 있듯이 출생률이 사망률보다 낮아 인구가 감소하는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20세기 우리나라의 인구는 국가의 가족계획사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80년대 들어서는 50년대 중·후반 출생자가 자녀를 출산하면서 제2차 베이비붐 현상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당시 정부는 “여보! 우리도 하나만 낳읍시다.”, “하나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외동딸” 등의 표어와 함께 대대적인 출산억제 캠페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정부의 꾸준한 출산억제 정책으로 출산율은 점점 떨어져 1970년 4.53명에서 1985년 1.67명까지 하락한다. (여성가족부플러그) 2000년대에 들어서 저출산 문제가 대두함에 따라 정부는 출산장려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저하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우리나라는 또한, 현대사회에 들어 혼인 혹은 출산지연 및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혼인이나 출산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여성이 늘어남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집값, 교육비, 출산 등의 가족 재생산비용을 사회가 아닌 가족이 더 많이 부담하는데 이 같은 가족 재생산비용의 부담이 출산율 저하의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
강의명:xxxxxxx영화 ‘아마데우스’ 감상문교수님 성함제출 일제출 인아마데우스라는 영화의 제목은 모차르트의 중간이름(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라서 모차르트를 중심으로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살리에르의 눈으로 본 모차르트의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나는 모차르트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에 영화에서 본 모차르트는 나의 환상을 깨어 놓았다. 영화 속의 그는 나쁘게 말하면 철이 없고 경박스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모차르트가 작곡한 그의 음악들이 하나 둘 나오고, 오페라들이 하나 둘 나오면서 그의 음악은 나를 사로잡고도 넘쳐흘렀다.영화의 특성 상 모든 작품을 다 볼 수도 없었고 모든 작품이 끝까지 연주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클래식 음악에 무지한 내가 들어도 너무 아름답고 예뻤다. 그의 음악에는 어떤 수사나 찬사도 필요 없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어떤 수사나 찬사로도 그의 음악을 오롯이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을 일체 거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를 숭배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라하르트 슈트라우스처럼 열럴히 모차르트를 숭배하진 못하지만 내가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그의 음악을 느꼈기를 바랐다.영화에는 상황에 맞게 모차르트의 음악들이 삽입되면서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모차르트가 궁에 초대되어 황제가 모차르트를 위해 피아노를 칠 때에도 노래가 흘러나왔고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볼 때에도 모차르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영화는 모차르트의 노래로 가득 차있었다.영화는 그 시대의 의상과 배경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를 모차르트의 곁으로 끌어다 놓았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영화에 나왔던 모차르트의 많은 노래들이 우리가 이미 한번 쯤 들어봤거나 익숙하고 친숙한 노래들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나와 연관선상에 있다고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고 구태여 찾아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이미 나에게 굉장히 친숙했다. 우리는 벌써 많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나에게만 친숙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꼭 한 번쯤은 들어봤던 곡들이었는데 우리는 그 노래가 모차르트의 곡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뿐이었다. 처음에 살리에르가 신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쳤던 곡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그 익숙한 피아노 소리라니.. 심지어 마술피리에 밤의 여왕 아리아는 우리가 장난으로 한번씩 다 따라해 보았던 그 곡이 아니던가?그가 죽은 지 몇백 년이 지나갔지만 그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현대에 들어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다룰줄 알고 보는 사람이 모차르트의 작품을 한 번도 들어 보지 않았다는 말처럼 우스운 거짓말이 어디 있을까? 아마 영화를 보기 전에의 나라면 그런 사람이 많지 왜 없냐고 반박했을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내가 모차르트에 대해 더 알고 그의 음악이 얼마나 대중적이었나를 느끼게 해 주었다. 살리에르는 그의 음악을 보고 느끼면서 황홀한 듯 말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아름다움(absolutely beauty)이였다고. 사람들은 아마데우스 영화를 보고 살리에르가 느끼는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 공감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천재에 대해 느끼는 질투에 대해 공감을 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에게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우리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심경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준 것도 모차르트 음악이 배경음으로 사용되면서 라는 것을 알까? 영화는 그의 음악을 최대한으로 사용함으로써 우리에게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2019.00.00. 수업명행복의 조건교수님 성함제출일제출인행복은 현대인들의 큰 관심사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애쓰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심지어 나의 이번 학기 시간표에는 ‘한국인의 삶과 행복’이라는 강좌가 들어가 있다. 또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행복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십 권의 책이 뜬다.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지금 나의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수의 책들이 그저 뻔한 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 책들은 그저 사오정 시리즈 같은 유머 포켓북과 같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 마음을 편히 가져라, 근심을 내려놔라. 그리고는 과거 성인군자들의 일화를 하나쯤 실어놓는다. 분명 좋은 말과 설명을 하고 있지만 와 닿는 건 없다.‘행복의 조건’이 괜찮은 내용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베일런트가 심리학책에 나오는 저명한 심리학자라서가 아니다. 이 책의 매력은 베일런트가 실제 연구를 바탕으로 쓴 내용이라는 점이다. 행복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어쩌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뻔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은 오랜 종단연구를 통해 실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책에서 베일런트도 언급하고 있지만 오랜 종단 연구를 하는 일은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거니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많은 연구들은 논문이나 학술서적으로 출간되어있어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와 달리 그가 오랜 연구를 인내심을 가지고 실시하고 또한 그 몇 십 년의 연구와 방대한 자료를 편집하여 일반 사람들이 접하기 쉽게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책에서는 노화나 노년의 사람들을 인터뷰했지만 읽다보면 성인 초기에 있는 사람들도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행복에는 하나의 조건만이 작용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우선순위가 존재하겠지만 공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게다가 여러 요소가 얼마나 작용하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은 어떤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지만 경제적 풍요보다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한 사람들도 많다. 최악의 빈곤은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만 적정수준의 경제적 능력만 유지하면 사람들은 경제적인 걱정에서 벗어난다. 심지어 일정수준 이상의 부를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적정수준의 부를 가진 사람보다 불행하다.책은 베일런트 자신의 이론에 따라 기술된다. 2장에서 성인이 이루어야 할 발달 과업에 대해서 설명한다. 첫 번째로 청소년은 성인기에 들어가기 전에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 초기 성인기의 과업은 친밀감 형성에 있다. 후에 30대가 되면 일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그 다음이 다음 세대를 염려하고 헌신적인 지도를 하는 능력인 생산성이 필요하다. 60대가 되면 인류에 관심을 두고 공동체를 넘어 사회적 지평을 확장하는 의미의 수호자가 된다. 마지막 과업은 통합이다. 에릭슨은 통합의 미덕이 지혜라고 이야기했다. 책에서도 나와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모든 발달과업을 거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조차 실패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이른 나이에 통합을 이루기도 한다.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아Q정전’이라는 책이 있다. 주인공은 아Q라는 동네바보쯤 된다. 그는 나쁜 일에 대해서 그냥 자신이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고 정신승리를 이룬다. 그리고 혼자서 행복해 한다. 문제는 그의 정신승리가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현실의 그는 깡패에게 맞지만 그는 속으로 사실 그 깡패는 지위가 낮은 사람이니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일런트가 그를 인터뷰한다면 아마 그를 흥미롭게 여길 것이다. 아마도 아Q는 정상에서 매우 벗어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아Q는 오래 살지 못했지만 만약 오래 살았다고 해도 그가 품위 있게 나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베일런트의 연구에서 행복한 노년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자신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해서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반대로 베일런트가 제시한 ‘음울한’사례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른다.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휩쓸려 따라간다. 뒤늦게라도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행복한 노화로 어이질 수 있다.놀라운 점은 삶의 역경에 대한 ‘극복’이나 ‘대처’능력에 관한 부분이다. 인터뷰에서 객관적으로 매력적이고 행복한 노년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과거 어린 시절부터 모두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인터뷰 대상자 중의 몇 명은 과거 어린 시절의 나쁜 경험(예를 들어 부모님의 학대)을 겪었지만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서 그것을 극복해서 결국 품위 있는 노년을 맞이한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나쁜 경험들이 노년시절까지 이어진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는 시기도 다르고 계기도 다르다. 심리학의 여러 책이나 논문에서 심리치료의 방법이나 관점이 다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효과를 얻는 방식이 있다. 물론 통계적인 비율이 존재하지만 통계에는 항상 변수나 예외라는 것이 존재한다.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항상 배우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발달시키고 환경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긍정의 배신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셀리그먼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셀리그먼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수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셀리그먼을 묘사하는 것보다 코앞에서 셀리그먼을 만나고 이야기한 그녀가 셀리그먼을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근거로 그녀의 말이 완전히 틀리다고 반박하겠는가. 심지어 그녀는 나보다 긍정을 배신하는데 있어서 더 전문가인데 말이다. 나는 들어보거나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을 그녀는 책에서 진실이라고 이야기한다.심리학에서 긍정은 중요하다. 심리학 수업시간에 여러 번 행복이나 긍정에 대해서 들어보았고 그에 따르는 실험들도 배웠다. 일반 상식적으로도 긍정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보다 더 좋다고 알고 있다. 다만 일반 상식과 심리학의 차이는 과학적 방법이라 배웠다. 그런데 그녀는 긍정의 심리학을 과학적으로 비판하고 뿌리를 흔드니 별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주장조차 사실은 그녀가 비판하는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야 한다. 심리학 연구를 심리학 연구로 비판한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책도 심리학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나 의견일 뿐 완벽하게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셀리그먼의 글이 ‘낙천적이 되어라,…명랑해지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충격이다. 과학 연구는 가치를 포함해서는 안 되고 심리학은 과학적 연구를 위해 노력하니 심리학은 가치를 포함하는 연구를 하거나 그런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물론 그가 그의 논문에서 그렇게 말했을 리는 없다. 연구에서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 나름이니 셀리그먼은 심리학자로써 글을 썼다기보다는 인생 코칭강사로써 저술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심리학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부적절한 믿음이나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그녀는 또한 긍정과 병에 대한 심리학 연구들이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이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속여서 말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심리학 논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인용하는 제 2차 간행물이다. 심리학에서 인과관계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해야 한다. 하지만 실험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고 질병 관련 연구들은 통제가 어렵다. 그래서 실험을 하지 못하는 내용을 상관관계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심리학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한계에 가깝다. 이를 긍정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나 자기 계발서의 작가가 인용할 때 심라학 연구에서 ~했다더라! 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책을 사서 읽은 사람들은 그런 심리학 연구가 있었구나 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이 왜곡을 심리학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심리학은 말 그대로 학문이다. 심리학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코칭강사역할을 하는 심리학자를 비판해야 할 것이다. ‘긍정심리학: 행복의 과학’의 배신이 아니라 ‘긍정심리학자: 행복의 코칭강사’를 논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쓴이는 코칭강사들이 양자역학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양자역학을 비난하지 않는다. 심리학을 비난하는 글쓴이의 논리로 보면 그녀는 양자역학이 의도와는 다르게 코칭강사들에게 이용되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긍정에 대한 과학적 바탕이 되는 것을 비판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녀는 양자역학이 그런 식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서 불쌍하게 여기기까지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에 반해 심리학은 그녀에게 비판의 대상이다. 심리학의 거장인 셀리그먼이 그 같은 주장을 해서? 그녀가 보기에는 심리학이 어쭙잖게 과학을 사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심리학은 그 자체로 과학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많이 부족하다. 인간은 실험을 통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다양하고 다르다. 환경 또한 실험실의 좁은 세상과는 다르게 다양하다. 이 때문에 심리학은 항상 일반화에 의심을 받는다. 심리학은 항상 이것에 대해 변명하고 나도 그녀의 주장에 변명거리를 찾고 있다.
뤼쉰의 아Q정전 독후감아Q정전은 아Q라는 잡역부의 삶을 말해주는 단편소설이다. 아Q는 가난하게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그저 그런 인물이지만 그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언제나 정신승리를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시하던 깡패에게 시비를 걸어 얻어맞아도 자신 스스로 납득할 이유를 만들어 결국에는 정신적으로만 승리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상이 깨져도 다른 상상과 생각을 만들어내어 결국에는 다시 승리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상상에 갇혀 현실로는 자신과 관련 없는 일 때문에 사형을 당한다.도서관에서 아Q정전을 빌린 것은 학기 초였고 사실 나는 그때까지 아Q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아Q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 행복은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행복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행복에는 최소한의 객관적인 조건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도 개인의 주관적인 것에 영향을 미칠 뿐이지 행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아Q 본인은 정신승리로써 자신에 대한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그의 삶은 집도 없고 직업도 없이 가난했지만 주관적으로 그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는 아Q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이유는 아Q가 자신의 삶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아Q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고 타인은 결국 타인이다. 이는 개인의 행복을 타인이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심리학에서 상담을 할 때 강조하는 원칙 세 가지는 무조건적 긍정, 이해, 수용적 태도이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가치관에서 평가하려고 할 때 편견과 오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때문에 3자의 입장에서 한 개인이 겪어온 삶과 가치관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그에 대한 가치판단(그가 행복한지 불행한지)을 할 수 있는 지는 충분한 고민거리이다.그러나 수업을 진행하면서 아Q의 행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보게 되었다. 특히, 대중문화와 행복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과연 아Q의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아Q의 정신승리는 대중문화에 빠져서 현실을 잊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대중문화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개인 자체의 현실이 아니다. 대중문화에 빠진 사람은 허상에 매달려 찰나의 쾌락을 추구하고 현실을 잊어버린다. 아Q 역시 정신승리 하는 동안 그의 현실은 비참하기만 하다. 스스로를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한다고 아Q는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이다. 그의 정신승리는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그를 보호해주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때문에 그의 삶에는 발전이 없고 끊임없이 침몰한다.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정신은 사상누각처럼 파도 한 번에 거품처럼 사라질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수업시간에 배웠던 폐지를 주워 기부하는 할머니와 아Q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두 사람 모두 현실에서는 가난하다. 그러나 폐지를 줍는 할머니는 아마 자신의 삶을 잘 알고 있고, 기부를 한다면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을 것이다. 기부 때문에 자신이 더 먹지 못할 것이며 아픈 곳을 치료하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는 만족을 느끼겠지만 그것은 타인에게 베풀었다는 행복이지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서 느끼는 행복이 아니다. 그러나 아Q가 기부를 한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자신은 위대한 사람이고 때문에 가난한 누군가에게 얼마쯤 베풀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대단한 사람임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존경할 것이라고 아Q는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그의 상상과는 많이 다르다. 현실을 버린 상상으로의 도피는 현실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스스로의 현실적인 불행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그의 총체적인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그의 행복을 참된 행복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자기기만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