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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거문화 에 대한 나의 생각
    동거 문화먼저 동거문화를 알아보기 전에 우리나라의 전통 의례인 관혼상제에 대해 난생처음 깊은 생각을 해보았다. 여기에 대해 나는 보수적이기 보다는 진보적이다. 그러나 관혼상제를 완전히 이행하지 않는 것 이 아니라 조금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혼상제가 우리 조상들이 예부터 중요하게 여긴 가정행사이고 조선시대부터 관혼상제가 단순한 의례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한 문장을 보고 느꼈다. 관혼상제란 우리나라의 전통의례이기도 하고 의미도 깊은 것이기 때문에 절대 없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그리고 관혼상제를 현대적인 입장에서보아 여러 가지 단점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관혼상제의 관례 같은 경우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성년의 날’ 의 날짜도 제대로 모르고 참여자 또한 극히 드물다. 혼례의 경우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고 신혼여행은 꼭 해외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례의 경우 요즘 같은 시대에는 아들이 없는 집이 많은데 딸도 당연히 상주가 될 수 있는데 굳이 사촌이나 조카 중 남자를 상주로 내세운다던지 하는 점은 전혀 맞지 않다. 그리고 제례의 경우 집안의 여자가 힘들다는 점이 제일 크다. 요즘은 남자가 많이 도와주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역시 주된 일은 여자들이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것만 보아도 관혼상제는 사라 져야할 이유는 없지만 여러 가지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 문제점이 많기 때문에 반드시 조정될 필요가 있다.관혼상제의 혼례를 보아, 우리나라 에서는 혼인을 하면 법적으로 동거의 의무를 져야 한다. 반대로 결혼 전에 동거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에서 혼인하지 않고 동거를 한다고 법적으로 구속 되지 않는다. 혼전에 동거를 한다 할지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혼전에 동거를 하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크게 개방적이지는 않다. 아직까지도 혼전에 동거를 하는 것에 대해 50대와 60대는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혼인의 의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결혼을 해야 같이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나라 에서도 동거의 의무를 먼저 이행하는 “동거커플” 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나고 있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20대와 30대의 혼전동거에 대한 찬성률이 30%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20대와 30대의 혼전동거에 대한 찬성률은 55%에 육박한다. 이는 전통적인 결혼과 가족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혼전동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없다. 동거를 한다고 해서 나쁘게만 봐야할 이유도 없고 꼭 결혼을 해야만 동거가 가능하다는 법 또한 없다. 서로 사랑하는데 동거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거에 대해 성(性)적인 동거라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동거를 하게 되면 성적인 이유만 있는 것 이 절대 아니다. 그만큼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배우게 되고 서로 더 알게 되고 동거로 인해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혼 전에 동거를 하는 것은 전혀 잘못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 전 동거를 쉽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절대 아니다. 혼전동거 역시 결혼만큼 신중해야한다. 단순히 경험상, 좋으니까 이런 이유로는 결혼 전에 동거를 하면 안 된다. 우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이유가 아닌 기본적인 동거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간의 구체적인 미래에 대해 확실해야 하며 동거를 통해 이득을 취하려 해서도 안 된다. 남녀의 결혼 전 동거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또한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결혼 전에 동거를 꼭 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를 했는데 그 둘이 후에 결혼을 하지 않고 헤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다. 물론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서”, “살다 보니까 단점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서” 등 많은 이유가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혼전동거 역시 꼭 결혼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신중하게 생각하여 동거를 하게 되었는데 이런 이유로 헤어졌다는 것은 서로 신중하게 생각하여 동거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내가 생각하는 혼전동거란 결혼을 꼭 하겠다는 전제하에, 결혼을 꼭 할 만큼 좋아하는 상대방과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혼전동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 살다 보니까 성격이 맞지 않아서”, “서로 살다 보니까 단점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서” 라고 한 사람들은 혼전동거의 자격이 없다. 서로 그 만큼 도 모르고 혼전 동거를 해서는 안 된다. 프랑스에서는 경제적인 동거도 많이 하는데 이 또한 맞지 않다. 남녀 사이에서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려 동거를 하는 것 이라 해도 서로 간의 이성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설령 없다 하더라도 신중해야 할 동거가 그런 식으로 단지 이득을 취하기 위해 동거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러므로 혼전동거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혼전동거를 할 수 있으나 서로의 사랑 안에서 꼭 신중해야 한다.나는 동거문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가진 후에 프랑스의 동거문화를 보고 참 놀라웠다. 프랑스는 1970년 이후 법제도 변화 등의 이유로 결혼 인구의 비율은 급격히 줄어들고 이혼율은 급속히 증가하는 동시에 동거가 확산되었다. 현재는 공문서에도 ‘기혼/미혼’ 외에 ‘현재 동거 중’이라는 선택사항이 존재하며 사회적으로도 ‘동거인’이라는 역할이 ‘남편/아내’와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전체 신생아의 40%가 혼외 출산이라는 점에서 동거가 보편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1년에는 25만 쌍, 2002년에는 21만 쌍의 동거커플이 있었던데 비해 2003년 100만 쌍이라는 폭발적인 동거부부의 증가와 20대 젊은이 중 결혼한 커플보다 동거중인 커플이 많다는 통계로 보아 프랑스 사회에서 동거가 얼마나 일반적인가를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프랑스 동거문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물론 서로 사랑하는 것에 의의를 많이 두고 동거를 한다고 하지만 신중하지 않고 그냥 좋아서 동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사회적 문제도 많이 생기는데 결혼률이 감소하고 출생률 역시 감소하였고 동거문화의 촉진과 함께 낙태의 합법화가 생겼다. 또한 미혼모가 많이 생겼다. 이 문제점들로 보아 나의 동거문화에 대한 의견과는 너무 맞지 않는다. 나의 시각에서는 프랑스의 동거문화는 신중함이 부족하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나는 프랑스처럼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것 자체에는 부정적이지 않다. 혼전에 동거를 하여 결혼을 하지 않고 계속 동거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동거문화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했듯이 서로 신중했고 미래를 약속할 사이에서 동거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꼭 결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고 혼인도 맺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둘은 서로 진심으로 “사랑” 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하더라도 서로 신중하게 동거를 하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서로 헤어질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이럴 경우에는 프랑스처럼 동거에 의한 문제점이 생기지 않을 것 이다. 혼전에 동거를 하다가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 2015.06.07| 3페이지| 1,000원| 조회(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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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스칼의 "팡세" 를 읽고
    팡세Pensees란 그저 불문학과 학생으로서 ‘생각’이라는 뜻의 프랑스 어휘의 복수형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번 과제를 하게 되면서 팡세를 읽었지만 그전엔 딱히 읽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책이다. 지식의 고등수준인 대학교에 진학하여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중요한 역사인물 파스칼을 자세히 접해볼 겨를도 없었다. 파스칼을 떠올리면 그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라는 명언만 알고 있을 뿐, 큰 관심은 전혀 없었다. 이번 과제를 통해 파스칼의 팡세를 읽게 되어 값진 경험을 하였다.파스칼은 사람의 마음인 심정을 강조한다. 심정은 이성이 모르는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더불어 인식능력으로서의 기능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란 이성이 아닌 심정을 통해서 인식된다고 까지 한다. 근대는 인간 이성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대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파스칼은 도리어 이성 보다는 심정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파스칼은 시대를 역행한 건지 심정은 무엇이고 왜 심정을 강조하는 것인지에 의문이 생겼다.파스칼은 심정이 무엇이라고 명확히 정의내리지 않았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인간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정을 인식능력이라고 언급하였으므로 이성과 더불어 감각도 이 심정의 범위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감각은 이성에 앞 선 것보다 일차적인 인식능력이기 때문이다. 심정을 명확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성과 감각외의 인간의 정신능력이나 상태로 심정의 범위를 한정지을 수는 있다. 이 범위 안에서는 감정이나 의지 등의 여러 정신의 속성들이 포함된다고 한다. 심정의 의미를 이렇게 한정해 놓은 상태에서 다음으로 내가 궁금했던 것은 파스칼은 왜 심정을 강조 하는가? 이다.파스칼이 역설한 것처럼 인간의 이성은 무력하고 불확실하다. 일상생활에서 이성의 판단이 감정과 상상력에 휘둘리는 경우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인간 이성이 마련한 정의, 법이라는 것이 산맥 하나를 두고 이쪽에서는 정의 저 쪽에서는 오류인 것처럼 이성에 의한 진리는 절대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절대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인간의 이성은 진리를 발견해 내기에는 무력하다. 이 진리가 법, 정의의 현실적 진리의 영역이 아닌 종교적 진리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경우에도 이성의 무력함은 변하지 않는다.종교적 진리란 신의 존재유무에 관한 문제라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 신을 논하고 있는 인간의 현 상황이 고통이라는 데에 있다. 문제가 고통이 아니라면 파스칼이 이신론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신론에서도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 이신론에서의 신이란 법칙으로서의 신이다. 이 법칙으로서의 신은 자기 자신이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법칙이므로 법칙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할 뿐 그 안에서 운행되는 세계에 간섭하지는 않는다.이에 파스칼은 반론한다. 그런 신이 인간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파스칼은 신 안에서의 인간의 행복을 말한다. 신이 인간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인간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 세계에 참여하지 않는 신이라면 그 존재유무에 상관없이 필요 없다. 신은 고통이라는 인간의 현 상황에 개선을 가져올 수 있어야 신이다. 신의 존재유무는 인간의 심리적 느낌의 변화에 의지한다고 할 수 있다.또 파스칼은 신의 존재함과 신에 대한 믿음의 정당함을 내기를 통해서 증명해 보인다. 신이 없다고 할 경우 인간이 갖고 있는 유한한 행복을 잃겠고, 있다고 할 경우에는 신의 무한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파스칼은 신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내지도 않고 윤리적으로 요청하지도 않는다. 신이 존재함을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에 직접 호소함으로써 증명해 보이고 있다. 위 두 경우를 종합해보면 파스칼에게 신은 자기 자신의 권위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다. 인간의 이익에 따라 그 존재성이 인정되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하는 신이다.인간은 무한대의 관점에서 보면 보잘 것 없는 존재로서 비참하다. 반면 인간은 무한소의 관점에서 보면 위대한 존재이다. 이렇듯 인간은 두 무한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비참과 위대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중간적 위치는 자신의 한계를 알게 하며, 확실히 알 수도 없고 완전히 모를 수도 없는 상태를 보여준다.파스칼이 강조하다시피 인간은 비참하면서 동시에 위대한 존재이다. 수업시간에 발표 과제를 준비 할 때에도 정말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인간이 비참을 모르면 교만해지고, 위대를 모르면 절망에 빠진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감탄 했었다. 어느 한쪽만 아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위대만 아는 인간은 신을 찾지 않고, 비참만 아는 인간은 위대를 모르기에 신을 알 수 없다. 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자신이 비참하며 동시에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알려주는 종교는 참된 유일한 종교인 기독교 밖에 없다는 것이 파스칼의 주장이다.
    독후감/창작| 2015.06.07| 3페이지| 1,000원| 조회(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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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S 다큐프라임 동과서 감상문
    명사로 세상을 보는 서양인, 동사로 세상을 보는 동양인첫 장면인 꽃그림으로 분류하는 실험을 시작으로 너무 놀라웠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같은 인간이지만, 사소한 것부터 큰 것 까지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동양인은 대체로 A를 선택했는데 서양인은 거의 B를 선택했다. 꽃의 외양이 대체적으로 A와 크게 거슬리지 않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A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는데 비해 서양인들은 동양인에 비해 ‘분석력’이 뛰어나서 A와B의 꽃잎모양으로 보아, 뾰족한지 둥근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꽃 밑에 있는 줄기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니 당연히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B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동양인은 그림의 전체적인 부분을 보고 그룹을 정했는데 서양인들은 그림의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으로 그룹을 정하였다. 그리고 나무기둥 “닥스” 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동양인은 물질을 중요시하고 서양인들은 물체를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렇게 서양인들은 물체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단수와 복수의 구분이 발달되어 있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고 동양인들은 물질이 같으면 언제든지 그 물체와 같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너무 신기하였다.서양인들은 전체는 각각이 모여 집합을 이룬다고 생각하고 동양인들은 전체는 그 자체로 덩어리가 되어 하나의 일체로 생각한다고 하였는데 코끼리 사진을 보는 실험에서 정확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서양인들은 코끼리에 집중하여 사진을 감상 하였는데 동양인들은 그림 전체의 배경을 중요시 생각하며 사진을 감상 하였다. 이 실험을 보며 서양인들은 개체성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양인들은 관계성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서양의 개인주의 성향에 근거를 알 수 있었고 동양인들은 전체적인 조화를 중요시하기 개인주의 성향 보다는 조화에 의의를 더 많이 둔다는 것 또한 근거를 이해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렇게 동양과 서양의 사소하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서양의 개체성 중시와 동양의 관계성 중시의 차이로 인해 서양인과 동양인의 문화적 차이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서양인은 그림을 그릴 때 1인칭 시점으로 동양인은 3인칭시점으로 그리는 것도 놀라웠고 서양은 명사를 자주 사용하고 동양은 동사를 자주 사용 하는 것 등등 하나의 차이로 인해 여러 가지 차이 가 있는 것 이 너무 신기 하였고 놀라웠다. 사진을 찍을 때도 서양인은 개체를 중시하여 사진의 상반신만 나와 얼굴을 중심으로 찍었고 동양인들은 사진의 전체적인 조화를 중시하기에 전신과 풍경을 함께 찍는 모습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서양인들은 명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자녀 육아 교육에서도 주로 명사를 사용하였고, 이로 인해 자녀들은 명사를 위주로 학습하게 되고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동양인들은 동사를 중시하기에 학습과 놀이에서도 동사를 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동양인과 서양인들의 언어사용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확인하며 느낀 것은 바로 “정답은 없다.” 라는 점이다. 무엇이든 문화의 차이이며 이것이 곧 언어의 차이를 만들었고 그로인해 서로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질감 또한 안생 길 수 없고, 이해를 필요로 한다는 점도 깨달았다. 또한, 언어가 얼마나 많은 곳에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 것도 느꼈고 언어에 대해 더욱더 깊은 생각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우리나라 고유 언어 한글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해야 한다는 점도 느꼈다.서양인은 보려 하고 동양인은 되려한다.앞에서 본 명사로 세상을 보는 서양인, 동사로 세상을 보는 동양인 에 이어 이번 영상 또한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첫 장면인 우주선의 순서를 동양인과 서양인이 다르게 느끼는 것부터 너무 신기했다. 서양인은 예로부터 투시법을 통해 객관적인 공간을 알고 인간이 시각적 능력을 가진 것은 더욱이 신에게 받은 은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보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이처럼 인간이 본다는 행위에서 시작된 투시법은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서양인은 세 우주선의 위치는 자신의 시선에서 가장 멀리 있는 우주선이 가장 앞쪽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서양인은 이렇게 보고 있는 관찰자를 중요시 하는 것이 정말 신기했고 이로 인해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정 반대로 사물을 보는 경우가 있다. 동양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역 투시법(역 원근법)은 동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 큰 의미를 담는다. 동양인은 관찰자가 보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동양인의 상대방 중심적인 3인칭 시점과 서양인의 자기중심적인 1인칭 시점의 사고방식의 차이점으로 인해 동양인과 서양인이 우주선의 순서를 다르게 생각했고, 동양화의 상대방의 시각으로 그린 역투시법과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느끼는 서양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이 두 차이점에 의해 서양의 음식인 스테이크는 직접 썰어 먹게 내어주었고 동양의 음식인 탕수육은 상대방의 배려차원에서 미리 먹기 좋게 나와 있었다. 똑같은 고기여도, 먹을 수 있는 크기로 미리 ‘칼’로 잘라서 조리한다. 그래서 동양은 ‘젓가락’이 발달했고, 서양은 포크와 나이프가 발달했다.
    독후감/창작| 2015.06.07| 2페이지| 1,000원| 조회(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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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팬지 "칸지" 에 대해 (영상 감상문)
    [인간의 언어를 습득한 칸지]우선 수업을 들으면서 언어에 대한 기원과 언어에 대해 심층 있게 배우게 되면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물도 인간처럼 언어를 습득하고 인지하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는 것 이다. 그 중 여러 동물들이 그저 조련사의 반응에 대한 행동으로 그쳤지만 한 동물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침팬지” 이다.침팬지 오스턴은 인지능력은 좋았으나 조련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헤드폰에 의한 인지절차에서 한계를 보였다. 모습이 보이지 않고 음성만 존재하니 제대로 인지상태를 표현할 수 없었다. 이때 나는 침팬지도 결국 명령에 대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전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을 단번에 깨뜨려준 침팬지가 있다. 그는 바로 “칸지” 이다.칸지는 헤드폰으로 전달된 메시지를 듣고 반응을 보이기전 누가 이 헤드폰으로 나에게 말을 하는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는 것부터 나에게 놀라움을 안겨 주었고 또한 멀리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는지 헤드폰에서 들리는 언어에 대한 대답도 하였다. 칸지를 보고 너무나 놀라운 사실들을 더 알게 되었다. 칸지는 200여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버튼으로 사물을 암기했고 조련사의 말을 듣고 기호를 인지하여 두뇌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사실만으로는 단지 조련사의 반응에 따라 동물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그칠 수 있지만 칸지는 달랐다. 칸지는 암기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기분이 좋다. 또는 나쁘다. 라는 추상적인 자신의 기호상태도 표현할 수 있었다. 결국 명령에 대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닌 단어 그 자체를 언어로써 인지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인간이 자라온 환경, 자신의 공부기간 등 에 따라 학습 능력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침팬지도 학습능력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여러 가지 언어 발생설들 중 칸지의 실험을 통해 가장 근접한 언의의 기원을 살펴본다면 자연 발생설을 들 수 있다. 그중 언어의 자연 발생설에 대해 더 알아보았다. 나는 자연 발생설 중에서 끙끙설이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한다. 끙끙이 설은 힘든 일 일수록 남의 도움이 필요하고 보다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일수록 의사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어가 발생하였다는 설이다. 영상물에서 칸지는 조련사의 말을 잘 들으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는것을 알고, 문을 부수는 것보다는 문을 열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아직은 인간의 언어를 완벽히 습득하지 못한 판바니샤를 가르치려 했던 것이다. 또한 인간과 야생을 중재하는 역할도 한다. 칸지는 먹을 것이든 놀이 감이든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과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칸지가 안다는 것 이다. 타뮬리 라는 침팬지와 조련사와의 다툼이 생겼는데 칸지가 그것을 보고 중재하고 타이르는 장면에서 너무나 놀라웠다. 때문에 칸지가 인간과 언어로 교감을 하는 것이 아닐까?
    독후감/창작| 2015.06.07| 1페이지| 1,000원| 조회(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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