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9
검색어 입력폼
  • 중국역사와문화(중국문화 체험기) 감상평 과제
    중국역사와 문화내가 체험한 중국문화내가 체험 중국문화-인천 차이나타운-햇살이 너무 좋고 또 좋아서 발걸음이 가벼운 하루였습니다. 인천을 가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갔습니다. 과제 덕분에 1호선을 처음 탔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호선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승객들 거의 모두가 지하철에서 내려서 차이나타운으로 향했습니다. 특히 연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지하철 1호선 종착역인 인천역을 나와서 왼쪽을 쳐다보면 위 사진처럼 신기한 문이 우릴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큰 문을 처음 본 순간 ‘아 저기가 차이나타운 입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을 가본적 없는 저지만, 우리나라 전통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가까이 가서 사진을 다시 찍었는데, 한자로 ‘中華街’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역시나 예측대로 차이나타운의 입구가 맞았습니다. 중국의 자금성에 가면 대문들의 모양이나 느낌이 차이나타운 입구처럼 비슷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문을 지나면 바로 이런 안내판이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이 자랑하는 관광명소입니다. ‘많지 않으니깐 금방 볼 수 있겠지.’란 생각으로 1번부터 8번까지를 목표로 했습니다. (사진 속에 미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차이나타운 거리의 모습입니다. 30도의 언덕을 올라가야 중심지로 갈 수 있습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가족 단위나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거리에는 오른쪽 사진처럼 빨간색의 가로등이 있습니다. 기둥에는 용이 그려져 있고 양쪽에 등이, 그리고 차이나타운을 광고하는 것도 걸려있습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인들은 역시 붉은색을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마을 전체가 빨간색이어서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상점을 발견했습니다. 차이나타운을 가기 하루 전날 밤에, 차이나타운에 후기 글을 봤었는데 연인들끼리 치파오를 입고 사진 찍은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서 저도 차이나타운 가서 사는 척하고 치파오를 입어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을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서 문을 못 열었습니다. 더군다나 같이 간 여자후배가 있어서 부끄러웠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언덕을 걸어 올라갔습니다.이곳을 담당하는 관공서도 사진처럼 중국을 연상시킵니다. 중국집 문 앞에 가면 볼 수 있는 표주박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러면서도 ‘건물은 보통의 건물 모양인데 중국처럼 보이려고 단순히 겉에 저런 것을 단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서양과 동양의 조화인걸까요.차이나타운 중심거리 전체 사진입니다. 30도 경사를 올라오면 평탄한 거리가 나옵니다. 거리 양쪽으로는 각종 음식점들과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5분정도 사람이 안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을 정도로 북적북적 했습니다. 줄이 가장 긴 길거리 음식점에서 간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날씨가 워낙 더워서 태양 아래 서있기가 너무 싫어서 포기했습니다. 빨리 실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찾았습니다. 드디어 지상 낙원을 찾았습니다. 중국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단어가 자장면입니다. 열에 아홉은 자장면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자장면도 역사가 있는데, 그 역사를 보존하는 곳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사진은 자장면 역사박물관 입구 사진입니다. 한자로 써져 있는 ‘공화춘’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생긴 자장면 집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공화춘’은 영업을 하고 있는데 차이나타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공화춘에서 요리를 먹으려면 한 두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합니다.후배 티켓 값까지 1600원을 내고 박물관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박물관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습니다. 처음엔 ‘시원하다.’라는 생각뿐이었는데 800원 이상의 값어치를 했습니다. 2층은 자장면이 시기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전시했고, 1층은 자장면 요리, 화교 문화를 전시했습니다.내부에는 사진처럼 전시된 것 옆에 설명을 해놓은 판을 배치해 놨습니다. 위 사진은 공화춘을 설명하는 글인데, 처음에 공화춘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지금의 위치까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자장면 가격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아이스크림이 몇 원도 안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소리를 간혹 듣곤 했습니다. 이 글을 보고 그 때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60년대 초에 자장면이 15원 밖에 안했는데, 물론 지금의 화폐가치를 생각해보면 그때당시 15원이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돈으로만 따지고 보면 웃긴 얘깁니다. 자장면이 15원이라니요. 요즘 자장면 한 그릇을 먹으려면 4000원을 내야할 정도로 대학생들에겐 결코 싼 음식은 아닙니다. 어쩔 땐 양이 적어 진건 아닌가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습니다.제가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많이 웃음을 지은 곳이 이 전시관 앞에서입니다. 자장면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바로 철가방입니다! 자장면을 시키면 쇠로된 마지막 철가방을 들고 오는데 음식에 눈이 멀어서 철가방에 담아 왔다는 것 조차 까먹을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깐 ‘배달 아저씨께서 매일 들고 오시는 게 철가방이지!’라는 생각이 퍼뜩했습니다.옛날엔 어떻게 나무로 된 가방을 들고 자장면을 배달했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지금보다도 크기도 훨씬 커서 손에 들면 허벅지에 다 닿는데 아프진 않았을까 걱정도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철가방보다 바로 두 번째 사진 가운데 있는 철가방이 가장 맘에 듭니다. 크기도 적당히 크고 흰색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장면이 더 맛있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을 거 같습니다.2층 계단 앞에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자장면과 관련된 일반 라면들이 이렇게 전시돼 있습니다. 종류가 정말 다양합니다. 물론 제가 아는 종류라고는 2000년대 부분에서, 짜파게티 짜짜로니 정도지만, 제가 아직도 모르는 라면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대체 이 라면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곳을 지나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1층으로 내려오면 자장면 재료 설명과 사진의 제 모습처럼 자장면 소스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소스에 들어가는 야채를 볶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후배한테 찍어달라고 했는데, 저도 지금 처음 보는 사진인데 그 친구가 웃었던 이유를 알 듯합니다. 2층에 비해 1층은 간단 간단한 전시물들이 대부분입니다.박물관을 나가려던 찰나에 들어올 때 보지 못했던 전시물 하나가 있었습니다. 공하춘 현판입니다. 실제로 공화춘 현판으로 쓰였던 것인데 낡고 달아서 지금은 박물관 입구 오른쪽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멋이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추억이 뭍어져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 간판을 보고 공화춘을 몰려온 손님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처음엔 입구에서 1번부터 8번까지 다 돌아보고 집에 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박물관에서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4시가 넘었습니다. 아직 볼게 7개가 남아 있어서 그건 무리다 싶어서 건물에 들어가기보다는 차이나타운 전체를 한 바퀴 돌자고 했습니다.
    인문/어학| 2021.08.08| 12페이지| 2,000원| 조회(173)
    미리보기
  • 스페인 문화와 예술 과제 A+리포트 - 급하신분 추천
    Ⅰ. 스페인 현대 미술 회화(화법) 및 특징사실 스페인의 현대미술은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프랑코의 40년 독재 정권이 그 이유다.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을 일으켰고 전체주의 사상에 입각해 국민을 철저히 탄압했다. 영향은 스페인 화가들에게도 미쳐 검열을 피해 그들을 스페인으로부터 떠나게 한다. 정권에 반기를 드는 문화적인 제도 기관들은 사라졌고, 결국 스페인 창작 활동(미술)은 정체된다. 이 시기에 스페인 예술 작품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예술인 신고전주의 전통을 되풀이하는 것만이 남는다. 문화부 장관이 스페인의 첫 인상주의 전시 개최를 원했지만 정권의 고위 간부가 인상주의자들로부터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답을 했다고 한다. 짧은 일화로도 충분히 탄압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비로소, 프랑코 독재 정권이 끝나고 스페인 미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물론, 피카소처럼 스페인을 떠나 명성을 떨친 화가들도 있었지만 본국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던 것은 이 때부터다.스페인 현대 미술에 획을 그은 회화(화법) 및 특징은 큐비즘, 즉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다. 입체주의는 ‘조르즈 브라크’의 풍경화에서 비롯됐는데, 대상을 입체적 공간으로 나눠서 원색을 칠해 재구성했다. 이런 표현 양식에서 출발해서 점차 뚜렷한 입체적 형태 예를 들면, 원통형, 입방형, 원추형 등을 이용해서 이전에 사용하던 선이나 면을 대신해서 표현했다. 이러한 입체주의 작품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사물을 해체해서 표현했다. 그 후엔 다시 조화롭게 결합했다. 그래서 입체주의에서는 그림을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분해한 후에 다시 조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입체주의의 대표 작가로는 피카소가 있다.입체주의의 한 종류로 분석적 입체주의가 있는데, 앞서 설명한 초기 입체주의에서 더 나아가 복수시점을 형태 파편화했다. 그림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표현했다. 그 이후에는 종합적 입체주의로 발전했다.‘초현실주의’는 20세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퍼진 예술사조이다.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이 시기 화가들은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신분석가인 프로이트의 학설에서 영향을 받아, 지성을 초월한 꿈이나 무의식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초현실적인 미를 창조하려고 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화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 전후의 아픔을 작품에 표현했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이 컸다. 또한, 이들은 작품이 미술의 대상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에 반대하며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기법으로 콜라주(Collage), 프로타주(Frottage), 파피에 콜레(Papier Collar), 데페이즈망(depaysment), 자동기술법(automatism)등이 있다.Ⅱ. 20세기 입체주의 대표화가 피카소의 삶[천재 화가 피카소]의 삶을 간단히 정리하면, 그는 입체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20세기 예술 전반에 혁명을 일으켜 미술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피카소는 처음엔 우울하고 고독한 느낌의 화풍인 청색 시대를 경험했다. 그 이후 감상적이고 로맨틱한 장밋빛 시대를 거쳐 입체주의를 경험했다. 회화뿐만 아니라 도기나 조각 등의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법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프랑코 정권을 프랑스로 건너갔으며 미술관에 기증하는 등 여타 부귀를 누리지 못한 화가들과는 달리 작품 판매로 호화로운 여생을 보냈다.1881년 10월 25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 교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미술만큼은 두각을 나타냈고, 14살이 되던 해에 바르셀로나로 이사 가면서 그림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하는 학교 교육에 적응을 하지 못한 채 학교를 그만둔다. 뛰어난 그림 실력 덕분에 미술 학교인 마드리드 왕립 학교에 입학했지만 역시 적응해 실패하며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나갔다.1900년 19살이 되던 해에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접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다음 해에 개인 첫 전시회를 열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파리에 처음 정착하면서 겪었던 가난한 생활은 그를 자살을 결심할 만큼 컸다. 이 시기 심정은 작품에 드러나는데, 파란색으로 가난한 하층 계급을 표현했다. 이 시기를 흔히 ‘청색시대’라고 부른다. 1904년에는 피카소가 연애를 시작한다. 작품 에서 드러나듯이 점차 작품은 밝아졌고, 더 이상 작품 배경에 하층계급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외에 , 등이 있다.다음 해인 1905년부터 파리에서 손꼽히는 화가로 자리 잡았다. 1907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이 탄생했다. 이 때 공동 작업을 하던 ‘조르쥬 부라크’와 새로운 양식인 입체주의 양식을 만들었고, 20세기 회화의 최대 거장으로 이름을 남기는 발판이 됐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때는 프랑코 독재 정권에 대한 증오와 미움을 표현한 작품들을 연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피카소는 1973년 4월 8일 92세의 나이로 프랑스 남부 무쟁이라는 마을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그림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인생과 작품 등 업적을 고려할 때, 피카소는 현대 미술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거장임에는 틀림없다.추가로, 프랑스와 스페인 곳곳에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스페인에는 피카소가 태어난 말라가와 유년 시절을 보낸 바르셀로나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고, 피카소의 또 다른 대표작인 는 마드리드 소피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Ⅲ. 피카소 화법 및 시대별 작품 설명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남겼다. 일생을 작품에 바친 만큼 시기별로 나타나는 작품의 특징도 다양하다. 전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주로 청색시대/장밋빛시대/입체주의/고전주의/초현실주의 5가지로 나눈다.첫 번째 청색시대[1901-1904]이다. 프랑스로 건너간 초반에는 극심한 가난에 빠져있었다. 특히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에서 거리 예술가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하던 시절에 친구 ‘까사 헤마스’가 자살한다. 충격에 빠진 피카소는 파란색으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파란색으로 표현한 이유는 친구의 죽음 때문이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림에는 상실감, 슬픔, 허무함을 내포함과 동시에 화려한 파리의 이면 속에 감춰진 거지나 매춘부, 알코올 중독자 같은 소재를 표현하기도 했다.두 번째는 장밋빛시대[1904-1906]이다. 이름에서 표현된 것처럼 파란색 화풍에서 벗어나 밝은 내면이 작품에 드러난다.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페르낭도 올리비’에 라는 애인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져 무려 8년간 연애했다. 연애를 하는 동안에 페르낭도 올리비는 피카소 그림의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두운 파란색에서 벗어나 황토색과 연한 장밋빛(빨간, 주황 등)의 색을 위주로 사용했다.세 번째는 입체주의[1907-1917]이다. 피카소는 스페인의 고전미술, 이베리아 조각, 특히 아프리카의 가면 전시회에서 영감을 얻어 을 탄생시킨다. 이 작품은 그 동안 전통으로 여겨졌던 규칙을 깨서 충격을 준다. 그 이유는 ‘원근법’을 파괴한다.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잡아 사물을 배치했던 이전과 달리 여러 각도에서 본 듯한 느낌을 표현한다. 또한, 그림이 뒤틀렸다. 마치 그림을 조각내서 다시 조합한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산산조각 난 느낌을 배경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나체 파괴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나체는 아름다운 형태로 표현됐다. 하지만 에서 표현한 것처럼 여성의 얼굴과 몸이 다른 곳을 향하게 그렸다. 이 그림은 미술가 세잔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원근법으로는 사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인물이다.그 이후 페르낭도 올리비와의 연애를 마치고 에바 고을이라는 애인을 새로 사귄다. 심적 안정 때문인지 그림에 종이나, 신문, 글자 등 현실 사물이 등장한다. 대표작으로는 , 등이 있다. 그리고 1914년1차 세계대전에서 친구들이 사망하고 1915년에는 여자친구인 에바가 사망한다.네 번째로 고전주의[1917-1924]가 나타난다. 1차 세계대전은 많은 화가들에게 현실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전주의를 탄생시켰다. 피카소도 예외는 아니었고, 특히 ‘올가’와 결혼 이후에 고전주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고전주의 작품을 많이 만든다. 고전주의의 특징은 생동감이 에 잘 드러난다.마지막 다섯 번째로 초현실주의[1925-1932]이다. 피카소의 초현실주의 작품에서는 심하게 뒤틀린 형태가 드러난다. 고전주의에 그린 와 초현실주의 시기에 그린 를 비교하면 차이를 알 수 있다. 피카소가 자신의 얼굴을 입 바로 옆에 그려서 올가에게 잔소리 듣는 본인을 표현했다. 뾰족한 혀는 독설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이후 피카소의 여성 편력은 멈추지 않는다. 마리 테레즈와 결혼 후에 도라 마르라는 여인과 바람을 피면서 를 공동 창작했다. 마지막엔 자클린 로크라는 여성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학교| 2019.01.31| 5페이지| 1,500원| 조회(149)
    미리보기
  • 서양음악의 이해 감상평 레포트 과제(서양악기 감상평)
    1차 과제클래식 음악 감상문-플롯-미술 음악 등 예술적인 지식을 쌓고 싶어서 서양 음악의 이해 강의를 수강했다. 전공공부도 좋지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는 게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 지는지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음악 감상문 과제를 내야해서 반강제로 음악회를 다녀왔지만, 과제가 아니면 음악회를 자발적으로 갈 기회가 많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교수님께 감사했다. 많은 악기로 연주하고, 그 앞에 연주자가 나와서 청중들에게 인사하고 연주를 시작하는 그런 스토리의 연주회도 좋지만, 이번만큼은 색다르게 독주자가 연주하는 음악회를 가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연주하는 플롯 음악회를 알게 돼서 다녀왔다.기억에 남는 곡들을 정리하면, 첫 번째 곡은 ‘Memory’ 였다. 플롯이 주가 되고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그 뒤를 받혀줬다. 그런데, 이 곡은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는 곡이 나오니 기분이 들뜨고 더 귀 기울여지게 되었다. 이미 익숙해서 악기를 유심히 살펴봤는데 플롯으로 그렇게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플롯도 이런 느낌의 소리를 낼 수 있구나하고 느꼈다. 플롯과 첼로가 조화를 이루는 부분이 있었는데, 전의 파트에서 들었던 것인데도 악기 하나가 바뀌는 것만으로 이렇게 다른 분위기로 색다른 느낌을 전달해 줄수 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전혀 다른 악기가 짝을 이뤄서 어우러지는 것이 굉장히 영향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플롯과 첼로는 다르게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강한 느낌이 들었고, 콘트라베이스의 튕기는 소리로 인해 더 강한 느낌에 자극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강하고 워낙 튕기는 소리 때문인지 이 곡이 끝난 후에도 내 머릿속을 돌고 있는 느낌이 들어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기억에 남는 두 번째 곡은 ‘Euryanthe Overture’ 라는 곡이었다. 처음엔 소리가 너무 경쾌하고 아름다워서 마치 잠든 아침잠을 깨우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줬다. 게다가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이 들어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서도 아침을 시작하는 그런 기분이 들만큼 분위기와 악기의 조화로움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 곡도 플롯을 중심으로 나머지 두 악기가 부수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연주회는 대부분 플롯에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형식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처음엔 플롯과 첼로가 서로 연주하는 것이 조금 소리의 음양을 흩으러 지게 만들지는 않을까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소리가 행복할 정도로 맑고 좋았다. 연주회는 몇 번 와 본적이 있지만, 그 소리에 매료 될 만큼 아름다움을 느낀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오케스트라가 웅장하게 뿜어내는 소리를 들었었다면, 오늘은 몇 개 안되는 플롯과 첼로 콘트라베이스, 이 세 악기만의 소리들을 들어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세 번째곡은 Concerto in e minor OP. 64 1st Mov. 였다. 영어로 쓰여있어서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팸플릿에 써져 있는 그대로 적는 게 작곡가에 대한 예의다. 이런 생각이 전해졌을까. 이곡 또한 그 전곡 못지않게 훌륭했다. 이곡은 플롯이 아닌 바이올린이 주가 되는 곡이었다. 처음의 솔로로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바이올린이 연주했는데, 뭔가 울적하면서 우울하다는 느낌이 들으면서 굉장히 슬픈 분위기가 맴 돌았다. 이런 곡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슬펐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계속 듣고 있으니 굉장히 애달프고 좌절되어서 힘이 없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사람을 떠올리기 까지 했다. 기말시험을 앞둬서 그런지 감정이입이 훨씬 잘됐다. 슬픈 부분이 끝나고 이후에 그 슬픈 분위기가 점점 다르게 바뀌었다.슬픈 분위기에서 마치지 않고 갑자기 힘차고 강한 모습으로 전환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대로 울적한 느낌으로만 연주됐다면 듣는 사람마저 우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작곡가도 청중들로 하여금 반전을 계획한 것일까.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좌절하여 포기하려고 했던 삶에 한줄기 빛을 찾아 그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곡가 이 음악을 듣고 ‘희망을 가져라.’ 라는 메시지를 주는 거 같았다. 기말고사를 잘 봐야겠다. 또, 단지 노래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도 신기한 시간이었다.
    예체능| 2021.08.08| 3페이지| 2,000원| 조회(324)
    미리보기
  • 현대사회와정보(현사정) 중간고사 대체과제, 레포트 A+
    2021년레포트 제출중간고사 대체 과제휴대폰이 가져온 문화적 변화-성별, 연령 차이 중심으로-수강과목 : 현대사회와 정보목 차Ⅰ. 서론Ⅱ. 핸드폰이 지닌 특징1. 탄환이론(bullet theory)2. 제한효과이론(limited effect)Ⅲ. 성별에 따른 변화1. 여성이 가져 온 변화2. 남성이 가져 온 변화Ⅳ. 연령에 따른 변화1. 청장년층의 변화2. 노년층의 변화Ⅴ. 결론참고문헌Ⅰ. 서론핸드폰은 현대인의 삶에서 떼고 싶어도 떼 낼 수 없는 그런 존재다. 우리는 손바닥 만한 작은 기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대중교통을 이용 할 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듣거나 동영상을 보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정도로 핸드폰은 우리와 가까운 존재다. 핸드폰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변화한다. 한 핸드폰 회사인 S사의 ‘갤럭시 시리즈’는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렇게 핸드폰이 변화하면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핸드폰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여성과 남성, 세대별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이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먼저 Ⅱ.장에서는 대상 자료인 핸드폰의 특성을 탄환이론, 제한효과에 접목시킨다. 탄환이론과 제한 효과이론은 매스미디어와 관련된 이론들이지만, 핸드폰의 특성에도 어울린다. 다음으로 Ⅲ.장에서는 대상 자료가 성별에 따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본다. 여성과 남성은 각기 다른 영향을 보인다. Ⅳ.장에서는 연령에 따라 특히 청장년층과 노년층이 핸드폰을 어떻게 사용하고 또, 대상 자료를 통해서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중점을 둔다. Ⅴ.장에서는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고 간략한 소감이 드러난다.Ⅱ. 핸드폰이 지닌 특징1. 탄환이론(bullet theory)탄환이론은 매스미디어가 대중들에게 직접적, 즉각적으로 강력하고 획일적인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핸드폰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수 도 있지만 핸드폰은 매스미디어와 비슷하다.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고, 다수를 상대한다는 부분에서 일맥상통한다. 앞으로의 전개에서 핸드폰은 매스미디어라고 가정한다.페인펀드 연구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대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과도한 시간을 그 대상에 소비한다면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핸드폰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적, 즉각적 반응을 유도한다. 핸드폰 안에 있는 버튼 하나로 화면 변화와 기능 변화가 생긴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도입으로 실시간으로 다른 이용자의 반응에 대응할 수 있다.2. 제한효과이론(limited effect)제한효과이론은 탄환이론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이론이다. 매스미디어가 대중들에게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고 선별적이다. 탄환이론이 대중들이 단순히 정보를 받는 존재로 생각했다면, 제한효과이론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각자 성장해온 환경과 배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한다. 즉, 제한효과이론은 개인성을 중시한다.핸드폰 또한 개인성을 지닌다. 핸드폰 이용자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상품을 구매하고 이용한다. 모두가 이용하는 스마트폰의 어플을 다운받지 않는다든지 모두가 사용하는 기종 혹은 회사의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행동 등이 핸드폰의 개인성이다. 그리고 핸드폰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기종마다 혹은 회사마다 디자인을 달리한다.Ⅲ. 성별에 따른 변화1. 여성이 가져온 변화실제로 여성 남성 모두 핸드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핸드폰을 항상 소지하고 사용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다른 물건을 구입할 때 최신 기술에 민감하다. 여성성이 가지는 고유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핸드폰의 등장과 발달로 인해 그 전과 비교 했을 때 여성은 기술적 측면보다는 디자인과 유행에 더 민감해졌다. 세부적으로 디자인 측면에서도 여성은 기능적, 재질적 측면보다는 심미적 측면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여성의 변화가 산업 회사들의 인식을 바꾸고, 그러한 변화에 맞춰 회사들은 새로운 제품을 생산한다. 즉, 전체적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콘텐츠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콘텐츠(음성메시지, 문자메시지 등),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 관련 콘텐츠(상거래, 정보습득), 오락 관련 콘텐츠(게임하기, 음악듣기) 이 세 가지 콘텐츠는 핸드폰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분류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과 도구 관련 콘텐츠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오락 관련 콘텐츠가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 의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기존 연구에서는 남성이 더 많이 사용했었다. 하지만, 역전 됐다. 여성이 영화 감상, 음악듣기, 노래방 기능을 사용하면서 조사결과가 바뀌었다. 카카오톡 관련 게임, 모두의 마블, 아이러브 커피 등의 스마트폰 게임이 여성들에게 많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는 앞의 연구 결과를 증명해준다. 여성에 맞춰 콘텐츠가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2. 남성이 가져 온 변화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도 핸드폰으로부터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핸드폰이 여성을 심미적 기능에 관심을 두게 했다면, 남성에게는 기능적이고 재질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게 했다. 또한 핸드폰 산업과 관련해서도 남성을 위한 콘텐츠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싸움게임이나 보드게임 등은 남성을 유인하는 요소가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관련 산업 문화를 바꾸었다.Ⅳ. 연령에 따른 변화1. 청장년층의 변화핸드폰이 여성과 남성을 통해서 사회문화를 바꿔왔다. 이번에는 핸드폰이 연령에 따라 청장년과 노년층의 문화를 어떻게 바꿨는지 알아본다. 당연히 청장년층도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이용하고 그 분야의 문화가 자신들의 기호에 맞게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기호에 맞춰 기업들은 물건을 생산한다. 즉, 문화가 변하는 것이다.청장년층은 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역이다. 끊임없이 생산적인 일을 하고 바삐 움직인다. 그러기 위해 빠른 의사소통의 수단이 필요한데, 핸드폰 사용이 최선의 방법이다. 언제어디서나 버튼 하나면 멀리 떨어진 파트너와 대화할 수 있다. 그러면서 핸드폰이 없었을 때의 불편함은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업무 외적인 부분이다. 최근에 등장한 스마트폰은 작은 인터넷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것을 작은 기기 하나로 수행한다. 인터넷 쇼핑, 게임, 검색 등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누구나 다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옆 사람과의 대화는커녕 눈이 마주치면 피하기까지 한다. 핸드폰이 혼자 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업이 신입 사원 채용할 때 ‘협력’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혼자하려고 하는 그런 문화에 반하는 문화를 만들어 하려는지도 모른다.2. 노년층의 변화경제활동 가능 나이를 넘어선 육십 오세부터 노년층에 포함된다. 노년층은 청장년층이 만든 핸드폰을 구입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노년층은 청장년층 문화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수용해야하는 입장인지도 모른다. 청장년층이 핸드폰을 통해서 혼자만 하는 문화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노년층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바둑이나 낚시 등이 그 예다.신체적 기능이 젊은 세대들을 따라 가지 못하는 노년층은 문화 지체 현상을 겪는다. 하지만, 핸드폰에 관한 문화가 낙관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신체적 기능의 저하는 콘텐츠에 그 기능을 보충해줄 수 있는 항목을 첨가한다. 예를 들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음성 지원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점자 기능이 추가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기능은 노년층뿐만 아니라 몸이 불편한 분들께도 도움이 된다. 즉, 일컬어 보충의 문화를 만들어 낸다.Ⅴ. 결론이 글의 논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서론에서는 현대인이 핸드폰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드러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을 사용한다.Ⅱ.장에서는 핸드폰의 특성을 탄환이론과 제한효과이론에 접목시켜 나타냈다. 핸드폰은 획일적인 동시에 개별적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Ⅲ.장에서는 핸드폰이 남성과 여성을 통해 어떻게 문화를 변화시켜왔는지 살펴봤다. 여성과 남성은 각각의 성에 따라 문화 변화를 달리했다. Ⅳ.장에서는 핸드폰이 청장년층과 노년층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또 그들은 어떠한 문화를 변화시켰는지 살펴봤다.
    사회과학| 2021.08.08| 8페이지| 2,000원| 조회(206)
    미리보기
  • 성경개론 교과목 감상평 A+
    성경개론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이 같이 수업을 듣는 성경개론은 어떨까 기대가 큽니다. 물론, 필수과목이라서 이 수업을 수강 하는게 사실이지만,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가족이 모두 기독교라서 성경을 가끔 읽어보곤 했습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나뉘어져 있어서 고대 역사를 배우기에 충분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 강의에서 성경을 통해서 고대 역사를 배워보고 싶습니다.바라는 점은 너무 딱딱한 수업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보통 교회를 가면 목사님께서 예화를 들으면서 성경을 덧붙여 설교를 하는데, 때론 이 설교가 너무 지루할 때가 많습니다. 즉, 비기독교인들도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강의였으면 합니다. 성경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얘기지만, 이 얘기를 잘 승화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더군다나, 같은 강의실에 타 종교를 믿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분들도 신경 써서 얘기해주셨으면 합니다.강의 계획을 말씀하시는 시간에 토론을 평가요소에 반영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진행될지 의아하면서, 궁금합니다. 성경개론 수업에서 토론은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구절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건지, 아니면 성경에 담겨있는 어떤 사상과 연결 지어서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건지 기대가 됩니다.초등학교 때까지 타의적으로 교회를 다녀봤지만, 그 이후엔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지금까지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원래 종교란 것이 절대적 존재를 믿음으로써 의지 하는 것 인데 아직까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께도 제가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면 그때 종교를 믿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믿음은 시간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교회에 다니게 될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이 강의에서도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독후감/창작| 2021.08.08| 1페이지| 1,500원| 조회(133)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4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