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NLL 공방 뒤에 가려진 진실최근 한국에서 가장 큰 논란을 빚고 있는 NLL(서해북방한계선) 공방. NLL 공방은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왜 시작된 것일까? 이런 간단해 보이는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조차도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에는 그야말로 NLL 관련 기사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기사의 양은 어디까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신문사들은 내가 기사를 읽는 도중에도 새로운 NLL 관련 기사를 계속해서 찍어내고 있었다.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국조(국정조사)’, ‘대통령기록물영구관리시스템(PAMS·팜스)’, ‘국가기록원’, ‘참여정부 이지원 시스템’, ‘박영선 법사위원장’ 등 새로운 기관과 인물, 정부의 문서 처리 과정을 일컫는 말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했으며 심각했다.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해본 결과, 우리나라의 제도가 많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남재준 현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로 보느냐, 공공기록물로 보느냐에 따라 공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점이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2급 기밀문서를 다루는데 있어서 국정원장들의 관점에 따라 경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기초적인 것에 대한 제도부터 제대로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결국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실종·파기까지 온 이 사건을 볼 때, 노무현 정부가 폐기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보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문서들의 폐기 전과가 많은 이명박 정권을 더욱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BBK 기록물 및 민간인 사찰 증거물 등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고, 서울경찰청에서는 소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내용이 담긴 컴퓨터를 아예 파기시켜버린 것, 대통령기록관장은 임기를 보장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 2007년 12월, 노무현 前대통령이 기록관장을 임명했는데 이명박 前대통령은 2008년 3월에 해임을 했고, 기록관장을 공석으로 두었다가 2010년 3월에 청와대 비서관을 기록관장으로 임명했던 행적을 보기만 하더라도 이번 ‘NLL 관련 대화록’의 실종·파기의 가능성은 누가 더 높은지 잘 알 수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고20434 강재희음악시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약 두 달에 걸쳐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음악 선생님께서 “영화의 제목인 아마데우스는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의 성으로, 모차르트의 정식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며, 이 영화는 모차르트가 살던 당시 당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인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와 경쟁,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라고 말씀해주셨다. 또한 “하지만 실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모차르트가 32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여러 가지 음모론이 존재할 뿐”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영화의 첫 부분에서 모차르트는 천방지축에 저속하지만 음악적으로 타고난 천재적인 작곡가로, 반면 살리에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천부적 재능을 타고나지 못해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따라가지 못하는 열등감에 빠진 비운의 음악가로 묘사된다. 그 과정에서 살리에리는 건방지고 품행이 저속하다고 생각하는 모차르트에게만 천재성을 부여해준 점점 신을 미워하게 되고 결국 방탕한 모차르트를 시기,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힘쓰며 나중에는 먹고 살기 힘들만큼 일감이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 생계에 허덕이는 모차르트와 그의 부인 콘스탄체 베버에게 사람을 시켜 짧은 시일 내에 진혼곡을 완성하면 돈을 비싸게 치러주겠다고 약속하여 훗날 우리에게 ‘라크리모사’라고 알려질 진혼곡을 쓰게끔 한다. 이것은 많이 쇠약해져있었던 모차르트의 명을 재촉하고, 결국 모차르트는 자신이 작곡하고 있었던 진혼곡 ‘라크리모사’를 들으며 땅 속에 묻히게 된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라크리모사’는 미완성으로 오늘날 남아있다.영화를 보면서 ‘정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화가 다 끝나고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를 지나치게 왜곡·과장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동시대에 살았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났으며, 살리에리는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잘나갔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려진 살리에리의 캐릭터와는 사뭇 다르다. 몇몇 희곡 작가들이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를 좋지 않은 쪽으로 그리면서 이러한 설이 굳어졌다. 또한 모차르트와 부인 콘스탄체는 6남매를 두었지만 4명은 일찍 죽고, 아들 두 명만 크게 되었는데 그 아들을 살리에리가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글들을 읽고. ‘모차르트가 죽게 된 이유는 바로 살리에리’라고 단정 지으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후대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인식되고 있는 살리에리도 32세에 일찍 숨을 거둔 모차르트만큼 비운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 영화 을 보고여느 영화와 다르게 이 영화는 처음 시작이 애니메이션이었다.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참에 한 친구가 제작비가 빼돌려진 탓이라고 말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의 제작비는 빼돌려 진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압력으로 인해 영화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에 출연한 배우들의 인터뷰를 포함한 여러 기사들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영화 의 원작은 2006년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되면서 매회 댓글 2,000여 건 이상, 총 1억 페이지뷰를 남길 정도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 5.18의 주범 전두환을 다시 심판하기 위한 인터넷청원운동까지 불러일으킨 ‘웹툰’이다. 이 웹툰을 바탕으로 영화 의 제작 시도는 제목 ‘26년’이 아닌 ‘29년’으로 2008년에 시작된다. 하지만 외압으로 투자자들의 투자가 없어 첫 시도는 무산되고, 이후 4년간 여러 차례 제작을 다시 시도 했지만, 캐스팅과 투자, 기획에 어려움을 겪어 계속 무산되었다. 영화 제작사인 영화사 ‘청어람’은 고심 끝에 2012년 3월 투자와 기부의 중간 형태인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했지만 목표액 10억 원에 크게 미달하는 약 3억8000만원만을 모아 무산됐다. 다시 '제작두레'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해 회원에 가입한 사람들이 각각 2만원, 5만원, 29만원을 약정하는 방식으로 순 제작비 46억 원 중 7억 원을 모집하는데 성공하여, 2012년 11월 29일 영화를 개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많은 기사들을 읽고 나니, 이 영화가 얼마나 어렵게 제작된 영화인지 알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귀중한 가치를 지닌 영화를 보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영화 의 제작 과정은 영화 만큼이나 눈물겹고도 감동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4년 만에 제작비 전부도 아닌 최소한을 마련하는데 성공했음에도 캐스팅부터 개봉까지, 꼭 4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각종 외압설로 어려웠던 배우 섭외. 그리고 5.18 발생 장소였던 광주에서 촬영하는데도 많았던 불합리한 경우들과 전두환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찍는 곳이 허용된 된 곳은 대한민국에서 단 한 곳, 대전. 영화 의 배우들과 모든 스텝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영화 의 ost ‘꽃’도 40여명의 배우와 가수들의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감동을 더했다. 다만 한 가지 너무 아쉽고 자책하게 되는 것은 4년 전, 1만 5000여 명의 우리나라 국민들이 제작비를 모았던 만큼, 내가 영화 의 제작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1. 송의 발전과 해상 교역의 확대❶ 사대부의 나라가 세워지다 1) 송의 건국과 사대부의 형성 ① 건국(960년) : 조광윤이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송 건국 ② 태조 : 국가 권력 직접 장악, 문관을 우대하는 문치주의 정책 실시, 과거제 개혁 ③ 사대부 등장 : 새로운 관료 지식층, 나라를 황제와 함께 책임지고 다스린다는 의식으로 정치 주도 → 가문보다 실력 중시, 성리학 발달2) 송의 변천 ① 북방 민족의 침입 : 지나친 문치주의로 군사력이 약해짐, 평화 유지 대가로 막대한 은과 비단 바침 ② 재정 악화 : 관리와 군사 유지 비용 크게 증가 ③ 왕안석의 개혁 : 대대적인 개혁 추진 → 보수파의 반대로 실패, 정치다툼 심화 ④ 남송 건국(1127년) : 금에게 화북 지역을 빼앗기고 양쯔 강 이남으로 수도 옮김❷ 상업이 발달하고 해상 교역이 확대되다 1) 농업의 발달 ① 생산량 증가 : 개간 사업 본격화, 새로운 벼 품종과 모내기법 도입 → 양쯔 강 하류 지역이 중국 최대 쌀 생산지로 부상 ② 벼농사 발달 : 참파벼 도입으로 쌀 생산 획기적 증가, 보리와의 이모작 시작 ③ 다양한 작물 생산 : 보리∙밀 등 잡곡, 채소∙감귤∙차 등 → 대상인들이 각지로 유통시킴으로써 전국적인 규모의 시장 형성, 차 수출 활발 ④ 농기구 발달 : 갖가지 새로운 농기구 도입, 비료 종류 다양화2) 상공업의 발달 ① 수공업 발달 : 제철, 비단, 도자기, 철기, 종이, 대규모 선박 생산 ② 상업 발달 :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수공업의 발달을 기반으로 비약적 발전, 전국적 규모의 시장 생성, 상인과 수공업자의 동업 조합 결성 ③ 상업 도시 출현 : 각종 상업 규제가 풀리면서 상업 도시들이 각지에 출현(카이펑, 항저우 등이 대표적) 3) 해상 교역의 확대 : 배 만드는 기술과 항해술 발달, 나침반 사용 → 고려, 일본, 아라비아, 동남아시아 각국과 활발히 교역 → 항저우, 취안저우 등이 해상 무역 중심지로 발전(비단, 도자기, 차, 종이 등 수출)2. 몽골 제국의 성립과 동서 교화폐 남발로 경제 혼란 → 국력 약화 → 한족 반란군에게 만리장성 북쪽으로 밀려남 5) 원의 문화 ① 서민 문화 발달 : 연극 발달로 희곡 즐김, 구어체 소설 발달(“수호지”, “삼국지연의”, “서유기” 등) ② 라마교 유행 : 티베트에서 발생한 불교로, 국교로 보호받음 → 횡포를 일삼고 국가 재정 궁핍 초래로 원 멸망의 원인 제공❷ 동서 세계를 잇는 네트워크를 완성하다 1) 해외 무역의 발달 ① 무역 발달 : 비단길을 이용한 육로 무역 가장 번성, 강남에서 대도까지 대운하 연결(강남의 물자를 빠르고 안전하게 대도로 운반) ② 상업 중시 : 이슬람 상인을 중요 관직에 임명, 국제 무역 적극 지원 → 항저우, 취안저우, 광저우 등이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성장 ③ 시박사 설치 : 무역항에 설치하여 무역 사무 담당, 항구 주변에 외국인 거류지 형성 ④ 대표적 수출품 : 비단, 도자기가 유럽까지 팔려나감 ⑤ 원대 무역 발달 결과 :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로 연결하여 세계사 형성의 계기 마련2) 동서 문화의 교류 ① 이슬람 문화의 유입 : 수학∙의학∙천문∙지리∙역법 등 유입, 이슬람 상인이 이슬람교 외에 각종 학문과 기술 전수 ② 유럽 선교사의 활동 :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대도에 교회를 짓는 등 활발한 포교 활동 전개 ③ 원 문화 서양 전래 : 나침반이 전해져 유럽의 항해술에 기여, 비단∙도자기∙인쇄술도 함께 전래3. 명∙청 제국의 성립과 대외 교류❶ 명∙청이 동아시아를 이끌다 1) 명의 건국과 발전 ① 건국(1368년) : 주원장이 몽골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한족 왕조인 명 건국 ② 홍무제 : 재상제를 폐지하고 황제가 모든 권한 장악, 토지 대장과 호적 대장 정비, 학교와 과거제 정비, 육유 반포 → 한족의 유교적 전통 문화 회복 노력 2) 조공∙책봉 체제 ① 해금 정책 : 해상 군사 세력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민간인의 대외 무역 금지② 조공∙책봉 : 주변 각 국가에 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 관계인 조공∙책봉 관계 요구 → 이를 받아들이는 국가에 한하여 평화와 생산), 광저우(철을 유럽과 일본에 수출) ④ 쌀 생산지 이동 : 양쯔 강 하류가 공업 중심지로 발전 → 쌀 생산지가 양쯔 강 중류와 쓰촨 분지로 이동 ⑤ 상업 발달 : 쌀, 직물, 도자기 등의 전국 교역품화 → 상업 발달, 대상인 집단 출현2) 명∙청의 사회와 문화 ① 신사층 : 전국 각지에 학교 설립, 과거 시험의 문 확대 →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사층 많이 배출 → 청 말까지 향촌의 행정과 질서 유지에 적극 협조 ② 서민 문화 발달 - 명대 :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등 4대 소설 널리 읽힘 - 청대 : “홍루몽”과 같은 구어체 소설 출현 ③ 양명학 : 명 말 성리학이 이론과 형식에 치우치자 이를 비판하며 등장 ④ 고증학 : 청대에 문헌에 근거하여 실증적인 방법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고증학 크게 발달3) 서양 문물의 전래 ① 선교사들의 소개 : 가톨릭, 수학, 천문학, 지리학 등 서양 학문 소개 ② 선교사들의 활약 - 명대 : 마테오 리치가 “천주실의” 저술, 아담 샬이 역법과 대포 제작 기술 전수 - 청대 : 베이징에 천문대를 세워 운영하면서 포교 활동❸ 일본에 무사 문화가 발달하다 1)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1388년) : 왕은 형식적인 존재가 되고 쇼군이 전국을 지배하는 봉건제 발달 → 700년 동안 지속 → 16세기 중엽 이후 약 1세기 동안 전국 시대 계속 2) 에도 막부의 성립 ① 도요토미 히데요시 : 전국 시대 통일 후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실패 ② 에도 막부 성립(1603년)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도쿄)에 막부 설립 ③ 신분 제도 : 무사, 농민, 수공업자, 상인으로 나누어 지배 ④ 중앙 집권적인 봉건 체제 확립 : 다이묘(영주)들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는 대신 그들을 강력하게 통제 ⑤ 문화 : 일본 고유의 것을 강조하는 국학과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난학 발달3) 사회 변화 ① 도시 번성 : 농업 기술의 향상과 상품 작물 재배로 도시 번성 ② 조닌(신흥 상공업자) : 경제와 문화를 주도하면서 도시의 중산층으: 칭기즈 칸의 후손 티무르가 몽골 제국의 부활과 이슬람 세계 확장을 목표로 중앙아시아 일대에 건국 ② 티무르 제국의 번영 :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대제국 건설, 동서 교역로를 장악해 중계 무역으로 번성 → 정치다툼으로 세력 약화 ③ 사파비 왕조 건국(1501) : 이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페르시아 인들이 세운 이슬람 왕조④ 사파비 왕조 아바스 1세의 통치 - 영토 확장 :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 건설, 오스만 제국을 물리쳐 서아시아의 넓은 지역 차지, 이스파한으로 천도 - 상업 발달 : 교역과 상업 장려로 항구마다 세계 각지의 상인들로 붐빔, 양탄자가 유럽의 왕과 귀족들 사이에 큰 인기, 16세기에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❷ 오스만 튀르크가 제국을 건설하다 1) 세 대륙을 지배한 오스만 제국 ① 성립 : 오스만 튀르크가 셀주크 튀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 오스만 제국 건국 ② 15세기 : 비잔티움 제국 정복,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고쳐 수도로 삼음 ③ 16세기 : 시리아와 이집트 정복, 칼리프의 지위를 넘겨받아 이슬람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 발칸 반도 공격,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포위∙공격, 유럽 연합 함대 격파로 지중해 해상권 장악 → 세 대륙에 걸친 절대 강자가 됨 2) 오스만 제국의 사회와 문화 ① 정치 : 강력한 군대와 중앙 집권 체제 마련으로 통치의 효율성 높임 ② 경제 : 육로 및 지중해 해상권 장악으로 동서 무역 이익 독점 ③ 문화 :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할 수 있도록 관용 정책 실시 → 이슬람 문화를 바탕으로 비잔티움, 페르시아, 튀르크 문화 등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 융합5. 무굴 제국의 성립과 동남아시아의 발전❶ 이슬람 세력이 인도를 지배하다 1) 무굴 제국의 발전 ① 건국(1526년) : 티무르 제국의 후손 바베르가 북인도에 침입하여 건국 ② 악바르 황제 : 북인도 전체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른 대제국 건설, 중앙 집권 체제 강화,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화합 정책 추진 → 무굴 제국 전성기 ③ 아우랑제브 황제 : 지나친 이슬람 제 현재 인도네시아의 대부분 차지 → 대제국으로 성장 ② 번영 :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용적, 향료 무역으로 번영 3) 해상 왕국 믈라카 ① 번영 : 동서 무역을 독점하면서 15세기에 최고의 번영 누림 ② 이슬람교 확산 : 풍부한 향료를 얻기 위해 이슬람 상인 진출 → 여러 나라에 이슬람교 급속히 확산 ③ 유럽의 침략 : 지리적 이점을 탐낸 유럽의 침략 → 16세기 이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음6. 신항로 개척과 유럽의 절대 왕정❶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하다 1) 신항로 개척에 앞장선 포르투갈 ① 동방 무역 확대 : 십자군 전쟁 이후 향료와 비단 같은 동방의 진귀한 물품 유럽에서 큰 인기 ② 새로운 항로 모색 : 지중해 서쪽 끝에 치우쳐 있어 향료 무역에서 소외 → 이슬람 상인과 이탈리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구입하고자 함 ③ 새로운 항로 개척 : 항해술 발달, 지리 지식 보급, 통일 국가의 후원 → 엔리케의 아프리카 서해안 탐험 → 포르투갈의 항해 계속 → 아프리카의 황금, 상아, 후추를 가져와 큰 이익 →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 캘리컷 도달2) 아메리카로 진출한 에스파냐 ① 콜럼버스 : 에스파냐의 지원으로 황금과 향료를 찾아 대서양 횡단 → 지금의 서인도 제도 도착 ② 마젤란 : 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가로질러 최초로 세계 일주 완성 ③ 번영 : 아메리카 고대 문명 파괴 → 식민지로부터 금과 은 대량 유입 →최고의 번영 누림 ④ 은 유출 : 국내 산업에 은이 투자되지 못하고 공산품 수입을 위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다시 유출3) 신항로 개척의 결과 ① 물자의 대량 유입 : 동방의 향료∙비단이 값싸게 대량 유입, 아메리카 대륙의 설탕∙담배∙감자∙금∙은 등 유입 → 유럽 경제 변화 ② 유럽 경제 변화 : 화폐 증가로 물가 폭등, 식민지 지배로 상공업이 발달하여 자본주의 경제 발달의 발판 마련 ③ 다른 문명 간 교류와 접촉 촉진 : 세계가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게 됨❷ 절대주의가 등장하다 1) 절대 왕정의 형성 ① 형성 }
1. 위∙진∙남북조 시대와 수∙당 제국의 성립❶ 유목 민족이 중국 땅에 나라를 세우다 1) 5호 16국의 등장과 남북조의 대립 ① 5호 16국 시대 : 후한 → 위∙촉∙오 삼국으로 분열 → 진이 통일 → 흉노의 침입으로 진 멸망 → 한족이 남하하여 강남에 동진 건국 → 5호가 황하 유역 차지하고 동진과 대립(5호 16국 시대) ② 남북조 시대 :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화북 지방 통일 → 강남에 동진을 이어 여러 한족 왕조 성립 → 유목 민족 왕조와 한족 왕조가 남북에서 대립(남북조 시대)2) 위∙진∙남북조의 사회 ① 문벌 귀족 성장 : 관리 추천제인 구품중정제 실시 → 지방 호족을 비롯한 지배층의 높은 관직 독점∙세습 → 문벌 귀족으로 성장 ② 균전제 실시 : 북위의 한족 문물 적극 수용, 균전제 실시(일정한 면적의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어 주는 제도) → 이후 북조의 국가들이 계승하여 중앙 집권 체제 재정비 ③ 강남 개발 : 이주해온 한족들이 선진 토목 기술을 이용해 농지 개간, 선진 농업 기술로 벼 농사 지어 수확량 증가 → 강남이 중국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해 감❷ 전란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트다 1) 위∙진∙남북조의 문화 ① 종교 유행 : 정치∙사회 불안으로 종교에서 위안을 얻고자 함 ② 도교 : 도가 사상에 불로장생의 신선 사상과 다양한 민간 신앙 결합 ③ 불교 - 발전 : 극락왕생의 가르침을 베풀며 크게 발전 - 유목 민족 왕조의 환영 : 한족과 유목 민족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 - 불교 문화 : 국가의 지원 속에 대규모 불경 한자로 번역. 거대한 석굴 사원 조성(윈강 석굴, 룽먼 석굴 등)④ 청담 사상 : 귀족 사회가 발달한 남조에서 유행,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는 풍조 유행 → 문학∙예술과 결합하여 화려한 문화 꽃핌(도연명, 왕희지, 고개지 등)❸ 수∙당이 통일 제국으로 발전하다 1) 수의 남북조 통일 ① 수의 통일(589년) : 북조를 이은 수가 360여 년 동안의 혼란기 통일 ② 수 문제 : 과거제 처음 실시, 균전제 등 각적 문화 : 귀족적 문학인 시 발달(이백, 두보 등), 당삼채 유행 ② 국제적 문화 :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 상인∙불교 승려∙크리스트교 선교사∙유학생∙외교사절들이 몰려옴, 비단길의 오아시스 도시들 번영, 각종 서역 문물 유행2)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 ① 한자 전파 : 한반도와 일본, 베트남 등지에 전파 → 한자를 공식 문자로 인정, 한자 변용(이두, 가나, 쯔놈 문자 등) ② 율령 전파 : 당의 율령을 본받아 중앙 집권화, 유교 정치 이념 확립 ③ 불교 전파 : 각 나라의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학문과 예술 발달에 기여 ④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 : 한자, 유교, 불교, 율령 등을 공통 요소로 하는 문화권 형성❷ 일본에서 중앙 집권 국가가 성립하다 1) 중앙 집권 국가의 성장 ① 선사 문화 : 조몬 문화(신석기 문화) → 중국과 한반도에서 선진 문물 전래 → 청동과 철 사용, 벼농사 시작(야요이 시대) ② 야마토 정권 : 4세기 중엽, 한반도와 중국의 선진 문물 수용, 유교와 불교 적극 수용, 관료제 정비 → 중앙 집권 강화 ③ 다이카 개신 : 7세기, 국왕 중심 국가 체제 확립, '일본'∙'천황' 용어 사용 ③ 나라 시대 : 나라에 거대한 수도 건설, 가나 문자 사용, “고사기”와 “일본서기” 편찬2) 무사 정권의 성립 ① 헤이안 시대 : 헤이안으로 수도 옮김, 장원을 지키기 위해 무사 고용 → 무사들이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성장 ② 가마쿠라 막부 : 12세기 말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쇼군이 되어 무사 정권 수립 → 중앙 정부가 존재했지만 막부가 점차 주도권을 장악해 나감3. 인도 고전 문화의 성립과 변화❶ 굽타 왕조가 번영을 이루다 1) 굽타 왕조의 번영 ① 굽타 왕조 : 4세기 후반 북인도 전체를 차지하고 남부 인도에 영향력을 미치는 대제국 건설 ② 경제 : 농지 개간 활발, 대도시 간 교통과 상업 발전, 로마 제국이나 중국과도 무역 ③ 쇠퇴 : 5세기 중엽 이후 유목 민족의 침략이 계속되어 쇠퇴 2) 힌두교의 성장 : 굽타 왕조의 브라만 지원 → 국왕이 강력한 해군력으로 갠지스 강 유역까지 영토 확대 2) 이슬람의 침입과 델리 술탄 시대 ①이슬람 세력의 침입 : 10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들이 침략하기 시작 ②가즈니 왕조의 침입 : 아프가니스탄에 위치, 술탄 마흐무드가 여러 차례 북인도를 침입하여 재물 약탈 → 가즈니 왕조를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가꿈 ③델리 술탄 시대 : 13세기 이후 델리를 수도로 이슬람 세력이 인도 통치 ④힌두∙이슬람 문화 성립 : 이슬람 문화와 힌두 문화 융합 → 무굴 제국 때 이르러 더울 널리 퍼짐4. 다양한 문화를 일군 동남아시아❶ 전통과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키다 1) 교류와 독자성 ① 청동기 문화 : 청동북으로 대표되는 청동기 문화 발달 ② 문화의 다양성 : 해상 무역의 요지로 여러 지역의 문물 전래, 중국 남부와 티베트 고원에서 여러 민족 이주하여 주민들과 융합 ③ 사회 특성 : 힌두교와 불교 등 인도 문화 수용하면서도 카스트제 수용 안함, 한자와 유교 문화 수용하면서도 모계 중심 사회 유지❷ 반도와 섬 지역에 여러 국가가 등장하다 1) 해상 활동과 함께 발전한 여러 나라들 ① 베트남 북부 :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다가 중국의 지배 받음 ② 참파 : 베트남 중부에 위치, 활발한 해상 활동 ③ 부남 : 바다를 통해 인도 문화를 중국에 전파 ④ 스리위자야 : 수마트라 섬에 위치, 동서 무역 요충지인 믈라카 해협 장악으로 번영 ⑤ 자와 섬의 나라들 : 사이렌드라를 비롯한 여러 왕조 등장 → 13세기 말에 스리위자야를 정복하여 현대 인도네시아의 뿌리 형성 ⑥ 힌두교와 불교 유행 : 국왕을 신이나 부처와 동일시, 보로부두르 불탑2) 앙코르 왕조의 성장 ① 번영 : 수많은 저수지와 수로를 이용하여 일 년에 두세 번씩 농사지음 → 경제력 향상 → 타이와 베트남 지역까지 영토를 넓히고 번영 ② 특성 : 수많은 힌두교와 불교 사원 건축 3) 미얀마와 베트남 ① 미얀마 : 9세기 파간 왕조 성립, 상좌부 불교 수용 → 동남아시아 각지로 전파 ② 베트남 : 10세기 북부 지탄압 : 보수적인 귀족들의 무함마드 탄압 → 메디나로 피신하여 이슬람교 중심의 공동체 건설(헤지라) → 메카 정복 → 아라비아 반도 통일❷ 세 대륙에 걸쳐 제국을 건설하다 1) 정복 전쟁과 영토 확장 ① 칼리프 :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 정치와 종교 모두 장악, 신도들이 선출(정통 칼리프 시대) → 한 집안이 세습(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② 정통 칼리프 시대 : 주변 지역 정복(사산 왕조 페르시아 멸망, 비잔티움 제국 영토 빼앗음) → 정복당한 이들에게 이슬람교를 강요하지 않음, 세금을 내면 자기 종교 허용 ③ 우마이야 왕조 : 중앙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아랍 인이 지배2) 이슬람 제국의 발전 ① 우마이야 왕조 : 이슬람교 개종자 증가 → 아랍 인 중심 정책으로 불만 증가 → 내부 분열과 페르시아 인의 저항으로 멸망 ② 아바스 왕조 : 무슬림이면 누구나 세금 면제, 비아랍 인도 군인이나 관료 등용 → “알라 앞에서 모든 신도는 평등하다.”는 이슬람 원칙 실현 ③ 후우마이야 왕조 : 우마이야 왕족 일부가 이베리아 반도에 건국 ④ 파티마 왕조 : 이집트에 세워진 이슬람 왕조❸ 상업과 문화로 유라시아를 묶어 내다 1) 상업과 도시의 발달 : 이슬람 상인의 동서 무역 주도권 장악 → 교역로 주변에 커다란 창고, 작업장, 상인 숙소가 갖춰지고 수표와 신용장 같은 새로운 거래 수단 등장 2) 다양한 문화의 융합 ① 이슬람 제국의 문화 : 아랍 어와 이슬람 교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발달 ② 문학 : 아랍 인의 전통과 “쿠란” 계승 문학 등장, “아라비안 나이트” 탄생 ③ 철학과 자연 과학 발전 : 그리스∙로마, 페르시아, 인도 등의 학문 적극 수용 → 서유럽에 전해져 근대 학문 발전에 기여6. 게르만 족의 이동과 중세 유럽의 형성❶ 게르만 족의 이동 후 지중해 세계가 변화되다 1) 게르만 족의 이동 ① 남하 : 유럽 북부 지역 거주 → 따뜻한 지역을 찾아 남하 → 라인 강과 다뉴브 강 북쪽까지 남하하여 로마 제국과 접촉 ② 이 이후 위세 회복 ②정치: 황제를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 유지, 황제가 전국 통치∙교회의 우두머리 ③경제: 동서 무역 요충지였던 콘스탄티노플 등 여러 도시성장, 국가의 보호속에 자영 농민층 두텁게 유지 ④쇠퇴: 11세기 이후 귀족과 교회의 대토지 소유 → 자영 농민층 몰락 ⑤멸망: 튀르크 인들의 침략과 서유럽 국가들의 압박에 시달리다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1453년)2) 비잔티움 문화의 발전과 그 영향 ① 문화 특징 : 그리스 정교를 중심으로 헬레니즘과 로마 문화 융합 ② 예술 : 성화와 모자이크화 유행, 성 소피아 성당(비잔티움 양식) ③ 법전 : 로마의 법률을 정리해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편찬 ④ 교육 : 관리 양성을 위한 학교 유지, 그리스∙로마 문화의 고전 문화 보존(후에 서유럽에 전파)❸ 동유럽 세계가 형성되다 1) 동유럽 문화의 형성과 러시아의 성장 ① 비잔티움 문화 전파 : 그리스 정교 중심으로 슬라브 족에 전파 → 비잔티움 선교사들이 슬라브 어에 맞는 문자 발명, 성서와 예배 의식을 슬라브 어로 번역 ② 키예프 공국 : 러시아 평원에 슬라브 족과 노르만 족이 함께 건국 → 흑해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과 교역, 그리스 정교 개종으로 발전 기틀 마련(989년) → 현재 러시아의 기원이 됨 ③ 러시아 : 그리스 정교의 보호자이자 비잔티움 제국의 계승자 자처2) 체코와 폴란드의 성장 ① 체코 지역 : 슬라브 족이 7세기부터 나라 건설, 모라비아 공국∙보헤미아 왕국 등 - 정치 : 프랑크 왕국과 주종 관계, 프랑크 왕국을 주군 국가로 인정 - 종교 : 그리스 정교의 영향을 받다 프랑크 왕국의 권고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 ② 폴란드 왕국 : 9세기 초 폴리아 족이 건국,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❹ 서유럽에 봉건제가 확산되다 1) 서유럽 세계의 성립 ① 프랑크 왕국의 번영 : 8세기 카롤루스 대제가 서로마 제국 영토의 대부분 지배, 로마 교황의 지지 아래 서로마 황제의 관 받음(800년) ② 서유럽 문화권 성립 : 로마 문화, 크리스트교, 게르만 문화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