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야채 SWOT 분석1. Strength(1) 최고경영자의 의지한국 야쿠르트는 하루야채의 성공을 위해 출시와 더불어 기존의 유제품만을 전달하던 ‘야쿠르트 아줌마’의 이미지를 ‘건강 전달자’라는 전문직으로 재포지셔닝하려는 의지를 엿보이고 있다.보도자료[머니투데이] 2007/04/23 야쿠르트 아줌마, 모터 달고 새옷 입었네(중략) 한국야쿠르트는 야쿠르트 아줌마 유니폼과 손수레 디자인 및 기능 개선 작업과 함께 고객 관리도 업그레이드 했다.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활용해 판매 실태 및 음료 트렌드를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또 판매점이 제품만 배달하는 단순 기능에서 전문성을 가미해 야쿠르트 아줌마가 건강 관리 컨설턴트 역할까지 수행하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국내 최대 방판 조직이자 한국야쿠르트의 상징인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이미지를 세련되게 살려 고객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후략)B. 하루야채의 제품 개발 단계에서 1000회에 달하는 시제품이 제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였지만, 끝까지 제품 개발을 포기하지 않아 상업화에 성공하였다.(2) 유통의 차별화A. 야쿠르트 아줌마a. 야쿠르트 아줌마는 그 존재 자체가 한국 야쿠르트를 대표하는 이미지마케팅 상품이다. 전국 1만 3천 5백여 명의 야쿠르트 아줌마는 소비자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이미지를 표방함으로써 한국 야쿠르트의 친근한 이미지 제고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단순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을 넘어서 2006년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올린 총매출 7500억 원은 회사 매출의 75%를 차지한다.b. 매일 마셔야 효과가 있는 야채즙의 특성상 야쿠르트 아줌마의 전국적인 방문 판매망은 경쟁사보다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타 건강음료 제품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직접마케팅을 통해 유통 거리를 단축할 수 있으므로 신선도 유지가 중요한 야채 음료에 강점으로 작용한다.B. 방문 판매의 장점a. 방문판매(door-to-door sales)란 손님이 원하는 상품을 실제로 보여주고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손님을 이해시켜 판매하는 방법이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접 대면하여 판매가 이루어지므로 구입시 제품에 대한 이해가 높다. 또한 구매 이 후에도 판매자와 재접촉이 용이하므로 소비자의 구매 후 불만족 비율이 감소할 수 있다.(3) 맛과 가격A. 야채음료는 뛰어난 영양학적 효능에도 불구하고 용량이 적고 가격이 비싸며 맛이 좋지 않아 소비자들로부터 오랫동안 외면받아 온 아이템이다. 오뚜기는 ‘야채가족’, 남양유업은 ‘여우야’ 등의 제품을 내세워 2000년대 초반에 시장을 공략했지만 냉랭한 소비자 반응에 단기간에 단종됐다. 하루야채는 1000회에 달하는 시제품 개발을 통해 이런 실패의 원인들을 개선해 쓴 맛을 없애고 합리적인 가격(1500원)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켰다.2. Weakness(1) 신선도 유지A. 제품의 특성상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제조일로부터 10일) 장기간 제품 보관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확한 수요 예측에 실패할 경우나 갑작스러운 위협요인의 등장으로 이미 생산된 제품 판매가 급감할 경우 폐기 처분되는 제품으로 인한 손실이 막대해질 수 있다.3. Opportunity(1) 웰빙 트렌드의 급부상A. 소비자의 욕구 변화a. 웰빙은 '복지, 행복, 안녕'을 뜻하는 말로서,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웰빙족'으로 부른다. ① 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산물을 즐기고 ② 단전호흡, 요가, 암벽등반 등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운동을 하며 ③ 외식보다는 가정에서 만든 슬로푸드를 즐겨 먹고 ④ 여행·등산·독서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003년 이후 웰빙문화가 확산되어 웰빙족을 겨냥한 의류·건강·여행 등 각종 상품에 이어 잡지까지 등장하고, 인터넷에도 많은 웰빙 관련 사이트가 나타났다.B. 음료 시장의 변화a. 2003년 웰빙열풍으로 건강 음료 시장이 팽창함과 더불어 탄산음료에 대한 거부감과 반대로 건강음료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 되었다. 건강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으로 음료시장의 주종을 이뤘던 탄산음료는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졌으며, 탄산음료의 대표격인 콜라는 2004년 기준 1% 가량 점유율이 떨어졌고, 2005년에는 웰빙 열풍의 확산으로 3% 정도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였다.4. Threat(1) 불황으로 인한 음료시장 축소A.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2005년 기준, 6월까지 국내 음료시장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감소한 1조7500억 원의 매출실적을 기록했으며, 경기에 민감한 주스시장은 7%대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2) 원재료 가격의 변화A. 2005년 7월 출시 당시, 장마 기간이어서 채소가격이 폭등하였다. 이처럼 채소 가격은 가변성이 크므로 제품 생산시 예상치 못한 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저가격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 어렵다.(3) 기존 출시되었던 야채음료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A. 한국 야쿠르트가 제품을 출시하기 이전 출시되었던 야채음료인 오뚜기의 ‘야채가족’, 남양유업의 ‘여우야’ 등의 야채음료가 씁쓸한 맛과 높은 가격 때문에 시장에서 도태되어 단종되었다. 하루야채가 출시될 당시 소비자는 야채음료는 건강음료이기 때문에 쓴 맛이 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5. SWOT 분석을 통한 결론ST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위협요인인 불황, 소비자의 편견의 문제점은 제품의 강점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기존의 실패한 야채음료 보다 가격 경쟁력에서 우월하여 경기에 민감한 주스 시장에서 긍정적인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으며, 제품 자체의 맛이 실제로 떫거나 씁쓸한 맛이 나지 않으므로 시음이나 시용 구매를 유도하면 이러한 위협 요인은 제거할 수 있다. 또한 채소 가격은 일시적인 폭등이 일어날 수 있으나, 매년 채소 가격의 변화의 추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일시적인 위협 요인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제품의 가격 정책에 큰 위협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SO 전략을 통한 제품 출시를 구상할 수 있다.
성 평등 영문 에세이『Topic - As women rise in society, many married couples still don't do 'equal'.』Forty-two years ago, when Betty Friedan identified the restlessness and boredom of housewives as "the problem that has no name" in her book The Feminine Mystique, she helped launch the women's revolution, freeing housewives to return to college or enter the workforce.One measure of the enormous progress we've made in gender equality is the growing number of women who out-earn their husbands - 32.5%, according to the 2003 tally from the Bureau of Labor Statistics, a number that has grown by 14% since 1987.42년 전, 베티 프리단이 주부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일상을 "이름 없는 문제"라고 그녀의 책인 [여성의 신비]라는 책에서 명명했다. 이것이 여성 혁명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어, 주부들을 해방시켜서 대학교로 돌아가게 하고, 직장에 들어가게 했다.우리가 이루어낸 성 평등의 엄청난 진보를 확인하는 방법은 남편들보다 수입이 많은 여성의 수가 증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그 수는 32.5퍼센트로서 2003년 노동통계국 집계에 따르면, 1987년 보다 14%증가 한 수치이다.That news should be a cause for celebration. So why are women so quiet?그런 소식은 반길만한 것이다. 그런데 여성계는 왜 아무런 반응이 없을까?While corporate America has become increasingly gender-blind, married couples have proven stubbornly resistant to change. With no role models to show them how relationships are supposed to work when wives earn more, women are facing a new "problem that has no name." This dilemma creates tension and resentment over who cooks and cleans, who makes the financial decisions and whois primarily responsible for the children.반면 미국 사회 전체는 점점 더 성 구분이 없어지는 상황에서도, 부부관계는 이런 변화와는 전혀 무관한 실정이다. 여성들의 수입이 늘어나는 경우에 부부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역할 모델에 없는 관계로, 여성들은 새로운 형태의 "이름 없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딜레마는 많은 긴장과 불만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누가 가사 일을 하고, 누가 재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누가 양육 책임을 지느냐에 대한 문제들에 관해서 이다.Afraid to open up털어놓기 두려움In our research on breadwinning wives, couples therapist Harriet Pappenheim and I were stunned to find that women would talk to us only if we promised anonymity. Many men refused to talk at all. The reasons became clear after a few conversations. Men who earn less than their wives often feel guilty, emasculated and diminished; they struggle in a modern relationshipin which gender roles are more fluid.직장에 다니는 주부들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부부 상담사 해리엇 패펀하임과 나는 여성들이 익명이 보장되는 경우에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많은 남편들은 전혀 이야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몇 명과의 대화를 통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자기 부인보다 수입이 적은 남편은 죄책감과 거세를 당하는 듯 한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성역할이 고정되어있지 않은 이런 현대 부부 관계에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이다.Many women are angry and exhausted after spending long days at the office, then doing the bulk of the "women's work" at home. And if they have children, they often yearn for more free time and less stress - and wish their partners would take on more of the financial burden, a desire that often goes unfulfilled because many men can't find higher-paying work.많은 여성들은 회사에서 긴 일과로 인해 화나고 지쳐있는데, 집에 와서도 엄청난 집안일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있는 경우에는, 더 많은 여가 시간을 갖기를 바라고, 스트레스를 덜 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성들은 남편이 재정적인 부담을 떠맡기를 바라는데, 다수의 남편들이 보다 높은 보수의 직장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다.Studies show that while men do more housework than ever before, women - whether they work or not - still spend 13 hours a week more on chores. Indeed, a wife's income may even have a negative effect on her husband's willingness to do chores. University of Washington researchers found that the more money the wife makes, the more housework she does in proportion to her husband. The reasons for the finding are unclear, but it could be that low-earning men feel that doing housework would be the ultimate blow to their masculinity, or that women feel the need to compensate for their success at work by being hyperfeminine at home.연구 결과에서 남자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여성은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주당 13시간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주부의 수입은 남편이 집안일을 하려는 의욕에 부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대 연구원들은 여성들의 수입이 늘수록, 남편들에 비해 집안 인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의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수입이 적은 남편들은 집안일을 하는 것을 자신들의 남자다움에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느끼고, 또는 여성들은 자신들의 직업에서 성공을 집안일에 더 열심히 하면서 보상하려고 한다는 것이다.Education, thus better jobs교육을 통한 더 좋은 직장Even so, change outside the home is continuing apace. Women are earning more college degrees and M.B.A.s than men, and they're outnumbering male graduates from medical and law schools. As a result, more and more women are grooming themselves for high-paying jobs.그렇지만, 집밖 사회에서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은 학위와 엠비에이를 딴다. 여성 의학, 법학 대학원 출신자 수가 남자들보다 많다.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고 연봉 직장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Clearly, couples must learn to adjust. The learning curve is steep and the challenges stiff. But they're surmountable. The key is to replace old notions about men's and women's roles with more progressive ones about partnership: Divvy up the chores and respect each other's contributions.반드시, 부부들은 서로 조정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배우는 과정은 힘들고, 헤쳐 나가야할 길도 고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겨낼 만하다. 고리타분한 옛날 남녀의 역할을 보다 진보적인 것으로 바꾸는 해결책은, 집안일을 나누고, 서로의 기여를 존중해주는 것이다.We've come a long way in a relatively short time. As Friedan noted, during World War II, women rallied to fill essential positions in business and industry vacated by soldiers. But when the war ended, women were sent back home.
-콜린 파월-1. 콜린 파월 소개콜린 파월은 미국 뉴욕에서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흑인으로서 미국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역임했고, 미국에서 ‘최초의 유색인종 출신 대통령’ 후보로도 자주 언급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그가 스스로 국무장관 사임을 선택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자국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그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 쪽에선 그에 대한 비판과 함께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가 각기 다르더라도 나는 그가 장군 출신이지만 내면에서 나오는 상황에 적합한 그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존경한다. 그리하여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의 자리에 오른 콜린파월의 리더십에 대해 연구해보았다.2. 콜린 파월 리더십 성공법칙 및 분석우선 “콜린 파월의 13가지 성공법칙” 을 보자.1. 좋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아침이면 더 좋아질 것이다.2. 화나는 일이 있으면 우선 화를 내라. 그런 다음 이겨내라.3. 자신의 주장에 너무 가까이 자신을 밀착시켜 주장이 무너질 때 자신도 함께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해라.4. 하면 된다.5. 선택은 신중히 하라. 일단 선택한 것은 얻을 수 있다.6. 좋은 결정을 내리는데 불리한 사실들이 방해를 하지 않도록 해라.7. 다른 사람의 선택을 대신해 줄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된다.8. 사소한 일을 점검하라.9. 공적을 나누어라.10. 침착하라. 친절 하라.11. 비전을 가져라. 이 비전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라.12. 두려움을 갖거나 반대자들과 너무 상의하지 말라.13. 지속적인 낙천주의로 임하라. 낙천주의가 당신의 힘을 증가시킨다.이 같은 법칙을 신조로 삼아 콜린파월은 행동하였다. 소수 민족이자 흑인 출신인 그가 성공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미국인이 되는 데는 이런 법칙을 충실히 지켰음이 아닐까. 콜린파월에 대해 알아가고 조사해갈수록 그는 성실하고 원칙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리더십이란 남들과 차별화된 특성이나 카리스마라기보다는 오히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바람직한 성품의 바탕 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리더십을 나는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겠다.첫째, 변화를 피하지 마라.파월의 경력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기에 ‘변화’는 그에게 있어서 핵심처럼 보인다. 뭔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외적 변화는 고유한 특성으로 쉼 없이 번성하고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상을 날카롭게 판단하여 남들보다 새롭고 타협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있기에 ‘변화’라는 것이 그에게 어울려 보이는 것 같다. 이 같은 맥락에서 훌륭한 리더는 과거의 모습과 전통적인 지혜에 도전하는 자라고 생각한다.둘째, 자아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파월은 말했다. “자아를 직위 가까이에 두지 말라. 만일 가까이 둔다면, 여러분의 직위가 움직일 때 자아도 따라 움직일 것이다.” 그는 28년 동안 적으로 삼으며 특별한 투자를 해오던 ‘고르바초프’수상이 이만 냉전을 끝내리라는 말을 했을 때, 매우 고통을 호소했다. 온갖 힘을 기울여 전력투구해오던 적을 포기해야만 했고 그동안의 해오던 모든 일이 쓸모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 임무를 지키는 것이라고 그는 깨닫고 “자아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라고 주장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려는 습관이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습관은 앞으로 다가올 날을 과거와 같아 보이도록 현혹시킨다. 그러나 탁월한 리더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기른다. 자아가 조직의 업무를 얽매이고 왜곡시키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새로운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여 내일의 조건을 찾아 나의 자아를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셋째, “아니오”라고 쉽게 답하지 말라.“내가 명확히 네 라고 하지 않은 일은 할 수 없다.”라는 말과 “내가 명확히 아니오 라고 하지 않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 두 견해는 하늘과 땅 차이로, 하나는 조직을 둔화시키지만 다른 하나는 조직을 성장시킨다. 백안관 근무시절에서의 그의 경력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그는 매우 조직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현 상황을 분석하며 동시에 상황이 허락하는 한 일을 극단까지 밀어 붙이는 강인함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는 쉽게 답하지 않는 주관을 가지고 있다.넷째, 인재를 가리는 기준에는 파월만의 방식이 있다.파월은 “ 지적이고 판단력이 있으며 비판적일 것,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과 구석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세심함을 겸비할 것. 또한 충성심, 성실성, 강력한 추진력, 균형 잡힌 자아, 일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 을 조건으로 사람을 고르도록 노력하였다. 리더는 오직 신뢰하는 인재들을 통해서 함께 성공을 자아내는 것이 임무이다. 상호신뢰와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 직원들을 파트너처럼 대하고 섬기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포츠 감독은 자신이 직접 득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세부적인 안목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을 겸비하여 그들을 위로 끌어 올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가 마음의 문을 열어줌으로서 직원들과의 대화를 유도하고 거침없는 논의들이 오갈 수 있도록 조직 분위기를 만드는 것. 때로는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파월의 방식이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1924-27) 연구1. 작품을 선정한 동기초등학교 4학년 미술수업시간, 너무나도 유명한 이란 작품을 통해 처음 샤갈을 알게 되었다. 그의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그림 표현에 작품을 넋을 잃고 바라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처럼 샤갈은 내게 있어 알록달록한 색채를 사용하면서 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가이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기억되는 이러한 이미지를 단번에 깬 작품을 발견했다. 바로 작품이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다.첫째, 이 작품을 처음보자마자 느낀 감정은 ‘불안’과 ‘공포’이다. 하늘을 강렬한 빨간 색채를 사용했고 아주 거친 붓 터치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작가의 내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고, 이를 확인하고 싶었다.둘째, 평소 연인을 그리기 좋아한 샤갈이 ‘무섭게 생긴 광대’와 ‘검은 옷을 입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 남자’를 그린 것에 흥미를 느꼈다. 무엇보다 광대가 왜 바닥에 누워서 등을 들고 있는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마치 어디를 도망가듯이 다급하게 지붕 위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샤갈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염소’와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동시에 왜 항상 그릴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이 작품을 선정하여 연구하게 되었다.2. 작품의 배경 조사이 작품은 만들어진 1924년~1927년경, 그 당시에 샤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을까. 먼저,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샤갈의 생애를 조사해보았다.샤갈(1887.7.7~1985.3.28)은 유대인출신으로서 러시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시골의 미술 학교를 거쳐 왕실 미술 학교를 졸업한 후, 1910년 파리로 유학을 왔고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그는 야수파의 색채를 자기 나름대로 이용하여 아름답고 아담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고국으로 돌아왔고, 1917년 10월혁명 직후 러시아에서 샤갈의 제안으로 고향 비테프스크에 미술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책임자로 임명된 샤갈은 아방가르드의 핵심 인물들을 신설 미술아카데미의 교수로 모셨지만, 말레비치와 그의 동료들이 이념을 앞세우면서 샤갈과 심각한 의견충돌이 발생했다. 결국 1920년 샤갈은 학교를 떠나 모스크바로 옮겼으나, 모스크바에서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결국 베를린을 거쳐 파리에 정착, 이곳을 제 2의 고향으로 삼게 되었다.즉, 이 작품은 샤갈이 파리에 정착한 지 얼마 안됐을 시점인 1924년~1927년에 그려졌다는 사실과 작품 제목이 ‘비테프스크 마을 풍경’이란 점을 통해 당시 작가의 ‘불안함’, ‘고국을 떠난 슬픔’심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의 다른 작품 (1911), (1914) 등에서 비테프스크의 마을을 배경으로 그린 것으로 보아, 고향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그리고 염소와 하늘을 나는 사람을 여러 작품을 통해 반복적으로 그린 것은 작가의 의도가 있다는 것이므로 다음의 형식 분석을 통해 이를 밝혀보겠다.3. 형식 분석하기첫째, 색채 분석하기. 이 작품은 캔버스에 유채로 제작되었다. 색채를 보면 강렬한 빨강색, 황토 빛이 나는 노랑 그리고 어두운 검정이 크게 눈에 들어온다. 작가 생애를 조사하면서 파리로 유학을 와서 야수파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이 작품역시 야수파의 색채가 묻어난다. 강렬한 빨강, 마치 핏빛으로 물든 수상한 하늘은 먼 곳 어디선가 타오르는 불길을 연상시킨다. 황토 빛을 띠며 어두운 노란색을 표현한 지붕을 보니 반 고흐가 자주 사용하던 어두운 노란색이 바로 생각났다. 감정에 따라 색을 표현한 고갱은 이처럼 어두운 노란색으로 기분이 좋지 않고, 우울한 감정을 나타냈었다. 샤갈 역시 같은 표현기법을 사용한 것 같다. 그리고 집의 대문이 열려져 있는데 그 안을 아주 컴컴한 검정으로 표현함으로써 작가의 고독한 내면이 느껴진다.둘째, 선 분석하기. 이 작품을 보면 모든 대상의 테두리를 굵은 검은 선과 초록 선으로 그렸다. 이는 야수파의 앙리마티스의 표현기법을 연상시킨다. 작가의 감정, 주관에 따라 선을 그리고 형태를 표현한 것 같다. 처음엔 이 작품을 보고 강렬한 색채 때문에 위협이 느껴졌었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울타리로 바닥과 하늘을 나누는 수평선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수평선, 울타리, 집들은 직선으로 그렸고 사람들과 동물들, 하늘을 나는 마차, 나무, 달은 곡선으로 표현했다.셋째, 작품에서 보이는 구성, 대상을 분석하기. 흰옷 차림의 수염 난 광대가 농가의 안뜰, 마을 광장으로 보이는 곳의 진흙탕에 발목이 빠진 채 누워있다. 한 손으로 불타는 기름 램프를 지탱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일그러진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그의 오른쪽에 닭과 염소 머리가 보이고, 왼쪽 통나무의 집으로 이은 지붕과 활짝 열린 문이 눈길을 끈다. 등에 큰 자루를 둘러맨 남자가 통나무집 지붕을 빠져나가 지붕위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림 한가운데, 울타리 너머로 판잣집들이 있고 그 앞에는 말과 검은 형체를 띄는 사람이 앉은 마차가 방금 출발하여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그 외에 마을 전체는 죽은 듯 고요하고 지붕 위, 붉은 하늘이 보이고 구불구불거리는 검은 선들이 보인다. 이 선들 역시 샤갈이 반 고흐의 을 연상시킨다. 바람을 구불거리는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형상화 시켰고, 작가의 내면적으로 복잡한 심경을 구불하게 표현했듯이 아마 샤갈 또한 당시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오른쪽 하늘에 뜬 노란 초승달은 불길한 징조처럼 허공에 떠 있다.넷째, 작가의 의도 해석하기.궁금증1. 도대체 큰 자루를 둘러맨 검정 옷을 입은 남자는 누구일까. 샤갈의 작품들을 조사하다가 이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샤갈, 본인’을 나타낸 것이다. 샤갈의 (1914)작품에서도 이 의문의 남자가 등장한다. 눈으로 덮인 마을을 내려다보며 하늘을 나는 남자는 고독해보이면서 지루한 현실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에서의 남자 또한 큰 짐을 지고 도망가는 모습에서 당시 불만스러운 시대와 고독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궁금증2. 왜 샤갈은 동물과 사람이 하늘에 떠다니는 모습을 그렸을까. 샤갈의 많은 작품에서 하늘을 나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꿈속에서처럼, 시간과 공간 사이의 경계조차 사라져 버리는 느낌을 전해준다. 즉, 현재의 기억들과 과거의 기억들이 서로 겹쳐져 땅위에는 과거의 기억들, 현재 잊고 싶은 모습들을 그리고 하늘에서는 자신의 꿈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작가와 이념이 달랐던 사람을 광대로 표현했고, 본인이 고향을 떠나는 모습을 지붕위로 올라가는 모습과 마차를 타고 날아가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1. 프로이트의 이론을 선택한 동기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경계선 성격장애」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있다. 영화 얼굴 없는 미녀 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현실에서의 모습과 최면 상태의 모습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실에서 나타내는 모습이 아닌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모습을 시사함에 있어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우발적인 행동을 저지른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의식의 구조에서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의 행동일까, 아니면 정말 무의식 속에서 나타난 행동일까. 프로이트는 이러한 무의식을 본능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주체며 의식의 표면 아래에 있지만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고, 기억, 욕망을 포함 한다고 정의하였다. 내가 흔히 자고, 먹고, 활동하는 등 일상생활 속에서의 모든 활동에 그 원인이 있는지 생각해보면서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무의식 세계를 한 번 인식해 보고 싶다. 나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공부해본다.2. 프로이트의 생애프로이트는 1856년에 현재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인 모라비아의 프라이버그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인 양모 상인의 맏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에 생활이 어려웠던 관계로 두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아들의 명석함을 인정하여 프로이트에게만 기름남포를 사주고 가족들은 촛불로 지낼 만큼 그의 학업을 격려해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대학에 가서 의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26세부터 35세경 까지 신경학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잠시 코카인에 흥미를 느껴 조사차 샤르코의 실험실에 갔다. 그 때 샤르코는 히스테리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으므로, 프로이트는 샤르코의 최면술에서 힌트를 얻어 나중에 자유상상법을 통해서 히스테리 환자의 억압된 감정과 생각을 의식으로 떠올리도록 하는 방안을 창안했다. 그 결과, 프로이트는 환자의 내부 갈등의 원인은 성적 욕망의 억압임을 감지하고프로이트에게 영향을 준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다윈이다. 다윈은 1859년에 “종의기원”이란 책을 써서 진화론을 발표하였다. 다윈은 진화론에서 그때까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인간관을 바꾸어 놓았다. 다윈 이전의 사람들은 인간이란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동물과는 분리된 고귀한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나 다윈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주장은 인간도 동물과 같이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프로이트의 저신 분석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인간의 정신이란 과학의 영역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며 또 정확히 측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한 “정신물리학”은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세계를 설명함에 있어 실험적인 증명에 초점을 맞추는 과학적 방법을 강조하게 하였다.그 후 그는 연구를 거듭하여 을 포함한 많은 저작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독특한 유아 성욕에 관한 이론으로 인하여 격렬한 비판을 받으면서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젊은 학자들이 있어 이들과 토론회를 가졌었는데, 이 토론회에는 아들러와 융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의견을 달리하는 바 있어, 나중에는 프로이트를 떠나 그들 자시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프로이트 자신은 죽을 때까지 그의 이론을 계속 발전시켰으며, 16년 간 구강암으로 고생하다가 83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생애를 마쳤다.이와 같이 화려한 그의 삶 속에서, 결코 프로이트는 평범하지 않은 가족 관계를 갖고 있음에 놀랐다. 아버지의 세 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프로이트는 어릴 때 가족 관계를 오해했다. 1855년 프로이트의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가 어머니 아말리아 나탄손과 결혼했을 때, 아버지의 나이는 마흔 살이었고 어머니의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아버지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 에마누엘과 필리프는 어머니 아말리아와 나이가 비슷했다. 프로이트의 첫 놀이 친구는 첫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아 어머니에게 아리를 낳게 하지 않았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또한 프로이트는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에 대해 혼란을 겪으면서도, 나이 많은 체코인 유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보다 유모가 아버지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배우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모든 어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도 형제자매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졌다. 남동생 율리우스가 태어났을 때 생후 17개월이었던 프로이트는 질투심이 무척 심했고 7개월 후 남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그 후에 태어난 여동생에게 또 한번 질투심을 느끼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두 살 반이었을 때, 이복형은 유모를 절도죄로 고발했고 결국 유모는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갔다. 이에 프로이트는 크게 상심을 했다. 이러한 그의 성장 과정이, 나중에 가족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정립 할 때 이런 “경쟁 관계”를 분명히 기억하여 반영 했을 것으로 보인다.3.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성격이론프로이트는 신경학 전문의로서 19세기 말 병원을 개업하였다. 그의 시대의 다른 신경학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비합리적인 공포, 망상, 불안과 같은 신경적인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하였다. 그는 정신분석이라 불리는 혁신적인 절차를 사용하여 정신장애를 치료하는데 전념하였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환자의 삶을 깊이 있게 탐색하기 위해서 긴 언어적 상호작용을 요구하였다. 환자와 함께한 10여년의 경험은 프로이트의 성격이론에 많은 영감을 제공하였다.1)성격의 구성 및 성격의 구조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은 정신결정론과 무의식적 동기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이나 느낌, 생각 중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그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속에서 어떤 원인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본다. 의식과 무의식, 전의식이 성격을 구성한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하였고 우리의 본능인 성적에너지를 “리비도”로 불렀다.프로이트는 성격의 구조를 세 가지 구성요소로 분리하였다. 즉, 이드, 에고, 슈퍼에고이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아 인 반면, 현실적으로 지갑에 돈이 없어 결국 못 사고 검소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자아인 것이다. 자아가 실제적인 현실에 관심이 있는 반면에, 슈퍼에고(초자아)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관한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는 성격의 도덕적 요소이다. 프로이트는 이 세 요소를 세 의식수준으로 나누었는데, 의식과 전의식을 무의식과 대조시켰다. 원초아는 완전한 무의식적이나 자아와 초자아는 자각의 세 수준 모두에 작용한다. 원초아와 초자아는 서로 대조된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아가 중간에서 적절히 역할 해야 한다. 이 사이에서 갈등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이것이 불안이다. 불안을 방어하는 기술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하는 방어기제이다.정신내적 갈등(원욕, 자아, 초자아)→ 불안 →방어기제에 의존(무의식적인 노력). 방어기제들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경감시킬 수 있다. 즉, 이를 해소 하기 위해 억압, 투사, 치환 등의 방어기제를 사용 하는 것이다.2)심리성적 발달 단계프로이트는 성적본능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로 가정하고 리비도의 집중 부위에 따라 발단단계를 나누었다.첫째, 구강기(Oral stage)단계이다. 리비도가 집중하는 부위는 구강(입, 입술, 혀). 예를 들면 어머니의 젖가슴을 빠는 것에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둘째, 항문기 (Anal stage)단계이다. 대소변 훈련의 시기로서 리비도가 항문 주위에 집중한다. 아동은 배설물을 보류하고 방출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며 부모에 의한 배변 훈련을 통해 최초의 사회적 제지를 경험한다.셋째, 남근기(Phallic stage)로써 리비도가 성기 부위에 집중되며 성적애착이 이성의 부모에게 향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이성의 부모에게 성적애착을 느끼고 동성의 부모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과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가 형성된다. 프로이트는 남근기가 끝날 무렵에 아동의 성격은 대부분 형성된다고 믿었다.넷째, 잠복기(Latent period)단계이다. 이 단은 과도하면 아동은 그 단계에 고착되고 다음 단계로의 발달적 이행이 어려워진다고 프로이트는 보았다.4.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비평과 나의 생각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성적 본능과 공격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였다. 그의 이론들을 보면 특히 “성”본능과 다 연결이 되어 있는 듯하다. 따라서 그의 이론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욕망 특히 성적욕구를 너무나 지나치게 강조하고 ‘성적인’심리상태로 가정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많은 것 같기 때문에 한 울타리 안에서만 세상을 보는 느낌이 든다. 프로이트가 성적 에너지가 성감대를 찾기 위해 우리의 신체 부위를 이동하는 것을 인간의 발달단계로 보았다는 점 역시 많은 학자들의 공통적인 비판하고 있는 대목이다.심리성적 발단단계 중 특히 남근기에서는 남근선망을 우위로 여기면서 여아가 이를 추구, 여성의 열등감에 대한 주장인 엘렉트라 콤플레스 이론에서 프로이트의 남녀 차별적 고정관념을 엿볼 수가 있었다.3-5세 때 남자아이들이 겪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현상. 지금 생각해보면 2살 터울의 내 남동생에게서도 이 콤플렉스가 일어났었다. 동생이 유아기를 거치고 학교를 들어가고 아버지께서는 직장을 옮기셨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매우 바쁘셨고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기가 힘들었었다. 부자간의 대화가 점점 줄어들고 동생은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동생은 유아기 때 내면에 형성된 성적에너지가 조용히 있다가 사춘기에 이르러 아버지와의 갈등 형성에서 표출된 것 같다. 어머니와의 높은 친밀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자신도 모르게 집안에서는 항상 어머니 곁에 있었고 어머니 역시 같은 반응을 보여주시곤 하셨다. 프로이트의 입장처럼, 동성 부모와의 지속적인 적대 관계는 동성 부모를 적절하게 동일시하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동생과 아버지간의 관계가 걱정된다. 동생과 아버지에게 이 콤플렉스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해보고 해결책을 찾도록 상호노력 해야겠다.그러나 어린 시절이 성인의 성격을 100% 보장할까. 인간의 성격이 5세 이전에 거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