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 Saussure의 개념들을 설명하시오.1.signe(기호)소쉬르는 언어 기호가 결합시키는 것이 한 사물과 명칭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과 ‘청각영상’이라고 보았다. 이 개념과 청각영상의 결합이 기호(signe)이다. 소쉬르는 이 개념과 청각 영상을 각각 기의(記意, signifie)와 기표(記標, signifiant)라고 불렀다. 소쉬르는 언어 기호의 제 1원칙인 언어의 자의성의 개념을 도출해 냈는데, 이 자의성이야말로 언어가 다른 모든 제도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성질이라고 보았다. 소쉬르는 기표에 기의를 결합시키는 것이 자의적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나무’라는 개념은 ‘나무’라는 일련의 소리들(청각 영상)과는 아무런 내적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소쉬르는 언어들 사이의 차이점과 서로 다른 언어들의 존재에서 자의성의 증거를 찾았다. 이 자의성은 상징과 구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상징이 완전히 자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의성을 가진 언어 기호가 한 사회에서 채택될 때 그것은 집단적 습관 또는 규약에 토대를 둔다. 즉 언어기호를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바로 규칙이지, 기호에 내재하는 가치가 아니다.신호등의 체계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신호등 체계는 빨간색/노란색/초록색으로 되어있는데, 우리가 빨간 불을 보고 갈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빨간색이라는 기표에 ‘가지 못함’이라는 기의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가도 좋다’는 의미를 지니는 파란색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며, 파란색 불의 의미도 마찬가지로 빨간색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호의 체계는 한 사회체계 문화의 체계가 가지는 규약이라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만약 어떤 문화체계가 보통의 경우와는 달리 ‘빨간색/노란색/초록색’을 ‘가도 좋음/신호대기/가지 못함’이라고 규정해놓고 파란불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벌금을 물게 한다고 해도 불평을 할수 없다는 이야기 이다.2.langue/parole(언어/화(話)언: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발화행위)요약①langue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이어서 개인과 무관하며, parole은 언어활동의 개인적인 면으로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것이다. 이 두 대상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서로를 전제한다. parole이 이해되기 위해서는 langue가 필요하며, langue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parole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둘은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요약②우리는 남이 하는 말을 듣고 우리의 모어(母語)를 습득한다. 모어는 무수한 경험을 통해서만 우리의 뇌 속에 저장될 수 있다. 결국 언어를 진화시키는 것은 parole이다. 남의 말을 듣고 느껴지는 인상은 우리의 언어습관을 변경시킨다. 그러니 langue와 parole은 상호 의존한다. 하지만 이러한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랑그와 빠롤은 단연코 구별되는 별개의 것들이다.랑그는 개인의 뇌 속에 저장된 인상의 총화와 같은 형태여서, 공동 사회 안에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각 개인이 동질의 한 부씩을 나누어가지고 있는 사전과 흡사하다. 그러니 그것은 만인에게 공통이고, 보관자의 의사밖에 있으면서도 그들 각자 안에 존재하는 무엇이다.빠롤은 이 집단 안에서 어떠한 모양으로 있을까. 빠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의 총화이며, 다음의 것을 포함한다. 1)개인에 의한 결합. 이것은 말하는 사람의 의지에 의존한다. 2) 발성행위. 이것 역시 사람의 의지에 의존하며 그 결합을 수행하는데 필요하다. 그러니 빠롤 가운데는 집단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빠롤이 나타나는 것은 개인적이고 또 순간적이다.3.diachronie/synchronie (통시성, 통시태/ 공시성, 공시태)공시성은 시간의 흐름 축에 수직이 되는 방향, 즉 시간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공간적 양상을 얘기 하는 것으로, 통시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들을 보는 것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둘은 앞의 여러 이항대립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배타적인 관계이기 보다는 동전의 두 측면중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말의 기반인 언어(langue)의 실제적 체계에 대한 강조는 통시성과 관련하여 공시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안정된 관계의 체계는 그 구조의 현존하는 공간적 측면, 공시적 측면을 강조하기 마련이고, 특정한 배열의 연속으로 구성되는 우연적인 말은 통시적 측면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언어의 역사 기원적 혹은 통시적 차원을 강조했던 기존 언어학과는 달리, 소쉬르의 체계는 그것이 언어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무의식적인 구조를 학문적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시성의 과학으로 태어난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소쉬르가 공시성을 중요시한 것은 당연하다.소쉬르는 언어를 자율적인 공시체계로 받아들이고 시간적 선후관계없이 불변적으로 나타나는 종류로 파악하며, 이러한 언어는 매 순간 언어의 전체성안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논증한다. 따라서 지금의 언어가 가능한 상황, 그 상징적 규약들을 알기 위해서 15세기의 언어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언어는 나름대로의 안정성을 구축하고 있으며, 그 기반에 의해 우리의 발화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통시성은 공시성에 의존하는 일종의 파생적인 현상으로 국한된다.4.paradigme/syntagme (계열체/통합체)계열체와 통합체는 텍스트 분서에 있어서 의미화의 과정을 이루는 두 요소가 되는데, 텍스트에서 기의(記意)의 관계는 서로 인접하는 용어들 사이의 차이로 나타날 때 통합적으로 기능한다. 즉 통합체는 하나의 문장과 같은 연쇄적 단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문장이 재미있다.’라고 하는 문장이 있을 때, 그 구성요소인 관형사‘이’, 명사‘문장’, 형용사‘재미있다’는 시간상의 차이를 두고 앞뒤로 연결이 되어있다. 이러한 연결은 접촉되는 양상과 시간적 연결에 관심을 갖는다. 이에 대해 계열체는 전체 언어 체계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바로 이것’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이 가지는 교환적인 속성을 중요시한다. 여기에서 체계적이고 상호 연관되며, 교환 가능한 대립 쌍들의 집합을 계열체라고 한다. 즉 전체 언어 체계 속에서 어떤 형태(소)가 다른 형태(소)와 가지는 대립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위의 문장에서 예를 들자면 ‘이’는 ‘그, 저’로 ‘문장’은 ‘단어’ 또는 ‘글’로 ‘재미있다’는 ‘재미없다’나 ‘흥미있다’등과 대립을 형성한다. 보통 텍스트의 통합체 분석은 텍스트의 명시적 의미를 보여주고, 계열체는 함축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통합체분석은 요소와 요소가 연결되는 양상과 그것의 전개에 관심을 갖는 반면 계열체 분석은 왜 다른 요소가 아니라 그 요소가 쓰였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소쉬르는 계열체와 통합체에 관해, ‘명백하게 의미란 문장의 표면에 나타나는 연속적(통합적)조작에 의해 규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언어체계 안에서 드러나는 기의와 실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계열체) 다른 잠재적인 기의를 관련시키는 연합된 심층구조의 법칙에 의해 규제된다고 본다.’라고 하였다.※Andre Martinet의 이중분절에 대해 설명하시오.인간의 말소리에는 분절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동물이 내는 소리와는 구별된다. 즉, 다시말해 인간의 말소리는 일정한 어음이나 단어로 분석되는 것이다. 동물의 소리 경우, 어느 정도의 의사 전달활동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소리는 한 덩어리의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는 세계의 어느 언어를 보더라도 단음으로 분절되고 그들이 다양하게 결합하여 수많은 단어와 문법요소를 구별한다.예를 들면 아파서 지르는 소리는 언어라고 할 수 없다. 소리를 지르는 음은 마디마디로 분절 될 수 없으며, 그 소리는 분석될 수 없는 고통감 전체에 일치하는 것이다.
국어와 작문 토론대중예술은 저급한가?1. 사회자 인사안녕하세요. ‘대중예술은 저급한가?’라는 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A입니다.2. ‘저급하다/저급하지 않다’패널 사람 소개각 패널을 맡은 사람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저급하다’라고 주장하는 쪽의 B, C, E. ‘저급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는 쪽의 F, G, H 입니다.3. ‘대중예술은 저급한가?’ 용어소개토론에 앞서 대중예술과 저급에 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대중예술이란 감각적인 쾌감 또는 개인적 욕구를 충족하는 효과에 머무는 예술 행위로, 오락이나 여흥으로 분류되는 일이 많습니다. 대중예술은 일반적인 사람들, 즉 대중의 감각과 욕구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대중들의 평균적 취미나 일상에 안주하려 합니다. 대중예술의 개념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가능한 한 가장 많은 관중, 독자, 청중들이 듣거나 감상하도록 만든 예술 형태를 말합니다. 저급이란 용어는 ‘역기능이 순기능을 누를 때 그것이 저급이다.’라고 간단히 규정하겠습니다.대중예술에는 건축, 음악, 패션 등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가 있으므로 이번 토론에서는 주제를 6가지로 나눠 6가지 정도만 토론을 하겠습니다.이제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토론 주제는 드라마입니다. 브라운관을 통해 매일 방영되는 이 드라마는 많은 대중들이 시청하면서 하나의 대중예술로써 자리매김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시청하고 수많은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지금 분명 많은 사람에게 순기능 또는 역기능을 해왔고 또 하고 있습니다. 어떤 순기능을 또는 역기능을 해 이 드라마라는 하나의 대중예술이 저급하지 않은가 또는 저급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발언권주기) - 먼저 ‘저급하다’라는 의견에 H 씨의 발언이 있겠습니다. 보통 우리가 흔히 보는 드라마는 대중들의 일상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대중들은 드라마 속 소소한 일상을 보며 주인공의 행동이나 대사에서 공감을 느낍니다. 또한 자신의 인생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어 드라마를 보다보면 “대체 이 드라마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이렇게 만든 건가 ” 하는 생각이 들만큼 저급한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와는 다르게 훌륭한 드라마들도 있지만 일부분일 뿐입니다.이미 드라마의 자극적 소재차용은 경쟁처럼 번진지 오래 이고, 싸구려 자극적인 설정들도 극을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넣는 것이 최근 추세입니다. 아침드라마들은 요일마다 서로 다른 드라마들인데도 불구하고 일주일 내내 똑같이 바람, 불륜, 이혼이 주제이며, 저녁드라마들 또한 이미 그랬었지만 '아내의 유혹' 드라마 이후에는 드라마의 질이 더욱 떨어졌습니다.이러한 드라마들의 소재는 부정적이면서 자극적인 소재가 대부분이고, 역할들의 대사와 행동은 극단적입니다. 또한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상식적으로 일어 날 수 없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이젠 이와 같은 소위 '막장 드라마'로 일컬어지는 작품들의 대거 출현은 현 방송계의 명백한 하나의 경향으로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방송국이 시청률만을 위해서 막장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좀 더 깊이 보면, 자본주의가 결탁해 만든 미디어의 허위의식에 동조해 우리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맛있게 소비하고, 이에 방송사는 계속 반사적으로 무신경하게 이런 드라마를 만들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수용자 층이 완벽하게 설계되어있어 안정적이기 때문에, 앞의 일들이 계속 반복되며 무가치의 연속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드라마는 저급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E 씨는 획일화되고 질이 떨어지는 드라마의 소재는 드라마를 저급하게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저급하지 않다’패널의 G 씨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중 예술이 삶의 깊은 실재와 실제적 문제에 호소하지 못하므로 피상적이고 공허하다고 비판을 합니다. 특히 자주 거론되는 TV드라마의 경우, 과거엔 재벌가의 젊고 준수하며 능력까지 뛰어난 남자 주인공이, 가진 것이라고 맹랑함뿐인 가난한 여자 주인공을 는 패널의 H 씨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광고는 먼저 대중의 행동이나 인식을 가장 쉽고 빠르게 바꿀 수 있는 매체입니다. 공익광고를 예를 들어보자면 흡연이나 음주운전에 대한 직접적인 예시를 들어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물론 이것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금연이나 금주를 통한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광고는 소비자들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소비자들은 여러 기업제품의 광고를 통해 똑같은 물건이라도 기업별로 비교해 봄으로써 객관적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카탈로그나 잡지 속의 지면광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의 좋은 면을 보여줌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과 함께 믿고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광고들은 긍정적인 소비생활을 지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소비생활에 대한 판단을 형성시킨다는 점에서 저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대광고나 허위 광고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소비자는 이런 모든 광고에 현혹될 만큼 판단력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소비자의 주체적인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익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와 ‘소비자의 주체적 판단에 허위광고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의 H 씨였습니다. 계속해서 ‘저급하지 않다’의 박진경 씨 발언을 듣겠습니다. 광고는 현대인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줍니다. 그 메시지를 통해 상품을 홍보하고 소비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광고입니다. 그런데 근래의 광고들을 보면 일반 국민들의 참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 커피제품의 광고에서의 일반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이 CF는 처음 봤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고, 얼굴한번 본적 없는 낯선 시민이지만 일상적 고백에 공감을 불러일으켜 미소를 자아냅니다. 이처럼 참여자가 소수로 제한되어 있는 다른 순수예술과는 다르게 대중 예술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지 않은 즉, 적극적 형태의 예술이라는 특인 사고에 기초를 둡니다. 최근 모 포털사이트의 ‘웹툰’에선 네티즌들의 일방적인 비방과 욕설, 허위사실 유포에 의해 자살하는 연예인을 소재로 만화를 연재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소비적 만화의 틀에서 벗어나 만화라는 대중예술을 통해 현 시점의 사회가 가진 부정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을 읽은 독자 즉, 네티즌이 자신의 지난 행동을 뒤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닌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인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켜 궁극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이처럼 대중예술은 단순한 재미 추구를 넘어선 사회변화를 촉진시키는 주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는 저급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나아가 사회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봐 지금의 세태를 풍자하는 이러한 만화는 모두에게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저급하지 않다는 의견의 G 씨 였습니다. 이에 맞서 E 씨의 저급하다는 의견을 듣겠습니다. 만화의 폭력성, 선전성의 정도가 그 만화가 얼마나 저급한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게다가 만화가 더 저급해 질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만화는 어른도 보고 아이도 보지만, 어른과 달리 인지 발달 측면에서 현실 세계와 구분이 힘든 유아, 어린이들에게 만화가 미치는 영향력, 파급효과는 대단합니다. 어린이들은 티비 만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듯 매료되어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됩니다. 만화영화가 끝나면 주제, 내용보다도 싸우는 장면이나 현란한 섬광등 영상의 잔상만이 뇌리에 박히게 되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린이들은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게다가 만화에서는 싸우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고, 어린이 만화에서 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표현되지 않고 정의라는 이름 아래 주인공이 행하는 폭력은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아의 놀이에서 만화영화의 폭력 장면은 놀이나 재미로 다루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SF만화, 로봇 만화에서 주로 나타나는 폭발음, 고성, , 즉 대중예술에 흔히 동의할 수 있는 소설을 바탕으로 토론을 이어가겠습니다. ‘저급하지 않다’는 패널의 H 씨 의견을 듣겠습니다. 소설은 자신이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세계를 쉽게 겪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자신의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겪어 봄으로써 또 다른 인생을 살아 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다룬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들도 자신이 그 시대에 직접 살아볼 수 는 없지만 그 주인공을 통해 그 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연애 소설이나 20대 여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던 칙릿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은 연애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칙릿 속 도도한 직장 여성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서 만큼은 자신이 상상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몇 년 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터넷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생활이 지겨울 때 잘생긴 일진 공고 오빠들이 사귀자던 그 소설들은 정말 자신이 여주인공이 되어 상상하며 학교의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드라마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너무 비현실적이면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보는 고전 명작들은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관을 파악하며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설은 저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소설에 투영함으로써 생기는 긍정적인 기능을 언급해 저급하지 않다고 주장한 H 씨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이에 반하는 상대편 패널의 E 씨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소설 중 가장 저급한 소설을 들자면 인터넷 소설을 들 수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연재되고 있는 여러 인터넷 소설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연애 소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인터넷 소설이 저급한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내용상의 문제로 언제나 똑같은 신데렐라 신드롬은 기본이며 사건들은 연관이 없는 단순 사건들 뿐이고, 주로 생산하고 향유하는 층이입니다.
행태주의를 논하다정치학자들의 지적 관심이 규범적인 문제에서 경험적인 문제로 바뀌게 된 데에는 근대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대한 부러움이나 영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근대에 이르러 자연과학도들은 자연에 대한 연구방법을 지난날의 신학적·철학적 방법에서 과학적 방법으로 바꾸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과학적 방법에 힘입어 자연과학도들이 그 이전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많은 문제를 해결해 감에 따라 정치학자를 포함한 인문·사회학자들의 관심이 과학적 방법에 쏠리게 되었다. 행태주의는 바로 이러한 배경 하에 등장하였다.행태주의의 이러한 등장배경과 관련지어 볼 때 행태주의란 정치현상을 포함하여 인간사회의 여러 가지 경험적인 현상들도 자연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인식론적인 기본입장, 즉 실증주의 내지 과학주의를 바탕으로 구명되어야만 된다고 믿는 방법론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행태주의 정치학을 과학주의 또는 실증주의 정치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행태주의라고 이름붙인 것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분석할 구체적인 분석대상을 인간의 행태에 두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행태주의 정치학자들이 분석의 초점을 행태에 두게 된 것은 실제 정치를 좌우하는 것은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행태주의의 분석초점은 인간의 정치적 행태이다. 즉 개인이나 집단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데 대한 객관적인 법칙을 찾아내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행태주의자들은 집단의 행태보다는 개인의 행태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행태를 정치학의 기본분석단위로 삼고 있다.행태주의의 대표학자로는 매크리디스와 다알 및 이스턴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정치학의 과학화를 추구하고 분석의 계량화, 법제화를 강조했다. 행태주의 접근은 개개인의 행위를 기본적인 분석단위로 삼아 이들에 의해 행해지는 정치 활동이나 행위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행태주의적 접근방법은 첫째, 인간의 행동과 행태를 중심적 연구 대상으로 하고 인간의 정치적 행동의 일반 법칙성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며, 둘째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의 분석을 위해 계량화를 통한 정확성을 추구하고, 셋째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함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배제하며, 넷째 인간의 정치적 행태는 사회적 행동의 하나이므로 사회과학의 서로 다른 학문분야와의 상호 협조를 필요로 한다.행태적 방법은 설문지, 전화 또는 면담을 통해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설문연구, 이미 정리되어 있는 통계자료를 활용하는 통계분석 그리고 어떤 정치이슈에 대한 집단들의 반응을 실험하는 실험연구 등 다양하다.
한국정치학의 딜레마와 연구과제한국정치학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흔히 정치현실이 보여주는 혼란과 무질서 앞에서 패배감에 직면하게 된다. 연구대상인 정치현상이 너무나도 유동적이고 급격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치현상 속에서 어떤 규칙성을 찾아낸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정치의 이론화라는 과제는 더욱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정형하고 극히 유동적이며, 은폐된 대상은 연구하는 사람을 허탈감과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하지만 대상의 불확정성이나 고도의 유동성이 한국정치학의 학문적 불모성이나 학문적 편견성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대상을 은폐하려는 한국사회의 제도적 속박, 정치학을 도외시하는 사회적 기풍, 그리고 온갖 정치적 압력 등이 학자의 정열에 찬물을 끼얹었음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궁극적인 책임은 정치학자들에게 있다.정치학자는 자기 연구 분야의 이전 저작이 지닌 강력한 유산,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환경의 전체로부터 받게 되는 존재의 피구속성, 자신의 경력·체질·성향에 의해 형성된 개성 등의 작용으로 반드시 편경을 갖게 된다는 점을 뮈르달이 지적한 바 있다.비록 한국의 정치학자가 이러한 학문적 편견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여도 또 다른 딜레마에 직면한다. 기존의 가치평가를 고수하려고 하면 지배체제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판되고, 기존가치를 변혁하려고 하면 현존하는 정치권력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한국정치학은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적실성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그렇다면 한국정치연구의 과제로는 무엇이 있을까. 한국정치학의 발전과제와 방향을 연구한 안청시 교수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한국정치학은 먼저 정치학과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 자신의 비문화성과 몰 역사성부터 씻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학문 활동을 규정해 온 역사적 배경 및 이념적 편견,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해진 패러다임의 실체와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둘째, 정통과학과 미시적 방법이 이념적 사고와 규범체계에 밀려서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로 경시되는 풍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치학은 서구의 이러한 방법론적 전통을 창조적으로 흡수해 우리 나름의 방법론으로 토착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전자 정부와 디지털 거버넌스디지털 거버넌스는 전통적인 통치 모델과 비교해 민주주의를 회생시켜줄 새로운 모델로 환영받고 있다. 인터넷 사용 이전의 시민 참여는 정보 수집과 참여의 비용이 높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제약이 있어 실제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과 같은 저렴하고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제가 발달하면서 통치자에 의한 일방적인 의사 결정이 아닌 국가 · 시민 · 기업의 대화, 협상, 타협과 동의를 통한 문제 해결이 용이해졌다. 정보 기술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기제의 발달은 공동 목표의 달성을 위한 정보의 생산 · 공급 · 유통과 집단행동에 수반되는 비용을 낮춤으로써 시민 참여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것은 기존의 정치 과정에서 정보를 전달 혹은 차단하는 무지기 역할을 하면서 의제 형성의 권위를 누렸던 정당, 언론, 이익 집단과 같은 중간 매개 집단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디지털 거버넌스는 사적이고 집단적이며, 직접적이고 쌍방향적인 시민의 정치 참여를 통해 국가와 시민이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제도 및 절차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거버넌스를 정부 업무를 전산화해 정책을 수행하는 소위 전자 정부와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디지털 거버넌스는 단순히 전자 정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 정부는 정보 기술을 국가 행정 업무의 수행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민이 원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나 제공하는 정부를 말한다. 전자 정부는 행정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 국가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발달된 정보 기술을 이용해 오프라인 문서를 정보화했다. 한국의 경우 행정 정보화와 국가 기간망 구축 사업, 1994년의 초고속 정보 통신기반 구축 계획, Cyber Korea 21 등의 사업을 통해 행정 전산망, 부동산 관리망, 국세청의 세무 정보 전산망, 의료보험관리공단의 의료 보호 대상자 전산망, 경찰 전산망 등을 구축했다. 이러한 전자 정부 시스템은 정부의 행정과 서비스 기능을 정보화와 결합해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그런데 디지털 거버넌스는 효율성을 넘어 민주적인 결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자 정부와 다르다. 디지털 거버넌스는 수동적이며 간접적인 형태의 참여가 이루어지던 전통적인 통치 모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요 정책 결정과 집행에 시민이 직접적으로 참여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전자 정부가 전자적 행정 서비스, 전자적 업무 처리를 강조한다면, 디지털 거버넌스는 정보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국가와 시민의 상호 협의, 통제, 참여를 동반하는 쌍방향적 통치 행위가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즉 디지털 거버넌스는 인터넷 공간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국가, 기업, 시민, NGO 등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서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차원의 세계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통치의 메커니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