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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피디아'와 네이버 '지식인'의 명성관리 사례분석 보고서
    사례선정2해외 ‘위키피디아’ 명성관리3배경 … … … … … …… … … … … … … … …… … … … … … … … …… … … 3상황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4포지셔닝 … … … … … …… … … … … … … … …… … … … … … … … …… … 6공중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7전략 및 전술 … … … … …… … … … … … … … …… … … … … … … … …… … 7전략 포인트 … … … … …… … … … … … … … …… … … … … … … … …… … 10국내 네이버 ‘지식인’ 명성관리11배경 … … … … … …… … … … … … … … …… … … … … … … … …… … … 11상황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11포지셔닝 … … … … … …… … … … … … … … …… … … … … … … … …… … 14공중 분석 … … … … … …… … … … … … … … …… … … … … … … … …… … 15전략 및 전술 … … … … …… … … … … … … … …… … … … … … … … …… … 15전략 포인트 … … … … …… … … … … … … … …… … … … … … … … …… … 18사례별 비교분석195 identity gap 분석 … … … … …… … … … … … … … …… … … … … … … … …… 19포지셔닝 및 스토리 비교 … …… … … … … … … … …… … … … … … … … …… … 21목표 및 주요공중 비교 … … …… … … … … … … … …… … … … … … … … …… … 21전략 및 프로그램 비교 … … …… … … … … … … … …… … … … … … … … …… … 22결론22참고문헌사례 선정해외 - 위키피디아누구나 제약없이 쓸 수 있고 만들버를 갖고 단 95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는 조직 운영이 기부에 의해 이뤄지는 만큼 낭비를 줄이기 위함이라 하였지만, 타 세계적 웹사이트인 구글은 거의 백만 대의 서버를 갖고 있었으며 야후는 약 1만 3천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상당히 리스키한 부분이 있는 약점이라고 볼 수 있다.위키피디아에 기회로 작용한 외부적 요인은 참여와 개방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웹 기술의 발전이 있다. 또한 참여와 개방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위키피디아에 기회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기술’ 요인은 위키피디아가 마주한 위협과도 연관이 되는데 주요 기술의 이동을 꼽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모바일 매체의 발달이 확산되었고 주요 매체가 웹에서 모바일로 이동했다고도 볼 수 있다. 모바일 매체 활용의 증가는 편집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키피디아에게 오히려 위기가 될 수 있는 요인이다. 또한 저작권 보호 인식의 강화는 모든 저작권을 프리 라이센싱으로 제공하는 위키피디아를 공격하는 화살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 2012년에는 온라인저작권침해방지법안(SOPA)이라는 법안이 발의되어 위키피디아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Strength명확하고 공익적인 비전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의 최초방대한 양과 자매 프로젝트 보유Weakness실제 운용과 관련한 한계한계적인 조직 자원 (서버와 직원 수)Opportunity디지털 기술의 발전참여와 개방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Threat주요 매체의 이동 (웹 → 모바일)저작권 보호 인식의 강화포지셔닝위키피디아의 포지셔닝은 주요 축을 개방성과 신속성으로 둘 수 있다. 두 속성은 지식 서비스를 이용하는 공중들의 마인드에서 주요 기능을 하는 속성들이다. 위키피디아의 속성을 정의할 때 ‘브리태니커 사전 vs 위키피디아’의 비교를 들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초기 설립 당시부터 브리태니커 사전을 경쟁 대상으로 설정을 많이 하며 공중들의 인식 속에 개방된 사전으로써 커뮤니케이션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전과 전략, 정체성과 조직 구조를 일치시키는 내부 fit도 일치하였지만 이러한 것이 핵심공중들의 가치와 시장환경과 잘 맞아 떨어져 언론과 네티즌들의 호의적인 평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또한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조직의 강점을 잘 내세울 수 있었던 점이 성공 요인이다. 특히 창립자인 지미 웨일스는 위키피디아의 전신인 ‘누피디아’의 실패 스토리를 위키피디아의 시발점으로 스토리텔링하였다. 대비되는 지점은 누피디아는 전문가의 참여로만 이뤄지는 사전이었고 위키피디아는 그 실패사례에서 착안해 대중들에게 작성과 편집을 맡기자는 시도로 시작된 사전이었다. 만약 누피디아의 실패사례에서부터 위키피디아의 히스토리를 스토리텔링하지 않았다면 ‘전문가 지성 vs 집단지성’의 프레임에서 집단지성의 승리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지만 누피디아의 실패사례를 위키피디아의 전신으로 삼아, 이 흥미로운 관심사에서 위키피디아라는 존재의 부흥이 가질 차별적인 “상징성”, “가치” 등을 부각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누피디아 사례에서부터 위키피디아의 탄생 스토리를 전달하여 누피디아와 같이 전문가 위주 편집의 브리태니커 사전과의 경쟁 구도를 형성하여 초기 명성을 획득하였다고 볼 수 있다.여러 관점에서도 위키피디아의 성공 요인을 분석할 수 있는데, 사회학적 관점에 따르면 조직의 명성은 조직의 전략적 방안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 흐름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위키피디아는 창립에서부터 시대적 관심사에 기반하였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요인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치지 않고 모바일 시대나 QR코드의 활용 등 환경적 요인들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거나 조직 성과와 관계없이 공중들이 가질만한 부정적 이슈에 관해 적극적으로 반응한 점이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성공요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중들은 위키피디아가 특정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위키피디아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에 불신을 표하기도 하였는데 이 이슈를 를 원하고 있기도 하였다. 보통의 검색엔진이 가지고 있던 한계적인 분야는 지식인 서비스의 개방성을 통해 정보와 지식뿐만 아니라 상담, 공유, 소통 등의 확장된 역할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식인 게시글에는 지식 정보뿐 아니라 상담 목적의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전문성은 지식인 서비스가 개방과 다양성 추구로 신뢰할만한 정보인가 하는 문제를 맞닥뜨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지식 파트너, 전문가 답변 등의 프로그램으로 파악 가능한 속성이다. 지식인은 지식 파트너를 통해 기업, 기관, 단체와 제휴를 맺어 관련한 질문에 보다 전문적이고 신뢰성 있는 답변을 제공하고자 하였고 전문가 답변을 마련하여 법률 전문가, 의료 전문가 등 보다 검증된 답변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이러한 전문성을 강조하려 노력하였다.네이버 지식인의 포지셔닝은 다른 포털 사이트들의 비슷한 서비스와의 속성 비교를 거쳤다. 다음의 ‘신지식’은 지식인의 후발주자이기도 하고 따라서 그 한계로 활성화가 지식인에 비해 떨어져 다양성이 낮고, 당시 카페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어 카페 회원들의 답변 위주로 노력을 꾀한 점에서 전문성을 갖추려는 노력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야후 엔서’는 한국판 서비스를 철회하기는 하였으나, 출범하였을 당시 네이버 지식인의 기능 중 핵심만을 가져다 구성한 포지셔닝을 보였다. 하지만 지식인이 전문가를 도입하고 기관 제휴 등의 모색을 거친 것과 달리 초기 기능만을 유지한 것으로 보아 전문가보다는 대중성에 더 의존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구글 엔서’는 이들과는 다른 종류의 서비스로, 답변의 생성자가 일반인이 아니라 자사가 지정한 조사자들이었다. 그리고 질문 목록은 매우 학술적인 것, 전문적인 것이 많았다.공중 분석네이버 지식 iN의 핵심공중은 일반 네티즌뿐만 아니라 병원, 기업, 기관 등 위키피디아보다 다양하다고 파악할 수 있다. 지식인의 1차적인 핵심공중은 인터넷 사용이 빈번한 10대부터 30대 연령이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전 연령, 전 국민적인 공중들의 참여가 이esired Identity모든 인류의 지식을 모두에게 공평하게모두는 생산과 수요에 동등한 자격Communicated Identity1차 – 위키피디아가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능과 프로그램들(Wikimania Conference/ Wikipedia zero project/ QR pedia)웹 내부에서의 정책과 제도들 (예. 감시자 제도)> 위키피디아는 공평한 편집권을 제공하며 인류의 지식 공유를 장려한다.2차 – 설립자의 언론 매체를 통한 인터뷰> 위키피디아는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집단지성의 승리이다.3차 – 이슈 중심으로 생성되던 공중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온라인, 언론 보도 등)> 위키타운과 관련한 이슈로는 위키피디아가 정체성을 잃고 쓸데없이 사업을 확장한다는 평가> 경영난에 시달리자 위키피디아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이슈> 위키피디아는 집단지성의 결정적 산실이다라는 긍정적인 평가> ‘잊혀질 권리’ 이슈와 관련하여 위키피디아는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라고 인식Conceived Identity위키피디아는 전문가들의 지식만큼 신뢰할만하지 않다.위키피디아는 신문과 백과사전, 도서관의 역할을 대신 한Ideal Identity방대한 양의 정보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유용성을 갖춘 웹 페이지기술 이용환경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집’ 페이지Desired identity와 Communicated identity 간 GapCommunicated identity 중 위키피디아가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1차 커뮤니케이션 중에서 위키피디아가 정보의 실수 등과 관련하여 일정 정보에 대한 통제의 필요성을 느껴 도입한 제도들이 있다. 제제하는 제도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초기 위키피디아는 Desired identity와의 갭을 인식하여 쉽게 시행하지 못하였다.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위키피디아의 본래 비전과 맞지 않는 Communicated Identity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또 다른 공중들이 위키피디아가 악용될 수 있는 여지
    사회과학| 2014.12.24| 24페이지| 3,000원| 조회(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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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식민주의 담론으로 영화 비평하기 - Babel (Alejandro Gonzalez Inarritu, 2006)
    탈식민주의 담론으로 영화 비평하기- Babel (Alejandro Gonzalez Inarritu, 2006)모로코에서 총에 무지한 한 소년이 쏜 한 발의 총알이 미국과 멕시코, 일본에까지 이른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하나의 작은 점화가 전세계적인 여파로 번지기 쉬운 오늘날의 초국가적이고 글로벌적인 환경을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자 Nancy는 오늘날 초국가적인 영화들의 등장에 대한 관심으로 ‘accented film’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는 accented film에 대해 추방과 유랑, 흩어짐(디아스포라)로 인해 이동하는 경험을 미학적으로 풀어내는 반응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이 영화들의 스타일적 특징은 비주얼적인 묘사나 내러티브 구조, 등장인물과 발전단계, 주제, 테마 플롯 등에서 드러난다. 영화 ‘바벨’은 여러 요소에서 accented film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이 영화의 가장 대표되는 accented film 으로서의 특징은 추방과 유랑이 주요 등장인물의 위기와 관련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멕시코인이지만 미국에서 16년간 제임스 부부의 아이들을 맡아 친자식처럼 길러온 아멜리아의 경우 ‘추방’이라는 코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녀의 위기는 자신이 적응도 어느 정도 마치고 막 결혼한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오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삶의 터전이라 생각해왔던 미국 땅에서의 추방으로 종결된다. “I have my things here.”… 자신이 일궈놓은 것들이 있는 만큼 안일하게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해왔던 미국 땅이 사실은 그녀를 불법체류자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그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유랑’의 코드는 일본에서 출발한다. 야스지로의 소총은 치에코 엄마의 자살을 지나 모로코로 건너가 사냥가이드 핫산에게 전해진다. 그에게 전해진 소총은 압둘라에게로, 압둘라는 다시 그 소총을 염소 치는 아들들에게 전해준다. 그렇게 유랑해 온 소총의 한 발에서 초국적인 연결망이 생긴다는 것에 유랑의 상징성이방아쇠가 당겨지지만 이 우연한 한 발이 나비효과와 같이 초국가적으로 파급을 미치며 여러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복합적인 이데올로기를 발휘시키기도 하였다. 모로코에서는 발전 안 된 지역의 주민들과 피상적인 문화를 즐기러 온 미국인 관광객들, 낯선 땅에서 피격을 당하며 피해자가 된 미국인 부부, 총 한 발의 주인을 찾으려 할 때 자국민의 인권 위에 권력이 군림하는 양상, 그 권력은 다시 미국의 영향을 받는 양상, 멕시코인은 어린 미국 아이들을 케어하는 입장이지만 미국 땅에서 추방이 되는 양상, 그 원인 제공은 미국인 부부의 일방적인 통보 때문이었던 역학관계 등이 한 주체에 관해서도 다양한 정체성과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는 계기를 마련한다.세계화는 국가 간의 뚜렷한 경계를 위협하고 국가의 통치권마다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물리적인 경계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을 넘으려는 자들에게는 아주 위험하다. ‘바벨’에서는 아멜리아가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국경을 제 나라 다니듯이 다니려던 안일함에서 비롯된 비극을 통해 아무리 한 개인이 국가 간 경계를 사소하게 보더라도 물리적 경계는 존재하며 두 사회 간의 구별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cross culture”의 영역에서 혼종과 상호텍스트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경을 넘어선 문화는 묘사가 아닌 해석이 깃든 번역, 통역의 전략에 의해 전달된다. 이는 토착과 이방의 문화 구별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영화는 아멜리아의 비극이 있기 전부터 그녀가 발을 딛고 있는 두 문화 사이의 차이를 주목해서 보여준다. 멕시코 땅에 데비와 빌,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와서부터 해석의 과정을 거친 번역의 방식이 두드러진다. 특히 빌 앞에서 멕시코 청년이 닭의 목을 틀어쥐는 장면, 그 장면에서 빌의 표정에 주목함으로써 단순히 문화의 다름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타문화의 입장에서는 다름 이상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다라는 해석이 곁들여지는 것. 그리고 아멜리아의 아들 결혼식 장면에서 카메라는 한 곳에 고정되어 구체적인 묘사를 하는 것이 아서는 지배체계와 피지배체계의 일방적인 영향관계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복합적 형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본다. 특히 탈식민주의 담론은 계급의 경계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는데, 영화 바벨에서도 이러한 고정된 실체나 관계 없이 주고받는 상호영향이 영화 전체적인 내러티브와 테마를 구성한다. 제임스 부부가 고난을 당하는 곳은 모로코 사막이다. 아멜리아가 아이 둘을 데리고 버려진 곳 또한 사막이다. 지배계급이든 피지배계급이든 고난을 당하는 양상이 유사성을 가진다. 두 상황은 사막이라는 동일한 배경 속에서 유사성을 띠고 이는 탈식민 담론이 ‘보다 미묘한 차이들의 스펙트럼’에 주목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사막은 ‘고립’을 상징한다. 실제로 제임스 부부가 사막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진 모로코 여행가이드의 마을에서 병원의 혜택도, 앰뷸런스도 접근하지 못하는 고립을 체험하는 것처럼 아멜리아도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도움을 요청할 대상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독한 고립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어 아무런 관련 없어 보이는 일본 대도시의 치에코도 고립의 코드를 경험한다. 치에코는 영화 전반적으로 고립을 울부짖는 캐릭터이다. 농아이자 어머니의 자살로 인해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버지에게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춘기 소녀는 번잡한 대도시 속에서 자아 속 고립을 해결할 길이 없어 내내 성욕으로 분출하고 알아달라 호소한다. 치에코가 가장 극심한 고립을 경험하는 때는 그나마 신뢰하고 가장 마음이 통하는 존재라 생각한 친한 친구에게서 분리되고 고립되었을 때이다. 이 장면의 연출은 시끄럽고 번잡한 클럽 상황을 보여주다가, 치에코 관점에서 음악이 없이 조명 빛들이 교차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다가 한다. 친구에게서 고립되었을 때 치에코의 관점에 집중함으로써 영화는 치에코의 고립 코드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어디에서든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치에코에게 의지할 곳은 절실했지만 그녀가 도움을 요청할 대상은 늘 거부하거나 부재했고것이 아니라 인물들은 복합적이고 보다 미묘한 유사성들로 인해 관통하고 보다 미묘한 차이들로 인해 구분된다.따라서 제 1세계와 3세계는 고정된 차이를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개마다의 차이성과 공통성 사이에서 발견되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노출시킨다. 모로코에 간 수잔은 오염된 물을 의심하여 얼음조차 마시지 못한다. 낙후된 지역에서 다이어트 콜라를 찾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경계심을 낮추지 못한다. 반면 그녀의 아이들은 유모를 따라 멕시코라는 낯선 땅에 가서 적응과 혼종의 과정을 보인다. 빌은 어른들이 멕시코가 아주 아주 위험한 곳이었다며 타문화에 대한 경계심도 인지하고 있지만 그 곳에서 어울려 춤추고 즐거워할 줄 안다. 제 1세계로 대표되는 미국이지만 어느 곳에서는 분절을, 어느 곳에서는 일체를 보인다. 그리고 수잔은 결국 급한대로 자신이 불신하던 지역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출혈을 멈추기 위해 상처를 소독도 없이 실제 바늘로 꿰어버리는 경험을 그녀는 따를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가 건네는 마약에 고통을 잠시 잊기도 한다. 그녀가 처한 상황으로 인해 그녀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위치를 벗어버리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한 개인으로써 주어진 상황의 영향에만 굴복하게 되는 혼종성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혼종성이 문화적 혼합주의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혼종성은 ‘책임’의 소재에서 또한 두드러진다. 총을 쏜 자와 맞은 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분리가 확실한 사건이지만 영화는 총을 쏜 자를 사회적 약자이자 무지한 어린 아이로 설정함으로써 이 분리를 혼종시켜 버린다. 또한 악의가 아닌 불분명하고, 행동의 여파와 연결고리가 없을만치 사소한 ‘의도’에서 전 지구적인 영향을 출발시킴으로써 상호 간 전적인 영향력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를 모호하게 만든다. 바벨의 등장인물 아멜리아, 제임스 부부, 치에코 부녀 모두 자의로 고난에 빠져 있는 자들이 아니다. 치에코 아버지는 아내의 자살로 인해 상처를 입은 상태이며 이러한 그가 모로코에 전해준 소총이 수잔을 쏘고, 때문 환경에서의 무지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총의 위력에 대해 무지했던 유세프가 테러범으로 몰리고 형까지 잃고 나서 자국 경찰관들의 포위에 항복하며 나왔을 때 경관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이미지를 상징하는 까만 선글라스를 벗고야 만다. 이 어린 소년의 총 한 발이 ‘테러’라는 전 세계적인 이슈로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서 온 놀라움 때문이었다.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인종과 젠더, 이종 교배된 문법도 주목적이다. 유세프가 자신의 누나의 벗은 몸을 훔쳐보고 누나는 시선을 받는 것을 즐겼던 것과 치에코가 남자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고 만져지는 것을 요구하던 것 사이에는 미묘한 동일성이 발생한다. 낙후된 지역의 미개한 문화에서는 근친 간에서도 성적 유희를 즐긴다, 일본 여성하면 가이샤 등으로 대표되는 등 아시아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성적인 편견들이 반영된 것이라 보여진다. 굳이 치에코가 고립감을 표출하고 의지를 요구하는 통로를 성적인 것으로 표현해야 했을까? 특히 치에코의 이미지는 도쿄 대도시의 어두운 골목 거리의 이미지와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집에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하러 찾아온 형사 앞에 치에코가 나체로 등장해 성적 요구를 하는 장면 후에 이어지는 씬은 어두운 골목길인데, 사창가를 연상시키는 빨간 등불이 등장한다거나 그 다음에는 서로 기댄채 줄지어 늘어선 자전거들이 차가운 철을 연상시키는 등 불연속적이면서도 위태로운 인상을 주는 이미지들이 연속성을 띤다. 영화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탈식민주의 담론과 동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이러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지배체제적인 관점 하에 인종적 차별, 젠더적인 편견이 캐릭터에 반영된 것이라 보여진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도 결국 지배체제적인 메시지가 등장한다. 모든 인물들은 고난을 겪지만 결론적으로 제임스 부부는 뉴스 보도 장면에서 나온 것 같이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일본의 치에코 부녀는 베란다에서의 포옹 장면으로 오랜 갈등을 해소했음을 드러낸다. 반면, 아멜리아의 위기는 추방이라는 고난에 눈물 흘리는 그녀의 얼한다.
    인문/어학| 2014.12.24| 4페이지| 1,000원| 조회(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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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족구왕 자유비평
    내 젊은 날의 족구는 무엇일까?- 영화 리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여기저기 젊은 세대의 멘토를 자청하는 사람들의 메시지가 쏟아져 내리고. 소위 스펙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 하는 낭만 없는 젊은 세대를 위한 공감과 위로, 때로는 조언이랍시고 쓴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왔다. 누군가는 젊은 세대의 노력을 방향성 없는 열정이라 꾸짖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길을 가라며 남들과 달라져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하였으며, 누군가는 청춘만이 할 수 있는 낭만을 부추기며 또 다른 의미로 젊은 세대를 재촉하였다. 이미 청춘의 시기를 보낸 사람들이 하는 말이기에 의미 있는 말들이기야 하겠지만은 그래서 지금 청춘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바로 옆에서 들리지는 않던 이야기들. 어떤 이의 말은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로 들렸으며 혹은 이미 지났기에 누구나 읊조릴 수 있는 무책임한 회한으로 들리기도 하였다. 이 영화도 결국에는 이 시기를 지내본 누군가의 대책없는 낭만주의가 전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춘이 이 영화를 보고 극히 공감하고 위로받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대단하게 꾸며진 낭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소하다 못해 짠해보이기까지 하는 낭만을 거침없이 드러내기 때문이 아닐까.다 늘어난 러닝셔츠에 총각무만한 장딴지 위로 군복 바지를 걷어부치고서 족구를 하던 만섭의 전역신고와 함께 영화는 시작한다. 부대 안에서 ‘족구왕’이라 칭송받던 그의 명예로운 나날은 말년병장 계급을 떼는 것과 같이 누구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군대 생활’로 지나간다. 2년 남짓 그리워한 캠퍼스로 돌아온 복학생에게 유달리 관심 가져 주는 이는 없으며, 어두운 복도 한 켠에서 정수기 물을 받고 계단 위에 홀로 앉아 끼니를 때우는 등 반가우면서도 외롭게 마주하는 캠퍼스 구석구석은 혼자서 감당할 몫이다. 각자의 스펙 쌓는 데에 몰두하는 학생들에게 복학생의 설렘 어린 활력과 순진해보이기까지하는 활기는 괜히 꼴시려워보이기도 한다. 만섭이 기숙사 방에서 만난 선배도 만난지 몇 분만에 만섭에게 대 하는 말을 덧붙여. 선배의 말은 기성세대가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소리가 아닌, 바로 청춘 그 시기를 아직 지나고 있는 젊은 세대 자신의 목소리이기에 짠한 면이 있다. 스펙에 전전긍긍하고 더 치열한 하루하루를 재촉하면서도 두려운 대학생들이 자기 자신에게 되뇌이는 경계심 같은 것이다. 지금 즐길 수 있는 낭만보다는 졸업 후 마주할 사회가 걱정스러운 젊은 세대의 두려움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배가 보기에 ‘낭만이 흥건한’ 만섭은 전역 5일째의 패기인지는 모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일단 지금 만섭이 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열심히 해야만 하는 것은 족구였다.잘 하면 돈 잘 벌고 명예롭기까지 하며 팬들도 대거 거느리는 축구, 야구, 농구같은 종목도 아니고 하필 어감도 그저 그런 족구라니. 만섭은 입대 전 동기들과 땀 흘리던 족구장이 캠퍼스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서 학교 측에 다시 지어달라 요구하기 시작한다. 족구장을 지으면 복학생들이 땀내 풍기며 수업에 들어와서 싫다,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데에 족구하는 소리가 방해된다 등의 반대 의견이 많았으나 만섭은 역전의 기회를 맞이한다. 만섭이 영어강의에서 만난 ‘캠퍼스 퀸’이라 불리는 안나와 어쩌다가 붙어다니자 둘의 사이를 오해하고서 질투까지 하게 된 전직 축구 국가대표 강민과의 족구 시합이 계기가 되었다. 족구왕 명성에 걸맞게 시원하게 압승을 거둔 만섭은 대학생의 SNS 공유문화를 타고 캠퍼스 내에서 일약 유명세를 거두고 이에 이어 캠퍼스에는 족구대회를 앞두고 ‘족구 열풍’까지 분다. 건조한 일상을 쳇바퀴 돌듯 생기없이 반복하던 캠퍼스에 족구는 새로운 활력이 된다. 사람들 다 싫어하고 무시하는데 족구하지 말라던 안나까지 만섭의 행보 따라다니며 족구 경기를 응원하게 되었으니.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숨기고 사는 건 바보같아요.”라고 진지하게 말 할 줄 알던 만섭이기에 캠퍼스에 ‘좋아서’ 하는 족구를 퍼뜨릴 수 있었나보다. 만섭 팀의 부상투혼에 말그대로 피튀기는 족구대회 결승전, 마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영화는 무엇보다 만섭의 대사들을 통해서 젊은 세대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던지지만, 마지막까지 ‘그러면 어떻게 된다’ 식의 낭만적인 결과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만섭 일행은 뜨거운 열정과 피땀어린 족구대회를 마치고 끝내 감격스러운 승리까지 거두지만 사실 만섭에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진심으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안나도 결국은 연애감정과는 다른 마음이었기에 원래 좋아하던 강민에게 갔으며, 여전히 만섭은 만들고 싶던 여자친구도 없고, 남들이 알아주는 스펙 한 줄 없는 복학생이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기 등록은 취소된 상태이며 좋아하는 족구만 한다고 해결되는 삶의 문제란 없다. 누군가는 영화의 이러한 결말에 결국 현실적인 한계까지 책임지지는 않는 씁쓸한 낭만주의라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지만 전지적 만섭의 시점에서 생각해보자면 아쉬울 것은 없지 않을까. “저는 미래에서 왔어요.” 죽을 운명이지만 신이 기회를 줘서 20대를 다시 살게 된 자의 모토는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전부이다. 냉혹한 사회 앞에서 그럴듯한 인재로 서지 못할까봐 두려운 청춘이 아니라 훗날 고통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젊은 날 마음껏 해본 한 가지만으로도 후회없는 삶이었다 말할 수 있는 청춘을 보내고 싶은 만섭이기에 외부의 우리가 만섭의 삶이 씁쓸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민에게 족구 내기로 얻어낸 외제차를 타고 혼자 해안가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만섭의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만섭이 앞으로도 좋아하는 족구만 하며 대학생활을 보낼건지, 졸업하고서는 무엇을 할건지 관객들은 알지 못한다. 영화는 만섭의 미래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만섭조차도 자신의 미래보다는 현재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만섭만 보면 된다.안나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리 병신같아도 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만섭과 가장 다른 것은 강민이다. 안나가 저 표현을 쓴 것도 고시원 쪽방에 숨어 있는 강민에게 말하면서였다. 전직 국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보다 안나와 피상적인 관계만 유지해왔다. 특히 강민을 보며 요즘 젊은 세대가 스펙, 취업, 진로에 신경쓰느라 연애할 욕심도 없고 연애에 관심도 없다는 통계가 생각이 났다. 외부의 시선, 다른 조건들 따지느라 사람과 진실하게 통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로 그려지는 젊은 세대말이다. 외모, 능력 하나 없지만 안나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들이대던 만섭과는 대비되게, 굳게 닫은 고시원 방문처럼 마음을 꾹 닫아놓은 강민은 남들의 기준이 더 중요해서 자기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주눅들어 있거나 골방으로만 파고드는 어느 젊은 세대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이 반영된 인물이다. 그리고 강민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에 그런 젊은 세대를 응원해주고 싶은 감독의 메시지가 녹아있다. 만섭과의 대결 구도, 족구 대회에서 이겨야만 안나와의 사랑을 다시 쟁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징성이 부각되지만 결국 강민은 패하고 만다. 남들 기준보다 나 자신에 보다 솔직해지려는 노력을 힘겹게 했지만 결과는 내 편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결과의 상징성이 부질없다는 듯 족구 대회 마무리 장면, 안나는 승자 만섭이 아니라 강민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준다. 변화를 시도하려다가도 여전히 실패나 넘어짐이 두려운 젊은 세대에게 고정된 상징성을 깨고 새로운 메시지를 주려는 감독의 목소리가 녹아있는 장면이었다.그리고 극 초반 만섭과 가장 대비되던 기숙사 선배, 형국 또한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이 반영된 또 하나의 인물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란 말만 되뇌이던 형국은 사실 3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족구에 열정을 불태우던 대학생이었다. 그렇지만 형국은 정신 좀 차리라는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에 일종의 충격으로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향한 열정으로 뜨겁게 불태우던 젊은 날이 사회로 나가는 순간 독이 될 거라는 두려움을 주입받고 ‘공무원 시험만 합격하면’의 주문을 외게 되는 젊은이가 되었다. 지금 하고 싶 미래에서 왔다는 정신으로 살고 있음에 한 번 주목해야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미래에서 왔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그런 정신으로 살자는 만섭의 좌우명을 드러낸 것일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장르를 뛰어넘어 정말 만섭을 미래에서 온 인물로 설정해놓은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명백한 것은 감독 또한 ‘재밌는’ 것을 조건 따지지 않고 열심히 하는 만섭을 긍정적 인물로 그리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다시 산다는 정신으로 살 때에야 가능하다고 이해하고 있음이다. 인생 종지부에 다녀와본 사람만이 보장할 수 없는 미래보다 내 앞에 놓인 현재를 바라볼 수 있으며 다시 사는 삶에서만이 진정 현재 하고 싶은 것에 열중하는 집중력이 가능하다는 이해가 깔려있다.어쨌든 우리는 그래도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영화의 메시지는 ‘인생 다시 산다고 생각하고 후회 없이 삽시다’ 라는 조금 뻔하면서 내 삶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메시지로 일축되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젊은 세대에게 조금 특별한 의미를 던질 수 있는 것은 이런 저런 편견으로 끊임없이 전형화되고 있는 요즘 젊은 세대의 실상을 보다 그 세대의 직접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게끔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섭이나 강민, 형국 외에도 고도 비만의 미래, 다시마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하는 특이한 창호, 예쁜 얼굴 하나로 별다른 진지한 고민 없이 사는 안나 등 우리 주변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젊은 세대가 이 영화에 녹아있다. 특히 극 초반은 만섭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부각되지만 중반, 후반으로 갈수록 각 인물들이 골고루 비춰진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대학생이나 젊은 세대라는 단 하나의 집합으로 묶이기보다 개별적인 인물들이 만섭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각자 개별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각자가 잊고 있던 갈증을 되새기게 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끝까지 무엇하라 강요하지 않으면서 의미가 있다. 전형화 이면으로 획일적인 목표와 의무감을 부여하는 시대 중에 잊고 있던
    인문/어학| 2014.12.24| 3페이지| 1,500원| 조회(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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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연구 중심으로 영화 비평하기 - Thelma and Louise (Ridley Scott, 1991)
    문화연구 중심으로 영화 비평하기- Thelma and Louise (Ridley Scott, 1991)문화연구는 구조주의가 따르던 상부 결정론적인 경향과 다르게, 하부에서 작용하는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을 따랐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는 영화의 텍스트가 갖는 의미성이 구조에서 기인하고 영화는 지배 계급의 논리를 전략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반면, 문화연구에서는 영화의 텍스트는 지배 계급의 논리에 결정론적으로 따르고 작용받는다고 보는 관점에 반하고 영화가 가진 전복의 힘, 하부에서 작용하는 실천력을 강조했다. 문화연구에서 바라보는 인간 개인은 지배 계급의 논리에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개인의 실천력을 가지고 있으며 능동적으로 작용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문화는 지배 계급뿐만 아니라 피지배 계급이 작용하여, 혹은 생산자뿐만 아니라 수용자가 작용하여 항시 갈등이 벌어지는 장이다. 이 갈등 가운데 얼마든지 새로운 텍스트는 생성되며 영화가 갖는 모든 의미성은 다양한 갈등과 조합으로 발생한다. 문화연구는 그러한 갈등의 장인 문화에서 생성되는 의미의 작용에 집중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여성 영화 혹은 페미니즘 영화이자 로드무비의 명작이라 손꼽히는 ‘Thelma and Louise(델마와 루이스)’는 두 여주인공 델마와 루이스가 중심적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문화연구 관점에서 이 영화를 읽어보기에는 우선 이 영화의 모든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중심인물이 여성이라는 점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대상화되고 전형화되는 약자적 위치, 피지배 계급에 속하는 인물들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부터 이 영화는 문화연구에서 주목하는 ‘전복’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 의해 형성되는 세계에서 저항과 변화가 가능한지와 관련한 ‘작인’의 문제는 문화연구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사안이다. 이 영화는 그 점에서 극 초반에서 후반까지 두 여주인공의 변화와 저항을 적극적으로 따라가고 있기에 의 첫 저항은 방학을 시작한 것부터가 시작이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저항적 행위가 드러나는 시점은 루이스가 델마를 강간하려던 할란을 총으로 쏴버리는 장면이다. 강간이라는 소재는 남성 계급의 여성 계급에 대한 억압과 지배력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극 초반 아내 델마를 동등한 위치로 여기지 않고 다그치는 대상 혹은 규율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던 델마의 남편이 행사하던 지배력과 동일선 상에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델마에게 성적행위를 요구하던 할란이 보이는 태도에서 드러났는데, 델마가 진지하게 거부의 의사표현을 하자 할란은 정색을 하고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힘으로 델마를 제압하기 전 할란이 보이는 태도는 남편이 델마에게 유지하던 태도와 유사하다. 할란은 델마의 얼굴 앞에 검지를 치켜들고 다그치듯이 그리고 강압적으로 성적 행위를 요구한다. 델마에게 발언권이란 없다. 남편과 델마의 관계를 유추하게끔 하던 극 초반의 부엌 장면에서 남편은 델마를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기보다 다그치는 고압적 태도를 유지한다. 역시나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델마에게 발언권은 없다. 델마가 남성의 지배력으로 상징되는 강간의 피해자로 억압당하려 할 때 루이스가 나타나며 영화가 내포한 저항의 메시지는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사건의 발단이기도 한 루이스의 권총 한 발은 억압된 하부 문화를 표출하는 방아쇠이기도 하였다.극이 전개되며 이 두 여성의 진행에 개입하는 인물들은 사실 모두 남성들이라 봐도 무방하다. 할란의 죽음으로 취조를 당하던 웨이트리스를 제외하고서는 극에서 델마와 루이스 외에 주목받는 여성 인물들은 없다. 영화는 여성 집단을 델마와 루이스 두 인물로 대표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을 대표하는 델마와 루이스에게 문제는 늘 남자들로 인해 발생한다. 문제가 발생하는 패턴은 비슷하다. 델마를 ‘이용’하려는 남성들에 의해 발생한다. 델마는 남성들에게 대상화되기 쉬운 전형적인 여성상을 상징한다. 루이스가 델마에게 한 번 다그친 적도 있듯이, 자신이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순진 관계에서 ‘성’은 델마에게도 주체적인 선택으로 인식된다.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서, 쾌락은 남성의 몫이던 것에서 제이미와의 만남으로 델마도 성적 쾌락의 주체가 되고 영화는 이를 주목한다. 제이미와의 관계에서도 결국에는 델마가 여전히 이용당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주체성을 획득한 상태로 변화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델마가 이 때부터 변화를 거듭나고 있다는 상징성은 루이스로 인해 더욱 부각된다. 초반에 추진력과 결정권을 쥐고 있던 루이스는 제이미의 강도질로 넉 다운의 상태가 된다. 델마는 그런 루이스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주체로 점점 나선다.델마의 변화는 영화 전체적으로 부각되는 요소이다. 극 초반 총을 쏠 줄도 모르던 델마는 돈을 구하기 위해 총을 무기로 강도질을 하고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경찰을 상대로 협박까지 하는 과감한 여성으로 변해 간다. 이는 루이스와 다른 행보이기도 한데, 오히려 초반에 강인하고 독자적인 인물로 그려지던 루이스는 극에서 델마의 변화와 함께 적절히 융화되는 모습이 강조된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델마는 잃었던 주체성을 점점 획득해가는 모습을 강조해 보여준다. 지금이 재밌고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말할 수 있게 된 델마는 자신의 선택을 포기하지 않게끔 상황에 계속해서 저항해가는 투지도 생겨났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결정적인 위기의 상황에서 저항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델마의 역할이 크다.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려 루이스가 경찰차에까지 올랐을 때에도 델마는 대담하게 경찰을 상대로 총을 겨눈다. 그리고 루이스에게 포기하고 싶은 건 아니지?라고 묻기도 하며, 루이스가 상황을 포기하려 한다 해도 존중할 것이라는 발언을 통해 주변인의 선택에 영향받는 주체성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마지막 저항을 제안하는 것도 델마이다. 루이스는 전형적으로 남성에의 ‘저항’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극 초반부터 루이스는 남성들과의 ‘갈등성’이 부각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서빙 일을 하면서 추고서는 더 이상 그 남자와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루이스와 남성의 관계는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부각시키려는 영화의 의도가 보인다. 그런 루이스와 깊이 관계 있는 남성인 지미는 루이스에게 굉장히 헌신적이며 진실한 사람이다. 지미와의 관계에서도 루이스는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 지미가 감정에 못 이겨 남성적인 힘을 마구 모였을 때에도 루이스는 강인하게 자신의 의사표현을 잃지 않는다. 남성이 힘을 이용해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여성의 저항력이 힘을 발하는 모습을 루이스는 적극 보여준다.그리고 경찰의 의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경찰의 존재는 정당하며 정의로운 존재이지만 이 영화는 두 여성의 입장에서 전개되다 보니 경찰들은 방해가 되는 존재로 프레임된다. 이들이 모두 남자인 점은 당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실제로도 남성들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가 또 한 번 여성 대 남성 갈등구조의 의미화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경찰은 두 여성의 저항적 행위로 인해 무력화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도로에서 두 여성을 검거하려다 감금된 경찰이 그러하고, 델마의 남편에게 조언하던 형사들의 말에서도 그렇다. 한 형사는 여자들은 “당신 보고 싶었어” 하는 말에 약하다며 여성들을 개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집단 모두를 통제할 수 있고 가늠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에 델마는 전화건지 단 한 마디에 남편의 속내를 알아차림으로써 이러한 형사들의 생각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경찰은 여성 대 남성을 떠나 사회의 지배 계급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그룹이기도 하다. 델마와 루이스에 의해 감금된 경찰이 지나가던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에서 그 행인이 레게 머리를 한 흑인으로 묘사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백인 남성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주류이자 지배 계급으로 행위하는 집단이다. 이에 대비되는 약자이자 피지배 계급은 성별 혹은 인종으로 구분된다. 영화 전체적으로는 델마와 루이스로 대표되는 여성 집단이 있고 이 장면를 이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흑인의 행위가 구원 요청을 하려고 손가락을 뻗은 숨구멍으로 되려 담배 연기를 불어넣는 행위였다는 점에서, 극 초반 할란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뱉던 루이스의 행동과 같은 상징을 보인다고 볼 수 있다.전형적인 남성 집단의 특징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두 여성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남성들 외에도 있다. 우선 계속 해서 등장하던 트럭 운전사가 대표적이다. 여성들만 있는 집단을 얕잡아 보고 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여성이 자신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경우 여성들을 비정상적이라 보는 시선. 트럭 운전사의 트럭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극 내내 이끌어오던 델마와 루이스의 저항적 힘이 폭발하는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폭발의 대상이 오히려 두 여성과 직접적인 관계 형성이 안 된 트럭 운전사라는 점은 또 새로운 의미가 있다. 깊이 관계가 없는 남성들에 의해서도, 사회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대상화되는 여성들의 저항적 행위라는 의미가 큰 장면이다. 이전의 구조주의 연구에서 주목하던 구조와 지배 계급에 의한 탑-다운식의 조작이 아니라 상향식의 하위문화적 저항에 관심이 있는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이 영화는 읽어낼 것이 많다. 영화 자체가 사회적 맥락에 의해 상부의 논리를 내포하기보다 중심 인물의 저항적 행위들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집단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연구가 페미니즘과 비판적 인종이론 등 다양한 지적 원천을 기반으로 하는 데에서 이 영화는 논의점이 많다. 위에서 분석한 여러 상징성 외에 영화 전체적으로 지적하자면 남성 대 여성으로 프레임과 이에 부각되는 갈등성은 델마와 루이스의 저항적 행위를 통해 의미적 작용을 거친다. 기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던 남성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두 여성의 저항은 영화 내러티브 안에서 변화의 성과를 누린다. 또한 마침내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력을 잃지 않은 두 여성의 저항적 행위는 진정한 의미의 해방을 선사하는 결말을 맞이한다. 문화연구의 관점에서는 두 세력간있다.
    인문/어학| 2014.12.24| 4페이지| 1,000원| 조회(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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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주의적 관점에서의 영화 분석 -박찬욱 감독의 영화 <Stoker>
    영화이론 및 비평Final Analysis Paper작가주의적 관점에서의 영화 분석박찬욱 감독의 영화 서론박찬욱 감독의 영화 (이하 ‘스토커’)는 2013년 3월 1일 개봉한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다. 니콜 키드먼과 미아 바시코브스카를 비롯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비롯하여 외국 스텝들과의 작업을 거친 박찬욱 감독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다. 영화 스토커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어머니 에블린과 단둘이 살게 된 인디아의 집에 삼촌인 찰리가 찾아오며 생기는 일들을 그린 영화이다. 18살 소녀 인디아가 삼촌 찰리의 영향으로 스토커 가문의 잔혹한 광기와 마주하면서 겪는 변화를 섬세한 장치들로 묘사해냈다. 감독은 18세 인디아의 성장영화라 정의했다. “난 나만의 것으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서 인디아가 말하던 것처럼 18살 소녀가 삼촌의 영향으로 자신의 본성을 깨치면서 겪는 깨달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스스로 택한 것 외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들로 구성된다는 식의 주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죽음, 사랑, 소외, 폭력성 등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주제를 다뤄왔던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들과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파격적인 내용과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독특한 미학을 구사했다는 점에서도 역시 이 영화는 박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 연장선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본문에서는 영화 스토커의 컷과 시퀀스를 분석하고 꼼꼼한 미장센과 탁월한 사운드 구사 등 텍스트에 기반한 분석을 거치고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논의하려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작가주의 관점에서 논의를 하게 된 것은 박 감독은 장르적 개성이나 스타일로 영화적 색깔이 뚜렷한 만큼 영화 작가로써 논의가 많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미장센을 아주 섬세하게 구성하기로 유명한 감독인 만큼 미장센을 작가감독의 핵심역량으로 중시했던 작가주의 관점에서 분석할 의의가 있다.프랑스 ‘까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전파되기 시작한 작가주의는 감독을 최후의 심급에 영화의 미학과 미장센함께 시작된다는 상징성과 함께 영화의 내러티브는 본격적인 시작을 한다.이후로도 인디아의 ‘성장’을 의미하는 상징성들은 계속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알’로 비유가 되는 인디아가 있다. 영화 초반부 주방의 메이드들이 인디아가 듣기 싫은 말들을 지껄일 때 인디아는 분출되지 않은 내면의 예민함을 계란을 부수는 행동으로 분출한다. 그들의 얘기에 불편한 심경이 인디아의 표정으로는 드러나지만 그녀는 계란을 부딪혀 테이블 바닥에 굴리며 그 심경을 분출한다. 장면은 계란 껍질이 깨지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또한 이 장면 위에 껍질이 아그작 아그작 깨지는 소리는 인디아가 겪는 심경적 충동을 대변한다. 이 때 인디아의 심경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음 알의 등장은 찰리가 인디아가 사냥해 만든 박제품을 구경할 때이다. 그가 박제된 새를 들어올려 둥지 안 알을 발견한다. 이 알에 카메라는 포커스를 두다가 디졸브로 알이 인디아의 눈으로 겹쳐지며 전환된다. 알과 인디아를 보다 직접적으로 비유한 장면으로, 찰리가 알을 들춰본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전체적 내러티브에서 찰리가 인디아의 잔혹한 본성의 피를 이끌어낼 것임을 상징한다. 찰리는 인디아 내면의 본성(알)을 발견하는 인물이다. 알은 다음 날의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 날,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둥 기다렸다는 듯 일상을 보내려는 엄마를 못마땅해하는 인디아의 옆에 알이 있다. 일반적인 주방 모습을 배경으로 알은 화면 구성에서 그다지 눈에 띄지도 않게 있지만, 인디아의 바로 옆에 크고 온전한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는 엄마에게는 못마땅함이 있지만 아빠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것과 같이 여전히 인간적인 모습이 온전한, 본성이 발휘되지 않은 인디아의 모습을 상징한다.미장센이 발휘되는 장면은 에블린과 인디아, 찰리 세 사람의 긴장된 구도를 묘사한 장면이다. 에블린과 인디아의 갈등이 대사를 통해 불거질 때 두 여자 사이에 찰리의 뒷통수가 배치되어 있다. 찰리를 중심으로 둘이 시선을 주고 받으며 갈등을 아 둘의 교감을 묘사하고 둘의 감정선을 끌어올린 장면이다. 피아노 연주는 처음에 인디아가 연주를 하다가 찰리가 끼어 들고 인디아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끼어 들며 합주가 시작된다. 이 전에 찰리는 에블린 앞에서 피아노 초보인 척 하며 본성을 감췄다는 데에 또 이 장면의 의미가 있다. 찰리는 인디아 앞에서는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려 한다. 인디아와 자신이 같은 피임을 인지하고 인디아 내면에 내재된 본성을 불러오기 위해서이다. 둘의 합주씬, 중간 중간 삽입되는 인디아의 발이 묘사하는 오르가즘은 연주곡의 흐름이 고조되며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 장면에서는 사운드 자체가 성 경험을 묘사한다.그리고 사운드는 복선의 기능 또한 담당한다. 인디아가 찰리의 요구에 지하실에 아이스크림을 두러 갔을 때 지하실의 어두컴컴한 분위기보다도 사운드가 두려움을 고조시키는데,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스릴러 장르의 전형적인 고조되는 음악에 관객은 감정에 온전한 몰입을 하기보다는 뭐지? 하는 궁금증이 인다. 지하실의 어두컴컴한 분위기 자체보다 사운드가 고조시키는 긴장감의 의미를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지하실이라는 장소는 나중에 인디아가 찰리가 죽인 집사 할머니 시체를 발견하는 곳이다. 첫 지하실 씬에서 사운드가 이러한 전개의 복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3) 연기 분석주요 등장인물 인디아와 찰리, 에블린의 연기 특성을 분석하자면 우선 굉장히 연극적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인디아는 지나치게 대사가 없다. 그렇다고 표정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없다. 인디아의 내면은 속을 알 수 없는 변화 없는 표정과 설명적인 대사 대신에 미장센과 교차적인 장면 편집으로 대신 서술된다. 인디아의 움직임을 보면 상당히 분절적으로 보이는 듯한 인상을 많이 받는데 무뚝뚝한 얼굴 표정과 함께 늘 경직되어 보이는 자세는 인디아가 아직 성장을 마치지 않은 상태이고 내면에 억눌린 본성이 있음과 연결되는 연기라 보여진다. 그리고 찰리의 경우 광기의 캐릭터인데 말과 행동보다는 그 표정과 눈빛으로 광기가 표현되는 특징이이 캐릭터를 동기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의 폭력을 윤문정, “박찬욱 감독의 작가성 연구”,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연구에서는 인간의 기저에 갖고 있는 일반적 원인인 욕구불만에서 온다고 해석하였다. 욕구불만의 상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인간은 항상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는 상태가 된다고 본 것이다.본 영화 ‘스토커’에서도 이전까지의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보인 인물의 동기화와 비슷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인디아는 아버지의 결핍으로 인해 폭력성이 동기화되는 인물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사랑하는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없어지면서 그 결핍감에 내재된 폭력성이 동기화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전에는 내면에 감춰져 있던 본성을 아버지가 알아채고 제어해주었는데 이제는 그런 아버지의 부재로 억눌렸던 욕구들이 튀어 나온다는 의미일 수 있다.이전 작들과의 차이점은 인디아나 찰리가 이중적 인간형으로 그려지는 데에 이전 작품에서 ‘복수’라는 플롯을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찰리나 인디아 모두 악의 양상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보이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는 복수를 중심으로 캐릭터의 폭력성을 동기화시키는 양상이 있었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복수보다는 ‘질투’가 인물들의 행동을 동기화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질투와 복수는 다른 대상에 대한 내부에서 격렬하게 끓어 오르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두 감정 모두 해소하고 싶을 때 누군가를 대상으로 삼아 행위를 동기화 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모티프의 활용모티프 연구는 본래 음악과 문학에서 사용되다가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 되는 표현을 찾아내어 작품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를 밝히는 도구로 영화 분석과 비평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p.4) 우리 사회에 던지는 통찰과 담론의 핵심으로 작가가 제시하는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로, 작가주의 관점에서 영화를 해석할 때에 모티프찰리의 방은 독수리가 사냥하고 있는 TV의 다큐멘터리 방영 화면을 통해 연결성을 가진다. “형제 간 살육이 잔인한 것 같지만 독수리는 매일 매일 사냥에 익숙해지고” 방송의 사운드와 장면이 영화 프레임 안에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찰리가 진 고모를 살해하는 장면에 의미를 더한다. 이 장면은 상황 별로 교차적인 편집으로 몽타주적인 연결을 만들고 TV 장면을 영화 프레임 안에 배치시키는 감독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그리고 예술적 요소는 영화의 전개 중 비현실적 요소의 삽입으로 극대화되기도 한다. 인디아가 어머니 에블린의 머리를 빗어주는 신에서 에블린의 머리가 숲 속의 갈대로 전환되고, 인디아가 아버지와의 사냥을 회상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장면은 비현실적인 연출을 통해 이 영화의 예술적 요소가 살아난 신이라 보여진다.반영적 영화 제작작가주의 감독들의 또 한 가지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오마주’라고 하는 반영적 영화제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의혹의 그림자’에서 엉클 찰리와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 인디아의 ‘새’ 사냥은 히치콕 감독의 다른 영화 ‘싸이코’와 오마주적인 연출이 되었다. 그리고 자기 반영적인 신도 있었다. 오프닝 인디아의 열 여덟 번째 생일케이크 장면은 의 케이크와 오마주되는 부분이 있고, 소녀에 대한 관음과 피관음적인 시선을 던지는 미장센은 에서 미도를 바라보는 미장센과 오마주된다. 오마주는 감독의 개인적 비전이 반영된 연출로써 그 개성을 확실히 한다고 볼 수 있다.결론영화 ‘스토커’에 드러난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박찬욱 감독의 연출과 특성을 분석해보았다. 스토커는 오프닝과 엔딩이 수미상관적인 구조를 가지면서 내러티브를 다 전개했을 때 오프닝에서 본 바로 그 장면이 엔딩에서 어떻게 의미화되는가 관객의 입장에서는 반전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인디아가 경관을 살해할 때 튄 피가 하얀 꽃에 물든 장면을 첫 장면에서는 꽃 고유의 색채인 줄 알았지만 결말에서는 꽃에 다른 이의 피가 물든 것임을 알게 된다. 이는 인디아의0)
    인문/어학| 2014.12.24| 9페이지| 2,000원| 조회(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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