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와 한국 문학의 여성주의 경향에 대한 고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와 한국 문학의 여성주의 경향에 대한 고찰한국 문학에서의 여성주의는 손소희로부터 박경리, 나아가서 공지영, 신경숙 등의 작가들에 의해 개진되어 왔다. 이 가운데 9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인 공지영과 신경숙의 소설을 살펴보기로 한다. 공지영은 작품 속에 중산층 지식인 여성을 등장시켜 그들이 독립적으로 인생의 구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모색한 작가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에서 현실적이지 못한 감상적인 여성 인물의 인생을 조명하는 등 현실 의식이 결여된 낭만화된 인물을 그리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봉합하지 못한 채 회고적인 감상주의로 귀환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그런가 하면, 신경숙의 소설의 대중성은 대체로 가족주의와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 이중 전략으로 타자성을 구현하는 서사 방식으로 실현된다. 특히 작가는 에서 아버지와 오빠로 상징되는 가부장제 가족 구조에 대한 애착과 과거의 낭만적 평화로움의 상실에 대한 슬픔, 70년대의 경제적 궁핍에 대한 고통의 기억을 자기 연민의 감정으로 투시해내고 있다. 작가는 자본의 횡포조차 침투할 수 없는 절대 공간, 가부장적 삶이 평화롭게 지켜지는 원형의 공간으로서 ‘고향’을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고향은 도시의 과 대조적으로 아버지나 큰 오빠로 대표되는 남근 기표에 의해 보호되는 소녀기의 절대 공간으로 등장한다.신경숙 작가의 작품 ‘엄마를 부탁해’ 또한 작가의 이러한 가족주의적 기저 위에 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어머니로서, 또 그 어머니의 딸로서 현대 여성의 삶을 작품 속에 생생하게 드러내기도 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적 문학으로 분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어머니도 여성이다.’는 나름대로 파격적인 제언도 소설 곳곳에 제시하였다.네가 엄마를 생각하며 혼자 웃을 때가 있는데, 그날의 엄마, 늙은 엄마가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오빠! 외치며 마루를 뛰어내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간의 외삼촌에게 달려가던 그 모습이 연상될 때이다. 그때의 엄마는 너보다도 더 어린 소녀였다. 엄마의 그 모습은 너의 뇌리에 박혔다. 엄마에게도…, 라는 상상을 하게 했다. 당연한 일을 왜 그제야 깨달았는지.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 살 혹은 스무 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독후감/창작| 2014.12.28| 2페이지| 1,000원| 조회(217)
    미리보기
  • 데카르트, ‘방법서설’ 분석 및 비판
    데카르트, ‘방법서설’ 분석 및 비판‘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 본 이 유명한 어구를 말한 사람이 바로 르네 데카르트이다. 그는 자신의 책 방법서설을 통해 이성의 토대 위에서 모든 것을 회의하면서 진리를 알아가는 방법을 제시하였다.우선 그는 이성(양식)은 인간의 종족적 특징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며 생득적이라고 이야기를 열어 간다. 그리고 이성 외의 것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회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본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다양한 민족들에 있는 축적된 문화적 관습과 선례들이 얼마나 서로 다르고 다양한지를 보여 주며 관습과 선례를 따르면 진리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한 사람이 설계한 건물이 여러 사람이 설계한 건물보다 구조적으로 더 나으며 계획 도시가 우연에 의해 형성된 고도시보다 정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다. 이는 당대의 여러 철학자들이나 역사적 석학들이 말한 다양한 것들을 무조건 좇는 것보다 자신의 이성의 토대 위에 철학을 세우는 것이 나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데카르트는 조직의 결함은 거의 언제나 그 결함을 변경한 것보다 견딜 만하다는 것을 들어 개혁과 선동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그 근거로 험한 비탈길도 걸으면 평탄해진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주장이며 근거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이렇게 데카르트는 진리는 자신의 이성의 힘으로 깨달아야 함을 말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방법이란 네 가지 순서가 있는데, 첫째 명증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모든 지식을 의심하라는 것이다. 둘째 (지식의 명증성을 담보하기 위한 생각의 과정에서는) 문제를 쉬워질 때까지 쪼개야 한다. 셋째는 그 쪼개진 부분들을 계열화해 단순한 문제부터 복잡한 문제로 유기적으로 순서를 구성하여 종합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이 모든 과정에 빈틈이 없게 점검하고 또 검사하라고 하였다.위 방법은 인간의 이성을 자신의 한계까지 끌어올려 사용하는 데 그가 주장하는 만큼 쓸모가 있을지 모르나, 이렇게 혼자의 이성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사용하는 것이 과연 그룹(여러 사람)이 연합할 때보다 명증적으로 옳은 길을 갈 수 있는가 의문을 품는다.나는 여기서 키스 소여의 ‘Group genious’라는 책을 인용하고 싶다. 저자는 한 사람의 천재와 대치되는 개념인 ‘그룹 지성’을 소개하며 '이제는 한 사람의 고독한 천재가 아니라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창조적 협력이라는 과정을 거쳐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간다.‘고 언급한다. 나는 혼자 가는 데카르트보다 소여의 말이 지금의 현실에 적용하였을 때 모든 분야에서 더 큰 진보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카르트는 개인 이성이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늘‘ 농후함을 간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실족 가능성은 네 번째 방법인 끝없는 열거와 검토만으로, 개인의 자기검사만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데카르트는 양식 즉 이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생득적이라고 하며 인간 특유의 본질이라고 하였지만 그것에 대한 근거로는 무엇을 들고 있는가? 철저하게 혼자 가라고 한 그 역시 당대까지 이어져 내려 온 철학의 전통을 따르고 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한 사람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협력의 산물인 위대한 발견들이 많이 있다. 소여는 그의 저서에서 에디슨의 발명, 모스의 전신,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그 예로 든다.
    인문/어학| 2014.12.28| 2페이지| 1,000원| 조회(570)
    미리보기
  • 조르주 뒤비 외, '사생활의 역사'를 읽고
    『사생활의 역사』를 읽고유명한 영국의 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역사의 중요한 기능은 선은 상을 받고 악은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는 그 시대, 즉 중세 및 근대 초 역사가들의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생각이다. 역사란 신의 섭리에 따라서 진행되므로 역사가는 그것을 기록하여 신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나는 조르주 뒤비와 필립 아리에스의 ‘사생활의 역사’를 읽고 의문을 제기한다.인류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노예제를 지속해 왔다. 인류의 역사는 노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사생활의 역사’ 1권 1부의 ‘노예들’항목에 보면 노예들은 사람이 아닌 동시에 사람이었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유민보다 열등한 대접을 받았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완전히 물건이나 동물처럼 다뤄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었다. 소나 말에게는 이런 의무를 지우지 않는 법이다. 이는 노예를 소유할 수 있는 지배층을 포함한 그 사회 전체가 노예들을 마치 물건처럼 취급하기는 했지만 의식 속에서는 그들의 인성(人性)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허구적 열등함에 대한 사회적 묵인이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현대를 사는 나로서는 상상해 보기조차 쉽지 않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음의 내용이다.그러면 노예들은 이처럼 비참하고 모욕적인 상태를 어떻게 견뎠을까? 불편한 나무 침대 위에서 자는 사람처럼 노예들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신 자세를 조절했다. 그리고 주인을 태워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랑했다. 노예는 자기네끼리 곁말을 써서 주인을 ‘최고의 그분(ipsimus, ipsissimus)’ 이라고 불렀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대목을 읽는 가운데 나는 현재에도 고대 로마의 노예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현상이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다음은 고(故)지 못하게 통제한다거나 밤에 와서 숙박검열을 한다는 가 그런 건 없었습니다. 북한에서처럼 전면적인 통제를 못한 거지요. 그런 상태에서 소련이 무너지다 보니까, 차우셰스쿠가 군대를 잘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군대가 반기를 들고 이러면서, 다른 데로 피신하려다 못하고서 죽었습니다.그러나 북한은 자기 아버지 대부터 계속해서 유례없는 독재를 실시해 왔습니다. 어쨌든 김일성은 그래도 빨치산 투쟁을 했고 그걸로 해서 사람들 속에서 권위가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이 권위와 결부시켜서 계속 봉건적인 사상으로서 자꾸 (사람들을) 교양했습니다. 우선 (북한은) 독재정권의 사상적 지반이 차우셰스쿠보다 대비도 안 됩니다. 거기다가 중국이 (북한 정권을) 지지합니다. 그러니까 국내적으로 볼 때 독재 세력이 반독재 민주주의 역량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우세했습니다. 중국이 지지하기 때문에 여기선(북한에선) 도저히 일어날 수 없습니다.북한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독일에서 유태인 학살하는 걸 독일 민족은 왜 막지 못했습니까. 가장 발전됐다는 민족이. 이탈리아에서는 왜 그렇게(파시즘) 했습니까.북한의 독재체제가 당시의(파시즘 시기) 독일이나 이탈리아보다 얼마나 강화 됐는가 하면, 북한에서는 어린 아이 때부터 교양을 했고, 소년단, 청년조직을 통해서 새로운 세대들을 다 정신적으로 마비시키기 위한 사업을 전면적으로 실시를 했습니다. 도저히 북한 실정에서는 (봉기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일어나기만 하면 개죽음입니다.내가 그 전에 (북한에 있을 때) 대학생들이 일어나겠다고 한다는 보고를 받고서 자꾸 그랬습니다. ‘그러지 말라. 지금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군인들, 제대군인들이 일어났을 때 같이 일어나고 해라.’ 이런 실정을 모르고서 (봉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니까 우리 탈북자들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에서 탈북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국경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탈북 한다는 것은 완전히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입니다. 탈북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졸라 죽여 진흙탕의 늪지에 던져버렸다. 갈로-로마인의 경우 마요리아누스 황제는 아내의 부정을 발견한 남편은 간통한 남녀를 그 자리에서 '단번에' 살해해도 좋다고 법으로 허락했다. 프랑크 족의 관습은 이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 왜냐하면 남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간통한 여자의 가족 모두 이러한 행위가 자신들의 혈통 전체에 흠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통죄를 지은 여인은 당연히 죽임을 당했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가 전하는 수많은 사례를 보면 가까운 친인척들, 말하자면 혈족들이 부정을 저지른 여인의 아버지에게 "그대는 딸이 깨끗하다고 맹세하든지 아니면 딸을 죽게 만들든지 하라"고 강요했다. 양가가 분쟁에 휩싸여 서로를 도륙하는 일도 흔했다. "여인은 며칠 안으로 재판소에 불려가서 교살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한 여자를 산 채로 태워 죽이거나 신명 심판을 하기 위해 물 속에 던졌다. 그러나 목에 커다란 돌을 매달았기 때문에 여자는 강물 속으로 금방 가라앉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만에 하나 여자가 물 위로 뜬다면 그것으로 결백이 증명되었다.이렇듯이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살인에 해당하는 행위들이 합법적, 또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책은 이런 것이 가능했던 사회적 원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강간이나 유괴는 모두 남자가 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에 결국 결혼으로 마감될 수 있었지만, 간통은 여인과 후손, 따라서 장래의 상속을 더럽히는 일이었다. 어떤 결합이건 사회적 신분을 무시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간통하는 여인은 그러한 행동을 통해 자식의 정통성을 해치고, 피의 절대적 영향력을 없애듯이 그것은 사회를 해체시키기 때문이다. 강간이나 유괴를 한 남자는 심한 벌을 받았지만, 간통한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강간이나 유괴를 저지른 남자는 혈족의 우두머리들이 갖는 권력을 직접적으로 손상시켰지만, 간통을 저지른 남자는 혈족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그가 간통에서 얻은 자식들은 여자의 남편에게 속했다. 요 대한 공격과 각각의 상처에 대해 지루할 정도로 낱낱이 밝혀놓았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은 아주 많은 사실을 드러내준다. 오직 황금만이 흐르는 피를 멎게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주먹질 세 대만 하더라도 금화 9수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한쪽 손을 부러뜨리거나 다리를 베어버리는 경우 또는 한쪽 눈을 빼거나 귀나 코를 베어버린 경우에는 100수를 물어야 했다. 더욱 끔찍하게도 어떤 사람이 적의 혀를 뽑아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때는 100수를 물어야 했다.이처럼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공격자에게 해를 끼친 신체의 일부를 떼어버리려는 절실한 욕망 때문에 아니었다면 달리 어떤 이유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불행한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든 채 그가 울부짖는 가운데 그다지도 어려운 '외과수술'을 하려고 했겠는가? 복수의 동기란 아주 간단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아주 쉬웠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었으며, 죽인 사람이 왕의 직신이나 손님이 아닌 경우 얼마간 벌금을 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에 살인은 사회 신분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뉘었다. 같은 등급에 속한 사람을 죽였을 경우 그가 로마인이건 프랑크인이건 벌금은 같았다. 사회적 서열에서 왕의 신하인가 그저 자유민에 불과한가만이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세번째로 프랑크 족의 묘한 관습을 볼 수 있다. 즉 도둑은 사형을 시켰지만 살인자는 벌금형에 처했던 것이다.고트 족 입법가는 가장 흔한 도둑질에서 시작해서 가장 드문 도둑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규정해놓았다. 동시에 재산이 가진 가치의 서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의 가치 체계는 놀랍기 짝이 없다. 꿀단지를 하나 훔치면 벌금으로 45수를 물어야 했지만 노예나 암말을 훔치면 고작 35수만 물었다. 그러나 노예가 손재주 좋은 장인일 경우 62수 반을 물어야 했다. 오직 희소 가치만이 중요할 뿐 사람은 그 자체로서는 가치를 갖지 못했다.이처럼, 폭력의 만연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부추길 뿐만 난무하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던 신생아와 영아들은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아버지가 쳐들지(인정하지) 않은 아기는 문 앞이나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그러면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데려다 기를 수 있었다. 만일 출타중인 아버지가 아이를 낳은 아내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에서는 사내아이보다 계집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기원전 1년에 어느 그리스인은 아내에게 이렇게 썼다. “만일 아기가 생기는 경우 사내아이면 살리고 계집아이면 버리시오.” 또한, 로마인들은 기형아를 낳으면 버리거나 물에 빠뜨렸다.현대인의 입장에서는 믿을 수가 없는 이러한 영아 살해에 대해서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훌륭한 아기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아기를 구별해야 한다.” 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의 생명이 생명 그 자체가 아닌 사회적 쓸모에 따라서 가치매겨지던 역사적 사실은 성 역할의 엄격한 구분과 그에 맞물린 폭력의 만연이 얼마나 당대인들의 삶에 반인륜적으로 작용하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그러나 이 믿을 수 없는 살인 행위들은 대체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감에 따라 점점 드물어져가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러한 다신교 사회 후에 도래한 기독교는 영아 살해를 금지하였으며 아내 살해를 죄악으로 보고 폭력적인 남편에 시달린 아내들이 수도원으로 피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기독교 역시 필연적으로 ‘남성적인’ 폭력의 만연을 불러일으킨 성 역할의 분리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나 주교들은 서서히 ‘하느님 앞에 남녀가 평등’하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 예로, 585년 마콩 주교구 성직자 회의에서 어떤 주교는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은 법률’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선언에 대해 “여성을 남성(homo)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분개하였다. 하지만 다른 주교들이 그에게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은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고, 그들을 아담이라고 부르셨다. 그것은 흙으로 만든 사람(homo)이라는 뜻이었다. 그
    독후감/창작| 2014.12.28| 8페이지| 1,000원| 조회(137)
    미리보기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의 기억과 인식 -텍스트를 기반으로-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의 기억과 인식 -텍스트를 기반으로-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고백록’ 10장은 무궁무진한 ‘기억’의 관념에 찬사를 바치며 시작한다. 그는 이 책에서 ‘기억’을 두 부분으로 나누며, 그 중 첫 번째로 바깥으로부터 온 영상의 기억에 대해 쓰고 있다.주여, 기억의 힘은 이렇게 엄청납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숙한 속마음입니다. 누가 그 깊숙한 속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 힘은 물론 나의 능력이며 나의 본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나라는 존재의 전체를 포착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무한한 기억력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억할 수 없는 것들은 대체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 것일까요? 정신 밖에 있습니까? 정신 안에 있습니까? 왜 정신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이러한 생각에 나는 경탄을 금치 못하며 그저 놀랄 뿐입니다. 사람들은 밖으로 뛰어나가 높다란 산봉우리에, 바다의 노도에, 강물의 거센 흐름에, 또는 큰 바다의 광막함에, 별들의 운행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는 놀라지 않습니다.사람들은 내가 눈으로 하나도 보지 않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사실상 놀라지 않았습니다. 내가 본 적이 있는 산과 파도와 강과 별, 그리고 내가 들은 적이 있는 대양이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그것들을 봤을 때 사물이 눈 속으로 흡수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의 영상만이 내 기억의 창고 속에 보존되어진 것입니다. 나는 신체적 감각이 인지한 영상들이 기억의 창고 속에 보존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 중 외부의 영상(Imagistic)이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 밝혀 쓰고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산과 파도와 강과 별의 영상, 음식의 맛과 온도 등 모든 오감적인 기억이다.나는 이 같은 본성의 힘도 뛰어넘어 나를 지으신 분에게 올라가고자 합니다. 나는 기억의 들판과 넓은 궁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는 감각이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하여 가져다 준 수많은 심상이 쌓여 있는 보물 창고가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감각으로 포착한 것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바꾸면서,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일체의 것이 저장되어 있습니다.예컨대 빛과 모든 색깔과 물체의 형태는 눈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또 귀로 들어온 것에는 온갖 종류의 음향이 있고, 온갖 냄새는 코의 문을 거쳐서, 온갖 맛은 입의 문을 거쳐서 들어옵니다. 그리고 온몸에 걸쳐 있는 감각에 의해서 그 감촉되는 것이 몸 안에 있든 몸 밖에 있든지 간에, 무엇이 딱딱하고 무엇이 연한가, 무엇이 뜨겁고 무엇이 가벼운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헤아릴 수 없이 깊숙한 보고 속에 간직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씁니다. 그렇다고 그 사물들 자체가 기억의 보고 속에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각된 사물의 영상이 그 속에 있으면서 그것을 회상하는 기억력의 부름에 대비하는 것입니다.그런가 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의 비영상적인 부분, 즉 감각이 아니라 ‘그 자체인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1+1=2 이다‘식의 지식이나, ’점‘과 ’선‘이라는 개념 등이 있다. 위치는 있지만 넓이는 없는 점의 개념이나 길이는 있지만 넓이는 없는 선의 개념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는 추상적인 사유 과정을 통해서 점과 선의 개념들을 기억 속에 가지고 있다. 이처럼 학문과 지식과 같은 추상적인 관념들은 바깥의 영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기억 속에 가지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학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눈은 "색깔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볼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말하고, 귀는 "소리가 나는 것이라면 우리가 들었을 텐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코는 "향기를 풍기는 것이라면 나를 통해 들어갔을 텐데"라고 말하고, 또 혀는 "맛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아예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촉각은 "형체가 없는 것이라면 내가 만져 볼 수 없기 때문에 나 역시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떤 경로로 내 기억 속에 들어온 것일까요?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것들을 학문으로 배웠을 때 남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으로 인식하고, 그것이 참이라고 인정하여 기억 속에 간직하였다가 필요할 때에 마음대로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배우기 전에는 나의 기억 속에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누가 말했을 때 "그렇다, 그 말은 진리이다"라고 내가 시인한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그 까닭은 그것이 이미 내 기억 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들은 깊숙한 동굴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분명히 나는 그것을 생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물의 영상을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영상 없이 그것의 있는 그대로를 내적으로 지각하는 것입니다.그런데 만일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 즉 ‘1+1=2’였음을 망각하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의 결핍이라고 할 수 있는 망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내가 '망각'이라는 말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그것을 기억할 수 없다면 어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망각'이라는 단어의 소리가 아니라, 그 단어의 의미입니다. 만일 '망각'이라는 단어를 잊고 있었다면, 나는 그 소리가 의미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망각을 기억할 때에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두 가지가 뇌리 속에 있습니다. 망각이란 기억의 결핍 외에 대체 무엇일까요? 망각은 현존하는데,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망각이 현존할 때에는 나는 그것을 기억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한편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기억의 창고 속에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며, 만약 그 속에 망각이 없다면 망각이라는 단어의 소리를 들어도 그 소리의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므로 망각도 기억 속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망각이 우리가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기억 속에 현존하고 그 망각이 존재할 때 우리는 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망각을 회상할 때 망각 자체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상이 기억된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망각 그 자체가 존재한다면 회상하지도 못하고 망각해 버릴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 아리송한 문제를 풀 수 있겠습니까? 과연 누가 그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망각에 대해서 모호하고 알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것은 확언하고 있다.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파악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내가 기억하였던 것을 말살시키는 망각 그 자체를 내가 기억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모호한 서술 속에서 망각도 기억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자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추상적인 것을 담당하는 기억의 두 번째 부분에 기쁨과 슬픔 등 인간의 감정도 기억 속에 들어가 있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와 같은 기억 속에는 내 마음의 감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감정을 느낄 때 기억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기억의 본성에 따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나는 과거에 기뻤던 일을 지금은 기쁘지 않게 상기하며, 과거에 슬펐던 일을 지금은 슬프지 않은 마음으로 회상합니다. 내가 두려워했던 과거를 기억할 수 있으며, 정욕에 움직여 살았던 과거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나의 지난날의 슬픔을 기쁨으로 상기하며, 지난날의 기쁨을 슬픔으로 상기하는 일도 있습니다. (...) 기억이란 말하자면 정신의 위이며, 기쁨이나 슬픔은 단 음식과 쓴 음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이나 슬픔은 기억의 위 속에 들어가면, 마치 음식이 위 속에 들어간 것처럼 그 안에 간직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맛이 단지 쓴지는 알 수 없습니다. (...) 나는 정신의 네 가지 갈등, 즉 욕망, 기쁨, 공포, 슬픔을 기억으로부터 이끌어 냅니다. 내가 이 감정들을 종류대로 구별하여 정의를 내릴 때, 나는 말할 것을 기억 속에서 찾아내어 거기에서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인문/어학| 2014.12.28| 4페이지| 1,000원| 조회(111)
    미리보기
  • 하인리히 롬바흐 -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분석 및 비판 평가D별로예요
    하인리히 롬바흐 -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분석 및 비판롬바흐의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는 이분적 구도 아래에서 아폴론과 헤르메스를 대비시키며 현대적 신화학, 혹은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을 시도한다. 신화인지 미학인지 구분이 모호하긴 하지만, 롬바흐는 서양의 지적이며 미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들의 여러 사례들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사유를 설명해 가고 있다.이러한 사유는 헤르메스적 사유와 해석학적 사유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출발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해석학적 사유만이 인식론적으로 상세히 다루어졌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상당한 자의식을 전개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헤르메스적 사유는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은폐된 것을 사유하는 헤르메스적 사유는 스스로 은폐되어 있으며 유럽에서는 단지 부수적이고 미흡하게 파악되어 왔을 뿐이다.이와 같이 롬바흐는 그의 저서에서 서양 사상(철학), 또는 삶의 근본적인 태도를 형성하는 아폴론적 태도에서 벗어나, 헤르메스, 헤르메스적 사상과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한다.태양의 신, 빛의 신, 그래서 활쏘기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은 서양문화의 주류를 대변하는 신이다. 세계의 중심을 지키고 있던 용 피톤을 퇴치하고 델포이 신전을 맡은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쏘아 맞추며 어두운 것을 제거하고 병든 것을 치료하는 태양처럼 모든 것을 순화하고 정화한다. 즉 어둡고 나쁜 것에 대한 승리자인 아폴론은 중앙으로부터 모든 것을 가르고 각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지정해주며, 작고 악한 것을 구석으로 몰아붙인다. 이렇게 중앙에서 정해져 만물 위로 던져지는 질서는 반대 가능성들이 나타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질서는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이러한 빛의 신 아폴론이 태어난 섬은 “델로스”(명백하게 드러난 곳)라고 불린다. 반면 헤르메스는 어두운 동굴에서 태어난다. 뱀 두 마리가 서로를 휘감고 있는 마법 지팡이와 날개 달린 신발, 그리고 여행모자 등을 신표로 하고 있는 헤르메스는 “신들의 사자(使者)”이고 죽은 사람이 지하세계로 건너가는 것을 돕는 “영혼의 안내자”이며, 전령과 통역자의 보호자이다. 즉 세계들을 넘나드는 그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들의 신이다. 이 신의 인도 하에 우리가 도달하는 세계들은 드러나 있는 일상성의 세계에 대해서는 불가해한 것, 그런 의미에서 닫혀 있는 어두운 세계들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들은 한없이 풍요로운 참된 자유의 세계들로 경험된다.이와 같이 아폴론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디오니소스와도 사못 다른 헤르메스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의미하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롬바흐는 신화, 신화와 관련된 서사 속에서 헤르메스의 의미를 찾아내며, 헤르메스가 가지는 현대적 의미에 주시한다. 이에 관해 롬바흐는 책 속에서 이렇게 설명한다.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신화는 학문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훨씬 뛰어넘는 진리의 핵을 가지고 있다. 신화는 특히 인간과 인간의 공생 및 인간과 자연의 공생에 관한 생략되거나 망각되어서는 안 될 진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이 계속 살아 남는 것은 학문적 진리보다 신화적 진리에 훨씬 더 많이 달려 있다. 신화는 학문보다 깊이 현실을 포착하고, 학문보다 총체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친다. 신화에 관한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고유한 “학문”이 “헤르메틱”이다. 헤르메틱이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 비록 평범한 오성에게는 “파악될 수 없는” 것이지만, 살아 있는 이성에게는 분명한 것이고, 열린 감성에게는 확실한 것이다.
    인문/어학| 2014.12.28| 3페이지| 1,000원| 조회(1,004)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1
  • D별로예요
    1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8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9:09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