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학년도 1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글과 생각학 번 :성 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과제유형 : ( C ) 형○ 과 제 명 : 가족이나 지인 등 주변 인물들(고인 포함) 가운데 자신이 존경하는 한 사람을 택해 그 사람의 생애와 존경하는 이유를 주체적으로 기술해보시오. 시오.※ 본 자료는 참고만 하세요. 그대로 제출시 표절로 인한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으며,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임을 알려드립니다. 새로운 리포트 작성시 참조만 하세요.목차Ⅰ. 서 론Ⅱ. 본 론1. 시누이의 생애2. 시누이의 존경 이유Ⅲ. 결 론Ⅰ. 서 론직장 생활이나 가정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존중을 의사소통 전략으로 이용하려면, 존중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존중심을 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 사람에게 주목하고 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존중심이 부족할 경우의 여파가 엄청난 것만큼이나, 존중심을 조금 더 갖게 될 경우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대단하다. 존중심은 일차적으로 의사소통을 통해 전달된다. 따라서 존중심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보다 의사소통 하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시누이가 내게 존중과 배려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르쳐주신 유일한 분이다. 이 장에서는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시누이의 삶의 방식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시누이는 올해 62살이고,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노후 생활을 보내고 계신다. 시누이의 생애와 존경하는 이유를 서술하기로 한다.Ⅱ. 본 론1. 시누이의 생애정옥(시누이)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6살 무렵에는 새어머니와 함께 생활을 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으나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새어머니의 반대로 대학 진학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공무원 생활을 했다. 외롭고 힘들 때 명동 성당으로 가서 기도하곤 했다. 그녀는 각진 얼굴에 화장기 없는 얼굴과 수수한 옷차림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여인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장애우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봉사를 했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며, 책과 신문을 가까이 했다.아이들을 대학에 다 진학 시킨 후 어느 날, 50이 넘어선 정옥은 카톨릭대학교 심리학과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녀의 딸도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다녔다. 단지 학년만 다르다. 그녀는 1학년, 딸은 3학년이다. 젊은 학생들과 공부를 하니 기억력도 떨어지고, 강의 내용도 가끔 놓쳐서 맥이 끊겨 고생을 했다. 공부와 집안일을 병행해서 하니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서 학교 다니는 4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다. 올케(나)가 성적이 잘 나오느냐고 물어보자. 정옥 남편은“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성적 모두 상위권이야.”라고 자랑을 했다. 정옥는 겸연쩍게 살며시 웃어보였다. 친척들은 모두“축하드려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정옥은 한 학교에 가족이 2명이 다니면 등록금이 감면 된다고 하는데도 마다하고 더 어려운 사람한테 혜택이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학교에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이 참 따뜻하다.주말에는 일주일 먹을 만큼의 먹거리를 대형마트에 가서 산다. 점원은“사과 한 봉지에 한 봉지 더 묶어서 만원입니다. 오늘만 특별 세일입니다.”라고 계속 말을 한다. 그러나 정옥은‘집에 먹을 과일이 있으니 아무리 싸더라도 다음에 사자.’생각 하며 메모지에 적어놓은 것들을 사려고 발걸음을 옮겼다.몇 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그 다음해 기일이었다. 올케가 동그랑땡 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두부 두 모에 고기 300그램 정도 넣고 버무려서 하고 있는데 시누가 오더니 놀래는 기색 없이“이 번 동그랑땡은 두부가 많이 들어간 전을 맛볼 수 있겠네.”하며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연스럽게 제사는 지나갔고 나중에 동그랑땡을 하는 방법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 시누이가 고마웠다.그리고 가끔 집안 행사나 모임으로 만나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에는 나의 말을 동의하는 의미에서 내가 한말을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래서 이야기할 때 소통이 되는 느낌이 들어 나도 모르게 속마음까지 다 이야기하게 된다. 언제나 진정한 내편이 되어 주어 이야기를 들어주므로 만날 때가 기다려진다.그런데 지난번에 가족들이랑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그런데 팬션 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거 아니냐고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난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불거지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했다. 남의 가정사에 너무 참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몇 달 정도는 왕래를 하지 않고 야속한 생각만 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정을 위해 쓴 소리를 한 것이다. 20여 년 동안 한 번도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공감을 해 주시는 분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행동에도 변화가 생겨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남편이 실직을 하여 2년 이상 집에서 쉰 적이 있다. 보험금이며, 저축한 것 다 중도에 해약해서 더 이상 쓸 돈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내 생일 때 시누이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생일 선물이라며 천 만 원 이라는 큰돈을 주셨다. 명목은 ‘삶의 보너스’ 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감동이 되어 눈물이 났다.
20 학년도 ( 1 )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서사문학의 이해와 창작학 번 :성 명 :연 락 처 :※ 본 자료는 참고만 하세요. 그대로 제출시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으며,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임을 알려드립니다. 새로운 리포트 작성시 참조만 하세요.o 과제유형 : (공통) 형o 과 제 명 : [한국단편문학-동백꽃] 김유정, 하서개화를 기다리는 남자점순아, 그 동안 잘 있었니?정말 오랜만이다.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지? 세월이 흘러 벌써 10년이 지났어. 너는 어떻게 지냈니? 난 농사를 지으며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어. 이젠 길고 매섭던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어.10년 전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의 수탉을 때려 엎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지. 그런데 너는 네가 죽인 것을 어머니에게 이르지 않겠다고 말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리고 앞 산 노란 동백꽃이 한창 피어 퍼드러졌을 때 그 속에 우리도 같이 파묻혀 버렸던 때가 있었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어제 우연히 너의 옆집에 살았던 춘식이 어머니를 장터에서 마주쳤는데 네 안부와 그동안 지내온 일들을 이야기해 주시더구나. 네 아버님은 어느 해 겨울, 눈이 많이 내렸을 때 읍내 장터에서 술을 드시고 집으로 오시다가 그만 얼어붙은 눈길에 미끄러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한쪽 다리를 절며 다니신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너는 부모님이 시집가라고 하는 데도 아직 혼인도 하지 않고 집안일 도우며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 얘기를 들으니 옛 생각이 절로난다.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러니까 10년 전 우리가 열일곱살 때 마을에서 너와 내가 붙어 다닌다고 동리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너희 아버지는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지. 그런데 닭싸움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후 우연히 너희 아버지는 닭을 내가 죽였는데 네가 죽였다고 거짓말한 것을 아시고 불호령을 내리셨지! 느닷없이 우리 아버지한테 매서운 눈초리로 “내 집터에 집을 지었으니 당장 나가.” 라고 말해서 아버지는 그만 자리에 쓰러지 눈물을 머금고 짐을 챙겨 집을 나왔어.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네 어귀에 한참을 앉아 계시다가 한숨을 쉬고, 어깨가 축 늘어진 채로 발걸음을 옮기셨지. 여기 까진 너도 알고 있을 거야.우리 가족은 발길이 닿는 대로 쉼 없이 한참을 걸어갔지. 그렇게 가다보니 충청도의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지을 수 있었어.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는 그 때의 충격으로 인한 화병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셨어. 너무나도 크고 엄청난 슬픔이었지. 고작 닭 한 마리 때문에 우리 집이 쫓겨나야 되다니, 화가 벌컥 치밀어 올라 무엇을 짓부수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에 꿈틀거렸고, 너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한스러움으로 가득 찼어. 그리고 너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있었지.그때가 10년 전 이었지. 어느 저녁나절, 나무를 잔뜩 지고 산을 내려오는데 네가 “이놈의 닭 죽어라.” 하면서 볼기짝께를 주먹으로 암팡지게 쥐어박고 닭을 내팽겨 치고, 난 “이년아, 남의 닭 죽이지 마라,” 하며 따라가니 내게 “배냇병신” 하며 쏜살같이 너는 내달렸던 일. 그리곤 사람이 없을 때 너의 수탉을 몰고 와 우리 닭과 쌈을 붙였던 일, 네가 그렇게 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너무나 분해서 잠이 오질 않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나왔던 일들이 가끔 생각났어.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며칠 후 ‘점순이네 보다 잘 살아야겠어.’ 라고 굳게 다짐을 했지. 슬퍼서 솟아오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지만, 너무 궁핍하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오래 슬퍼할 겨를도 없었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땅을 빌려달라고 하니까 모두 안 된다는 거야, 그런데, 마음이 너그럽다고 소문이 난 이웃 어르신한테 갔어. 사정 이야기를 하고 농사지을 땅을 빌려달라고 말했더니, “우리 산이 있는데 그 산의 일부를 개간하면 개간한 땅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시는 거야. 그런데 그 산은 돌과 바위들이 많다고 했어,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머리를 굽신굽신 숙이며 그러겠다고 했어.동리에서 좀 떨어바위가 너무 많았고 사이사이에 커다란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 그래서 ‘이 산을 개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뙤기의 밭도 없었는데 이 산을 개간하면 나의 밭이 생긴다니 한 번 해보자 용기를 내기로 했어. ‘풀죽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이젠 이보다 나아지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했어.동이 틀 무렵부터 깜깜한 밤까지 열심히 일을 했지만, 일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야. 그리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어.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간혹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러면 일을 하는데 덜 힘들테고 의지가 될 테니까. 그 다음날도 계속 힘들고 아프고 지쳤어. 그런데 어머니는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전혀 내색을 안 하시는 거야. 그래서 나도 이 악물고 다시 힘을 내어 산으로 가서 돌과 돌덩이를 밭의 가장자리로 옮겼어. 어떤 돌은 날카롭게 쪼아대는 수탉처럼 뾰족하게 생겼고, 어떤 돌덩이는 땅속에 박힌 것도 있었고, 어떤 바위는 너무도 커서 그 자리에 꿈쩍도 하지 않은 것도 있었어.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해 옮겼지. 다행히 바위를 밀고, 굴려야 하는데 산비탈이라서 어렵진 않았어. 한 번은 돌덩이를 들다가 넘어져 다리에 피가 철철 나기도 했어. 그렇지만 돌과 돌덩이, 바위를 하나하나 굴려 가장자리로 옮기는데 왠지 모를 시원함과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장대비가 내리고 눈이 펑펑 쏟아져도 내 땅이 생긴다는 희망이 있어 피땀 흘리며 열심히 일했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밭이 만들어져가고 있었어. 드디어 산의 일부가 밭이 되었어. 몹시 기쁘고 너에게 뽐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밭이 다 만들어진 날, 땅거미가 질 무렵 산을 내려오려니까 길에 노오란 동백꽃이 퍼드러지게 피어 있는 거야. 그 옛날 설레이는 너와의 그 일이 잠깐 생각났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집을 쫓겨 온 생각을 하니 속이 상하는 거야. 이내 이를 다물고 산을 내려왔어. 저녁을 먹고 난 뒤,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네가 나에게 다가오다거야. 그래서 “점순아, 울지마.” 했더니 꿈 이였어. 기분이 묘하긴 했지만 이내 다시 잠이 들었지!다음 날, 이웃집 어르신네 집에 갔더니 너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가 툇마루에서 다소곳하게 앉아 바느질을 하다가 나를 쳐다보며 누구 찾느냐고 물어 보길래 아버님 계시냐고 했더니 안방에 계신다는 거야.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바느질을 계속 하더라구. 그래서 안방으로 들어갔지. 어르신한테 산을 개간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내일 산에 가보고 결정을 한다고 하시는 거야.그때 어르신은 ‘삼순아’ 부르며 감자 찐 것 가져오라고 하셨지. 그제야 여자 아이 이름이 삼순이라는 것을 알았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를 방으로 가져오더니 삼순이는 뒷걸음치며 밖으로 나갔어. 어르신은 감자를 먹으라고 감자 하나를 손에 쥐어 주시는 거야. 파실파실 분이 나는 감자를 오물오물 씹어 먹었어. 오랜만에 먹어보는 감자였어. 그런데 이상하지? 예전에 네가 “봄감자 맛있으니 먹어, 소문나면 안되니까 남몰래 먹어,” 했는데 내가 감자를 안 먹는다고 쑥밀어 버린 것이 생각났어.어르신은 내일 해가 중천에 있을 무렵에 산에 가자고 하셨지.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와 집에 가려고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서려는데 삼순이가 “잘가.” 라고 인사를 하길래 머쓱해서 머리만 긁적이며 집으로 왔어.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이웃집 어르신과 개간한 산에 갔지. 돌이 많던 산이 어느새 밭이 된 걸 보시더니 언제 이 많은 돌덩이들을 날랐냐고 하시며, 내 손을 양손으로 부여 잡으시더니 “그 동안 고생이 많았네. 약속대로 밭의 절반을 자네에게 주겠네.” 하시는 거야. 지금까지의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어. 어르신께 그 자리에서 벙글벙글 웃으며 “고맙습니다.” 말하고 넙죽 절을 올렸어. 그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듯 산을 내려갔어.집으로 돌아와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하여 얼굴을 꼬집어보았어. 얼마나 기뻤던지 그날 밤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어머니도 너무 기쁜 나머지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남의 종살이를 하다가 세월이 흘러 종살이를 그만두고 남의 집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하셨어.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무척 좋아 하셨을 텐데.”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어.개간한 산의 밭에 우선 소똥으로 거름을 주고,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다가 감자를 심고 밭 언저리에는 콩을 심었어. 그런데 가뭄이 들어 밭의 농작물이 시들시들 말라 죽어 갔어. 그래서 냇가의 물을 길어 밭에 물을 주었지만 한숨이 나올 정도로 적은 양이었어. 다행이도 간신히 우리 식구는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감자와 콩을 수확을 할 수 있었어.이웃 어르신한테 첫 농사를 지어 고마운 마음에 콩 한 되와 감자를 한 자루 담고, 삼순이에게 주려고 먹음직스럽게 생긴 감자를 골라 삶았어. 어르신댁으로 가서 어르신을 찾으니 안계시고 삼순이만 있었어. 삼순이에게 자루에 담긴 감자를 주고, 아직도 김이 나는 감자그릇을 건네며 “방금 삶은 감자니까 맛있게 먹어” 하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먹는다는 거야. 그래서 터덜터덜 기운이 빠진 채로 그것을 그냥 가져왔지.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게 약이 마구 올랐어. ‘흥, 안 먹으려면 먹지마라, 이년아,’ 심드렁하게 감자 껍질을 까면서 혼자 우적우적 씹어 먹었어. 내 마음을 몰라주니 서운했어. 예전에 점순이가 감자먹으라고 했을 때, 안먹고 밀쳤는데 점순이도 서운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땐 얘가 왜 그러나 친하지도 않은데 친한 척하기도 하고 감자도 주니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지. 네가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걸줄 몰랐어. 내가 우둔했던 것 같아.잠을 자고 나서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어. 삭정이를 긁어모아 지게에 한 짐 잔뜩 지고 내려오는데 삼순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뒷걸음치다가 넘어졌어. 그 바람에 소쿠리에 담겨있던 풋고추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말았어. 그래서 지게를 옆에 놓고 풋고추를 소쿠리에 담아줄려고 했더니 남이 보면 안 된다고 눈을 부릅뜨며 “그냥 가” 하며 쌀쌀하게 대꾸하는 거야. 난 당황해 왔지!
20 학년도 ( 1 )학기 과제물(온라인제출용)교과목명 : 신화의 세계학 번 :성 명 :연 락 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본 자료는 참고만 하세요. 그대로 제출시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으며,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임을 알려드립니다. 새로운 리포트 작성시 참조만 하세요.o 과제유형 : ( A ) 형o 과 제 명 : [그리스 로마 서사시] 강대진 저, 북길드1. 인상적인 글 발췌1) ‘일리아스’는 일정하게 반복되는 장단의 틀에 맞춰서 쓴 이야기인 것이다. 희랍운문들의 운율은 일반적으로 장음과 단음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형태를 띤다. 이는 행마다 일정한 음절수가 나오는 음수율, 한행의 끝에 같은 발음이 나오는 각운, 강약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강약격과 구별된다.(19쪽)2) 전체적으로 호메로스의 전투 묘사는, 멀리서 관전하듯 빛과 소음, 진동을 강조하는 헤시오도스에 비해,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것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기록한 ‘해부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27쪽)3) 죽음 앞에서 있는 인간의 운명은 신들도 어쩌지 못한다. 제우스도 아들 사르페돈을 구할 수 없었고, 아폴론도 헥토르를 끝까지 보호할 수 없었다. 테티스 역시 자신의 아들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죽음의 운명은 오롯이 인간만의 것이다. 인간은 그 운명을 의식하면서도 여전히 살아간다. 시인은 이러한 인간의 상황을 아킬레우스의 비극과 함께 짜 넣어 우리에게 보여준다.(54쪽)4) 그때 오뒷세우스는 그에게 지사장 마론에게서 받아온 포도주를 권한다. 폴뤼페모스는 술의 맛과 향에 기분이 좋아져 그에게 이름을 묻는다. 오뒷세우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 라고 말한다.(65쪽)5) 나우시카의 섬은 환상계와 현실계를 이어주는 일종의 중간 지대하고 할 수 있다 비현실적으로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이 동화적인 측면이고, 정치체제나 혼례 경쟁 같은 것을 보면 현실 세계와 비슷하다.(88~89쪽)6) 두 서사시의보스(어둠)가 생겨난다. 이 둘은 결합해서 아이테르(창공)와 헤메라(낮)을 낳는다. 어두운 것들이 밝은 것들을 낳는 식인데, 어쩌면 이는 세계가 점점 밝고 또렷한 모습을 지나는 쪽으로 발전한다는 사고의 반영인지도 모르겠다.(117쪽)8) 고전기 도기 그림에서 보이는 에로스의 모습 중에는 청년으로 그려진 것도 있으며, 우리가 이장의 맨 앞에서 본 에로스는 아직 인간 형상을 갖추지 않은 거대한 힘이나 원리 같은 것이다. 어쩌면 세계화 신들이 인간 모습과 가까운 것이 되어감에 따라 에로스도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126쪽)9) 그저 티탄들에게서 세계 구성물이 나왔고, 나중에 제우스의 부인이 되는 여신들 몇과, 높이 존중 받는 중요한 두 여신 스튁스와 헤카테도 그들에게서 나왔다고만 기억하시면 되겠다.(132쪽)10) 제우스에 의해 제압된 후에 튀폰은 타르타로스로 던져져서 세상의 여러 나쁜 바람들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데, 여름철이면 동아시아에 찾아오는 태풍의 로마자 표기가 ‘typhoon’이 된 데도 이 튀폰의 이름이 영향을 주었다고 하다.(145쪽)11) 현재 전하는 대로의 에는 제우스가 헤라 이전에 결합했던 여신들이 소개된다. 자신보다 강한 아들을 낳기로 되어 있어서 제우스가 삼켜버렸던 메티스(지혜), 제우스의 통치 성격을 보여주는 테미스(법)와 에우뤼노메(널리 법을 펼침), 페르세포네를 낳아주는 데메테르, 무사 여신들을 낳아주는 므네모쉬네(기억),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아주는 레토, 그리고 마지막이 헤라이다.(148쪽)12) 이 세계가 질서가 없는 데서 출발하여 질서 잡힌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다.(152쪽)13) 항해에 대한 충고들 앞머리에 시인 자신이 ‘개인적인’ 정보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즉, 자신의 아버지가 퀴메라는 소아시아의 항구에서 무역을 하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역 이민하여 희랍 땅의 아스크라로 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노래 경연을 위해 에우보이아로 짧은 항해를 했었다는 것이다.(157쪽)14) 희망은 나 나쁜 데로 가는 길은 평탄하고, 좋은 데로 가는 길은 험하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남의 충고라도 들으라며. 그래서 결론은, ‘페르세스여, 일하라!’이다.(168쪽)17) 날짜들은 세 가지 분류법을 따르는데, 그냥 한 달 30일을 작은 숫자부터 큰 숫자로 진행하는 것, 한 달을 달의 차고 기우는 데 따라 보름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 한 달을 열흘씩 상수, 중순, 하순으로 나누는 것 등이다.(177쪽)18) 헬레니즘 시대는 유명한 두 인물의 죽음으로 그 앞 뒤 경계가 정해져 있다. 즉,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년)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기원전 30년)까지다.(181쪽)19) 호메로스를 본받은 베르길리우스는 ‘무구와 남자를’ 노래하겠다고 해서 와 를 공히 본받는 모습을 보인다.(189쪽)20) 꿈의 뒷부분이야 젊은이의 성적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도, 그 앞부분, 아기를 젖먹이는 남자라니! 이것은 많은 남성 영웅들이 적어도 인생의 한 시기에 여성의 단계를 지나는 것과 상응한다.(210 ~ 211쪽)21) 이 ‘죽음’의 체험 후에 그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사명을 온전하게 떠맡은 인물로 변한다. 귀향과 가정의 회복이라는 개인적인 목표를 가졌던 오뒷세우스와 개인적 행복을 버리고 한 민족을 세워야 했던 아이네아스 사이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229쪽)22) 원래 카오스는 어원상 ‘혼돈’이 아니고 ‘큰 틈’인데, 엠페도클레스식으로 세계 생성을 그리고 싶었던 오비디우스가 그렇게 만들었다. 국내의 거의 모든 신화 책이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고 하는 것도 다 오비디우스 탓이다.(251쪽)23) 소년은 살마키스라는 요정의 유혹을 거부하다가 그 요정과 합체되어 양성을 지닌 존재가 된다. 이 세 덩이의 이야기 후에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미뉘아스의 딸들이 신을 모독한 것에 대한 벌로서, 박쥐로 변했다는 보고가 나온다.(262쪽)24) 오비디우스에게는 애당초 베르길리우스식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체제를 미화하자신이 다루겠노라고 내세운 주제를 실제로는 피해가면서, 중심은 비워놓고 그 주변에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방식이다.(284쪽)2. 독후감이 책은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신들의 계보, 일들과 날들, 아르고 호 이야기, 아이네이스, 변신이야기 등 희랍과 로마의 서사시 중 일곱 작품에 대한 해설을 묶었다. 그리스 로마의 서사시를 통해 고전을 읽으려 하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서사시를 읽기 전에 입문서처럼 읽으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사시에 대한 핵심을 요약하고,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그리고 서사시는 일반적으로 발흥기, 재건기에 민족이나 국가의 웅대한 정신을 신이나 영웅을 중심으로 하여 읊은 서술하는 시이고, 작품에 사진과 자료 설명을 곁들여 흥미진진하게 전해준다.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기하학, 수사학 ‘일리아스’ 등 많은 학문을 배웠다. 트로이아 전쟁에 매료되어 ‘일리아스’의 대부분을 외우고 호메로스의 작품을 통해 위대한 영웅에 대한 자신의 꿈을 키웠다고 하니 느낌이 새롭다. ‘일리아스’는 일리아스의 구조와 내재적 의미들을 살펴서 읽는 법을 알려주니 다소 이해하기가 용이 했다. 운율을 맞혀서 전하려고 해서 반복되는 구절이 많다고 하니 원전을 읽을 때 참고 해서 읽어 보아야겠다.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이고, 트로이아와 그리스의 긴 전쟁 중 단 며칠간의 전쟁을 묘사한 작품이다. 호메로스의 전투묘사 중 이마에 돌을 맞아 눈알이 땅으로 떨어지는 경우와 같은 장면은 리얼하고 실감나게 묘사했다고 할 수 있지만 눈을 감고 상상을 하니 좀 잔인하다. 이 보다 더 끔찍하게 묘사된 부분도 있어 전쟁하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용감한 장수이며,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거센 분노로 이 이야기가 진행된다. 호메로스 ‘일리아스’를 읽기 전에는 주제가 막연하게 트로이아 전쟁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주제가 ‘분노’이다. 전설적인 전쟁인 트로이아 전쟁을 배경으로 한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대한 . 운명은 오롯이 인간만의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고 ‘일리아스’의 밑바탕에는 인간은 신과 다르다는 자각이 깔려 있다. 그 안에서 삶의 통찰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대부분 ‘일리아스’를 외웠다는 것이 생각났는데 원전을 보고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암송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호메로스의 두 번째 작품 ‘오뒷세이아’는 그리스의 영웅 오뒷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뒤 귀향하지 못하고 바다 위를 떠도는 이야기이고, ‘일리아스’와 함께 서양 문학의 모태가 된다.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뒷세우스는 일행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나서 외눈박이 괴물 폴뤼페모스에게 자신이 Outis(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말한다. 완전히 무장해제된 채 동굴 속에 갇힌 영웅의 무력감과 자괴감을 표현하려는 해석도 있지만 성장 문학적 측면으로 해석하는 게 좋을 듯하다. 폴뤼페모스 사건 이후 그는 호기심 많고 경망스로운 행태를 보이다가 이 사건 이후로 동료를 잃고 점차 조심성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오뒷세우스의 모험을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간접경험을 하게 된다. 그 여정 너머에는 고향 이타카에 페넬로페가 기다리고 있다. 신화이지만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우리네 삶, 삶의 가르침을 이 작품을 통해 얻었다. 인생은 신이 부여한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신들의 계보’를 읽기 전에 많은 기대를 가졌다. 어렸을 때 매개체 만화로 그리스 로마신화를 접했고 신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그들 각자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과 탄생, 제우스, 아폴론신 뿐만 아니라 대지, 밤, 바다같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자연물까지도 신의 범주에 포함하기 때문에 신들의 탄생과 우주의 탄생을 노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리석게도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신화. 우주의 탄생등 따로따로 분리해서 생각했었다. 이 세계와 신들이 인간 모습과 가까운 것이 되어감에 따라 에로스도할지를.
일제 강점기 말기에‘고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잡지『문장(文章)』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해 서술하시오.※ 본 자료는 참고만 하세요. 그대로 제출시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으며,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임을 알려드립니다. 새로운 리포트 작성시 참조만 하세요.Ⅰ. 서론Ⅱ. 본론1. 고전부흥론과 문장파의 출현1) 출현의 시대적 배경2) 모더니즘3) 고전부흥론과 문장파4) 의 특징5) 문장파의 선비문화에의 지향2. 문장파 예술가들1) 김용준2) 이태준3) 정지용4) 이병기3.편집인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1) 고전과 전통의 의미2)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의 의미3) 편집인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1) 김용준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2) 상허 이태준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3) 가람 이병기가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4) 정지용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4.문장파 예술인들이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Ⅰ. 서론사상의 자유는 물론 표현의 자유도 박탈당했던 일제 말기의 한국문학은 철저하게 정치성과 교술성을 배제하고 심미적 표현의 세련에로 기울어짐은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따라서 일제말기의 한국문학은 1930년대에 형성되고 발전된 순수문학이 더욱 더 자신을 강화시키고 완성시킨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러한 순수문학의 자기 심화 과정에서 특히 돋보였던 것은 문화적 전통에 대한 강렬한 의식이었다. 고전이란 시대를 초월한 가치가 있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으로서 고전의 개념은 해당 시대를 대표하는 원숙한 정신적 소산의 작품으로서 역사적 전통성을 지니며 후세의 기준이 될 만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의 고전은 우리 조상들이 쓴 것이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좋은 문학 작품의 표본이다. 이런 고전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조상의 사상과 정서의 소망 등이 담긴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고전의 가치와 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이란 1920년대 일어난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상의 여러 경향을 말한다. 한국 문학에서는 1931년경 프로문학의 퇴장과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의 대두를 계기로 나타났으며, 일명 주지주의라고 일컫고 김기림이 시의 낭만주의적 요소를 배격하고 시작 자체의 의식성을 강조하는 시의 기술주의를 주장하면서 형태화하였다. 김기림은 모더니즘 시운동을 벌였다. 그 특징은 정서적 우세에서 지성적 우세로, 현실에 대한 초월적 태도에 대하여 비판적 적극성을, 청각적 요소에 대하여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소설에서는 1934년 최재서가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고, 실제로 이상의 작품을 중심으로 심리주의적 경향을 비평하면서 전개되었다. 1930년대 모더니즘의 대표적 문인들로는 정지용ㆍ김광균ㆍ장만영ㆍ장서언ㆍ최재서ㆍ이양하 등이 있다. 1930년대의 모더니즘은 문명비판의 가능성만 보여주었다. ‘기교주의에 그치고 만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리고 모더니즘 문학은 계급 문단의 붕괴와 리얼리즘적 경향의 퇴조에 등장하고‘시문학’과‘구인회’라는 동인 활동을 통해 구체화되기 시작한 모더니즘 문학의 경향은 정치적 이념성을 거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순수문학의 경향으로 평가된 적도 있다.3)고전부흥론과 문장파고전이란 옛것으로서의 전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가치의 원천이라는 의미보다는 포괄적으로 과거의 물건이나 사상을 의미한다. 1930년대 중반이후에 확산된 고전부흥론은 국수적 민족주의에 근간한 군국주의의 물결에 위기를 느끼고 한국 민족의 전통성과 특수성을 찾아내어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가자는 목적이 최우선적으로 모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전부흥론의 실체는 자칫 1920년대 최남선 등의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복고주의의가 되살아날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복고주의에 대한 경계를 하면서 고전부흥론에 힘을 실어준 논객이 김태준과 이원조이다. 고전부흥운동은 당대에 있어서 하나의 문화창조의 노선이었다. 황종연의 지적대로 문장파에는 뚜렷한 지도적인 비평가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론적 세련화와 전략화를 도모할 수9년에 창간되어 1941년 4월에 폐간되었다.『문장』편집인들이 우리말을 민족의 기억을 담고 있는 문화재로 인식했다는 점과 조선시대의 문화를 고전으로 인식했다는 점은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맞서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지키려는 자세로 보여져 큰 문학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김용준은 이태준과 친교를 맺은 후 여러 가지로 의기투합했던 것으로 보이고, 두 사람은 이태준을 고리로 하여 이병기와 정지용을 편집진으로 끌어 들었고, 디자인과 장정 전담으로 길진섭을 포섭했던 것으로 보인다.『문장』은 이태준이 주간으로서 사실상 편집방향을 이끌고 있었고, 정지용과 이병기가 시 분야와 고전 분야를 각각 책임지고 있었다. 김용준은 표지화와 장정도 맡고 편집인으로도 활동했다. 김용준과 이태준은 잡지의 본질과 성격을 당대 사회에 강하게 부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이병기가 일제에 맞서 우리글과 말을 고집하고 고전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게제한 것은『문장』의 토대에 민족주의의 담론과 전통성의 본질이 자리하고 있음을 세상에 각인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여기에 정지용이 자신의 한적시를『문장』을 통해서만 발표해서 잡지의 품위와 기품을 배어나가게 했다.『문장』은 근본적으로는 문학지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종합예술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5) 문장파의 선비문화에의 지향‘문장파’가 유가적 이념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몇몇 논지에 의해 밝혀졌다. 그런데 유가적 이념을 지향하는 사람을 전통적으로‘선비’라 부른다. 그러면 이들 문장파의 주체세력들도 유가적 이념을 지향했다는 의미에서‘선비’내지는‘선비적인’인물들이라고 불려 져야 할 것이다. 조선조 때 선비는 바로 유교적 이념을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이상적 인물, 즉 유교적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유교적 경전의 지식과 그 이념의 예술적 실현인 예술의 기를 소양으로 갖춘 인물이다. 여기서 유교적 경전이란 바로 六經을 의미하며 예술적 기예란 六藝를 의미한다. 이러한 조선시대 유가적인 이상적 인간형이 바로 문장파의 궁극적인 모델이 박종화가 있었고 가람 이병기가 스승이었다. 1927년 동경 상지대학 예과에 입학 했으나 중퇴하고 귀국했다. 중외일보 기자, 그 신문 폐간과 함께 개제된 조선중앙일보 학예부기자를 지냈다. 박태원ㆍ이효석 등과 함께‘구인회’를 조직했다. 문장지 편집자 겸 신인 작품의 심사를 맡았다. 임옥인, 최태응, 곽하신 등이 추천되었다.3)정지용1902년 충청북도 옥천 출생이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동시사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의 교사 및 이화여자전문 교수 경향신문편집국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칩거 중에 6.25를 맞았고 그 때 납북 되었다. 정지용은 1920년대에 이미 모더니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작품을 선보인 시인이다. 그러나1936년부터 1942년 무렵까지 그 이전의 모더니즘적 경향과 카톨릭시즘의 서구적 시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달관과 유유자적의 시 세계를 개척한다. 시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라고 인식하면서도“시는 언어의 구성이라기보다 더 정신적인 것의 열렬한 정황 혹은 왕일한 상태 혹은 황홀한 사기임으로 시인은 항상 정신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을 조준한다.”라고 주장했다. 잡지『문장』을 통해서 정지용에게 추천받은 신인들은 박두진 · 박목월 · 조지훈을 비롯해서 김수돈 · 이한직 · 황민 · 조정순 · 박남수 · 신진순 등이었다.4) 이병기이병기는 1989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났다.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재학 중에 주시경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웠다. 시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시조부흥론이 일기 시작한 1924년 무렵부터였다.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을 연구, 창작하였다.『문장』에 조남령ㆍ오신혜ㆍ김상옥ㆍ장응두ㆍ이호우 등 우수한 신인들을 추천하여 시조 중흥의 기틀도 마련하였다. 현대시조가『문장』에 와서 비로소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의 주된 공적은 시조에서 이루어졌지만, 서지학과 국문학 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묻혀 있던 고전작품들을 발굴, 소개한 공로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을 높여 소중히 여기고 회복하며 독립 국가를 이루려는 사상으로 이해하도록 하자.3) 편집인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잡지『문장』의 독특한 특성과 미학적 취향 그리고 정신적인 지향성을 드러내고 그것을 상고주의로 파악한 김윤식은 그 문학사적 위치를 고전부흥운동의 맥락 속에 두었으며 선비다운 맛과 고전에의 후퇴라고 정리하였다. 그에 비해 김용직은 전통지향 또는 전통주의라는 용어를 사용 하였고 최승호는 선비문화에의 지향과 문인화 정신의 추구로 해석하였다. 우선 『문장』은 장정에 상당한 배려를 하였다. 장정의 책임을 맡은 서양화가 길진섭은『문장』 제 3집의 ‘여묵’에서 “우리의 문학이라면 우리의 장정, 우리의 표지가 창조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우리의 색감과 우리의 정조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상고주의와 전통주의의 색채를 표명했던『문장』의 편집진은 제자부터 완당 김정희의 필체를 사용하여 미학적 특색과 고풍을 되살렸고 표지화의 대다수를 그린 김용준을 통해 민족적 색감을 드러내려고 노력하였다. 완당의 제자는 처음에는 행서체였으나 제5호 부터는 이태준이 한 달 가까이 애써 필적을 찾아내어 예서체로 바꾸었고 김용준은 산수, 화훼, 소과, 기율 등을 소재로 문인화 양식의 고상하고 품격 높은 필치를 구사하였다. 창간호의‘여묵’에서 발행인 김연만은 예술에 대한 존경과 서적에 대한 관심이 오래되었고 힘만 자라면 좀 진취적인 문화행동을 갖고 싶었다고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있다. 특히 민족지인『조선일보』와『동아일보』마저 폐간 당한 현실에서『문장』의 편집진은 총독부로부터 일본문으로 된 글만을 게재할 것을 강요당하면서까지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다가 스스로 폐간을 자초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편집책임자인 이태준은 당시 내세울만한 문예지 하나 없는 참담한 현실이『문장』을 창간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1) 김용준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김용준은 고전 속에 전통이 위치하고 있으며 전통의 토대는 민족의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