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회사에서 인정받는가』 Essay『누가 회사에서 인정받는가』는 3개의 큰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어투를 통해 저자가 약 20여년 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깨달은 ‘A플레이어’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 뒤 그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풀어나가는 방식이다.우선 저자가 말하는 ‘A플레이어’, 즉 회사와 상사를 자신의 팬으로 만들고 어느 조직에서나 인정받는 사람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이다.첫째, 전문 분야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둘째, 어떤 난관에도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셋째, 누구와도 함께 소통과 협업에 능하다.위의 세 가지 조건은 흔히 알고 있는 ‘능력’, ‘열정’,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한 이야기지만 저자는 본인의 구체적인 경험과 비유, 한 눈에 들어오는 표와 차트를 적재적소에 녹여내어 설득력과 신빙성을 갖추고 있다.첫째로 저자는 ‘차별적인 역량’에 대해 강조한다. 저자는 3할 타자와 2할5푼의 타자의 예를 들며 다소 미미해 보이는 그 작은 차이가 한 사람을 최고로, 다른 사람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 작은 차이는 ‘차별적인 역량’이라는 관점에 있어서 3할 타자에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게 하는 희소성을 부여하며 이 차이를 만드는 일에는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른다. 뒤에 나올 내용들은 그 작은 역량의 차이를 만드는 저자의 방법에 대한 것이다.저자는 자기계발과 역량개발의 차이를 구분한다. 자기계발과 다르게 역량개발은 당장, 그리고 미래의 자신의 일과 역할에서 쓰일 수 있는 실질적인 경쟁력에 관한 것으로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직장인에게는 이러한 ‘역량개발’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무능을 물리치고 3할 타자로 거듭나기 위해 ‘일 자체’를 통해 배우고(이를 위해 일기와 같은 기록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갖고) 모범이 될만한 사람을 통해 본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확실한 지시사항 파악을 위해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마이클 조던 처럼 수 없이 연습하며 명확한 목표와 끊임없는 경력 관리를 실천할 것을 주문한다.둘째로 저자는 ‘뜨거운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직장에서의 의욕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다음의 눈에 띄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남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다.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일에 자신의 이름을 건다.이는 일을 먼저 시작하기에 시행착오의 시간을 벌 수 있고 일을 사랑하기에 힘든 상황에도 지치지 않으며, 일에 자신의 이름을 걸기에 책임감을 갖고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직장 생활에서의 고생은 디폴트값이며 젊을 때의 사서 한 고생이 힘든 일에 대한 역치를 높여준다. ‘이 정도면 됐다’라는 안일한 생각은 나의 열정을 식게 만들며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끊임없는 혁신에 대한 욕구와 타인의 불만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이용해 늘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또한 회사에서 단순히 자신의 자리를 채우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경계하고 한 가지의 일에 시야가 좁아져 자신의 일에 있어 주인이 되지 못 하는 상황을 늘 조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익숙한 일이라도 그 일이 왜 필요한지, 자신의 목표는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지 체크하며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소통과 협업의 능력에 대해 강조한다. 저자는 마치 많은 이들의 군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이 훈련이나 일과가 아닌 내무생활, 즉 사람과의 관계인 것처럼 대부분의 직장인을 진짜 힘들게 하는 것도 바로 사람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무리 부처 같은 상사를 만나더라도 의견 차이는 반드시 발생하고 상사와 맞서게 되면 항상 패배자는 자신이 된다. 상사로부터 어려운 결재를 잘 받아오는 것이 곧 현명하고 전략적인 회사 생활을 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서로 상처 받지 않으면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사를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경청하는 자세로 전략적 후퇴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상사와 자신의 의견을 객관화하여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를 통해 상사와의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월급의 반은 욕먹는 대가’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욕먹을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이를 자기 발전의 비료로 쓸 줄 알아야한다. 다른 종류의 잘못과 다르게 윤리 문제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음을 유념하고 회사의 돈은 단 1원도 쓰지 않으며 아낄 줄 알아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타 회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특히 갑과 을의 윤리적인 문제 발생의 여지를 조금도 두지 않아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사실 어릴 때부터 여러 권의 자기계발서를 접하며 자기계발서는 대개 성공한 사람의 자기자랑글이나 허황된 지침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누가 회사에서 인정받는가』를 통해서는 내가 정말 납득할 수 있는 주옥 같은 말들을 마음에 많이 담게 되었다. 우선은 회사 차원에서 권장하는 책이기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 점도 있었지만, 책에서 접하는 내용이 정말 회사에서도 원하는 인재의 모습이라는 점에 다소 놀라워하며 직장생활 선배로서 저자의 말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물론 저자가 책에서 말한 내용을 앞으로 겪게 될 기나긴 회사에서의 시간 동안 항상 유념하고 따르며 생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자아를 구성하는 일과 사랑이라는 두 기둥 중, 사회에서 나의 이름표가 될 회사에서의 일이 내 인생의 절반에 이르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무거운 책임감과 뜨거운 열정을 느끼며 책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항상 뒤로 미루게 되는 것’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책의 주문 사항 중 스스로 부족한 것들은 내 머리에, 가슴에 새겨 누구나 원하는 ‘A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는 회사 생활의 등불로 세워둘 것임을 다짐한다.
해외 프랑스어권 문화 Culture FrancophoneIndex Culture Francophone 인도차이나 반도 중남미 , 카리브지역 흑인 운동 크레올 문화Indochine française 인도차이나 연방 Union indochinoise ou Fédération indochinoise 통킹 , 안남 , 코친차이나 , 캄보디아로 시작하여 라오스와 광저우 추가 1887 년 ~ 1953 년Viêt-Nam 꾸옥응으 Quốc NgữViêt-Nam 바오티엔 사원과 성 요셉 성당Cambodge 놈빵 바떼 Nompang pâtéCambodge 캄부자 កម្ពុជា → Cambodge중남미 , 카리브지역 3 개의 참관국 , 5 개의 회원국 17c 말 ~ 19c 초 프랑스 식민 지배흑인 운동 셍고르 , 세제르 , 다마스 ‘ N égritude ’ - 흑인 정체성의 존엄함을 드러내는 최초의 시도 - 프랑스의 지배 원리에 대한 저항 의식 부재 에두아르 글리상 ‘ Antillanité ’ - 앤틸리스의 정체성 은 혼혈 현상이 그 특성흑인 운동 CRÉOLITÉ ( 크레올성 ( 性 )) - 열려진 특수성 . 열려있다는 의식 자체에 대한 감 지 ‘ 재구성된 세계 ’ Confiant , Chamoiseau , Bernabé (1989) 『 크레올리테 찬양 』 ( Eloge de la Créolité ) → 앤틸리스 문화 정체성에 관한 선언문 * 앤틸리스 문학사 발전의 4 단계 ‘’Ni Européens, ni Africains, ni Asiatiques, nous nous proclamons Créoles.’’크레올 문화Merci Référence 김승민 , 이복남 , 한양환 공저 , 『 세계 프랑스어권 지역연구 』, 푸른길 , 2003. 송진석 , 「 파트릭 샤무아조의 『 텍사코 』 에 나타나 기억 , 혼합 , 생성의 도시 - 크레올리테와 문화정체성 」 , 이베로아메리카 연구 , 2002.{nameOfApplication=Show}
알제리 전쟁 개요와 국제 사회에의 영향201101723 손일규알제리와 프랑스의 애증의 역사는 1832년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으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제국주의 시대에 아프리카를 점령하기 위한 아프리카 대륙 횡단의 발판으로 삼았고, 식민지화 이후엔 ‘pied noir’로 불리는 프랑스계 알제리 이주민들이 알제리의 실질적인 통치 세력으로 군림했다. 때때로 프랑스 본국을 등에 업고 알제리 국민들에게 탄압을 일삼았던 pied noir들의 행태와 알제리 독립 운동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알제리 국민들의 분노는 점점 쌓여갔고 20세기 중반에 독립의 움직임은 본격화된다.100만 명에 지나지 않는 pied noir들은 800만에 이르는 알제리인 이슬람교도들 위에서 무자비한 식민 통치를 하였고 그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알제리인들을 학살하기 일쑤였다. 결정적으로 1945년 5월 8일 알제리 동부에서 발생한 독립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프랑스 민병대가 발포한 총알에 맞아 알제리 국기를 들고 있던 12세 소년이 사망하자, 격분한 알제리 시위대가 100여명의 유럽인들을 죽이는 유혈 사태를 일으킨다. 프랑스는 이를 폭동으로 여겨 대대적인 폭격과 해안 마을에 대한 함포 사격으로 수많은 알제리 시민들을 학살한다. 이 학살을 계기로 2차 대전에서 프랑스군에 지원해 독일군과 맞서 싸운, 참전 경험이 있는 알제리인들이 프랑스에 등을 돌리고 알제리 독립군에 합세하면서 알제리 독립군은 잘 정비된 군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1947년에는 알제리의 민주자유승리운동 당원들이 주도하여 비밀리에 군 자금을 모으고 무기를 준비하며 무장 투쟁을 계획했지만 계획이 사전 발각되어 지도자 대부분이 체포당하며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투쟁 계획의 중심 인물인 아흐메드 벤 벨라는 이후 이집트로 피신하였다가 1954년 FLN(민족해방전선)을 조직하여 그 해 11월 1일, 프란츠 파농 등과 함께 알제리 독립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게릴라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에 프랑스는 NATO 파견 사단까지 소환하여 FLN에 대한 무력 진압을 시작한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15일 또 다른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발발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이 프랑스에 대승하며 독립을 이끌어낸 사실은 알제리인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고 이후 8년간 알제리는 몇몇 주변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끈질긴 혁명 활동을 지속해나간다. 프랑스군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FLN에 크게 앞섰으나 현지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계속적인 게릴라전을 펼치는 FLN을 소탕할 수는 없었다. 프랑스군이 FLN의 독립 운동에 무력으로 대응할수록 알제리인들의 증오가 커졌고 알제리 거주 프랑스인들이 보복 살해를 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또한 프랑스군의 무자비한 학살과 진압은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으며 알제리 독립을 받아들이라는 많은 해외 열강들의 요구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프랑스 내부에서도 수많은 프랑스인 사상자를 발생시키며 쉽게 끝나지 않는 알제리 전쟁에 대한 환멸감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귀환한 프랑스 군인들 사이에선 징병 기피 현상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프랑스에서는 알제리의 독립에 대해 국론의 양분화가 점차 심화되었고 1961년 사실상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하지만 평화 협정에 반대한 일부 극우파 장군들이 쿠데타를 시도하고 알제리의 주요 전략지역을 무력 장악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던 프랑스의 제4공화국은 치명상을 입었다. 이 반란이 번져나가자 정계 은퇴 후 지방에 머무르고 있던 샤를 드 골이 방송에 나와 반란에 동참하지 말 것을 호소하며 반란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2차 대전 이후에 다시 한 번 대국민적 영향력을 보여준 샤를 드 골은 이 사건으로 정권을 잡게 되었고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제5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드 골 정부는 알제리의 독립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여 알제리에 "1. 알제리는 프랑스의 한 주가 되며 프랑스인들과 똑같은 혜택을 받는다. 2. 알제리는 프랑스의 자치공화국이 된다. 3. 알제리는 국민투표를 통하여 완전한 독립국가가 된다” 와 같은 세 가지 제안을 내놓으며 알제리의 투쟁에 대한 합의를 시도하였다. 이에 3번 안을 선택한 알제리 독립 세력은 1962년 에비앙에서 이뤄진 위와 같은 합의를 통해 알제리 국민에게 독립에 대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게 되고 91%의 찬성으로 알제리는 독립을 택하게 된다. 이어 1962년 7월 3일 드 골은 알제리 독립을 선언하며 알제리 전쟁은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약 8년간에 걸친 프랑스와 알제리의 전쟁으로 알제리 군인 14-15만명, 프랑스 군인 2만 9000여명이 전사하고 알제리계 프랑스 군인인 Harki들도 약 9만명이 전사했다. 또한 FLN 추산으로 약 200만명 이상의 알제리 민간인이 사망하였으며 프랑스계 알제리 거주민도 약 5000명이 사망하였다. 전쟁 중에 서로에게 자행된 무자비한 학살은 양국의 우호적 관계의 걸림돌로 아직까지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프랑스 정부는 1961년 파리 학살을 비롯한 알제리 전쟁 중의 학살에 대한 프랑스의 잘못을 2000년대에 들어 인정하고 있지만 학살의 규모 등에 관해선 아직 알제리의 입장과 대치되고 있고 알제리 정부 또한 FLN이 감행한 1962년의 오랑 학살 등에 대한 사과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러한 껄끄러운 양국의 관계는 실질적인 최대의 프랑코폰 국가인 알제리가 현재 OIF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며 공식적인 입장에서 프랑스와 자주 부딪히는 양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양국에 많은 상처를 준 알제리 전쟁은 알제리 독립의 결과로 아프리카를 중심으로한 세계적 탈식민지화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일으켰다. 알제리의 독립을 계기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차례차례 독립하게 되었고 1963년 5월 25일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현재 아프리카 연합으로 대체된 아프리카 통일 기구(OUA)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미국의 역사가 토드 세퍼드(TODD SHEPARD)같은 일부 학자들은 프랑스가 130년에 걸친 자신들의 식민 통치의 참혹한 실패를 세계적인 탈식민지화의 흐름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외부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처음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프랑스는 실질적으로 ‘탈식민지화’라는 용어를 처음 규정하며 이후 영국이 자국의 식민지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데 대해서 나서서 비난을 하는 등 세계적인 탈식민지화의 흐름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알제리 전쟁이 제국주의의 종식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참고 문헌[북아프리카사]. 공일주. 1998. 대한교과서[The Invention of Decolonization]. Todd Shepard. 2008. Cornell univ press.“알제리 전쟁” 나무위키. 2016.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재미있는 전쟁 이야기] 양오석, 송영심. 2014. 가나출판사
La notion d’ ≪intertexte≫ ‘상호텍스트’의 개념Theorisee en France par Julia Kristeva et Roland Barthes, la notion d’≪ intertexte ≫ a son origine dans les travaux d’uncritique russe, Mikhail Bakhtine.줄리아 크리스테바와 롤랑 바르트에 의해 프랑스에서 이론화된 ≪ 상호텍스트 ≫의 개념은 러시아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의 연구에 기원을 두고 있다.L’auteur de La poetique de Dostoievsky(Moscou, 1963) et de L’oeuvre de Francois Rabelais(1965) a fonde une poetique historique.도스토예프스키 시론(1963)과 라블레론(1965)의 저자인 그는 역사시학을 창설했다.L’Histoire et la societe lui sont apparues comme autant de textes que l’ecrivain lit et recit, avec lesquels il entretient un≪ dialogue ≫.작가가 읽고 암송하는 그 많은 텍스트들이 그렇듯 이야기와 사회가 그에게 나타났는데, 그는 이것들과 ‘대화’를 한다.En 1966, Julia Kristeva, dans un article de Recherches pour une semanalyse, ≪ Le mot, le dialogue, le roman ≫, presenteet developpe les theses de Bakhtine sur le roman europeen, et montre comment elles sont un depassement du formalisme.1966년,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저작 기호분석론의 한 논문 ≪ 단어, 대화, 소설 ≫에서 유럽 소설에 관한 바흐친의 연구론들을 소개 및 발전시켰으며, 이 견해들이 어떻게 형식주의를 뛰어넘는지 보여준다.Mikhai상적 관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Il reproche a la linguistique structurale de faire abstraction des formes d’organisation des enonces concrets et de leursfonctions sociales et ideologiques.그는 구조언어학이 구체적 발화체의 조직 형식과 이들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추상화하는 것을 비난한다.Seule une linguistique de l’enonciation peut faire apparaitre un trait fondamental du langage humain, le ≪ dialogisme ≫ -que la linguistique structurale qui ≪ etudie la langue dans sa generalite [...] n’a effleure qu’en passant ≫ :오직 발화행위에 관한 언어학만이 인간 언어의 본질적인 특성을 나타나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대화주의’이다. 언어의 보편성 속에서 언어를 연구하는 구조언어학은 스쳐 지나가는 피상적인 연구일 뿐이다.Le discours rencontre le discours d’autrui sur tous les chemins qui menent vers son objet, et il ne peut ne pas entrer aveclui en interaction vive et intense.말이란 것은 그 말의 목적으로 향하는 모든 길 위에서 타인의 말과 만나며, 타인의 말과 활발하고 강렬한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 수 없다.Seul l’Adam mythique, abordant avec le premier discours un monde vierge et encore non dit, le solitaire Adam, pouvaitvraiment eviter absolument cette reorientation mutuelle par rapport au수 있다.Parler c’est tenir un discours adresse a l’autre. Le code est le bien commun du destinateur et du destinataire du message. Donc ≪ le mot ≫, dans le texte, appartient a la fois au sujet de l’ecriture et a son destinataire.말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호소하기 위한 담화를 실행하는 것이다.기호체계는 메시지의 발신자와 수신자에게 공통된 것이다.그러므로 텍스트 속의 ‘단어’는 글쓰기의 주체에 속하는 동시에 수신자에게도 속한다.Ces rapports dialogiques, qui inscrivent la presence de l’autre dans le discours du sujet, apparaissent nettement si le mot que j’emploie resonne comme une citation de la parole d’un autre ou des autres.주체의 담화 속에서 타인의 존재를 나타나게 하는 이러한 대화적 관계는 내가 사용한 단어가 마치 하나의 타인 혹은 여러 타인들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울려 퍼질 때 명확하게 나타난다.C’est le cas, par exemple, de l’adjectif ≪ heroique ≫, dont Voltaire fait un emploi ironique dans le chapitre de Candide consacre a decrire la bataille des Abares et des Bulgares. L’ironie est manifestement dialogique.예를 들어, 볼테르가 소설 ‘캉디드’ 내 아바르인과 불가리아인의 전투를 묘사한 장에서 ‘영웅적인’이라는 형용사를 반어적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이 경우이다. 반어법은 명백히 대화적이다.Le dialogisme est donc present partout. Ite l’acte d’enonciation, et qu’il peut meme, s’il le veut, confronter plusieurs instances discursives, des ≪ positions interpretatives ≫ emanant de sujets differents ? les differents personnage de l’histoire ?, sansjamais les reduire a un quelconque denominateur commun ideologique.그것은 바로 소설이다. 왜냐하면 소설은 발화행위를 표현하고, 원하는 경우에는 여러 다층적인 층위 즉, 상이한 주체들(이야기 속 여러 인물들)에게서 나온 ‘해석적 입장들’을 하나의 어떤 이데올로기적 공통 분모에 한정 짓지 않으면서 대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Le roman polyphonique europeen, dont l’oeuvre de Dostoievsky est le point d’aboutissement, est parvenu a ne plus faire tenir au narrateur un discours centralisateur destine a reduire et resoudre les contradictions qui opposent des personnages entre eux.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이 그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다성적 소설은 인물들을 서로 대립시키는 모순들을 축소 및 해결하기 위한 중앙집권적 담화의 화자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Les personnages de Dostoievsky sont des sujets libres, et non, comme chez Tolstoi, par exemple, les objets du discoursdu narrateur.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톨스토이의 작품들에서와 달리 화자의 담화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운 주체이다.Au lieu de representer un ≪ m≫ (Julia Kristeva).다성적 소설은 ‘유일하고 구체화된 세계’를 표현하기 보다는 복수의 변화무쌍한 글쓰기의 보편적인 장면을 제시하는데, 이 장면이 우리를 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장면에서 그 어떤 것도 보지 않는다.La decouverte de Bakhtine fait voler en eclats l’ideologie individualiste de l’oeuvre comme expression d’un sujet, pourinscrire le texte litteraire dans le Texte general de la culture.바흐친의 발견은 문화의 일반적인 텍스트 안에 문학 텍스트를 등재하기 위해 작품을, 한 주체의 표현처럼 개인주의 이데올로기를 풍비박산 나게 만든다.L’auteur se dedouble. Il est, comme sur la scene du carnaval, tout ensemble et tour a tour acteur et spectateur.저자는 둘로 나뉜다. 마치 카니발의 장면에서처럼, 저자는 교대로 배우였다가 관객이기도 하고, 두 가지 모두이기도 하다.Il lit et il ecrit. Il dechiffre autant qu’il parle. Il ≪ agglutine son discours a ses lectures, l’instance de sa parole a celle des autres ≫ et ≪ refuse d’etre “temoin” objectif, posseseur d’une verite qu’il symbolise par le Verbe ≫ (Julia Kristeva).저자는 읽고 쓴다. 저자는 말하기도 하지만 해독하기도 한다. 저자는 스스로의 담화를 스스로의 독해에 유착시키고 스스로의 말을 다른 사람들의 말에 유착시키며 객관적인 ‘증인’, 즉 그가 발화를 통해 상징하는 진실의 소유자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La figure de l’auteur, forgee par l’histoire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