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대학교 박물관 견학 소감문수업 첫 시간에, 교내 박물관에 대한 소감문을 내야한다는 이 과제에 대해 들었을 때, ‘아 또 박물관에 가서 관찰을 하고 느낀 점을 써야하는 구나.’ 라는 부담스러움이 생겼다. 견학을 가서 그에 대한 소감을 내야 한다는 과제는 매번 부담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교내 박물관에 다녀온 이후 이러한 부담감이 우리 문화재에 대한 흥미와 관심으로 변했다. 교내 박물관은 생각보다 컸고, 전시가 잘 되어 있었고 시설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박물관을 구경하면서 인상 깊었던 도자기도 있었고, 작품들도 있었고, 의문점도 있었다.우리 학교 박물관의 관람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나는 근로를 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여 박물관의 유물들을 여러 번 감상하였다. 박물관에는 교내 박물관에는 상설전시실, 특별전시실, 성서전시실, 진주남강유적관 등 많은 종류의 전시실이 있었다.선문대학교 박물관은 설립자 양위분의 배려로 선문대학교의 설립을 준비하던 시점부터 수집을 시작하였다. 이를 토대로 1992년 12월에 선문대학교 박물관이 출범하였다. 전시실은 총 4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설전시실, 특별전시실, 성서전시실, 진주남강유적관이 있다.우선 상설전시실은 수집한 소장품 중 고미술품들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발표된 명품도록 4권 중에서 엄선된 소량의 작품만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은 도자 부문, 서화 부문 그리고 민화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상설전시실에는 여러 가지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연적, 조선 백자, 고려 청자, 회화, 민화 등의 작품들이 있었다.상설전시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청자상감파룡문대매병” 과 “회화작품들”이다. 의문점은 “박물관의 백자나 청자 도자기들은 왜 하나같이 이름이 길고 복잡할까?” 이다.나는 상설전시실에서 ‘청자상감파룡문대매병’ 이 제일 우아하고 기품있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매병에 대해 찾아보고 이름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청자상감파룡문대매병’은 13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현존하는 가장 큰 매병으로서 파도 속에서 약동하는 용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청자상감파룡문대매병’에서 ‘청자’의 뜻은 ‘푸른 빛깔의 자기.’이고, 청자는 자기의 몸을 이루는 흙과 잿물에 포함된 철염의 성분이 환원염(還元焰)이기 때문에 푸른빛을 띤다. ‘상감’의 뜻은 ‘소재의 표면을 새겨 그 부분에 상감재료를 끼워 넣고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파룡문(波龍紋)’ 의 의미는 ‘파도속에서 용솟음을 치는 무늬’이다. ‘매병(梅甁)’ 의 의미는 ‘입[口部]이 작고 어깨[肩部]선이 풍만하여, 몸체[胴部]가 서서히 좁아져 내려가는 형태의 병’ 이다. 이렇게 청자의 의미를 하나 씩 알고 난 후에 이 매병을 보니 매병의 무늬 나 모양이 눈에 쏙 들어왔다. 다시금 매병을 천천히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이름의 뜻을 알아본 후에, 다시 가서 제대로 감상하였다. 다시 감상하고 나니 매병에 대한 이해가 급증 하였다. 용이 병을 휘감은 듯 한 모양도 너무 멋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과 미술에 감탄했다.회화 작품들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선비나 양반들의 취미나 활동을 알 수 있어서 인상 깊었다. 제일 인상 깊었던 작품은 ‘신사임당의 작품’ 이였다.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신사임당의 작품은 ‘초충도, 화훼도’ 이다. 여자의 작품이여서 그런지 섬세하고 아기자기했고, 남성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있었다.전시실에는 여러 가지 청자와 백자가 있었는데, 이러한 도자기들의 이름이 긴 이유와 병의 종류인 표형병, 편병, 동채(銅彩)병 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도자기들의 이름이 긴 이유는 이다. 표형병은 작은 박과 큰 박이 합쳐진 표주박 모양의 술병이다. 편병은 몸체의 양쪽 면이 편평하고 납작하며, 상면에 주둥이가 달린 휴대용으로도 쓰인 술병이다. 동채(銅彩)병은 무늬가 구리 색을 띄고 있는 병이다. 병의 종류를 알아보니 백자나 청자에 대해 이해가 잘 되었고, 종류와 이름에 대해서 분석해보지 않았을 때와 도자기를 보는 안목이 달라졌다.특별전시실은 설립자 선생의 사상적 기반인 통일 원리의 태동과 세계적인 전파현황, 통일 사상의 확충과 공산주의 종언, 그리고 설립자 선생의 말씀에 관한 자료들만 간략하게 전시하고 있다. 우리학교의 설립자이신 문선명 선생의 생애가 담겨 있는 전시실이라서 유심 있게 보았다. 나는 왜 그분이 통일교를 창시한 것인지, 선문대학교를 왜 설립하셨는지 궁금했었다. 특별전시실을 통해서 나의 궁금 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문선명 선생이 통일교를 창시한 이유는 ‘통일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서’이다. 통일 사상은 문선명 선생의 사상으로서, 천의에 따라 생애를 바쳐 규명해온 사상이다. 존재의 문제와 관계의 문제 등 인류의 난문제들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 사상이다. 그리고 문선명 선생의 사상이 모든 현을 통일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사상임을 드러내는 개념이다.문선명 선생이 선문대학교를 설립한 이유는 ‘인류를 향한 무한한 사랑의 실천을 행하기 위해서, 세계평화실현이라는 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다. 선문대학교에 오기 전에 통일교에 대해서 인터넷에 있는 부정적인 글이나 편견이 가득한 글을 읽었기 때문에 문선명 선생과 통일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었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시실을 통해서 문선명 선생을 보는 관점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편견도 사라졌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활동하시다가 감옥에 갇히신 적도 있다고 하니 세계평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인 것 같다. 특별전시실의 밖에는 문선명 선생의 생애에 대하여 씌여져 있었다. 문선명 선생은 세계평화운동과 여성구호, 종교화합, 문화예술스포츠, 언론, 교육을 위하여 자신을 투자 하셨다. 이런 활동을 몸소 실천하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셨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그분의 삶을 통하여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식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한 방식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성서전시실에서는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이던 한국 초대 그리스도교 성서들을 환수하여 보관하던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18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의 한국 초대 그리스도교의 역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국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전시하고 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성서전시실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최초의 성경을 보고 나니 거리감이 좀 사라진 느낌이었다. 유교와 불교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책을 통해 많은 기독교 신자를 배출할 수 있었을까. 유교적 이였던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을 수 있게 하였을까. 이를 통해 책 한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종교가 어떤 깊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믿을 정도의 내용인지 알고 싶어졌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생겼을 경우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산학(아산 지역 답사)아산학 수업을 통해서 아산의 명소를 관광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계획을 짜서 아산을 관광하였다.첫 번째 주제는 공부와 국가 근로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초록힐링’ 이다. 아산에는 낮고 완만한 산이 많이 있고, 주변에 호수나 강, 계곡 등이 있기 때문에 자연과 매우 가까워질 수 있다. 눈과 마음이 편안해 질 장소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영인산 휴양림, 피나클 랜드, 세계 꽃 식물원, 도고온천 그리고 신정호 관광지 등.두 번째 주제는, 수 천 년을 이어온 자랑스러운 아산의 ‘역사 탐방’이다. 아산은 이순신 장군의 묘와 전 대통령의 생가, 외암 민속마을, 현충사, 김옥균 묘, 아산향교 등 여러 가지 역사적인 장소가 많이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느낌을 알고 싶기도 하고 한동안 이슈였던 영화 명량의 주인공인 이순신장군의 업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어서 이러한 주제를 고안해냈다.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나는 총 4번의 아산 여행을 하였다. 첫 번째로 나는 혼자 ‘온양온천역’을 갔다. 온양온천역에서 아산 여행의 기본적인 정보들 얻을 수 있었고, 아산의 고유한 온천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아버지와 함께 신나고 재밌고 행복한 유적지 답사, 아산의 급 부상하는 신 관광지 여행을 하였다. 아빠와 함께 ‘이충무공 묘소’, ‘아산향교’, ‘김옥균 묘’, ‘신정호 관광단지’, ‘공세리 성당’을 다녀왔다. 이 여행으로 인해 아버지와의 사이가 더 두터워졌다. 세 번째로 혼자 ‘영인산’을 등산하였고, 마지막으로 ‘외암 민속마을’을 다녀왔다.*온양온천역*우선 제일 처음으로 아산 관광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온양온천역을 방문하였다. 온양온천은 아산 유명 관광지로 떠나는 여러 종류의 버스의 시발점이기도 하고, 테마별 코스를 관광할 수 있는 아산 시티투어버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래서 차가 없이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배차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 어디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정확한 정보가 안 나와 있어서 좀 불편했다. 시티투어는 아쉽게도 예매를 하지 못해서 하지 못하였다.온양온천역 부근에는 곳곳에 족욕을 즐길만한 장소가 많이 있었다. 역 아래에도 있었고, 시장에 들어가는 입구 부분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온천을 테마로 하는 호텔이나 휴식처들이 역 근처에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서, 온양이라는 도시가 정말 온천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렇게 도시 한가운데 온천이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온양온천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는 온정(溫井), 고려시대에는 온수(溫水), 조선시대 이후에는 온양(溫陽)이라 불리며 1,3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특히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눈병을 치료하고자 온양에 들렀고 이후 세조, 현종, 숙종 등 여러 임금이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이곳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 곳 온천이 유명하고, 또 역사가 깊다.*이 충무공(이순신 장군) 묘소*이 충무공 묘소는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공의 유해는 최후의 진지였던 고금도에 일단 모셔졌다가 이듬해에 운구되어 인근 아산시 음봉면 금성산에 장사되었으며 순국 16년 뒤에 어라산으로 이장되었다. 묘는 충무공의 배위인 상주방씨와의 합장묘이다.묘소에는 묘비와 어제신도비, 이 충무공 신도비, 이봉상 신도비가 있다. 어제신도비는 충무공의 공로를 치하하여 정조 대왕이 친히 비명을 지어 1794년에 세워진 비로써 이 충무공 묘소 아래에 있다. 신도비는 임금이나 2품 이상의 관직자의 무덤 앞 또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묘를 보고 나니 이순신 장군님께서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묘소를 둘러보는 내내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치셔서 싸우신 이순신 장군님. 그 분을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은 우리 후세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충무공의 묘가 앞으로도 잘 보존 됬으면 좋겠고, 또 사람들이 많이 추모 드리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공세리 성당*공세리 성당은 문화재와 다수의 국가보호수를 보유하고 있고, 순교자를 모시고 있는 순교성지이며, 역사 유적지 (공세곶 창고지)이다. 공세리 성당은 1890년에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으로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144호 이면서, 2005년도에 한국 관광 공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한 성당이다. 350년이 넘는 국가 보호수도 5그루나 있고, 그에 버금가는 오래된 거목들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공세리 성당은 현재 32분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공세리 성당을 직접 보니 아기자기하니 귀여웠다. 전체적인 성당의 풍경은 아름다웠으며, 국가에서 지정한 보호수 5그루는 크고 듬직해보였다. 가을의 단풍이 절정인 시기에 다녀왔는데, 공세리 성당은 보호수의 단풍과 단색의 성당 건물이 조화를 이루어 멋의 절정을 이루었다. 오래된 성당인 만큼, 세월의 연륜이 묻어있었다. 서양의 여느 성당처럼 크고 웅장하진 않지만, 아담하고 단조로운 모습이 성당의 아름다운 매력을 한 껏 올려주는 것 같다.전국에서 이곳을 방문하여 기도하고, 박물관을 질서 있게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성당을 둘러보고, 예배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여민루*1415년(태종 15)에 아산현감 최안정(崔安正)이 빈객이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세웠다. 아산현의 관아는 원래 저습지에 있어서 사신을 접대하는데 불편하여 객사 동쪽에 누각을 지었다. 누각의 명칭은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누기(樓記)의 ‘취위민지의(取爲民之意 : 백성을 위하는 뜻을 취하여)’를 따서 조선 숙종 때 지중추원부사인 임홍망(任弘望)이 여민루라 하였다고 전해진다.만들어진지 6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잘 남아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보존이 잘 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때가 타지 않아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인지.. 그렇게 거창하거나 대단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조상의 뜻을 알기에 좋고, 조선 시대의 건축 방식을 알기에 좋은 장것 같다.*아산 향교 (牙山鄕校)*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안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옛 교육 기관이었던 향교 안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밖에서 향교의 건축물을 관찰하였는데, 건축물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시대로 따지면, 학교 같은 느낌인 데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글을 배우고 공부를 했을지 상상할 수 있어서 뜻 깊었던 방문이었다. 하지만, 문화재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주변 관리가 잘 안 되어있었다. 이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면 중요 문화재라는 것도 몰랐을 것 같다.*김옥균 선생 유허*이곳은 1976년 12월 6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 김옥균은 한말에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고자 신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며 개화당을 조직하였다. 근대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상하이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암살되고 시신은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능지처참되었다. 김옥균을 존경하던 한 일본인이 효시(梟示)된 머리를 일본 도쿄[東京]의 청산외인묘지(靑山外人墓地)에 묻고 비를 세웠는데, 1914년 9월 11일 의발(衣髮)을 이곳으로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한 것이다.김옥균 선생은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일본의 도움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이 묘를 보면서 ‘만약 선생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성공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게 변해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잘나가는, 더 권위 있는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 을 받아들여 개혁을 감행하고 변화를 일으키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자체가 믿기지가 않았다. 김옥균 선생은 일본과 청나라에 의해 농락당하는 조선을 개화하여, 백성을 도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려는 포부가 있었던 것 같다. 유허를 둘러보고 나니 조선을 개화하려 했던 선생의 의지가 마음으로 전해졌다.김옥균 선생의 출생지는 충남 공주인데 왜 선생의 유허가 여기에 묻혀있을까? 죽어서도 자신의 고향에 묻히지 못한 것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유허 주변은 관리한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이곳을 알고 직접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갑신정변이나 김옥균, 개화당에 대해 배웠던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러 예를 갖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신정호웰빙호수공원*신정호에는 ‘이충무공 동상’, ‘야외 음악당’, ‘신정호수산책로’, ‘연꽃단지’, ‘수생식물 전시장’, ‘야외 음악당’, ‘조각공원’ 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이 충무공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충무공 표준영정을 기본 모델로 문화관광부의 고증아래 1997년에 제작되었으며 동상 높이가 8.5m로 이순신 동상 중 가장 큰 동상이다.신정호수 산책로는 신정호 수변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경관과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갖가지 꽃내음과 향기를 맡으며 조깅, 산책 등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와 축제도 즐길 수 있었다.호수 건너편의 산과 동네와 호수가 어우러져 있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강을 위해서 들려도 좋을 것 같고, 연인과 데이트하기 에도 좋고, 가족과 여가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인 장소인 것 같다.* 영인산 휴양림 & 산림 박물관 *영인산 자연 휴양림은 수목이 울창하고, 숲길이 완만하여 삼림욕 하기에 좋다.휴양림 내에는 숙박시설과 야외무대, 체육시설, 썰매장, 수영장, 어린이 놀이터 등이 완비되어 있으며, 52만m2의 부지에서 암석원, 침엽수원, 약용식물원, 습지원등의 다양한 주제원과 1158종의 식물로 구서된 수목원이 조 있다.
< 천국보다 아름다운 감상문 >줄거리 : 소아과 의사 크리스와 큐레이터 (미술관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행하는 사람) 인 아내 애니는 배를 타던 도중 첫눈에 반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 후, 행복 속에 결혼하였다. 결혼한 이후에 아들 얀과 딸 마리를 가지게 되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평온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크리스와 애니는 얀과 마리를 교통사고로 잃게 된다. 그리고 아내 애니는 얀과 마리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며 괴로워한다. 그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두 아이를 잃은 슬픔의 상처가 점차 아물어 갈쯤. 그들의 특별한 날을 기념할 때에 크리스 마저 우연한 사고로 죽고 만다. 하지만 죽은 크리스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아이들의 죽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던 애니는 자신의 곁을 맴도는 크리스의 존재감을 정신질환으로 착각하고 괴로워한다. 크리스는 더 이상 아내에게 고통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천국으로 떠나지만, 천국에 가서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 어떤 곳이라도 그녀가 없는 곳이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무렵 애니는 그 나마의 남편의 존재감마저 사라진 공허함에 점점 더 슬픔에 빠지고, 그 슬픔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어 자살을 하게 된다. 자살을 한 후 지옥에 가게 된 애니. 지옥으로 가게 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 크리스는 험난한 여정을 강행하게 된다.느낀점 하나)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지는 천국이라는 세계가 만들어진 다는 것이 참신했다.나는 사후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에 가니까 행동을 착하게, 바르게 해라.” 이런 말을 믿지 않았었다. 현실세계와 달리 보이지 않는 죽은 사람들만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나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믿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에 천국이니 지옥이니 신이니 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랬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후세계에서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깊게 생각해 보게 된 이유는 내가 원하는 대로 천국이 꾸며지기 때문이였다. 현실세계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하려면 돈이나 권력 등이 필요한데, 오직 나의 마음만으로 생기는 나만의 세계라니.. 너무 신기했다. 비록 영화에서 나온 장면이여서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진 다는 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별하기는 어렵지만, 정말로 그러한 천국 세계가 있다면 현실 세계에서 착하게, 바르게 살아서 천국에 가서 나만의 생각대로 만들어지는 세계에 살아보고 싶다. 앞으로 착하게 살아서 이러한 내가 원하는 천국의 세계를 만들어 살아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느낀점 둘 ) 부부 두 사람의 마음이 그림을 통해서 이어지는 것이 감동스러웠고, 이 장면을 통해서 서로간의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되었다.이 장면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이다. 나는 아직 진정한 사랑을 해 본적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그러한 슬픔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크리스가 죽고 나서 좋은 천국 세계에 살면서도 아내인 애니를 잊지 못하여 천국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아직까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에게, 이러한 사랑의 내용은 공감이 가지 않으면서도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서로 의지하며 서로만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장면이였다.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남편이 죽은 후에도 그림을 통해서 마음이 이어졌을까.. ’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