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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기독교교육의 개념과 목적, 한계를 정리했습니다.
    기독교교육의 개념과 목적, 한계를 정리했습니다.
    1. 기독교 교육의 영역가. 기독교 교육의 정의1) 기독교 교육의 개념가) 교육의 개념‘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educare 또는 eductus sum에서 유래된 말로, 본래 ‘기르다’, ‘양육하다’, ‘훈육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온전히 성장시키는 깊은 과정을 뜻한다. 영어 단어 nurture(양육하다) 역시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다.교육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1) 교육은 외부로부터 내용을 채워 넣는 과정이다. 학습자에게 사상이나 가치관, 문화적 유산, 체계화된 경험 등을 전달하고 형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는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며, 그들이 사회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접근이다. 이 관점은 때때로 전통적이고 주입적인 방식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교육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2) 교육은 내면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학습자의 타고난 흥미나 재능을 발견하고, 놀이와 실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것을 개발하는 방향이다. 이 방식은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하며, 학습자가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결국 교육은 외부의 지식을 채워주는 동시에, 내면의 가능성을 끌어내는 쌍방향적이고 통합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측면이 균형을 이룰 때, 진정한 교육의 의미가 완성된다.나) 종교 교육의 개념종교 교육이란, 사람들이 특정 종교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실제 삶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이 교육은 주로 종교 기관에서 이루어지며, 신앙을 전하고 형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하지만 종교 교육의 방법은 종교 기관마다 다를 수 있다. 그것은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형태나 가르침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 기관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교육 방법은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종교 교육은 단순히 교리나 경건함을 지식으로 런 의미에서 종교 교육은 전도와도 같은 방향을 가진다. 모두가 신앙의 진리를 깨닫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육도 이와 같은 종교 교육의 한 형태이다. 기독교 교육 안에는 성경 교육, 신학 교육, 주일학교, 기독교 학교 교육 등이 포함된다. 이 모든 교육은 단순히 기독교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신앙인을 세우는 것을 중심에 두고 있다.다) 기독교 교육의 개념(1) 죠지 A. 코(George A. Coe)의 기독교 교육 정의미국의 교육학자 죠지 A. 코(George A. Coe)는 기독교 교육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기독교 교육이란,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가치를 전제로 한 신적 존재의 가정 아래, 인간이 유한한 가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조직적으로 점검하고 새롭게 세워가는 일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기독교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과거 가치의 전수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와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내는 과정, 즉 가치의 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재건은 인간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서, 그리고 인간을 통해 일하시는 신적인 역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의 재건이란, 단순히 옛 가치를 반복하거나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삶 속에 과거의 가치가 창조적으로 들어와, 개인의 자유로운 변화와 성장을 일으키는 살아 있는 과정을 뜻한다.(2) 유대교의 교육관유대교의 교육은 단순한 학문적 활동이 아니라, 민족의 생존과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유대 민족에게 있어 종교와 교육은 삶의 핵심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믿음은 교육의 근거가 된다. 유대교는 배우지 않고서는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본다. 교육은 단지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고 이해하며, 자기 존재를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즉, 교육은 인간 님의 은총 없이 교육은 완성될 수 없다고 본다. 가톨릭 교육의 목적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길러내는 데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세례를 통해 거듭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초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를 드러내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신자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협력을 통해 형성된다고 본다.(나) 교육철학① 종교는 삶과 교육의 기초이다.② 종교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원리이다.③ 종교는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발전 가능성 속에서 검증된 전통적인 진리이다.④ 가톨릭 교육에서 교회는 사회 안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 기관으로 본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에서 출발하지 않은 어떤 사회적 발전도,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열매를 맺기 어렵다고 본다.가톨릭주의(Catholicism)는 이처럼 더 높은 이상과 가치를 제공하는 기준이 된다.(다) 교육목적가톨릭 교육의 최종 목적은 인간이 영원한 구원에 이를 때까지 도덕적으로 완성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결단 있는 개인을 형성하는 데 있다. 또한,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의 본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가톨릭 교육에서 이상적인 교사는 ‘친절하고 인격적인 ‘아버지 같은 존재’로 이해된다.(4) 신교(개신교)의 교육관개신교는 종교와 교육을 나누지 않는다. 또한 교육을 종교에 종속시키지도 않으며, 이 두 영역이 조화를 이루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개신교 교육에서는 종교를 떠난 교육은 인간성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반대로 교육 없는 종교는 미신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교육과 종교가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다루는 공통된 관심사라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리하면, 가톨릭 교육은 은총과 도덕적 완성, 교회의 권위, 이상적인 신자 형성에 중점을 두며, 개신교 교육은 신앙과 교육의 균형, 자율성과 책임육으로 발전하였고, 나아가 교회 내 자녀 교육과 지도자 훈련으로 확대되었다. 초대 교회의 기독교 교육은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도록 지도하였으며, 금식이나 독신과 같은 삶의 방식도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모범으로 여겨졌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겸손하고 은유적인 성격은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가르쳐졌다.(2)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교육 목적종교개혁 이후에는 일반 신자들에게 성경이 공개되면서, 기독교 교육의 중심이 성경 교육으로 바뀌었다. 지도자 훈련도 성직자를 위한 직업 교육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전 세계로 주일학교 운동이 확산되면서 어린이 성경 교육이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영향과 더불어, 성경이 신앙과 삶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믿음 아래 성경 교육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교육은 주로 주일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게 되었고, 내용도 성경 이야기나 요절 암송 등에 제한되는 경향이 생겼다.(3) 현대 교회의 교육 목적현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크게 변화하였다. 예전처럼 단순히 지식이나 성격을 훈련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전인적인 성장과 실제 생활의 조화를 추구하게 되었다.또한 형이상학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목표와 행동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되었다. 현대 교육에서는 인간의 행동 변화를 목표로 삼으며, 그 결과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과정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교육 목적을 세울 때도 막연하지 않고, 일반적인 목적과 구체적인 목적을 함께 설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마) 기독교 교육의 일반적 목적기독교교육의 일반적인 목적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의 삶과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살도록 돕는 데 있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이 그 사람의 삶 속에 드러나도록 이끄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모든 세대,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교리적인 진리와 신앙의 원리를 배우게 한다. 그렇게 배운 신앙은 고 회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독교인은 믿음뿐 아니라 정직, 책임감, 성실, 관용, 사랑, 인내 같은 성품을 길러야 한다. 이런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성숙한 신앙인은 성숙한 인격을 가져야 한다.(3) 그리스도인의 생활 실천기독교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삶을 이끌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진실하고, 남을 용서하며, 화평하고 공정한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신앙이 삶으로 연결되는 모습이다.(4) 기독교적 사회 건설기독교의 가르침은 개인의 삶을 넘어서 사회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정과 직장, 학교, 사회 전반에 기독교적인 가치와 윤리가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기독교는 단지 종교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3) 기독교 교육의 한계기독교 교육의 범위는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우주와 역사 속에서 성령이 일하시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기독교 교육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 범위는 끝이 없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곳이면 그 어떤 자리에서도 배움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문적인 관점에서, 기독교교육을 하나의 전공 분야로만 생각하면 그 범위는 매우 좁아진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주 넓을 수도 있고, 아주 좁을 수도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사) 기독교 교육의 성격기독교교육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교육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측면이다. 이 두 측면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기독교교육을 이루게 된다.(1) 교육적 측면교육은 사람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돕는 사회화 과정이다. 쉽게 말해, 교육은 사회가 옳다고 여기는 행동이나 생각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 신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공산주의 교육다.
    인문/어학| 2025.04.23| 5페이지| 2,000원| 조회(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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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출애굽기 산책 Chapter 3 (1:8-15:21) 요약
    출애굽기 산책 Chapter 3 (1:8-15:21) 요약
    출애굽기 산책 Chapter 3 (1:8-15:21)1. 위기와 불가항력적 은혜구속사의 위기(1:8-22) 이스라엘이 바로의 폭정 아래서 겪은 고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직접적 원인이자 모세가 탄생하는 배경이다. 여기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1:8)이라는 표현은 불길한 느낌과 함께 출애굽기 플롯의 중심이 되는 ‘알다’라는 단어를 도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애굽 왕은 민수기 22-24장의 발락처럼, 그리고 신약의 헤롯 왕처럼 이스라엘에 대해 막연하고 심리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1:9-10) 첫 번째는 우회적 방법인 강도 높은 노동으로(1:11), 두 번째는 산파를 동원한 교활한 수법으로(1:15-16), 세 번째는 남자 아이를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하는 공개적인 수법으로 이스라엘을 제거코자 하였으나 이스라엘은 더욱 번성하고 강해진다.(1:12,20) 하나님은 대적자들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구원을 창조하신다.구속사의 희망 : 영웅의 탄생과 아이러니의 승리(2:1-10) 1장이 거시적인 역사적 상황이라면 2장은 미시적인 상황을 다룬다. 레위인 부부는 아들 모세를 낳고 히브리인의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그를 나일강에 던지라고 한 바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1:22) 세 달 동안 아이를 숨겼으나 결국 아들을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에 띄워 보내었다.(2:3) 출애굽기의 내레이터는 아이의 외모적인 모습(토브)과 ‘갈대 상자’(테바)라는 표현을 통해 창조기사와 노아의 방주(창6:14)를 기억하도록 하는 창세기 모티브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모세의 누이는 멀리서 모세를 지켜보는데, 여기서 ‘멀리’라는 단어는 물리적으로는 멀지만 심리적으로 가까운 거리를 나타낸다. 이런 가운데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하고 히브리인의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2:6) 모세를 긍휼히 여겨 살려주고, 그의 양육비까지 지원하게 된다.(2:9) 히브리인을 말살하려던 바로는 딸의 결정으로 인해 그 이름의 뜻처럼 히브리인들의 구원자가 될 모세를 그의 친 어머니의 야사), ‘건져내다’(나짤)라는 표현을 통해 구원자로서의 모세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2:19) 애굽의 왕자로 지내던 모세는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고 지은 것으로 볼 때 그가 낯선 곳에서 한탄스럽고 쓰라린 마음으로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진정한 구속사적 영웅의 등장(2:23-25) 1, 2장에서는 숨어서 일하시는 것만 같던 하나님은 이제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애굽 왕은 죽었다.(2:23) 내레이터는 목적어를 생략한 채 하나님께서 보시고, 아셨다고 표현하며 독자들이 하나님의 특단의 조치가 내려질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2:24-25)2. 출애굽기 3-4장 : 평범한 날의 비범한 사건평범한 날의 비범한 사건(3:1-6) 2장의 기대감과 달리 3장의 초입은 40년간 장인의 양무리를 치고 80세가 된 모세의 처지가 등장한다.(3:1) 그러나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서 불로 나타나신 이 날은 모세의 시각에서 보면 평범한 날일 수 있지만, 이 날은 전지적 내레이터, 그리고 전지성을 가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의 산’(3:2) 호렙에 이른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대리자를 세우시는 역사적인 날이다. 불은 구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강렬한 성격, 거룩성, 임재 등을 상징한다.(13:21-22;40:36-38;민9:15-16;14:14;신1:33;4:24;9:3;시78:14;겔1:4,13,27) 하나님은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두 번 부른 것 같이(창22:11) 모세를 급히 두 번 부르시고(3:4) ‘네 조상의 하나님’(3:6)을 부연설명 하시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름과 더불어 ‘하나님’을 세 번 걸쳐 반복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세대를 관통하시는 분으로서 몇 백 년 전 이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모세와 그의 세대에게도 동일하게 베푸실 것을 암시하신다. 이제야 모세는 하나님을 알아보고 급히 얼굴을 가린다. 고대 문헌들과 성경을 보면 양치기와 지도조를 위한 토대이다.종에 대한 인내(3:11-4:17) 이 대화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 중 가장 긴 것이다. 모세는 자신과 하나님의 정체성의 문제를 핑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피하려고 했으나(3:11) 하나님은 ‘모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신다.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예흐예 아쉐르 예흐예)로서 신실하신 분이기에(3:14,15) 모세는 그저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할 때의 신뢰성의 문제를 제기한다.(4:1)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 손에 문등병이 걸렸다 낫는 이적, 하수의 물이 피가 되는 이적을 행사하도록 권능을 주셨다. 모세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라며 자격의 문제를 제기하였고, 하나님은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음’을 말씀하셨다.(4:12) 마지막으로 모세는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4:13)라며 소명을 거부한다. 하나님은 분노하셨다.(4:14)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며 가르치시고 형 아론과 지팡이를 허락하시는 자비를 베푸셨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애굽으로 떠나게 된다.(4:15)하나님의 지팡이(4:20) 내러티브 기법상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는 표현은 모세의 달라진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모세의 지팡이는 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그의 지팡이였을 뿐이나 하나님을 만난 후 그것은 이적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모세 또한 미디안의 한 양치기였을 뿐이었지만 소명을 받아들인 후 그는 아론, 바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마치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4:16;7:1;14:31;19:9)하나님의 공격(4:24-26)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겪은 사건을 기술하고 있는 이 구절은 해석이 난해하기 때문에 정경적 본문에 기초하여 몇 가지 사항을 염두 거치면 유월절 참여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3. 드러냄의 플롯(Plot of Revelation)으로 출애굽기 5-15장을 이해하기5장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출애굽 사건이 시작된다. 이 장들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로의 ‘해결적 플롯’과 동시에 ‘알다’라는 동사를 중심으로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알게’ 되는 것, ‘세상이 여호와께 속해’있다는 사실, ‘애굽이 망한 줄을’ 드러내는 것,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를 구별’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드러냄의 플롯’으로 읽혀질 수 있다.4. 드러냄의 플롯과 출애굽기1-15장의 모든 내용은 드러냄의 플롯을 통하여 애굽 사람들, 바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아는 것’(야다), 그리고 ‘세상이 여호와께 속해있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5:2;6:7;7:5,17;8:10,22;9:14,29;10:2,7;11:7;14:4,18) 이 주제는 광야 이야기들 속에서도 계속되어 19:1-24:11의 시내산 언약의 토대가 된다. 시내산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1-18장에서 ‘구원자 하나님’을, 19:1-24:11에서 ‘경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거룩한 동거에 이르는 24:12-40:38의 성막 건설은 드러냄의 플롯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을 넘어 더 깊은 영역, 즉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시는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과 너무 거룩하여 인간이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의 변증법적 관계를 보여준다.5. 드러냄의 플롯과 열 가지 재앙에 대한 이해자연주의적 연구 본문의 역사성을 인정하되 열 가지 재앙을 인과론적 자연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자연주의적 연구라고 한다. 호르트라는 학자는 홍수로 인해 나일강의 범람하여 씻겨 내려온 미생물 때문에 고기들이 죽어 개구리가 감염되고, 홍수가 끝난 후 고인 물 웅덩이 속에서 모기와 파리들이 부화했으며, 죽은 개구리 때문에 탄저열이 생겨 가축들이 죽고, 많은 파리 떼에게 물린 인간과 가 것은 이 해석의 단점이다. 열 재앙과 신들의 관계에 대한 도표는 출애굽기 본문이 의도하고 있는 바와 다르다.새 관점 : 드러냄의 플롯 열 재앙 후 애굽인들의 눈에 모세는 위대하고 권위있게 보였다.(11:3) 열 재앙은 드러냄의 플롯으로 볼 때 바로와 애굽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온 땅의 유일한 주권자임을 보여주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신앙의 증거가 되는 역할을 하며 12:35-36에서 큰 재물을 끌고 나오리라는 창세기 15:14와 출애굽기 3:21-22의 예언들의 성취, 그리고 출애굽이라는 결과를 이룬다.6. 바로의 강퍅함은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인가, 아니면 그 자신이 스스로 엮은 올가미인가?열 재앙을 경험하는 동안 바로의 완강함은 하자크, 카샤, 카베드 동사로 총 19번 언급된다. 이 단어들의 주어는 하나님(11회), 바로(4회), 바로의 마음(4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바로의 마음을 주어로 하여 사용되는 동사는(7:13,14,22) 본질, 성격, 성품, 상태 등을 나타내는 상태 동사로써 기본적으로 바로는 마음이 완악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직접 바로의 마음을 완강케 하시겠다고 선언하셨는데,(4:21;7:3-4) 정작 그렇게 하신 것은 여섯 번째 재앙 이후부터이다.(9:8-12)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재앙에서 바로는 스스로 자신의 완강함을 거두지 않았다.(8:8-9:7) 일곱 번째 재앙(9:13-35) 이후 바로는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9:27)라고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치자 다시 스스로 완악하게 하였다.(9:34-35) 완악함과 관련된 구절들 속에서 자신이나 그의 마음이 주어가 되는 경우는 이 구절이 마지막이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완악하게 하심과 바로의 자유의지적인 완악함이 공존하였다. 그러나 여덟 번째 재앙(10:1-20)에서부터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 바로는 현재 당하고 있는 재앙을 ‘이 죽음’이라고까지 표현하며다.
    인문/어학| 2016.07.25| 6페이지| 1,000원| 조회(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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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서 12:1-13 주해 보고서 평가A+최고예요
    히브리서 12:1-13 주해 보고서Ⅰ. 히브리서 개관예수님의 제사장직, 희생 제사, 그의 아들됨의 본질, 성육신의 중요성, 선구자로서의 역할 등 히브리서의 독특한 강조점들은 신약의 기독론을 풍요하게 해준다. 또한 히브리서는 구약성서 본문들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며 초기 유대의 전승과 사상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1세기 기독교인들의 성경해석학적 가정을 탐구할 수 있어 구약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폭넓게 학습하는 데 도움을 준다.1. 역사적 배경1) 저자현존하는 사본 중 가장 오래된 사본인 p46(3세기 초)에는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의 조심스러운 평가에 의존하여 히브리서가 바울서신 중 하나로 로마서 다음에 놓여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헬라어는 바울의 헬라어보다 훨씬 세련된 것이며 수사학적인 수준은 매우 훌륭하다. 히브리서의 헬라어와 누가복음-사도행전 헬라어의 유사성 때문에 클레멘트는 바울이 히브리서를 히브리어로 기록했다고 가정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헬라어 본문은 누가의 번역본이라고 주장했다. 클레멘트는 바울의 서명이 빠져 있는 것은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이 글의 수신자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리겐은 바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바울이 말한 것을 메모했다가 그 자료들을 모아 히브리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서방교회에서는 4세기 후반까지 바울의 저작설을 부인했다. 무라토리 정경, 이레네우스, 로마의 힙폴리투스 등은 모두 히브리서가 바울이 저자가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 터툴리안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제사장 의무에 대해 정통했던 바나바라고 주장했다. 힙포 종교회의(393)와 제3차 카르타고 종교회의(397)는 사도바울의 서신은 13개이고 히브리인에게 전한 사도의 서신은 하나라고 언급했고, 제6차 카르타고 종교회의(419)에서는 바울서신이 14개라고 결정했는데, 이후부터 서방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술로 인정했다. 그러나 칼빈은 로마의 클레멘트나 누가가 히브리서의 저자라고 주장했고, 루터는 아볼로(디모데를 알고 있었고 브리스길라와 :4 결혼13:5-6 재물13:7-9 말씀을 맡은 지도자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권면13:10-16 예배로 드리는 찬미의 제사13:17-25 편지를 끝맺는 마무리 권면들3. 신학적 주제1) 그리스도의 우월성히브리서는 예수에 대해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시며 어떤 천사나 종교보다 크신 분으로 언급한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어떤 유대인 지도 자(아브라함, 모세, 혹은 여호수아)보다 우월한 분이시다. 완벽한 인간이며 하나님의 중재자로서 어떤 제사장보다도 우월하다. 고난과 유혹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그는 우리를 철저하게 알고 계신 분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우편에까지 높아지셨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2) 대제사장구약에서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들을 대표하였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희생 제사를 드렸다. 1년 중 대속죄일에 한 번, 대제사장이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 모든 민족의 죄를 대속하는 의식을 치렀다. 대제사장은 여러 번 희생 제물을 드려야 했지만 그리스도는 단번에 제물들 드렸으며,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3) 언약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를 통하여 온 세상을 축복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 백성들이 종종 언약에 충실하게 살지 못할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다. 즉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의 민족이 형성되었고 결국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결국에는 그들을 영원한 안식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저희 생각과 저희 마음에 기록’된 새로운 언약을 맺으신다.4) 성숙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 죄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믿음 안에서 자라가고 성숙해야 하는 과업이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너의 삼중 복합어로서 추론, 추리의 내용이 이어짐을 보여주는 불변사이다. 또한 κα? ?με??라는 표현은 강조적이다. 저자가 이 어휘를 사용한 것은 앞으로 주어지는 권면이 앞에서 언급한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에 입각한 것임을 암시한다. 11장에서 제시된 믿음의 영웅들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본받고 따라야 할 모범들로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1절에서 저자는 역사적 해설(ll:1-40)에서 목회적 권면으로 전환한다. 이전의 항목이 직설법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구절부터는 명령법과 권면적인 가정법의 사용이 계속된다. 또한 ll:1-40은 삼인칭의 사용이 두드러졌다면 본문의 동사들은 일인칭이나 이인칭으로 표현된다. 주제는 더 이상 이스라엘의 멀고 먼 또는 보다 최근의 과거의 증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참여하고 있는 싸움이다.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성도들은 고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인내와 거룩의 삶을 위해 더욱 힘을 낼 수 있다.저자는 현재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고난과 시련, 역경,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견딘 것처럼, 그들이 당면한 현재의 시련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려 함과 동시에 선진들의 믿음을 본받도록 권하고 있다. 구약의 성도들은 약속의 실체인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바라볼 뿐이었지만 인내함과 믿음의 확신으로 고난에서 승리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가까이서 보고 붙잡은 신약의 성도들이 시련을 견디어내며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하는 것은 가능하고도 당연한 일이다.τοσο?τον ?χοντε? περικε?μενον ?μ?ν ν?φο? μαρτ?ρων을 직역하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서 있는 이렇게 많은 증인들의 구름을 가지고 있다’가 된다. 여기서 τοσο?τον은 ‘이렇게 많은’, ‘이렇게 큰’ 등을 뜻하며 ν?φο?를 수식한다. 한글성경에서 부사적 의미로 번역된 ν?φο?는 온 하늘을 빽빽하게 채운 구름을 가리킨다. μαρτ?ρων은 ‘증거그것을 무시해 버리셨다. NIV는 ‘scorning’(조롱하면서)으로 번역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예수께서 그 치욕을 묵묵히 무시해 버리실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으며, 십자가 이후에는 ‘기쁨’, 즉 χαρ?가 있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이란 예수 자신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것과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것을 보시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그는 즐거움을 위해 의도적으로 십자가를 선택하였다. 이것은 신앙의 여정에 순종과 고난의 길을 밟는 헌신이 필연적임을 의미한다.κεκ?θικεν은 ‘앉다’라는 동사인 καθ?ζω의 완료 시제로 과거에 나타났던 것이 현재와 미래에도 유효하게 남아있음을 나타낸다. 즉, 그 분이 앉으신 이후 계속해서 거기에 앉아 계신 사실을 나타낸다. 완료 시제는 현재 남아 있는 결과 혹은 상태에 강조점이 있다. 이는 예수가 참아낸 배척과 적대적인 상황의 두드러진 역전을 보여준다. 예수를 믿는 모든 성도는 마지막 날 그 분이 앉아 계시는 곳에 이르게 된다. 그 곳은 바로 신앙 경주의 결승점이다. 이러한 소망이 있다면 성도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3 ?ναλογ?σασθε γ?ρ τ?ν τοια?την ?πομεμενηκ?τα ?π? τ?ν ?μαρτωλ?ν ε?? ?αυτ?ν ?ντιλογ?αν, ?να μ? κ?μητε τα?? ψυχα?? ?μ?ν ?κλυ?μενοι.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개역개정)너희는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도록, 죄인들이 자기에게 거역한 것을 이렇게 참으신 분을 생각하여라. (바른성경)Consider him who endured such opposition from sinful men, so that you will not grow weary and lose heart. (μαστιγο? δ? π?ντα υ??ν ?ν παραδ?χεται.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개역개정)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훈계하시고,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바른성경)because the Lord disciplines those he loves, and he punishes everyone he accepts as a son.” (NIV)자녀가 그릇 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재를 가하지 않는 부모는 실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아버지로써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만 징계를 내리신다. 곧 주의 징계를 받는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 있음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증거이다. παιδε?ει의 원형 παιδε?ω는 70인역에서는 주로 ‘응징하다’, ‘교정하다’, ‘훈계하다’ 등을 뜻하는 히브리어 ‘야싸르’의 역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징벌하다’는 의미에 가깝게 해석하는 것이 낫다. 이 단어는 아래 단어 연구에서 자세히 분석해 볼 것이다. 여기서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훈련하시며, 주께서 받아들인 모든 아들은 채찍질하신다는 표현은 평행관계이다.‘채찍질하심’으로 번역된 μαστιγο?는 원형 μαστιγο??ω의 현재 시제로서 ‘계속해서 매질하다’ 혹은 ‘계속하여 응징하다’라는 지속적인 늬앙스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기에, 상속자로 정하셨기에 성도가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채찍을 드신다.7 ε?? παιδε?αν ?πομ?νετε, ?? υ?ο?? ?μ?ν προσφ?ρεται ? θε??. τ?? γ?ρ υ??? ?ν ο? παιδε?ει πατ?ρ;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개역개정)훈계를 참아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들같이 대우하신다. 아버지가 훈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 (바른성경)Endure hardship as disci개정)
    인문/어학| 2016.07.25| 22페이지| 1,500원| 조회(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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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히브리서 11:35b-38 주해
    히브리서 11:35b-38 주해
    히브리서 11:35b-38Ⅰ. 들어가는 말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고난, 순교와 믿음의 관계성에 대한 해석은 히브리서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거의 예외 없이 믿음의 모범자들은 자기 자신이든 가족의 경우이든 죽음과 연관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칭송되고 있고, 요약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은 죽음에 직면해서도 믿음을 행사한 사람들이다. 죽음이 구체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신앙 때문에 잔인한 시련과 위험에 맞서야 했다. 고난과 죽음을 참아내는 능력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관계성을 전제한다.일명 ‘믿음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목록은 저자가 실제적, 목회적 지향점을 갖고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믿음의 위기에 대응하고자 하는 세심한 계획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들이 비록 예언의 시대에 약속을 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조상들이었던 사람들로 구성된 증인들의 목록은 하나님께 신실하였던 그들의 결심 속에서 역경, 모욕, 재산의 손해, 투옥을 이미 경험한 히브리서 독자들을 격려하고자 의도되어 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고 그 증거를 역사에 흔적으로 남겨 놓았다.영웅들의 업적을 나열한 이 목록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급작스럽게 무명으로 제시된 자들이 경험했던 고난목록을 마주하게 된다. 히브리서 11장은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사사시대까지 구약 안에서 시간의 순서로 인물들을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서 11:35b-38의 내용은 비교적 최근의 사람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다소 잔인한 인상을 주는 이 부분은 앞부분의 영웅목록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으로 인해 이전의 내용들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은 히브리서가 현재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를사람들(32-35a)과는 다른 사람들, 즉 믿음을 지키고자 고난과 순교를 택한 사람들로 화제를 전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경우 모두 신앙이 지배하고 있으며, 모두 신앙의 효력을 갖고 있지만 믿음의 효력은 두 번째 무리에 있어서 한층 명백히 빛나고 있다.‘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τυμπαν?σθησαν)란 진술은 박해를 피하지 않고 고통 당하는 인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명사 τ?μπανον은 곤봉이나 몽둥이로 몸을 때리기 쉽도록 특이한 자세를 취하는 데 사용하는 기구인 ‘고문대’나 때리는 사람들이 묶어둔 말뚝을 나타내기도 하며 때리는 몽둥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을 고문대에 고정시키고 먼저 쇠창살로 어깨와 팔, 엉덩이, 다리 등의 관절을 찔러 탈골시킨 뒤 죄수의 앞가슴을 분쇄하듯이 쳐서 죽이는 당시 가장 무서운 극형을 τ?μπανον이라고 불렀다. 즉 단일한 용법은 없지만, 그것은 어떤 이가 고문대에서 비틀림을 당하는 고문의 형태를 언급한다. 루터는 이 구절을 ‘분쇄되었다’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당한 고문이 곡물이나 과일이 분쇄기에서 으스러지는 것과 같이 심히 고통스러웠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심각한 매질에 의해 죽음에 이르는 것을 언급할 수도 있다.그러한 고난의 경험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 공동체에 대한 최근의 기억 중 하나였을 것인데, 안테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치세 때에 행해진 박해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로마의 장관인 플라쿠스(A.D.32)는 ‘귀빈석의 중앙을 통해 행진하는 죽음의 행렬을 위해 유대인들을 매질하고 고문하고 바퀴에 매달고 타박하고 비트는’ 일을 극장에서 보여주는 일을 준비했다.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은 고문자의 요구에 응한다면 고문과 죽음을 면하고 자유를 얻을 수 있었지만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단호히 거부했다.?πολ?τρωσι?는 노예나 포로를 몸값을 받고 놓아준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의 사용이 비유적일지라도 ‘댓가’와 ‘비용’의 요소가 35b절에 내재되어 있에서 고문을 참아내고 석방 받는 것을 거부함에 대한 말씀인 35b절은 2Macc6:18-7:42을 암시한다. 90살의 서기관인 엘르아살은 부정한 음식으로 여겨졌던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명령을 받고 율법을 배반하면 살아날 수 있다는 설득과 부추김을 받았지만 ‘거짓을 행하는 것은 우리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내가 인간의 형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이의 손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다’고 대답하며 배교를 거부하였다. 그는 τ?μπανον, 즉 고문대를 기꺼이 선택했고, 잔인하게 매질을 당하고 순교하였다. 또한 마카비2서와 마카비4서는 한 어머니와 그녀의 일곱 아들이 안테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손에 차바퀴, 톱니바퀴, 쇠갈고리, 투석기, 큰 솥, 후라이팬, 손가락을 끼는 기계, 철로 된 손, 쐐기, 뜨거운 탄재 등으로 잔인하게 죽임 당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일곱 아들 중 막내는 안테오쿠스로부터 ‘그의 아비의 율법으로부터 그가 돌이키면 그를 부유하고 행복하게 해주며, 또 그를 친구로 삼을 것이고 그에게 일을 맡기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이들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에게 ‘이 행악자를 두려워 말아라. 너희 형들에게 부끄럼 없이 행동하여 죽음을 맞으라. 그리하여 내가 네 형들과 더불어 너를 다시 반갑게 맞을 수 있도록 하라’고 단호히 말하였다. 그들은 잔인한 방법들에 의해 고문을 당했지만 순교의 순간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후세들에게 믿음의 산 증인이 되고 있다.요세푸스는 ‘날마다 큰 불행과 잔인한 악형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장대로 맞았으며, 그들의 몸은 갈기갈기 찢겼고 아직 산 채로 십자가에 매달리웠다.’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순교의 예증은 비인간적인 학대에 처할지라도 생동적인 정신을 유지하게 하는 믿음의 능력을 보여준다. 믿음은 죽음 앞에서도 고난을 참아내고 도덕적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근원이다.11:36 ?τεροι δ? ?μπαιγμ?ν κα? μαστ?γων πε?ραν ?λαβον, ?τι δ? δ라(Joshua ben Sira)는 예레미야에 대해 ‘그들이 그를 몹시 괴롭혔다.’고 말한다. 그 외에 여러 선지자들도 유사한 학대를 받았다. 사도 바울 역시 미친 자로 취급받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조롱과 채찍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야바와 헤롯과 빌라도 앞에서 당한 고난을 생각나게 한다.이스라엘의 역사에서와 기독교 교회가 발전하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신앙의 댓가는 자주 잔인한 고난이었다. 히브리서를 수신받은 공동체는 이전에 희롱과 채찍과 옥에 갇히는 핍박을 포함한 큰 환난을 경험하였고, 이 묘사가 어울릴만한 몇몇 동시대인을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박해와 옥에 갇힘에 대한 언급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에게 그들의 경험이 이전 세대의 신자들의 경험과 일치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한다.11:37a ?λιθ?σθησαν, ?πρ?σθησαν, ?πειρ?σθησαν, ?ν φ?ν? μαχα?ρα? ?π?θανον·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저자는 통상적으로 상호 연관된 절을 이어주는 접속사를 취하지 않고 일련의 간결한 진술을 함께 묶는다. 33-34절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이러한 표현법은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인상을 전달하기 위한 수사학적 장치이다. 폭력과 착취 행위의 나열은 기독교 회중들 앞에 순교자들의 모범을 알려준다.스가랴 선지자는 요아스 왕의 명령에 의해 성전 뜨락에서 돌로 죽임을 당했다. 제롬에 따르면 예레미야 역시 우상숭배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유대계 이집트인들에게 돌로 맞아 죽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전달하라고 보냈던 사람들을 돌로 죽였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돌로 쳐지다’(?λιθ?σθησαν)라는 동사는 복수 형태로서 성경에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 스가랴,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다른 순교자들과 관련된 유대전승을 연상시킨다. 클레멘트서는 의인의 운명과 관련한 성경의 증언들을 요약하면서 ‘그들이김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갔으나 왕은 결국 그를 찾아내어 검으로 죽였고, 우리야의 시체를 공동묘지에 던졌다. 선지자 다니엘은 성전이 황폐되고, 매일의 희생이 폐지되며, 신실한 남녀들이 ‘검에 베임을 당하고 불로 태워지며 겁탈과 약탈을 당하는’ 때를 보았다. 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운명은 유대전승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이와 같은 상황이 낯선 경험이 아니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본문을 통해 안테오쿠스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행한 잔혹한 박해와, 또 그 후에 이어서 일어난 박해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죽는 것’이라는 구체적인 고통의 종류들 사이에 ‘시험을 당했다’(?πειρ?σθησαν)는 일반적 고난, 시련, 경험, 모험 등을 표현하는 단어가 삽입되어 있다. 이 단어는 사본학상 생략이 가능하지만,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자신의 종교를 저버릴 것을 유혹당하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당시 박해자들이 순교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종교를 저버리게 하기 위해 잔인한 고문을 하는 중에, 그들에게 목숨을 살려줄 뿐 아니라 부와 명예까지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배교를 제안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핍박의 상황 속에서 그런 유혹은 믿음에 대해 가장 혹독한 시험이었다. 그러나 그 시험들을 딛고 일어선 것은 신앙의 가장 고귀한 승리 중의 하나였다.11:37b περι?λθον ?ν μηλωτα??, ?ν α?γε?οι? δ?ρμασιν, ?στερο?μενοι, θλιβ?μενοι, κακουχο?μενοι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선지자의 직무로 부름 받는 것이 항상 폭력적인 죽음과 관련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자주 심각한 생명의 위협에 처하였다. 순교하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은 믿음을 증거하는 삶 때문에 이리저리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유리하는 상태에 있었다. 37b절은 이러한 양상의 믿음을 보여준다. 양가죽(μηλωτα??)은 엘리야의 망토를 묘사할 때 사용되고, 염소의 가죽(α
    인문/어학| 2016.07.25| 9페이지| 2,000원| 조회(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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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칼빈의 교회론 - 논문 요약
    존 칼빈의 교회론 - 최윤배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1. 서론종교개혁자 칼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 칼빈의 교회론은 성서주석과 교부신학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16세기 제도주의적인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논쟁을 통해 교회의 역동적이며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 영성주의적인 재세례파나 열광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교회의 질서와 제도적 측면을 강조한다. 우리는 칼빈의 여러 저서 중 특별히 ‘기독교 강요’를 중심으로 하여 교회의 목적과 기능, 본질, 이중적 성격, 두 표지, 네 특성, 직분, 권위, 권징시행, 성례전(세례, 유아세례, 성찬)의 순서로 칼빈의 교회론을 다룰 것이다.2. 교회의 목적과 기능기독교 강요 4권에서 칼빈은 ‘우리는 모든 경건한 자들의 어머니인 참된 교회와 연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며 교회를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우신 제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약한 우리를 구원이라는 목표에 이를 수 있도록 보살피기 위해,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목사와 교사를 세워 가르치시고 성례를 제정하셨다. 칼빈은 교회를 구속사의 큰 틀 속에서 이해한다. 이는 인간의 타락 때문에 파괴된 창조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교회를 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칼빈의 교회의 목적과 기능은 전통적인 의미로서의 모이는 교회의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정치적 책임 등을 포함하는 흩어지는 교회의 목적에까지 이른다. 이 모든 목적은 교회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지만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지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3. 교회의 본질1) 신자들의 어머니로서의 교회어머니로서의 교회상은 이미 키프리아누스나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고대교부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교회상으로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면서 동시에 성도들이라고 할 때 교회가 그들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자신의 자녀들인 신자들을 양육과 훈련 및 가르치는 교육의 기능으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한다는 데 있다..2) 삼위일체론적 교회성서신학이나 조직신학에서 취급되는 삼위일체론적 교회 개념은 신학적으로 교회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의 관점에서 보게 한다. 삼위일체론적 교회란 성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구속주 성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가 되게 하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와 그의 백성 안에 내주교통하셔서 구속의 은혜와 소망을 강화하실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교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성령의 전 또는 피조물로서 교회’이다.4. 이중적 측면을 지닌 교회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는 플라톤적 이원론에 근거한 존재론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의 실체에 관한 두 가지 인식적인 측면 또는 두 가지 양상을 뜻한다. 즉, 불가시적 교회는 천상적이고 영적이며 승리하는 교회이고, 가시적 교회는 지상적이며 육적이고 전투하는 교회이다. 칼빈은 사도신경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가 가시적 교회뿐이 아니라 불가시적 교회에도 적용되어 죽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보았다. 한 교회의 두 양상, 가시적 측면과 불가시적 측면을 균형있게 이해한 칼빈의 교회론은 불가시적 교회를 무시하고 가시적 교회를 하나님 나라로 역사화시켜 동일시하려는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제도주의적인 교회론과 상치될 뿐만 아니라 지상의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교회를 무시하고 불가시적 교회의 순수성과 도덕성만을 추구하는 영성주의적, 이상주의적 교회론과도 상치된다. 칼빈에 의하면 지역교회는 세계창조 때부터 있었고 마지막까지 존재할 보편교회에 포함된다. 또한 칼빈의 교회론에는 하나님의 교회의 성장과 구축 과정에서 영적인 공격이 동반되기 때문에 ‘싸우는 교회’와 ‘승리하는 교회’의 사상이 나타난다.5. 교회의 두 가지 표지칼빈은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논증을 다루는 기독교 강요 4권에서 순전한 말씀 선포와 합법적 성례전 집행을 교회의 표징으로 간주한다. 또한 누가 참 교회에 속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의 특권이기 때문에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교회를 아는 방법을 믿음, 그리고 외적 표징과 결부시킨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설교되어지고 경청되어지며 성례전이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라 시행되는 곳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표징은 멜랑히톤에 의해 작성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제7조에 나타난 교회의 표징에 대한 정의와 거의 동일하다. 칼빈은 참 교회의 두 가지 표징을 통해서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통일성 또는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의 일치성을 주장한다.6. 교회의 네 가지 특성교회의 네 가지 특성은 381년 제정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1302년 반포한 우남상담이라는 교령에서도 나타난다. 칼빈은 사도신경의 교회에 관한 조항인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를 해설하는 가운데 교회의 네 가지 특성을 다룬다. 칼빈에 의하면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 구성되어 동일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교회는 한 하나님, 한 그리스도, 한 성령, 한 믿음, 한 소망, 한 사랑, 한 생명 안에서 오직 하나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교회는 ‘보편적’이다. 교회의 보편성이 교회의 외적 통일성을 형성한다면 교회의 통일성은 내적 보편성을 형성한다. 교회의 ‘통일성’은 교회가 외형적인 한 교파나 한 기구를 형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신앙의 대상이 동일하다는 뜻을 강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칼빈은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으로 정의하면서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교회의 일치성에 대해 말한다. 또한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에 의해 교회의 성원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선택된 사람들은 모두가 성령에 의한 내적 갱신을 통해 거룩하게 되어졌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다. 또한 말씀과 성령을 통해 가능해지는 진리의 연속, 즉 교리의 연속이라는 표현은 칼빈은 교회를 ‘사도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칼빈은 성령의 말씀을 받은 사도들의 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어야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직분만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충성된 사역자로서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서는 안되고 그 교리를 단단히 붙잡아야 할 뿐이라고 가르친다.7. 교회의 직분칼빈은 사도시대 당시 교회의 임시직으로서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를 언급하고, 모든 시대 교회의 일상직 또는 영구직으로서 부활될 수 있는 목사와 교사를 언급한다. 당시 사도직의 목적은 복음전파와 성찬, 세례 집행을 통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는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자들이 아니라 특별한 계시에 뛰어난 자들을 지칭하며 복음전도자는 직분상 사도를 대리하여 기능을 발휘한 자들로서 누가, 디모데, 디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교사들은 제자훈련, 성례집례, 경고와 권면 등의 일을 맡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는 일만을 하여 건전하고 순수한 교리를 유지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임무는 목사직에도 포함이 된다. 칼빈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사도직과 복음전도자직을 묶어 목사직에 관련시키고 선지자직을 교사직과 일치시킨다. 칼빈은 제네바 2차 귀환 이후 작성한 교회법에서 종교개혁자 부처가 창안한 교회의 사중직을 전수하여 명시하였다. 목사는 말씀선포와 성례전 집례, 치리 시행과 교사로서 성경해석하는 일을 수행하고, 교사는 주로 성경해석의 일과 함께 사도적 기능들을 수행한다. 장로는 말씀을 다스리는 자로서 도덕적 견책과 권징을 목사와 함께 수행한다. 집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구제 사업을 담당하는 집사와 빈민과 병자를 돌보는 집사가 있다.8. 교회의 권위와 권징의 시행교회는 직분을 통한 질서와 제도뿐만 아니라 질서와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교회의 권위를 필요로 한다. 칼빈이 주장한 교회의 첫 번째 권위는 신앙조항(신조)을 제정하고 해석하는 권위이며 두 번째는 공공의 안전과 평화를 촉진하고 화합의 유지를 위한 입법에 관한 권위, 세 번째는 교회의 질서정연한 상태로의 유지와 도덕적 권징 또는 치리를 시행할 목적으로 하는 재판(사법)에 관한 권위이다. 교회의 재판권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교회의 권징의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 부도덕한 사람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거절함으로써 거룩한 교회를 보호하고 성찬을 합당하게 보존하는데 있다. 둘째, 악한 자들과 교제함으로써 선한 자들이 타락하는 일이 없도록, 즉 악한 자의 죄가 전염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한다. 셋째, 비루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회개하여 죄악을 시정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문/어학| 2016.07.25| 4페이지| 2,500원| 조회(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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