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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의 사상과 문화 (샤머니즘, 매니즘, 불교, 사마소)
    경주의 사상과 문화알영정과 나정 / 샤머니즘신라는 삼국 중 유일하게 왕비설화가 등장하는 국가이다. 사회적으로 정치상황을 알려주는 징표로 볼 수 있는데, 이 시기의 여성지위가 높았음을 의미한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나정에서 천마가 안고 있던 알에서 태어나 6부 촌장들에게 발견된다.샤머니즘에 입각하여 보자면 당시의 백마는 하늘의 상징이며 하늘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알은 주몽신화와 마찬가지로 곡식과 태양을 상징하여 당시 시대가 농업체제였음을 의미한다. 알영 부인과 박혁거세는 모두 태어나자마자 발천과 동천에 몸을 씻기게 되는데 물의 정화능력을 말하는 것이며 특히 알영이 알영정에서 나타난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과 닭의 부리를 달고 있던 것은 닭의 후손임을 말하는 것이다.알영의 이름에서 알은 태양을 상징하고 영은 꽃부리 영으로 여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닭과 용의 결합이며 닭은 밤을 지나 아침이 오면 우는 것으로 태양이 다가옴을 알리는 존재인 동시에 태양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또한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석가모니의 출생담이 연상된다는 점에서 신이한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다고 할 수 있다.한국의 샤머니즘은 무속신앙과도 연결된다. 샤머니즘에서는 우주축이 등장하게 되는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신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단군 신화에서는 우주축을 신단수나 태백산으로 보았고 이는 신이 내려온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혁거세 신화나 알영정의 신화에서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우주축이 있는데 바로 우물이다. 나정과 알영정은 당시 사람들에게 신과 접촉할 수 있는 매개체의 의미가 있었으며 우물에서 떠먹을 수 있는 물이 정화의 능력, 순수함의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사로육촌 중의 하나인 경주이씨의 시조 알천양산촌의 촌장이 표암봉에 내려왔다는 것, 김알지가 계림 숲의 금괴에서 태어나는 것 등을 보아 당시 경주의 무속신앙에서 우주축은 우물, 산, 나무가 주를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오릉과 양산재, 신라 골품제와 샤머니즘, 매니즘현대에서 조상이 신이 됐다고 인식한 후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고대의 샤머니즘과 관련이 있다. 박혁거세의 시신이 하늘로 올라간 후 7일 후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 땅으로 떨어졌고, 시신을 합쳐서 제사 지내려 하니 지신을 뜻하는 뱀이 방해했다는 장면과, 단군이 죽어 산신이 된 것에서 당시 사람이 죽어 신이 된다, 곧 삶과 죽음은 연장선에 있다는 고대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도 뼈를 숭상하는 골품제를 통해 당시 사상을 알 수 있다. 뼈는 완전히 사라지는데 굉장히 오래 걸렸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무덤 안의 뼈에 영혼이 머무른다고 생각하여 뼈를 통해 사람이 신과 공존하고 조상의 묘를 좋은 자리에 모시면 좋은 기가 뼈에도 깃들어 후대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신이 되는 석탈해의 모습이 육신제를 지내고 뼈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제를 지내는 이중장을 지내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이것은 육부 촌장의 위패를 모신 양산재 에서도 나타나는 매니즘이며 고대의 성골, 진골의 골품제 계급에도 나타난다. 뼈를 중시하여 정통성을 잇는 성골과 타국의 왕족이었던 진골, 그리고 뼈 다음의 머리를 중시한다는 풍조를 나타내는 두품으로 나누는 것이다. 현대의 ‘뼈대있는 집안’이라는 말의 기원이 된다. 즉 샤머니즘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세계관은 죽음이 삶의 연장이며 조상은 후손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토기주술은 모방주술과 전파주술로 나뉘어 설명할 수 있다. 모방주술은 대상을 모방하여 풍요 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 논이나 밭 옆에서 부부가 성행위를 하는 것을 남자는 하늘을 상징하며 여자는 땅, 남성의 정액은 비를 뜻하기 때문에 풍요를 기원하는 모방주술이 된다. 오늘날 고대의 릉이나 무덤에서 인간이나 또는 그들의 행위 등이 묘사되는 토기가 발견되는 것도 모방주술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전파주술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는 주술이다. 죽은이의 유품에는 죽은 당사자의 기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것이 그 예이다.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지불교는 극락과 지옥으로 나뉘어 극락은 정신의 무색계, 정신과 육체의 색계, 정신과 육체와 욕망의 욕계라는 3계로 나뉜다. 육도에서는 아귀, 축생계, 지옥이 있고 지옥은 8열지옥으로 나뉘며 각각 16유중 지옥이 존재하여 총 136지옥이 있다.‘도리’는 33의 음사이며 33천으로 의역한다.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제석천의 천궁이 있다. 사방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8천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쳐 33천이 된다. 대승불교 정토사상은 도리천 사상의 발전 형태이다.제석천은 지배자가 있는 곳으로 일연은 단군을 제석신이라고 했다. 도리천은 수미산에 있으며 수미산 앞에는 그 각각의 방위에서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이 존재한다. 그 이름은 사대천왕, 또는 호세사천왕이라고도 한다. 욕계육천의 최하위를 차지하며 불법 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을 말한다. 부하로는 견수, 지만, 항교가 있고 이들은 수미산 아래에 위치한다.선덕여왕은 자신의 죽을날을 예언하고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도리천은 불교상 하늘에 있는 것이며 지상에는 없는 것이었다. 이에 선덕여왕은 경주 낭산 중턱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하는데 후에 낭산 앞에 사천왕사가 지어지며 낭산은 경주의 우주축이자 수미산을 의미하게 된다.분황사- 원효와 불교화엄사상은 진평왕과 선덕여왕 때 자장과 원광에 의해 이루어지고 원효와 의상에 의해 체계가 잡혔다. 이는 대승기신론의 일심과 화쟁, 무애로 구분되며 화엄경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구분된다. 일심은 마음의 변화하는 측면과 불변의 측면이 하나라는 깨달음이고, 화쟁은 지혜를 통한 저술활동으로 나타난다. 무애는 장애가 없다는 뜻으로 삶의 번뇌와 앎의 소지라는 두 가지 자비의 실천을 교화 활동으로 나타냈다.현대사회가 소유를 통한 차별기호를 강조함으로 존재 방식을 망각하는 것은 소유를 존재로 착각하고 있음을 마음의 심층의식에서 깨달아서 존재적 방식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념과 현실의 상반된 주장들의 대립을 현대와 화쟁사상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대로 상대도 똑같이 이해하고 그 특성을 인정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을 한층 높은 차원에서 조화와 융화로 전환시켰다.현대사회가 조직의 효율성을 강조함에 따라 대중들은 자신의 영역을 제한하고 안주하기 쉽다. 이는 소유에서 존재로의 자각과 상대와의 조화를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제한된 나를 벗어나고자 하는 무애사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일심은 참되게 항상 똑같다는 진여문과 생겨나고 없어지는 우리의 마음변화에 관한 생멸문인데 진여문은 이언진여라 하여 체험의 세계이며 참된 진리적인 것을 말한다. 생멸문은 의언진여이다.
    인문/어학| 2018.11.21| 11페이지| 1,500원| 조회(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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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여성설화 차이점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여성설화 차이점.『三國史記』에서 가실이 대신 부역을 나간 반면『三國遺事』에서는 설씨녀가 부역을 나간다. 흔히 正史와 野史로 구분되며, 이것에서『三國史記』와『三國遺事』의 성격 차이를 알 수 있다. 신라 멸망 이후 고려가 건국되며 신라의 6두품 계층이 고려의 지배계층으로 자리 잡는다. 최승로의 시무28조 등 유교적 이념이 받아들여지면서 불교가 배척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지배계층으로 사대적이고 유가적, 귀족적, 합리적인 김부식의『三國史記』와 자주적이고 불교적, 서민적, 신비적인 일연의『三國遺事』는 에 수록된 설씨녀 설화를 중심으로 당시의 여성 지위를 살피고자 한다.근대 소설과 여성지위1920년대 근대 소설이 시작되며 여성은 미모를 가져야 하는 존재로 각인된다. 소학과 열녀전 대신에 거울과 화장품을 가지고, 얼굴의 가치와 매력적인 육체의 가치를 배우며 근대여성은 태어난다. 가정은 근대 사회에 이르러 핵가족의 윤리로 재편되어야 할 공간인데, 아내는 정결성과 함께 미모를 갖추어야 하며 그 미모에 대응하는 개성을 갖춘 존재로 특징된다. 1910년대 지식층이 자아의식의 각성으로부터 신경증과 피로를 느낀다면 이러한 신경증의 발현은 오래되지 않아서 가출 욕망과 집안의 귀속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개성이라는 문맥으로 통합된다. 근대 사회가 자본의 힘에 입각해 모든 관계가 재편되고 인간의 가치 역시 결정되는 시공간으로 규정되는 까닭이다. 모든 가치는 돈으로 이해되며 자본의 계약을 떠난 육체란 존재하지 않고, 개인의 정체성 등 모든 것이 가치를 명확히 하며 가치에 입각해 정체성을 규정하고 개성을 창출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다.이효석의 에서 분녀는 매력적인 육체와 미모를 가진 인물이다. 처음에는 강제로 범해졌지만 명준이가 약속한 금덩이, 만갑이가 준 지전 한 장, 본처가 풍으로 거꾸러지면 분녀에게 준다던 가게를 통해 성에 대한 가치를 매긴다. 또한 분녀의 음탕함과 ‘강간’이라는 플롯은 두 번, 세 번 다른 남성들에게 겁탈 당하는 경험을 통해 차츰 담적한다. 박진감 넘치는 묘사와 독자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사들은 강간을 통해 분녀의 섹슈얼리티가 완성 되어 감을 보여준다. ‘여자는 강간을 원하고 그것을 통해 성적 쾌감에 눈 뜬다’는 남성의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을 가감 없이 발휘하는 것이다.이효석의 다른 작품인 도 마찬가지다. 허 생원의 안타까운 사랑의 추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낭만적인 그 하룻밤의 사랑은 무언가 수상쩍고 의심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하얀 달밤의 메밀밭을 걸으며 허 생원이 회고하는 성서방네 처녀와의 물레방앗간에서의 하룻밤 인연은 여성과의 급격한 정사, 즉 이효석의 소설에서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강간을 연상시킨다. 처음 만난 남녀가 순간적 격정에 사로잡혀 상호 동의하에 육체적 관계를 맺는 설정은 1930년대 한국 소설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관계는 일방적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진상은 심미화된, 즉 메밀꽃, 물방앗간 등의 표현들로 인해 미화되거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서정의 세계 속에서 뜻밖에도 난폭한 폭력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것이다.근대적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우선시하는 존재들이다. 소설은 근대적 개인을 그리는 양식으로 볼 수 있다. 즉 이효석의 , , 이기영의 등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이것은 성적 욕망의 분출이며, 곧 근대 소설에서 나타나는 봉건적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들의 자기표현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단면에는 여성에 대한 욕망을 남성에 맞추어 상상하는 포르노그래피적 사상과 여성들의 가치를 외적인 아름다움에 맞추어 판단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 남성들의 성적 대상으로 보여 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근대 여성 지위는 소설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단어인 ‘현모양처’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의 ‘양처현모’가 유입된 것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며, 조선 시대에도 어진 어머니와 착한 아내가 미덕이었지만, 현모양처라는 단어가 기록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1906년이다. 일본에서도 ‘양처현모’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사그 역사는 길지 않다.식민지 시대의 여성교육은 종래의 봉건적 현모양처 교육을 미화하여 일제 국가와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반봉건적 가부장권에 절대 복종하고 헌신하는 여성을 사회화 시키려는 교육이었다. 즉 현모양처라는 단어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여 가부장적 사회체제에 적합한 여성을 형성시키려는 측면이 보여 진다. 현모양처의 여성상이 유행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여성상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절의 윤리를 중요시하게 됐고, 참된 어머니상, 내조의 역할을 중요시하게 됐다. 이는 당시 뿐만 아니라 이후의 여성지위 형성에 방해되는 요소로 꼽힌다.고려시대에도 여성이 사회적인 장소에서 일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시장에서 사고파는 활동을 포함해 국가사업을 수행했고,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이나 궁, 절 등지에서도 일했다. 노비로서 관가와 타가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의 시장 활동에 대해서는 고려도경에 낮에 노천시장이 발달해 남녀노소, 관리, 공기(工技)들이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물물거래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성들은 고리짝을 가지고 노천 시장에 가서 되 단위로 패미(稗米)를 지급하고 물건을 구입했다.역역(力役)의 수취(收取)제도는 16세부터 60세까지 남자가 지던 의무였다. 농민의 역역은 성과 관아, 제방의 축조, 도로의 개수 등 토목공사에 동원됐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이 군역을 지는 동안 후방에서 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고려사에 “주진을 두루 살피고 성책을 수선하여 녹림의 난을 면하게 하고자 하니… 남자들이 모두 싸움에 종사하고 부인들도 오히려 역을 치르게 되어 수고로움과 고통을 참지 못하여 도망쳐 숨는다.”했다. 사창에 지급된 노비여성과 여승은 상업 활동에도 종사했으며, 여승은 직조로 절의 운영에 기여하기도 했다.노비 여성은 남성 못지않은 노동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고려도경에 따르면 “그들이 일할 적에 어깨에 멜 힘이 없으면 등에 지는데 그 걸음걸이가 빨라 남자라도 따르지 못할 정도이다.” 라고 평가했다.려났으므로 노비 여성 또한 60세 까지 일했다. 또한 궁에서 일하는 노비 여성의 지위는 낮지 않았다고 보인다. 고려사 공민왕에 “바느질하는 낭자나 내료의 여자에게도 옹주, 택주로 봉한 것이 있으니 방자함이 분수를 넘어 존비의 체통을 잃었다.”고 했다.부녀의 외출을 제한하는 유폐풍습과 남녀유별을 요구하는 내외규범은 한편으로 유통의 매개자이자 외부 세계의 정보제공자로서 활동하는 다른 여성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여성의 가외활동은 허용될 수밖에 없었다. 가내유폐의 풍습이 강요됐던 양반 부인도 직접 장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노비를 통해 식품과 의류를 제조하여 장에 내다 팔거나 물물교환으로 가계를 운영했다. 당시의 선비는 유교 이념에 따라 생업 운영을 경시했기 때문에 남편을 대신하여 부인들이 가내생산물을 팔아 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역사학자 최남선(1944)은 “한경에서 사인이라는 남자는 아무리 궁하나 속수무책 하거늘 안에서는 바느질, 세탁 외에 박물을 판다 하여 온갖 내조로써 가계를 버텨가는 것이 도리어 비장의 느낌을 주었다.” 고 했다.-근대근대 여성의 지위를 말해주는 단어인 ‘현모양처’는 일본의 ‘양처현모’가 유입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어진 어머니와 당대의 윤리적 규범을 지키는 착한 아내가 미덕이었지만, 현모양처라는 단어가 기록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1906년이다. 일본에서도 ‘양처현모’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사회에 필요한 여성상으로 제시된 단어로 역사가 길지 않다.식민지 시대의 여성 교육은 종래의 봉건적 현모양처 교육을 미화하여 일제 국가와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와 반봉건적 가부장권에 절대 복종하고 헌신하는 여성을 사회화 시키려는 교육이었다. 즉 현모양처라는 단어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리화하고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여 가부장적 사회체제에 적합한 여성을 형성시키려는 측면이 보여진다. 이는 여성지위의 형성에 있어서 방해 요소로 꼽힐만하다.근대의 현모양처 사상 덕분에 가족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상승했지만, 그것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였가 상승된 것은 아니다. 현모양처 사상은 교육을 통해 여성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을 어느 정도 가능케 하고 국가나 목적을 위해 여성을 이용하면서도 그 활동 영역을 가정으로 제한하는 구조를 가지며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체제를 뒤흔들 만큼의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조선과 근대를 통틀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인식된 여성성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남성 입장에서 정의 내려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 우위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내려진 여성적인 정서를 의미하는 개념인 것이다. 그것은 전통적이며 고정 관념적으로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간주되는 여성으로서의 특질, 혹은 여성적 자아에 대한 인식 등의 뜻을 갖는다. 이것들은 종래의 부르주아지의 대부분을 이루었던 남성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보호하는 숨은 의도를 내포한다. 또 관계지향적인 능력이나 평화주의적 태도 또는 보살핌의 윤리와 같은 자질이나 가치를 나타내는데 사용되는정의가 일반적이다.부계혈통 체제의 경직화와 가문 중시의 현상에 따라 여성의 삶의 통제도 강화되는데, 열녀관과 재가금지, 출가외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근대에 와서도 조선의 가부장제의 구체적 양상이었던 유교이념을 내세운 이념에 따라 ‘현모양처’라는 이데올로기가 더욱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이다. 1910-20년대의 여성 현실은 봉건과 근대의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며, 여성 의식 역시 유교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 사이에 놓여 있었다.조선의 가치관으로 정해진 유교는 여성의 활동 및 신분을 제약했고 여성은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르며 남편 집안의 혈통을 이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여필종부, 남녀칠세부동석, 칠거지악 등의 규율 또한 여성의 삶을 억압한 도덕적 윤리 중 하나이다. 이러한 불평등의 구조는 가족주의로 미화되어 가부장적 여성억압이나 불평등을 전혀 못 느낄 만큼 보편적 이데올로기로 내면화 되었으며 정절, 부덕, 현모양처 등의 이념이 여자의 대표적인 덕목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당시 여성의 있다.
    인문/어학| 2018.11.21| 6페이지| 1,500원| 조회(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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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 박혁거세 신화) 고전 답사 기행 (오릉, 숭덕전, 알영정, 나정)
    - 고전문학명작읽기국어국문학과2011210288 이기호박혁거세 신화를 따라서오릉은 에 보면 박혁거세, 남해왕, 유리왕, 석탈해, 박씨왕을 모시는 곳이다. 석탈해는 없고 5대 파사왕까지와 알영왕비 다섯 개가 있다. 에는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 일주일 뒤에 다섯 조각으로 뿌려졌는데 나라사람들이 모아서 장사를 지내려고 하니까 큰 뱀이 나타나 방해했다고 써져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신의 뜻이라 여겨 다섯 조각을 각기 묻었고 뱀 사를 사용한 사릉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의 기록을 따라 오릉이라 부른다. 뱀은 징그러운 동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뱀을 땅의 신이라 여겼다. 닭의 의미 또한 현재에는 새벽을 알리는 의미로 쓰일 뿐이지만 당시 김알지 탄생설화에서처럼 신의 강림을 뜻하기도 했다. 어둠과 귀신이 달아나는 신성한 의미를 갖기도 하며 즉 신성성과 밝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오릉은 앞쪽 3개와 뒤쪽 2개로 구성된다. 무덤이 크지만 아무런 장식이 없으니 흙이 많이 밀려 내려간다. 무열왕릉에 가면 굵은 돌들을 촘촘하게 둘러놓아서 흘러내리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봉분만 크게 만든 것이다. 31대 신문왕 쪽에 가면 돌을 벽돌처럼 잘라 5단으로 쌓고 삼각형 받침대를 다듬어서 만들어 놓았는데 훨씬 튼튼하다. 더욱 발전한 형태로는 김유신 장군묘, 경덕왕릉 등이 있다. 돌을 둥그스름 돌리고 넓은 돌을 깔고 좁은 돌과 12지상을 조각해 놓는다. 12지상은 중국의 은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무덤의 인물을 수호한다는 뜻에서 12방향으로 방위를 지키는 방위신의 역할을 한다. 탱석은 안쪽 깊숙이 돌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신라에서 12지는 33대 성덕왕 때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는 왕권이 안정적인 시기로 국력의 강화와 약화에 따른 무덤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성덕왕릉은 독립적으로 되어있으며, 12지가 목이 잘리고 없어진 것도 있는 반면 김유신, 경덕왕릉 쪽에 가면 돌을 직접 조각하여 붙인 것을 볼 수 있다.-숭덕전신라는 박씨, 석씨, 김씨, 3개 성씨가 왕위에 올랐었으며 박씨가 10명, 석씨가 8명, 김씨가 38명이 있다. 숭덕전은 박씨왕을 모시는 곳이다. 숭혜전은 김씨, 숭신전은 석씨왕을 모시는 곳으로 숭혜전은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시대 사묘재실이고, 숭신전은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다. 1906년부터는 신라의 3성 시조 임금(박, 석, 김)을 같이 모셨고 이때부터 ‘숭신전’이라고 불렀다.-알영정에 따르면 알영왕비는 우물가(알영정)에서 계룡이 나타났고, 그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입이 닭 부리처럼 태어나서 냇가(발천)에 가서 씻겼더니 부리가 떨어져 나가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발천의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어느 나라나 설화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도의 설화를 보면 브라만 계급은 머리 꼭대기에서 태어나고 크샤트리아는 옆구리에서 태어난다. 석가모니는 왕족이었고 마야부인은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이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가야국의 허황후 설화를 보면 가락, 가야는 아요디아어로 물고기를 뜻하며 허황옥은 아유타국 공주로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는데, 이는 신라도 인도와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할 수 있다.나정오릉 사거리에서 포석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남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 있는 숲이 혁거세가 탄생한 곳으로 전하는 경주 나정(사적 제245호)이라는 우물이 있는 곳이다. 서남산 탑동 일대에는 신라이전 진한 여섯 촌의 시조들을 모신 양산재와 신라의 첫 궁궐터였던 창림사지가 있고, 멀지 않은 곳에 신라 폐망의 현장인 포석정이 함께 있어 신라의 탄생과 멸망을 생각하게 한다. 경주 나정의 자리에는 4개의 초석이 놓여 있어 이곳이 건물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현재는 초석만 있어 어떠한 건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혁거세가 탄생한 경주 나정을 보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 나정 근처에는 박혁거세의 탄생에 관한 것을 기록한 시조탄강유허비가 있다. 순조 2년(1802)에 직제학 남공철(1760~1840)이 비문을 지은 것을 경주 부윤 최헌중이 쓰고, 박광검, 박사로 등이 세웠다. 현재 비각에 있는 것은 1802년에 세운 것이 아니라 1926년에 비문의 글자가 훼손되고 떨어져 나간 것을 참봉 박희동이 자비를 들여 세운 것이다. 비문에 의하면 남공철이 영남을 두루 살필 때에 박씨(朴氏) 일족(一族)들이 그에게 청하기를 '옛 사람들이 우물을 메워버려 그 전하는 바를 잃어버렸다'고 하며 혁거세의 탄생 자취를 기념하는 비문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물이란 진실로 그 전하는 바가 의심스러운 것이기는 하나 현지에 가서 생각해보니 왕의 자취와 조상의 공덕(功德)이 모두 근본에서 연유한 것이라 그 후세를 위하여 어찌 버릴 것인가' 라는 비문이 지어지게 되었다.나정에는 현재 신라초기 우물과 건물의 흔적인 구상유구등의 유적이 발견되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실존 인물이라고 쓴 의 초기 기록을 뒷받침하는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신라본기에는 “기원전 69년 사로국의 6촌장이 나정 근처에 하늘로부터 신기한 빛이 비추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가니 큰 알이 하나 있었고, 알을 깨고 사내아이(박혁거세)가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제 2대 남해차차웅3년조에는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제21대 소지마립간 9년조에는 “나정에 신궁을 세웠다.”고 적혀있다. 기원전 1세기 조양동 고분에서 는 철제 무기와 말과 관련된 유물이 다수 발굴돼 박혁거세 집단이 선진 문화를 갖고 온 이주민 세력이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인문/어학| 2018.11.21| 6페이지| 1,500원| 조회(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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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창작
    티눈어느 날너는 나에게 왔다너는나에게 뿌리를 내렸고너는 작지만나에게 깊이 박혔다남들 보기에하찮아 보이는너는나에게 고통을 주었다.아프게 박힌너를잘라내 보지만,너는금세 나에게다시 뿌리를 내렸다.
    독후감/창작| 2018.11.21| 1페이지| 1,000원| 조회(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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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의 사상과 문화 (불교, 유교, 주자학)
    경주의 사상과 문화불교/ 유교적 가치관이 정립되기 이전까지 영향력 행사. 고구려-> 백제-> 신라 순서로 계승되었다. 불교는 5승과 3승으로 3도(유, 불, 도)를 엮으려 하였고 3승은 보살승(타인의 구원에 대한 것), 성문승(성문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부처의 가르침), 연각승(홀로 깨우친다는 연기법)이며 5승은 천승과 인승으로 윤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무당과 같은 것들을 승려가 대신함) 인승은 사회 윤리, 천승은 자연과 신에 대한 것이다.(중국의 ‘기’의 개념으로 천승을 이해) 화엄에서 ‘이’를 가져와 주자의 이기론을 완성시킨 것이다.도리사 창건과 관련한 아도와 묵호자는 공주의 병을 고치는데 향을 사용했다.(승려의 무당역할)-원광진평왕대의 원광은 중국 가기 전 삼기산에서 수행을 하다가 수나라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수나라 황제에게 고구려를 막아달라는 걸사표를 올렸다. 원광은 이후 세속 5계를 신라에 전파한다.1 사군이충(事君以忠, 임금을 충성으로 섬김)2 사친이효(事親以孝, 부모를 효로 섬김)3 교우이신(交友以信, 친구는 믿음으로 사귐)4 살생유택(殺生有擇, 생명을 죽일 때는 가림이 있어야 함)5 임전무퇴(臨戰無退, 전투에 임해서는 물러나지 않음)1 ?3 까지는 유교 윤리에 관한 것이며, 4 는 불교 사상이 반영된 것이고, 5 는 당시 신라의 과제였던 통일 전쟁에 관한 내용이다.-자장 (호국호법과 화엄의 시작)자장은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던 중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오대산을 갔다. 문수보살이 왜 왔느냐 하자 자장은 첫 째로 깨달음을 얻고자 왔으며 둘째로 국가가 걱정되어 왔다고 했다. 이후 황룡사 9층탑을 세우면 주변 9국이 침략을 못할 것이라 하였고, 용을 위해 절을 세우라 하여 태화사를 창건했다. 이후 깨달음을 얻고 중국에서 진신사리를 모셔와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만들었다. 신라 호국 호법의 기틀을 만든 것이다.삼국유사의 기록은 오대산을 먼저 갔다고 하지만 찰주본기에는 황제를 먼저 보러 갔다고 한다. 신라는 자장을 통해 외교한 것이며 이후 불교의 영향이 라에서 화엄을 들여와 사상을 정파하고 강연했으며 자장 정률을 세웠다. 이것은 후에 의상의 화엄과도 이어진다.-선덕여왕 사천왕사지, 도리천불교에서 불계는 보살계, 연각계, 성문계가 있다. 육도는 천계, 수라계, 인간계, 아귀계, 축생계, 지옥이 있고 천계는 정신의 무색계, 정신과 육체의 색계, 정신과 육체와 욕망의 욕계라는 3계로 나뉜다. 삼악도 중 하나인 지옥은 8열 지옥으로 나뉘며 각각 16유중 지옥이 존재하여 총 136지옥이 있다.‘도리’는 33의 음사이며 33천으로 의역한다.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제석천의 천궁이 있다. 사방에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8천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쳐 33천이 된다. 대승불교 정토사상은 도리천 사상의 발전 형태이다.제석천은 지배자가 있는 곳으로 일연은 단군을 제석신이라고 했다. 도리천은 수미산에 있으며 수미산 앞에는 그 각각의 방위에서 수호하는 호법신인 사천왕이 존재한다. 그 이름은 사대천왕, 또는 호세사천왕이라고도 한다. 욕계육천의 최하위를 차지하며 불법 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을 말한다. 부하로는 견수, 지만, 항교가 있고 이들은 수미산 아래에 위치한다.선덕여왕은 자신의 죽을날을 예언하고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 도리천은 불교상 하늘에 있는 것이며 지상에는 없는 것이었다. 이에 선덕여왕은 경주 낭산 중턱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하는데 후에 낭산 앞에 사천왕사가 지어지며 낭산은 경주의 우주축이자 수미산을 의미하게 된다.한국의 사리수용-한국의 사리 수용은 신라시대 진흥왕 10년 양나라 사신이 불사리를 보내니 왕이 백관으로 하여 흥륜사 앞길에서 받들어 맞이하게 했다. 이후 불사리는 흥륜사에 봉안되었다.선덕여왕 5년 자장은 당나라 오대산 태화지에서 불정골과 치사리(치아사리)를 얻어 신라에 돌아온 후 5대 보궁을 만들고 적멸보궁을 지어 사리를 모셨다.전신사리는 죽기전에 낳는 것, 쇄신사리는 빻은 것으 혜공의 변과 관련한 설화가 있는 오어사에서 수행하였다. 원효의 사상은 돈황 고문서 더미에서도 필사본이 발견되어 중국 끝까지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고, 자기 체험으로 이뤄낸 출세간과 출출세간이라는 세속에서 벗어나 중이 되고, 한번 더 벗어난다는 공의 개념을 실천 해냈다.통일 전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열세였다. 백제와 고구려에 둘러싸여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힘든 지리적 위치에 왜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이다. 지배계층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불교 미륵사상과 전륜성왕의 이상적 지도자를 내세워 대중들을 이끌어 가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효는 지배계층 중심의 불교에서 벗어나 희생만을 강요받았던 대중을 위한 불교로 전환 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따라 하기 쉬운 정토사상으로 실천을 하였는데 이때 대중 속에 들어가 노래하고 춤을 춘 모습인 무애사상이 오늘까지 회자되고 있다.정토는 극락을 의미하며 나무아미타불에서 나미는 인도어로 귀의(돌아가 의지하다)를 뜻하고 아미타불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이러한 실천 중 하나로 회통불교의 특징을 정립하였는데 모든 불교 사상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었다. 이후 의상에 의해 화엄사상이 이루어지게 된다.현대사회와 원효원효의 사상은 일심과 화쟁, 무애 사상으로 나눌 수 있다. 현대와 일심사상의 관계를 보자면 현대사회가 소유를 통한 차별기호를 강조함으로써 존재방식을 망각하는 것을 소유를 존재로 착각하고 있음을 마음의 심층의식에서 깨달아 존재적 방식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현대와 화쟁사상 에서는 이념과 현실의 상반된 주장들의 대립을 자신의 존재를 인식 한대로 상대도 똑같이 이해하고 그 특성을 인정함으로써 대립과 갈등을 한층 높은 차원에서 조화와 융화로 전환시키는 것이다.현대와 무애사상은 현대사회가 조직의 효율성을 강조함에 따라 대중들은 자신의 영역을 제한하고 안주하기 쉬운 것을 소유에서 존재로의 자각과 상대와의 조화를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제한된 나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일심은 참되게 항상 똑같다는 진의언진여로 나뉜다. 생멸문은 중생에서 부처가 되겠다는 깨달음을 말한다.화쟁은 지혜로 저술활동을 통해 이룩하였으며 무애는 장애가 없다는 것이다. 중생구제를 통한 교화 활동으로 자비를 말했다. 무애에서 2가지 장애는 삶의 번뇌장과 앎의 소지장으로 나눌 수 있다.의상은 경주 진골출생으로 원효가 6두품이었던 것과 차이를 보인다. 황복사에서 출가하여 원효와 1, 2차 유학에 동행하고 지엄의 화엄종을 배운다. 의상은 귀국 당시 당의 침략을 알리기도 하였고 낙산사와 관음굴에 관련하여 원효와 관음송에 관한 설화가 전해진다. 이후 부석사에서 제자 양성에 힘썼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온다는 정반합의 이론, 화엄일승법계도를 통해 화엄사상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형상화시켰다. (프린트)-법성게법성게는 화엄을 24자로 만든 것이며 화엄승법게도 라고도 한다. 사물이라는 형태들의 본 모습은 원융=화엄(통합)하여 두 모습이 아니다. 본래는 원융이며 그 예로 서양 철학은 본래 종합적 성격이었으나 쪼개져 나온 것으로 들 수 있다. 화엄은 전체의 관점(법성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의 본질이 같다는 무애사상과 통하며 본질은 불변하나 현상은 유변한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깨달아야 알게되는 경지이다.‘이’는 작용성이 없고 ‘기’는 작용성이 있다고 율곡이 말한바 있다. 퇴계는 이가 움직이는 이묘, 그리고 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며 기 안에서 움직인다는 이기지묘를 제시하여 묘는 관계성 속 성질이 모순된다는 것, 모순성들은 언어로 설명이 안 되고 체험해야 한다 했다. 즉 주관적 요소가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휴대폰과 그 속의 세상 모든 정보가 집약된 것을 작은 티끌 하나가 시발세계를 머금었다 할 수 있으며 무한대적 시간 개념은 곧 찰나이며 그것이 다시 억겁의 세월이라는 말과 같다. 이는 가상공간이 시공간을 압축시키며 가상공간의 증가는 경험의 증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성이 출발한 순간 부처의 완성이다. 또한 열반과 불변, 삶과 죽음은 조화를 이루고 이것에 몰입하면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게도는 하나가 여럿에 있고 여럿이 하나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석굴암과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제석천의 천신을 의미하고 금강불을 들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 등은 화엄사상에 입각한 상징물이다.목우도, 심우도, 선, 화엄과 선사상의 설명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의 일종이다. 열 단계의 장면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십우도라 부르기도 한다. 심우도는 언어와 어떤 이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부처님이 가르친 언어 밖의 의미를 되새겨 사람 마음의 실상을 찾아 부처가 되는 것, 그 이상과 원리로 삼는 선의 종지를 담고 있다. 화면의 전개는 차례대로 수행 단계를 밟아 서서히 높은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1. 소를 찾아 나서다. 2. 소의 발자취를 발견하다. 3. 소를 찾다. 4. 소를 얻다. 5. 소를 길들이다. 6.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다. 7. 소에 대한 모든 것을 잊은 채 앉아 있다. 8. 모두가 공이라는 깨달음을 원상으로 나타내다. 9.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산수풍경으로 나타내다. 10. 중생 제도를 위해 석장을 짚고 저잣으로 나서다.이론적 화엄에서 선사상의 실천화엄에서 하나 속에 모두가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가르침은 한 순간이 곧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라는 것을 말하고 이것은 선 사상에서 돈이 분별없는 이 순간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두 여주인공의 삶에서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고자 하나, 방법에 있어서는 달랐다. 한 여승은 불교신앙 속에서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데 반해, 다른 여승은 불교 신앙 밖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의 자비심으로 베풀고자 했다. 영화가 비록 자신을 위한 지혜의 추구와 타인을 위한 자비의 실천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지만, 지혜와 자비를 어떻게 조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점을 동시에 제시한다 하겠다.돈오 돈수라는 선사상의 특징돈오 돈수는 한번 깨닫고 나면 더 닦을 것이 없다. 만약 다시
    인문/어학| 2018.11.21| 6페이지| 1,500원| 조회(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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