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系統에 관해 서술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한국어의 계통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비교방법이 유용하다. 비교방법이란, 둘 혹은 그 이상의 언어 사이에 친족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공통조어를 찾는 것으로 공통조어로 부터의 분화와 공통조어의 모습, 각 언어의 발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비교방법을 통해 봤을 때 한국어의 계통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우랄.알타이어족 가설과 일본어와의 동계설이다.우랄 알타이어족과 한국어 사이에는 몇 가지 현저한 구조적 일치가 나타난다. 모음조화, 접속사나 관계대명사의 부재, 부동사의 사용, 자음교체 및 모음교체가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지 않는다, 어두자음의 제약, 문법적 교착성이 그것이다. 모음조화의 경우 전설모음과 후설모음이 동시에 나타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찰싹찰싹과 철썩철썩의 차이이다. 접속사나 관계대명사의 부재는 부동사의 사용으로 이어진다. 문장을 이어주기 위해서 동사의 부동사형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문법적 교착성으로 인해 한국어와 우랄 알타이어족은 단어의 파생과 굴절이 접미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어간과 접미사의 연결이 기계적이다. 모음교체나 자음교체가 문법적인 기능을 가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음이 교체되면 울다-웃다로 의미가 바뀌지만 영어는 sing sang과 같이 의미가 동일하다. 마지막으로 어두자음의 제약은 어두자음군에서 유음의 회피를 말한다. 그러나 한국어와는 달리 명사가 조사 없이 주격형으로 쓰인다거나 동사가 어간만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차이를 드러낸다. 또한 이러한 특징은 한국어와 우랄 알타이어족 둘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공통점은 아니기 때문에 친족관계 증명에 있어 무리가 있다.그 자재적 세부를 음운, 문법, 어휘의 순서로 살펴볼 수 있다. 음운의 면에서 두 언어는 모두 전설과 후설모음 양계열의 대립으로 만들어진다. 중세국어의 ‘아래’, ‘말’, ‘믈’이 그와 같은 예이다. 특히 ‘ㅣ’모음의 경우 중세국어의 ‘이랑’에서 볼 수 있듯 대응이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 ‘발’과 같은 단어가 퉁구스 제어와의 일치를 보여주며 수사의 일치는 매우 적다.일본어 와의 동계설은 일본어의 계통을 밝히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그중 북방계설에서 파생된 것이 국어와의 동계설로 위에서 다룬 여섯 가지의 공통점이 이 가설에도 해당된다. 다만, 일본어의 경우 개음절성을 특징으로 하여 모음조화가 불분명하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구조상의 현저한 일치를 보이는 동시에 어휘나 문법의 일치에 있어서는 매우 빈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구조상의 일치를 보이는 언어가 없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이를 통해 생각해봤을 때, 한국어의 계통을 생각함에 있어 비교연구는 그 자료가 빈약하여 뭐라 확정짓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우랄 알타이어족 계통과의 자제적 세부의 일치나 일본어 와의 구조적 일치 등은 친족관계를 의심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그 관계가 자뭇 소원하다고 하겠다.국어의 형성에 대해 서술하시오.한국어는 크게 부여계 언어와 한계언어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부여계 제어가 아직 분리되지 않은 단계를 원시 부여어 라고 하고 한계 제어가 아직 분리되지 않은 단계를 원시 한어라고 하면 고구려가 원시 부여어를 계승했고 백제와 신라가 원시 한어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신라로부터 중세국어가 이어지게 된다.을 살펴보면 ‘부여와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 일이 같다’고 하며, ‘동옥저의 언어법속이 고구려와 같다’고 나타난다. 또한 ‘읍루(숙신의 후예)는 사람이 부여와 같으나 그 말이 다르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고대에 이미 부여계 언어와 퉁구스계 언어에 대한 구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인종적 계통에 따른 것으로 명확한 언어의 계승은 확인되지 않는다. 남쪽으로는 ‘진한과 변한의 언어가 비슷하고 마한의 언어는 이들과 달랐다’ 고 한다. 이 삼한은 후에 백제와 신라로 통합되어 언어의 계승을 이룬다. 다만, 부여계 언어와 한계 언어에 대한 언급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 오늘날 전하는 언어자료의 검토로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을 던져준다. 예를 들어, 고구려어의 ‘매’는 알타이어족 요소를 보여주며 몽골, 에벤키, 일본어 등과 비슷하다. 고구려어의 ‘어을’과 신라의 ‘나을’에서 ‘을’의 일치도 신라어가 중세국어보다 고구려어와 가깝다는 예가 되겠다. 또한 퉁구스제어와의 일치가 나타나 고구려어는 알타이계 언어로 신라와 가깝고 퉁구스제어와도 가까운 일면이 있다고 하겠다. (중세국어의 어사, 엇 등->억지스러운 부분 있음)백제어의 모습은 과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에서 백제의 언어와 복장이 대체로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하며 에서는 ‘왕’을 상층민은 ‘어라하’ 하층민은 ‘건길지’로 나뉘어 표현했다고 한다. 이는 지배족의 언어는 고구려어와 비슷하고 피지배층의 언어는 마한의 언어로 한계 제어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배족의 언어가 피지배족의 언어를 동화시키지 못 하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쳤음을 말해준다. 오늘날의 자료를 보면 백제어는 신라와 가까웠으며 어말모음을 보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백제어의 지명 ‘부리’는 신라어에서 ‘블(火)로 나타나며 ’돌‘을 나타내는 백제어가 ’돌악(진오)‘로 나타나는데 ’진‘을 새김으로 ’돌‘이라 읽는다. 그리고 웅진은 에서 ’고마??(곰나루)‘로 나타나는데 ’고마‘는 중세국어의 ’곰‘에 대응되며 이는 백제어의 잔영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백제어의 경우 그 자료가 적으며 음독과 석독의 대응이 나타난 경우가 드물다.신라어의 경우 책에서는 통일을 한 후 점차적으로 신라어의 영향력을 넓혀갔을 것이라고 하나, 이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아마 중앙어로 생각되는 지역이 이동했을 뿐, 원래의 말과 비슷한 언어생활이 이어졌을 것이다. 을 살펴보면 신라어와 가야어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 역사에 있어 언어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사건이 되겠다.삼국어의 이동은 ‘왕’에 대한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로 고구려는 ‘?ㅣ(개), 부여는 가(可), 백제는 어라’하‘, 몽골은 ’칸‘과 같이 나타난다. 에 백제왕을 ’kisi'로 중세국어의 계속이고 중세국어는 다시 신라어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도의 이동과 같은 지역적 이동만으로 급격히 언어가 변했다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4. 문자체계에 관해 서술하시오한자는 우리가 접한 최초의 문자로 중국과의 언어 접촉에 대한 결과였다. 처음에는 한자를 차용하는 정도였으나 점차적으로 한자 체계를 수용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한자로 중국어를 쓰는 언문이치의 형태가 나타났다. 일찍이 고, 백, 신의 자료를 살펴보면 한문이 나타나는 바 그 사용이 매우 이른 시기부터 나타난다. 이는 한자어가 우리 역사에서 꾸준히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한국어의 방대한 한자어의 양이 존재하는 것도 이러한 영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조상들은 말과 글이 다른 이언어 사용자였으며 문어인 한문의 구어 침투는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이다.한자의 사용을 이어오던 우리 조상들은 고유지명을 우리 식으로 표기하는데 관심을 가진다. (한문은 중국어를 표기하는 방법으로 음절마다 뜻이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의 말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가장 처음에 시작된 것이 ‘한자 차용 표기법’이다. ‘한자 차용 표기법’은 한자의 표의적 기능과 표음적 기능 중 하나만을 선택해 표기한 것이다. 표의 기능을 선택한 것을 석독, 표음기능을 선택한 것을 음독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매홀 일운 수성’이라는 문장에서 ‘수성’은 원래의 발음과는 상관없이 그 뜻을 가져온 것이고 ‘매홀’은 한자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음이 같은 한자를 가져온 것이다. 둘 다 본질적으로는 같은 대상을 나타내지만 표기법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중국도 외국의 고유명사를 음독으로 해결하였는데, 석독은 우리의 독창적인 표기법으로 아마 음독에서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더 후기에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은 보통 음독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는 신라 경덕왕 때 지명 표기를 한자 2글자로 바꾼 것에서 이어지는 것이다.고유명사 표기에서 발전해 문장을 만들려는 노력에서 이두가 탄생한다. 이두는췄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두는 19세기말까지 아주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이서들 사이에 뿌리박혀 특수한 문어로서 인정받았으며 한문의 후광에 힘입었으며 공사문서에 사용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두는 특수한 문어로 보수적이었으나, 전하는 자료의 태반이 조선의 것이기 때문에 고대의 요소와 후기의 요소를 가려내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구결은 입겾, 입덫의 한자 차용 표기다. 흔히 ‘吐’라고도 한다. 15세기의 과 초기의 에 나타난다. 구결은 한문을 읽을 때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기 위한 요소이다. 이두에서도 쓰인 ‘위, 미, 은, 라’ 이외에도 구결은 독창적으로 주격과 처격을 표시하는 ‘이,애’가 있었다. 둘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나 차이도 있었던 것이다. 구결은 대부분 한문 원본에 써넣어 약체자로 기록되었으며 에서 발견한 을 통해 옛날에는 한문을 국어로 새겨 풀어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서를 횡서로 고치고 오른쪽의 구결자는 위에 왼쪽의 구결자는 아래에 옮겨 놓았다. 또한 약체자를 본자로 고쳐 써 놓았다. 이 석독구결의 형태를 나타낸다면 의 경우에는 음독구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향찰은 신라에 있어 한자를 이용해 자국어를 표기하려는 노력이다. 향찰은 새로운 원리가 아닌 고유 명사 표기법과 이두 및 구결의 확대라고 볼 수 있다. 신라시대의 향찰은 향가의 표기 외에는 그 자료가 보이지 않으며 이전에도 쓰였을 수는 있지만, 일반화되기는 통일신라에 들어서 향가 문학이 무르익게 된 때였을 것이다. 향찰은 실질적 의미는 석독표기로 문법적 요소는 음독표기로 했는데, 이것은 매우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고려 초엽 이후로는 소멸의 길을 밟았다. (더군다나 국어의 음절 구조가 복잡하고 수가 많아 한자로는 도저히 만족스럽게 표기할 수 없었다.)이러한 흐름에서 훈민정음의 창제는 국어의 문자화를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한자와는 달리 음소적 문자체계로 에 창제의 취지가 등장한다. 훈민정음은 그 독창성과 과학성이 주목할 만하다. 보통은 기존의 문자를 다소되었다.
「고전문학사에서 최치원이 가지는 시대적 의의 고찰」-한국문학통사 중 최치원 평가 다시 하기-목 차1. 들어가는 말2. 최치원에 대한 기본 입장3. 최치원 분석3.1 최치원 생애 및 역사적 배경3.2 문학작품에 나타난 최치원의 생각3.3 신라 사회 재건을 위한 최치원의 노력4. 최치원에 대한 평가5. 맺는말참고문헌1. 들어가는 말한국문학통사는 한국 문학사 연구에서 금자탑으로 평가되는 대단한 업적이다. 체계적이면서도 방대한 자료를 다루고 있으며, 거시적인 이론을 가지고 미시적인 작품을 분석하는 총체적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시대구분이나 문학 갈래의 차원 등에서 여러 다른 논의가 이루어짐에도 이 책을 대체할 만한 다른 문학사 서술의 등장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세간의 지배적인 평가 역시 이러한 점에서 기인한다.그렇다고 해서 한국문학통사에 등장하는 기술과 견해가 반드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관점과 분석의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체계에서의 전체를 조망하는 대등한 위치까지 가기는 힘들겠지만, 미시적인 차원인 책의 부분에서 자신의 견해를 조금씩 풀어가는 과정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큰 업적을 반박 혹은 동조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공부와 노력은 고전문학사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두루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국문학통사를 읽은 후 책의 저자와는 다른 견해를 가진 지점을 잡고 이를 중심으로 반박의 근거를 제시한 후 필자의 의견을 다루어 볼 예정이다.2. 최치원에 대한 기본 입장‘놀라운 재능을 역사의 방향과 연결시킬 수 없었던 지식인의 본보기를 일찍 보여주었다.’, ‘최치원은 방안에 들어앉아서 역사의 현장을 외면하면서 스스로 고독을 택했다.’ 이것이 한국문학통사에서 최치원에 대한 평가를 간략히 정리하여 보여주는 문구이다.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시대의 흐름에서 지식인으로서 요구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것이다.그러나 필자의 관점에서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공부를물을 평한다는 것은 땅을 보지 않고 나무의 잎새만 따지는 것과 같다. 따라서 최치원에 대한 평가에 앞서 그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는 게 마땅하며, 이는 이후에 살펴볼 여러 자료의 바탕이 될 것이다.최치원은 경문왕 통치 시기에 태어났다. 당시 신라는 파벌 간 세력다툼이 극심하고 지방 세력의 강화로 왕조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12세에는 아버지가 당나라로 유학을 보내며 국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출세를 당나라에 가서 이룩해 누대의 한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중국은 군사적, 학문적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을 보유하고 있었고, 유럽과의 무역 시작, 기독교의 확산 등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르네상스를 보여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최치원이 유학을 통해서만이 실현될 수 있는 굉장히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그 속에서 최치원은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당 황제의 총애 아래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우며 명예와 업적을 동시에 쌓았다. 그리고 그는 당 황실의 대사 직위를 부여받고 신라로 돌아오게 되는데, 역설적이게 이 커다란 명성과 제국으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는 최치원을 좌절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한편, 최치원의 귀국 이후 대외적으로는 궁예나 견훤이 등장하여 신라의 존속을 위협하였다.여러 위기 속에서 그는 신라를 위해 시무책을 올려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고, 「양위표(讓位表)」에서는 시무책 실패 이후 새로운 시대를 위한 개혁정치를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으로 결국 가야산에 은거하게 되고 역사적 추진체로의 역할을 이어가지 못했다. 정리하여보면 신라가 무너져가는 것을 바라만 보기에는 고민이 많았고, 그렇다고 최인연(최언휘)이나 최승우처럼 신라를 버리고 왕건이나 견훤에게 붙을 수는 없었다. 무력하나마 화엄 사상을 기반으로 호국, 우국 사상을 고취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여 훗날 고려의 학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3.2 최치원 문학에 나타난 의식현재까지 전해지는 최치원의 시는 126수이다. 필자는 이 많은 시를 앞서 다루었던 신의 있는 사람으로 비유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시속만을 좇아왔다고 고백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중요한 부분은 끝에 두 구에 있다. ‘乘風破浪(승풍파랑)’의 고사성어를 탄생시킨 종각(宗?)과 영웅 제갈공명을 떠올리며 그와 같은 위업을 이루고 싶다는 웅장한 포부를 드러낸다. 이는 최치원 자신의 원대한 정치적 이상과 포부의 표출로 볼 수 있으며, 신라로 돌아가서 그 이상을 펼치겠다는 결심의 표현이었다.이러한 그의 마음은 현실에서의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좌절하기 시작했다. 애국과 애민의 정신이 여전히 남아 시무책을 제시하기도 하였으나, 계속해서 무산되었던 시기도 이와 일치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古意(고의)’를 들 수 있다.狐能化美女, ?亦作書生 여우도 미녀로 변신할 수 있고, 삵도 서생이 될 수 있다네.誰知異類物, 幻惑同人形 누가 알겠는가. 사람과 다른 짐승들이, 사람과 똑같이 하는 줄을.變化尙非艱, 操心良獨難 몸을 바꾸기야 어려울 것 있으리오, 어려운 건 마음을 잡는 일이지.欲辨眞與僞, 願磨心鏡看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고 싶거든, 마음의 거울 닦고서 비춰 보시기를.이 시는 당시 사회 상황으로 비추었을 때, 진성여왕을 여우에 비유하고 왕과 어울리며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인물들을 각각 삵, 짐승으로 표현하였다.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 아첨하는 무리는 뜻을 펴고 올바른 말을 하는 지식 문인들은 해를 당하자 그런 상황을 풍자·비판한 것이다. 중앙에서 쫒겨 외직을 떠돌고 부패한 사회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인 포부와 이상을 버리지 않고 노력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다.마지막 시기인 은거와 달관의 시기는 대표적 작품인 ‘題伽倻山讀書堂(가야산 독서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狂奔疊石吼重巒 미친 듯 바위에 부딪치며 산을 보고 포효하니人語難分咫尺間 지척 간의 사람의 소리도 알아듣기 어려워라.常恐是非聲到耳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저어해서故敎流水盡籠山 일부러 물을 흘려보내 산을 감싸게 하였다네.속세를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도 여전히 속세의 일로 고노력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라말은 대·내외적으로 혼란이 계속되는 격동의 사회였다. 신라의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후삼국 시대로 나아갔고, 결국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며 점차 안정기를 찾았다. 여기서 고려를 세운 왕건이 추구한 중세의 이념과 유교적 정치이념 역시 최치원이 추구했던 신라 사회의 재건을 위한 노력에서 영향을 받았다.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역시 시무책이 있다. 시무책은 당시의 가장 급한 일에 대한 방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신라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었다. 시무책의 내용을 다루기에 앞서 시무책 작성의 기초가 된 그의 인식을 살펴보자.왕실의 권위는 약해지고 지방 세력들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최치원은 ‘호국’과 ‘덕화정치’를 강조하였다. 군왕은 마땅히 인정(仁政)과 도(道)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지만, 군왕의 교화에 반발하는 자들은 왕도정치 구현을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나라 유학 시절 거대한 반란이었던 황소·천능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작성했던 격황소서(檄黃巢書) 역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최치원에게는 대내적으로 국왕의 통치를 어렵게 하는 호족이나 대외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초적이나 모두 반왕적, 반국가적 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무책은 이와 같은 인식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이다.안타깝게, 최치원의 개혁 사상을 살필 수 있는 시무책은 그 내용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아 본래의 내용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당시의 현실 상황이나 최치원의 정치이념, 성향 등을 고려해 보았을 때, 어떤 내용이 우선으로 다루어졌을지는 추론해볼 수 있다. 앞선 내용에서 최치원의 인식, 역사적 배경, 이념을 살펴본 것도 이와 큰 연관성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최치원의 시무책 내용을 생각해보면, 그 골자는 크게 과거제의 실시, 왕권의 강화, 하급 귀족에 대한 존중, 지방 호족 세력의 억제를 들 수 있다.과거제와 하급 귀족에 대한 존중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최치원 개인의 급 귀족에 대한 존중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데, 골품을 기반으로 한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과거를 통해 강력한 왕권을 실행하고자 했음이다. 결국, 최치원이 주장한 신라 사회의 개혁 방안은 모든 부분에서 긴밀히 연결된 과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최치원의 이러한 노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끝내 좌절하게 하는 커다란 계기로 작용하였다. 비록 왕으로부터 아찬과 같은 직위를 받기는 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호족 세력들에게 견제를 당하며 설 자리를 잃고 현실적으로도 자신의 노력이 성공할 수 없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치원이 나름대로 신라의 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 여러 영역에서의 방안을 추구했다는 점, 다음 국가로 이어지는 고려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은 충분한 가치를 보여준다.4. 최치원에 대한 평가최치원은 시대와 불화한 비운의 천재였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러 역사적 흐름과 자신을 둘러싼 신분의 한계와 같은 문제로 인해 가진 것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그가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거나 일찍이 뜻을 가지고 유학 대신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신라에 복귀하지 않고 당나라에 남아 자신이 가진 뜻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모든 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나, 분명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 것이다.그러나 누차 밝힌 바와 같이 역사는 하나의 흐름이요, 총체적인 완성이다. 최치원이 지금까지도 이름을 널리 알리고 사랑받는 이유는 그를 둘러싼 퍼즐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최치원이 남긴 여러 결과물과 업적은 긍정적이고 좋은 면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그가 가진 한계나 여러 상황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그가 시대의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좌절하여 은거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작품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의 시대에 태어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보는 최치원 역시 시대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한다.
그 시절, 우리네의 이야기와 마음을 비추는 거울-박지원의 을 읽고 난 후‘당시의 상황과 마음을 대변하는 것‘. 한문학의 특징 중 하나로 이 점은 다른 어떠한 점보다도 한문학이 가지는 유익함과 공감의 의미에 맞닿아 있기에 중요하다. 특히, 한문학은 비록 기록수단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내용은 선조들의 정서와 상황을 대변하고 있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그동안 여러 한시 작품의 감상을 통해서 당대의 시대상, 시인의 심정 혹은 선조들의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조들의 생각과 지혜는 한시에서 뿐만이 아닌 동시대에 기록된 한문 산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에게 교훈과 당대의 모습을 전달해주는 한문 산문을 통해 한시와는 색다른 느낌과 표현을 느껴보고자 한다.그중 박지원의 은 당시 사회상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면서도 시대적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한다. 특히, 신분제 적 상황 속에서의 양반과 평민 마을 부자 사이의 이야기를 골계적 요소와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신분제의 불합리함을 주장하는 것이다.은 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이 지은 단편 한문 소설로써, 그 저작연대는 불분명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야기의 시작은 강원도 정선의 어질지만 가난한 한 양반이 해마다 관곡을 꾸어 먹은 것이 1000석이나 되어 관찰사가 크게 노해 그를 잡아들이라 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양반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갚을 길이 없었는데, 이를 들은 마을의 부자가 양반이 가지는 존귀함과 영화로움을 부럽게 여겨 관곡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들이기로 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시작에서 우리는 이 가지는 골계적 요소와 당시 사회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우선, 양반의 아내는 관곡을 갚지 못하는 그에게 “당신이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였으나 관곡에는 소용이 없구려! 어이구 양반! 양반은커녕 한 푼 어치도 안 되는구려!” 하고 푸념을 한다. 여기서 아내가 말하는 양반은 ‘兩半’(한냥 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분적 양반(兩班)과의 동음이의어 관계를 이용해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관곡을 갚지 못하는 모습은 가난한 몰락 양반의 비참한 모습과 양반 계층의 무능함과도 연관된다. 양반이라는 계급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 또한, 부자가 곡식을 갚고 양반의 신분을 획득하려고 시도하는 것에서 짐작해보면, 당시 조선 사회는 신분제 사회가 확고히 유지되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돈과 같은 외부적 요소에 의해 신분의 이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이야기를 더 살펴보면, 양반의 신분을 산 부자와 평민이 되어버린 양반의 계약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군수가 이를 증명하기 위한 문권을 만들게 된다. 문권의 내용은 양반이 지켜야 할 온갖 형식적인 행동절차와 권리 등과 관련한 기록이었다. 양반이 된 부자는 이를 보고 질색을 하며 이렇게 불편한 점이 아닌 좋은 점을 위주로 문서를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군수는 이를 수용하여 문서의 내용을 새롭게 고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백성을 낼 때, 그 백성이 넷이고, 사민(四民)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선비다. 이것을 양반이라 일컬으니 그 이익이 막대하다. 농사도 하지 말고 장사도 하지 말고 대강 문사(文史)나 섭렵하면 크게는 문과에 오르고 작아도 진사는 된다. …(중략)…궁사(窮士)가 시골에 살아도 오히려 무단(武斷)을 할 수 있다. 이웃집 소로 먼저 밭을 갈고, 마을 일꾼을 데려다 김을 맨들 누가 감히 나를 홀만하게 여기랴. 네 코에 잿물을 붓고 머리끝을 잡아 돌리고 수염을 뽑더라도 감히 원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이르자 부자는 양반의 행위가 마치 도둑놈과 같다고 말하며 양반이 되기를 포기하고 달아난다.우리는 이를 통해 양반 계급의 위선과 평민들에 대한 착취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농사는 짓지 않고 대강 공부만 하여도 된다는 등의 내용은 양반 계급의 무능력한 모습과도 연관되며 당시 계급제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이 부분은 개인적 생각으로, 박지원이 독자들에게 교훈을 잘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설정한 부분이 아닐까 추측된다. 양반이 평민이 되면서 지켜야 할 것에 관한 문서는 없고 양반이 지켜야 할 행동과 그 특권에 관련된 문서만을 보여주면서 신분제 비판의 주제 전달을 강화한 것이다. 그리고 부자의 양반 신분 획득 거절에 결정적 요소를 제공하는 문서를 같은 양반인 군수가 주도했다는 점은 또 다른 골계적 웃음을 만들어 낸다.이와 같은 은 간단하면서도 교묘한 이야기의 설정과 익살스러운 표현으로 조선 후기 양반의 권위에 대한 부당성을 제시하며 신분제를 비판했지만 속된 표현이라 비난받으며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히려 필자는 후대에 와서 이 크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서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내어 전달하려 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박지원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 서민, 평민들의 목소리였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서민의 표현을 빌림으로써, 전달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강화된 것이다. 더하여 이 부분은 계몽의 대상에 포함이 되는 민중들이 보다 편하고 쉽게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하려는 작은 배려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현대 사회와 미디어인터넷 미디어 비평-거대 인터넷 포털의 문제를 중심으로Ⅰ.서론현재 국내의 인터넷 환경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 되어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속도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시장 또한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기술적 환경의 성장과는 달리 인터넷 콘텐츠의 공급자들은 그에 동반하는 큰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원인을 포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한 이래로 인터넷 환경 속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해진 것이 바로 포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포털은 인터넷 콘텐츠들을 모으고, 때로는 생산하기도 하며 여러 정보들을 이어주는 디렉토리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NHN이 운영하는 ‘네이버’가 가장 큰 포털로서 인터넷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네이버는 인터넷 보급 초기에 다음, 파란 등과 같은 다른 포털들과 함께 인터넷 콘텐츠 형성과 문화 보급에 힘을 써 주었으나 현재는 지나치게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한 후에 그 규모를 유지하고 독점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도 시장을 독점한 네이버는 시장 내부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있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편익을 감소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소비자의 선택에 대한 제한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은 멀리서 찾아보지 않아도 기사나 특정한 글에서 댓글이 사라지는 현상이나 포털의 입맛에 따라서 중요도를 매겨 기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상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이 가지는 기능과 영향력을 고려해봤을 때, 이는 언론 통제나 조작의 우려까지 나올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과제를 통해서 필자는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포털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해 고찰하고 비평해 본 후 나름대로의 정리를 통해서 해결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겠다.Ⅱ.본론-우리나라음 그리고 구글과 네이트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조사에 따르면 이 중 네이버는 74% 가량의 포털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다음이 15%, 구글이 5% 가량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네이버는 굉장히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독점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사회의 근간이 되는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 포털이 이 정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의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로도 이해가능하다. 이에 따라 필자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비평하기 위해 인터넷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라는 기업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알아본 후 본격적으로 그 문제점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1) ‘네이버’라는 기업은?네이버는 1999년 설립된 인터넷 서비스 기업으로 게임을 포함한 다양한 인터넷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였다. 초기 회사명은 ‘네이버컴’이었으나 NHN으로 사명을 변경하였고, 이후 게임 관련 사업을 분할하여 NHN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신설했으며 기존 회사인 NHN은 네이버 주식회사로 상호명을 변경하였다. 네이버는 사업 초기에 메일과 카페 등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내세웠던 다음에게 비교열위의 입장에 놓여있었으나, 검색 기능에 집중을 한 결과로서 현재는 한국 포털시장 내에서 1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커져감에 따라 검색 결과의 왜곡, 혹은 조작, 그리고 정치와의 연결을 통한 미디어 권력화를 이루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현재 네이버에 대해서 문제를 인식한 결과로 다양한 비판과 대체 방안에 관해 이야기가 오가고 있으나 그 규모와 영향력으로 인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2) 공정성을 잃은 검색엔진i. 원본 표시네이버의 메인 화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초록색으로 하이라이트 표시된 검색창이다. 그만큼 검색이 네이버의 기능과 관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흔히 여러 가지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영상 등의 다양한 매체를 전달해주고는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상황은, 어떠한 정보가 해당 자료의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 페이지에 우선적으로 나타날 때이다. 무심코 지나치면 특별히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점은 불법복제와 저작권 침해 그리고 윤리 도덕적, 경제적 등의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카피레프트 창작물들의 경우에도, 창작자의 자료가 아무런 출처도 없이 복제된다면 그들의 ‘저작 인격권’을 침해하여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는 이러한 원본 표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 검색 알고리즘의 한계라거나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고 있다는 등의 해명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과거와 비교했을 때 원본이 표시된 게시물의 양이 약간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포털 점유율 1위인 네이버에서 이용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정보도 그에 비례하여 많아지게 됨에 의해 나타나지는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네이버는 어째서 원본 표시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일까? 이것은 기업의 이익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포털이 직접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광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광고창, 광고배너와 같은 것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광고에 대한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페이지 체류 시간’과 ‘페이지 뷰의 수’ 자체를 높여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 네이버는 타 사이트로의 이동을 부추기는 원본 표시와 출처를 없애고, 자체적으로 이를 복사하게끔 유도하여 자사의 페이지에 대한 체류시간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단순히 윤리와 도덕의 문제뿐만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이 결부된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ii. 결과 조작앞서 제시했듯이, 포털은 돈을 벌기 위해 자체 사이트의 점유율과 체류시간을 높여야 한다. 이는 비단 네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해결하려 드러낸다. 보통 구글, 바이두(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그리고 혹은 야후 등과 같은 외국의 대형 포털 사이트의 경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검색엔진의 성능을 높이고 검색 결과의 효율성과 그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검색 사이트라는 본질에 기반을 둔 일반적이고 공정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포털 사이트들의 경우는 이들과 다르다. 그들은 오히려 검색에 소요되는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면서도 불이익적인 처사를 당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먼저 국내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첫 페이지)을 보면, 굉장히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과 포스팅들이 사진과 함께 열거되어 있다. 물론 이 정도까지를 경계로 본다면 현대의 굉장히 많은 인터넷 매체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특정한 국내 포털들로만 한정하여 비판을 할 수는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링크연결이다. 이러한 자극적 게시물을 클릭하게 되었을 경우, 우리는 그 제목과 유사하거나 혹은 아예 관련성이 적은 게시물로 연결되거나 하는 경우를 자주 겪어 보았을 것이다. 즉, A라는 제목의 링크를 첫 화면에서 클릭하였을 경우, 이와 관련된 A’의 게시물에 연결되는 것이 아닌 제목만 유사하거나 내용에서의 관련성이 적은B에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게시물에 대한 조회 수를 증가시키고 그에 관련하여 접근 가능성을 높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이런 링크에 접속했을 때 상단에 뜨는 게시물들이 인기 검색어에 반영된다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포털사들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그들이 원하는 일련의 행동과 가치를 반영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특정 연예인의 사진과 함께 자극적인 제목의 링크를 달아 놓아 사용자들의 유입을 유도할 수 있고 이를 포털사가 원하는 게시물과 연결시켜놓으면 사용자들은 그 게시물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포털사들이 정보 수용의 능동적 주체는 아바타로 만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보았을 때, 해당 링크에 접속을 하게 되면 이를 검색과 관련된 페이지로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다 해도 해당 게시물과 관련된 검색어를 검색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포털은 해당 검색어의 순위를 높일 수 있게 되고, 이는 다시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바와 같이 그들의 이익에 연결된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들어서 국내 포털 사이트들은 사용자가 수행하는 검색의 결과를 조작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사용자들의 주권과 능동성을 침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3) 정보 권력앞선 검색의 결과를 조작하는 국내 포털사들의 경우에서 보았듯, 그들은 사용자들의 행동을 조정하고 유도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관심사로 이끌 수 있다. 이는 인터넷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져가고, 국내 포털을 최대 2개의 회사가 양분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매우 커다란 문제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요즘 연예인들의 연애기사를 꽤나 자주 접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의 기사는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성하고,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이틀이 넘어가도록 실시간 검색어와 인기 검색어에 등재되곤 한다. 그런데 이런 연애기사가 뜰 때, 항상 그 전에 필연적으로 먼저 뜨곤 하는 검색어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치와 관련된 검색어이다. 즉, 정치계에서 좋지 않은 일이 터졌을 때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다른 관심사로 사람들의 이목을 쏠리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는 이러한 실시간 검색어라는 기능이 하나의 정치적 도구를 위한 수단으로 변모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검색을 통해서 정보를 제공해주어야 할 포털이 우리에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에게 있어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처럼 포털사들이 계속해서 권력의 유지에만 머물고 있음에 따라서 그들은 결국 기능적인 측면에다.
서시 - 윤동주시에 대한 감상과 비평에 들어가기 전에 시를 좀 더 올바르게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서시에 관한 전체적인 기본적인 정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목인 서시의 의미는 서문, 즉 머리말에 해당하는 시라는 뜻으로 윤동주 시집 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가장 처음에 서문을 대신하여 나오는 시가 된다. 서시는 윤동주가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그의 생애와 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시는 일제 강점기를 살아왔던 시인이 쓴 작품으로 적극적이지는 않으나 부정적 현실에 대해 소극적인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며 여기서 더 나아가 윤리적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여 희망적인 미래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저항시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서시를 읽어보게 되면 위와 같은 배경적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의지적이고 다짐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지적인 느낌에도 불구하고 별이나 바람 등 자연적 소재를 이용하고 어투가 담담하여 시 자체는 곱고 아름다운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그렇다면 이제 시의 면면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게 되면 시는 3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연은 과거, 미래, 현재를 나타낸다. 첫 연의 경우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소망했던 자신의 과거를 나타내며 두 번째 연은 미래의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끝 연은 다시 고난과 시련이 존재하는 현실을 상징한다. 첫 연에서 나오는 하늘과 바람은 윤리적 삶의 기준에 해당하며 시인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목표와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화자의 심리적 동요를 말한다. 이 첫 연이 의미하는 바는 화자의 소망이나 기준과는 다른 외부적 한계에 의한 자신의 현실 등이 충돌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자신의 외부적 현실에 대한 괴로움을 잎새에 이는 바람으로 표현한 부분은 자연물을 이용해서 서정적이면서도 일상생활 속 사물을 우리의 일생에 빗대어 낸 것으로 독창성의 표현력은 자신의 의지를 잘 나타내면서도 우리의 감수성을 잘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마지막 연에서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와 같이 말을 하며 외부적 자극에 자신의 소망이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는 현실적 상황으로 다시 돌아온다. 필자는 여기서 현실 상황으로 다시 생각이 돌아온 부분이 감수성을 극대화 시키면서도 의지력이 꺾인 것 같아 아쉬움과 감탄이 동시에 들었다.내가 이 시를 비평적 감상을 하기 위해서 선택한 이유는 수업시간에 한 학우가 이 시를 외우는데 그 운율이나 내용이 너무나 아름답게 들려서 언젠가 다시 한 번 개인적으로 접하고 싶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적 배경이 일제강점기라는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저항시들과는 달리 서정적인 느낌이 강하고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홀로 일제 강점기에 어떤 시를 썼을까 하고 가정해보았을 때 나 또한 이 시인처럼 외면적으로 보기에 남성적인 어조로 강하게 말하는 시보다는 좀 더 담담하고 자기 성찰적인 시를 썼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성향이 일치하는 것 외에도 시에서 자신의 소망과 같은 내적인 부분과 일제의 탄압 같은 외적인 부분을 별, 바람, 잎새 등 아름다운 자연물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 나는 특히 감명 깊었다.자화상 - 서정주시의 제목인 자화상은 시인 자신의 살아왔던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에 대한 모습을 시로써 표현해낸 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화상은 근대 역사의 시련기를 배경으로 하여 살았던 시인의 지나온 생애를 보여주고 성찰하고 있으며 끝에는 강한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의지적인 느낌이 강하고 강렬하면서도 대담한 표현들이 많으며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하고 생각을 고백하는 성격이 나타난다. 이 시는 특히 젊었던 작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이고 특색 있는 단어들의 선택이 비유를 잘 나타내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있다. 여기서 농민운동을 바다로 나갔다고 표현한 것이나 그 운동에 참여한 외할아버지와 자신이 닮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그러한 저항적인 의지를 이어받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분은 특히 앞에 갑오년을 적어놓고는 뒷부분은 다른 것에 비유하여 상징적인 의미를 잘 드러내어 비애감이나 의지적인 정서를 한층 더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연에서는 ‘자신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라며 자유롭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죄인이나 천치로 자신을 생각한다 해도 그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기서 죄인이나 천치로 자신에 대한 평가를 표현한 것은 상당히 대담하면서도 솔직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솔직함이 시인이 취하는 당당하고 의지적인 태도를 더욱 부각시켜 주는 느낌을 준다. 끝으로 마지막 연은 고통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여 ‘시의 이슬’과 같은 성과를 얻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병든 수캐’로 구체적으로 비유하고 있다. 필자는 화자가 자신을 병든 수캐에 비유하는 것을 보면서 고통 속에서 의지를 가지고 살아온 화자의 의지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현실의 상황에서 많이 지쳐서 그렇게 비유했다고 생각해서 어둡고 암울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생각한다.이 시를 읽고 난 후 가장 처음 든 나의 생각은 과연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저런 단어 선택으로 그 반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비유하는 모습이나 과거의 삶을 나타내는 부분 그리고 고통 속에서 자신이 얻는 결실을 표현하는 부분 등 비유나 묘사를 위한 단어가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읽는 모습들에서 ‘죄인’, ‘천치’와 같은 솔직한 단어들로 표현한 것이 대담했고 시라고 해서 항상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강렬한 어조는 앞에서 읽었던 윤동주의 서시와는 달리 강한 인상과 심적 이미지를 내게 남기어 시에 끌리게 하는 매력이 음 나오는 시이다. 시의 제목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 그리고 그에 익숙한 자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를 살펴보게 되면 자식과 어머니를 대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통해서 그들의 성격과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주제인 어머니를 주제로 설정하면서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주제로 하는 만큼 다시 한 번 나는 그리고 나의 어머니는 어떠했나에 대해 되돌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시는 네 개의 연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첫 번째 연은 본디 한 몸 이였으나 출산을 통해 다른 몸이 된 어머니와 자식을 두 번째 연은 계속해서 고통을 받는 어머니와 부족함을 느끼는 자식을 다루고 있다. 세 번째 연은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어머니와 받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자식이, 네 번째 연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역지사지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이 나타난다. 첫째 연에서 ‘한 몸’에서 ‘다른 몸’이 되었다는 것은 뱃속에 있다가 태어난 자식을 뜻하는 것인데 간단한 이 비유가 필자는 오히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해와 시에 대한 공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공감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주제와 비유가 서로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대조를 통해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가 확연히 비교가 되고 있다. 주고도 아픈 어머니와 받고도 모자람을 느끼는 자식이라는 짧지만 확실한 대조를 통해서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연의 경우 쓴 것과 단 것이라는 미각적 심상을 이용한 대조를 통해서 희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와 그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자식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무지한 자식을 선명한 대조를 통해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연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역지사지의 입장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통해서 어머니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깨닫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고향을 떠나 혼자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왔던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누구보다 몸으로 잘 느끼고 있어서 그런지 이 시에서 노래하는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잘 와 닿았다. 그리고 만약 나라면 어머니께 이토록 헌신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어머니를 위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 다시금 어머니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당연했다고 생각하던 것을 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에 관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굉장히 소중한 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이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시들보다 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라고 생각한다. 제목에 해당하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에서 ‘그대’를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서 무엇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가을날의 정취와 함께 쓸쓸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느낌 또한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시에서 ‘그대’를 하나는 보이는 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돈’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우선 내용적 측면으로만 보면 시는 두 연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첫 연은 하나의 대상 안에는 하나의 내용이나 본질만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는 그대가 내 안의 이상이나 소망에 흘러와 만나고 있어도 화자는 여전히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나타난다. 첫 연에서 물, 하늘 그리고 나의 안에는 각각 그 자신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나는 이를 통해서 하나의 대상이 포함하고 있는 많은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람들 사이의 관계, 한 사람이 아끼는 물건과 그 사람 사이의 관계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자신의 은밀한 꿈과 만나고 있음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