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해피엔딩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현장감을 불어넣는 마법’영화의 시작과 함께 미타니 코우키 감독은 라디오 스튜디오로 우리들을 끌어당긴다. 녹음 부스에서 성우들이 리허설을 끝마치며 나오는 장면을 카메라가 롱 테이크로 촬영을 하며 영화가 시작된다. 치밀하게 계획된 동선과 대사들을 통해 빈틈없이 진행되는 씬은 방송국의 바쁜 일상에 관객이 속해 있다는 착각까지 들게 만든다. 또한 그 속에 주인공 배우들이 에어컨 온도까지 정하는 스튜디오에서의 영향력, 그런 배우들에게는 비위를 맞춰 주지만 부하 직원에겐 하대하는 우시지마, 작가 일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선 스즈키 미야코, 중간중간 웃음을 잃지 않는 히로세 미츠토시의 능글맞은 성격, 가장 비중이 작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노다 벤 등 롱 테이크 안에 거의 모든 출연자를 출연시킴으로써 그들 사이의 상하관계와 개개인의 개성, 일본의 예절 문화들을 단편적으로 비춰 주기까지 한다. 이러듯 감독은 수많은 정보를 동적인 롱 테이크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전달함과 동시에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누미타니 고우키 감독의 마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음향효과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텝들의 모습을 핸드헬드 쇼트로 촬영하여 상황의 산만함과 급박함을 극대화하여 현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중간중간 나오는 트럭 운전사를 통해 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여준다.‘몰입을 유도하는 사운드와 미장센’이 영화의 사운드는 라디오 드라마라는 특수성을 최대한 살림으로써 관객들에게 몰입감을 더한다. 디제시스 외부의 소리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극 중 라디오 드라마 촬영에 쓰이는 음악과 사운드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한다. 라디오 드라마 촬영 씬이 아니라면, 영화 후반부를 제외하곤 의도적으로 디제시스 내부의 소리 만을 들려주며 현장감을 더한다. 라디오 드라마의 촬영 씬에서는 라디오 드라마에 쓰이는 소리, 특히 음향효과와 함께 음향효과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건의 극적인 해결을 보여줌과 동시에 관객의 몰입감을 더욱더 높여준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의 음악도 라디오 국장인 호리노우치의 캐릭터 성을 잘 살림과 동시에 소소한 재미도 더해준다. 사운드 말고도 화면구성에도 감독의 개성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스튜디오 안에서의 장면들에서 의도적으로 스즈키 미야코를 화면 구석에 위치하거나 가장 먼 곳에 배치함으로써 자기 작품이 마음대로 변질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과 초보 작가에 대한 스텝들의 은은한 무시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후반부에 스즈키 미야코가 메어리 제인과 도날드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거나, 그 외의 자기 작품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자기주장을 할 때도, 의도적으로 화면 중간에 위치시키지 않거나, 화면상에서 다른 권력을 지닌 이들의 뒤에 배치함으로써 초보 작가의 울분 섞인 요구사항이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스즈키 미야코의 캐릭터 성을 활용한 미장센의 화룡점정은 그녀가 화가나 녹음실의 문을 걸어 잠그는 장면이다. 녹음실에서 그녀는 성우의 마이크를 통해 울분을 토해내는데, 이 장면에서 유일하게 스즈키 미야코를 화면 중앙에서 단독으로 촬영하여 비로소 그녀의 목소리가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순간을 표현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줌 쇼트이다. 영화에서 줌 인과 줌 아웃이 자주 사용되는데, 스즈키 미야코의 남편이 시나리오가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알았을 때, 노다 벤이 결국 마지막에 자기 대사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등 줌 인을 사용하여 인물들의 표정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였고, 녹음실 안에서 밖으로 시점이 이동할 때 줌 아웃을 통한 자연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사용했다. 특히 녹음실 안의 스즈키 미야코에서 명대사를 내뱉는 우시지마로 카메라가 줌 인이 되면서 녹음실 밖 인물들의 성격에 따른 표정과 행동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 중 백미이다. 드라마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라디오 국장은 옆에서 담배를, 진심을 전하는 우시지마와 그의 옆에 앉아 결심한 듯한 표현을 짓고 있는 쿠도 마나부, 그 뒤에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과 두 성우, 우시지마를 보고 있는 있는 나가이,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센본 놋코 등 캐릭터의 개성을 이 한 장면에 훌륭하게 담아냈다.‘작품의 뼈대, 뛰어난 캐릭터 성’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캐릭터들의 개성에 있다. 방송국이라는 특별한 배경을 통해 보여지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명확한 인물묘사는 캐릭터에게 생명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그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도록 힘을 부여한다. 과거의 잘나가던 시절의 안하무인인 성격을 버리지 못한 센본 놋코, 그런 그녀에게 반발심을 가지고 멋대로 배역의 설정을 바꾸는 하마무라 죠, 전형직인 중간관리직의 노고를 보여주며 샐러리맨의 비애를 느끼게 하는 우시지마, 각본이 재밌었다고 말하며 남편의 직업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위선적이고 방송에 관심이 없는 라디오 국장 호리노우치, 중간중간 감초 역할을 하는 엉뚱한 방송작가 버키, 성격이 유하고 분위기 메이커인 히로세 미츠토시,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초보작가 스즈키 미야코, 윗선에 굴하지 않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쿠도 마나부 등 단순히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캐릭터 하나 없이, 인물 하나하나에 개성과 그에 맞는 역할들을 부여해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엮어 나간다. 이처럼 매력적이고 명확한 인물묘사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영화 속 수많은 사건의 원동력이 된다. 감독의 뛰어난 인물묘사 덕에 관객은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들의 개성과 성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들이 보여주는 인간미에 더 깊은 울림을 받는다. 특히 영화의 말미에 자기 작품을 지키지 못하는 작가, 서로를 견제하던 배우들, 단순히 맡은 일은 하는 스텝들이 우시지마의 대사처럼, 타협하고 타협해서 자기를 죽여가며 원작가 미야코가 원하던 해피엔딩을 이루어 내는 장면은 그 모든 갈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들을 일망타진하는 멋진 끝내기 홈런이다. 물론 다소 작위적인 결론이지만 말이다.‘일본식 유머, 작위적이고 뻔한 결론’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일본식 코미디의 강요다. 조직사회 속 서열구조, 동료들 간의 견제, 자신만을 생각하고 타인은 무시하는 태도, 보수와 혁신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를 비판하며 코미디 속에 녹여낸 것은 좋았지만, 몇몇 장면들은 코미디가 강요로 느껴졌다. 놋코가 이름을 바꾸는 이유가 복잡한 남자관계에 있다는 것, 하마무라 죠가 배역의 이름을 맥도날드의 포장지를 보고 떠오른 것과 동시에 일본 특유의 발음으로 맥도날드를 읽는 것, 특히 하마무라 죠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우시지마가 슬로우 모션으로 나가이를 껴안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기는 커녕 앞서 올려놓았던 몰입도를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더 나아가 댐 무너지는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찾아간 화장실 옆 칸에서 스즈키 미야코의 남편인 시로가 녹음에 방해를 주자 쿠도가 옆 화장실로 달려가는데, 그 뒤를 따라서 시로가 바지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따라오며 미안하다고 연신 말하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기보단 불쾌함이 느껴졌다. 개그 코드는 사람마다 다르니 넘길 수 있다고 해도, 영화의 결말,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다소 뻔하고 작위적이다.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것뿐이라던 쿠도 마나부가 이전까진 현실과 타협하다가, 왜 자신이 해고될 각오까지 하면서 이번 작품에서 해피엔딩을 위해 노력하는지 동기가 부족하다. 그저 무사안일주의를 비판하며 엎질러진 물을 극적으로 주워 담기 위한 도구로써 적당한 영웅의 탄생으로 느껴졌다. 또한 라디오 드라마 속 맥도날드가 항공사 광고주로 인해 우주비행사가 되어 우주로 날아갔을 때, 우리는 이미 라디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센본 놋코의 독백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것 외에도 음향효과를 만들던 노인이 기계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 노다 벤이 “사랑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대사를 기어코 하는 것(톤을 낮춰야 하냐는 자신의 질문이 무색하게 큰 소리로)들이 작위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몇몇 작위적인 부분들이 영화 초반부터 쌓아 올린, 휴머니즘을 통한 감동을 방해하며, 그것들마저 작위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진정한 해피엔딩’“하인리히 자동차 말인데 그거 수륙양용차였다고 하면 어떨까?” -작중 우시지마의 대사-영화에서 감독의 생각이 가장 잘 투영된 장면은 역시 트럭 운전사가 오열하는 장면이다. 모든 이들의 의견들을 조율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우시지마가 자기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이유를 찾고 있을 때, 방송을 처음부터 듣고 있던 트럭 운전사가 너무 감동한 나머지 방송국까지 트럭을 몰고 와 우시지마와 쿠도 마나부를 붙잡으며 메리 제인을 부르짖으며 오열한다. 그 뒤 우시지마와 쿠도 마나부가 속편에 관해 이야기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비록 작가의 초기 구상은 흔적도 없다시피 망가져 버리고, 맥도날드는 우주에서 살아 돌아온 초인이 되었지만, 결국 모두가 힘을 합쳐 하나의 결말을 만들고, 그 결말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사실은 우시지마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나도 일에서 내 이름을 빼달라고 하고 싶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건 내게 “책임"이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심한 프로그램이라도 제작자는 저예요. 그것에서 도망칠 수는 없어요. 만족스러운 것은 한순간에 탄생하지 않습니다. 타협하고 타협해서 자기를 죽여 가며 작품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하지만 믿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만족스러운 작품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일과 관계된 모든 사람과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다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단지 그것일 뿐입니다.” -작중 우시지마의 대사-누구나 만족할 작품이 되지 못하였어도, 누군가에겐 감동을 주었다면, 언젠가 만족스러운 작품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음을 기약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우시지마에게도, 우리들의 삶에서도 가장 필요하고도 소소한 해피엔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