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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디푸스 왕’에서의 ‘근친살해’의 중요성
    질문 : 소포클레스가 ‘근친살해’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제목 : ‘오이디푸스 왕’에서의 ‘근친살해’ 소재의 중요성발표요지최고의 비극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 소포클레스는 운명에 따라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절망의 끝에 이르러 울부짖으며 자신의 눈을 찔러버리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저술하며 많은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겼다. 본 조의 질문은 이 부친살해라는 소재로부터 시작되었다. 소포클레스는 어떻게 비극을 통해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여운을 이끌어내었으며 이 과정에서 왜 부친살해라는 사건을 작품에 도입하였는가?따라서 본 조는 소포클레스가 비극을 강조하며 얻은 효과와 근친살해라는 소재가 『오이디푸스 왕』에서 도입되어야만 했는지 이 글을 통해 논해보고자 한다.서론요즘은 TV만 켜도 온갖 살인사건들이 뉴스에서 판을 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살인 사건은 언론에서 항상 주목 받아오고 있다. 가족 내의 살인사건은 모두가 알다시피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추세이다. 심지어 올해에는 가족 모두가 모여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설 연휴마저 근친살해가 일어나고 말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다른 살인사건보다 근친 살인사건에 대해 더욱 큰 충격을 받고 관심을 쏟아 붇는다. 이렇듯 여러 살인들 중에서도 본 조가 살펴보고자 하는 살인은 바로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다뤄지는 근친살해다.소포클레스가 저술한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근친살해는 큰 작용을 한다. 주인공인 오이디푸스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정해진 운명에 따라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만다. 종국에 자신이 아버지를 살인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는 운명과 삶에 대한 상실감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러한 책의 줄거리를 보았을 때 책 속에서 근친 살해라는 요소는 아주 큰 비극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 왕』을 저술한 그리스의 대표 비극소설 작가인 소포클레스는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러한 요소를 소설 속에 침투시킨 것일까?본 조의 발제문은 이러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본 조는 “소포클레스가 ‘근친살해’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제문을 진행하고자 한다.본론1 - 소포클레스가 비극을 도입한 이유본 조는 소포클레스가 왜 그의 작품에서 근친살해를 강조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에 있어서 첫 번째로 소포클레스가 왜 비극예술을 강조했는가에 대해 밝히고, 그 이후에 그가 텍스트에서 근친살해를 강조한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비극’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세 명의 그리스 비극 작가로서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를 소개한다. 이 중에서도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은 가장 완벽한 비극이라고 극찬한다. 현존하는 작품은 7편뿐이지만 생전에 그는 총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비극 경연대회에서도 수차례 우승하는 등 비극작품에 있어서 독보적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슬픔은 한결같은 사람에게 흔들림을 가르쳐준다.(Grief teaches the steadiest minds to waver.)“-Antigone (The Theban Plays, #3)위의 구절은 소포클레스가 왜 비극을 강조하였는지에 대해 알 수 있게 해준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일반적 소설 구성 속에서 텍스트를 받아드리는 수용자는 절정에서 치솟았던 감정의 팽창이 결말에서 확 풀리게 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한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문학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는데, 문학적으로는 ‘비극(悲劇) 속의 연민과 공포를 통해서 마음이 정화되고 쾌감을 느끼는 일’을 뜻한다. 소위 말하는 ‘해피엔딩’의 결말 또한 독자들에게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극의 결말이 더 큰 충격과 여운을 안겨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 예로, 방영 당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이라는 시트콤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신세경(극 중 신세경)과 최다니엘(극 중 이지훈)은 차를 타고 가던 도중 사고가 나 사망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결말은 아직까지도 충격적 결말로 회자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처럼 카타르시스나 비극적 결말로 독자들이 얻게 되는 충격 등의 복합적 이유로 인해 문학의 감흥이 수용자에게 더 크게 다가오게 된다. 따라서 본 조는 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이러한 비극을 강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고려하여 비극적 텍스트를 작성했다고 보는 바이다. 비극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소재는 많다. 그런데 왜 소포클레스는 하필 ‘근친살해’를 선택했을까?그의 현존하는 작품 7편에는 모두 ‘신탁’이 등장하며 신탁이라는 것은 ‘운명’과 연관된다. 소포클레스가 운명론자였는가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그가 작품 내에서 운명을 인간 삶의 기저에 무한하게 깃들인 서술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인간의 운명 중에서 가장 불가항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포클레스는 이러한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비극인 ‘근친살해’를 주요 설정으로 사용함으로써 운명에 따라오는 비극이 얼마나 지독한지를 전하고 있다.본론2 - 오이디푸스왕에서 근친살해라는 요소의 역할(1) 진실을 알아가며 결국 파멸하는 개인의 모습을 드러낸다.작품 속에서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와 대화를 하던 도중 라이오스의 예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의심이 가는 부분을 시작으로 하나씩 진실을 파헤쳐간다. 진실을 알아내는 도중 여러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자 진실을 파헤친다. 증인들과 증언들을 통해 하나씩 진실이 밝혀질수록 자신이 라이오스의 아들이며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는데, 엄습하는 불길함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멈추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파헤친다. 진실의 끝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결국 알게되고 자신의 눈을 찌르며 파멸에 이른다. 이처럼 우리는 한 개인이 자신의 숨겨진 진실을 알아가면서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이오카스테] 제발 부탁이니 그대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신다면 그렇게 들춰내는 일일랑 그만두세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군요[오이디푸스] 염려 마시오. 내가 설사 삼대째 내려오는 노예의 자식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그대의 고귀한 출생이 의심 받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이오카스테] 하지만 내 말을 들으세요. 제발 그렇게 하지 마세요. 부탁 드립니다[오이디푸스] 그대의 그런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소. 나는 진실을 알아야겠소.(...)[이오카스테] 오오 불행한 분 그대가 누구인지 결코 알게 되지 않기를!이렇게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진실을 알고자 한다. 후에 이오카스테처럼 목자 또한 오이디푸스를 말리지만 결국 모든 얘기는 밝혀지게 된다.[오이디푸스] 아우와 아우와 모든 예언이 이루어졌고 모든 것이 밝혀졌도다! 오오 빛이여, 내가 너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 되게 해다오! 나야말로 저주 속에 태어나서 결혼해서는 안 될 사람과 결혼하고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구나!결국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저주 속에 태어났음을 언급하며 자신의 불행한 삶에 대해 통탄하는 부분이다. 진실을 하나씩 알아가며 흐릿했던 부분이 조금씩 선명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은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서 결국엔 진실의 끝에서 절망하고 한탄한다.그리고는 계속해서 여러 번 자신의 눈을 찌르셨습니다. 그때마다 눈에서 피가 흘러 수염을 적셨습니다. 우박이 떨어진 듯 검은 피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리하여 무서운 재앙이 남편과 아내를 한꺼번에 덮쳤던 것입니다. 그 분들이 누렸던 지난날의 행복은 이제 비탄과 죽음과 치욕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어머니이자 부인인 이오카스테의 죽음과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전부 다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결국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절망의 끝에서 울부짖으며 자신의 눈을 찌르며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삶으로 만든다. 결국 스스로가 파멸의 끝으로 자신을 끌고 갔던 것이다.이렇듯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비밀을 알아가면서 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근친살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오이디푸스가 느끼는 충격과 절망을 느끼며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개인의 비극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고, 소포클레스가 작품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2) 한 가문의 연쇄적인 비극을 드러낸다.앞서 서론에서 언급된 예시에서도 볼 수 있듯, 근친살해라는 사건은 한 가족 전체를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 『오이디푸스왕』에서 자신의 아들이 자신의 전 남편을 죽였고 현재 자신의 남편이 된 것을 알게 된 이오카스테는 그 소식을 듣고 목숨을 끊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오이디푸스로부터 시작된 비극은 가문 전체로 퍼져나간다. 가족 구성원 한 사람의 비극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오이디푸스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가 그의 딸들에게 좌절 섞인 말을 건네는 장면을 살펴보면 이것이 잘 드러난다.[오이디푸스] 너희가 시민들의 어떤 모임에, 어떤 축제에 가겠느냐? 거기서 구경은커녕 흐느끼며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너희가 결혼할 나이에 이르렀을 때는, 얘들아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비난거리를 데려갈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나의 후손들과 너희들 모두에게 독이 될 비난거리를?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딸들을 ‘비난거리’라고 칭하며 앞으로 있게 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딸들이 살아갈 환경을 걱정하며 한탄하고 절망한다. 특히 모임과 축제에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 하는 대목은 살인이 일어난 집안의 딸들이 사회적인 무리나 행사에 참여하기 어려움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단위일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연대보다 가장 강한 연대의식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이기에 다른 어떤 사람이나 집단보다 무거운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죄가 가족 내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더욱 이 가정을 소외시킬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독후감/창작| 2020.04.14| 5페이지| 3,000원| 조회(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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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이디푸스왕 발제문- 운명을 통해 바라본 인간 평가A+최고예요
    질문 : 우리의 삶에 정해진 운명은 존재하는 가?제목 :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을 통해 바라본 인간의 운명발표요지‘오이디푸스 왕’에서 살펴본 고대 그리스 인간들은 예언자를 통해 들은 신탁, 즉 신에 의해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삶을 산다. 소포클레스는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이 누구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운명은 인간을 넘어 신이 정한 것이며, 운명의 틀 안에 묶여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을 보여준다. 본 조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사람의 의지와 그에 따른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본 조는 이에 대한 답으로 현대에는 고대와 다르게, 자신의 운명을 궁금해하기는 하지만 이는 단순히 호기심일 뿐이고, ‘정해진 운명’이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의지론적인 태도로 산다고 판단했다.본 조는 본론1과 본론2에서 운명론이 절대적 이였던 고대 그리스 시대 (‘오이디푸스 왕’ 극 중 배경)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다루어 설명하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없다고 이유’에 대해 본론3에서 운명론’의 한계를 분석해 보고자한다.서론오이디푸스는 부모가 자신의 이름이 붙이기도 전에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운명이란 아폴론의 신탁을 받게 됨으로써 그의 부모로부터 버려진다.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우연한 기회로 인해 그의 신탁을 듣게 된다. 그는 이 신탁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코린토스를 떠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신탁대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고,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 예언의 신인 아폴론의 신전에 가서 신탁을 받았다. 현대의 우리는 사주, 타로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의 미래를 엿보려 한다. 이는 보통 호기심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단순히 흥미나 재미를 위해 사용된다. 이를 맹신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거액을 들여서 유명한 점집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신탁과는 다르지만, 현대의 사람들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어 하며, 미래를 점친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믿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기 마련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자신에게 어떠한 선택지가 놓여있다면, 그 결과와 연관이 있는 선택지는 피하려고도 한다.본 조는 ‘오이디푸스 왕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은 그러한 운명을 가지고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에 대하여 ‘세상만사가 미리 정해진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라는‘운명론’과 그와 반대로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과 결정이 가능하다.’라는 ‘자유의지론’을 비교 분석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또 두 학설을 오이디푸스 왕의 삶과 현대의 우리의 삶에 대입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인간 삶에 존재하는지, 혹은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해 논증하고 자 한다.본론Ⅰ 오이디푸스 왕과 운명론작품 오이디푸스 왕에서 ‘운명’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되듯이 우리는 실생활에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운명’의 정의는 원래 정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이의 사고방식을 ‘운명론’이라고 한다. ‘운명론’은 숙명론으로도 불리며, 세상의 사건은 모두 미리 정해져 있기에 인간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이론이다. 운명론의 특징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명론자들의 삶음 수동적이고 반능력주의적이다. 운명론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가설에 가까운 형이상학적이다.그리스의 ‘호메로스’는 모든 인간사를 신의에 종속시키는 비인격적인 힘을 믿고 그것을 ‘모이라’라고 불렀다. ‘모이라’는 그리스어로 ‘배당’ 또는 ‘수명’이라는 뜻인데 운명의 여신으로 의인화되었다. 운명의 여신은 보통 세 자매로 알려졌는데 세 자매들 중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뽑아내는 여신, ‘라케시스’는 인간에게 운명을 배당하는 여신, ‘아트로포스’는 운명의 실을 가위로 끊는 여신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와 같은 경우는 운명의 힘이 어떤 초월적인 것으로 의인화된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인의 일반적 신앙에 따르면 모든 것은 신들의 손안에 있으며 운명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의 ‘몫’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변경시킬 수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이다.“(중략) 한데 포이보스는 내가 찾아간 용건에 대해서는 나를 무시하여 돌려보내면서, 불쌍한 내게 다른 무섭고 불운한 것들을 던져 주었고, 내가 어머니와 몸을 섞게 될 것이며, 인간들이 참고 볼 수 없는 자손을 낳게 될 것이고, 내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를 살해하리라는 거요. 그래서 나는 이 말을 귀여겨듣고, 그 이후로 별들을 보고 멀리서 거리를 재면서 코린토스 땅을 피해 다녔소. 사악한 신탁이 내게 정해 준 수치스러운 일이 결코 이뤄지지 않을 곳으로 말이오...(후략)”(p. 70-71)그는 델포이에 갔다가 우연히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코린토스를 피해 다녔노라고 술회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를 살해한다.예언대로 그의 삶이 흘러갔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 작품이 운명론을 설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이 작품은 운명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코린토스 사자가 자신이 테바이에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그렇고, 특히 오이디푸스가 눈을 찌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그렇다. 자신이 저승에서 부모님을 뵐 면복이 없어서 스스로 눈을 찔렀다는 것이다. 그의 자발적 실명, 이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 제 손을 이룬 일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인간의 자율성 선언이다. 운명에 떠밀려 가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스인들은 일반적 신앙인 운명론을 따랐다. 오이디푸스도 역시 자신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기에 이 극을 운명극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오이디푸스는 수동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는 그의 자유 의지를 보였기에 본 조는 오이디푸스 왕을 운명극이라 치부하기엔 어렵다고 본다.본론2 현대사회와 자유의지론본론 1에서 언급한 대로, 결국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예언대로 흘러가게 되었지만 오이디푸스 왕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렇기에 강한 운명극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신화의 내용일 뿐이며, 현대 사회에서는 운명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본론 2에서는 현대사회에서의 자유의지론에 대해 설명하고, 본론 3에서 운명론의 한계점을 알아볼 것이다.‘자유의지론’이란 인간의 행위는 적어도 상당한 정도로 물리적 법칙·심리적 법칙 등의 자연법칙에 지배되지만, 행위의 선택과 결정을 행사하는 의지의 기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설이며, 자유론 혹은 자유의지론이라고 한다.자유 의지는 외부의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러한 자유 의지를 지닌 존재이며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1998년, 36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조사에서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결정과 선택으로 만들어진다는 의견에 대해 70% 이상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운명을 절대적으로 맹신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서는 운명을 맹신하며 두려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재미로 사주, 타로를 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절대적으로 맹신하지는 않는다. 물론 과하게 집착하고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 소수의 사람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실제로 타로와 사주가 모두 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말 그대로 재미를 위해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단 미래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고치고자 노력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행위의 선택 가능성이 있을 때의 선택 능력을 의미하는 선택의 자유, 자신의 내적 동기나 이상에 따라 외적 구속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는 자기결정 등을 내릴 수 있다.운명론의 특징은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일에 논리적인 인과관계 같은 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점에 있다. 예컨대 미개인이 자신이 미리 정해진 날에 죽도록 운명이 지어져, 사전에 어떠한 주의나 노력을 기울여도 이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신이 실제로 있다고 믿던 고대에 누군가 저런 이야기를 했다면 신의 저주를 살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 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운명은 없다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본론3 운명론의 한계점본 발제 조는 오이디푸스 왕에서 전반적으로 나오는 운명론보다는 자유의지론이 사회를 더 정확하게 분석하는 이론이라는 입장이다. 본 조는 이를 운명론의 한계에 집중하여서 설명하고자 한다.1. 운명론의 필요조건인 운명 또는 운명을 정하는 절대자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운명론은 운명을 정해주는 절대자나, 운명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성립된 이론이다. 하지만 운명론의 전재가 되는 절대자나 운명의 존재 여부는 확실하게 있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전제 자체가 이러한 한계가 있는 것을 보아, 운명론이 사회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이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이디푸스 왕의 토대가 되는 그리스 로마신화에는 운명의 여신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모이라라고 불리는 이 여신들 가운데 인간의 탄생을 주관하는 클로토는 생명의 실을 뽑아내고, 라케시스는 모든 인간들의 생애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며, 가장 연장(年長)인 아트로포스는 생명의 실을 끊는 역할을 담당하였다.이처럼 운명론은 운명을 정해주는 절대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이 세 여신이 실존하는지, 이 세 여신이 아니더라도 이 여신들과 같은 구실을 하는 절대자가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인문/어학| 2019.12.08| 5페이지| 3,000원| 조회(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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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무방 독서록
    활용한 질문: 그 시대와 현실을 비교했을 때 지금이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제목: 1930년대에 비춰본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소설 '만무방'은 1930년대 수탈을 당하던 우리 농민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응칠과 응오' 두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의 가혹한 침탈과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선량한 국민들을 모두 만무방으로 내몰고 있음을 풍자하였다.1) 소주제: 만무방에 나타난 사회의 어두운 면사람들이 자신의 논에서 벼를 훔치고, 성실한 농군이었으나 빚에 쫓기다가 결국엔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고, 도둑질과 노름을 일삼는 1930년대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은 환경이 사람을 얼마나 변하게 만드는가를 깨닫게 한다. 근본적인 의식주의 결핍은 타고난 성품이나 스스로의 노력과 관계없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현실은 지주와 소작농의 사이에 있었던 빈부갈등 외에 일제의 수탈이라는 강압적인 상황이 추가되어 농민들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평범한 농민들이 '만무방'이 된 데에는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사회의 구조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2) 소주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개인의 노력으로는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빈부간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부의 집중이 갈수록 심화되어 상위 10%가 전체 부의 70%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현실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신분제를 만들어냈다.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아도 부를 축적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의 밑에서 일하며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을 가지고 있는 재산규모로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반영한 ‘금수저’ ‘흙수저’라는 유행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정도의 계급이 정해지고 그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잘 반영한 말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3) 1930년대와 오늘날을 비교했을 때 지금의 우리 사회는 발전했을까?1930년대의 사회는 의식주 자체가 근본적으로 결핍된 절대 빈곤의 사회였다. 소설 속 응오의 아내처럼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 많았고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워 자신의 논에 벼를 훔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절대적 빈곤은 오늘날 줄어들었지만, 계층 사이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져 상대적인 빈곤이 가속화되면서 소위 '흙수저'들의 박탈감과 소외감이 가중되었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가난을 비관한 일가족 자살 사건이나 생계형 범죄는 아직도 가난이 우리 사회에서 ‘만무방’을 만들고 있다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는 바뀌지 않았으며 반상의 계급과 내용은 다르지만 형태는 유사한 신분적 세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 ‘만무방’이 보여준 우리의 모습‘만무방’은 1930년대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지만 읽는 동안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를 끈임 없이 반문해 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사회의 발전이라는 이면에 남겨진 어두운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사회가 복잡해진 만큼 해결하기 더 어려운 숙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역으로 그런 불편함이 소설이 존재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만무방’은 시대적인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물론,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진 ‘보편적’인 모순도 깨닫게 해 준 소설이었다.
    독후감/창작| 2016.05.07| 2페이지| 1,500원|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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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목 차- 대기 오염- 수질 오염1. 대기오염1) 대기오염의 정의한국은 대기오염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고 있지는 않으나 1990년에 제정한 대기환경보전법에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국민건강 및 환경상의 위해를 예방하고 대기환경을 적정하게 관리·보전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함’이 목적임은 밝히고 대기오염물질, 가스, 입자상물질, 먼지, 매연, 검댕, 악취, 특정대기 유해물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의에 따르면 대기오염은 ‘대기 중에 인위적으로 배출된 오염물질이 한 가지 또는 그 이상 존재하여 오염물질의 양과 농도 및 지속시간이 지역민에게 불쾌감을 일으키거나 해당지역의 공중보건상 위해를 끼치고 인간과 동식물의 활동에 해를 주어 그 생활과 재산을 향유할 정당한 권리를 방해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2. 대기오염의 원인대기오염의 원인은 공장의 가동, 운수교통의 활동, 일반 가정의 연료소비 등 사람들의 생활이나 활동에 따라 생기는 인위적인 것과 화산의 분연이나 사진 등의 자연적인 것으로 나뉜다. 인위적인 오염물질은 연료의 연소, 가열용융·소성 등의 열처리, 원자력을 이용한 핵에너지의 발생, 화학반응 및 물리적 공정 및 자동차·항공기 등의 이동오염원에서 발생되고 배출된다. 가장 주된 원인은 연료의 연소 시 발생하는 여러 오염물질들에 의한 것이다. 이 중 일산화탄소와 이산화질소, 아황산가스, 탄화수소 등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이산화황(SO2)의 경우 다른 대기오염물질과 반응하여 추가적인 2차 오염물질을 만들어내므로 특히 중요하다.발생원 및 대기오염물질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대기오염물질에는 브롬, 바나듐, 망간, 철, 아연, 셀렌, 인, 카드뮴, 납, 크롬, 수은, 염소, 페놀 등의 화합물 및 입자상물질, 일산화탄소, 암모니아, 질소화합물, 황산화물, 황화수소, 황화메틸, 이황화탄소, 탄화수소, 석면, 염화비닐, 다이옥신,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비롯한 46가지의 물질이 포함된다. 특정 대기유해물질에는 사이안화수소 불소화물, 석면, 염화비닐, 다이옥신 및 크롬, 비소, 수은, 구리, 염소, 니켈 페놀의 화합물을 포함한 16가지의 물질이 해당된다.실내공기오염의 원인실내 공기 오염은 연소에 의해 발생한 물질이나 담배연기, 오염된 외부의 공기 유입 등에 의해 발생하며 최근에는 신축 건물에서 사용된 내장재나 바닥재 등의 건축자재에서 유해화학물질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실내공기의 오염물질의 종류는 입자상 오염물질과 가스상 오염물질, 병원성 세균으로 나뉜다. 입자상 오염물질은 공기중에 부유하는 미세먼지, 석면, 중금속 등이 있다. 가스상 오염물질은 물질의 연소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CO)와 이산화질소(NO2), 아황산가스(SO2), 건축자재에서 발생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폼알데히드(CH2O), 라돈(Rn),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악취나 사람의 호흡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가 있다. 병원성세균에는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는 부유세균이나 낙하세균 등이 해당된다.
    자연과학| 2016.04.20| 2페이지| 1,500원| 조회(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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