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학 속 온천문화 독일어과 김정권목차 일본 온천문화 개관 _ 일본 목욕문화발달의 원인 _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목욕의 의미 일본 상대문학에 나오는 목욕 문화 헤이안 시대의 온천의 특징 _ 탕치와 약사여래 신앙 (『 고콘쵸몬주 』 에 그려진 교키 설화 ) 중세 _ 재생 ・ 구제 ( 救濟 ) 로서의 온천 ( 『 오구리 』 에 그려진 유노미네 온천과 관련된 전승 ) 에도 시대의 기행문학과 온천 문화 _ 아리마 온천과 기행문학 _ 『 아리마닛키 』『 곳케아리마기코 』 에 나타난 온천문화 _ 탕치 여행의 숙소와 탕치 시스템 _ 유나 ( 湯女 ) 의 역할 일본 근세문학에 나타난 온천문화 _ 센류 , 교카 ・ 단카에 나타난 온천문화 일본 근대소설에 나타난 온천의 토폴로지적 특성 나쓰메 소세키 , 『 도련님 』 _ 타자화의 예외 ( 스미타온천 ), 국민적 아이덴티티 , 대외적 아이덴티티 『 설국 』 과 온천장의 공간적 의미 맺으며 참고문헌 2일본 온천문화 개관 _ 일본 목욕문화발달의 원인 고온다습의 기후 여름이면 폭염이 지속되는 날이 많아지고 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더위와 끈적거림으로 인한 불쾌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목욕과 통풍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음 풍부한 온천수의 존재 잦은 화산활동과 지진의 영향을 받아왔는데 현재에도 일본 전역에 67 개의 활화산이 활동하고 있고 화산활동에 따른 작은 지진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음 취약한 난방구조 일본의 습한 기후 때문에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다다미를 사용해왔으며 온돌처럼 난방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음 . 하지만 목욕을 함으로써 몸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음 일본인 특유의 청결기호 고온과 다습을 극복하기 위한 목욕과 , 곰팡이방지를 위한 통풍습관에 의해 일찍부터 일본인은 청결의식에 눈을 떴고 , 이는 오늘날까지 일본의 목욕문화를 발전하게 만든 원동력이 됨 . 시바 료타로 ( 司馬遼太郞 , 1923~1996, 일본 역사소설가 ) , 요리우미 신문에 기고한 ‘ 아메리카素 ( そ ) 描 ( びょう )’ 에서 「 19 세기에서 20 가 ” 병자가 대답하기를 “병든 몸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 힘이 다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산 속에 머무는 사이 양식이 떨어져 간신히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 아무쪼록 스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목숨을 구해주소서 .” 라고 말한다 . 교키 이 말을 듣고 더욱 더 비탄에 잠겼다 . …( 중략 )… 그 몸 , 상처가 짓물러 냄새가 너무 심해 잠시도 견딜 수가 없다 . 하지만 자비심이 매우 깊기 때문에 냄새를 견디며 병자가 말하는 대로 그 부분을 빨자 혀 자국이 자마금색으로 변한다 . 그 사람을 보니 약사여래이시다 . 그때 약사여래가 말하기를 “난 이 온천에 가는 자이다 . 교키의 자비를 시험해 보기 위해 시험 삼아 병자의 몸으로 나타났노라 .” 라며 홀연히 모습을 감추신다 . 교키는 부처님께 기원하여 당사를 건립하여 약사여래를 안치하고 싶다고 빌고 그 터를 숭상하겠다고 생각한다 . 필승지를 잡기 위해 동쪽을 향해 나뭇잎을 던지니 즉 그 나뭇잎이 떨어지는 곳을 터로 정하여 지금의 곤요지 ( 昆陽寺 ) 는 건립되었다 . 경내에 49 원을 짓고 하나가 된다 . 7탕치 와 약사여래 신앙 “ 병을 치유한다 ” ( 육체적 ) + 병의 쾌유를 기원 ( 정신적 ) , 사찰과 신사 참배 8중세시대 _ 재생 ・ 구제 ( 救濟 ) 로서의 온천 헤이안 시대의 온천은 주로 탕치의 장소였으나 점차적으로 온천과 관련된 사찰과 신사 의 기원담인 사원엔기 ( 寺阮縁起 ) 가 만들어지게 됨 . 『 잇펜히지리에 』( 一遍聖絵 ) 에는 1276 년 잇펜히지리가 “ 규슈에 건너가 스님들의 불도수행의 방에 들어갔더니 매우 기뻐하시어 특별히 욕실을 준비하시어 둘만이 목욕을 하면서 불법수행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 라는 정경 묘사 . 『 기온슈교일기 』( 祇園執行日記 ) 에는 오안 ( 應安 )4,5 년경 (1371), 히지리가 로쿠죠도죠 ( 六条道場 ) ・ 료젠도죠 ( 霊山道場 ) 에서 일반 입욕자를 위해서 입욕과 함께 경영 , 요리까지 제공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 . 오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끌려 구마노 유노미네 온천에 도착 . 유노미네 온천의 약효에 의해서 온천에 들어간 지 7 일째에 앞을 볼 수 있게 되고 , 14 일째에 귀가 들리고 , 21 일째에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 49 일째 탕치한 결과 병은 완치되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음 . 그 후 오구리는 교토로 돌아오게 되고 수레를 끌어준 고하기를 만나 그녀가 데루테히메임을 알고 함께 미야코로 돌아오게 됨 . 13설교 『 오구리 』 의 배경 탕치를 위한 장소로서의 기능 재생의 공간으로 전환 오구리 로 상징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치유와 재생을 구하여 구마노의 유노미네 온천을 순례하고 있음 . 14에도 시대의 기행문학과 온천 문화 세이쇼 나곤 , 『 마쿠라노소시 』, “ 온천은 나나쿠리노유 . 아리마노유 . 다마즈쿠리노유 ” 라는 기술 . 온천의 탕치로서의 공간과 그 효능 입증 . 무로마치 시대의 승려 반리 슈쿠 ( 万里集九 ) 의 시문집 『 바이카무진조 』( 梅花無尽蔵 ), “ 우리나라 60 남짓의 주 ( 州 ) 에는 , 모든 주에 영험한 온천이 있고 , 그 중 으뜸은 시모즈케 ( 下野 ) 의 구사쓰 , 신요 ( 津陽 ) 의 아리마 , 히슈 ( 飛州 ) 의 게로 이 세 곳이다 .” 15_ 아리마 온천과 기행문학 『 곳케아리마기코 』(1827) 의 첫머리 , 조메이 천황이 지은 노래 아리마의 염천에 초승달이 비친 모습을 보니 불편한 몸도 치유되는 칠일 칠일에 ( 「舒明帝御製 三ヶ月の塩湯にうつる影見ればかたわもなを七日七日に」 ) 아리마 온천이 알려지게 된 것은 제 34 대 조메이 천황 (593~641 년 ) 무렵 부터 . 『 니혼쇼키 』 의 「 조메이키 」 ( 舒明記 ) 에 631 년 9 월 19 일부터 12 월 13 일까지 86 일간의 탕치의 기술 . 16아리마 온천 안내서와 기행문학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후원에 힘입어 온천수의 보호 , 온천 주위 하천의 개수공사 , 온천 개축 등의 과정을 거친 아리마 온천은 에도 시대에 이르러 더욱 번성 . 막부의 직할령이 . 『 곳케아리마기코 』 의 첫머리 , 온천장에서의 탕치는 7 일을 기준으로 네 법 거듭되는 온천욕에 의해서 치유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해석 . 19유나 ( 湯女 ) 의 역할 『 아리마닛키 』, “ 유나라고 해서 온천을 안내하고 유카다비라를 받아주는 등 손님 시중을 드는 여인 , 한 집에 두 명씩이다 . …” 『 곳케아리마기코 』 다로스케와 사이로쿠에 의한 유나 매입 장면 사이 “ 언니 . 저기 부엌에 있는 여인은 이집 며느리인가 , 딸인가 , 나이는 몇인가 ” 하녀 스기 “ 네 , 열여섯입니다 .” 사이 “ 나이는 젊어서 아직 미혼인줄 알았는데 일찍 눈썹을 지웠네 . 정부가 있었나 . 그 사내의 얼굴을 보고 싶군 .” 스기 “ 아니요 저 아이는 고유나라합니다 .” 사이 “ 뭐 , 정부가 없는 유나라니 무엇을 말하는가 ” 스기 “ 저 아이는 온천에서 일을 하는 무스메 유나라 합니다 ” 사이 “ 아가씨라니 감사한 일이군 . 오늘 밤 차지하고 싶군 .” 다로 “ 언니 , 저 남자보다 나에게 붙여주게 . 오늘 밤 불러올 수 있을까 ” 스기 “ 네 , 밤에 일만 마치면 올 수 있습니다 ” 다로 “ 언니 , 저 남자보다 나에게 붙여주게 . 오늘 밤 불러올 수 있을까 ” 스기 “ 네 , 밤에 일만 마치면 올 수 있습니다 ” 다로 “ 언니 , 내가 먼저니까 , 나에게 데려오게 ” 스기 “ 네 ,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두 분께 맞춰드리죠 ” 사이 “ 남자 둘 사이에 여자 혼자 와서는 곤란한데 , 추가로 다른 여인은 없는가 .” 스기 “ 네 , 한 사람으로 부족하시다면 가와노야의 오미쓰나 , 기시노 시다의 오후지나 얼마든지 주선해보지요 ” 사이 “ 너무 많아도 곤란해 . 한 명만 더 있으면 되니까 ” 손님의 탕치를 위한 시중과 술자리에서의 동석은 응할 수 있으나 , 잠자리의 상대는 법으로 금함 . 20일본 근세문학에 나타난 온천문화 _ 센류 , 교카 ・ 단카에 나타난 온천문화 草津の湯とかく女房 ( にょうぼう ) がふのみこみ。 ( 구사쓰 온천 아무래도 부인은 납득이 안가리면 된다고 대답해 주었다 . (『 坊っちゃん 』 、 64 面 )나는 여기에 오고 나서 , 매일 꼭 스미타의 온천에 간다 . 다른 곳은 봐도 동경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 온천만은 멋진 곳이다 . 모처럼 온 사람이 매일 몸을 담그겠다는 마음처럼 , 저녁식사 전에 운동을 겸해서 나선다 .(『 坊っちゃん 』 、 70 面 ) 도고 온천은 제아무리 멋진 건물이라고 하더라도 8 전을 내면 3 층에 올라가 차를 마시고 과자를 먹고 , 탕에 들어가면 머리까지 비누로 씻어줄 정도로 상당히 좋다 . ( 夏目漱石全集3 『 書簡 』, 春陽堂 , 799 面 ) 25 타자화의 예외 _ 스미타 온천온천을 통해 본 나쓰메의 국민적 아이덴티티 , 대외적 아이덴티티 메이지 정부의 사민평등이 온천장에서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 맨몸의 사교 ( 裸 はだか の付き合い )’ 를 통해 실천됨 ( 특권된 장소라는 의식 소멸 ) 신문이나 잡지 , 연재소설 ( 오자키 고요 『 금색야차 』, 도쿠토미 로카 『 불여귀 』, 나쓰메 소세키 『 도련님 』)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온천과 관련된 문화가 일본사회 전역에 걸쳐 일본인의 국민적 아이덴티티를 형성 “ 게다가 방 안에는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 중국인이 남기고 간 냄새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이 청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냄새가 남아있다 . 여관에서는 요사이 역 부근으로 신축건물을 세우고 옮겨갈 요량이라고 했다 . (『 満韓ところどころ 』47 、 1130 面 ) 일본 = 깨끗함 “ 청림관은 양식이지만 내부는 순수한 일본식이다 . 깨끗한 실내에 깨끗한 기물들이 마음을 유쾌하게 했다 ” 1909 년 9 월 16 일자 일기 26『 설국 』 과 온천장의 공간적 의미 에치고 ( 越後 ) 유자와 온천 ( 湯沢温泉 ) 의 아름다운 정경묘사 눈의 청결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를 모티브로 인물의 심리와 내면을 그려냄 . 도쿄에 거주하는 여행객인 시마무라 ( 島村 ) 의 시선을 통해 ‘ 청결 ’ 이라는 수사어구와 맞물려 동양적인 미의식의 전형ow}
焼き物 YAKIMONO 김정권목차 焼き物 에 대해서 焼 き 物 의 구분 ( 조리법 또는 조리도구에 따른 ) 다양한 일본의 대표적인 焼 き 物 ( 食べ物 )정의 _ 日本の調理法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iots.jpg#/media/File:Diots.jpg 니모노 、煮物、にもの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eep_frying_chicken_upper_wing.JPG#/media/File:Deep_frying_chicken_upper_wing.JPG 아게모노 、揚げ物、あげもの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ok_Cooking.jpg#/media/File:Wok_Cooking.jpg 이타메모노 、炒め物、いためもの정의 _ 야키모노 、焼き物、やきもの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Yakinikuwiki.jpg#/media/File:Yakinikuwiki.jpg 일본 요리의 조리법 ( 조림 · 구이 · 튀김 ∙ 볶음 ) 가운데 하나 , 또는 구워서 조리된 요리 . 조리 기법의 일종으로 본래 熱媒 ; 열매 ( 냄비 , 솥이나 기름 ) 를 이용하지 않고 불에 직접 재료를 가열하는 조리법 현재는 특수 도구와 조리 도구를 이용하여 가열하는 경우에도 용법이 확대종류 _ 조리 방법 또는 도구 バーナー焼き버너 구이 炙 ( あぶ ) り焼 ( や ) き グリル 그릴 구이 挟 み焼き (はさみやき) 집게 구이 ( 가위 구이 ) 煎り焼き(いりやき) 지짐 구이 揚げ焼き(あげやき) 튀김 구이 蒸し焼き (むしやき) 증기 구이 ( 삶은 구이 ) 串焼き , くしや き 꼬치 구이直火焼き_ 버너구이 , バーナー焼き しめ 鯖 、しめさば 초절임 고등어 https://www.youtube.com/watch?v=tVOKHtHjC1w http:// image.rakuten.co.jp/ sakuranecoshop / cabinet/02558//img-cdn.jg.jugem.jp/9fc/876655/20081127_657484.jpg鉄板焼き __ 煎 り 焼 き ( いりやき ) 지짐 구이 http://thumbnail.image.rakuten.co.jp/@0_mall/northcolors/cabinet/img65508965.jpg 프라이팬 등의 넓적한 조리 기구에 기름을 넣고 재료를 가열 http://userdisk.webry.biglobe.ne.jp/001/329/12/N000/000/005/1419*************5180_DSCN7070.JPG鉄板焼き __ 揚 げ 焼 き ( あげやき ) 튀김 구이 볶은 구이와 비슷하지만 기름을 사용하고 젓지 않는다 . 영어로는 pan fry . 독일식 커틀릿 ( 슈니첼 ) 가 대표적인 요리 . https://www.youtube.com/watch?v=5WKAsb8y4xw鉄板焼き __ 蒸 し 焼 き ( むしやき ) 증기 구이 ( 삶은 구이 ) http://image1-3.tabelog.k-img.com/restaurant/images/Rvw/41588/640x640_rect_41588087.jpg 쪄내는 과정에서 물 , 술 등을 넣고 뚜껑을 덮어 발생한 수증기와 김으로 가열하는 조리 방법 http:// www.staub.jp/tl_files/staub_images/recipes/japan/morokosi.jpg トウモロコシ石焼 き (いしやき) 돌솥、구운 돌 焼 やき 芋 (いも ) http://www.nikkei.com/content/pic/20111021/96958A96889DE1E7E7EAE6E3E6E2E3E6E3E2E0E2E3E385E2EAE3E2E3-DSXDZO355*************W08101-PN1-16.jpg 석판 ( 돌솥 플레이트 ) 나 잔돌 등을 달군 뒤 그 열에 재료를 굽는 요리 방법으로 자갈을 사용 : 군고구마 , 군밤 판석을 사용 : 석판 구이 석제 용기를 사용 : 돌솥 비빔밥 http://hiroshi.piyo.to/rakutenttp://livedoor.blogimg.jp/gyoutokuseitai/imgs/f/a/fae20f78.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9/Yakitori_001.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e/Yakitori_002.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a/Yakitori_003.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0/Yakitori_018.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4/48/Yakitori_017.jpg http://stat.ameba.jp/user_images/20120114/03/dj-bordeaux/d2/8c/j/o0600*************37.jpg http://userdisk.webry.biglobe.ne.jp/004/392/58/1/P1000389.jpg焼き鳥 _ 種類 (‘ 塩 ’ 로 분류 ) つくね は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7/Yakitori_004.jpg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a/Yakitori_005.jpg http://s2164681.xaas.jp/images/material/DSC_0078.jpg http://stat.ameba.jp/user_images/20100211/08/my-food-life/97/c8/j/o*************518595.jpg http://tztom.sakura.ne.jp/sblo_files/cycleblog/image/bonjiri01.JPG http://yakitoridon.net/img/food/400/1-sunagimo.jpg焼き鳥 _ 地域差 北海을 뿌려 먹기도 함 . 일본 祭り 같은 행사에서 자판으로 판매하기도 함 .お好み焼き _ https://j-walker.tokyo/ja/wp-content/uploads/2015/01/s_002a.jpg 각종의 밀가루를 사용하는 철판 구이의 일종 . 일본의 서민적인 요리 중 하나 . 오코노미 ( お好み ) “기호” , “ 좋아함” + 야키 ( 焼き ) “굽다” 물에 푼 밀가루를 반죽하며 , 만두소로 야채 , 고기 , 어패류 등을 철판에 굽고 마요네즈와 青のり ( 파래 · 싱경이 무리의 바다 녹조류 ) 등을 뿌려 먹음 . 굽는 것과 만두소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음 . 「 関西風 お好み焼き」・「広島風お好み焼き」 등이 대표적임 .お好み焼き _ 歴史 ‘ 후노야키 ( 麩の焼き )’ → 모지야키 ( 文字焼 き ), 돈돈야키 ( どんどん焼き ) → 오코노미야키 후노야키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安土桃山時代 , 1573~1603) 에 등장 . 에도 시대 ( 江戸時代 , 1603~1867 ): 모지야키 ( 文字焼 き ) 가 유행 . 이후 메이지 시대 ( 明治時代 , 1868~1912) 와 다이쇼 시대 ( 大正時代 , 1912~1926 ): 돈돈야키 ( どんどん焼き ) 라는 음식 등장 . 오사카 , 히로시마까지 전파되어 잇센양식 ( 一銭洋食 ) 이라는 이름으 로 인기 . 오코노미야키 : 1923 년 관동대지진 ( 関東大震災 ) 이후에 도쿄에서 처음 등장 . 제 2 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45 년 ): 정식 메뉴로 유행 . [ 네이버 지식백과 ] 오코노미야키 [ お好み焼き , okonomiyaki] ( 세계 음식명 백과 , 마로니에북스 )お好み焼き _ 종류 http://urala.jp/gourmet/shop/photo/sub/608.jpg 関西風お好み焼き http://youtube.com/watch?v=ALfENXOx78I 밀가루 반죽에 양배추 , 참마 갈은 것 , 텐카스 ( 天かす , 튀김 부스러기 ), 생강 절임 등을 넣어 섞고 철판 위에서 구움 . 그 위에 얇은 삼겹살의 잿날 ( 縁日 , えんにち ) 에 벌이는 포장 마차 등에서 팔리는 밀가루를 주 원료로 한 철판 구이 요리 . 오사카 구이라고 칭해서 판매되지만 오사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일본 각지에서 볼 수 있고 일본에서는 リング焼き 、 ○○ 焼き 로 불리는 일이 많음 . 대만에서는 현지화된 네모난 오코노미야끼가 ( 일본식 ) 오사카 구이 로 불림 . http://uds.gnst.jp/rest/img/awdvyjdy0000/s_009m.jpg?t=1438745283 http://blogimg.goo.ne.jp/user_image/63/41/24a81a74f5dff802ad9d1fc302c635e4.jpg焼きそば http://cdn.amanaimages.com/preview640/11020001147.jpg 삶은 국수에 야채 • 고기 등을 넣고 볶은 일본 요리 。 일본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 . 메밀로 면을 만드는 소바와 달리 야키소바의 재료로 사용하는 면은 밀가루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동과 비슷하다 . 재료는 면 , 돼지고기 또는 닭고기 , 양배추 , 표고버섯 , 당근 , 파 · 마늘 · 생강 · 간장 · 청주 · 소금 등 필요 .今川焼き、いまがわやき http://blogs.c.yimg.jp/res/blog-eb-f5/mi6mayu5/folder/415388/16/7450016/img_0 http://up.gc-img.net/post_img/2013/05/Y9h2t9eFS9Ex3NT_V4bIG_22.jpeg 묽은 밀가루 , 설탕 , 계란 반죽을 타원형 구이판에 붓고 팥소를 넣어 구운 풀빵 .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식품이 다양하게 호칭되며 상설 점포뿐만 아니라 신사 나 축제에서 판매되는 경우도 많아 일본인에게 친숙한 과자 중 하나 . 갓 만든 이마가와야키 외 냉동 식품으로 유통되기도 함 .タイ焼き , 도미빵 タイ焼き( 붕어빵 ) 는 焼き形 에 밀가루 반죽과 팥소를 넣어 조리한 일본식 과자 중 하나 . 今川焼き 에서 파생된 음식으로 알려져 있음 . 메이지 시대 w}
조선의 개항 독일어과 200700749 김정권목차 제국주의의 대두 중국의 반 ( 反 ) 제국주의 , 근대화 운동 일본의 근대화 운동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 서양 열강과의 대립 강화도 조약 서양 열강과의 조약 결론 , 마무리제국주의의 대두 서구 열강의 세계 분할 지배 (19 세기 후반 ~ 20 세기 초 ) 정치적 배경 :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 , 민족주의 고조 , 배타적∙침략적 민족주의로 변질 경제적 배경 : 18 세기 후반 과학 기술 발전 , 산업 혁명 이후의 독점 자본주의의 발달 , 새로운 시장에 대한 필요성 대두http://cafe.naver.com/moviewar/20 반식민지화 : 제 1 차 아편전쟁 (1840) 패배 + 난징 조약 (1842) 제 2 차 아편전쟁 (1860) + 베이징 함락 , 베이징 조약 (1861) 리홍장 중심의 중체서용 ( 中體西用 ), 양무 ( 洋務 ) 운동 (1861) 캉유웨이 ( 康有爲 ) 중심의 변법자강 ( 變法自彊 ) 운동 (1898) 부청멸양 ( 扶淸滅洋 : 청조를 돕고 외국을 멸한다 ) 바탕의 의화단 ( 義和團 ) 운동 (1900) 중국의 반 ( 反 ) 제국주의 운동동치 원년 (1862) 에 신 ( 臣 ) 의 군대가 상해에 온 이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양식 소총과 대포를 사들이고 , 국 ( 局 ) 을 설치하여 유산탄을 주조하여 적군을 섬멸하는 데 쓰고 보니 과연 위력이 있었습니다 . …… 신이 뜻을 다해 말씀드리는 것은 서양의 기계가 농경 , 기계 , 인쇄 , 도공 등의 용구를 모두 제조할 수 있고 민생의 일상 생활에 이익이 되는 것이지 , 오로지 군사 무기만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 리홍장 ( 李鴻章 ; 1823~1901) 의 상소문 -미국 페리 제독의 무력 개항 요구 미∙일 화친 조약 (1854) 미∙일 수호통상조약 체결 (1858) 안정 ( 安定 ) 5 개국 조약 (1858) _ 네덜란드 , 러시아 , 영국 , 프랑스 일본의 근대화 운동 _ 개항 http://heiiann.egloos.com/m/1637625메이지 유신 (1868) ‘ ‘ 존왕양이 ( 尊王攘夷 )’ 반 ( 反 ) 막부 연합 세력 ( 사쓰마 薩摩 , 죠수 長州 번 중심 ) 도쿠가와 ( 에도 ) 막부 타도 국왕 중심의 중앙 집권적 입헌 군주제 확립 ( 왕정복고 ) 외국의 문명을 취해서 미개한 나라에 퍼뜨릴 때에는 모름지기 적절하게 취사선택해야 한다 . 그러나 문명에는 밖으로 드러나는 사물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심의 구별이 있는데 , 밖으로 드러나는 문명은 취하기가 쉽고 , 그 안에 담겨 있는 문명은 찾아내기 어렵다 . 나라의 문명화를 꾀함에 있어서는 어려운 쪽을 먼저 하고 쉬운 쪽을 나중에 해야 한다 . 『 문명론의 개략 』, 후쿠자와 유키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5674고종 ( 이명복 , 재위 1863 ~ 1907) 의 즉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 mid=sec sid1=110 oid=022 aid=0000183582 http://blog.naver.com/dldndls3337/60214556890 나라를 잃은 무능한 왕 vs. 1897 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배짱 좋은 왕1860 년대 전후 조선의 정세 19 세기 조선의 과제 세도 정치 이앙선 출몰 매관매직 → 삼정 문란 → 민란 발생 사회 불안 의식 고조 → 베이징 조약 이후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 → 위기 의식 고조 대내적 대외적 지배층의 수탈 억제 → 삼정 개혁 → 민생 안정 제국주의 국가 침략 → 국권 수호세도 정치 타파 + 비변사 혁파 법전 정비 : 대전회통 (1865), 육전조례 (1867) 경복궁 중건 (1865. 4 ~ 1868. 7) 삼정의 개혁 + 서원 철폐 (1868 ~ 1871)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772 흥선 대원군의 개혁 정치통상 수교 거부 정책 _ 병인박해 (1866. 1) 베이징 조약 (1860) + 러시아의 연해주 획득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천주교에 대해 관대한 입장 프랑스의 조선의 요구 거절 , 공 ( 恐 ) 러 의식 약화 서양에 대한 경계심 고조 + 조두순의 배외정책 수용 프랑스 신부 9 명과 8 천 여 명의 신도들 처형 프랑스 선교사 리델 ( Ridel ), 베이징에 알림서양 열강과의 대립 제너럴 셔먼 (General Sherman) 호 사건 (1866. 7)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 퇴거 요청 , 경고 개신교 선교사 토마스의 상거래 목적 주장 조선군에 의해 소각 , 침몰 박규수 , 신태정 등 품계 하사 미국의 조선에 대한 포함 ( 砲艦 ) 외교 정책 추진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RTiw articleno=323 categoryId=2 regdt=*************9병인양요 (1866. 9) 1 차 원정 (1866. 8): 로즈 제독 , 3 척의 군함 2 차 원정 (1866. 9): 로즈 제독 , 전함 3 척 , 포함 4 척 , 병사 1,000 여 명 문수산성 한성근의 분패 정족산성 양헌수 ( 군사 549 명 ) 잠복 , 기습 외규장각 도서 등 수많은 문화재와 무기∙금∙은 약탈 흥선 대원군 척화비 비문 반포 , 쇄국 의지 천명 http://egloos.zum.com/dwban22/v/4985122그들의 유골을 잠시라도 점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가진 자에게 절대적 권한을 부여할 것이며 , 서울을 점령하는 것과 다름없는 의의를 가진다 . 대원군은 그것을 돌려받기 위해서 어떤 일에도 찬성할 것이다 . 그로 인해 그를 강요하여 제안을 수락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 - 오페르트 , 『 금단의 나라 - 조선기행 』 - 오페르트 ( Oppert ) 도굴 (1868. 4) 1866 년 두 번의 통상 요구 거부 유태계 독일 탐험가 오페르트 + 미국인 젠킨스의 지원 + 프랑스 신부 페롱 충청남도 덕산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 이후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 강화 천주교 탄압 더욱 강화 영종 첨사의 서신 ( 네놈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 너희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에는 원래 왕래도 없었고 , 은혜를 입거나 원수를 진 일도 없다 . 이번 덕산 묘지에서 저지른 사건은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 또한 방비가 없는 것을 엿보아 몰래 들이닥쳐 소동을 일으키며 , 무기를 빼앗고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하는 것도 사리로 볼 때 어찌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 이런 사태에서 우리나라 신하와 백성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한 마음으로 네놈들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다짐할 뿐이다 . - 『 고종실록 』, 1868 년 4 월 23 일 -신미양요 (1871. 5) “ 洋夷侵犯 非戰卽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 (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싸우지 않음은 화의하는 것이요 ,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 만년 자손은 경계할 지어다 ,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운다 .) http://www.histopia.net/zbxe/sinmi/28578 美 태평양 함대 로저스 제독 전함 3 척 , 포함 2 척 , 병사 1,230 여 명 어재연 중심 광성진 + 덕진진 ∙ 초지진 협공 1 차 저지 조선 정부의 교섭 불응 전쟁의 장기화 우려 , 미군 철수http://study.zum.com/book/14304 http://www.koreastory.kr/bbs/board.php?bo_table=issue wr_id=18 강화도 조약 (1876. 1) 흥선 대원군 퇴진 (1873) 통상 개화론의 성장 운요호 사건 (1875) 불평등 조약서양 열강과의 조약 황쭌셴의 『 조선책략 』( 親중국 , 結일본 , 聯미국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1882. 4. 6) _ 청의 알선 - 최혜국 대우 : 통상 조약을 체결한 나라가 통상∙항해 조약 등에서 제 3 국에게 부여한 유리한 대우를 조약 당사국에게도 부여하도록 규정 - 서양과 맺은 최초의 조약 , 불평등 조약 조∙영 통상 조약 (1882, 1883) – 내지 통상권 , 최혜국 대우 , 청의 알선 조∙독 통상 조약 (1882) _ 내지 통상권 , 최혜국 대우 , 청의 알선 조∙청 상민수륙무역장정 (1882) _ 영사 재판권 , 서울 개방 조∙ 러 통상 조약 (1884), 조∙ 러 육로 통상 조약 (1888) _ 최혜국 대우 , 영사 재판권 , 직접 수교 조∙ 프 조약 (1886) _ 최혜국 대우 , 직접 수교결론 , 마무리 흥선 대원군의 개혁정치에 대한 평가 의의 : 왕권을 중심의 전통적인 통치 체제를 재정비 + 국가 기강↑ + 민생안정 한계 : 보수적 개혁 , 외세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 , 근대화와 문호 개방 지연 서구열강의 침략 , 불평등 조약 체결 개항 후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 심화참고문헌 박성수 , 「 남가몽 , 조선 최후의 48 년 」 , 왕의 서재 , 2008 문소영 , 「 조선의 못난 개항 _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 」 , 역사의 아침 , 2013. 박도 , 「 개화기와 대한제국 _ 빼앗긴 근대와 자주독립 1876-1910 」 , 눈빛 , 2012.{nameOfApplication=Show}
일본문학연구방법론 금 4 5 6 강소영 교수독일어과 200700749 김정권『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_ 村上春樹 著‘색채를 잃어버린 우리, 지금과 마주본다’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친척집으로 내려가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즐거운 이야기 꽃이 피면서 아버지들은 아버지들의, 어머니들은 어머니들의,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의 얘기를 하고 있노라면 각자의 성격과 생각들이 이야기에 묻어 나오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착하다’, ‘공부 잘한다’, ‘얌전하다’ 등등 다소 ‘모범적인’ 아이의 모습으로 어른들에게 비추어지던 나였고, 나 또한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 생각을 갖는 것에 나 자신을 맞춰가는 것이 익숙했던 과거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현재는 ‘취업’이라는 삶의 분기점 앞에서 —— 적어도 인터넷 회원가입 직업란에 더 이상 ‘학생’이라는 칸은 사라진다. —— ‘나답다’가 아닌 맹목적으로 현실적인 미래를 생각할 시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소설 속 인물들의 ‘성격’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특히 주인공 ‘쓰쿠루’라는 이름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만드는 일, 특히 철도 기차역을 건설하는 일에 큰 관심이 있다. 현실적으로 본인의 이름에 본인이 갖고 있는, 또는 본인이 추구하고 관심 있어 하는 가치가 내포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주인공의 삶이 비록 5명 그룹에서 추방당하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그가 갖고 있는 행운이 그의 힘든 시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색채가 없는’다자키 쓰쿠루가 다른 4명의 ‘아키, 아오, 구루, 시로’그리고 후배 ‘하이다’등과 비교해서 다르지 않고 단지 이름에 색채를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뿐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하지만 여자친구 ‘사라’가 그와의 잠자리에서 느낀 그의 ‘상실감’에 대해서 그에게 얘기하고 그가 그녀의 말대로 4명의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서 ‘색채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기호’뿐만이 아니라 그의 삶의 과거, 역사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곳에는 기쁨∙환희∙즐거움∙축복도 있을 수 있고 수치∙절망∙배신∙미움 등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이다의 아버지가 전공투 시기에 어느 시골의 온천 여관집에서 만난 ‘미도리카와’가 피아노를 칠 때 그 위에 두던 주머니 속에 육손 잡이의 여섯 번 째 손가락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그 피아니스트의 역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인상깊었던 쓰쿠루의 꿈도 그가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는 욕망∙갈등∙모멸감이 꿈 속에서 표출되고 그가 갖고 있는 과거의 상실감과 허무함이 마지막에 후배 하이다의 입에서 한층 더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해소는 4명을 찾아 나서는 ‘순례’에서 분명해진다. 그가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 시절의 ‘상실감’을 사라에게 말하면서, 사라는 그것을 피하고 숨기 보다는 대면하여 적극적으로 마주보는 방법을 취하기를 요구한 것이다.사실 우리에게는 나의 이름에 나의 성격과 기호가 나타나 있고, 또 그에 맞게 진로를 하고 직장을 얻는, 비교적 순탄하고 운명적인 인생은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좋은 날의 기억보다는, 자고 나면 다음날 새까맣게 잊혀져 있길 바라는 기억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이러한 과정은 ‘죽음’과 마주할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사라가 다른 중년의 남자와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 그녀와 마지막 만남이 될 수 있는 약속날짜를 잡은 쓰쿠루가 그녀에게 약속 전날에 전화를 걸고, 또 이후 걸려오는 그녀의 전화를 피하는 모습처럼, 그리고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술 한 잔을 걸치면서 그녀를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솔직한 그의 모습은 내게 큰 위안이 된다. 내일의 걱정으로 오늘의 기쁨을 망각하지 않도록 나 자신에게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 싶은 지금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