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이론적 시각에서 바라본 ‘라쇼몽’후에 신문 방송학을 전공할 학생으로서 관람한 ‘라쇼몽’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진실을 전달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고, 혹은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라쇼몽’에서는 관청에서 타조마루, 살해당한 남자, 그의 아내, 그리고 목격자가 각각 그들이 겪은 사건에 대해 진술한다. 그들이 똑같은 시공간에서 한 가지 사건을 같이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네 사람의 말은 정말 완벽하게 다르다. 타조마루는 자신이 남성을 살해한 것에 대해 좀 더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고, 아내는 자신이 잃은 정절을 조금이나마 변호하려 한다. 죽은 남자는 최대한 자신의 위엄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목격자는 그가 훔친 진주단도 외의 사람들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지 남자들이 겁쟁이처럼 싸우는 장면을 희화적으로 묘사한다. 이 네 명의 진술자 중에서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혹인 제일 진실에 가까운지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각자 다 다른 소리를 하는 진술자들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이기적으로 보인다.본래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좇는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커뮤니케이션에 이렇게 큰 영향을 주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그들의 본능적인 이기심에 따라 세상의 일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편향된 해석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전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절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상대적 진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짓이 없는 사실, 마음에 거짓이 없이순수하고바름’이라는 뜻을 가진 진실이 상대적 존재라는 것이 매우 역설적이다. 과연 한 사람의 입장에 맞게 합리화된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고,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고, 그리고 영화 속에 나온 ‘죽은 사람도 거짓말을 한다.’라는 말을 들으며 커뮤니케이션에서 전달되는 메시지와 그 과정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실제로 돌이켜보면 일상 속에서도 영화 ‘라쇼몽’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듯하다. 예를 들어 A와 B 두 명이 말다툼을 했을 때 A와 B 각각의 말다툼의 원인이나 과정 그리고 결론에 대한 말이 다른 것은 물론, 같은 장면을 본 목격자라도 A와 친한 사람이라면 더 A의 편에 서서 말할 것이고 B와 친한 사람이라면 B쪽에 더 편향되게 말할 것이다. 남에게 더 잘 보이고자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왜곡된 쑥덕공론이나 뒷말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을 읽고..‘빛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이 책은 한 학기 동안의 강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교수님의 강의는 다소 어려웠고 빠르게 지나가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한 번 더 다시 읽어보고, 그를 통해 만남과 행복에 대한 교수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이 책은 나의 삶, 그리고 만남과 관계에 대해 다시 돌이켜보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몇 차원의 삶에 머무르고 있는가?’ ‘그리고 또 진정한 만남을 이루고 있는가?’ 생각해보며, 또 책을 점점 읽어가며 나의 존재가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시간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한 번만 존재한다. 또 그 때문에 빛은,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근원인 그 존재는 바로 나 하나를 원한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현재 나는 여타 일반인들처럼 3차원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행복이 아닌 행복감을 추구하며 살아온 것이다. 내가 진정 나 자신의 삶을 살았고, 행복했는지 돌이켜보면 아니었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현대 사회에는 성공을 추구하는 성공지상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이번 학기에 괜히 학점에 대한 욕심이 생겨 평균보다 다소 많은 학점을 수강 신청했다가 행복은커녕 행복감도 맛보지 못한 듯하다. 1학기 동안 나의 삶은 마치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학점이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과제와 시험의 노예로 하루 평균 3시간씩 자고 밥도 잘 못 챙겨먹고 살아가며 이게 과연 미래에 도움이 되더라도 바람직하게 사는 것이 맞을까 회의를 느낀 적이 많다. 또 이렇게 사는 것이 미래에 도움이 되기나 할까 의문도 들었다. 너무 많이 학점을 신청하는 바람에 모든 과목을 챙기기 힘들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평점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미래의 행복감을 위해 살아온 한 학기에 후회를 많이 느껴 다음 학기에는 보다 상위 차원의 인간으로 발전하여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싶다.행복을 위해서는 스스로 만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만남은 상대에 대한 절대의 사랑과 그리움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 외에도 신비의 부분, 타자성까지 그 사람의 전체를 수용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전체를 수용할 때 우리는 죽게 되는데, 타자로 남게 된다. 이러한 관계가 행복의 본질이다. 생각해보면 상대의 전체를 수용하지 못할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다소 남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잘 사랑받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또 잘 사랑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 진정한 만남을 이루고, 진정한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 이번 한학기동안의 강의와 ‘만남_10차원의 행복’책을 읽음으로 행복에 대한 여러 가지를 배워 진정한 행복에 한발자국 더 가까워졌으리라 생각한다.
Ⅰ유길준의 생애와 개화사상 형성1.유길준의 가계와 간략한 생애유길준은 조선왕조 25대 철종 7년(서기 1856년) 10월 24일 서울의 북촌 계동에서 아버지 유진수와 어머니 한산 이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학습 능력으로 인근지역에까지 신동으로 알려졌다고 하는 유길준은 17세가 되면서부터 외할아버지의 추천으로 유만수의 서당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유길준은 이후 그의 일생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동반자가 될 민영익을 만나게 된다. 1881년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신사유람단에 참가했다가 일본의 게이오 의숙에서 수학한 유길준은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에 임명되었다. 1883년 7월 미국에 파견된 외교사절인 보빙사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담머고등학교에서 유학했다. 최초의 국비유학생이었던 그는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학업을 중단하고 유럽 각국을 순방한 뒤 1885년 12월 귀국했다. 그러나 개화파로 몰려 체포, 1892년까지 연금생활을 하면서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로 서양의 근대문명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서유견문’을 집필하였다. 1895년 김홍집 내각의 내부대신이 되어 음력 폐지, 종두법 실시, 우편개시, 건양 연호사용, 단발령 실시 등을 과감히 추진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일본에 망명했다가 1907년 순종황제의 특사로 귀국했다. 이후 흥사단에 참여하여 활동했고 계산학교를 설립했으며 국민경제회·호남철도회사 등을 조직하여 산업 발전에도 힘썼다.2.개화 사상 수용의 시작"여기가 중국일세. 세계의 한가운데 있다는. 그런데 자네들 모두 잘 보게. 지구는 이렇게 빙글빙글 돌고 있단 말이야. 어찌 중국만 한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겠나?"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중국 문화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여겨 온 유길준은 충격을 받았다. 지구의를 돌리며 청년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이는 우의정을 지낸 외조부의 오랜 지인인 노정승 박규수였다. 16세부터 서학을 접하게 되며 과거공부에 관심을 잃고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을 싹틔운 유길준은 박규수의 추천으로 ‘海國圖誌’를 읽고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결국 과거 준비를 그만두었다. 대신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서양 세력을 막기 위해서는 서양을 알아야 한다."라는 노스승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1875년부터 본격적으로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지도를 받기 시작하였다.Ⅱ유길준이 바라본 국제 정세와 그에 대응하여 저술한 글유길준은 1880년대 들어와 조선에 열강의 세력이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하자 이를 경계하고 약소국인 조선의 현실을 일깨우기 위해 두 편의 글을 저술하였다. 먼저 그는 ‘세계대세론’(1883)에서 공법질서에 익숙치 못한 조선에 그 개략적인 지식을 알리고 조선이 국제 사회에서 힘을 키워야 함을 강조했다. ‘세계대세론’의 연장선상에서 집필된 ‘경쟁론’(1885)에서 유길준은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문명부강’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여 경쟁구역을 확장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조선의 대서양 개항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그 길만이 패권의식이 팽배한 공법질서의 현실 속에서 조선이 살아남을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대세론의 “自由大略’ 항목을 보면 여기서 유길준은 공법 상 국가의 기본권을 설명하고 있다. 타국인도 국내에 있으면 국내 법률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이를 일국주재권이라고 하고 타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은 일국독립권, 대국이나 소국이나 관계없이 동등한 것은 일국 동등권이라고 하며, 이들 세가지 대권을 합하여 일국의 권리라고 하는데, 따라서 오늘날의 세상을 인권국권세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길준은 여러 열강들에 대한 개항 과정에서 조선이 치외법권과 세권을 상실한 데다가 청 군대의 서울 주둔으로 병력인솔권마저 상실한 상황을 개탄하고 있다. 유길준은 조선이 이 지경이 된 것이 조선이 병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여 부국강병론을 주장하였다.‘경쟁론’이 쓰여진 1880년대 중반은 개화파와 수구파가 조선의 대서양 개국문제에 대하여 팽팽한 대립을 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길준은 정부의 개국정책으로 신사물을 접하는 것은 조선의 경쟁 구역을 확장시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조선의 문명 부강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다른 나라의 문물은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인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유길준은 조선이 서양열강에 문호를 개방함으로 인하여 국권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우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조선의 경쟁력 제고를 걱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인도의 경우는 넓은 영토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이지만 그 동한 경쟁할 상대가 없어 국가의 경쟁력을 증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영국의 노예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유길준은 18880년대 중반 조선이 은둔에서 갓 깨어난 상황 속에서 국권을 보전하고 패권주의가 난무하는 국제정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구역을 넓힘으로써 문명부강을 이룰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도 조선의 개국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력들에게 국가 경쟁력 제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조선을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을 제시한 것이다.또한 유길준은 당시 한반도에로의 남하를 엿보던 러시아 세력을 경계하였으니, 그에 대한 인식은 ‘언사소’(1883)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 그는 조선이 러시아에 살고 있는 조선유민의 문제를 공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식대로 처리하는 것은 러시아가 공법질서를 이용하여 조선에 역습을 가할 구실을 제공할 뿐이라고 하면서 ”공법질서에 의해 규율되는 국제질서“의 일면과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질서“의 이중적 현실을 정확 히 지적하였다. 이와 같이 공법의 허구성을 정확히 인식한 유길준은 열강에게 패권논리를 적용할 틈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 조선이 먼저 공법질서의 일원으로서 공법에 입각하여 외교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다음으로 유길준은 1880년대 이후 조선에 대해 전통적 중화질서에 기반한 종주권 논리를 내세워 제국주의적 지배를 시도했던 청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편의 글을 저술하였다. 먼저 그는 ‘국권’(1885)/‘방국의 권리’(1889)에서 청의 태도를 비난하였다. 그는 여기서 비록 공법질서가 모든 국가들의 자주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기는 하나 현실적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조선이 청에 증공하는 현실을 인정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自保하는 道’일 뿐이므로 청이 조선의 권리를 침탈하는 것은 공법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조선은 청이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열강들과 역시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청과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 것임에도 청이 전통적 종주권을 빌미로 조선을 지배하려 하는 것은 공법에 어긋난다는 논리이다.또한 유길준은 조선의 중립을 조선정부와 청정부에 제안하고자 ‘중립론’(1885)을 서술하였다. 여기서 그는 청에게 조선 중립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러시아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청의 공로의식을 부추겨 청이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도전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은 조선의 중립화 뿐이라고 제안하였다.그리고 유길준은 강화되어가는 청 세력을 피해 조선에서의 경제적 세력침투를 엿보던 일본을 경계하는 ‘어채론’(1892)을 저술하엿다. 이렇듯 19세기 말 조선이 동아시어 국제질서의 충돌 속에서 약소국으로써 주변 열강들의 움직이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행동상의 제약이 존재했던 상황 속에서 유길준이 조선사회에 던진 경고와 대응방안은 큰 의미를 갖는다.Ⅲ 유길준의 개화 사상유길준은 근대 문명개화를 추구하면서도 일시적이고 급진적인, 그리고 전면적인 개혁을 원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우려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실현하려는 근대화를 위한 가장 큰 장애로 사회적 혼란을 꼽았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기존체제를 부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통사상과 서구사상을 근대화 수행에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점진적인 방법에 의해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도달하려 하였다. 바로 이 떄문에 그의 사상은 논리전개 과정에서 간혹 모순을 초래하기도 하였고 사상적 확고성이 약화되기도 하였다.그의 서구 지향적 변혁 사상의 세계관은 ‘진보적 문명사관’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는 구한말 조선의 유학적 전통 세계인식의 틀을 극복하고 계승, 발전, 진보에 대한 가치 의식을 전환시키려는 그의 진보적 세계관이다. 그러나 이런 개화가 단순히 외국 닮기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구의 문물과 제도 속에서 자기발전의 기틀을 발견하고 장점을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는 그의 ‘실상개화’와 ‘허명개화’의 내용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실상의 개화는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깊이 연구하고 고증하여 그 나라의 처지와 시세에 합당케 하는 경우이지만, 허명의 개화는 앞뒤 헤아릴 지식도 없이 덮어놓고 시행하자고 주장하며 지출은 많지만 실용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는 박영효 세력이 ‘허명의 개화’를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자기의 처지와 시세에 조화된 개화를 표명함으로써 자주성과 개방성을 더불어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 그의 진보사관은 서양의 진보된 문명을 견문하고 이를 조선에 끌어들이는 실상개화의 실천방법을 담고 있다.그는 다른 개화 사상가들과는 달리 전통적 가치와 근대적 사유는 각각 일정한 장점과 단점을지닐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이에 따라 둘을 동도서기의 시각으로 조화시키고자 하였다. 그 일례로 그는 ‘개화의 죄인’, ‘개화의 원수’, ‘개화의 병신’으로 구분한다. 전통 없는 근대를 모색하는 사람을 ‘개화의 죄인’이라고 하고, 반면 근대 없는 전통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개화의 원수’라고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좋은 것을 버리고 남의 나쁜 것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개화의 병신’이다. 이 같은 개화의 구분은 다른 개화 사상과 어느 정도 유사성과 차이점을 지닐 수 있겠지만 유길준의 개화사상의 개혁적 가치관은 개화에 대한 이러한 구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싶은 것 감상문‘꽃 할머니’ 제작 및 출판의 어려움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하여 그림으로 꾸민 책이다. 어린이들은 그림을 통해 더욱 쉽고 흥미롭게 책의 줄거리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은 한중일의 그림책 작가들이 평화그림책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작가가 겪는 어려움을 다루고 있다. 한국의 작가가 그리는 평화그림책의 제목은 ‘꽃할머니’, 그 소재는 일본 위안부이기 때문이다.권윤덕 작가가 겪은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제작의 어려움이고 두 번째는 출판의 어려움이다. 첫 번째 어려움은 그림책 속의 그림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서 나타난다. ‘꽃할머니’ 책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이다. 독자는 초등학생, 나이가 많아봐야 중학생인 어린 아이들이다. 그렇기에 성폭행이라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그리기도, 하기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영화 속 인터뷰에 언급되었듯이, 이야기를 잘못 전달하면 어린이들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그것을 안고 성장할 위험이 있다. 이에 더하여 한국 측은 일본의 잘못을 명확히 드러내고 싶어 한다. 이는 그림책이 전쟁 중의 국가적 성폭행 문제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중립성을 잃고 흔들릴 위험에 처하게 한다.권윤덕 작가는 그림책 제작 과정에서 겪는 여러 문제 속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성폭행 피해자인 그녀는 누구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수도 없는 고심을 거쳐 이 공백을 잘 메워낸다. 10번이 넘는 수정을 통해 자극적인 이야기를 온화하게 표현하는 것에도 성공한다. 또한 일본에 대한 비난이나 반일 감정이 담기지 않은 위안부 이야기를 그려낸다. 한국인이라면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프레임을 걸지 않고 역사를 보며 충실하게 주제 전달을 위해 노력한다. 그녀의 피땀 어린 노력과 고생은 영화 속에서 생생히 전해진다.작가가 이렇게 힘들게 그림책을 그려냈음에도 불구하고 ‘꽃할머니’는 사회적인 문제로 일본에서 출판되지 못한다. 일본 위안부를 소재로 다룬 그림책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우익 단체 등에게 공격을 받을 위험이 다분하다는 이유로 ‘꽃할머니’는 몇 년 간의 노력과 수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결국 출판되지 못한다.일본 역사적 문제의 인정 및 청산 필요‘꽃할머니’ 출판의 목적은 전쟁 속 빈번하게 일어나는 국가적 성폭행 문제의 참혹성을 이야기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권윤덕 작가는 일본이 잘못했다는 비판이 아닌, 이 주제에 충실하려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 세력은 일본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는 소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비난하려고 낸 그림책이 아닌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 는 속담이 떠오르는 행동이다. 역사적 문제에 대해 여지껏 일본 정부나 우익 단체가 가져온 태도는 문제가 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역사를 외면한다면 정체성을 잃고 발전할 수 없다. 과거의 과오는 과오로 인정하고, 반성하며 제대로 청산하고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일본은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려 들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시키기도 한다.일본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들이 역사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19세기 말 이래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식민지 획득과 침략전쟁에 나서면서 그 지역의 여성들을 강제 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들었다. 강제 동원된 여성들은 온갖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대우로 참혹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은 종전 후 위안부 동원을 계속 모르는 척 덮어두었다. 증언이 나온 후, 초기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에 정부가 관여한 적이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여러 증거 문서가 발견되며 국가가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담화문을 통해 약한 사과의 뜻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일본 정부와 일본군에 책임이 있다고 제대로 인정한 적은 없고, 그에 따라 책임자처벌과 피해자 법적 보상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과거 역사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끝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몇몇 우익 단체들은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우며 역사적인 잘못을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각종 망언과 행동을 통해 전쟁범죄 피해자들에게 2차적인 심리적 피해를 주고 있다. 위안부 문제의 경우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할머니들의 사과나 피해보상 요구 운동을 방해하기도 했다.안타까운 현실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위안부 문제 외에도 많다. 역사적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힘쓰지는 못할망정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고 있다. 남의 역사가 아닌 그들의 역사이다. 잘못을 지을 수는 있지만 잘못을 지울 수는 없다는 하상욱 시인의 말이 있다.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감정을 섞어 일본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청산해야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올바른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일본은 우선 그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들의 책임에 따른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직접적인 공식 사과가 필요하고, 그 후 법적 배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 교과서에도 이 문제를 기록하여 후대들에게 알려야할 것이다.국내 문제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아쉬운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아쉬운 것은 일본으로부터 해방 후 국가가 위안부 피해자를 잘 감싸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강제 동원되어 끔찍한 고통을 겪고 돌아온 피해자들은 국민들에게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친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위정자들에 의해 조성된 반공 이데올로기와 예로부터 가부장적이었던 사회분위기 탓이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할머니들 말씀대로 원치 않는 일로 일생을 잃었다. 엄연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은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그로 인해 더 웅크리고 사셨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맺어 현재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배상을 회피하는 구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독립 후 거의 50년 가까이 지나고 나서야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사회적 혼란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전부터 지원이 이루어졌어야한다고 본다.두 번째는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는 문제점이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일본과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다. 1964년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은 아무 설명 없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고 확인된 공식 사망자 수만 9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 몇몇 증언에 따르면 잔인한 범죄와 성폭행도 일어났다고 한다. 베트남에는 한국 증오비가 세워질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항상 피해자 역할을 해왔기에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가해자의 자리에 서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일본에게 바라기만 하는 동안 우리의 잘못도 돌이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해야한다.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 치유 희망; 꽃 할머니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은 끔찍하다. 전쟁 하에 여성들이 겪은 잔혹한 만행은 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은 그 고통을 받고 있다. 현재 살아계신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56명이다.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시위는 1992년부터 무려 천 번이 넘게 열렸다. 더 이상 시위의 횟수가 늘어나고 생존해계시는 할머니의 수가 줄어들기 전에, 제대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이 단순히 공부하는 법, 효율적인 학습법을 제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목차를 보고도 그렇게 생각했고 시중에 널리 퍼져있는 공부법을 다루는 책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그런 책들을 종종 자발적으로 읽었는데, 대학교에 와서도 공부법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인가도 싶어 약간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롤로그를 읽으면서부터 나의 그런 생각들이 본질적인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세 개의 절망 모델을 읽으며 딱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정리한 것처럼 나는 현재 맹목적으로, 남들이 하니까, 지적 유대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특히 대학에 와서는 그것이 더 심해졌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대입이라는 뚜렷했던 목표가 사라져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호모쿵푸스’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향유하며 글을 쓰고 독서를 하면서 인생을 바꾸는 공부를 하겠냐마는, 저자가 주장하는 개념인 ‘호모쿵푸스’의 태도롤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시험도 없고, 학교도 그렇게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았으니까 현재 공부하는 태도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자랑하실 정도로 책과 공부를 좋아했으며 글도 많이 쓰는 아이였다. 비록 그 글은 일기나 독후감 정도였지만 자발적으로 그렇게 공부를 하는 아이는 적지 않은가. 그랬던 내가 언젠가부터 ‘호모쿵푸스’적인 공부보다는 등수와 같이 수치로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큰 만족을 느끼게 되며(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 또한 그런 수치에 더 많은 호감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맹목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공부하여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현역 때 성공하여 나름 명문대에 왔으며 현재는 취직에 필요한 스펙 중 하나인 학점을 위해 시험 기간에만 공부하고 있다.책을 읽으면서도 자기 성찰이 많이 되었는데 이렇게 글로 쓰면서 더 회의감이 든다. 주체도 없이, 의심도 없이, 그러므로 질문도 없이, 생명력 없이 공부를 해서 미래에 소용이 있을까? 현재 수강하고 있는 ‘문화론 특강’이라는 강의에서 행복에 대해 배우는데, 내가 공부하는 행위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버리고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성취주의자의 태도에 속한다. 이러한 태도가 나쁘다고 비판할 수는 없지만 성취주의자의 문제는 과정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보상을 받으며, 현재의 경험보다는 다음 목표에 초점을 맞추게 하고 평생 미래를 쫓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목적을 달성하여 안도감을 얻더라도 이는 고통 뒤에 오는, 부정적인 경험에서 벗어난 일시적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공부를 하게 되는데 이왕 공부 할 거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앎의 코뮌에 접속하여 공부 한다면 현재와 미래가 모두 행복한 행복주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독서를 통한 앎의 즐거움,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즐거움 등을 느끼며 공부하는 순간에도 즐거움을 느끼며 성공적인 미래 또한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내가 지금까지 공부에 대해 가져온 태도를 조금씩이라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단 한사람이라도 자신의 글을 읽고 지금까지와는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는 저자는 바라는 바를 이룬 것 같다.책에서 저자는 앎의 코뮌, 암송과 구술,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가 담긴 인문 고전 읽기,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공부하기 등을 신선하게 제안하고 있다. 특히 앎의 코뮌이라는 개념은 코뮌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코뮌은 ‘프랑스 중세의 주민 자치체’를 뜻한다. 이 단어를 이용하여 스승과 도반을 찾아 능동적으로 학습하는 네트워킹을 뜻하는 개념을 만든 것이 참신했다. 스승, 도반, 청정한 도량으로 이루어진, 기성의 권력과 습속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네트워크인 코뮌에 나도 접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대학은 저자가 생각하는 만큼 완전히 죽은 학습의 공간은 아니기에 앎의 코뮌이 주위에 많이 존재하는 듯하다. 교수님과 함께하는 세미나라든가, 아니면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조직해 서로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어 배우고 가르치는, 사우관계 속에서 앎의 즐거움을 실천하는 학회나 동아리 등이 꽤 많이 있다. 현재 접속하고 있는 앎의 코뮌은 없지만 그 속에 접속하여 지적 열망을 자극하고 인문학·사회학적 성찰을 한다면 현재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얻는 즐거움과는 색다른 즐거움을 코뮌 속 관계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주위에서 앎의 코뮌을 조직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는데 내가 뭔가 주위 사람들과 지적 활동을 한다는 것에 어색함과 거부감을 느껴 거부했던 적이 많다. 하지만 공부를 통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진다면, 책에서 말한 것처럼 공부를 통해 더 두터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더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내친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앞으로는 그 기회를 기다리기만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코뮌을 조직해보자 노력해보고 싶다.암송과 구술을 중시한 것 또한 이 책의 신선함 중 하나였다. 암송이 중요한 공부법인 이유는 입으로 읽고 말하는 과정에서 눈으로만 읽었을 때에는 느낄 수 없는 다른 의미와 매력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고전 시가 같은 글귀들은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을 전제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소리 내어 읽지 않고서는 시가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국어국문학에는 거의 소양이 없는 나도 체감하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만을 위해 공부했던 시기에도 고전 시가를 암송할 때면 공부하면서도 뭔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청각에 기초한 신체운동으로 신체 전체의 기운을 활발히 소통시키는 암송이 머리와 몸을 함께 훈련하여 몸을 소외시키지 않으며, 리듬을 타며 타인과 배운 것을 나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앎의 코뮌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실제로 암송과 구술을 통해 공부할 때 그냥 무조건적인 암기보다 때로는 더 효율적이며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암송은 또한 타자와 나눌 수 있으므로 지식의 사적 소유, 즉 지식의 종말에 대한 예방책이 된다. 구술 또한 마찬가지인데, 현대 사회에서는 구술이 좀 더 중요하고 효율적인 공부법이 될 것 같다.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어 수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는 현대에,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푸는 훈련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구술은 상황을 언어로써 풀어내는 능력으로, 썰을 잘 푸는 사람 곁에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리더십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