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현 생애1872년 12월 7일, 경상북도 영양 - 1933년 8월 22서로군정서 등에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계획했으며 혈서 '조선독립원'을 작성하여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일본장교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1872년 12월 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南珽漢)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품성이 단정하고 총명하였으며 7세 때에 국문에 능통하였고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을 통달하였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 김씨(義成 金氏) 김영주(金永周)에게 시집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 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決死報國)을 결심하고 영양의병장(英陽義兵將) 김도현(金道鉉) 의진에서 왜군과 전투중 전사하였다 한다.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 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부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養蠶)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의 나이 46세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 구국하는 길만이 남편의 원수를 갚는 길임을 깨닫고 3월 9일에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通化縣)으로 이주해 서로군정서에 가입, 군사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북만주 일대에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하였으며 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 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여 여권신장과 자질향상에 주력하였다.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 계획1925년에 사이토 마코토(재등실) 총독을 주살하기 위해 채찬(蔡燦)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남자현은 박청산, 이청수, 김문거 등과 함께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남자현은 이 자를 처단해 조선의 독립 의지를 만방에 알리기로 하고, 박청산, 이청수와 함께 경성으로 잠입했다.권총과 폭탄은 동지 김문거로부터 미리 전달받았다이들이 거사 시기를 엿보던 시기인 1926년 4월 26일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승하했다.세 사람은 사이토 총독을 비롯한 총독부 고관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빈소가 차려진 창덕궁을 찾을 것으로 보고 기회를 노렸다.4월 27일 남자현이 창덕궁 일대를 답사하던 중 갑자기 호각소리와 함께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일본 경찰들이 혜화동 일대에 깔리고 가가호호 수색을 하고 있었다.남자현 팀외에도 사이토 총독의 목숨을 노리는 인물이 있었다.일본인 가게에서 일하던 송학선이란 청년이 칼을 품고 창덕궁 입구에서 기다리다조문을 하고 나오는 일본인 3명에게 휘두른 것이다.그는 추격하던 조선인 순사마저 찌르고 도주하다 일본 경찰과 격투를 벌인 끝에 붙잡혔다.이 사건으로 경성이 발칵 뒤집혀 총독 경호도 강화되고, 검거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이런 분위기에서 거사 실행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세 사람은 만주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뿔뿔히 흩어졌다.국제 연맹 조사단에 혈서를 보냄1932년만주국수립으로 영국인 리튼이 이끄는 국제연맹의 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손가락을 잘라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서 보낸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 왼손 무명지를 끊어 조선독립원이라 혈서를 쓰고 끊어진 손가락 마디를 함께 싸서 보냈다국제연맹에서 중·일관계 특별조사단을 만주에 파견했을 때 남자현은 왼손 무명지를 잘라 흰 천에 혈서로 ‘조선독립원’이라고 쓴 뒤 손가락을 동봉해 조사단에 보냈다국제 사회에 우리가 독립 의지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무토 노부요시 암살 계획1933년 주만 일본 대사이며 관동군 사령관인 무토 노부요시의 암살 계획을 세우고 하얼빈에서 변장한 채 정탐1933년 초 여사는 동지 이춘기(李春基) 등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 1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인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무등신의(武藤信義)를 제거하기로 하고 2월 29일 거지로 변장, 권총 1정과 탄환, 폭탄 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게 장춘(당시 新京)으로 가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하얼빈 교외 정양가(正陽街)를 지나던 중, 미행하던 일본영사관 소속 형사에게 붙잡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