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워싱턴 주(State of Washington)워싱턴 주(State of Washington)는 미국 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있는 주이다. 이름의 기원은 첫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이름에서 왔다. 서쪽으로 태평양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컬럼비아 강을 경계로 오리건 주, 동쪽으로는 아이다호 주, 북쪽으로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와 접하고 있다.조지 워싱턴이 서거한 후, 이 지역이 미국에 편입될 당시,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마음으로 주기의 중간에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를 넣는 것으로 지금까지 이 주기가 사용되고 있다.전반적으로는 민주당에 가까우며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밋 롬니 후보가 워싱턴 주의 37개 군 중에서 23개 군에서 이겼으나 시애틀, 아나코티스 등이 진보적인 성향을 보여 결국 주 전체적으로는 버락 오바마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주민2000년 미국 인구 조사국은 워싱턴 주의 인구가 5,894,121명이라고 보고하였다. 주의 인구는 1990년으로 본 4,866,692명에서 21 퍼센트나 증가하였다. 2000년 조사국에 의하면, 워싱턴 주는 50개의 주들 중에 인구 15위에 들어와있다.워싱턴 주의 주민들의 85 퍼센트 이상은 메트로폴리탄 지역들에 살고 있다. 주민의 대략 절반은 주의 서부에 있는 시애틀-터코마-벨뷰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산다. 워싱턴 주는 주의 전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12개의 메트로폴리탄 지역이 있다.워싱턴 주의 더 큰 도시들의 대부분은 퓨젯사운드에 걸쳐 주의 서부에 있다. 주의 가장 큰 도시 시애틀이 이 지방에 있으며, 중요한 해운업과 제조업의 중심지로 있다. 산업적 항구의 도시 터코마는 시애틀의 남부에 있다.워싱턴 주 동부의 도시들은 대부분 경작 거래, 벌목, 혹은 광업의 중심지들로서 발달하였다. 동부의 가장 큰 도시 스포케인은 철도, 제조업, 곡창과 금융의 중심지이다. 주의 남동부에 있는 리칠랜드, 패스코와 케네윅의 "트라이 시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사이즈와 중요성에서 번영하였다. 전쟁 동안에 핸포드 원자력 센터는 타운임스 K. 포크는 미국에 속하는 위도 54°40’이남의 지방의 전부를 주장을 자신의 선거 운동에 기초를 두었다.1846년 포크 대통령은 영국과 워싱턴 주의 현재 북부 경계인 49선에 경계선을 세우는 조약을 맺었다. 영국은 밴쿠버 섬을 간직하였다. 퓨젯사운드에 산 후안 섬들의 소유에 불일치는 1872년까지 지속되었다. 그해에는 논쟁을 가라앉히는 데 청구한 독일의 황제 빌헬름 1세는 미국인들의 호의에 다스렸다.준주 시대워싱턴 주가 일부였던 오리건 준주를 창설한 선언이 1848년 미국 의회를 통과하였고 조지프 레인 장군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1853년 밀러드 필모어 대통령은 워싱턴 준주를 창설하는 선언에 서명하였다. 이 지방은 오늘날의 워싱턴 주, 아이다호 북부와 몬태나 서부를 포함한다. 올림피아에 수도를 설립하였고 필모어 대통령은 새 영토의 첫 지사에 아이잭 잉골스 스티븐스를 임명하였다.스티븐스는 백인 정착자들을 위한 더 많은 영토를 해방시키고 인디언들을 보호 구역에 포함시키고 인디언들과 조약을 맺으려고 노력하였다. 연안 지대이 인디언들은 이들과 여러 조약들을 맺었지만 1855년 플래토 인디언들과 맺은 조약에 의해 그들을 전쟁으로 이끌었다. 야키마 인디언의 추장 캐미어킨이 전쟁하는 종족들을 지도하였다. 1858년 인디언들이 포 레이크스 근처에서 전투를 패한 후, 곧 싸움이 끝났다.1859년 오리건이 주가 되었을 때에 워싱턴 영토는 현재 아이다호와 와이오밍의 일부를 포함하는 데 확장되었다. 워싱턴은 1863년 아이다호 영토가 설립되었을 때 그 오늘날의 경계선들을 받았다. 1860년 아이다호, 오리건과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부분적으로 황금이 발견되어 많은 정착자들이 워싱턴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황금을 발견지하지 못하였다.주 승격 이후1883년 동부와 연결된 철도의 완공 이후 워싱턴에는 많은 정착자들이 왔다. 1889년 11월 11일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은 준주를 주로서 선언하였다. 영토의 전 총독 엘리샤 페리가 워싱턴 주의 초대 주지사로 선출되었으며천 3백만 달러의 향상 프로그램을 찬성하였다. 계획들은 공원과 오락 시설들의 1억 1천 8백만 달러 확장을 포함하였다.1960년대 후반에는 시애틀과 퓨젯 사운드 지역에 산업과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확장의 중요한 이유는 보잉사의 번영이었다. 전쟁 시기에 주요 군사 전투기의 생산 회사였던 보잉사는 상업적 제트기와 우주선 산업들에 확장되었다. 한번은 거의 10 퍼센트 가까운 워싱턴 주의 노동력은 제트키 와 그것에 관계된 비지니스들에 고용되었다.1900년대 후반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주의 전력을 위한 늘어나는 필요들을 만나는 데 시도가 주요 세트백을 겪었다. 이 시기에 워싱턴 공공 동력 공급 시스템이 5개의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으나 프로젝트는 퍼지는 비용과 부담이 되고 말았다. 1983년 워싱턴 공공 동력 공급 시스템이 자치적 보증금에 2에 4분의 1 조달러에 기권하여 2개의 발전소들 만이 완공되고, 건설이 중지되었다. 시스템은 역사상 가장 비싼 민간 공사 프로젝트였다.그림 5 세인트헬렌스의 화산폭발워싱턴 주는 1980년 5월 18일에 주의 남서부에 있는 세인트헬렌스 산의 화산 폭발이 57명의 사망과 재산의 수조달러의 손해에 결과를 가져올 때 자연적 재난에 의하여 타격을 받았다. 이 화산 폭발은 홍수와 숲의 화재와 넓은 지역에 퍼진 재의 두꺼운 층의 원인을 가져왔다. 1982년 의회는 세인트 헬렌스 국립 화산 기념물을 창조하였으며, 미국에서 첫 기념물이었다.1900년대 후반 동안에 주의 공무원들은 워싱턴 주에 더 많은 산업을 끌어들이는 노력들을 증가시켰다. 주의 높게 숙련된 노동력에서 이익이 몇몇의 전자 회사들을 발행하는 도움을 주었다. 1980년대 동안에 전기 통신, 생물 공학과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더 많은 근로자들을 기용하였다. 보잉사, 마이크로소프트 주식회사 등의 확장은 1990년대에 워싱턴 주의 경제에 거대하게 원조하였다.주의 공무원들은 워싱턴 수력 발전소들에서 연어의 사망에 관한 더 많은 근심이 되었다. 컬럼비아 강과 스네이크식품들의 대력 절반은 시애틀 지역에서 만들고 있다. 지도적인 임업 제품 회사 와이어헤이저는 터코마 근처에 본사를 두고 있다. 몇몇의 다른 큰 임업 제품 회사들이 주에서 운영된다. 주의 서부에 있는 많은 지역들은 종이와 목재 제품들을 제조하는 공장들을 가지고 있다.컴퓨터와 전자 제품들은 주로 시애틀 지역에서 생산된다. 컴퓨터, 전자 의료 장치와 마이크로칩은 이 부문의 중요한 일부들이다. 시애틀은 합성 금속 제품들의 지도적인 중심지이다. 아나코티스와 펀데일에는 석유 정제소들이 있다.농업그림 7 애즈웰에 있는 사과 농원농장 지대는 워싱턴 주의 내륙 지역의 대략 3분의 1을 덮고 있다. 농부들은 건조 농사법과 자극 상태의 둘다에 의하여 농작물을 생산한다. 대략 절반에 가까운 주의 농장들은 자극 상태에 있다.밀운 주의 가장 가치적인 곡물이다. 주의 동부의 농부들은 어떤 봄밀과 큰 양의 겨울밀을 재배한다. 워싱턴 주는 호프 생산에서 나라를 이끌고 있다. 주는 아이다호 주에 이어 두번째로 큰 감자 생산주이며, 애덤스, 벤턴, 프랭클린과 그랜트 카운티들에서 자라고 있다. 워싱턴 주는 아스파라거스, 당근, 완두콩, 양파와 사탕 옥수수, 보리와 다른 곡물들의 지도적인 생산주들 중의 하나에 들어와있다.워싱턴 주는 다른 주들보다 더 많은 사과와 배를 재배하고 있다. 주는 살구, 딸기류, 체리, 포도와 자두 등의 높은 생산주이다. 과일의 대부분은 자극된 협곡의 중부의 주에서 자란다.온실과 종묘의 생산물들도 또한 중요하다. 이 생산물들의 대부분은 시애틀-터코마 지역에서 자란다. 워싱턴 주는 또한 자주개자리의 씨, 잔듸의 씨와 박하의 생산지이기도 한다.젖소와 육우는 주에서 가장 중요한 축산물이다. 낙농 지대의 대부분은 주의 서부에 있으며, 육우는 주의 중부에서 주로 기른다.광업주의 지도적인 광물은 깨진 돌, 모래와 자갈, 아연이다. 석회암과 트랩은 지도적인 깨진 돌의 생산물이다. 모래와 자갈은 주의 전역을 통하여, 특히 시애틀 지역에서 체굴된다. 아연은 주의 북동부에서 체굴되고 있다. 인을 생산했는지는 불분명하며, 1860~1870년대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이민자들이 와인을 생산한 기록이 있지만 상업적인 목적의 생산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1970년대는 워싱턴 주의 와인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한 시기이다. 빠른 속도로 빈야드의 확장이 이루어졌고, 1974년 WWI(Washinton Wine Institute)가 발족이 되면서 워싱턴 주 와인 산업은 한 단계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워싱턴 주에 메를로 붐이 일었던 1980년대는 WWC(Washington Wine Commission)의 발족과 첫 번째 워싱턴 주 와인 옥션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1990년에는 북서부 와인 연합(Northwest Wine Coalition)이 형성되어 미국 북서부 대표 와인 산지인 오레곤(Oregon) 주, 워싱턴(Washington) 주, 아이다호(Idaho) 주의 와인 수출을 지원하여 워싱턴 주 와인 산업은 더욱 더 활기를 띠게 되었다. 미국 북서부 와인 연합이 WWC와 함께 워싱턴 주 와인을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1997년, 정부에서 매년 8월을 ‘워싱턴 주 와인의 달’로 지정하면서 워싱턴 주는 명실공히 미국 최고의 와인 산지로 인정받게 된다.이후 2001년에는 저명한 와인 매거진 에서 워싱턴 주를 ‘Wine Region of the Year’로 선정하기도 했으며, 2009년에는 세계적인 에서 워싱턴 주 까베르네 소비뇽을 ‘Number one wine of the year’로 선정한 바 있다. 워싱턴 주에서 주옥과 같은 와인을 생산하는 데저트 윈드 와이너리(Desert Wind Winery)의 오너 스콧 젠킨스(Scott Jenkins)는 “지금도 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워싱턴 주 와인은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라고 밝히며, 워싱턴 주 와인 산업의 현재는 앞으로 맞이할 찬란한 미래의 과정일 뿐이라고 강조하였다.1981년 19개.
목차1. 대한민국의 교육1) 서론2) 대한민국의 공교육3) 최근 정부의 교육방향4) 문제점2. 핀란드의 교육1) 서론2) 핀란드의 공교육3) 문제점3. 대한민국과 핀란드 교육의 차이점4. 앞으로 나아가야할 교육의 지향성1. 대한민국의 교육1) 서론한국의 교육 문화도 다른 동양 나라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특히 한국은 교육과 관련된 역사가 깊고 길다. 통일 신라 시대에 독서삼품과는 실패했지만 그 후에 공부와 시험들이 한국 사회의 품격과 평등을 지켜 왔다. 조선 시대의 과거라는 시험은 관리가 될 사람의 자질을 보증했고 가족주의의 차별을 줄였다. 물론, 역사적으로 주로 양반들만이 교육을 받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과거시험에 합격하기위해 그들이 열심히 교육받고 공부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과거가 있어서 일까 한국에서의 교육은 항상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으며 20세기에 이르러 한국이 세계적인 선진대열에 올라서면서 교육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더욱 증가하였다.2) 대한민국의 공교육20세기인 지금 대한민국의 공교육의 시작은 초등학교 때부터이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8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한 교실에서 학생은 30~40명이 보통이고, 진급은 대부분의 경우 이루어진다. 배우는 과목은 수학, 과학, 국어, 영어, 사회, 도덕, 음악, 체육, 미술, 한문, 기술-가정, 컴퓨터 등이다.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6시간 정도 학교에 다닌다. 몇 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토요일에도 짧게나마 학교를 나왔지만 2012년 이후 주5일제가 실시 된 후로는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공휴일이 되었다. 이렇게 6년간 초등학교교육을 받고 아이들은 중학교에 입학을 한다. 중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보다 조금 더 심화된 내용을 3년간 배우며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우리나라의 법적 의무교육기간은 중학교까지이지만 대부분의 중학생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고등학교 3년을 마친 후에 97%가 졸업한다. 중학교까지 비슷한 공부를 해왔다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과학고등학교, 외국여기서 인문계 공립 고등학교의 경우만 보았을 때 대광고등학교의 이기서 교감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1976년부터 고교평준화로 인해서 사립과 공립에 똑같은 학생들이 지원한 뒤 추첨하여 들어오기에 지금은 학생들의 수준이 같고 교사들의 보수와 학생들의 수업료도 같으며 국가에서 인건비등을 상당히 지원받고 있다. 정부 간섭의 수준은 올해 대법원 판결로 사립학교도 종교교육을 시킬 수 없다는 정도이다. 자율형 학교, 특수 목적의 특별한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교는 많이 평준화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능력시험을 보며 이후 성적에 따라 대학교에 진학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81.5%를 넘고 있다고 한다.3) 최근 정부의 교육방향2010년 이후 정부의 교육방향은 “사교육 없는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 7월부터 457개 초·중·고등학교를 ‘사교육 없는 학교’로 바꾸었고 이후 180개교도 순차적으로 이러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런 학교는 정부에서 지원을 더 받아서 방과 후 교육을 더 많이 실시한다. 정부는 학교 교육을 강화해서 사교육의 필요성이 감소되기를 바라고 있다. 2010년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1.5% 증가하면서 교육서비스업 매출은 12년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했고 학원산업도 하락세인 걸 보면 사교육을 줄이려는 정부 정책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또한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서 정부는 EBS 방송의 수능 반영 비율을 높이겠다고 하였다. 사교육으로 인한 학생간의 격차를 EBS수능 연계 정책을 통해 줄이고자하는 정부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불만을 쏟아냈다. 조왕호 대일고 교사는 “교과서를 외워 시험 보는 학력고사 제도가 1993년 수능으로 바뀌면서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좋게 평가했지만 요즘에는 의구심이 든다.”며 “공부를 좀 하는 애들은 EBS 교재를 미리 하고 와서 수업시간에는 딴 짓을 해 죽은 수업이 될 가능성이 많아졌고 EBS 교재가 특색과재를 외우고 있어 창의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 수능의 취지와 부합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4) 문제점현재 우리나라의 공교육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입시위주 교육’이다. 초등, 중등, 고등교육이 자신의 능력을 발달시키는 교육이 아닌 수학능력시험이라는 하나의 시험을 보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을 대표하는 ‘입시위주 교육’과 ‘주입식 교육’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교육은 각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적성과 흥미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보다는 획일적인 잣대로 대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성적 만들기를 최고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러한 획일화된 교육은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물론, 본인의 장단점과 적성에 대해 고민할 기회와 다양한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박탈한다. 수능 위주의 대규모의 학생들의 석차를 매기기 간편하도록 시험은 한 가지 ‘정답’만이 있는 객관식으로, 그리고 시험에 비중 있는 과목들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머지 비주류 과목들은 괄시를 받고 각 개인의 적성은 무시된다. 몇 가지 분야에서 굉장히 뛰어난 아이일 지라도 도태되기 쉬우며, 수동적으로 잘 외우고 수능에서 비중이 있는 과목에 대한 시험을 잘 보는 학생들이 성공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요즘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배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2. 핀란드의 교육1) 서론핀란드의 교육은 핀란드 학생들에게 수업료가 없는 ‘평등주의 노르딕 제도’(egalitarian Nordic system)이다. 7살에 시작해서 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며, 이들에게는 무상급식이 제공된다. 학생들은 인근의 학교에 진학을 하며, 종합 학교 이후의 고등학교에서는 직업 교육과 학문 교육, 두 개의 체계로 분리된다. 핀란드의 교육 수준은 세계 교육계에서 "핀란드식 방법(finnish method)"로 주목 할 만큼 수준이 높다. 학생들은 경쟁에 의한 상대 평가가 아니라 ‘달성도’에 의해 평가되는 절대 평가로 평등 교육이 아니며, 고등학교는 중학교 성적에 따라 지원을 할 수 있다.2) 핀란드의 공교육그림 1 핀란드의 교육과정 핀란드의 공교육은 7살에 시작해서 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다. 종합학교 이후의 고등학교에서는 직업 교육과 학문 교육, 두 개의 체계로 분리된다. 그림1은 핀란드의 교육을 간단히 표로 나타낸 것이다. 핀란드의 종합학교는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된다. 홈스쿨링이 허용되기는 하지만, 드문 편이며 7살(종종 6살) 때부터 시작하여 대한민국의 중3의 나이인 15세나 16세 때 끝나게 된다. 초등학교의 첫 1년 동안은 언어 교육 등에만 학점이 한정되며, 학점 수치가 부분적으로 결정된다. 대개 종합 학교의 학생들은 1년에 두 번씩, 봄, 가을 학기에 보고서 카드를 제출한다.종합 학교의 학생들은 보건과 하루 필요량의 1/3에 해당하는 무상급식과 같은 사회적인 권리를 누린다. 게다가 교과서와 교재, 학교에서 주관하는 장단거리 소풍을 무상으로 즐긴다.종합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기능을 하는 2차 교육기관에 입학을 한다. 이것은 실업계와 인문계로 나누어져 있으며, 실업계 학교는 취업을 대비하여, 직업 교육이나 직업 능력을 배양하고, 인문계 학교는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며, 대학 과정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체계는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실업계를 졸업한 학생이라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인문계를 졸업했을 지라도 직업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두 종류의 학교를 동시에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인문고와 실업고 졸업장은 '전문대학 입학'에 더욱 중요하며, 대학 입학 자격시험은 대학 입학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취득해야 한다.이후 대학과정에 속하는 3차 교육기관에 입학을 한다. 대학은 모두 국립으로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신입생을 선발 시, 학생 선발의 기준으로 국가 대입자격시험과 입학시험이 이용된다. 종합 대학의 초점은 연구이며, 대학은 이론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전문 않지만, 산업 개발 프로젝트에 종사한다.3) 문제점핀란드 교육의 특징은 질 높은 공교육이다.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이 공교육화가 되어 있으며 사교육비를 한푼도 내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다. 핀란드의 경우 소득자가 부담하는 세율이 평균 45%이다. 누진세를 적용하기 때문에 7000만원 이상 소득자의 경우 60% 이상의 세금을 내야한다. 1억을 버는 사람의 경우 4천만원도 채 못가져 가는 셈이다. 하지만 살인적인 세율에 비해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큰 반발은 없다. 한때 반발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복지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세금중 교육제정으로 들어가는 세금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평균적인 교육 수준만을 높히기 위해서 막대한 교육제정을 국민들에게 부담시키는 것도 무리이며 이 제정이 이민자에게도 무리한 해택을 준다는 것도 국민들의 불만이다. 돈을 벌고 투자를 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없을 정도의 세율은 국민들의 의욕을 저하시키게 마련이다. 다른 문제점은 지나치게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핀란드의 학구열은 여느 국가들 보다 높은 편이지만 교육에 대한 평등주의 사상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남보다 나은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그 결과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성과에 따라 높낮이 학습을 한다고 하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차이가 크지 않다. 핀란드 학생들의 PISA 테스트(OECD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 결과는 우수하다. 그러나 PISA 테스트는 만 15세 (중학생 정도) 학생들의 평균적인 읽기, 쓰기, 산술, 과학 능력 테스트이지, 수학 올림피아드, 과학 올림피아드 같은 높은 수준의 테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핀란드의 교육은 지나치게 평등주의 교육을 지향하고 있어서 올리피아드와 같은 경시대회에 입상하는 학생들 역시 전무하다. 상위 1% 학생은 양성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다. 어느 국가건 우수인재양성을 위한 기관과 상위 1%에 해당하는 인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