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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시의 역사와 종가음식
    민속학의 이해 기말레포트이영배 교수님영주의 나의, 주위의, 과거의, 기억과 시선들1. 사람의 시선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세상의 시선2. 기록의 시선영주의 역사종갓집음식문화20170131 권태홍제출일: 207.06.24.토목차나와 타인의 시선영주는 작다. 20년간 살아온 나의 솔직한 감상이다. 인구는 대략 11만명으로 85개의 시 중에 70위이다. 사람이 적으니 애초 문화시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거의 없다. 영화관은 아예 없고 ‘시네마’라는 이름을 붙인 상영관이 하나 있을 뿐이다. 유명한 브랜드의 옷 가게나 패스트푸드점의 프렌차이즈점도 적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옷 가게의 개수자체만 적다는 것이 아니다. 그 가게들을 형성하는 ‘브랜드’가 적다는 것이다. 또한 시내 영토나 인구문제뿐만 아니라 마음가짐도 작은 편이다. 우리 엄마나 내가 알바하는 곳의 사장님등 영주의 어른들이 보아온 영주사람들은 남들에게 대접받기를 원하며 시기질투가 많고 자신이 사소한 것이라도 남보다 모자라다면 그것에 대해 굉장히 분해한다. 남을 까내리기 좋아하고 3명이상이 모인다면 제4자에 대한 이야기가 꼭 나온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이건 우리엄마의 경험에서 나온 주장이다.) 보수적이고 페쇠적이며 안정성을 추구하고 남들 따라하길 좋아한다. 유행을 많이 따른다고 해야 할까, 남이 무언가를 해서 좋아보이면 무작정 따라한다. 사업을 할 때도 선뜻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고 누군가 새 사업을 시작해서 그것이 성공하면 너도나도 그 사업을 따라하기 일수다. 예를 들자면 인형뽑기 가게가 있는데 인형뽑기가 영주에 유행하고 그 사업아이템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생기자 불과 3개월만에 우리 집 근처에만 5,6개가 생겼다. 또한 영주사람들은 정이 많다, 자기 지인들에게만. 말이 좋아야 선비정신을 가진 선비의 고장이지 실상은 전형적인 ‘꼰대정신과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그리고 내가 알바하는 가게 사장님은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나도 그 이야기에 발달하였다. 우리 고장에서 출토된 반달 돌칼은 가을에 이삭을 잘라 추수하던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농기구이다.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휴천1동의 고인돌과 가흥동의 입석등이 있다. 특히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정치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잇다. 고인돌은 보통 2개에서 4개의 굄돌을 세우고 돌방을 만든 다음 그 위에 평평한 덮개돌을 얹어 놓은 것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굄돌이 낮거나 굄돌이 아예 없고 덮개돌만 있는 것도 있다. 휴천 1동의 고인돌은 북방식과 남방식의 중간적인 형태로 추정된다.삼국, 통일신라시대영주를 지도상에서 보면 신라의 영토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우리 고장 순흥면 비봉산에서 발굴된 어숙묘 고분 벽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지역이 고구려의 영토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신라가 삼국중 가장 늦게 중앙집권을 이룬 국가였고 가야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백제와 대립하던 신라는 고구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을 하였다. 또한 백제와 동맹 관계에 있던 왜구가 신라에 침입하자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물리치기도 했다. 그러므로 적어도 5세기 중엽까지는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아래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 때 백제와 연합하여 한강 상류지역인 죽령 이북을 점령하고 단양 적성비를 세웠다. 이로써 경북지방의 북족 경계선에 있는 영주시, 봉화군, 일대가 완전히 신라의 영토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또한 죽령은 고구려와 신라사이의 쟁탈의 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와 고구려는 한강유역의 장악을 위한 발판으로 죽령을 차지하려 했고 죽령을 차지한 신라는 성공적으로 한강유역을 손에 넣었다. 이처럼 우리 고장을 둘러싸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각축을 벌였으며 이 지역의 장악은 세력의 판도를 좌우하였다.고려시대고려시대는 왜구의 노략질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특히 우왕 때에 왜구의 침임은 절정에 달했고 우리지역의 왜구침입 중 주요한 의 상층향리는 신지 사대부로 지배층 속에 포함되어 갔다.조선시대우리 고장 출신인 정도전은 다른 조선 건국 세력과 함께 주도적인 위치에서게 되었으며 조선 왕조의 통치이념과 지배 기구를 마련하는 데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우리 고장은 큰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15세기 세조는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안평대군등과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사육신을 제고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당시 우리 고장 순흥에 유배와 있던 금성대군이 순흥 부사 이보흠과 순흥 영주의 지방세력을 모아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처형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이에 관련되어 많은 인사들이 처형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 고장 순흥부는 관아 창고들이 파괴되었고 영주, 풍기, 봉화 3읍에 분할 귀속되어 완전 폐읍되기도 하였다.한편 조선시대 유학 교육을 위한 기구로는 관학으로서 중앙에 성균관과 4부학당을, 지방에는 향교를 설치하였으며 그 외 사학으로서 서당, 서원 등이 설치되어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우리 고장에도 영주향교, 순흥향교, 풍기항교 등이 설립되어 있었고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순흥면 내죽리에 설립되었다. 서당도 17세기에 순흥에만 14개가 세워졌을 정도로 우리 고장은 다른 어느 고장보다 교육적 기능이 뛰어난 곳이었다. 16세기말 조선은 왜란이라는 큰 고비를 맞게 된고 그 위기 상황속에서도 전국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의병이 조직된다. 그리고 임진왜란때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의병으로는 목사였던 오운이 의병 대장인 곽재우 휘하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김태현, 곽수지 등은 김륵과 함께 김성일과 서로 연락을 하여 역시 의병을 모으는 활동을 하였다. 7년에 걸친 왜란은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안겼고 그 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극심한 지역은 경상도였다.일제강점기1905년 일제는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1907년 군대 해산을 거쳐 1910년 국권을 강탈하였다. 그리고 35년간 일제에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일제 몸바쳐온 팔도의 의사들을 이곳 풍기에 모아 조직한 국내 최초의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이다. 1915년에는 대구의 박상진 의사가 이끄는 조선국권회복단과 병합하여 전국 규모의 조직으로 확대 및 개편하고 그 명칭을 ‘대한 광복단’으로 하였다. 영주의 대동상점을 비롯하여 대구의 상덕태상회, 서울의 남일여관 등 전국에 100여개의 혁명기지를 건설하고 군자금 모금, 비밀 폭동, 암살 혁명 봉기를 비롯하여 김좌진 장군과 신흥학교의 독립군 기지 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크게 활약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18년 이탈자의 밀고로 조직망이 발각되고 수많은 의사들이 일제의 형장의 이슬로 장렬히 순국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는 헛되지 않았고 이듬해 3.1만세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남은 의사들은 수비단, 암살단, 의열단 등에 흩어져 광복을 맞기까지 계속 피흘려 싸웠다.위의 내용이 문서에 글로 기록된 내용이라하면 이제 소개할 기록은 현재 우리들의 생활에 기록되어 있는 제례음식문화이다. 영주하면 선비, 유교 이런 단어들이 제일먼저 떠오를 것이고 제사는 영주라는 지역에서 그만큼 중요한 문화였다.영주 종가의 제례음식영주에는 소위 종갓집이라 하는 집안이 여러 곳 남아있다. 그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종가의 제례음식과 종가음식을 보고하려하고 내가 조사한 종가는 귀암 황효공가이다. 이 종가에서는 재물로 사용한 음식의 목록은 제주, 메, 갱, 5개의 탕, 면적, 편적, 편, 포, 침채, 숙채식혜, 조과, 실과이다. 제주: 청주나 법주를 사용했다. 메: 멥쌀과 물이다. 보통 밥을 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지으며 밥을 주걱으로 흔들지 않고 식기에 차곡하게 담는다. 갱: 1그릇 갱은 무와 콩나물로 국을 만들어 무만 담아 그 그릇을 쓴다. 탕: 탕은 계탕, 육탕, 소탕 3그릇이 있다. 계탕은 무와 닭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무는 밑에 깔고 위에 닭고기를 올린다. 육탕은 무와 쇠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밑에 깔고 위에 쇠고기를 올려 담는다. 소탕은 두부를 네모나게 썰어 끓여서 담아 낸다. 면적: 물에 배추를 데친다. 소금, 간장, 참기름, 물을 넣고 무친다. 깨소금은 위에 올린다. 세채: 재료는 무, 간장, 소금, 참기름이다. 무는 깨끗이 씻어 곱게 채를 썬 후 간장, 소금 간해서 참기름에 볶는다. 마지막으로 깨소금위에 올린다. 대채: 고사리를 끓는물에 삶아 우려낸 다음 소금, 간장, 참기름에 볶는다. 마지막으로 깨소금을 위에 올린다. 실과: 재료는 대추, 물엿, 물, 흰 깨이다. 대추는 씻어 물기를 뺸후 대추, 물, 물엿을 넣고 윤이 날때까지 조린 후 깨를 뿌린다. 밤은 껍질을 벗긴후 측면이 육각형 모양이 되도록 손질한다. 이때 아래 위를 평평하게 해야 한다. 밤은 깍은 후 변색을 방지하기 위해 찬물에 담가 둔다음 건져서 제기에 담는다. 땅콩은 볶아 속껍질을 까고 반으로 갈라둔다. 배와 사과는 아래위를 평평하게 도려낸다. 곶감은 잘 마르고 깨끗한 것으로 골라 꼭지를 딴 다음 잣을 박아 담고 사과 5개, 배 5개를 제기에 담는다. 수박과 참외는 아래 위를 평평하게 도려낸 다음 참외를 3개 담고 수박은 1개를 담는다. 토마토는 깨끗이 닦아 그대로 담는다. 조과: 도라지와 인삼은 꿀에 조린다. 약과는 밀가루에 참기름과 정종, 꿀, 생강즙, 계피가루를 넣고 반죽해서 기름에 튀겨낸 다음 잣가루를 묻혀 담아낸다.세상의 시선세상의 시선이라는 주제를 놓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와 함께 영주라는 조그만 도시에 세상의 시선을 받을게 뭐가 있다고? 라는 의문점이었다. 그래서 세상이 영주라는 곳에 시선을 두고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다. 솔직히 각종 매체가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세상 사람들이 타 지역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 하면 인터넷 검색을 가장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 중에서 도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가장 먼저 그 시의 홈페이지를 제일 먼저 들여다볼 것이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영주를 ‘힐링의 도시’라고 내세우며 소백산과 부석사, 소수서원을 주요 관광지로 삼아서 영주를 전국 최초의 ‘힐링특구’로 주장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다
    사회과학| 2017.11.01| 8페이지| 1,500원| 조회(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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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향리더십(정도)
    기말보고서이용범 교수님상향리더십과 재상정치론의 현대사회의 적용1. 문제제기2. 상향리더십3. 정도전의 상향리더십에 기인한 재상정치론4. 재상정치론의 한계점5. 현대사회와 정도전의 사상6, 맺음말7. 참고문헌20170131 권태홍제출일: 207.06.24. 토목차문제제기필자는 한국학과 인문학 강의 중 국가와 근대국가의 발제 과정에서 국가의 성립과정을 연구하던 중 국가의 ‘망’에 해당하는 시대의 상위 계층, 즉 군주의 무능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무능한 군주들이 현대사회에서는 대통령과 직장상사들로 나타나고 있음을 깨닫고 현대사회에서 무능한 군주(상사, 대통령)가 나타난다면 그에 대한 해결점을 과거 필자와 같이 무능한 군주에 위기감을 느낀 정도전의 상향리더십과 재상정치론에서 찾아 보려한다. 또한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정도전의 상향리더십과 그의 정치론을 평가해보고 인관관계에서 상하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상’에 해당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하’에 해당하는 자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상위 계층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또한, 이 글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제시되었던 상사가 무능할 때의 부하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와 그 무능함에 따른 문제점의 개선점을 상향리더십과 재상정치론에서 알아봄에 목적을 두며 더 나아가 그 사상들을 토대로 현대사회에 가져야하는 태도를 알아보려 한다. 조선 초기 정도전이 이성계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상향리더십’과 ‘재상정치론’에 대해 탐구해보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오류에 적용해 볼 것이다. 상사와 부하직원에 기반을 둔 상향리더십과 군주와 재상이라는 형태로 상향리더십을 정치 체제에 적용시킬 수 있게 발전시킨 정도전의 재상정치론을 통해 첫째,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를 상향리더십을 통해 알아보고 둘째, 최근 사회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던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발견한 우리나라 정치체제의 문제를 정도전의 ‘상향리더십의 제도화’ 배제하고 상사와의 관계만을 신경 쓰는 아부, 아첨과는 다른 말이다. 즉 상향리더십은 임무수행과정에서 아랫사람이 상사와의 상호 간의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그에게 전략적인 식견과 적절한 조언, 그리고 현실적인 피드백을 제공하여 전체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도와주는’ 리더십이다. 그렇다면 상사에게 어떻게 신뢰를 얻고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만들고 전체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를 상향리더십을 토대로 단계별로 구성해보았다.일단은 상사와의 관계가 친밀해야 한다. 상향리더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사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며, 반대로 그 믿음을 유지하지 못할 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상사와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되기 전까지는 서로 부딪히는 일 없이 적당히 상사와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즉 상하관계이지만 서로의 친밀감을 토대로 신뢰할 수 있는 단계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상향리더십의 첫 번째 조건인 것이다.상사와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상향리더십의 실천이다. 상사에게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를 비판하여 올바르게 만드는 것이다. 마이클 어셈은 ”우리 모두에게는 상사가 반드시 들어야 할 내용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절대적인 의무가 있다“라고 하면서 조직 전체를 위해서라면 상사와 마찰을 일으키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상사의 치명적인 결함을 꼬집어서는 안 되고 비유나 우화를 통한 돌려 말하기로 상사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을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변도 지킬 수 있다. 또한 정도전은 특별히 ”임금이 재상을 논함에 제 뜻을 맞추는 것만을 구하고 자기를 바루어주는 것을 구하지 않으며, 그 사랑스러운 것만을 취하고 그 두려워할 만한 것은 취하지 않으면, 임금은 그 직분을 잃은 것“이라고 말한다.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 군주의 직분이라 본 것이며 상향리더십을 실행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 모이다. 그는 재상 정치론을 토대로 조선 초기를 이끌어 갔다. 재상정치론이란 군주 아래에 재상을 두고 재상이 그는 국왕의 자질이 항상 뛰어날 수는 없다고 보고, 이를 재상의 상향리더십으로 극복하려 했다. 즉 정도전은 군주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로 재상을 두었다. 군주는 단지 재상을 논하는데 있고, 재상은 헌가체부라고 하여 군주의 옳은 일을 적극 봉행하고 욿지 않은 일을 끝까지 막음으로써 왕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했다.왕조 국가에서 군주가 왕정을 유지하는 최고의 통치자이고 천하의 백성과 토지를 소유하는 최고의 권력자임을 인정했지만, 군주의 권한은 재상을 선택, 임명하고 재상과 정사를 협의, 결정할 뿐이라고 했다. 군주는 정사를 협의하는 데 큰 문제는 재상과 협의하지만 작은 문제는 재상이 독자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또한, 재상은 주군을 보좌하고 조언하며 또 비판을 잘할 수 있는 상향리더십을 가진 재상의 구체적인 임무는 첫째, 임금을 보좌하면서 바른 정치를 하도록 돕는 일이고 둘째, 관료들과 신하들로 하여금 각기 적절하게 논의한 대로 그들의 역할을 배정받고 시행하게 하는 일인데, 이렇게 되면 국왕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만물이 제 자리를 얻게 되고 만민이 편안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정도전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고려 말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공민왕처럼 처음에 잘 다스리다가 후반부에 가서 뒤떨어지는 군주가 있는가 하면, 우왕이나 창왕처럼 처음부터 무능하고 유약한 임금도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이 어질지 못한 ‘모자란’ 군주가 나타나면 국가의 기틀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것인데, 이것을 막기 위해서 훌륭한 재상이 국가 운영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도전의 생각이었다. 즉, 필자와 같이 무능한 군주에 대한 위기감을 가졌고 그에 기초한 문제의 해결방법을 고민한 끝에 가진 생각인 것이다.그렇다면 훌륭한 재상은 어떤 사람이어야 했는가? 정도전의 주장을 살펴금의 음식과 의복에서 밖으로 오관의 뭇 일에 이르기까지, 큰 것에서 자잘한 것까지, 근본적인 것에서 말단의 문제까지 천만 가지 일의 두서를 처리해야 하는” 막중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한 가지 일이라도 실수하면 나랏일과 직결되기 때문에 재상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일의 기미를 살펴 일을 ‘앞서 처리’해야만 한다. 다섯째, 막중한 책임감이다. 정도전은 재상이란 임금으로부터 인사권과 회의운영권을 위임받아 일을 추진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원망과 불평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훌륭한 재상들은 “자기의 의론을 주장하되 두려워 피하는 일이 없었고” 천하의 원망을 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그 원망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국정 수행과정에서 파생되는 득과 실, 비난과 칭찬을 개의치 않고 자기 책무를 온몸으로 떠안으며 일을 성공시켰다.재상정치론의 한계점정도전은 고려 말에 혁명을 주도한 혁명가였을 뿐만 아니라 상향리더십을 기반으로 제도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주장한 “조선 문명의 설계자”였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일들은 이성계-정도전이라는 특수한 관계이기에 가능했으리라 판단된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재상으로 삼아 국정의 전권을 부여하다시피 했고, 사병 혁파 등 개혁의 과정에서 발생한 반발을 왕의 권위로 제압하며 정도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정도전이 짧은 시간 동안 새 왕조의 기틀을 상당 부분 잡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성계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왕조체제에서 재상에게 군주의 권력을 위임하라는 요구는 군주와 신하 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며, 태조 이성계와 같은 군주에게나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군주와 재상의 관계가 이성계와 정도전의 관계만큼 발전되지 않으면 재상이 임금의 위임을 받아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형태는 현실에서 중대한 위험 요인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권력의 특성상 그것이 가지는 권한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뿐만 아니라, 재상의 업무가 임금과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재상의 역할이 강화될수록 임상중심체제의 구축은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정도전은 일정수준의 권위와 권력을 가진 국왕을 만들어 재상을 중심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려 했지만 그 ‘일정 수준’에만 집중한 나머지 세자책봉을 잘못해 이방원에게 모조리 희생당하는 실수를 해버렸다. 즉 원하는 상의 군주를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왕위계승에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상정치론은 중요하고 유효했다. 실제로 세종대왕의 시대가 되어서는 이상적인 재상(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황희정승이다.)중심의 정치체제가 등장하고 경국대전에도 반영되어 조선 400년의 정치운영시스템에 크게 기여를 하게 된다.현대사회와 정도전의 사상위에서 살펴본 사상들을 현대사회의 문제들에 반영해보도록 하겠다. 정도전의 재상정치론은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나 이번 최순실이 일으킨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전대미문 한 사건이 터진 가장 큰 이유는 재상정치론적인 관점으로 현대에서 군주라고 볼 수 있는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려 말 무능했던 군주들과 박근혜를 동일한 선상에서 볼 수 있는데 그리고 이에 대한 개선점을 정도전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재상정치론에서 나타나있듯이 정도전은 강력한 군주의 존재보다는 그 군주를 보좌하고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무능한 군주가 나올 것을 고려하여 환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정밀하게 재상을 선임해서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게 하는 시스템을 원했던 것이다, 이를 현대정치사회에 적용해 보자면 인군의 자질을 고려하기 보다는 평균 이상의 대통령을 뽑되, 인사권과 군 통치권을 제외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청와대 비서실의 규모를 대폭 줄여 ‘환관’의 역할들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즉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고 그만큼의 영향력을 ‘재상’ 역할을 하는 자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상’의 설정은 실권을 가진 국무총리 .
    인문/어학| 2017.11.01| 6페이지| 1,500원| 조회(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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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이 엄마 감상문
    사랑을 해야 겠다.20170131권태홍400년 동안 갖혀 있던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의 정수인 원이 엄마의 편지는 가볍고 얕은 사랑이 일반화된 현시대에 잔잔하지만 깊게 다가와 나의 가슴을 울렸다. 한지 오른쪽 끝에서 시작한 편지는 왼쪽 끝과 위, 아래여백까지 가득 채우고 다시 거꾸로 쓰여지고도 모자라 하고 싶은 말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라는 마지막 글귀는 나로 하여금 어떠한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사랑’,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과 누군가를 좋아하는 행동. 나는 아직 가벼운 연애조차도 한번 해보지 못했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원이 엄마처럼 자기 머리를 깎아 미투리를 만들어줄 만큼 헌신적이고 후회 없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떠나갈 때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은 ‘많이 웃어줄걸’, ‘더 많이 베풀걸’, ‘더 많이 다닐걸’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죽은 후에는 그곳에 갈 수 없고 죽은 후에는 그 사람을 안을 수 없고 사랑을 고백할 수도 없다. 그러니 내가 살아있는 지금 뜨겁게 일하고, 내가 살아있는 지금 가고 싶은 그 곳에 가고, 내가 살아있는 지금 사랑한다고 고백해서 그 사람과의 만남에 내가 후회를 느끼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반드시.또한 영상을 보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나를 포함한 앞으로 사랑을 해갈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원이 엄마의 그토록 깊은 사랑을 망쳐버린 것은 다름 아닌 원이 아빠의 죽음이기에 죽음을 전제로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하라, 더 늦기 전에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다고 말하라. 지금은 영원하지 않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인생이고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기에 오늘이 더 이상 오늘이 아니며 지금이라는 순간을 깨달을 때면 ‘지금’은 떠나가고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사랑하는 이가 당신의 곁에 있을 때 한번 더 웃어주고 한번 더 눈길을 건네고 한번 더 함께 길을 걷고 한번 더 같이 차를 마시고 한번 더 손을 잡아주고 한번 더 가장 아름다운 말로 격려해주고 한번 더 가장 풍족한 말로 칭찬해주고 한번 더 따스한 가슴으로 안아라. 지금 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지금 저 푸르른 강물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오늘은 내게 있어도 내일의 오늘은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순간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기에 자신에게나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당신이 되었으면 한다.
    독후감/창작| 2017.11.01| 1페이지| 1,000원| 조회(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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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축제감상평
    ‘축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20170131 권태홍제출일 2017.03.21간단한 리뷰내가 축제라는 제목에서 받았던 긍정적인 느낌과는 달리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음울한 음악, 제사상에 절을 올리는 모습과 상여 그리고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치매에 대한 감성적 표현과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를 찾아 헤매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고 그 뒤 할머니의 아들 안성기가 나오면서 할머니의 별세 소식과 함께 장례과정이 이어져 나간다. 영화 속에서 장례절차를 다큐멘터리처럼 자막을 넣어 보여주고 장례식장의 통곡 소리와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연출하면서 장례식이 가진 양면성을 표현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후 조문객들에게 술이 들어가자 죽은 자는 안중에도 없고 노래하고 춤을 추거나 노름, 도박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인간군상이 고인의 조의를 표하려 모였지만 그들은 그저 관계유지와 상주와 친구, 동료, 등으로 얽혀 있을 뿐 진정으로 슬퍼하는 이는 몇 없다. 이 영화의 제목 그대로 축제와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 이다. 그러한 이질적이고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도 장례식은 진행되고 부조금을 노름의 판돈으로 쓰기까지 갔던 축제적 분위기는 다음 날 아침 상여를 맬 때나 되어서야 진정됐고 장례식이 마저 진행할 수 있었다.축제라는 제목의 이유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 영화의 제목인 축제와 영화의 주제인 장례의 상관관계였다. 하지만 영화 1번으로 그것도 강의시간에 쪼개서 감상했기에 생각을 확립하기 힘들었었고 마침 네이버 티비 캐스트에서 볼 수 있어 영화를 다시 한번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2번 본 것 때문인지 제목이 축제라는 이유에 대한 생각도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처음에는 장기자의 존재에서 발상을 시작했다. 시골에서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에 굳이 기자를 등장시켜야만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것은 장기자가 외부인을 나타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영화속에서 유일하게 조의를 표하는게 목적이 아닌 사람이고 외부에서 온 사람이기에 영화 속에서 타지인의 시각을 고려하게 만드는 인물이라 판단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타지인이 지나가다가 그 상황을 봤을 때 과연 장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숙연하고 안타까운 자리일 장례식에서 생기는 술, 노래, 노름 등의 방탕한 문화를 ‘축제’라고 표현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중성과 가식과 유교적인 허례허식을 소위 말해서 깠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장례식이 죽음을 슬퍼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안성기의 극중 딸인 윤지는 시골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지만 슬프지 않다고 하고 장례식장에서 안성기가 친구들에게 ‘나는 지금 못 웃지만 너희라도 웃어라.’ 라는 대사를 통해 마냥 슬퍼하기보단 긍정적이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가족구성원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기적과 같은 선물이고 할머니의 사별은 분명히 슬픈 일이지만 가족들이 모여서 서로에 대해 응어리진 마음을 드러내고 그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조금씩이나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던 것은 장례식을 진행하면서 각자 자신을 먼저 돌아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면, 가족사진을 찍을 때 모두 굳어 있는 얼굴에 던진, ‘이 집에 초상났어?’라는 농담에 환하게 웃던 모습은 침울한 장례식에서 나아가 서로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던 ‘축제’의 순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에....
    독후감/창작| 2017.11.01| 3페이지| 1,000원| 조회(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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