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0
검색어 입력폼
  • 사제와 광대
    서양 중세의 형성 과제 ? 사제와 광대 서평‘사제와 광대’ 라는 책은 중세 유럽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특히나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개념인 중세를 대표하는 기독교와 교회라는 시각(책에서는 엘리트 과 동시에 그 당시 기독교 신자였던 농민에 대해서 전통문화의 파수꾼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즉 거시적 관점에서 중세 유럽을 바라보기 이전에 미시사적으로 개개인의 생명력과 창조적 주체성을 대변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민중기독교는 겉으로는 기독교적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이교도적 민속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형태를 말한다. 또한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독특한 점으로는 ‘민중’ 의 의미에 대해서 포괄적인 개념을 사용하는데 ‘교회문화’ 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서술 할 뿐더러 그로 인하여 농민은 물론, 귀족, 심지어는 성직자까지도 민중에 포함시켰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에로스적인 것을 중심으로 교회문화와 세속문화의 갈등을 부각시켜서 보여준다. 2부는 타나토스적인 것을 중심으로 교회와 개인관의 관계에 집중해서 보여준다. 이 서평에서는 각 장의 내용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장의 내용을 총합하여 각 부를 관통하는 생각을 적으려고 한다.1부의 1장은 대중설교에 나타난 교회이념과 민중문화 라는 제목이다. 중세 사회는 현재와 비교해 보았을 때 심각한 문맹 사회였다. 그렇기에 글이 아닌 언어, 즉 설교는 사상을 전파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12세기 중엽까지의 설교는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 12세기 후반부터는 새로운 형태의 설교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민중을 상대로 하는 속어설교이다. 이것은 위계서열적인 기존 사회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권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기존 고위 성직자들은 배타적 태도를 보였는데 그 근거로 설교를 사제의 직무로 예속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는 대중설교의 설파로 인해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 대중 설교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예화의 인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시를 들어가며 민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이해하기 힘든 라틴어 대신에 이해하기 쉬운 속어를 써 가며 설교를 진행하였다. 대중 설교는 그 이전과 달리 공간의 제약에서도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면, 대중 설교는 장소의 제약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민중 설교에 대한 대표적 인물로는 자크 드 비트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사람은 교회의 이데올로기와 민중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민중문화를 교화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예화를 통해 주인공들의 공덕과 죄과를 보여줌으로서 그들에게 맞는 죄의식을 인지시키고 내면화시키는 것에 주목하여 교화를 시도하였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대중 설교를 통한 교화는 각자가 자신의 죄를 검증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기관리 기능을하였다.제 2장은 성과 결혼에 대한 교회이념과 세속풍속 이라는 주제이다. 중세는 언제나 교회의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사제적인 가치와 이에 반대되는 광대적인 것의 긴장관계를 주목하면서 바라보아야 한다. 기독교는 본래 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지닌 종교였다. 교회는 그동안 성과 여타 쾌락을 잠재적 죄악의 근원으로 간주하고 자녀생산을 위한 부부간의 성만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성 규범은 민중 설교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설파되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교회 규범의 일상화를 이루게 된다. 또한 이 종교적 규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주의적 사상에 입각해서, 출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성행위인 동성애나 자위 등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관음이나 성매매에 한해서는 관대해 지는데 이것은 사회에 대한 필요악임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마을 도덕 규범을 설정함으로서 민중기독교의 형식을 좀 더 강하게 띄기도 한다. 이것이 3장의 매춘에 대한 교회의 이념과 사회현실의 논리이다. 당시에는 성직자의 사창가 출입이 종교법 상으로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규율을 어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당시 종교와 세속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엿볼 수 있는데 갈등의 결과로 1,2 장에서 설명한 대중 종교의 전파로 인하여 점점 미혼청년의 관음과 매춘도 탄압받기 시작하는 침묵의 영역으로의 출발을 고한다.제 4장은 궁정식 사랑의 은유와 현실세계에 대한 내용이다. 이 장에서는 크레티앵의 일화를 예화로 들어서 세속적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궁정식 사랑의 특징으로는 혼외의 은밀한 사랑, 귀부인의 위치 우월성, 구애자의 보답성 무용 수행, 사랑의 기술과 지식화를 들어 설명한다. 책에서는 궁정식 사랑을 쉬운 말로는 주군의 부인에 대한 기사의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책을 풀어나간다. 일반적인 사랑과 궁정식 사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주종관계의 메타포이다. 사랑 이전에 ‘섬김’의 개념을 가져야 했던 구애자들은 ‘구애’ 이전에 ‘봉사’를 기본적으로 하는 입장이다. 이런 대우의 이질성이 일반적인 사랑과 많은 차이를 유발하고 그 예시는 ‘랜슬럿’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5장과 6장에서는 중세의 작명방식과 친족구조, 양자제에서도 교회문화와 세속문화 사이의 긴장관계 및 문화접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름을 짓는 방식에 있어서 기독교적 영향이 강해짐에 따라서 개인의 이름에 세례명이나 성인의 이름을 쓰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많은 귀족계층은 그들 고유의 작명방식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귀족계층의 이데올로기와 기독교적 가치의 갈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중세 기독교에서는 현재의 입양에 관련된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기독교의 영적친족개념의 발발로 해석할 수 있다.1부에서는 꾸준하게 신성한 ‘사제’로서의 가치와 민간적인 ‘광대’로서의 시대적 가치를 비교, 대조함으로서 당시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중세가 기독교로 획일화되는 사회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려는 필자의 의도가 느껴진다. 종교 자체로는 신성한 것 일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당시 암흑기로만 알고 있는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나타난 후대에 선사회적 영향을 끼친 행동들에 대해 조명하면서 두가지 시각을 동시에 가지고 바라본다.2부는 ‘타나토스’ 즉 죽음과 사후세계에 관련된 주제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 해 나간다. 2부의 1장은 유언과 죽음의 준비에 관한 내용이다. 언제나 유언은 죽음에 대비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행위로 여겨져 왔다. 유언은 로마 시대에 성행하였다가 로마 멸망 이후 12세기 중엽까지는 거의 사장되어 왔었다. 하지만 중세가 시작되고 기독교 문화가 퍼지면서 유언 문화가 다시 성행하게 되었고 중세 말기에는 유언관습의 거의 모든 사회 계층으로 퍼지게 되었다. 유언이 다시 성행하게 된 이유는 교회의 도덕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유언장이 가족을 해체시키는 요소가 아니라 가족을 뭉치게 하여 도적적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하며 당시 사회적제적 변화에 적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종교 원칙이 정립됨에 따라 ‘유언’을 하고 죽는 것이 ‘천국행’을 가능케 하는 첫걸음으로 보는 원칙이 당시 유언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2장은 죽음과 통과의례에 관한 내용이다. 중세인에게 죽음이란 끝이 아닌 영원으로서의 의미를 더 크게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죽음은 삶의 연장선이다 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중세 들어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임종 문화에 있어서까지 기독교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전통적 민간 임종문화에서는 임종을 돌아다니면서 크게 외쳤고 그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기독교적 질서 안에서는 교회의 종소리로 알렸다. 이 외에도 부장품을 묻는 문화, 장례 행렬의 문화, 목관 문화 등 기독교는 죽음의 의례적 형식에 관해서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당시 ‘광대’ 계층에서는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반발로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세력들도 존재하였다. 또한 죽음에 대해 보편적 규칙(임종으로부터 1년 종료제 까지)를 정함으로서 평등주의를 실현한다는 기독교적 가치를 엿볼 수 있다.
    독후감/창작| 2017.11.11| 4페이지| 1,000원| 조회(172)
    미리보기
  • 영화 ‘타인의 삶’을 통해 본 동독의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
    영화 ‘타인의 삶’을 통해 본 동독의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세계경제질서의 역사 과제)‘타인의 삶’은 주인공인 동독의 비밀경찰, 즉 슈타지의 대위 비슬러의 시선을 통해서 당시 동독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이었던 인권 탄압을 보여준 영화이다. 감독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동베를린의 실제 슈타지 본부 건물에서 촬영을 하기도 하는 등, 1980년대 동독의 모습을 필름에 생생히 담아내었고, 2006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동독의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을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에는 동독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나오는데, 영화에서 나온 동독의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을 분석하기에 앞서 더 나은 이해를 위하여 영화 ‘타인의 삶’의 줄거리를 요약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영화에 나온 장면들을 통해서 동독의 상황에 대한 분석을 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통일된 독일이 나온 장면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향후 우리나라의 통일에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결론을 낼 것이다.1. ‘타인의 삶’주인공인 비슬러 대위는 동독의 국가안전부에서 근무하는 비밀 경찰, 슈타지였다. 감청요원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던 비슬러는 상관이자 친구인 그루비츠 중령으로부터 임무를 받게 되었다. 비슬러는 극작가 드라이만의 집에 감청 장치들을 설치하고, 드라이만의 사생활을 24시간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비슬러는 임무를 진행하면서 드라이만을 감시하는 이유가 동독 정부에 대한 사상적인 위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독의 권력자였던 문화부의 햄프 장관이 드라이만의 애인 크리스타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루비츠 중령에게 드라이만을 제거할 구실을 잡으라고 했기에 비슬러에게 임무가 내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비슬러는 그러한 내막을 알게 되고, 크리스타와 드라이만이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들의 관계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타가 햄프 장관에게 성상납을 하는 것을 눈치 채고, 의도적으로 드라이만이 그 사실을 알게 하였다. 비슬러는 감시하는 과정에서 점점 자신의 감시에 대한 정당성에 회의감을 품게 되었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드라이만의 예술적 스승이었던 에르스카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7년 가까이 연출을 하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자살을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드라이만은 그로부터 받은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였는데, 피아노 소리를 들은 비슬러는 드라이만의 감정에 감응하여 감동의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드라이만은 에르스카의 자살을 계기로 동독 정부에서 대내적으로 대외적으로 숨기고 있던 동독의 자살률에 대한 현실을 서독에 폭로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이를 위해서 드라이만은 그의 자택에서 서독의 유명 시사 잡지인 슈피겔의 관계자와 접선하고자 하였다. 동독 정부에서 자신에 대한 감청을 안 하고 있다고 착각한 드라이만은 슈피겔의 관계자와 접선하고, 서독의 타자기를 받아 본격적으로 자살률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슬러는 드라이만의 이러한 행위들을 모두 감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조수를 작전에서 배재시켜 홀로 드라이만을 감청하였다. 비슬러는 드라이만의 생활을 하루 종일 지켜보면서 당에 충성하면서 다른 이들을 감청하던 자신의 생활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의미했음을 깨달아갔다.마침내 슈피겔에 드라이만의 글이 실렸고, 동독 정부는 익명의 동독 작가를 잡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감청을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크리스타가 햄프 장관에 대한 성상납을 거부하였고, 미리 알고 있던 크리스타가 불법적으로 약을 사는 현장을 덮쳐서 크리스타를 체포하였다. 그루비츠 중령은 배우였던 크리스타가 더이상 작품생활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드라이만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였다. 크리스타는 협박에 못 이겨서 슈피겔에 실린 글의 작가가 드라이만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증거였던 서독의 타자기를 찾는 데에 실패하였고, 그루비츠는 비슬러가 심문을 맡게 하였다. 비슬러의 심문에 크리스타는 타자기의 위치를 발설하며 슈타지의 정보원이 되었다. 하지만 비슬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보호하기 위해서 슈타지들보다 한발 앞서서 타자기를 확보하여 숨겼고, 슈타지들은 타자기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크리스타는 죄책감을 못 이겨서 차에 뛰어들어 자살하였고, 드라이만에 대한 감청 임무는 중단되었다. 감청의 실패로 인해서 비슬러는 강등되어 편지를 검열하는 임무를 하게 되었다.4년 8개월 뒤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동독의 종말을 직감한 비슬러는 일을 편지 검열을 멈추고, 작업장을 나오게 되었다. 드라이만은 통일된 독일에서 극작가로 계속 일을 하고 있었지만, 크리스타의 죽음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화부 장관이었던 햄프를 만나게 되었는데, 드라이만은 왜 동독 정부는 자신을 감시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햄프는 드라이만을 누구보다 치밀하게 감시했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해 감시를 끝냈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드라이만은 집에 있는 감시 장치를 확인하게 되었다. 드라이만은 그렇다면 어째서 슈피겔지에 기고했던 사실을 알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고, 분단시절 자료 보관소를 찾아서 그에 대한 감청 자료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비슬러, 요원명 HGW/XX7이 의도적으로 드라이만을 보호하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찾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드라이만은 ‘선한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는 새로운 글을 썼고, 비슬러는 이 책을 펼쳐보다가 소설 서두에 적힌 ‘이 책을 ‘HGW/XX7'에게 바칩니다.’라는 드라이만의 감사를 보고 책을 산다. 비슬러는 포장할 것이냐는 점원의 질문에 “아니요,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2. ‘타인의 삶’에서 나온 동독의 사회, 경제, 정치적 상황 분석이 영화는 1984년, 동독 정부는 10만 명의 비밀경찰 슈타지, 20만 명의 정보원들을 통해서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처럼 민주주의국가였던 서독을 비롯한 다른 이웃 나라들과는 다르게,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은 체제 유지와 당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의 식별, 서독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막기 위해서 비밀경찰들을 활용하였다. 동독 정부가 감시하는 국민들의 수는 동독 국민의 4명당 1명에 해당할 정도로 대대적으로 감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감시당하는 자들도 이러한 정부의 감시를 알고 있었기에 길거리를 비롯한 동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농담도 쉽게 하지 못할 정도로 냉랭하고 딱딱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동독 정부의 감시는 동독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그리고 이러한 감시를 활용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동독의 정부와 공산당, 감시를 실행하는 국가보안부와 비밀경찰 슈타지들, 슈타지들에게 협력하는 정보원들과 밀고자들은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엄청난 권력을 누렸다. 영화에서는 문화부 장관 햄프와 그루비츠 중령, 비슬러 대위, 그리고 드라이만의 작품을 연출한 연출자를 비롯한 여러 끄나풀들이 이에 해당한다. 햄프 장관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슈타지들에게 드라이만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여배우 크리스타를 협박하여 성상납을 받았다. 그루비츠 중령 역시 슈타지들의 수장으로서 누구나 감시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고, 크리스타를 체포하여 취조를 하는 등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48시간 취조 같은 행위를 했다. 비슬러 대위 역시 슈타지의 힘을 이용하여 비인간적인 취조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졌고, 타인의 성생활까지 관찰 기록하는 등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었고, 성매매를 통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드라이만의 작품을 연출한 연출자는 당에 협조를 잘한다는 이유로 당시 상영되었던 모든 작품들의 연출을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체제 유지와 사상의 통제라는 명분으로 문화계를 통제하였고, 예술 활동을 억압하였다. 블랙리스트를 이용하여 작품 활동을 못하게 했는데, 에르스카는 7년 동안이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여 무력감에 자살을 하기도 하였다. 크리스타는 배우 활동을 못하게 한다는 햄프, 슈타지들의 협박에 못 이겨서 성상납을 하고, 당에 협조하는 정보원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당에 협조를 잘한 예술가들은 우선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하여 문화계에서의 권력을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당의 힘이 절대적인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독이지만, 당 안에서도 상하관계는 존재하였다. 당원들끼리 상관, 하관을 나눴고, 상관의 명령을 잘 수행하지 못한 경우에는 비슬러의 경우처럼 능력이 있어도 한직으로 강등되어 여생을 마치게 되기도 하였다. 상급자와 하급자의 식사위치가 다르고, 그루비츠 중령 옆에서 서기장에 대한 농담을 눈치 보면서 하는 하급 당원들의 행동을 통해서 상급자들에게 찍혀 당에서 쫓겨날까봐 눈치를 보는 하급 당원들의 상황도 제시되었다. 당이 절대적이고, 만인이 평등한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동독 내부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보다 더욱 엄격한 상하관계가 존재했다.
    독후감/창작| 2017.11.11| 4페이지| 1,000원| 조회(358)
    미리보기
  • why nations fail
    The Review Of 『Why Nations Fail』1. IntroductionDaron Acemoglu and James A. Robinson present two concept in their book『Why Nations Fail』. These concepts are ‘Inclusive Institution’ and ‘Extractive Institution’. The authors use these concepts to explain why some countries are rich, while other countries are poor. The existing insistence about the reason why nations are wealthy or poor is that it is determined by factors, which include geographical position, natural resources, cultural factor, and level of knowledge etc. However, those two authors believe that these factors are meaningless. Instead, they understood this from a macroscopic perspective, so they suggest that economic growth depends on whether the region’s political and economic system is inclusive or not.In inclusive institution, private property system is firmly guaranteed, and the law is conducted fairly, and fair competition is ensured. As a result, an area with inclusive system can thrive. On the other hand, an area with extractive system cannot thrive, because people are exploited by hierarchy. So, they languish in poverty. In this context, the authors emphasize that the reason why the nations fail to do so is because it implements an exploitation system based on the exploitation of the economic system, which undermines economic growth or even hinders economic growth. Even though the area with extractive system can develop their economy, this development is not sustainable but temporary.The authors describe the exploitation system as specific examples in Chapter 12, and 13 of this book. From now on, we will review Chapter 12 and 13, and examine whether their insistence is appropriate to explain the reasons for economic growth and poverty.2. Main point #1: THE VICIOUS CIRCLEIn Chapter 12, the authors explain about the vicious circle. It means that the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 and the 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 happen by circulating each other. The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 produces the 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 The elites can gain political power through economic wealth, and power which originated from the 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 So, the extractive institution also support the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The authors give specific examples about using of these institutions. In Sierra Leone, there were marketing board and indirect ruling by British Colonial Authority. In this situation, the elites established an exploitation system. Even after Sierra Leone became independent of England, the politicians of Africa also satisfied their private interests through the extractive system. This phenomenon appeared similarly in Sub-Saharan Africa, and the link of the vicious circle also led to Guatemala and the southern U.S. Especially in case of the southern U.S, the elites lose the civil war, so the slavery which one of the extractive institution was abolished. However, they maintain another extractive institution which is not same pattern, but same essence. The vicious circle was not end, and survive in southern U.S.The above examples provide features of the vicious circle. As we said before, the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 lead to the 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 and it sacrifice a majority to confer a benefit on a minority. In a consideration, the 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 provides a basis that ensure the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 survive steadily. The government which is based on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 cherishes the power, because it can make economic wealth for the ruling circles, and the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 does not provide a means of keeping power in check. Therefore, the 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 is highly likely to create the vicious circle. The term named the Iron Law Of Oligarchy represents the essence of vicious circle. It means that the new reader who promise radical changes is not different from the established leader who removed from his position by the new reader. The elites grip the extractive institution which draw income steadily.Another mechanism of the vicious circle is that it create the absolute power, and aggravate social inequality. In this circle, there are many groups who struggle for power . The extractive institution increases the chance of a more extractive regime, and is likely to instigate endless infighting and civil war. It causes economic ruin and the suffering of the people. Eventually it lead to national failure.PAGE * MERGEFORMAT3
    독후감/창작| 2017.11.11| 3페이지| 1,000원| 조회(76)
    미리보기
  •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의 교육
    일본의 역사 레포트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의 교육성균관대학교 사학과일본에서는 9세기 초부터 한문학이 성행했다. 당시 대학은 관리를 양성하는 기관이었는데, 유학적 교양을 주로 가르쳤다. 귀족들 역시 집안에 학교를 세우고 일족의 자제들에게 유학적 교양을 주된 내용으로 한 것들을 가르쳤다. 무사정권의 수립 이후, 유학은 주로 사원의 승려들이 연구하게 되었는데, 사원에서 아동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는 동부 일본의 아시카가 학교로 이어져, 아시카가 학교는 학문의 중심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본격적인 교육기관이 성립된 것은 18세기 후기였다. 그 전에도 사학이 존재하긴 했지만, 가문의 교육을 위해서 가문 내에서만 운영되었던 학교들이었다. 1890년 에도 막부는 하야시 가문이 운영하던 사학을 관립학교로 승격시켜 쇼헤이코라고 칭했다. 이 학교에서 무사의 자제들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막부가 학교를 세우자 여러 번에서 번교를 세우고 무사의 자제들을 가르쳤다. 19세기 초에는 번교의 수가 255곳에 달했는데, 수업은 주로 유학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등급제를 두고 시험을 쳐서 진급시키는 곳이 많았다. 막부 말에는 번교에서 무예도 가르쳤다. 사립 교욱기관으로 사숙이 존재했다. 사숙은 대부분 유학자가 개설했는데, 유학자는 자기 집을 개방하고 배우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신분이나 가문에 구애되지 않고 누구나 입학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유학 계통의 사학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는 이토 진사이가 세운 고기도가 있었다. 오사카 조닌이 출자해 설립한 가이토쿠도도 있었는데, 이곳에서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정신을 지닌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그밖에 무사는 물론 서민, 승려, 신관이 함께 배움을 얻은 간기엔, 요시다 쇼인이 세운 쇼카손주쿠 등이 있었다. 양학 계통의 사학으로는 오쓰기 겐타쿠가 세운 시란도, 오가타 고안이 세운 데키주쿠, 시볼트가 세운 나루타키주쿠 등이 유명했다.
    인문/어학| 2017.11.11| 1페이지| 1,000원| 조회(97)
    미리보기
  • 일본의 전통사회 과제 - 김춘추와 삼국시대
    일본의 전통 사회 과제김춘추와 삼국통일의 시대성균관대학교 사학과2014311987강지원신라 제 29대 무열왕 김춘추는 혼란했던 7세기의 동아시아에서 외교력을 발휘.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 동맹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660년, 백제를 멸망시켰고, 661년에 사망하였으나,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에 초석을 마련하였기에, 흔히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달성한 삼국통일의 의미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첫 번째 견해는 외교의 결과로 이뤄낸 나당 동맹을 이용한 삼국통일,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김춘추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김춘추는 당대의 뛰어난 외교인, 협상인, 중재인이었으며, 그의 역량 덕분에 신라는 당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민족 최초의 통일왕조를 건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라는 나라의 당시 상황을 생각해봤을 때, 조국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건 엄청난 도박이 성공을 했다고 보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두 번째 견해는 첫 번째 견해와는 반대로 나당 동맹을 이용한 삼국 통일을 부정적으로 보고, 김춘추의 행보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이에 따르면, 김춘추는 같은 민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고자 외세인 당의 힘을 빌린 치졸한 배반자이며, 김춘추가 이끌어낸 나당 동맹, 그리고 이 동맹이 초래한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으로 말미암은 신라의 영토 확장은 절대로 ‘통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당나라의 동아시아 지배 체제 안으로 들어간 것과 동일하기에 이러한 삼국통일을 부정적으로 본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삼국통일이라는 명제 자체를 아예 부정하고, 발해의 건국을 근거로 신라의 백제 정복과 당의 고구려 복속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존재한다.하지만 이러한 견해들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당시 역사적 맥락과 상황을 살펴보아야 김춘추와 그 당시 동아시아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우리도 더 많은 교훈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외연적으로는 중국의 왕조가 수에서 당으로 교체되었고, 일본에서는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을사(乙巳)의 변과 다이카(大化) 개신, 그리고 당시 혼란한 한반도 상황으로 인한 도래인들의 유입으로 지배세력이 교체와 인적자원의 유입이 발생하였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을 필두로 하는 지배체제가 확고해졌으나, 이는 후계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다. 백제는 무왕에 이어 즉위한 의자왕이 부흥을 위해 대외정책에 적극적 동향을 보였고, 이는 신라를 위협하기에 충분했고, 실제로 신라의 많은 영토가 백제에 의해서 점령되었다. 당은 동아시아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고 세력을 넓히고자 수의 고구려 정벌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일본은 백제를 지원하고자 하였으며, 백제와 고구려는 신라에 끊임없는 압박을 가했다.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는 이러하였다.그리고 이와 같은 정세로 인해서 신라의 내부적인 결심의 계기도 발생했다. 백제에 의해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대야성 전투에서 죽었다. 이는 김춘추의 백제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추측되어지는데, 실제로 대야성 전투 이후, 김춘추는 더욱 적극적으로 대외 정책을 고심하였다. 그리고 신라 내부에서는 당시 백제의 의자왕의 적극적인 대외정책에 의해 국경이 좁아지는 국가적 위기를 맞았고, 이에 대한 방책으로 외국과의 동맹 및 지원이 필요했던 시기였다.고구려에 대한 동맹 제의는 백제와 고구려의 관계에 의해서 좌절되었고, 신라가 지원을 요청할 곳은 당 뿐이었다. 때마침 당의 이해관계와 신라의 요구사항 및 협상은 들어맞게 되었고 이에 동맹이 결성, 정복이 진행된 것이다. 물론 시대적인 분위기와 상황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해서 필자는 김춘추의 개인적인 외교적, 협상가적 역량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춘추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7세기 동아시아 국제전의 결과 및 양상은 지금과는 상이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문/어학| 2017.11.11| 2페이지| 1,000원| 조회(139)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2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6:3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