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특강 - 『화장』,김훈가지 굵은 나무어릴 적 옆집에서 마주 보고 살던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갔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아주머니의 아들들은 나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절차가 끝나고 나와서는 오랜만에 보는 나에게 “이젠 늙어 보이는구나.”라며 시답잖은 농담을 했다.김훈의 『화장』도 암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를 둔 남편이 아내를 장례식장에서 화장시키는 과정까지의 이야기이다. 장례식장을 갔다 와서 핀 책의 주 배경이 장례식장인 것은 나로 하여금 소설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남편의 시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된다. 생명이 꺼져가는 아내의 더럽고 추한 모습이 묘사되는데, 그 묘사라는 것이 학생이 식물을 관찰하면서 관찰문을 쓰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세부적으로, 담담한 어투로 표현된다. 헤밍웨이가 일찍이 하드보일드 문학을 보였다면, 김훈 작가도 『화장』에서 충분히 하드보일드 문학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어투는 이런 슬픈 이야기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독자들에게 텁텁하게 심하게는 답답하게 다가온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탄산음료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탄산음료의 쏘는 맛이 내 목과 몸을 훑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이러한 답답함은 문체에서뿐 아니라 소설의 이야기에서 증폭된다. 아내가 죽었는데도 남편은 남은 병원비를 계산해야 하고, 업무를 재촉하는 사장의 전화도 받아야 한다. 아내의 사망신고를 해야 하고, 전립선염에 걸려서 나오지 못하는 오줌을 병원에 가서 뽑아내야 한다. 아내가 죽었는데도 그는 그가 지금 딛고 있는 이 세계에서 원래 하고 있던 것들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답답하다.화장이라는 건 한 사람이 태워 없어지는 과정이다. 그 사람의 인생이 가루가 되어 사람들에게 흩날려 기억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 가루가 흩날려 사라지게 되면 사람들은 감상에서 나와서 다시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것은 남편에게도 다르지 않다. 반평생을 함께 하며 살아온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죽음을 죽음일 뿐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은 인생을 지켜야 한다. 모순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주인공이 아픈 아내를 안고 함께 탕에 들어가 목욕을 시켜주고 오물을 치우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아른거린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그는 자신의 업무를 묵묵히 해낸다. 주인공은 어디에서나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인간상이 아닌가.『화장』은 죽음의 과정에서 슬픔들은 자잘한 잔가지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잔가지들을 쳐내는 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일이다. 다만 그 잔가지를 쳐내는 작업을 하면서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그 작업은 화장으로 나타난다. 화장을 하고 나온 가루를 보면서 남편은 말이 없다. 사실 남편은 자신의 부하직원인 ‘추은주’를 좋아한다. 그 ‘좋아한다’라는 표현이 세속의 그것은 아니고, 죽어가는 아내와 대비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순수히 흠모한 것일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그런 감정마저도 아내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느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김훈 작가는 ‘추은주’를 아주 자세하게 그러나 덤덤하게 표현한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사건이다. 주인공은 아내가 화장(火葬)되는 그 슬픈 순간에도 ‘추은주’를 생각한다. 아내가 화장되는 그 순간에도 일상생활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실제 장례식장에 갔을 때 상을 당한 형이 나에게 농담을 던진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