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시대의 실정과 국어국문학의 입장21세기다. 바야흐로 첨단산업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힘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과학의 힘이 미치는 영향력은 섬유, 식품, 건축, 디자인, 공학, 의료 등 의식주뿐만 아니라 전 실생활 및 문화 영역에 걸쳐져 있을뿐더러 그 기술력은 인류사의 필수적인 토대가 된 것을 넘어서 그 역할에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관심이 쏟아진다. 오늘날은 빠르게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 즉 고속(高速)의 가시적 결과물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판단되는 시대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테크놀로지의 생산 속도는 불어나는 세계 인구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한 생산이라는 한 방향 으로 쉴 새 없이 질주한다. 인간의 수고를 덜 수 있는 제품은 수익을 가져다주고 이 때문에 더 가속이 붙은 생산력은 더 빠른 욕심을 내기 위해 과학 연구에 투자비용을 늘린다. 바로 이러한 과정들이 재정에 수익이 된다. 반면 인문학의 입장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문학처럼 서서히 인간의 정신을 자극하고 궁리하게끔 하는, 소위 말하는 학문적이고 진지한 주제로 보이는 분야들은 속도전에서 도태된다. 그리고 눈 돌아갈 틈이 너무나도 많은 현대인들에게 딱히 신경 써서 득될만한 정보가 아닌 것으로 인지되므로 시간 낭비처럼 평가받는 것이 현실이다.이런 시대에 국어국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어국문학은 우리말로 된 어학과 문학이다. 먼저 어학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말의 근원과 생성 및 운용 원리를 연구한다는 의미로 고유의 가치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전통은 불변의 가치를 가진다. 반면 문학의 측면에서는, 한 시대 속의 사회가 띠는 사상과 정치, 혹은 정서의 측면에서 그 가치가 판단되므로 늘 담론 문제에 휘말리며 끊임없이 이견과 얽히고 뒤엉키는 역사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1.1 선정 이유필자가 한창 문학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느라 집에서 좀 떨어진 산언저리에 있는 도서관을 매일 오가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그날들은 도서관 앞의 경사진 오르막길이 오히려 자유로운 순간이라 느껴질 만큼 낡은 책상다리와 딱딱한 의자에 진저리가 날만큼 괴로웠다. 그래서 결국 종종 도망치다시피 열람실로 숨어들곤 했다. 그리고 아마 그 때가 책을 읽는 것의 즐거움을 깨달은 첫 순간이었던 것 같다. 독서의 즐거움에 대한 인정이 이십여 년 간의 강압적인 학습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 하게도 책으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치는 순간에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흥미 가득한 취미랄 것에 목 멜만큼 광적인 열정이 없었는지, 아니면 그 시절 수험생이라는 상황에 묶여있던 불안감이 걱정 되던 탓이었는지 나는 탐독이라 할 정도의 시간을 독서에 할애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편협하고 미비한 수준으로 그쳤던 독서가 지금의 내게 남긴 흔적이 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줄 만한 광명의 화염이 나를 휩쓴 것은 아니었지만, 훗날 거대해 질 작은 불씨 하나를 남긴 셈이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자그마한 호기심과 열망이었다. 그것은 어린 날의 내 가슴 속에 작은 얼룩으로 시작해서 몇 년 사이에 거대한 지도로 점층적인 성장을 해왔다. 아마 유년과는 차원이 다른, 성인이 되어 겪어왔던 세월들이 키워낸 것이라 믿는다. 이젠 나는 꽤나 깎아내고 다듬은 글로써 독자를 겨냥하여 따끔거리는 진동을 주는 작가들보다 더 좇고 싶은 대상을 구체화해 냈다. 그의 작품을 읽을 적이면 글 속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현실에서조차 미지의 내 미래를 향해 경종을 울리는 사유를 느끼곤 한다. 이렇듯 인생의 큰 그림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게 해준 작가가 바로 이문열이다.
시들어 버린 삶에 36.5℃의 눈물이라는 방점을 흘려주다.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다음 장의 내용이 눈에 아른거려 도중에 독서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감히 기대 같은 감정과는 달랐다. 호기심 주위를 맴도는 미지의 공포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자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을 나 스스로는 구하지 못하리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책 속 각 장마다 그려진 박경리 선생님의 사진을 떠올리게 되었고 선생님의 주름이 상상되자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주름들에게 너무나도 묻고 싶었다. 어머니, 아버지. 우리 삶은 무엇인가요? 지금 이런 시대에 이십 대를 보내고 있는 내가 삶의 무게에 대해 해답을 갈구한다면, 그건 진짜 인생이란 것도 겪어보지 못한 주제에 괜히 한번 부려보는 같잖은 치기처럼 들릴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신들조차 아직 모르는 건가요.
1.1 연극 개요우리나라 미술작품 중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림 중 한 점인 ‘흰 소’. 바로 그 작품의 창조자인 화가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그린 <길 떠나는 가족>은 극작가 김의경의 대본과 이윤택의 연출로 공연된 연극이다. 이중섭의 생애를 집약해 본다면 그 기록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전기에 실리는 예술가들만의 별난 장황한 서사가 그에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떠돌이 나그네처럼 사방팔방 방황을 한 것도 아니고, 딱히 행실에 관하여 후손들의 평가가 분분해 질 만큼 의혹을 남긴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중섭은 그런 단출한 인생 속에서 후대 예술가들이 존경을 마다 않는 세계관을 탄생시키고 결국 위대한 예술적 산물을 지상에 남긴 진정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그러한 예술가의 탄생의 바탕에 이중섭의 삶과 인생은 고독과 고뇌 그리고 자조와 간절함의 인생이었음을, 이 연극은 알려준다.2.1 연극 줄거리이중섭은 그림공부를 하러 간 일본에서 마사코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에 이른다. 그리고 후에 그는 부인에게 이남덕 이라는 한국이름을 지어주고서 슬하에 둔 두 아이와 함께 한국 땅에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Ⅰ 유하 시의 특징유하는 1963년 2월 9일 전북 고창 출생. 세종대 영문과 및 동국대 대학원 영화학과를 졸업 했다. 시인 유하는 1989년 『무림일기』를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당시 그는 현실 세계의 정치적 상황을 ‘무림’에 비유하여 그 특유의 패러디로 현실 정치 세계를 비판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시의 특징을 간단히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경박한 욕망과 대중문화의 범람을 경쾌한 시어로 담아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그는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통해서 현대 물질문명의 대표지로서 소비와 향락이 난무하는 ‘압구정’을 내세워 이번에는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무협지의 세계와 영화, 만화, 포르노 등의 키치적 문화 위에 우리 시대의 역사, 정치, 사회적 의미를 겹쳐 놓음으로써 사회 비판을 시도한 것이다. 이후 그의 이러한 패러디를 이용한 풍자와 야유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이후유하의 이러한 시세계는 『천일馬화』에서도 이어지는데 여기서 그가 소비 사회의 공간으로 내세운 곳은 ‘경마장’이다. 여기서 경마장은 자본주의의 삶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는 공간으로 작용하게 된다. 유하는 이 시에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와 진정한 삶에 대한 동경을 담아낸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