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로스60162881 건축학 전공 방상원아돌프로스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기를 싫어했으며 아르누보 운동을 절충주의를 대체한 또 다른 표피적 장식체계라고 비판하였다. 그전의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문화적 기술적 사회적 도시적 모든 상황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하는 세상 속에서 발전시킬 수 없었다. 아들프로스는 장식에 대해 크게 비판을 하였다. 장식은 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속임수가 있을 수 있다 하였다. 그가 말하는 장식은 형태적인 것이 아니라 표피적 취향에 집중한 건축계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가 장식을 거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장식에 대한 욕망은 유아적이고 원시적인 표현 욕구로 근대 산업사회와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적 성인은 장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경제적인 낭비의 측면에 있다. 낭비적인 장식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시킨다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아돌프로스는 장식적인 것에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비판하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게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아돌프로스는 건축이 예술인가에 관해서 건축은 예술의 일부분에만 속하고 그 부분은 무덤과 기념비적인 것이다. 그래서 주택은 예술이 아니라 주장하였으며 일상적 용도, 목적이 있는 것들이 예술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였다. 아돌프로스는 가구에 대해서 과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필요에 따라 기존의 공장에서 생산된 가구들을 사용할 수 있고 건축가는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선택하여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다.다음은 아돌프로스가 설계한 ‘Goldman and Salatsche Departmet Store’ 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층부는 백화점이 자리 잡고 상층부엔 주거가 자리해 있는 건물이다. 상층부의 주거 부분은 아무 장식이 없고 밋밋하고 하얀 벽먼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황제의 광장에 대응하는 위치에서 화려한 주변 건물의 도시맥락과 맞지 않은 형태를 지녀 많은 사람에게 비판과 논란이 된 건물이었다. 아돌프로스는 노골적인 장식보다는 진한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화려한 실내를 만들어낸다는 실내디자인의 특징이 있다. ‘Steiner House’에서 시작하여 단독주택 연작이 시작되었는데 사각형의 장식이 없고 단순한 외관을 가지면서 실내는 굉장히 복잡한 형태를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움(3차원적인,공간의)+플란(계획) 이라는 언어를 사용했는데 제각각의 실들을 과감하게 조합하며 공간들 자체가 성격을 가지고 있어 전체가 부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이 전체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화된 실들을 하나의 큐브 안에 응축시켰다는 것과, 불규칙한 볼륨의 편리함을 결합하는데 있어 공간에 대해 쉽지 않은 설계를 이뤄냈다는 점도 있다. 완전히 막히지도 뚫리지도 않은 공간들은 실내와 실내의 관계에서도 만들어진다. 이것은 불규칙하게 뚫린 창문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르누보60162881 건축학 전공 방상원19세기에 접어들며 유럽의 도시 건축물들은 점점 더 화려하고 과장된 양식으로 흐르며 기념비적인 것들이 많아졌고 수정궁 건설, 증기기관의 발명, 산업화와 도시화와 같은 변화에 맞춰 건축,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 양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발생한 예술 양식이 아르누보이다.19세기 유럽은 정치적으로 복잡했고, 벨기에는 민족적 정체성에 강한 집착이 있었다. 젊은 건축가들이 고전적인 건축물을 비판했으며 굉장히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모습을 나타내며 민족적인 건축 양식을 추구해 나갔다. 빅터르 오르타는 아르누보의 시작을 알리는 건축물인 ‘타셀 주택,1892’을 설계한 건축가이다. 타셀 주택의 계단실을 보면 굉장히 비현실적인 느낌과 매혹적인 느낌을 받는다. 응접실로 수직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공간이기도 한 계단실에 철골 재료가 숨겨진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했고, ‘채찍선’이라고 불리는 감미로운 선의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아르누보의 시작을 알렸다 볼 수 있다. 또한, 건물. 벽지, 계단, 기둥, 재료, 손잡이, 가구 등 모든 요소가 합쳐져 총체 예술의 개념이 강조되었다. 외부는 평범하지만 건물 내부에 들어가는 순간 대조적으로 느끼게 되는 화려함이 앞으로 다른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에서도 잘 나타난다. 오르타의 또 다른 건물인 ‘민중의 집’은 벨기에 노동당을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갖는 건물로서 그가 여태껏 실험하고 연구하여 만들어낸 색을 잘 입힌 건물이다. 이전의 공적 건물에서 석재가 외벽의 재료로 주로 이뤄졌지만 이 건물은 그렇지 않다. 이 건물은 노동의 중요한 결과물인 철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이전의 공적인 건물의 외벽엔 석재를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통해 구시대적인 것을 떨쳐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실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건물 맨 위층 대회의장은 내부 공간 중 가장 볼륨이 큰 공간이고 이것이 외부에서도 나타나 아르누보 구조 미학의 정점인 모습이라 불린다.프랑스의 아르누보 양식은 비올레 르뒥의 영향이 컸다. 비올레 르뒥과 앙리 라부르스트의 제자였던 아나톨 드 보도의 제자인 기마르는 비올레 르뒥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가이다. 오르타의 영향 또한 많이 받아 새로운 스타일의 아르누보 양식을 보여준다. 쿠알로 주택을 사적인 건물에서 철제의 사용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건물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공공건축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다. 이 시대 파리는 도시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쉽게 관람시키기 위해 무빙워크라든지 기계적인 첨단 시설이 만들어졌고, 전기 조명 등의 인프라 구축이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그중 하나가 이 지하철이었는데, 기마르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이 지하철역 입구를 설계하게 된다. 이 지하철역의 특징은 현판의 독특한 글씨와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인 나무줄기처럼 뻗어 서로 엉킨 데로 주철제로 만든 모습인데, 이것은 지하철 입구의 우아한 모습을 만들어 낸다.가우디는 카탈루냐 지방의 정체성을 드러내려고 한 건축가로서 카탈루냐의 토착적인 것들과 비올레 르뒥의 새로운 것들을 융화시키고 발전시켜 총체적 예술이란 것을 잘 보여주는 건축가이다. 가우디의 정체성은 19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며 나타나기 시작한다. ‘까사 밀라’ 라는 다세대 주택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건물의 주요한 구조체로 보이는 돌덩이와 같은 자연적인 곡선이 가장 특징적이다. 바르셀로나에 근대적인 도시계획에 의해 격자형 바둑판과 도로와 도시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 건물은 새롭게 생긴 도시 모습 속에서 기존 컨텍스트를 거부하고 직선과 직각에서 벗어난 형태로 도시와 대조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제일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문세르트산의 모습에서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을 따온 토착적인 가우디의 건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내부 기둥을 보면 알 수 있듯 중세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을 계속 만들어 나가며, 건물에서 발전시켜 그의 건축을 완성한다.분리파(Secession)라고 불리는 오스트리아 아르누보 양식은 건축적인 것 뿐 아니라 정치적인 의미 또한 분리를 보여준다. 오토 바그너는 건축물은 실용적이며 시대에 맞춰나가야 한다는 실용적인 것에 대한 논의를 펼쳤다. 그가 설계한 우편저금국은 상층부에 단순하고 특별한 장식이 없는 것이 다른 건물과 다른 대표적인 특징이다. 비엔나에 성벽이 있던 자리에 대형 도로가 만들어지는데 이 주변에는 굉장히 화려한 모습의 건물들이 들어차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이 건물의 모습은 확연한 대비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충돌을 피하며 새로운 양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건물의 입구 부분에서는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기초와 그 위의 기둥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것과는 다른 재료를 통해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곳의 중심인 창구에서는 건물 겉모습과는 다르게 철과 유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친근한 형식에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기존 있던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창구에 덕트가 노출되어 있는데, 이것은 실용적인 것을 넘어서 상징성을 의도한다 볼 수 있다. 바그너의 제자인 요셉 마리아 올브리히, 요셉 호프만 (건축가)가 클림트(화가)등 젊은 화가들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비엔나 분리파를 결성하는데 올브리히의 ‘분리파 전시관’을 보면 건물의 모서리에 문양을 새겨 기존 다른 건물의 안정감 있는 모서리를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호프만의 ‘스토클랫 저택‘에서는 장식은 볼 수 없고 선적인 요소가 아주 강한 모습이 보인다. 이 수평 수직적인 선들을 따라 면이 형성되고 중력에 따라 하중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꼭대기로 향하는 회화적인 느낌이 드는데 이 선들은 ’타셀 주택‘에서의 선과는 무관한 성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