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9미국소설2016610005김다은사람을 누비다: 소설 ‘The Color Purple’ 안에 ‘Quilt’가 Celie의 자아성 회복의 측면에서 갖는 의미누비이불을 아는가? 누비이불이란, 조각조각의 천들을 하나하나 이어붙여 하나의 이불로 만든 공예품을 이야기한다. 하나의 천으로 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의 형태와 무늬의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붙인 것이다. 인간 간의 관계 또한 누비이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각자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 서로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Alice Walker의 소설 속에도 이와 같은 누비이불, 즉 ‘Quilt’라는 소재가 꾸준히 등장한다. 이 소설 속 ‘Quilt’라는 소재가 갖는 상징과 의미를 분석해보도록 하겠다.가장 먼저, 소설 속 ‘Quilt’은 여성들간의 유대감 (Female Bond)를 의미한다. 소설 속에서 Celie는 Sofia, Shug Avery 등과 함께 모여 ‘Quilt’를 한다. ‘Me and Sofia work on the quilt. Got it frame up on the porch. Shug Avery donate her old yellow dress for scrap, and I work in a piece every chance I get.’ 라며, 여성 인물들이 다 같이 바느질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다 함께 모여 작업하는 모습과 ‘Quilt’ 자체의 성질을 연결지어 볼 수 있다. ‘Quilt’는 조각을 이어 탄생되는 예술이라고 한다면, ‘서로를 잇는다.’에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럴 때, 다 같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며 이야기도 하고 일상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여성 인물 서로에게 이어짐, 곧 ‘Female Bond’가 생긴다. 또한, Shug Avery가 하나의 누비를 가져와서 그것으로 ‘Quilt’를 하는 것을 보면,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함께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도우며 탄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더 ‘Quilt’에서의 ‘Bond’라는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여성들간의 유대 속에서 Celie는 항상 억압되어있던 자아를 펼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Shug가 Celie의 노래를 불러주며 Celie에게 애정을 보였고, Sofia가 새로운 저항하는 여성상을 보여여성은 싸워야 한다고 꾸준히 얘기해준 것이 바로 이런 Female Bond가 Celie에게 자아 회복에 직접적 영향을 준 부분이라 볼 수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Female Bond는 Celie의 자아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또한, ‘Quilt’는 여성의 창작물, 즉 여성들의 예술영역이라는 상징을 갖는다. 즉, 억압되어있던 여성들은 ‘Quilt’라는 예술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개성, 생각을 표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직은 ‘바느질’은 여성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Celie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가정 속에서 인격체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항상 억압된 자아를 지니고, 그러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저항 따위의 의식 없이 살아가기에 급급했다. ‘Quilt’는 그런 Celie의 삶 속에서 얼마 되지 않는 여성의 영역 속에서 삶의 일부를 나타낼 수 있는 예술적 매개체였을 것이다. Shug Avery가 노래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Quilt’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무늬의 이불을 어떻게 이으느냐에서 그 사람의 개성을 볼 수 있다. Celie는 이러한 ‘Quilt’를 통해서 자신만의 창작물을 만들었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갔을 것이다. 또한, 개성을 표출하는 예술의 의미를 넘어서, 이러한 ‘Quilt’는 그들의 문화유산으로 형성될 수 있다. 창작물을 남긴다는 것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구전물을 남긴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받는 Celie가 자신을 세상에 남긴다는 것은 자아성을 회복해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 이 소설 속에서 ‘Quilt’가 갖는 의미는 ‘독립의 수단’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Celie는 여성 인물들과 다같이 모여 바느질을 하고, 또 그 과정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바느질 행위들은 Celie에게 자아성을 회복하는 기회를 부여했다. 시간이 지난 후, Celie가 자아의 독립이 이루어진 후 경제적 독립을 원하던 시기에 Celie는 바지를 만드는 것으로 독립을 이뤄낸다. ‘I sit in the dining room making pants after pants. I got pants now in every color and size under the sun’에서 볼 수 있듯이 Celie는 Pants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Folkspants’ 라는 자신만의 사업까지 뻗어간다. Jack을 위한 바지를 만드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Celie는 그녀가 갖고있는 ‘실용성’ 측면에서의 재능 또한 찾아낸다. 이처럼, ‘Quilt’는 가부장제로부터의 자아의 독립 뿐만 아니라 완벽한 경제적인 독립까지 이루어내어 하나의 독립된 여성의 모습을 이루어내는 중요한 도구로서 작용하고 있다.위에서 보았듯이, ‘Quilt’는 Celie라는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당하던 여성이 자아성을 회복하고 독립을 이루어내는데까지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인식 없이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여성에게 ‘Quilt’는 그녀 주위 여성들간의 Female Bond를 통해 그녀의 자의식을 깨우치게 해주었고, 또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 또한 되어주었다. 그녀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해주었고, 결국 그녀가 독립을 이루어내는데에도 크나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죽어있던 여성의 인격체에게 어떻게보면 ‘Quilt’가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김다은황수경드라마입문2017-06-10왜 안돼?: 뮤지컬 ‘록키호러쇼’ 속 해방감이 갖는 의미뮤지컬 ‘록키호러쇼’가 무려 9년만에 한국 무대에 다시 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우연한 기회에 관심을 갖게 된 후부터, ‘록키호러쇼’가 언제 다시 무대에 오를까 엄청나게 기다렸다. 재공연의 소식을 듣게 된 후, 망설이지 않고 바로 공연을 예매했다. 익히 들리는 말로 개방적이고 기존 가치 체계를 완벽히 전복시키는 공연이라는 것을 들어왔지만, 공연을 보고 온 후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방금 본 공연은 뭐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그도 그럴것이 공연 내내 일어나는 일은 양성애자가 살인을 저지르고, 남녀 구분없이 섹스가 이뤄지며, 인조인간이 춤을 추고, 외계인이 노래를 한다. 충격과 함께 이어진 질문은 ‘왜 이런 극이 인기를 얻게 됐을까?’이다. 완벽히 주류에서 벗어난 문화가 어떻게 해서 대중성을 가지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는, ‘사회의 금기를 깨는 데서 오는 젊은 세대의 해방감’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록키호러쇼’가 전하는 메세지를 그 당시 사회상과 연결지어 분석해보고자 한다.뮤지컬 ‘록키호러쇼’는 1973년에 런던에서 처음으로 공연에 오르게 된다. 공연이 올랐던 20세기에는 19세기부터 발전되어 왔던 이성중심의 사상과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가득찬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젊은세대 사이에는 전쟁을 겪고 히피족과 같은 자유사상으로 가득 차 기존에 있던 모든 질서에 저항하는 급진적인 개방적 태도를 보였다. 그 반면,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생기기 시작하고, 기존의 가치관에 의해 ‘비정상적’이라 판단되는 문화를 비주류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쾌락을 위한 섹스’ 자체에 대한 금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그러한 기성세대가 규정한 금기들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발심을 완벽히 표현해냈다. 끊임 없는 쾌락과 본능에 이끌린 사건들로 가득 채운 ‘록키호러쇼’는 기존의 존재하던 사회적 틀을 깨며 젊은 세대가 갖고 있던 금기에 대한 회의감을 대변하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측면에서, 극의 주인공인 평범한 커플 브래드와 자넷은 관객과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이다. 브래드와 자넷은 폭우 속 길을 잃어 우연히 프랑큰 박사의 성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는 건장한 체격에 카터벨트와 코르셋을 입은 양성애자로 묘사된다. 브래드와 자넷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프랑큰 박사를 처음 본 순간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그 후 프랑큰 박사의 행동이다. 프랑큰 박사는 브래드와 자넷 각각과 성관계를 맺으며 그들 내면 깊숙이 존재하던 원초적 욕망을 깨운다. 결국 브래드와 자넷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기존 가치관이라는 상피의 균열이 생김을 알아차린 후, 그를 부수고 쾌락과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관객들은 자기 자신 내면에도 사회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었던 욕망들을 발견하게 되고, 자넷과 브래드가 해방되는 모습들을 보며 자신 또한 해방감을 맛본다. 예로서, ‘Rose Tint My World’를 부르는 장면에서 브래드와 자넷이 프랑큰 박사와 같은 코르셋과 가터벨트를 입고 “I feel released.”라 외치는 모습을 보며 저들의 파격에 대한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해방감으로 가득 찬 공연장은 더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뮤지컬 ‘록키호러쇼’만의 특별한 공연 문화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뮤지컬을 보러 가면 어두컴컴한 관객속에서 없는 사람 처럼 앉아 극을 관람한다. 무대 위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도 관객은 없는 사람이다. 가끔 조용한 관객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뛰며 손뼉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금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 ‘록키호러쇼’는 완벽히 다르다. 환호하고 싶을 때 환호하고, 춤추고 싶을 때 일어나 춤을 춘다. 심지어 무대 위 인물에게 관객이 욕을 하거나 말을 걸기도 한다. 이와 같은 특별한 공연 문화 또한 공연이 주는 메세지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공연 내에서 오는 해방감과 공연 자체에 대한 금기를 깸으로써 오는 해방감이 합쳐져서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관객의 형태가 나오는 것이다.뮤지컬 ‘록키호러쇼’를 보고 나오며 나는 망사스타킹을 하나 구매하였다. 항상 사고싶었지만 학생이 상스러운 망사스타킹을 입고 다니는 것은 마치 금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망설여졌었다. 하지만, 극을 본 후 나에게 되물었다. ‘왜 안돼?’ ‘록키호러쇼’가 나에게 준 용기이다. 기존 세대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내용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록키호러쇼’는 본능대로 욕망대로 행동해보라고 권유한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에 입에는 프랑큰 박사가 우리에게 주문처럼 속삭였던 대사가 계속 맴돈다. ‘Don’t Dream it. Be it.’
그 누구도 죄인이 아니다.: 소품의 상징과 연결지어 설명하는 각 인물 내면의 고통2016610005영어영문학과드라마입문김다은연극은 축제 속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이다. 극 속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그를 극복해내는 인물들과 행복한 결말에 기뻐하거나, 극 속 인물들의 불행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음에 안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극이 관객에게 기대하는 반응이다. 하지만, ‘세일즈맨의 죽음’은 다르다. 모든 인물들이 극도의 불행에 치닫다가 마침내 한 인물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며 끝이 나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관객에게 한없는 우울함만을 던져주고 끝이난다. 심지어 관객이 공연장을 나서 세상을 바라볼때에도 극 속 참담한 비극과 오버랩되는 현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왜이리도 관객에게 깊은 우울함을 남기려 했을까.‘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로먼은 극의 초반부터 내면의 문제를 갖고 시작한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그와 동시에 오는 불안함이 윌리를 현실감각을 잃고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 그로 인해 더이상 외근을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찰리는 자신이 세일즈맨으로 일하는 회사의 사장인 하워드를 찾아가게 된다. 마지막 사회적인 인간으로라도 남고싶은 윌리의 소망과는 다르게 하워드는 차갑게 윌리를 대하며 더이상 일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거절하게 되는데, 여기서 윌리는 ‘녹음기’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녹음기에서 하워드의 아들의 낭송이 재생될 때 깜짝 놀라며 소리 지르는 장면은 물론 윌리의 무능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녹음기라는 기계가 인간의 목소리를 대신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면, 인간의 능력을 대신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기계에 대해 윌리가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더이상 자신이 쓸모없음에 대한 윌리 내면의 불안함이 인간을 대신하는 기계인 녹음기를 통해 더욱 극대화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언제나 윌리에게는 성공의 집착과 사회에서 버려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내제되어 있었고, 자신은 결국 다음 세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졌음을 확인하고 얼마나 좌절감을 겪었을 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윌리 로먼의 아내이자 두 아들의 어머니인 린다 로먼은 항상 윌리 로먼을 응원하고 감싸준다. 하지만, 린다가 진정 윌리에게 힘을 주었는 지는 린다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찢어진 스타킹’과 연결지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타킹’은 극 속에서 여러 상징을 갖는다. 먼저, ‘스타킹’은 윌리에게 현실적인 금전적 문제를 상기시키는 장치이다. 린다는 윌리에게 항상 ‘기운내요.’라고 말 하면서 ‘스타킹’이나 ‘빚’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한다. 실상 윌리에게 끊임 없이 마음에 짐을 더하는 것과 같다. 또한, ‘스타킹’은 여성 만의 전유물임과 린다가 이 극에서 유일한 여성캐릭터임을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린다는 극 내내 집 밖으로 나서서 사회에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언제나 집 안에서가족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역할로만 그려진다. 이러한 수동적인 모습들과 ‘스타킹’을 연결지었을 때, 린다는 집에서 ‘스타킹 꼬매기’와 같은 여성의 일만 하는 지극히 수동적이며 주체적이지 못한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즉, 린다는 불평을 쏟아내는 가족들을 감싸주는 포용자의 역할로 보이지만, 사실 극을 잘 들여다보면 가족 내의 문제를 해결하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관자의 역할과도 같다. 이러한 린다의 문제점이 윌리의 파멸을 더욱 부추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린다 자신도 윌리의 심각함을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정면으로 문제와 부딪히지 못하지 않았으리라 하는 연민도 든다.윌리와 가장 큰 갈등을 일으키는 윌리의 첫째 아들인 ‘비프’는 어떻게보면 이 극에서 가장 비참한 인물일 수 있다.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인생이 허망한 환상 속에서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프의 불행을 보여주는 소품이 바로 올리버의 사무실에서 훔친 ‘만년필’이다. 비프는 평생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커왔다. 하지만, 비프는 미래에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른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후 충격을 받은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따로 있다. 비프는 도덕성을 결여한 윌리의 성공에 대한 인식과 유명해져 사회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기대에 사로잡혀 방황한다고 볼 수 있다. ‘만년필’을 훔친 것도 이것과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다. 즉, 평생 자신을 짓눌러온 아버지의 기대에 무엇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불안함에서 나온 도벽행위라 본다면, 비프의 결핍은 아버지의 폭력성에 의한 젊은 세대의 상처를 의미한다. ‘만년필’을 손에 쥐면서 비프는 아버지가 남긴 허상을 벗고 진실을 바라보았고 그 진실의 아픔을 깊이 느꼈을 것이다.이처럼 극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은 각자만의 문제점과 고통을 안고 있다. 윌리는 버려짐에 대한 불안함과 좌절감을, 린다는 갈등의 본질적 해결에 대한 두려움을, 비프는 진실과 마주함의 고통을 내면에 깊이 간직한 채 로먼 집안은 불행의 끝을 달린다. 로먼 집안의 파멸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모두의 잘못이다. 어쩌면 이 극의 작가가이 극을 이토록 우울하고 어둡게 만든 것은 문제를 극복해나가는 희망을 전하기보다는 극의 우울함을 현실까지 갖고가서 한번 더 곱씹어 보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진실을 외면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회 속 뒤틀림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며, 진정 로먼 가족의 비극적 운명과 지독한 불행이 비단 로먼 가족만의 문제인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세일즈맨의 죽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