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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반장씩 요약
    과 제 명성경 중, 모세오경(토라) 완독 후 54부분으로 나눠 반장씩 요약과 목학 과담당교수학 번제 출 일이 름1. 버레이쉬트 (창세기1:1-6:8)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는 여섯 날 동안 이루어졌으며 낮과 밤, 하늘과 땅,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과 세상 모든 만물들이 창조되었다. 이렇게 세상을 만드신 후 7일 째 되는 날에 안식하시어 그 날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셨다.여호와 하나님께서 동방에 에덴동산을 만드셨다. 그곳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으며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갈라져 근원이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거기에 두시고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 하셨다.하나님께서 아담이 자는 중에 그의 갈빗대를 하나 취하시어 여자(하와)를 만드셨다. 뱀이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먹게 하였다. 하와가 열매를 먹고 남편도 먹으니 이들의 눈이 밝아져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삼아 입었다. 하나님께서 이에 물으시자 아담은 하와가 주어 먹었다 하고, 하와는 뱀이 꾀어 먹었다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뱀을 심판하시고 인간들에게 가죽옷을 입히셨다.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이들이 제사를 지낼 적에 가인은 땅의 소산을,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렸다. 여호와께서 가인의 것은 받지 아니하시니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 여호와께서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셨다. 가인이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였고, 그중 라멕이 사람을 죽였다. 라멕을 위한 벌이 77배라 하였다.하나님께서 아벨을 대신할 씨를 주셔서 아담과 하와는 다시 셋을 낳았고, 셋은 에노스를 낳았다. 아담의 계보가 이어져 노아에 이르고,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여 여호와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 그리고 인간과 모든 것을 쓸어버리리라 하셨으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2. 노아ㅋ흐 (창세기6:9-11:32)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는 당대의 의인이었으며,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이 숙곳에 집을 지었다. 야곱이 가나안 땅 세겜에 장막을 치고 엘엘로헤이스라헬이라 불렀다.레아의 딸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당했다. 그가 디나를 사랑하여 결혼하기를 원했다.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과 디나를 혼인시킬 수 없다 하였다. 세겜 추장과 그에 속한 남자들이 할례를 받고 아파할 적에 야곱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그 땅을 치고 노략하여 야곱이 근심하였다.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시며 복을 약속하셨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던 중 죽어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다. 야곱의 아들이 열둘이요, 이삭이 그 나이 180세 때 사망하여 장사지냈다.에서가 가족과 재물을 이끌고 야곱을 떠나 타지로 갔다. 그가 세일 산에 거주하였다. 에서, 곧 에돔과 아들들이 에돔의 조상과 족장이 되었다. 호리족속 세일의 자손들과 에돔의 왕들도 자손을 이어갔다.9. 바예이쉐이브 (창세기37:1-40:23)야곱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막내아들 요셉의 나이가 17세였다. 야곱이 요셉을 귀히 여기니 그 형들이 미워하였다. 그가 꿈을 꾸었는데, 그가 형제들의 왕이 되는 내용이었다. 이로 형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이 야곱의 명으로 형들을 보러 세겜에 갔는데, 형들이 그를 미디안 사람에게 팔고 아비에겐 그가 죽었다 하였다. 야곱이 그를 위하여 울었다.후에 유다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동침하여 엘과 오난, 셀라를 낳았다. 엘이 악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과부된 그 아내 다말에게 오난이 아우의 본분을 다하지 않아 죽이셨다. 친정에 있던 다말이 창녀로 꾸미고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하여 세라와 베레스를 낳았다.요셉이 애굽으로 가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그가 주인의 은혜를 입고 가정총무가 되었다. 요셉의 용모가 아름다워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을 청하였으나 그가 거절하였다. 그녀가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옥에 갇히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셔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고, 요셉이 죄수의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어 추격해올 것이나, 이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영광을 보이리라 하셨다.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떠남을 알고 병거를 이끌고 군대를 편성하여 추격해왔다. 이스라엘 자손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나, 모세가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하였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밀어 바다를 갈라지게 하였고, 이를 통하여 백성들이 지나갈 수 있었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종 모세를 믿었다.모세와 이스라엘 자손,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이 찬양했다. 홍해로부터 사흘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구한 물 또한 써서 마시지 못하니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였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물을 달게 해주셨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율례와 법도를 정하시고 시험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 이르러 물 곁에 장막을 쳤다.이스라엘이 엘림에서 나와 배고픔에 원성하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고기와 떡을 약속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아침에는 만나를 먹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먹었다.모세와 백성들이 갈증으로 다투자, 여호와께서 이를 해결하셨다.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승리하였다. 여호수아가 적을 무찔렀고, 이를 기록하고 제단을 쌓아 여호와 닛시라 하였다.17. 이트로 (출애굽기18:1-20:24)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방문하였다. 그가 광야까지의 일을 전해듣고 여호와께서 행하신 큰 은혜와 구원을 기뻐하며 찬송하였다. 또한 모세가 행하는 일을 보고 그 일이 너무 중하므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살펴서 천부장과 백부장, 십부장과 오십부장을 뽑아 이를 담당케 하라 하였다. 모세가 장인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였다.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 이르러 모세가 산을 올라갔다. 모세가 산을 오르는 중 여호와께서 그를 불러 언약을 잘 지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을 전하라 하셨다.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화제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다.또한 소제의 예물에 대하여는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유향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드리는 제사로 이는 화제요,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다.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 돌아가며, 이는 거룩한 것이었다.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소금을 쳐서 드렸다.화목제의 예물에 대해서는 암수 상관없는 흠 없는 소를 바치며 이를 제단 위의 불에 불살라 드리는 제사로 이는 화제였다. 만약 화목제의 제물이 양이라면 암수 상관없는 흠 없는 양으로 드리고, 어린 양일 경우 머리에 안수하고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렸다. 염소의 경우에는 어린 양과 동일하였다. 화목제물의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었으며, 기름과 피는 먹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잘못 범하였으면 속죄제물로 속죄제를 드리라 하셨다. 속죄제물은 흠 없는 수송아지로 드리고 그 머리에 안수하여 여호와 앞에서 잡아 제사를 드리라 하셨으며, 제물의 부위에 따라 불사르고 피를 뿌리는 절차가 있었다.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함으로 그들이 죄 사함을 받았다. 또한 숫염소와 암염소,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드리는 경우에 대하여도 말씀하셨다.또한 속건제에 속하는 죄와 방식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서 속죄함으로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말씀하셨다.25. 짜브 (레위기6:8-8:36)여호와께서 번제의 규례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이는 제사장의 옷차림 방식과 제사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할 것 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소제의 규례에 대해서는 아론의 자손들이 가질 것과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드릴 예물에 대한 것 등을 말씀하셨고, 속죄제의 규례에 대하여는 그 제물을 다루는 방식과 제사장이 먹을 것, 그리고 불살라야 할 것 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속건제의 규례는 번제물을 잡는 것과 제사장 남자가 먹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이는 속죄제와 규례가 같음이라 말씀하셨고 그 제물이 속죄하는 제사, 일곱째 달 첫 날은 휴일, 속죄일, 초막절에 대하여 백성에게 이르라 하셨다. 계속하여 등잔불을 켜 두는 것과 여호와 앞에 진설할 떡에 관한 규례를 말씀하셨다. 어떤 자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여 여호와께서 돌로 쳐 죽이라 하셨다.32. 버하르 (레위기25:1-26:2)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안식년과 희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안식년은 6년간 소출을 거둔 뒤 7년째 되는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땅의 안식년이다. 희년은 안식년을 7번 거친 뒤, 곧 50년째 되는 해가 희년으로 이때에는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야 한다.안식년에 소출을 거두지 못하므로 육 년째 되는 해의 소출을 3년간 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거두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덟째 해에는 파종하되 묵은 소출을 먹으며 9년 째 되는 해에 거둔 소출이 있을 때까지 묵은 것을 먹으라 하셨다.또한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과 기업의 온 땅에서 토지 무르기를 허용하셨는데, 형제가 가난하여 기업을 팔았거든 그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 형제가 판 것을 물러야 했다. 만일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생겼다면 팔았던 해를 계수하여 남은 값을 구매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로 돌렸다.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판 기업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소유였다가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리라 하셨다.성 내의 가옥을 팔았다면 1년 안에는 무를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희년에도 돌려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성 밖의 가옥에 대하여는 전토와 같이 물러주기도 하고 희년에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거래에서 자기이웃을 속이지 말 것 등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하시며, 이를 자세히 말씀하셨다.또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셨고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이를 경배하지 말라 하셨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며 성소를 경외하라 말씀하셨다.33. 버ㅋ후코타이 (레위기26:3-27:34)여호와께서 그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
    독후감/창작| 2016.05.06| 28페이지| 3,500원| 조회(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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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란무엇인가 - 역사의 구성 및 주관적 견해
    역사는 연속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있다. 사건은 시간, 공간, 인물의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역사는 역사가의 기록을 통하여 전승되는데, 이 기록은 주관성을 강조한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객관성을 강조한 ‘사실로서의 역사’로 나뉜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두 관점 모두가 중요하다.역사기록은 인간, 즉 역사가가 기억하여 보존한 모든 사건이다. 이 서술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이를 기록하는 역사가는 역사의 관찰자이자 참여자로 존재한다. 역사연구는 기록의 측면에서 인문학으로, 사실의 측면에서 사회과학의 범주로 분류된다. 역사는 이 두 학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역사는 과거의 기록을 통하여 미래를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해답을 주기도 한다. 이는 역사가 과거의 일, 종결된 사건이라는 특징에서 오는 성격이다. 올바른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역사의 객관성과 주관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역사는 기록자의 기억을 토대로 쓰인다. 그러나 기억은 보편적 이념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압력에 의해 굴절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이는 시대, 사람에 따라 변하는 역사관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억이 역사학의 결함을 보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역사학은 변화의 과학으로서 시간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사건들을 비교, 검토하여 향상된 ‘역사의식’의 기반을 만든다.역사란 단지 과거의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가온 사건을 과거의 실마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자신이 어떤 사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역사기록에는 취사선택의 문제가 따르는데, 이는 미래의 문제에 결단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하는 것이 옳다.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사료가 필요하다. 사료의 종류에는 문자로 기록된 문헌사료와 유물로 남겨진 유물사료가 있다. 사료는 사료비판과 검증을 통하여 진위를 가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 제작자의 제작의도를 파헤치는 것이다.실증적 역사관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지향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주장을 내세운 E. H. Carr는 이러한 대화를 통하여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해내야 한다고 반박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그의 사관은 역사의 문학적 특성을 간과하였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역사는 사건과 기록,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이해해야 한다. 역사가의 배후를 앎으로써 역사에 녹아들어간 주관성을 간파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가 스스로도 역사서술에 있어 회의주의와 실용주의, 그리고 음모론적 서술을 주의해야 한다.역사에서 어떤 사건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에 관련된 인과관계를 파악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인과관계에서 원인은 우연과 필연으로 구분된다. 우연과 필연은 유사성과 법칙성의 유무로 구분되며, 우연적 원인은 교훈과 결론이 없다. 특정 역사적 현상의 우연 여부는 큰 역사적 흐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역사적 인과판단은 불신에 휩싸일 때가 많은데 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주관성이 내포되어 비중을 달리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설명에 있어 인과론적 설명은 느슨한 판단만을 가능케 한다.( 역사가 어떤 학문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는 오랜 논쟁거리로 존재해왔다. 칼.G.헴펠은 역사는 과학이라 주장했고, 잭.H.헥스터는 역사는 수사학이라 주장했다. 레오폴드 폰 랑케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의 과거로 이해하자는 주장을 펼쳤고, 웨른 뤼젠은 역사의 의미 만들기에 집중하였다. )역사에는 다양한 사관이 존재한다. 중국의 왕조 순환론 등을 예로 들 수 있는 순환론적 사관은 비슷한 역사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순환한다고 주장하는 사관으로, 신화적인 성격을 띤다. 진보론적 사관은 계몽주의 사상에서 탄생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나감을 주장하는 사관이다. 역사주의적 사관은 문화가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상으로,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집단의 관습과 신념을 이해한다. 마르크스주의 사관은 유물론적 역사관의 한 갈래로, 도덕적 판단 가치를 무시하고 비객관적인 노동자 중심의 사관을 펴나갔다. 기독교적 역사관은 그리스도를 중심축으로 삼으며 하나님이 관여하는 시작과 진행 그리고 종말로 일축되는 단선적 역사를 주장한다. 이 밖에도 실증사관, 민족사관, 식민사관, 문명사관, 우연사관, 영웅주의 사관, 대륙사관, 유럽중심주의 역사관 등이 있다.주관성에서 출발한 역사적 인식이 객관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궁극적인 입장인식이 필요하다. 그리하면 그 입장의 주관성과 그 한계를 알게 되어 진실에 이르는 길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역사에 대한 판단의 타당성 문제는 후대에 의해 결정된다.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객관적인 역사란 없다고 주장하는 급진적 상대주의와 이에 반하는 급진적 객관주의가 존재한다. 물론 이 두 관점을 통해서는 올바른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없다. 역사가가 알고 있는 지식 또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불완전한 지식이라 하여 반드시 거짓은 아니다. 역사가의 연구에 가치판단이 들어갔다고 해서 강한 상대주의가 옳은 것은 아니다. 이는 되레 역사가의 작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강한 상대주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역사가의 일차적 과제는 역사의 신화를 벗겨내고 필연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을 서술함으로써 현재 기록되고 있는 역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는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되는 행위이다.역사란 미래를 위한 초석, 주춧돌이다. 기억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색인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주는 지표다.
    인문/어학| 2016.05.06| 3페이지| 1,500원| 조회(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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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화의 영향에 의한 민속문화의 문제점, 바람직한 변화 정리
    문제 : 민속문화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급격한 변화로 인한 민속문화의 단절과 파괴는 정체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19세기 이후의 근대화와 오늘날의 현대화(도시화)가 민속문화에 미친 영향과 문제점을 정리하고 민속문화의 바람직한 변화에 대한 견해를 서술하라(30점)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산업혁명과 숱한 전쟁, 그리고 기득권층의 이익에 맞추어 민속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또는 사라져갔다. 유럽 국가 중심의 산업혁명과 식민지 개발은 미개한 사회에 문명을 전하고 그들을 개화시키며 복음을 전한다는 기독교세계관적 입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명목일 뿐, 이는 문화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착취와 문화말살이 주된 내용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도 불사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끊임없이 타민족을 착취하였고, 심한 경우에는 대부분의 민족을 말살시키는 결과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참혹한 과정 속에서 피지배민족이 가지고 있던 문화는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도 했다.이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문명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고 있다. 부시맨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사냥을 제한하면서도 여행객들의 사냥은 허용하는 등의 갖가지 모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태가 용인되는 것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다수 사람들, 혹은 기득권층의 이득을 위해서이다. 오로지 물질적으로만 가치를 판단하고 부에 휘둘려 인간적 가치를 경시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만연해있는 풍조 중 하나다. 제약이 없는 자본주의는 사회적으로 우리를 탈출한 사자만큼이나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에 입각한 민속문화의 기본적 존중이 없는 태도는 전통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미개하게 여기거나 열등한 민족이라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그들의 삶의 형태를 갑자기 현대적인 형태로 변화시키려는 것에는 큰 문제가 따른다. 기존의 생활방식을 돌연 변화시켜 생소한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것은 급격한 문화충격을 발생시킨다.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문화사대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현대 문물을 따라가기에 급급해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야기할 수 있다. 대가족 구성의 롱 하우스에 살던 사람들을 급작스럽게 핵가족 구성의 현대적 아파트에 이주시킨다면 아무리 생활조건이 이전보다 안락해졌다고 하더라도 불안과 충격을 느낄 것이 확실하듯, 민속의 독자적인 특성을 무시한 독단적인 변화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근대화되어가면서 결국 민속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주변환경, 그 중에서도 사람이 만든 환경이었다. 사실 근대화 이전에도 인간은 민속문화의 가장 큰 변화의 주체였다. 앞서 언급한 식민지개척사업과 산업혁명과 같은 인간이 만들어낸 변화를 통하여 일어난 문화충격과 문화충돌은 기후조건이나 식습관의 변화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여파와 후유증을 동반했다. 수업시간에 다뤘던 러시아 표트르대제의 개혁이나 아프리카의 산족과 같은 사례를 보면 인간이 일으키고자 하는 변화에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않아 수박겉핥기 식의 개혁이 이루어지거나, 자신들의 문화를 부끄러워하며 그저 생계유지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좋지 못한 사례들이 발생하였다. 이는 삶의 정체성으로서 존재해오던 민속문화를 상실한 민족의 가슴 아픈 말로가 아닐 수 없었다.물론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던 것은 아니다. 강의시간을 통해 감상했던 여러 사례 중에서는 자신들의 과거 생활방식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몇몇 접할 수 있었다. 조상의 얼을 잊지 않기 위해 가정집 안에 천막을 설치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문명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전통복장을 고수하는 원주민들도 있었다. 전사로서의 덕목을 가르치기 위한 조손간의 여행길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자긍심을 품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과거의 생활모습이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다. 민속문화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변화의 과정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느냐에 따라 그 민족의 민속문화는 크게 요동치기도 하고 서서히 바뀌어가기도 한다. 외부의 문물을 기존의 문화에 맞추어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잊지 않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의 가면극을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수용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창조했던 것처럼, 창조적인 수용은 기존의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으면서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민족 구성원들이 근대화된 삶을 택할 것이라는 확신은 버려야 한다. 어떤 현대화된 국가에도 전통적인 생활모습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며 그런 이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하물며 급격한 변화를 거치거나 외래 문명에 이끌려 변화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기존의 생활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전통을 지켜나갈지, 현대 문명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선택권은 민속문화를 영위해오던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존중해야 하며, 삶의 안정적 기반마련과 보호가 동반되어야 한다. 민속문화는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지표의 역할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환경| 2016.05.06| 2페이지| 1,500원| 조회(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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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대 민족문화상징-조선왕조실록 체험
    한국문학과 인간상100대 민족문화상징 체험조선왕조실록과올바른 역사관과 목 : 한국문학과 인간상담당교수 : 김 호 연 교수님학 과 : 기독교비서학과학 번 : 20113466이 름 : 이 혜 원제 출 일 : 2012. 5. 3.목 차Ⅰ. 조선왕조실록 개관………………………………………………………………………1Ⅱ. 사실과 기록의 역사………………………………………………………………………11. 사실로서의 역사……………………………………………………………………………12. 기록으로서의 역사…………………………………………………………………………2Ⅲ. 실록과 일기를 통한 역사………………………………………………………………21. 실록과 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22. 역사를 보는 눈……………………………………………………………………………3* 참고문헌……………………………………………………………………………………3Ⅰ. 조선왕조실록 개관《조선왕조실록》이란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의 실록을 합쳐서 부르는 책 이름이다. 조선왕조 초대 왕인 태조에서부터 제25대 왕 철종까지 조선을 이끌어온 왕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실록은 정치, 외교, 군사, 문화 등 다방면의 업적과 상세한 집무내용뿐만 아니라 왕의 생활모습까지도 기술되어있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될 만큼 역사적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은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Ⅱ. 사실과 기록의 역사1. 사실로서의 역사《조선왕조실록》의 역사적 가치가 큰 이유는 그 내용에 역사적 사실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왕이 행차하는 곳 어디든지 사관이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였고, 기록내용을 실록으로 옮기기 전에 검토와 수정의 과정을 세 번 거쳐 오류를 최대한 줄였다.실록을 비롯한 역사서들은 역사가 개인이 집필한다는 특징상 객관적 서술을 하기가 어렵다. 시대 상황이나 정치적 압박 속에서 자유로운 서술을 하기도 힘들뿐더러, 자칫 객관성을 버리고 주관화된 서술로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역사가)의 익명성을 보장하여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객관적 서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주었다.실록이 단순히 왕의 일상만을 나열한 기록문이었다면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실록에는 왕의 일상뿐만 아니라 회의에서 수립한 정책, 신하가 만든 발명품, 학자의 학설 등 궁 안에서 일어나는 종합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담고 있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 조선의 모습을 추측하고 평가하는 데 가장 좋은 사료이며, 당대의 역사 재현의 바탕이 되는 사실적 근거가 된다.2. 기록으로서의 역사물론 실록의 의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후대 사람들이 내린 결론일 뿐, 조선시대 당시에는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는 왕이 실록을 볼 수 없었다는 점과 사관의 춘추필법 보장을 기초로 한다.실록의 열람범위는 현왕에서 3대 이상의 실록으로 제한되었다. 왕의 2대손까지 실록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왕들은 후대의 평가를 두려워하여 국정에 더욱 힘쓰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사관이 유교적 관점에서 왕의 국정운영방식과 도덕성 등을 평가하여 실록에 기술하여 왕은 사관, 즉 평가자의 눈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실록이 최고 권력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역할 또한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Ⅲ. 실록과 일기를 통한 역사1. 실록과 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필자는 현대의 시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바라볼 때, 과거와 현대의 관점차이와 기록방식의 차이로 인하여 제대로 된 체험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체험주제를 한정하여 《조선왕조실록》과 필자가 과거 작성한 일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았다. 비교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비교에 쓰인 실록은 《성종왕조실록》의 성종 10년 윤10월 12일(갑자) 의 기록을 사용하였고, 일기는 2004년 3월 25일의 기록을 사용하였다.비 교 대 상공 통 점차 이 점《조선왕조실록》● 특정 시기에 대한 역사 기록이다.● 특정 인물과 그 주변 환경을 중심으로 기록이 전개된다.● 각 시기에 사용된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매일 기록되었다.● 제 3자에 의한 열람이 용이하지 않았다.● 지배층의 총체적 역사에 대하여 객관적인 서술방식으로 전개된다.● 익명의 기록자에 의해 기록되며 기록자와 등장인물은 동일인이 아니다.● 등장인물이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등장인물을 통하여 기록을 전승한다(기록의 연속성이 있다).● 역사적 가치가 있다.(201년 현재)《일 기》● 개인의 역사에 대하여 주관적인 서술방식으로 전개된다.● 기록자는 등장인물 본인이며, 기록자와 등장인물이 동일하다.● 등장인물이 사라지면 기록이 종료된다(기록의 연속성이 없다).● 역사적 가치가 없다.(201년 현재)2. 역사를 보는 눈100대 민족문화상징 체험은 과거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조선왕조실록》의 의미와 그 역사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필자는 이번 체험을 통하여 공식적 기록(실록)과 비공식적 기록(일기)의 차이를 체감하였고, 후대 사람들이 이러한 기록을 통하여 역사를 재구성할 때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실록의 역사와 일기의 역사에서 가장 큰 차이는 기록방식의 차이다. 왕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시기의 총체적 역사를 다루는 실록의 기록방식과 비교하면 일기는 개인이자 기록자인 특정인의 역사만을 다룬다. 또한, 인물과 기록자가 일치하는 일기의 특성상, 실록에 비해 주관적인 기록이 될 수밖에 없다. 기록만으로는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도 어렵다. 일기의 대부분은 실록에 비하면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하지만 일기에 역사적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정 시기에 쓰인 개인의 역사는 그 시대 상황과 대중이 느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사료이다. 예를 들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역사적 사건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을 보는 것보다 유대인 소녀 안네의 일기장을 보는 것이 그 시대 상황을 더 실감 나게 알 수 있다.
    인문/어학| 2016.05.06| 5페이지| 1,500원| 조회(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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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의 이해
    무역은 우리나라경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2.3 ‘IMF 경제위기’와 최근의 경제현황 - IMF 외환위기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파급효과 서술형!우리나라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은 기업들의 취약한 재무구조에 있었다. 기업들은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을 통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시켰고, 위기발생 전의 기업들의 과도한 확장과 무리한 투자(over stretching), 즉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과 자금조달에서의 만기불일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정책적으로는 국민소득 1만불 시대를 달성하기 위한 환율 인하로 인해 우리나라 제품의 해외 가격경쟁력이 하락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로 인하여 무역수지 적자폭이 확대되었으며 외채부담이 증가하였다.그리고 1997년 봄, 태국 주식시장의 유동성 위기로 바트화가 폭락하는 사건이 있었고 가장 결정적으로 홍콩의 주식시장이 폭락하였다.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의 투자자금을 회수하였다.이러한 문제들로 인하여 한보, 대농, 삼미, 진로 등의 대기업은 연쇄부도하게 되었다.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급락하였고 외국금융기관들은 단기외채차입금의 만기연장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는 IMF에 지원요청을 하게 되었으며 1997년 12월 5일 IMF와 ‘대기성차관 및 구조조정 지원금 공여에 따른 양해각서’에 합의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단지 경제적 상황만이 작용한 것이 아닌, 미국의 의도적인 정치적 개입 또한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1998년 IMF금융 및 재정긴축과 구조조정으로 소비자와 기업 심리가 위축되면서 내수경기가 급격히 냉각되었다. 금리가 상승하고 긴축재정이 편성되는 등 재정상황이 악화되자 마치 빈곤의 악순환처럼, 실업자수는 2배 증가하였고 민간소비가 감소하였으며 기업투자가 감소하였다.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하여 김대중정부는 경기부양책을 실시하였다. 금리하향화, 정부지출확대와 더불어 카드 규제를 대폭 완화시켜 발급을 확대하였다. 카드 발급의 확대는 급격히 냉각된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마로 여기에는 정책적, 경제적 영향뿐만 아니라 금모으기 운동 등으로 나타난 우리 국민의 희생과 헌신 역시 공헌한 바가 있다.외환위기 전 실업률은 2.4%였으나 1998년 IMF 당시에는 7.0%까지 증가하였고 2002년에는 3.3%까지 하락하였다. IMF를 기점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평생직장의 개념이 변화하였다. 경기 불황에 따른 때 이른 명예퇴직 등으로 인해 정년퇴임 전에 실직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정부가 조달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 고용불안정은 청년실업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로 인하여 직장개념이 변화하게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외환위기 당시의 경제성장률은 큰 폭으로 하락했었고 외환위기 이후 소득불균형이 심화되는 문제가 나타났다.2008년 이후의 한국경제를 보자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세계경기 침체로 수출이 감소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생금융상품 판매 문제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비롯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위기는 절정을 맞이하였고 미국은 정책자금을 풀어 사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경제인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긍정적인 성과만을 보여주지는 못했다.2009년 우리나라의 수출규모는 전년 대비 13.6% 감소했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확대로 경제성장률은 0.7%를 달성하였는데 이는 OECD국가 중 유일한 플러스 성장이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글로벌 금융위기에 영향받을만큼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2010년 글로벌 정책공조로 세계경제가 안정되었으나 그리스의 재정적자로 인해 유럽의 재정위기가 시작되었다. 부채확대,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를 품은 체질개선이 되지 않는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PIGS) 국가들은 유럽연합의 위기를 가져왔다.최근의 두 가지 경제위기는 모두 외부적 요인에서 출발하였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렇가지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금융부문의 시장원리 도입 및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 및 회계투명성 증대, 정부의 경제원리에 입각한 경제운영으로 선진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 정부의 보호 중심에서 경제 원리에 입각한 시장구조 쪽으로 변화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3장 무역.3.1 무역과 경제성장규모의 경제이론-economy of scale: 규모가 클수록 경제적이다.대표수요이론, 제품수명주기가설, 기술격차론, 독점적 경쟁시장이론(언급만)절대우위론과 비교우위론 - 무역이론(절대우위, 비교우위, 헥셔-오린 모형) 객관식, 서술형!A. Smith의 절대우위이론각국이 상대국가보다 절대적으로 생산비가 저렴한 재화에 생산 및 특화해서 서로 교환하면 두 국가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된다는 이론이다(생산비는 상품의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시간으로 정의). 이는 무역의 이익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설명하고 자유무역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공헌점이 있으나 한 국가가 모든 상품의 생산에 절대우위를 가지고 다른 국가는 절대열위를 가지는 경우 과연 무역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D. Ricardo의 비교우위이론국제무역을 통하여 이익이 발생하기 위해서 반드시 절대우위만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비교생산비의 차이만 존재하면 된다고 주장한 이론이다. 한 국가가 모든 상품의 생산에 모두 절대열위를 가지는 경우에도 비교우위를 가지는 상품에 특화하여 수출함으로써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A국가와 B국가의 예로 설명하자면절대우위이론과 비교우위이론은 노동비용만 고려하여 시간으로 나타내었다. 가용시간은 24시간으로 동일하다.A국가B국가X재화34Y재화26동일한 3시간을 투입하면 A국가는 하나의 X재화를 생산하고 B국가는 4시간을 투입해야 하나의 X재화를 생산한다. A국가는 X, Y재화에 절대우위, B국가는 절대열위를 가진다.A. Smith는 이런 경우에는 무1의 결과를 낳으므로 Y재화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B국가의 경우 X1=Y2/3이므로 X재화에 주력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생산 후의 표는 B국가가 X재화 생산에 24시간을 모두 투입하고 A국가가 X재화에 6시간, Y재화에 18시간 투입한 것이다. 이때 총 생산량이 증가하는 결과를 볼 수 있다. A국가의 비교우위는 Y재화이며 B국가의 비교우위는 X재화이다. 절대열위국가는 특화된 것에 주력하고 절대우위국가는 불완전특화를 통해 생산량을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헥셔-오린 모형- 무역이론(절대우위, 비교우위, 헥셔-오린 모형)국가간 요소부존도의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비교우위가 무역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밝힌 이론으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대표적 무역이론이다. 요소부존도의 차이는 개별요소의 상대가격차이를 발생시키고 이는 국가 간 비교우위를 결정하며 무역패턴의 결정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는 맞지 않았다. Leontidf의 역설에서 미국의 예를 통하여 헥셔-오린 모형을 검증해볼 때, 미국은 자본이 많은 국가이기에 자본집약재를 수출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미국은 자본집약재를 수입하고 노동집약재를 수출하고 있었다.비교우위이론과 절대우위이론은 노동만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헥셔-오린 모형에서는 노동과 자본을 모두 고려하였다. 재화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노동이 많이 들어간 재화는 노동집약재로, 자본이 많이 들어간 재화는 자본집약재로 나뉜다.예를 들어 A국가는 노동풍부국가고 B국가는 자본풍부국가라고 가정해 볼 때, A국가는 노동요소의 가격인 임금이 저렴하므로 노동집약산업에 우위를 보인다. 그러므로 노동집약재화를 특화해서 수출하는 것이 유리하다. 중국, 동남아 등이 이에 속한다. 반면에 B국가는 기술, 디자인 등에 특화된 자본집약적 산업에 비교우위를 가지므로 농산물 등의 노동집약재화를 수입하고 자본집약재화를 수출한다. 노동요소의 가격(임금)이 낮으면 자본요소의 가격(금리)가 높으며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OX 궁예)비교우위 원리에 의해 상대적으로 낮음4. 과학기술의 발달로 면화, 고무, 피혁, 구리 등의 원자재에 대한 인공대체물이 발명되면서 1차 산업재화의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감소5. 농산품 및 원자재의 생산은 재배, 채굴기간이 길기 때문에 국제시장에서의 수요변화에 따른 생산량 조절이 쉽지 않음6. 농산품 및 원자재는 자연자원이 고정되어있어 생산에서 수확체감이 빠르게 나타남7. 농산품 및 원자재는 자연적인 조건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시장상황에 따른 생산량 조절에 한계가 있음8. 자연순응적 생산조건으로 1차산업중심의 사회는 보수적이고 경직적인 전통과 문화구조를 갖게 됨->새로운 기계의 발명, 기술진보, 그리고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려움9. 농산품 및 원자재의 무역이익이 국가 내 소수의 대지주 또는 자원소유주에게 집중되면서 사회 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사회적 불안정은 반복, 지속되고 있음.3.2는 안봄, 3.3 국제수지일정기간(보통 1년)동안 거주자와 비거주자 사이의 경제적 거래에 따른 수입과 지급=국제수지국제수지=경상수지+자본금융경제경상수지=상품수지+서비스수지+본원소득수지(임금수지, 투자소득수지)+이전소득수지(무상거래)자본수지(금융수지): 특허권, 상품권 등의 매입, 매도금융계정: 직접투자, (간접투자,) 증권투자, 파생금융상품 등환율: 외국통화의 가격환율상승->외화강세, 원화약세환율하락->원화강세, 외화약세- [표 3-14] 환율변동의 효과환율하락(원화 평가절상)환율상승(원화 평가절하)수출감소(원화표시 수출상품 가격 하락)증가(원화표시 수출상품 가격 상승)수입증가감소경상수지악화개선국내물가물가안정(수입원자재 가격 하락)물가상승(수입원자재 가격 상승)외자도입기업부담 경감부담 증가외환보유액: 교환성이 있고 유동성과 시장성이 높은 자산으로 통화당국인 중앙은행과 정부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대외외화 금융자산외환보유액이 너무 적으면 대외 채무를 갚지 못함: 모라토리움4장 노동.4.1 노동의 특징과 노동시장노동의 특징: 파생적 수요, 임대만 가능-구매 판매 불가(특성)...노동등 정리
    경영/경제| 2016.05.06| 5페이지| 1,000원| 조회(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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