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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강성과 절강성 출신의 인물, 대표 음식
    -저장 성(절강 성)저장 성(절강 성)은 중국 남동부에 위치한 성이다. 약칭은 절(浙)이며, 간혹 월(越)이라고 부른다. 성도는 항저우(杭州)이고, 인구는 5,477만 명이며, 면적은 104,141cm²이다. 성의 이름은 이 지역을 흐르는 첸탕 강(錢塘江)의 옛 이름인 저장 강(浙江)에서 이름을 따왔다. 북쪽에는 장쑤 성, 동북쪽에는 상하이 직할시와 접해 있다. 중국 드라마 온주일가인과 온주양가인의 배경이자 원저우 고속열차 추락 사고가 일어난 원저우가 이 성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저장 성은 산지가 비교적 많은 편이고, 높이가 1,433m인 센샤링 산이 있다. 동쪽은 바다에 접하는데, 항저우만이 있고 해안선이 복잡해 성 중에선 가장 섬이 많다. 한국으로 가정했을 때, 전라남도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산지와 평야의 비율도 비슷하며 해안선도 복잡하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다만 인구와 면적은 남한과 가장 비슷한 성이다. 저우산 군도의 주요 섬인 저우산 섬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3번째로 큰 섬(하이난다오, 충밍다오에 이은 3번째)이다. 양안 전체로는 타이완 섬이 있기 때문에 4번째로 큰 섬이다.저장 성의 역사는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민족의 국가였던 월나라가 위치해있었지만, 기원전 333년 경에 멸망하고 초나라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후 진시황의 의해 통일되었지만 초한쟁패기와 전한기때 민월과 동월이 한나라의 제후국이기는 했어도 독립을 누렸지만 한 무제 때 멸망하였고, 이후에 중국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오 나라의 영토였으며, 오대 십국 시대에는 퓨전 오월이 있었다. 그리고 송나라 때에는 남송의 중심지였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저장 성 남부가 장쑤 성 북부와 함께 경제, 문화적 중심지였다. 장제스가 저장 성 닝보(영파) 출신이며 현 대만 정치인 중 주리룬, 훙슈주도 외성인 2세로 아버지가 저장 성 출신이다.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 건국과 함께 여기서도 군벌들이 활동했다. 1919년 안휘군벌의 루잉샹한 인민해방군에게 점령되어 현재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이다. 국부천대 이후에도 저장성 소속인 다천 섬(大陳島)이 현재의 진먼 섬, 마쭈 열도처럼 중화민국의 영토로 남아있었는데 앞의 두 섬과 달리 여기는 중화민국 측에서 방어에 한계를 느끼고 1955년에 철수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중국 현(2012~) 국가주석인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저장 성 공산당 서기로 일한 경력이 있고 여기서 정치 경력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취저우에는 산동성 취푸(曲阜 곡부)와 마찬가지로 공자의 사당인 문묘가 있다. 이는 정강의 변으로 송나라가 남송으로 쫒겨나면서, 당시 공자의 후예들도 취저우에 피난을 가서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를 남종이라고 부르는데 북중국을 차지한 금나라도 취푸를 지킨 공자의 후손들을 북종으로 삼아서 공자의 후계를 잇도록 하면서 정통성이 나뉘게 되었다. 이 정통성 문제는 원나라 시기 때 남종이 북종에게 정통성을 양보하면서 해결하였다. 그러나 취저우에 있는 기존의 문묘는 그대로 남아서 공자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저장 성의 행정 구역, 각 시의 명칭, 인구는 다음과 같다.-저장 성(절강 성)의 인물들저장 성(절강 성)에서 배출한 역대의 인물들은 크게 고대, 중세, 현대의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대 : 월 나라의 출신인물들은 다 이곳 출신이다.•서시는 서한 원제(元帝) 때의 궁녀 왕소군(王昭君), 삼국시대의 초선(貂蝉), 당대의 양귀비(杨贵妃)와 함께 고대 사대미인(四大美人)으로 지칭되는 인물로 서시와 관련된 전설은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 시(紹兴市) 현급 주지시(诸暨市, 제기시)에 기반을 둔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저장 성은 예로부터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구천은 춘추시대 말기의 월(越)나라의 왕(재위 BC 496∼BC 465). 오왕 합려와 싸워 그를 죽였고 부차에게 패했다. 그 후 부차를 꺾어 자살하게 하고 서주(徐州)에서 제후와 회맹하여 패자가 되었다.•손견은 중국 후한(後漢) 말기의 무장(武將)으로 황건의 하에 들어가, 뛰어난 재주로 이름을 떨쳤다. 1402년 연왕(燕王: 뒤의 영락제)이 황위(皇位)를 찬탈한 뒤, 그에게 즉위의 조(詔)를 기초하도록 명하자 붓을 땅에 내던지며 죽음을 각오하고 거부하였다. 연왕은 노하여 그를 극형에 처하였다.현대에는 절강 성(저장 성)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루쉰 : 사오싱 출신의 중국의 작가이자 만화가, 사회운동가, 사상가이다. 사실 루쉰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본래 저우(周)씨였고, 어린 시절의 이름은 장서우(樟壽)였다. 본명으로 알려진 수런(樹人)은 그가 17세 때에 학교에 들어가면서 바꾼 이름이다. 루쉰은 그가 작가 활동을 하면서 지은 필명이다. 그는 자기 나라의 중국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중국인을 이기적이고 허세와 정신승리를 잘 드러내며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고 쓸데없이 외래문화에 배타적이라고 주장했다. 루쉰이 생각한 중국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아Q정전이다. 그런 시각에서 한자 폐지 운동에도 참여한 바 있다.•마윈 : 항저우(杭州) 출신의 알리바바 그룹의 前 대표이사이자 회장으로 2017년 7월 기준 중국 최고의 부자이자 세계 18위의 부자이며 포브스 표지에 최초로 실린 중국의 사업가이다. 또한 그는 태극권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기업 경영에도 태극권의 원리를 강조할 정도였다. 2017년에는 이연걸 감독의 《공수도(功守道)》란 태극권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장제스(장개석) : 닝보 출신으로 중화민국의 군인, 정치인, 독재자였으며, 총 재임 기간은 25년 282일이다. 중간의 1년 38일을 더하면 1948년 5월 20일부터 1975년 4월 5일로 26년 320일. 난징 정부 수뇌로 치면 1928년부터 47년간 중화민국의 지도자로 있었다. 다만 장제스는 한번도 마오쩌둥이 가졌던 것 정도의 권력을 대륙 전체에 행사한 적도, 가진 적도 없다. 장제스의 정권은 어디까지나 수많은 군벌들의 연합체였고, 북벌과 반장전쟁으로 기세를 꺾어놨을 뿐 반항기는 여전했다. 이후 대만 1936년 서안 사건 중 살해되었다.•쑨양 :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수영선수다. 저장 성 항저우 출신으로 2012 런던 올림픽,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다. 올림픽에서 획득한 통산 메달은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이다. 자유형 전문 선수로, 200m에서 1500m까지의 중장거리 종목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한 번씩 다 우승해 본 진기록도 갖고 있다. 2018년 중국 수영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다.•첸쉐썬 : 항저우 출신의 중국의 공학자로, 중국의 핵개발에 기여하고 둥펑, 실크웜 등의 미사일을 개발하였으며, 중국의 1세대 우주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천재 공학자이자, 매카시즘 최대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간 뒤 대약진운동에 한 몫 했을 뿐 아니라, 권력 지향적인 모습을 보여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받았던 인물이다.•장학성 : 중국 청나라 중기의 역사학자이자 사상가로 본명은 장문표(章文鑣)이며, 자는 실재(實齋), 호는 소암(少巖)이며, 저장 성 샤오싱(紹興) 시 출신이다. 그는 역사가는 변화하는 역사 과정을 맹목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훌륭한 덕을 갖춘 뒤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에는 고증학이 주류였으나 그와 별개로 자신만의 역사관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경세치용(經世致用)은 긍정했다고 한다.•호일천: 항저우 출신의 배우 겸 가수로 중국의 2017년 드라마 의 남자주인공역을 연기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저우언라이 : 사오싱 출신의 중화민국의 공산주의 혁명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가, 군인, 외교관. 건국 이후 죽을 때까지 1대 국무원 총리를 지냈으며 외교, 정치, 경제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국내에서는 오랜 기간 한국식 한자독음인 "주은래"로 표기했다. 지금도 어르신들은 주은래 총리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장제스와 마오쩌둥, 쑨원이 그랬듯이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을 많이 쓰기 때문에 달고 진한 맛이 많이 나는 요리가 특징이다. 또 항주는 서호라는 큰 호수를 가지고 있어 서호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를 가지고 하는 요리도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상해의 게 요리와 한 마리의 생선을 가지고 부위별로 다른 조리법과 양념을 이용해 만드는 생선 요리가 있다. 또 항주 쪽은 동파육(돼지고기를 간장과 설탕, 야채등과 함께 걸쭉하게 조린 요리)과 거지닭(예전 황제가 민정 시찰을 나갔다가 잘 곳이 없어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모닥불을 피운 곳 밑에 거지가 닭 한 마리를 연 잎에 싸서 파 묻어 놓았는데, 불을 계속 피우다 보니 땅 아래에서 닭이 익어 고소한 냄새를 풍겼는데 그게 거지닭의 시초이다.)•항주금(杭州錦) : 항주는 예로부터 비단 산지로 유명했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비단시장이 있다.•용정차(龍井茶) : 절강 성 항주시의 서남쪽 풍황령(風篁嶺)의 남녘기슭에서 산출된다. 차 산지의 이름을 붙인 차 이름이다. 중국 절강 성 항주시의 서남쪽 풍황령(風篁嶺)의 남녘 기슭에서 생산되는 차 이름이다. 중국 녹차의 대명사로 중국 절강 성 항주의 서호(西湖) 주변의 산에서 생산되는 차이다. 아주 어린 싹만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제조과정이 까다롭다. 처음 덖는 과정에서 최종 제품이 될 때까지 솥 안에서 덖고 비비기를 하여 편평한 모양의 차가 되도록 만든다. 차의 맛이 부드럽고 향이 독특하나 우리나라 사람의 기호에는 다소 부적합한 편이다. 중국의 덖음차의 일종(불발효차)이다. 용정차는 중국녹차의 일종으로서 용정(龍井)이란 샘 옆에 용정사란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서 재배한 차를 말하며 용정차 또는 서호 용정차라고 불린다.•금화화퇴(金華火腿) : 중국 절강성 금화에서 나는 소금에 절인 돼지 뒷다리 훈제 염장햄•동파육(東坡肉) : 중국 항저우(杭州)의 전통 요리로 큼직한 삼겹살 덩어리를 통째로 향기 좋은 전통 명주, 소흥주에 넣어 삶은 후 간장 등으로 장시간 졸여서 만드는 음식이다. 도톰한 삼겹살을 새끼로 묶어 고정시킨 후 간장과 술을 넣고 삶은 .
    인문/어학| 2019.05.12| 5페이지| 1,000원| 조회(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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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큐정전 감상문
    아큐정전. 전부터 이름은 들어봤던 책이지만 어떠한 내용인지는 몰랐던 책이다. 제목 또한 우리말이 아니라서 어떤 내용, 어떤 장르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심지어 아큐 정전이 한자인지 다른 외국어인지도 추측이 되지 않았다. 주인공의 이름을 익명으로 설정한 소설은 많고 많지만 주인공의 이름을 확실한 이름이 아닌 阿Q로 처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던 소설이기도 하다.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조차 몰라’서, ‘아꿰이(阿柱)’인지 ‘아꿰이(阿貴)’인지 확실치 않아 여기저기 물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탓에 ‘부득이 서양 문자를 써서 영국에서 유행하는 병음법으로 아Quei라고 쓰고, 간략히 아Q라고’ 하는 수 밖에 없다는 화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묘하게 납득이 가는 이유여서 소설의 리얼리티성을 살려준다.그렇기에 기대를 하고 읽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여전히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는 읽고 난 현재에도 의구심이 든다. 아큐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아큐는 아주 멍청하다. 가난하고 직업도 없어 동네 소일거리를 종종 맡아 하는데, 멍청해서 그마저도 잘 해내지 못하고, 동네북처럼 맞고 다니기 일쑤다. 너무 맞고 다녀서 머리가 더 멍청해진 것은 아닐까 싶다. 맞고서도 자기 합리화하여 우쭐대고 다니며 동네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아큐를 싫어하게 돼서 악순환은 반복된다.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태 파악도 못해 동네에서 쫓겨 나가기도 하고 심지어 최후에는 사형된다.내막은 이러했다. 때는 신해혁명 전야로 세상이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던 시절에 아Q는 좀더 큰 바닥인 성내에 나갔다가 혁명 전야의 혼란을 틈타 도적질하는 무리들에 끼여 한몫 챙겨서 돌아온 것이다. 조만간 일련의 혁명운동이 완결되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의 탄생을 앞둔 시기였지만 아직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왕조 전환기의 혼란과 불안을 느낄 뿐이었다. 청조 입장에서 혁명 당원이란 곧 역적을 의미한다. 혁명파 색출에 혈안이 된 청조의 마지막 몸부림 속에서 혁명 당원의 사형 소식이 떠돌고, 조만간 무슬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민심이 흉흉했던 시절이었다. 붙잡힌 혁명 당원이 극형에 처해진 소식을 떠벌리는 아Q의 얘기에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에 경악을 한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아Q는 웨이좡의 스타가 되고, 사람들은 위아래 할 것 없이 별안간 그에게 관심을 표하기 시작한다.웨이좡 최대의 권세가인 자오 댁이 약탈을 당한 직후 마을을 접수한 혁명군에 의해 아Q는 영문도 모르고 체포된다. 도난 사건에 연루된 혐의였다. 아Q는 죄를 뒤집어씌우기 가장 만만한 존재일 뿐 아니라 성내에 나가 있는 동안 실제 도난 사건에 가담했다가 손에 넣은 장물들을 가지고 마을로 돌아와 그 사실을 떠벌린 적이 있기 때문에 혐의는 충분 했다. 아Q가 혁명군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가 대단원의 내용이다. 우선 신해혁명의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괴리 되어있었는가를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아Q는 자신이 체포된 이유를 모르고 있을뿐더러 마지막 순간까지 사형 당한다는 엄청난 사실에 억울함도 절박함도 느끼지 못한다. 그야말로 블랙코미디 같은 이 희화적인 상황의 묘사에는 그러나 차마 웃을 수 없는 어두움과 비애가 서려있다.소설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이야기다. 또 소설은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등을 통해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작가가 하고자 하는 생각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특히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들은 당 시대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는데, 중국의 현대소설 역시 그렇다. 흔히 중국 현대소설의 시발점으로 일컬어지는 아큐정전(阿Q正傳)도 작품이 쓰여진 1920년대의 역사와 맞닿아 있으며, 당시의 중국인을 잘 비추어내고 있다. 작가 루쉰은 1921년 12월 4일부터〈신보(晨報)〉라는 신문에 소설 《아큐정전》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중국 국민의 대체적인 약점을 폭로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이 소설에 1920년대 중국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큐(阿Q)’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큐(阿Q)라는 이름조차 접두어 아(阿)와 당시 청나라 사람들의 변발을 기호화 한 Q를 사용하고 있다. 주인공 ‘아큐(阿Q)’는 이름조차도 정확히 기억되지 않는, 집도 일정한 직업도 없이 그저 날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물이다다른 문학 작품에 비해 핵심 내용이 짧고 아Q에 대한 묘사와 희화화 시킨 부분이 이 책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용보단 내용에 대한 평가를 쓰는 것이 나에겐 조금은 벅찼던 과제였다. 아Q에 관한 캐릭터 성향이나 『아Q정전』에 관한 자료도 읽어 보았고, 당시 그 시대의 배경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Q정전』에 대해 쓰려고 결정했을 때 인터넷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자료를 쉽게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계기로 인해서 전부터 관심이 있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던 책을 읽어 보게 되었고 앞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이 책에 관련된 내용을 묻는다면 그 때는 당황하지 않고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에 아Q는 그 당시 중국인의 성향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이기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 했다. 또한 같은 중국인을 중국인의 눈을 통하여 은유와 비유를 통해 비판한 정신도 가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중국인만을 은유적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 광범위한,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아Q와 같은 행동을 일삼고 있지는 않는가? 루쉰은 이러한 내용을『아Q정전』을 통해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멍청한 아큐의 이야기가 반복되다가 결국 아큐의 죽음으로 끝나는 아큐 정전. 나는 이 책이 왜 유명한 책이며, 과연 아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평론가의 평을 찾아 읽게 되었다. 두산백과에 의하면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을 모르고 오히려 머리 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아큐의 정신 구조를 희화화함으로써 철저히 파헤쳐, 당시 사람들이 자기가 모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중국 구사회의 병근을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아큐는 정말 길을 걸어가다 동네 사람들이 때려도 덤비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가 평소 가장 무시하던 동네 바보가 때려도 저항하지 않고 맞기만 했다. 그렇게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맞고 나서는 기억을 조작하며 정신 승리를 했다. 그 시대의 중국인들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루쉰은 이 글을 통해 권력이나 폭력에 저항할 줄 모르고 당하기만 하며 또 금방 잊어버리는 우매한 대중들을 비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큐는 혁명당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비난하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또 사람들이 우러러보면 바로 좋은 것인 줄 알고 가입하려 했다. 정작 혁명당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도 ㅁ모르면서, 그러다가 결국엔 사형에 처하게 된다. 루쉰은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 없이 과반수의 생각이나 그러한 분위기에 쉽게 선동당하며 주체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대중들을 비난하고, 또 그러다가는 비극적을 결말을 맞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려 했던 것 같다.이는 단지 중국 구사회만의 이야기가 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많은 대중들이 그랬을 것이다. 요즘에는 첫 댓글이 전체 댓글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인터넷 뉴스 기사에 첫 댓글이 우호적이면 다른 사람들도 우호적인 댓글을 달고 첫 댓글이 비판적이면 다른 사람들도 비판적인 댓글을 단다는 뜻이다. 뉴스를 보거나 어떤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 의견을 표출하기 전에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지 않고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떤 일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선동되지 않고 동시에 선입견도 갖지 않고 유연하고 순수한 머리로 받아들여 나의 생각을 중요한 것 같다.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아큐정전을 통해 나도 나의 생각을 정리하자고 또 한 번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들을 정리해가다 보면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문/어학| 2019.05.12| 3페이지| 1,500원| 조회(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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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청사'로 살펴본 법해의 인식 변화
    영화 로 살펴본 법해의 인식변화20180062 정애진영화 는 중국의 오래된 설화인 백사전을 기반으로 한 소설인 이벽화의 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백사전은 중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민간 설화이다. 백사전은 다양하게 변용되면서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변화하고 있다. 역시 이런 작품들 중 하나이다.의 가장 큰 특징은 법해의 요괴 퇴치에 대한 회의감이 작품 전반부부터 결론까지 있다는 것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법해는 자신이 퇴치하고 가둔 거미 요괴의 염주가 빛나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하지만 그는 이를 부정하면서 다시 요괴를 가둔다. 그 후 법해는 또 다른 요괴의 기운을 느껴 달려갔지만 두 마리 뱀이 아이 낳는 임산부를 돕고 있는 것을 보고 요괴라 해도 수행이나 남을 돕는 것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보낸다. 이후 법해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자신의 도력을 사용하거나 자기 수양에 집중한다. 하지만 법해가 이들 자매를 인간 세상에 둘 수 없다고 마음을 바꾸게 되는 일이 생긴다. 청사가 자꾸 자신의 본래 속성과 모습을 드러내는 바람에 허선이 놀라 죽은 일이 벌어져 자매는 신선의 풀을 훔쳐 허선을 살리려 했다. 소정은 풀을 훔치고 소청은 그들을 쫓아온 법해를 따돌리기로 하였다. 법해는 소청에게 자신을 유혹한다면 소청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이것은 법해가 여자에 대한 자기 수련도를 알아보고자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 법해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눈을 뜨고 자신을 보라는 소청의 요구와 구애에 법해는 흔들린다. 소청이 법해의 변화를 눈치 채고 자신의 승리를 기뻐하면서 달아나 버리자 법해는 요물을 제압하겠다고 마음을 바꿔먹는다. 이것은 소청과 맺었던 약속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다. 또한 이는 자신이 내기에서 진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할 수 있다.법해는 허선을 금산사로 끌고 가서 억지로 삭발시키고 부처님 앞에서 탐심에 대해 참회하게 한다. 또한 허선을 찾으러 온 백사와 청사를 가두려 한다. 자매의 금산사의 출입을 막는 도중 또 한 번 법해는 충격을 받게 된다. 백사가 변신한 소정이 허선의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고 이에 놀란 법해는 자신의 도술을 거두고 백사와 여러 사람들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백사와 금산사의 승려들을 모두 익사시킨다. 허선을 죽인 것에 대해 꾸짖는 법해에게 청사는 금산사의 승려들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지 되물으며 법해 또한 죄인임을 상기시키고 사라진다. 결국 이 끝에는 법해는 백사가 낳은 아이와 둘만 남는다.
    인문/어학| 2019.05.12| 1페이지| 1,000원| 조회(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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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화홍련전 분석과 작품의 현대적 이해와 변용 평가C아쉬워요
    장화홍련전정애진(중어중문학과, 20180062)목차1. 작품 선정의 이유2. 작품 분석 및 서사적 화두3. 작품의 현대적 의미와 변용 가능한 지점4. 새로운 스토리 소개 및 장르?매체 등에 대한 소개5. 새로운 스토리의 의미◎ 참고문헌1. 작품 선정의 이유장화홍련전이라는 작품을 조별과제로 선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장화홍련전이라는 작품을 콘텐츠의 소재적 원천으로서 큰 가능성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담론으로써 유용한 가부장제와 요즘 크게 떠오르고 있는 여성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장화홍련전을 오늘날의 담론으로써 유용한 화제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았고, 이는 큰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였기에 이 작품을 선택하였습니다.둘째, 장화홍련전이 영웅소설이나 군담소설이 아니라 가정소설인 점입니다. 흔히 고전소설작품 중, 아는 작품이 무엇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체적으로 박씨전이나, 홍길동전, 전우치전과 같이 남성이 주인공이고, 중심이 되는 소설들을 흔히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여성인 주인공이며 약간은 비주류라고 볼 수 있는 가정소설 중 장화홍련전을 눈여겨보았고, 그로 인해 장화홍련전이라는 작품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셋째, 새로 접하는 작품에 대한 흥미입니다. 이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이유 모두와 연관 지을 수 있는데, 여러 영화나 대중매체로 알려진 작품이지만 실제로 장화홍련전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계기는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장화홍련전에 대해 더욱 흥미가 생겼습니다. 또한 장화홍련전은 공포영화나 전설의 고향과 같은 공포적인 요소만을 부각시키고, 귀신이라는 소재만을 중점적으로 보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를 공포물이 아닌 다른 장르로 변화하고 싶었습니다.2. 작품 분석 및 서사적 화두우선 장화홍련전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평안도 철산에서 좌수 벼슬을 지내던 배무룡은 부인 장 씨와 함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자식이 없는 것이 한이었습련에게 갖은 학대를 하였습니다. 이를 안 배무룡이 허 씨를 꾸짖자 뉘우치기는커녕 자매를 해할 궁리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장화는 허 씨와 그녀가 낳은 아들 장쇠의 계략에 의해 낙태를 하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고, 장쇠의 재촉에 못 이겨 연못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장쇠가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에게 물려 눈과 팔다리를 잃자 허 씨는 공연히 남은 홍련을 미워하였습니다. 언니의 소식을 몰라 답답해하던 홍련은 장쇠에게서 언니인 장화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슬픔에 젖은 채 언니를 그리워 하다가 장화와 같은 연못에 빠져 죽었습니다. 원한을 풀지 못한 두 사람의 혼령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 청하기 위해 사또의 관아에 찾아가지만 밤중에 나타난 두 자매의 혼령을 본 부사들은 크게 놀란 나머지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부사들이 잇달아 죽어나가자 철산 고을은 황폐해졌고 조정의 근심도 날로 커졌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정동우 라는 용맹한 이가 자매에게서 그간의 사연을 들은 후 다시 재조사 하였습니다. 자매의 말대로 모든 것이 허 씨 모자의 계략이었음을 알게 된 부사는 허 씨 모자를 엄벌로 다스리고 연못에서 장화와 홍련의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었고, 배무룡은 훈방이 되었습니다. 배무룡은 새로 후처 윤 씨를 맞아들였고 윤 씨가 상제로부터 꽃 두 송이를 받는 꿈을 꾼 이후 장화와 홍련은 윤 씨와 배무룡의 쌍둥이 딸로 환생하였습니다. 두 딸은 평양의 큰 부자인 이연호의 아들들에게 시집가 잘 살게 되었습니다.장화홍련전은 조선 후기의 가정 소설로, 악독한 계모에게 전처의 소생인 두 딸이 학대를 받다가 억울하게 죽은 뒤 원혼이 되어 계모의 악행을 고발하는 사건을 다루어 계모형 가정 소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고전 소설의 공동 주제인 권선징악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선과 악이 대립되어 펼쳐지는 인간 생활의 일면을 어느 정도 현실성을 띠고 표현해 놓았다는 점에서 윤리적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장화와 홍련을 비롯한 배무룡과 혼란기에 여성들의 권리가 급격하게 신장되면서 상대적으로 부권이 몰락하는 사회상이 반영된 인물입니다. 마지막으로 허씨는 장화와 홍련의 계모로 남편이 장화와 홍련을 아끼는 것에 대한 시기심으로 장화와 홍련을 모해하여 죽인 인물입니다. 후처제로 인한 가정불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고, 그 문제점의 하나로 등장시킨 인물로 허씨를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이 작품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의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선 후처제의 제도적 모순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화홍련이 쓰였던 조선시대는 가부장제와 일부다처제라는 가족제도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장화홍련전을 보면 가족제도의 변화가 분명히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게 후처제의 제도적 모순에 대해 그에 대한 과정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본처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남편은 후처를 들이게 됩니다. 후처는 가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구성원 간의 대립이 생기게 됩니다. 이 갈등이 심해져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장화홍련전에서 중요하게 봐야할 점은 비극적인 결말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후처인 윤 씨를 들인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가장의 무능력함과 무책임함에 대한 문제의식입니다. 배 좌수는 장화, 홍련의 아버지 임에도 불구하고 후처인 허 씨의 말만 듣고 장화를 죽음에 이르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홍련까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무지한 배 좌수는 허 씨의 범행을 돕게 된 것입니다. 또한 배 좌수는 가문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명분하에 장화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는 가장의 무책임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장화의 죽음은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홍련까지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한 의문점입니다. 장화가 혼인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허 씨가 껍질을 벗긴 피 묻은 쥐를 장화의 침소에 놓아서 그녀가 낙태를 한 것처럼 꾸미게 됩니다. 가장인 배 좌수는 자신의 가문에 이 사건이 피해를 입힐까봐 그렇게 연못에 그녀와 똑같이 빠져 죽게 됩니다. 여기서 장화홍련전을 읽으면서 가장 큰 의문점을 가졌던 부분인데, 장화의 죽음은 억울한 누명으로 인한 것으로 본다 한들, 홍련은 왜 장화를 따라 죽음을 선택했냐는 것입니다.3. 작품의 현대적 의미와 변용 가능한 지점장화홍련전에서의 계모는 재혼 가정으로 '시집을 가게' 되고 '어머니'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족 구성원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외부인으로 취급을 받게 됩니다. 이 와중에 배 좌수는 전 처인 장 씨를 언급하며 계모의 심기를 돋우고 계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허 씨가 장화에게 누명을 씌우고, 더 나아가 그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 행동의 이유가 배 좌수에게도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 좌수는 장 씨가 죽을 때, 자신이 죽으면 후처를 들여도 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배 좌수는 장 씨가 죽자마자 후처인 허 씨를 들이게 됩니다. 조선시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남아선호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장 씨는 아들을 낳지 못했으나, 허씨는 배 좌수의 집안의 대가 끊이지 않을 수 있도록 아들을 셋이나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좌수는 전처인 장 씨를 언급하고, 허 씨와 허 씨의 아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장화와 홍련만을 아낍니다. 이 상황에서 허 씨는 안 좋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장화와 홍련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녀 역시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러한 그녀의 행동이 단순히 그녀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허 씨는 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으며, 이는 처벌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원영이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는 평택 아동 암매장 살인사건,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살인사건, 울산 계모 사건 등 현대에도 계모를 둘러싼 아동학대와 관련된 안 좋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원영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다. 그는 전처가 남긴 재산으로 풍족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화의 혼수를 잘 준비하자는 배 좌수의 말에 전처의 자녀를 살해할 궁리를 하는 허 씨의 행동을 보았을 때, 이는 경제적 욕망 때문에 생긴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이 현대에도 빈번하기 때문에 장화홍련전이 쓰인 시대와 오늘날의 동시대적 의미를 찾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4. 새로운 스토리 소개 및 장르?매체 등에 대한 소개새로운 스토리는 원 텍스트에 있는 허 씨에 의해 장화가 낙태를 하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음을 맞이하는 낙태 모티프 자체는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홍련이 자살하는 장면 대신 사또와 사건을 함께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원 텍스트에는 장화의 죽음에 슬퍼한 홍련이 새를 따라 연못에 갔다가 언니인 장화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 후 장화와 함께 사또에게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자매 둘 중 장화만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습니다. 홍련이 죽지 않더라도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언니인 장화의 죽음을 인정하고, 그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본인의 의문점을 해결하면서 장화의 원한을 해결하는 것이 더 주체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원 텍스트에서는 겁 없는 사람이 부사로 자원하기 이전의 부사들은 꿈에 나온 장화와 홍련에 의해 놀라서 죽었다고 나옵니다. 이 장면은 과감히 삭제하고, 새로 부임한 새내기 부사가 맡은 첫 사건이 장화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인 상황으로 변경합니다. 홍련은 사또와 함께 장화의 죽음에 대한 단서인 피 묻은 쥐를 발견하고, 장화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홍련과 사또는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장화의 원한을 푼 뒤 배 좌수는 교수형에 처하게 되고, 홍련과 사또는 혼인하여 남은 허 씨의 소생인 형제를 가엾이 여겨 형제를 거둬 같이 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홍련은 상제가 자신에게 꽃 한 송이를 주는 꿈을 꾸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됩니다. 어릴 때 자신의 친모인 장 씨에게 들은 자신과 장화의 태몽을 기억하고
    독후감/창작| 2018.12.09| 3페이지| 2,000원| 조회(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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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동전 감상문
    홍길동전 자체는 문제의식이 강한 작품이다. 조선시대에 보편적으로 있었던 서자와 얼자를 차별하는 지배 이념과 사회 질서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또한 홍길동전은 여느 영웅소설과 달리 그는 고귀한 혈통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 고난을 겪은 인물이다. 작품 초반에서도 보면 원래의 부인인 유씨 부인이 거부하여 시비 춘섬과 길동의 아버지인 홍재상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홍길동이다. 길동이 자라고, 점점 비범한 모습을 드러내자, 곡산댁은 무녀를 불러 길동을 음해하려 한다. 이로 인해 길동은 산에 있는 정자에 머무르고, 감시까지 당한다. 곡산댁은 그 이후에도 자객을 불러 길동을 죽이려 하였으나, 이는 실패한다. 그 후, 길동은 아버지에게 호부호형을 허락 받지만, 길동은 집을 떠난다. 이처럼 작품 초반에서도 길동은 서자이기 때문에 집 안에서도 차별을 당하고, 더 나아가 죽음에 이르는 지경까지도 놓이게 된다.홍길동이 집을 나가,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되고 나서의 행동은 당대 민중들에게는 멋진 영웅의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홍길동은 서자이고, 적서차별이 심하였고, 탐관오리들이 판 치는 세상이라는 현실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민중의 영웅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현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홍길동이 의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한 것들도 어떻게 보면 도적으로서의 면모 또한 보이기 때문에 무조건 칭찬 받아 마땅한 일 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의적이라는 말 자체가 의로운 도적이기 때문에 의롭지만 도적이라는 말 자체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홍길동이 의적으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하자, 임금은 홍길동의 아버지와 홍길동의 형을 불러 홍길동을 찾아오라고 문책하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임금이 그의 형과 아버지를 불러 문책하기까지 했을까는 생각을 해보면 약간은 임금의 입장이 이해 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의 만행으로 인해 탐관오리가 아닌 관리도 약탈을 당했을 수도 있다. 그것까지도 고려해본다면, 홍길동의 의적 활동이 마냥 잘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홍길동전을 읽으면서, 큰 의문점이 생겼던 부분이 있다. 홍길동은 적서차별에 대한 반발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계급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있었고, 또한 탐관오리들을 약탈함으로써 그들을 징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도 활빈당이라는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율도국의 왕까지 되었다. 이는 계급체계를 비판적으로 보았던 홍길동의 과거와는 달리 그 역시도 마지막에는 계급체계를 수용하고, 그 일환이 되었다. 또한 홍길동은 서자로 적서차별에 대한 큰 반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도에서 요괴를 물리친 후, 백룡의 딸과 조철의 딸을 구하여 그들의 여식들을 백소저와 조소저로 두었다. 이 역시도 어떻게 본다면, 조선시대의 당연한 문화인 일부다처제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홍길동이 백소저와 조소저를 그의 아내들로 맞이하면서, 또 다른 적자와 서자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홍길동전이 아예 모순이 없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작품에서는 홍길동이 갑자기 병이 생겨서 일흔 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고 나오고 줄거리가 마무리 되지만, 길동이 죽고 세월이 지난 후, 그들 역시도 조선시대에서 온 사람들이고,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서 또 다른 적서차별이 충분히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만약 적서차별과 계급체제, 그리고 탐관오리의 횡포와 약탈에 진짜로 반발을 가지고 있어서 그 것을 없애고자 한 홍길동이었다면, 스스로가 율도국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이 반강제적이긴 하였으나, 그가 내린 병조판서의 벼슬을 잘 활용하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병조판서는 현시대의 군대의 우두머리인 국방부 장관과 같은 존재로, 홍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지 않아도, 충분히 탐관오리의 횡포와 약탈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적서차별과 같은 일에 있어서도 강연자리와 같은 곳에서 임금에게 안건으로 올려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소설 속의 홍길동과 같이 차별 받던 서자와 얼자들이 많았다. 이를 고려해 본다면, 그가 율도국의 왕이 되어 율도국을 다스리지 않아도 그가 원하고자 했던 일들을 충분히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율도국의 왕이 되는 것 역시도 그가 계급체계에 일환으로, 심지어는 그 계급체제의 또 하나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인데 이것도 홍길동이 원하고자 했던 이상과 그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백소저와 조소저가 그의 아내들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원하는 여자와 결혼하여,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율도국의 왕이 되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홍길동전에서는 나오지 않는 병조판서로서의 홍길동의 또 다른 모습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홍길동전의 시대 배경이 조선 세종인 만큼, 만약 소설 속의 홍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지 않고 병조판서로서의 모습으로 본인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일을 한다면, 홍길동 또한 충신으로서의 위상도 떨칠 수 있었을 것이고, 일이 좋게 풀려서 서얼을 더 빨리 등용한다면 세종 또한 더 어진 임금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소설이 전개 된다면, 보다 더 사실적으로 극 전개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실제 조선사회에서도 더 빨리 능력 있는 서얼들을 등용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홍길동전 속의 홍길동이 당대 사람들이 원했던 진정한 영웅이었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현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홍길동이라는 인물 또한 모순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 모순 역시도 당대의 사람들의 원했던 모습이지 않았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물론 홍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어 율도국을 질서 있게 다스리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그렇다고 하더라도 홍길동은 병조판서의 위치를 거절하고, 조선의 백성으로서의 모습도 거부하였다. 과연 홍길동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독후감/창작| 2018.12.10| 2페이지| 1,000원| 조회(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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