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실패 사례 보고서익명 SNS 서비스, “Secret”?과 목 명?담당교수?이 름?학 번?학 과1. 기업 선정 조건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장에 진출하였으나 위기관리와 장기적인 마케팅에 실패한 기업을 사례로 선정하려 하였고, 그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Secret(이하 시크릿)이라는 기업을 선정하였다.2. 기업 소개시크릿은 문자로 루머나 비밀스러운 고백 등을 유저들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의 앱으로, “Share with friends. Anonymously.”라는 표어를 내걸어 초기에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인들에게 언제나 가장 ‘핫’한 이슈는 루머와 익명성이고, 그를 잘 파악한 시크릿은 거기에다 기술의 발전으로 스마트폰 앱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시장 환경의 정확한 분석을 통해 진입에 성공하였다.한창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익명’ 바람이 불던 때, ‘시크릿(Secret)’이라는 익명 SNS가 등장하자마자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개발자들과 얼리 어댑터들은 눈길을 빼앗겼다. 페이스북처럼 실명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무차별한 사생활 노출을 야기하면서, 익명의 그늘로 숨기를 원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바일 메신저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크릿’은 익명 채팅방을 비롯해 수신한 메시지가 10초 뒤에 사라지는 기능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는 시장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하였다.3. 주력 사업시크릿은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출시됐다. 이 앱의 핵심은 ‘익명성’이다. 이용자의 스마트폰 주소록에 저장된 사람들을 익명으로 연결해준다. 이용자가 시크릿에 글을 게재하면, 주소록 지인들에게는 작성자가 ‘친구’ 또는 ‘친구의 친구’로 보인다. 댓글도 마찬가지다. 아이디나 이름이 표시되지 않고, 접속된 거주지의 도시나 주(州)가 적힌다. 이전까지 없던 소셜 앱에 대한 실리콘 밸리의 반응은 뜨거웠다. 뉴욕타임스(NYT)는 “시크릿이 출시된 지 5주 만에 정보기술 관계자들과 얼리 어댑터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라고 소개하기도 하였다. 시크릿의 인기는 페이스북이 30억 달러(약 3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인수 안을 제시하기도 한 서비스라는 것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 투자자들 가운데는 구글 벤처와 클라이너 퍼킨스 등 주요 벤처 투자사들도 포함됐다.핵심 이용자가 실리콘 밸리 관계자들이다보니, 게재된 글의 내용도 실리콘 밸리를 둘러싼 이야기가 많았다. 스타트업 기업들의 상장(IPO) 계획이나 자금 조달 소식부터,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대표경영자의 목격담까지 올라오기도 하니 가히 실리콘 밸리의 가장 핫한 SNS 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시크릿의 메신저 서비스의 특징은 주고받은 메시지를 저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받은 메시지가 10초 내에 사라지거나, 잘못 보낸 메시지를 삭제할 수 있다. 또 익명 채팅방을 열어 익명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4, 실패원인이 혁신적인 서비스가 실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는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와 장기 경영전략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스마트폰 앱 시장은 그 한계가 비교적 무한하고,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다는 점에서 큰 이점이 있다. 전 세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2020년에는 총 매출 1천억 달러(약 122조원)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인도, 동남아시아 같은 신흥시장의 앱 설치가 늘고 미국, 한국 같은 선진시장의 수익 점유율이 증가한 결과다. 모바일 전문 분석기업인 앱애니가 16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모바일 앱 시장의 전체 매출은 지난해 411억 달러에서 24% 성장한 509억 달러로 예측됐다. 이러한 매출 규모는 연평균 20%씩 성장해 2020년에는 1천 1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또한, 제약이 적으며 서비스의 관리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하지만, 한 해 수많은 스마트폰 앱 서비스기업이 창업하고, 사라진다. 시장의 규모가 큰 만큼 그 진입장벽이 낮아 창업의 초기에는 이점일 수 있으나, 경쟁자나 위기가 도래하였을 때 잘 극복하지 못하면 큰 위기가 되는 것이다.수요가 확실하지 않은 시장에 과다하게 투자하면, 유동성의 위기를 겪는 등 위험에 과다 노출될 수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처할만한 관리 능력 없이는 기업의 영속적인 번영을 이루기란 불가능에 가깝다.익명 SNS가 인기를 끄는 것은, 기존의 개방형 SNS 이용자들의 사생활 노출에 따른 피로도가 높기 때문이다. 흔히 ‘광장’으로 불리는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의 개방된 SNS들은 이용자의 정보가 노출되기 쉽다. 이런 서비스들의 경우 이용자의 ‘자취’가 기록되기 때문에 자유로운 소통을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때문에 좀 더 긴밀하고 자유로운 소통을 하고 싶은 이용자들의 욕구가 익명 SNS를 확산시킨 것이다. 하지만, 익명의 그늘을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근거가 없는 루머를 양산하거나 특정 인물을 공격하는 식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 벤처 투자자인 마크 서스터는 “익명성이 보장된 네트워크에서는 어떤 말이라도 다 할 수 있다”며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끔찍한 말들이 쏟아질 위험이 크다”라고 말했다. 악성 글로 인한 자살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앱 자체의 기술적 문제가 아닌,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위기에 시크릿은 큰 대책이나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양날의 검이었다. 시크릿이 사람들의 연애사와 직장 생활 등에 대한 사적인 상세 정보가 가득한 앱으로 한동안 많은 인기를 얻었던 만큼, 딱 그 인기만큼의 욕설과 폭력적인 내용으로 몸살을 앓고야 말았다.또 하나의 실패 원인은 장기 경영전략의 부재이다. 시크릿은 장기적인 기업 목표 및 경영철학의 부재로, 경영전략이 계속해서 수정되고 일관성이 저하됨에 따라 내리막을 걷게 되었다. 유저수가 줄어들고 이용률이 떨어짐에 따라 하락세를 보이던 시크릿은 연계서비스를 내걸었다. 2014년 7월, 페이스북과 연계해 독특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페이스북의 친구들이 작성한 비밀글을 볼 수 있는 내용의 업데이트였다. 그러나 페이스북의 어느 친구가 작성한 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대표적인 개방형 SNS였고, 기존의 서비스의 큰 개선 없이 기존에 존재하던 타 서비스에 종속되는 듯한 느낌 외에는 주지 못하였다. 그 후, 5개월이 지난 12월에는 앱의 디자인 요소가 빠지고 몇 가지 기능을 바꾸며 대대적으로 개편됐지만 일관성 없는 경영전략의 시행과 더불어 고객의 needs를 충족시켜주지 못하자 급기야 유사 서비스인 이크야크(Yik Yak)의 형편없는 버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5. 결론보통 스타트업들이 초기 자금 부족으로 문을 닫는 것과 달리, 시크릿의 폐쇄 원인은 '초심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과 음란물 게시, 허위정보 작성이라는 큰 문제가 시크릿의 역사에 있어 가장 큰 위기를 가져왔으나, 그를 극복할 구체적이고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업자 데이비드 바이토는 2015년 4월 29일, 자신의 블로그에 1년 7개월 만에 서비스의 막을 내린다는 글을 게시하였다. 그는 "이번 결정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이었으며, 나 역시 이 결정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이제 시크릿은 초기 우리가 가졌던 비전을 더 이상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익명성을 강조한 구조 때문에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 하나만으로 창업하고 인기를 누렸으나, 반대로 익명성 뒤에 숨은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음란물 게시, 악성 루머 등의 장이 될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앙아시아는 세계사에서 가장 화려한 역사의 장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중앙아시아는 국가라기보다 도시와 부족으로 모여 이루어진 곳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역사를 돌이켜보면 여러 유목민족들이 하나 둘 모여 집단생활이 시작되었고 이후에 이들이 토착민으로 정착생활을 하게 된 것이 크다. 이렇게 유목민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는 16세기 말 제정러시아의 식민지국으로 예속되어 본격적인 다민족 집단 지역으로 형성되었다.중앙아시아 지역은 과거 약 200년간 지정학적으로 다른 지역에 입지한 국가에 의해 지배당해 왔다. 또 그렇기 때문에 세계무역의 주류에서 소외되었다. 하지만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에 충돌"에서 미래 세계에는 문명 간의 충돌도 있지만 자원 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듯이, 이제 막 개방된 중앙아시아와 카스피 해를 중심으로 두 지역에 대단한 원유 매장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원유나 가스와 같은 자원의 개발은 러시아, 미국, 중국, 터키, 이란, 유럽, 일본, 한국 등 세계 각국의 관심사로 이해관계를 가진 각축을 벌이게 되는 무대가 되었다. 또, 군사적으로도 세계열강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중앙아시아는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몰락 이후 세계적인 주요 자원들의 생산지역으로, 또 지정학적인 경쟁관계의 핵심지역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중앙아시아 지역은 특정 환경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 동질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 서부지역의 절반이 이슬람교를 숭배하고, 대부분 서남아시아로 분류된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몽골과 티베트인들은 전통적으로 불교를 숭배하고 있다. 티베트는 문화적으로 남부아시아, 동부아시아와 밀접하며, 몽골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밀접하다. 하지만 티베트와 몽골은 세계의 다른 어떤 지역으로 잘 분류되지 않고 그 나라 자체의 문화적 특성으로 분류되고는 한다.또 문화적 동질성이 약한 것에 대한 사례로서 중앙아시아 서부 지역은 러시아와 깊은 관계가 있고, 동부 지역은 중국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흔히 알고 있지만, 사실 서부 지역에서 러시아 문화의 영향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소비에트연합 통치하에서 러시아어가 중앙아시아 서부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었고, 공용어와 고등교육언어로 사용되기도 해 중앙아시아의 사람들이 일정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러시아어를 필수로 잘 해야 했을 정도로 러시아어의 영향력이 컸었지만 오늘날에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러시아로 이주했고,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였다.역사적으로 살펴볼 때에 확실히 중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격리되어있어서 다른 글로벌 문화라든가 세계화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시대가 변하면서 영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중앙아시아 내에서 미국 문화의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는 현상은 중앙아시아가 글로벌 문화에서 고립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예로 컴퓨터 기술을 가지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가치가 점차 높아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우선 다른 세계와의 연계에 대해 말하는 데에 기본 바탕으로서,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관계와 강대국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내 정치체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권위주의 내지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지속적인 정치 불안으로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내부와 외부의 적에 대응하여 양면으로 견제와 균형을 취하는 소위 '전방위 균형 전략'을 택하고 있다. 즉 권력자가 국가 이익이 아닌 체제안정과 개인의 권력강화를 목적으로 내부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외세와 결탁하는 제3세계 특유의 현실주의적 대외정책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이러한 현상이 가능하게 된 것은 정치구조가 권위주의 독재체제이고 그 역사 정치적 배경에는 씨족정치라는 전근대적 정치구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의 정치체제는 이행론이 말하는 독재체제의 붕괴에서 민주화로 발전하는 것이 아닌, 안정적으로 비민주적인 행태를 더 보인다. 형식적으로 선거제도를 선택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권위주의 독재체제로 시민사회나 언론, 사법부, 입법부는 행정부와 권력자를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중앙아시아 권력자들은 역사적 유산과 문화에 적합한 민주주의라는 주권민주주의를 주장하나, 2000년 이후 민주주의는 큰 진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소비에트 때의 유산과 전통적 씨족정치 때문이다. 구소련이 해체된 이후, 국가의 권력은 공산당 엘리트 그룹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자원 분배는 국가와 관료가 독점하고 있었으나, 소비에트 체제의 해체와 동시에 국가 행정이 마비되면서 권력자 집단이 국가 경제와 관료체제에 연결되었다. 이는 곧 개인의 권력 유지와 체제 안정, 국가 안보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는 '제도적 노마드 현상'을 초래하였고, 공식적 조직보다 비공식적, 사적 그룹에 소속감이 높은 권위주의 체제를 낳게 된 것이다. 이는 계속해서 번져나가고 이어져오면서 하나의 문화처럼 작용하였다.다시 말해, 정치지도자가 안정적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해 씨족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탈씨족 정치화가 일어나고 있는 경향이 있으나, 여전히 초대통령제하에서도 씨족의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정치,사회 변화의 향배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씨족이 혈족이냐 지역이냐에 따라서 씨족정치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며,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경우 씨족정치와 더불어 자원으로 인한 국가의 부를 씨족 경쟁을 완화하고 권력자의 힘을 증대시키는 데 사용하였기 때문에 시장 경제의 성장이나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씨족 중심의 네트워크가 후견되며 지속적으로 권력구조를 장악하는 양상을 보여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가 얼마나 난항을 겪을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이와 더불어서 중앙아시아는 마약 문제가 크게 부상하고 있는데, 그 큰 예인 타지키스탄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이 큰 요인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분쟁의 평화적 해결 없이는 타지키스탄의 마약 문제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불가능할 것 같다. 타지키스탄 내의 마약 재배나 생산보다 아프가니스탄 산 마약이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타지키스탄이 그 중개국 역할을 도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라는 대륙에는, 국제적으로 완전히 인정받아 국제 연합의 회원 지위를 가진 40개 이상의 국가가 존재한다. 이 많은 나라들을 ‘아시아’라는 이름 아래에 묶어두기에는 다양한 국가만큼이나 다른 곳과 구별되는 다양한 문화, 종교, 사회, 지리적 특성이 존재한다. 그 수많은 특징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어떻게 살펴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각 나라의 이름난 지역에 대해 알아보았다.세계화, 정보화시대에 발맞추어 각국각지의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다른 나라의 특성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는 한다. 정보를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먼 나라의 사람들에게까지 이름이 난 곳은 그 나라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는 증거로 작용하고, 이는 다시 그곳이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 보고서에서는 각 나라들의 명소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먼 옛날 고대민족들의 유적,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휴양지, 자국의 독자적인 문화를 활용한 관광지 등 각각의 명소에는 유명하게 된 이유가 존재하기에 그 명소에 딸린 이야기도 간략히 정리해보았다.네팔1) 스와얌부나트 사원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한, 흰 돔과 황금빛 첨탑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약 2,000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네팔을 대표하는 불교 성지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소로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2) 파슈파티나트바그마티 강에 인접한 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聖地)이며,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네팔의 힌두교도들은 바그마티 강을 성스럽게 여기며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바그마티 강둑에 늘어선 화장터에서는 매일 시신이 화장되고, 타고 남은 재는 고인의 유품과 함께 강물에 흘려보낸다.3) 더르바르 광장중세에 건립된 카트만두의 주요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광장이다. 17세기 말라 왕조 시대에 건립된 옛 왕궁을 중심으로, 독특한 구조와 양식이 돋보이는들이 모여든다. 이 시기에 방문한다면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행렬을 이루는 장관을 볼 수 있다.2) 마스지드 네가라이슬람에 대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신앙심을 엿 볼 수 있는 사원이다. 푸른 지붕과 73m 높이의 첨탑이 우뚝 솟은 모스로 8,000여 명의 무슬림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다. 5년여의 공사 기간 동안 약 천만 달러의 비용을 투자해 1965년 문을 열었다.3) 마수리 왕녀의 묘말레이시아 공주였던 마수리 공주가 잠들어 있는 묘이다. 마수리 공주는 부정(不貞)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를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설에 의하면 처형 당시 그녀는 자신의 무죄의 증거로 흰 피를 흘렸다고 한다. 그녀의 묘는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전통 의식을 치르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4) 구콩시 사원‘콩시’란 사원 역할을 겸한 중국의 전통 가옥으로 동족 혹은 씨족 단위의 중국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집을 일컫는다. 구 콩시 즉, 구씨 사원은 남중국에서 이민온 자들인 구씨 혈족이 건립한 가옥으로 페낭에서 가장 정교하고 장대한 씨족 사원이다. 용산당(龍山當)이라 부르기도 하며 화려한 목재 조각, 금박 장식, 색을 입힌 기와, 불사조 신상으로도 유명하다.5) 플라우 다양 분팅랑카위의 남쪽에 위치한 풀라우 다양 분팅은 아이를 가진 여자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임산부 섬’이라고도 불린다.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왕자와 사랑에 빠진 한 요정공주가 왕자의 아이를 낳지만 아이는 곧 죽게 된다. 이를 슬퍼한 공주는 민물호수에 아이를 묻고 이 호수에 죽은 아이를 위한 위로와 염원을 담아 축복을 했다. 이후부터 호수에서 목욕을 하면 아이를 갖는다는 전설이 내려오게 되었다.몰디브1) 말레 이슬람센터말레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황금빛 웅장한 돔은 말레 시내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띈다. 높이 40m로 말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984년 문을 열었고 말레이시아의 건축가가 설계하고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주변국의 도움으로 지어졌 1개위에 불당을 얹었다고 하여 일주사가 되었다. 1049년에 지은 일주사는 연못 한가운데 있었지만 계단으로 땅과 이어져 있다. 태종이 창건한 고찰로 가파른 사다리를 올라야 내부를 볼 수 있다. 태종이 연꽃 위에서 아이를 안은 관음보살을 보았다고 해 연꽃 모양을 본떠 일주사를 만들었다고 한다.부탄1) 탁상사원탁상 사원은 1998년 화재 이후 복원된 열두 개의 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우 좁은 공간에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벽은 하얗게 회칠하고 지붕에는 금박을 입힌 사원들은 거대한 바윗덩어리 아래 절벽에 달라붙어 있다. 탁상 사원은 수많은 조상, 회화,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가장 성스러운 장소는 파드마삼바바가 명상을 했다는 동굴이다.2) 파로밸리파로 강은 북쪽에 있는 7,000미터 봉우리에서 시작해 계곡을 지난다. 사람들은 계단식 지형으로 강물을 끌어와 벼와 같은 작물을 재배한다. 부탄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크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창문, 문, 벽들을 화려한 색으로 칠하고 꽃, 동물, 종교적인 무늬를 그려 넣는다. 가장 긴 계곡 위의 절벽에는 사원인 파로 종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다.3) 치미라캉 사원치미라캉은 드룩파 쿤리와 관련된 대표적 사원 가운데 하나다. 드룩파 쿤리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마를 제압했는데 개의 모습으로 변신해 도망가던 악마를 잡아 땅속에 가두고 그 위에 탑을 세워 다시는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사촌이 탑 옆에 세운 사원이 바로 치미라캉이다. 이렇게 해서 이 사원은 ‘개가 없는 사원’이 됐다.4) 도출라 고개도출라가 유명한 이유는 손꼽히는 히말라야 조망대이기 때문이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부탄의 최고봉인 강카푼숨(7564m)을 비롯해 히말라야 설산의 장대한 도열을 이곳서 한 눈에 맞이할 수 있다.5) 푸나카 종푸나카종의 외관은 그야말로 천상의 궁전인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푸나카종은 가로 180m, 세로 72m에 달하는 거대한 성이자 요새이고 사원이다. 외벽의 아래층엔 창문이나 출입구가 없이 브라(Abra)라고 불리는 수상 택시나, 작은 크루즈 선, 목선들이 오가며 짐을 싣거나 내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저렴한 수상 택시를 이용해 크릭을 건너는 승객이나 관광객들도 여전히 많다.4) 금시장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금시장의 유명세 때문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 지역 구석구석에 이르고 있지만, 금시장에 모여드는 인파는 특히 대단하다. ‘Dubai, City of Gold’라고 쓰인 아랍 양식의 수수한 나무문을 지나면 그 다음부터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금빛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한다.5) 주메이라 모스크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이슬람 회교사원인 주메이라 모스크는 장엄한 현대 이슬람 건축물의 전형이다. 중세 파티미드(Fatimid) 전통에 따라 석재로 세워진 이 회교 사원은 한 쌍의 뾰족탑과 장엄한 돔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건물이다. 주메이라 모스크는 섬세한 조명을 받아 그 예술성을 드러내는 야간 경관이 특히 매력적이다.아르메니아1) 마테나다란마테나다란은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있는 고문서관이다. 정식 명칭은 아르메니아 문자 설립자 메스로프 마슈토츠의 이름을 딴 메스로프 마슈토츠 고문서 협회이다. 현재 약 30만개의 원고를 관리하고 있다. 고문서의 수는 자료에 따라 제각각이며, 아직 확인되지 않은 귀중한 자료들이 다수 존재한다.2) 카푸이트 모스크카푸이트 모스크(푸른 모스크)는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위치한 18세기 시아 모스크이다. 소련 통치 시기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는 모스크가 아닌 아르메니아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아르메니아의 독립 후, 모스크는 이란 정부의 도움을 받아 재건되었으며 다시 모크스의 기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모스크는 아르메니아에서 현재 모스크로 사용되는 유일한 모스크이다.3) 아라랏 산노아의 방주가 떠내려가다 멈추었다는 전설이 있는 휴화산이다. 아르메니아 신화에서는 아라랏 산이 하나님의 집으로 묘사되며, 1991년에는 아르메니아 공화국 및 아르메니아의 민족주의와 민족통일주의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지정되었다 또는 1,000개의 기둥도시라고도 불린다.우즈베키스탄1) 타슈켄트 지진 기념비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 대지진의 진원지로 1866년, 1868년, 1886년, 1924년, 1966년 다섯 차례 대지진이 일어났다. 특히 1966년 대지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많은 타슈켄트를 폐허로 만들었다.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기념비에는 지진이 일어났던 시간과 날짜가 새겨져 있다. 기념비 옆에는 대지진 당시 목숨을 걸고 어린이와 여성을 구한 남성의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2) 바라크칸 메드레세1531년에 세워진 이슬람 신학교로 몇 차례에 걸쳐 개축했다. 현재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공화국 지역의 이슬람교 본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라크칸 메드레세 안에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에 관련자료와 고문서, 코란, 전설의 ‘샤나메'와 ‘이븐 시나’ 에 관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샤나메는 가즈나의 술탄 마흐무드를 위해 쓴 페르시아의 민족 서사시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시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 작품으로 꼽힌다.3) 바자르바자르는 지붕이 덮인 시장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재래식 시장과 비슷하다. 타슈켄트에는 여러 개의 바자르가 있으며, 우리나라의 시장과 마찬가지로 타슈켄트 시민들의 생활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삶의 현장이다. 바자르에서 상인들과 벌이는 흥정도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다.4) 보이순우즈베키스탄 남동부에 있는 보이순(Boysun) 지역은 소아시아에서 인도로 가는 경로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 지역이다. 이 지역은 실크로드의 중요성이 줄어들고 중앙아시아에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고립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이슬람 전래 이전의 주술 신앙, 조로아스터교, 불교의 전통 뿐 아니라 이슬람교의 전통까지 고대 전통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5) 레기스탄 광장‘레기스탄’은 페르시아어로 ‘모래땅’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중앙아시아 도시들에서 시 중심부에 있는 광장을 지칭했는데, 지금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만 그 이름이 남아 있다. 사마르칸트의 레.
버마라는 이름이 생소했다. 검색을 해보면서 ‘미얀마’라는 것을 알았는데, 미얀마라는 국명은 군부정권에서 지은 것으로 실제적으로 버마는 미얀마의 가장 큰 종족집단이다. 인구비율로 보아도 과반수를 훨씬 넘기며 최대 68%에 달한다. 버마족은 공식적으로 9개의 소수종족으로 분화되어 있다. 이들은 5세기에서 8세기 사이 중국 윈난성 지방에서 버마 북부로 진입해 왔고 9세기 이래로 미얀마 중앙에 진출했는데 17세기 이후 미얀마 전체를 주도하는 종족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들이 쓰는 버마어가 현재 미얀마의 공식 언어이다. 때문에 이 보고서에서는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해 쓰기로 한다. 버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내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민주화 초기 단계에 들어선 현재까지 완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유엔 총회는 버마에서 계속되는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수차례 채택했으며, 버마의 군사정권이 특히 소수민족의 “인권과 기본 자유에 대한 조직적인 침해행위들”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또 버마의 군 지도부가 민간인을 겨냥한 군사작전을 중단할 것과 어린이 병사들에 대한 학대와 신병모집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 국제 법률 전문가들이 유엔에 버마 군사정부의 인권 유린 상황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과대학원 인권연구소가 2009년 발표한 보고서는 버마 군정이 지난 몇 년 동안 전쟁범죄와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유엔이 확보한 자료에 의하면 버마 군정은 여러 잔악 행위를 저질렀다며, 3천 개 마을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민간인들을 약식 판결로 처형하며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성범죄와 고문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과거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의 인권 유린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던 것처럼 버마에 대해서도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버마 정부는 자유화와 함께 내전의 종전을 자신하고 있지만 종족문제는 민주화와 함께 혹은 민주주의보다 더 어려운 정치적 과제가 될 것이다. 식민 지배자에 의해 동원된 버마 종족 문제는 1949년 독립부터 아웅산 장군이 주도한 뺑롱협약을 통해 ‘준 연방제’의 구성으로 해결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버마 민주화의 과제는 종족갈등의 해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1988년부터 버마는 아웅산 장군을 중심으로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민주적 선거결과를 부정하는 군부의 무력, 그리고 그 쿠데타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버마의 민주주의는 거의 한 세대 가까이 미루어져 왔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서야 희망이 나타났다. 군부가 장기간 끌어오던 민정이양의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헌법이 없던 통치는 막을 내렸다. 아직도 견고한 군부지배에도 불구하고 기존 민주주의 이행 이론들이 분류했던 “위로부터의 이행(transformation)”에 가까운 현상들이 목도되고 있다.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 해제, 야당의 보궐 선거참여와 승리, 언론 자유화, 외부세계와의 관계 개선 등 이행론에서 일컫는 완전한 이행 이전의 “자유화” 국면이 현실적으로 등장하고 있다.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한 민족 구성을 지니고 있는 미얀마의 종족갈등은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일시적인 휴전협정은 끊임없이 이뤄지고 또 깨져왔으며 그 사이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한 난민문제를 만들어 왔다. 최근의 유화 국면도 체계 적인 종족갈등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얀마의 종족갈등은 식민시대 이전부터 내재해온 것으로 식민지배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동원되었고 독립 이후에는 하나의 통합된 국가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그로부터 분리해 나가려는 세력들 사이의 내전으로 나아갔다.미얀마 내 종족갈등을 조정하려는 시도는 독립 후 아웅산이 주도한 뺑롱협상을 통해 처음 시도되었다. 유사 연방제와 종족자치의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한 헌정질서를 제기했다. 그러나 불안전한 합의와 헌정설계, 아웅산의 암살, 버마족의 군부장악, 허약한 민주주의와 민간정부의 몰락, 군부의 버마족 중심주의와 강압적 통합정책은 종족 공존의 정치를 무력화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도정에서 종족 갈등은 매우 중요한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권력 공유라는 특성상 종족갈등의 해결은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태생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민주주의 이행기에는 권위주의 체제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 민주화 이행이 이루어져도 버마족에게 제한된 민주주의는 휘발성 높은 종족정치의 동력을 통해 민주주의 자체를 쉽게 위협에 빠트릴 것이다. 지금과 같은 중앙과 개별 종족간의 단기적인 1:1 협상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다.미얀마의 종족 구성의 다양성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양상에 속한다. 언어학과 인류학의 기준에 따라 몇 가지로 크게 묶을 수도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종족의 수만 해도 135개에 다다르며 여기에 언어를 추가하며 최대 242개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와 더불어 버마족 중심의 중앙정부에 의해 무시되는 종족집단도 많으며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적 구분이 얽혀 있기도 하다.버마의 지리적 특성을 보자면, 중앙의 평야지역, 분지, 삼각주 일대는 버마족이 중심이 된 여섯 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누어져 있다. 한편 인도-중국의 국경을 낀 동서 양측의 산악지대는 일곱 개의 주(state)로 나누어져 있는데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다.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주 내부에는 더 작은 소수민족들이 자치권을 향유하는 각각 다섯 개와 한 개의 자치지대(self-administered zone)와 자치구(self-administered division)가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지역과 행정 구분, 심지어 명칭도 실제 종족 구분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혈연관계나 문화적 연관이 거의 없는 종족들을 주변의 주요 종족 속에 포함시켜 국가 구성단위 안에서는 구분 없이 동일하게 묶어 놓은 경우가 더 많다. 주 내부에서 예외적으로 자치를 얻은 특정지역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한 곳에 대한 정부의 형식적인 배려에 불과하다.20세기 중반 이후 구식민지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종족갈등은 제국주의의 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식민지배는 종족갈등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식민지배자의 경계선 긋기는 탈식민지 종족분규의 지리적 토대가 되었고, 식민 지배세력은 피지배민족을 인위적 이동 시키며 사회적 충격을 야기하였으며 식민지배 자체는 치명적인 유산 중 하나로 분리통치(divide and rule)로 인한 식민사회 내부의 갈등을 남겼다. 이 전략은 전 세계 식민지에서 나타났으며 복잡한 다종족 사회의 경우 더욱 두드러졌다.다시 말해, 다수종족은 식민지배에 협조했던 소수종족을 식민지배자의 앞잡이로 보고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게 된다. 나아가 자신들이 식민 이전처럼 독립국가의 주류 집단이 되고 독립 국가의 정체성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믿게 된다. 반면 식민지배에 협력한 소수종족은 다수파에 비해 식민지배자의 우대 정책으로 교육과 경험 등 인적 자원의 질에서 상당히 앞선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다수파의 적대감에 직면하여 일정한 물리력을 갖추는 게 기득권을 지키거나 최소한 생존권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식민지 이전의 피지배 상태로 돌아가리라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게 된다. 식민지 지배는 종족갈등이 벌어지는 환경적 요소(국경선, 국내내부 경계선, 이주민)를 만들어내고, 종족의 정체성을 정치적 갈등의 자원으로 발견하고 동원하게 하는 구조적 맥락 (간접통치, 분할통치, 차별통치)을 가꾸어 냄으로써 탈 식민사회에서 가장 폭발적 성격을 지닌 정치적 장애물을 형성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버마의 민족간 갈등과 인권유린은 그 극단 중의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미얀마 정치는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변화는 2007년“샤프란 혁명”이후 군부가 점진적인 유화 조치를 취하면서 시작되었다. 버마 새 정부의 테인 세인 대통령은 아웅산 수치와 대화를 시도하였고, 오랜 비타협의 노선에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었다.이런 미얀마 정권의 변화에 놀란 국제사회는 버마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미얀마라고 부르던 국가명칭을 버마로 다시 바꿔 부르며 제제에 앞장섰던 미국이 데릭 미첼(D. Michell)을 특사로 임명하여 새 정부와 대화를 시작했다. 1955년 이후 미 국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힐러리 클린턴이 미얀마를 공식 방문하기도 했다. 이어 2011년 말부터 영국의 카메론 수상, 유럽연합 대표단이 미얀마를 방문했고 2012년 유럽연합은 양곤에 대표부를 개설했으며 대부분의 제재조항의 집행을 유보했다. 2012년 11월에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하여 처음으로 “미얀마”라는 군사정권이 정한 국호를 언급
기후는 날이 갈수록 예측하지 못하게 변화하고 있다. 지난 세기 동안 지구의 평균온도는 약 0.74℃ 상승하였으며, 그 결과 지구 평균 해수면은 1961년 이후 연간 1.8㎜, 1993년 이후에는 연간 3.1㎜씩 높아졌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선진국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를 지목하였다. 만일에 지금까지와 같은 현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 없이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존의 다소비형 개발이 지속된다면, 지구 평균온도 및 해수면의 상승은 더욱 심각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 현상에 대해서 책임이 거의 없는 개발도상국들이 지리적으로 태풍, 사막화, 해수면 상승에 취약한 지역에 다수 위치해 있는데다, 선진국과는 달리 자연재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나 재정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를 불평등하게 받고 있는 기후불의(Climate Injustice)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제적 논의를 더욱더 어렵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에 따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증가로 정부간 협의체를 중심으로 국제적 기후변화 예측에 대한 연구와 그 자연재해를 줄이기 위한 논의들이 활발하다. 특히 방글라데시와 몰디브는 그러한 재해에 취약하게 노출되어있다. 때문에 재해의 유형을 파악하고, 국제적인 원조를 받는 것이 최선이며, 선진국들은 그러한 원조에 대해 충분한 책임을 가져야 마땅하다.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우리가 익히 아는 큰 국가들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를 달며 기후변화 대응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반면에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재해에 취약한 일부 개발도상국 등에서는 기후의 변화와 환경적 재난에 대한 연구는 물론 재해에 대한 인식과 대안조차 미흡하게 형성되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같은 강도의 재해가 일어나더라도 개발도상국의 인명피해 수준이 선진국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개발도상국은 특히나 해안지역에서 극단적인 재해와 그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경험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인식과 예방 교육, 지리적 분석 등이 미흡해 적응능력이 현저히 낮다. 그러한 사정과는 관계없이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는 갈수록 위협적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재해의 피해가 이전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이에 대해 IPCC는 4차 평가보고서에서 기후변화의 영향과 빈곤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으며, 또한 빈곤감소를 위한 노력은 기후변화에 의해 퇴색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연구 결과물들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선진국들의 지원을 촉구하였으며, 개발도상국 관계자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아울러, 빈곤탈출을 위한 경제개발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요구와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 모두를 해결하기 위한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지원전략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으며, 구체적으로는 개발도상국 국가개발에 대한 기후변화 이슈의 통합화 또는 주류화(Integrating/Mainstreaming climate change into development co-operation)가 요구되었다.우선은 재해의 유형과 그 위험 정도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나라와 같은, 상대적으로 방글라데시보다 부유한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으로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본다.방글라데시는 갠지스 강, 브라마푸트라 강, 메그나 강의 복합 삼각주 지역에 위치하고, 국토의 대부분이 저지대에 위치하며 열대성 저기압과 함께 해일으로 인한 피해를 빈번하게 겪고 있다. 또 강력한 저기압과 강풍, 밀물 때의 해일이 결합하면 해안가뿐만 아니라 내륙 지역까지 피해가 극심하게 확산된다. 특히 대다수의 인구가 비옥한 삼각주 지역과 해안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해수면 상승은 곧 해수침투와 연관되고 그와 관련된 복합적 재해에 있어 매우 심각한 위험에 놓인 상태이다.독일의 비영리기관 저먼 워치에서 약 20년 간 동안 발생한 자연재해 피해를 분석하여 발표한 '세계 기후위험지수'에 의하면 방글라데시는 높은 인구밀도, 잦은 홍수, 태풍 및 범람, 그리고 자연재해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기반 시설 및 역량의 부족 등으로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 그 때문에 최상위 재해위험국가로 선정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주요 재해는 폭풍과 홍수인데, 1950년부터 2011년까지 폭풍과 홍수는 총 230회에 육박해 전체 자연재해 중 79%나 차지하였다.또 NAPA(National Adaptation Programme of Action)라는 기관에서는 GCM(General Circulation Model) 프로젝션을 수정해 2100년까지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분석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에 의해 방글라데시의 해안 대부분과 내륙 안측까지 토지가 손실될 것으로 예측되었다.우리나라 외교통상부가 2007년에 수립한 대 방글라데시 CAS는 방글라데시의 정치, 경제, 사회현황 등 개발환경과 개발과제, 원조동향, 우리나라의 지원현황, 지원전략, 이행평가 및 위험관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방글라데시의 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 정리한 개발환경 파트는 방글라데시의 심각한 기후변화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잦은 홍수와 취약한 자연재해 상황을 각각 1회씩 만 언급하는 데에 그쳐, 국가 현황의 기초 분석에서부터 방글라데시의 기후변화 이슈가 통합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방글라데시의 기후변화와 빈곤과의 연계성에 대한 분석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또한 CAS 내용 중 특히 핵심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지원전략의 원조목적, 지원목표, 기본방향 항목에는 기후변화 이슈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구체적인 지원 분야 선정 부분에서는 기후변화 완화와 관련된 이슈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반면, 수자원개발, 관개수로개선 등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관련된 내용이 간접적으로만 언급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행평가 및 위험관리부분에서는 방글라데시의 MDGs 달성을 저해하는 주요 장애 요인 중 하나로서 자연재해를 꼽으면서, 방글라데시에 대한 지원 시 자연재해 요소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관리해야 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글라데시가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군임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대 방글라데시 CAS는 종합적으로 기후변화 이슈의 통합이 아직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이에 참고할 사항으로 세계은행의 CAS를 들 수 있다. 방글라데시를 지원하는 데에 참고할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세계은행은 2011년에서 2014년 기간(FY11-14) 중에 방글라데시에 대한 지원의 수행 시 참조할 대 방글라데시 CAS를 2010년에 수립, 발표하였다. CAS의 수립을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한 이해관계자들의 대화와 설문조사를 통해 세계은행이 중점을 두어야 할 우선순위 분야와 유의해야할 이슈들을 도출하였다. 이해관계자들의 컨설팅 결과, 세계은행이 자연재해에 있어 방글라데시를 지원할 시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우선순위로서 다음의 번호를 매긴 분야들이 도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