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1,2권 요약1. 제1 권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음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옳게 규정해왔다. 그러나 여러 목적들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것들의 경우는 그 목적은 활동(energia)이며 다른 것들의 경우에는 어떤 성과물(ergon)이기 때문이다.행위, 기예, 학문들에는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목적들 또한 많게 된다. 모든 경우들에 있어서 총기획적인것의 목적이 그것 아래에 놓이는 다른 모든 목적들보다 더 선택할만한 것이다.이 말은 '무한 소급'을 막기 위해 최고선이 있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행위될 수 있는 것들(prakton)'의 목적에 있어서 이것은 그 자체 때문에 바라고, 다른 것들은 이것 때문에 바라는 것이라면, 또 모든 것을 다른 것 때문에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이 좋음이며 최상의 좋음이다.그것은 으뜸가는 학문, 가장 총기획적인 학문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학이 바로 그러한 학문이다. 왜냐하면 폴리스 안에 어떤 학문이 있어야만 하는지, 또 각각의 시민들이 어떤 종류의 학문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를 정치학이 규정하기 때문이다. 또 정치학은 나머지 실천적인 학문들을 이용하면서, 더 나아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고 무엇을 삼가야만 하는지를 입법하기에 그것은 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함할 것이며, 따라서 정치학의 목적은 '인간적인 좋음'일 것이다.좋음들은 가변성을 지닌다. 따라서 그 대강에 있어서 개략적으로 참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수학 같은 학문은 딱 맞게 답을 낼 수 있지만 윤리와 정치같은 인간 사회와 관련된 학문은 복잡하기 때문에 딱 맞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라며 개략적으로 추론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젊은이는 정치학에 적합한 수강자가 아니다. 정치학의 논의는 인생의 여러 행위들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다. 즉 정치학은 실천과 관련된 학문이고, 이는 훈련을 통해 습관화가 된-이성에 따라 자신들의 욕구를 이끌고 실행하는-사 존재하며, 이것이 이 모든 좋음들이 좋음이게끔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번 장에서 모든 의견을 검토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논의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가장 멀리 퍼져 있는 주도적인 의견들이나 일리 있는 의견들-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행복과 관련된 세 가지 삶의 유형은 향락적 삶, 정치적 삶, 관조적 삶이 있다. 향락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짐승도 향락적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명예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명예는 피상적이다. 명예는 명예를 받는 사람보다 수여하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즉 자족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행복은 자족적이다.사람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자신의 탁월성을 근거로 명예를 얻고자 한다. 이들은 어쩌면 탁월성이 정치적 삶이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탁월성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 또한 불완전하다. 마지막으로 관조적 삶이 있으나, 1권에서는 설명을 하지 않고 10권에서 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의 이데아에 관해 플라톤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플라톤은 좋음의 이데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동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플라톤과 입장을 달리 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하나의 이데아에 따르는 것들에는 하나의 학문만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범주 밑에 여러 학문이 관계 된다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의견을 보충한다.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자체'나 '인간'모두 인간인 한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동안 하얀 것이라고 해서 잠깐 동안만 하얀 것보다 더 하얀 것이 아니듯 좋음 자체나 좋음 역시 좋음인 한에서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좋음의 이데아에 대해서 비판한다. 그리고 좋음의 이데아가 있다면, 좋음에 만일 행위에 의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목적이 하나 있다면 이것이 행위에 의해 성취할 수 있는 좋음일 것이며, 만약 목적이 하나 이상이하면 이것들이 행위에 의해 성취할 수 있는 좋음일 것이다.목적들은 명백히 여럿인 것으로 보이고, 모든 목적이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상의 좋음은 분명 완전한 것이다. 이 완전한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고, 완전한 것이 여러 개라면 그 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것은 그 자체로 추구되는 것이지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는 않는다. 그 자체로 선택될 뿐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일이 없는 것을 단적으로 완전한 것이라고 하고 행복이 이렇게 단적으로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행복은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지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완전한 좋음은 자족적인 것이다. 이는 혼자만을 위한 자족성이 아니라 부모, 자식, 아내와 친구, 동료 시민들을 위한 자족성이다. 인간은 본성상 폴리스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족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삶을 선택할만한 것으로 만들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자족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기능과 연관지어 설명을 한다.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은 이성(logos)을 가진 것의 실천적 삶이다.좋음들은 통상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왔다. 외적인 좋음, 영혼과 관계된 좋음, 육체와 관계된 좋음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에 관계된 좋음이 가장 진정하고 으뜸가는 좋음이라고 말하고, '행위와 영혼의 활동'을 영혼에 관계되는 좋음으로 규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행복을 탁월성이라 하는 사람들과 부합한다. 그 중에서도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을 이야기 한다.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사람은 가장 멋있고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경기에 직접 참가한 사람들이라고 예시를 드는데, 탁월성을 가지고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좋음을 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 삶은 행운 같은 것들을 추가적으로 필요로 할 뿐이지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행복에 결정적인 것은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고 그 반대의 활동은 불행에 결정적이다. 인간적인 성취들 중에서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은 없다. 행복한 사람은 안정성을 갖게 될 것이고 일생 내내 행복한 사람으로 살 것이다.탁월성에 따르는 활동이 삶에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지극히 복된 사람들 중 누구도 비참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운들을 품위 있게 견뎌 낼 것이며, 현존하는 것으로부터 언제나 가장 훌륭한 것들을 행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훌륭한 장군은 현존하는 부대를 전략적으로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고, 좋은 제화공은 주어진 가죽으로 가장 훌륭한 구두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하면 불행이 닥친다 하더라도 행복한 사람은 결코 비참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다채롭게 변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며, 쉽게 변할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어떤 좋음이나 그 반대의 것에 참여할 수 있는가? 무언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을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거나 이런 종류의 어떤 다른 일을 만들어 낼 성질의 것도 아니며, 그럴 정도도 아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오히려 명예로운 것인지에 관하여 논의한다. 칭찬은 최고의 것들에 관련되지 않는다. 누구도 정의로움을 칭찬하듯이 행복을 칭찬하지는 않고, 칭찬받는 어떤 것보다 더 신적인 것이며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지극히 복된 것'이라고 부른다. 행복은 명예로우며 완전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영혼의 한 부분은 '이성이 없는' 부분이지만, 다른 한 부분은 '이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이성이 없는 부분 중 한 부분은 공통적이며 식물적이다. 이는 영양과 성장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능력의 탁월성은 모든 생물에 공통적인 것이지 특별히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다른 어떤 본성여 말하고 있다. 탁월성은 우선 지적 탁월성과 성격적 탁월성으로 나눌 수 있다. 지적 탁월성은 그 기원과 성장을 주로 가르침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성격적 탁월성은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을 중요하게 여긴 철학자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성격적 탁월성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이야기 하고 있다.성격적 탁월성들 중 어떤 것도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돌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움직이게끔 되어 있기에 위로 움직이도록 습관을 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격적 탁월성들은 본성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본성에 반하여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본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습관을 통해 완성된다. 이는 본성은 결정적이지 않고, 어떤 습관을 들었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러한 탁월성에 대한 논의는 다른 논의들처럼 이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탐구 하는 것이다. 어떻게 행위 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인데, 일단 올바른 이성에 따라 행위 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이러한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 모자람이나 지나침으로 말미암아 파괴되게끔 되어 있는데, 체력이나 건강의 경우에서 지나친 운동이나 운동 부족은 모두 체력을 파괴하고, 너무 많이 먹고 마시는 것이나, 너무 적게 먹고 마시는 것 모두 건강을 해친다.반면 적당한 양은 건강을 산출해 내고 증진시키며 보존한다. 절제와 용기, 탁월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무슨 일이든 회피하고 두려워하며 어떤 자리도 지켜 내지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는 반대로 무슨 일이든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한 모든 즐거움에 탐닉하면서 어떤 것도 삼가지 않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즐거움이라면 전부 회피하는 사람은 촌뜨기들처럼 일종의 목석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이다.
맹자의 윤리사상의 특징과 현대적 의의과목명:학과:학년:학번:성명:목 차1. 서론2. 맹자의 윤리사상1) 왕도사상2) 인성론3) 이상적 인간3. 맹자의 윤리사상이 갖는 현대적 의의4. 결론1. 서론맹자 하면 떠오르는 것이 어렸을 때 기억에 할아버지께서 “맹자 왈”, “공자 왈”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과 국사를 배우면서 학제에 나오는 ‘사서’ 중의 하나로 맹자가 있다는 것 정도만 생각난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면 맹자는 유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서양 철학자들도 맹자를 알고, 라틴어로 ‘Mencius' 라고 불리어지는 것이 생각난다.맹자하면 대표적으로 ‘유교’와 ‘성리학’이 떠오르게 된다. 그 이유는 맹자는 공자의 철학을 이어받아 유교의 기틀을 잡은 인물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성리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주자가 ‘사서’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학생들에게 유교와 성리학은 그저 조선의 붕당을 만든 원인 즉, 조선이 망하게 된 원인 또는 그저 고리타분한 옛날 학문, 개성을 중시하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딱딱함이 떠오르기 마련이다.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동양윤리사상’ 수업시간에 맹자 포함 여러 동양철학자들과 그들이 주장하던 성리학과 유교에 대해 수업을 듣고 난 후 단지 유교와 성리학을 위에 말한바와 같이 평가하는 것은 사물의 어느 한 면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맹자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맹자의 윤리사상의 특징과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2. 맹자의 윤리사상맹자의 윤리사상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맹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겠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유교 사상가이다. 그리고 전국시대에 배출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한 사람이다. 학문은 공자의 유교사상을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문하생에게서 배웠으며, 도덕정치인 왕도(王道)를 주장하였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어 제후에게 채택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향에 은거하여 제자교육에 전념한 사람이다. 또 우리가 익히 알기로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이제 맹자의 사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1) 왕도사상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 이후를 말하는데, 당대에는 천자의 권위를 인정하며 나라간 패권을 다투어 경쟁하던 시기로 패도(覇道에) 의한 정치를 행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맹자는 패도 대신에 왕도(王道)를 주장했다. 왕도라는 것은 『맹자』의 『공손추』 편에 나오는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친 것이요,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은 속마음이 즐거워서 진실로 복종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덕으로 다스리며 인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맹자는 인류사회의 일을 행하는 데 인화(人和), 즉 여러 사람이 통합·화합 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따라서 왕도 정치의 중심은 곧 백성이고, 정치는 민심이 잘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심이 선하지 못하다면, 그 민심을 잘 반영하여 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옳은 정치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것에 대해 맹자는 인성론을 이야기 하였고 그것으로써 왕도정치에 대한 근거를 들었다.2)인성론인성론을 이야기 하면 성(性)에 대한 이야기로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 가선가악설(可善可惡說), 성유선유악설(性有善有惡說), 성삼품설(性三品說), 성선악혼재설(性善惡混在說)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으로는 본성이 선 또는 악으로 확정되어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인간의 본성은 선으로 확정되어있다고 말한다. 맹자는 성을 ‘하늘이 부여한 것(天所與我者)’,‘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我固有之)’,‘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것(人皆有之)’ 라고 정의하였다.이에 따르면 성은 선천적 초월성을 지니고 보편적으로 내재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착한 근거로써 사단(四端)을 제시하는데, 사단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부끄럽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상대방을 공경하고 사양 및 양보할 줄 아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하는 마음(是非之心)을 의미한다. 맹자는 이렇게 선한 것을 배우지 않아도 사단에서 나오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하였다.사람은 선하게 태어나고, 그들이 화합하여 사니 악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존재한다. 맹자는 사람의 인성을 물에 빗대어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인성의 선함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물을 탁 쳐서 이마를 지나게 하고, 솟구치게 하여 산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물의 본성이 이러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의 요인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라도 하였다. 즉, 사람이 악하게 되는 원인은 선천적인 요인이 아니라 후천적인 환경과 생물적 욕구, 감각의 욕구, 방심, 자포자기하는 것들 때문인 것이다.인성을 물에 비유한 것으로 맹자와 고자 간의 논변이 있다. 고자는 사람은 태어날 때 선·악 중에 어느 것도 취하지 않고 태어난다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하였다. 물길을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에 대하여 맹자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도 선을 향해있다고 하였다.또, 맹자와 고자의 논변 중 인의내재와 인내의외에 관한 것이 있다. 맹자는 인의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한 본성으로 보았고, 고자는 인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 하지만, 의는 외재한다고 하였다. 인이 내재한다고 보는 견해는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맹자의 인은 보편애를 의미하고 고자의 인은 편애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의에 관하여도 맹자는 의도 내재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고자는 외재적인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보면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외적인 요인으로 나이가 많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 고자의 견해라면, 내가 그 어른을 나이가 많이 때문이 아니라 대상 자체를 내 마음 속에서 어른으로 여기기 때문에 공경한다는 차이이다. 이렇게 맹자는 고자와의 논변을 통해 인의는 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설파 하였다.3)이상적 인간맹자의 관점에서 이상적 인간이라 함은 군자(君子)와 대인(大人)과 성인(聖人)이다. 군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또는 덕 있는 사람을 가리키고, 대인은 대체를 기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대체라는 것은 소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뜻한다. 반면에 소체는 감각기관의 욕구 즉, 이(利)를 말한다. 성인은 대덕을 성취하여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이를 의미한다. 맹자는 이런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수양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수양을 하는 것 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로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求放心)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그것을 잃어버린 것은 닭이나 개 같은 동물이 되어버린 것과 같다. 따라서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은 본심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회복하는 것과 같다.그리고 대체를 기르는 일이다(養其大體). 사람의 몸에는 귀·천·대·소가 있다. 맹자는 천하고 작은 것이 크고 귀한 것을 해치지 않게 하고 대체(소체와 대조된다, 본심과 도덕심)를 기르는 것을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소체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대체를 넘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또, 사단을 확충하는 것(擴充四端)과 말을 아는 것(知言), 양기(養氣) 등이 있다. 말을 아는 것은 언어와 사상의 시비·선악·진위·득실을 명확히 분별함으로써 이단을 제거하고 사악한 학설을 종식시키며, 사람과 금구, 의와 이, 성군과 폭군, 중화민족과 오랑캐를 엄격하게 변별하고 성인의 도를 천하에 전하려는 목적이 있다. 양기는 도덕적 용기를 길러 두려움이 없이 천하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맹자는 지언과 양기를 하면 부동심에 이른다고 하였다. 부돔심 이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의심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언을 하게 되어 도의에 밝아 천하에 의심스러운 일이 없고 양기를 하여 천하에 두려운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3. 맹자의 윤리사상이 갖는 현대적 의의맹자의 윤리사상은 현대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로 말미암아 돈 때문에 가족 간의 의를 저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다. 권력을 위해 자신의 도덕심마저 저버리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이렇게 이(利)를 추구하는 사람을 소체를 따르는 사람 즉, 소인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대체를 수양해야 하는데 이렇게 이를 따르면 소체가 대체보다 커지는 것이다. 이것은 성을 수양하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은 자신의 성을 수양하지 않으면 악해진다. 악해지는 것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사단을 저버리게 되고, 이것은 인간과 금수가 구별될 수 있는 것을 저버리게 되어 결국 사람이 금수와 같아지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만나다-‘자본주의 :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읽고과목명:학과:학년:학번:성명:나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그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는 다르고, 우리나라의 경제 체제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있었다. 수능시험 때 선택한 사회탐구영역인 경제 과목에서도 자본주의란 그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작하는 시장경제와 관련되어있고, 또 그 부분 에서는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만 알면 되는 문제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이 그냥 넘어갔었다.그리고 이번에, 「자본주의: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읽어보고 교수님이 제시한 작성요령을 참고하여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는 제목대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의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여러 정보를 읽어보고 나름대로의 감상을 적어 볼 것이다.그러면 이제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아보자. ‘자본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두산백과사전에서는 자본주의(capitalism , 資本主義)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라고 정의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도 나왔듯이, 각 개인은 일종의 자비심이나 봉사가 아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시장에 여러 재화와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고 이러한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한다.1.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탄생과정대를 있는 생산자들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지만 자원은 유한하다. 인간의 무한한 욕구와 지구의 한정된 자원 사이에서 생긴 괴리는 필연적으로 경제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 이러한 경제문제는 그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이 되었고, 그 결과에 의해서 경제체제가 발생하게 되었다.「자본주의: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앞으로는 ‘책’이라고 칭할 것이다-에서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경제체제들(전통경제, 명령경제, 시장경제) 을 소개했다.첫 번째는 ‘전통경제’ 이다. 여기서 전통이라 함은 ‘아주 먼 옛날에 발명되어 오랜 역사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관습과 신앙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유지되어온 여러 절차들에 기초하여 생산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시 아들이 이어서, 즉 대를 이어서하는 일이 많다.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는 모든 이들이 그 아버지의 직업을 따르는 것이 종교적으로 강제 되어있었다.이처럼 전통은 대를 이어 생산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를 잇는 후계자들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박탈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두 번째는 ‘명령경제’ 이다. 이것은 ‘통치권을 가진 권위자의 명령에 의해 노력과 보상의 배분을 강제함으로써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의 예를 들 수 있는데 우리가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명령에 의해 여러 노예들이 돌을 운반하여 만든 건축물이고,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은 거대한 건물들이나 상하수도 역시 많은 수의 노예들이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만든 것이다. 또한 소련은 스탈린의 집권 이후 스탈린의 명령에 의한 중공업의 부흥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군사강국이 되었다. 이처럼 명령은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역시 배분의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세 번째는 ‘시장경제’ 이다. 우리가 흔히 자본주의라고 알고 있는 이 시장경제는 자발적으로 구성원들이 시장에서 서로간의 거래를 통하여 생산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여기서 각 재화들의 가격은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생겨나지 않고 시장 구성원들의 거래에 따라 자동으로 생겨나게 되는데 스미스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정의하였다. 이 방식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완벽해 보이지만 20세기 초에 ‘경제대공황’이라는 문제를 야기 시켰다.이러한 방식들이 시대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자본주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떠한 변화들을 거치며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고대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사회였다. 고대 사회에서도 현대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농업기구의 발달로 인한 생산력의 증대, 각 집단 간의 전쟁을 통한 노예라는 노동력의 확충과 토지의 확보를 통해 현대 사회와 같이대 사회는 만인이 평등한 사회가 아닌 계급이 있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노예 노동과 토지로 인해 늘어난 잉여 생산물의 상당수는 지배자 계층의 차지가 되었다.그 후에 중세의 봉건제 시대가 도래 하였다. 봉건제 시대에는 정치권, 군사권, 경제권 등 사회의 전반적인 권력이 영주에 집중되어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장원 체제’ 라고 하여 농민들은 생산을 하고 영주에게 생산물을 넘기는 대신 영주는 기사들을 통해 이들을 지켜주는 자급자족의 시대였다.봉건제 사회는 십자군전쟁, 탐험시대에 넘어온 재화들, 그리고 국민 국가의 탄생 등의 변화들을 거치면서 점차 그 체제를 위협받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사회생활에서 경제생활이 분리되고 농노들은 토지의 결박에서 벗어나 농노가 아닌 노동자로 변화하였고, 영주들은 지주가 되었고, 길드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 사업가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산과 분배가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이렇게 많은 시대적인 경제체제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러 생산과 분배가 자유로운 애덤 스미스가 정의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경제체제로 정착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발생은 우리의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간단하게 우리가 하는 인터넷 게임의 예를 들 수 있는데, 처음에는 사용자 간의 물물 교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물물교환을 하는 중 게임 상에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재화(아이템)가 정해지게 되고 이것이 게임 상의 화폐가 되어 게임 사회에서의 생산과 분배를 나타내게 된다. 그리고 각종 재화(아이템)의 경향에 따라 가격이 바뀌게 되고 거래량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게임에서도 나타나듯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탄생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었다고 생각된다. A. Smith (1763~1790) 2.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변화과정자본주의 경제체제는 16~19세기의 시민혁명, 산업혁명에 힘입어 발전하게 된다. 앞에서 서술한대로 농노는 더 이상 영주에게 종속되지 않는 노동자로 변하였고 영주는 지주나 사업가가 되어달리 기계의 힘을 빌려 재화의 생산량을 끌어 올리게 되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영국은 잘 발달된 중간 계급을 가진 부유한 무역국가 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의 귀족들은 인클로저 운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럽 대륙의 다른 귀족들보다 상업적이었다. 그리고 영국은 과학과 공학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밖에 다른 요인들과 함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 될 수 있었다.이 시기에 애덤 스미스는「국부론」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이 책은 시장에 대한 메커니즘을 기술하고 경제 성장의 경향을 분석한 것이다.「국부론」에서는 경쟁 시장의 자기 조정적인 성격을 입증하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이기적인 개인들이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기 때문에, 별다른 통제 없이도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고 설명한다.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량의 증가는 설비 투자의 증대와 함께 ‘규모의 경제’를 야기 시키게 되었다. 규모의 경제와 같은 대량 생산과 함께 각 생산자들 끼리 경쟁을 하여 결국엔 한 생산자만이 생산을 하여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 ‘독점 자본주의’를 낳게 되었다. 이들 기업은 무시무시하게 성장해 나중에는 정부마저 대처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자본주의에게 하나의 큰 시련이 찾아오게 된다. 이것은 바로 ‘경제대공황’ 인데 이것은 규모의 경제에 의해 재화를 많이 생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재화의 필요량은 한정 되어있기 때문에 생산자의 이윤은 하락하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해 임금수준을 감축하게 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소비수준도 떨어지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것이었다.그리고 책에 서술되어있는 과도한 투기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있던 시장경제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각국은 보호 무역을 통해 이 위기를 헤쳐 나가려고 하였고 이는 세계 시장전체에 타격을 주게 되어 인류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2차 세계정책은 케인즈 주의에 입각하여 그동안 시장경제에 자율적으로 맡겨놨던 것을 정부가 개입하여 관리하게 된다. 이를 ‘수정자본주의‘라고 한다. 정부는 농업과 산업 각 분야에 개입하여 시장을 재조직 하였다. 그리고 통화 공급을 조절하여 이자율의 조정에 따라 대출의 양을 관리하게 되었다. 또, 조세 징수를 이용하여 침체된 경제를 살릴 방법을 모색하였고 이는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 자본주의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자유방임주의의 한계가 드러남과 동시에 세계는 이 체제와 작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수정자본주의는 대공황 이후 자본주의를 부흥시켜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낳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수정자본주의도 큰 문제를 낳게 된다. 바로 우리가 교과서 등에서 많이 접하였던 ‘스태그 플레이션’의 출현이다. 스태그 플레이션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돌아가던 경제 체제에 한 부분을 변화시켜 그로 인해 시장 전체의 흐름의 문제를 낳았다. 70년대에 들어 산유국들의 모임인 ‘오펙(OPEC)'이 석유 수출을 봉쇄함과 동시에 소비자 물가의 상승하였다.이에 따라 정부는 통화를 조절하여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으나 이는 경제성장의 둔화, 생산성의 하락, 실질 임금의 감소와 함께 소득 분배의 불균형을 낳았다 .이러한 문제에 처하게 되면서 그동안 정부가 경제 사회 전반을 관리하던 ‘큰 정부’에서 벗어나 과거 자유방임주의 적으로 정부의 기능을 축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신자유주의’ 라고 한다. 이는 7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와 영국의 ‘대처리즘’에서 나타나게 되었다.세계는 지금 기술진보에 힘입어 24시간 이내에 어디든지 갈 수 있게 되었고 전 국가가 지구촌 이라는 이름 아래에 과거보다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 나라가 아닌 전 세계 전반에 걸쳐 생산을 하는 초국적 기업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 등의 통신 매체의 발달과 함께 이와 관련된 산업도 발전을 하고 있다. 또 신자유주의도 부의 불평등 같은 여러 문다.
정신분석 이론과 도덕성 발달과목명:학과:학년:학번:성명:목 차1. 서론2. 정신분석 이론의 기본 원리1)정신에 관한 지형학적 모델2)인성의 구성요소3)인성의 역동성4)심리성적 발달단계3. 정신분석과 도덕발달4. 도덕교육적 시사점 및 결론1. 서론정신분석이론은 프로이트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의 사고, 감정, 행동의 원천을 무의식 적인 충동과 갈등에서 찾아내고, 인간의 초기 경험이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주어 성인기의 성격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오스트리아의 의사였던 프로이트는 ‘자유연상’, ‘꿈의 분석’을 통해, 신경증 환자와 심층 심리에 있는 욕망과 갈등을 분석하고 치료하였다. 이렇게 정신의학적 심리치료를 하면서 그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며, 어떻게 성격구조가 발달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이것들은 그의 정신분석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정신분석이론에 관한 문제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여러 영역에 걸쳐서 20세기에 큰 영향을 끼쳤고, 우리가 ‘무의식’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줬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제 정신분석이론의 원리를 파악하고, 이 이론이 도덕발달과 도덕교육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도덕교육적 시사점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이에 앞서, 정신분석 이론이 도덕 발달을 설명하는 접근법으로써 가정하는 네 가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첫째, 모든 인간의 행동은 선천적 본능에 의하여 움직여진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본능, 즉 성 본능(에로스)과 죽음 본능(타나토스)이 있다.둘째, 본능은 실세계 속에서 행동을 통해서 그 자신을 드러낸다. 달리 말해, 인간은 물리적?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신들의 본능적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본능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도 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명령해 주는 ‘규칙’ 과 ‘인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셋째, 개별 환경에서 여한 행동에 대한 기대 사항들을 자신들의 인성 속에 점차적으로 통합하게 된다. 이러한 기대 사항들이 바로 개인의 도덕적 가치가 된다. 가치가 내면화됨에 따라서 이제는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데 외부로부터의 재제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 대신에 개인의 양심(conscience)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일종의 모니터 요원이 된다. 양심은 승인된 행동에 대하여 자부심과 자존심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보상을 해 주며, 금지된 행동에 대하여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처벌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양심(conscience)이란 내면화된 도덕적 가치에 위배될 때 죄책감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이상(self-ideal)이라는 개념도 있는데, 이것은 내면화된 도덕적 가치에 일치할 때 자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2. 정신분석 이론의 기본 원리정신분석 이론의 원리를 보면 크게 인간의 정신세계(mind)를 빙산에 비유하여 설명한 지형학적 모형과 성격(personality)을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나눠서 설명하는 구조적 체계가 있다. 또, 인간 성격의 역동적 체계는 리비도와 타나토스로 대표되는 정신 에너지로 구성된다는 역동적 체계, 그리고 리비도의 이동에 따라 구강기에서 생식기 까지 이어지는 연속적 체계로 정신분석 이론의 원리를 설명 할 수 있다.1) 정신에 관한 지형학적 모델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을 빙산에 비유하였다. 이 빙산에는 의식, 전의식, 무의식 순으로 표시 되어 있다. 의식은 빙산의 가장 윗부분, 전의식은 물과 빙산 윗부분의 중간단계, 그리고 무의식은 빙산의 가장 밑 부분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식은 우리가 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는 사고, 감정, 행동과 같은 의식적인 경험을 점유하고 있다. 그 밑 부분에 있는 전의식은 현재는 인식 밖-의식하고 있진 않지만-에 있으나 쉽게 인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억들을 포함하고 있는 기억들을 점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무의식은 우리의 정신세통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의식에 방치된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의식은 가끔 전의식으로 올라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곡해된 형태로 타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는 의사 생활을 할 때, 기존 환자들이 과거의 부모에게서 겪은 성적인 일들을 자유 연상을 통하여 표현하도록 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연구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환자를 만나게 되고, 이 환자는 부모와 관련된 성적인 이야기를 연상을 하는데 이야기 할 때마다 다르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이 그 개인의 충동과 감정 등을 곡해하여 전의식으로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무의식은 인간의 충동, 감정, 관념의 대부분을 위한 저장소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나중의 행동과 의식적인 경험에 끊임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2) 인성의 구성 요소프로이트는 우리의 인성이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하였다. 원초아는 출생 시 부터 존재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무의식에 위치해있다. 쾌락원리에 따라서 작동하는 것이다. 자아는 1세말 에서 2세 사이에 원초아의 일부로부터 발달한다. 무의식과 전의식에 걸쳐서 위치하고, 현실원리에 따라서 작동하게 된다. 원초아의 욕구, 현실, 초자아의 요구를 조절하여 개인을 현실에 적응시키는 기능을 담당 한다. 초자아는 아동기 초기에 발달하는 성격의 일부분이다. 이것은 의식과 전의식, 무의식 모두에 걸쳐서 위치하고, 부모와의 동일시 과정을 통해 부모의 도덕관과 문화적 규범이 내면화된다. 이 초자아를 통해 앞서 말했던 양심과 자아이상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초자아는 프로이트가 저서에 Uber-Ich 라고 표현하였고, 이것은 우리나라 말로 하면 초월-나 라는 개념이다. 이는 인성의 도덕적인 부분 혹은 재판관 같은 부분이다. 초자아는 옳음과 그름을 결정하고, 쾌락보다는 완벽을 추구한다. 이러한 기능은 부모에 사용된 상과 벌의 체계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부모의 사랑과 호의를엇을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믿는지에 대한 아동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동은 부모의 도덕적 가치를 내면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양심은 부모들이 나쁘다고 믿는 것에 대한 아동의 생각에 해당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정 반대되는 개념인 자아 이상과 양심은 동전의 이면과 같이 서로 다르고 양립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3)인성의 역동성프로이트는 인간 성격의 역동적 체계는 삶의 에너지(에로스)와 죽음의 에너지(타나토스)로 대표되는 정신 에너지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정신작동은 이런 정신 에너지가 원초아, 자아, 초자아에 어떻게 배분되고 활용되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원초아, 자아, 초자아는 항상 갈등상태 속에 놓여있다. 쾌락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원초아와 쾌락부분을 추구하기보단 완벽을 추구하는, 또 옳고 그름을 추구하는 초자아, 이들을 조율하여 현실세계에 반응하는 자아가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정신분석이론에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 개인의 능력은 그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압력에 대처해 나가는 자아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들 셋은 바로 전에 말하였듯이, 갈등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이들 중 어느 하나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불안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자아가 원초아의 충동을 처리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신경증적 불안’, 자아가 초자아로부터의 처벌을 예견할 때는 ‘도덕적 불안’을, 자아가 외부 세계의 위험에 대해서 항상 느끼는 ‘현실적 불안’ 등이 있다. 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는 이러한 불안에 대처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아가 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불안에 대한 일시적인 방어를 필요로 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방어 기제’ 라고 하였다. 방어기제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억압, 반동 형성, 투사, 합리화, 전위, 승화, 부정, 동일시, 고착, 퇴행 등이 있다.4) 심리성적 발달단계프로이트는 초기 아동기의 경험이 성인의 인성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성단계리비도의 집중단계적 특징병리적 성격구강기(0~1세)입손에 잡히는 물건은 모두 입으로구강기적 성격(흡연과다, 과음, 과식, 손톱 깨물기, 독설, 신랄한 비판, 빈정거림, 수다)항문기(2~3세)항문배변훈련을 통해 외부 통제, 사회적기대를 처음 직면하게 됨보유와 배설을 통한 안도감, 쾌감 경험* 초자아 형성이 “시작”되는 시기항문기적 성격(방탕, 불결, 규율의 지나친 엄수, 결벽증, 강박증, 폭발적 성격, 낭비벽)남근기(4~5세)성기성역할, 성적 특징에 대한 관심 고조* 동성부모와의 동일시를 통해,외디푸스(일렉트라) 콤플렉스 해결,성역할 학습, 초자아 “발달”동성애, 신경증잠복기(6~12세)침체, 잠복사회, 문화에 관한 적극적 학습생식기(12세 이후)성기단순 쾌감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추구잠복기에 도달했던 원초아-자아-초자아의 균형이 깨지면서 갈등과 혼란을 겪음3. 정신분석과 도덕발달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인간의 원초적 본질을 부패하고 타락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태어났을 때에 지니고 있는 것은 원초아 뿐이기 때문이다. 원초아는 앞서 설명하였듯이 쾌락원리에 따라 작용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아동의 도덕적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모종의 개입과 중재가 있어야 한다. 즉, 성격발달이 형성되는 시기인 영유아기에 주로 개입과 중재를 하게 되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 하다고 볼 수 있다.항문기를 기점으로 남근기에서 아동의 초자아는 형성이 되고 발달이 된다. 물론 다른 시기에도 발달이 되겠지만, 기반을 튼튼히 다져놔야 그 이후 발전할 토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올바르게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아동들의 성격발달에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도덕 발달이 잠복기인 6세 이후에도 일어날 수 있으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아동들은 부모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들어감에 따라 옳음과 그름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교사 같은 사람이 부모의 권위를 대신할 수도 있으며, 또래 집단이 상호 의존다.
환경 위기의 정신사적 근원 문제-기계론적 자연관과목명:학과:학년:학번:성명:목 차1. 서론2. 본론3. 결론1. 서론지난시간에 우리는 환경위기의 정신사적 근원 문제 중 하나인 유대·그리스도교적 자연관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부터 창조신앙을 받아들였고, 창조 신앙은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은 신으로부터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위임받아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개발하고 착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가르쳤다. 로마제국에 이르러 그리스도교는 국교가 되어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서구의 모든 민족에게 주입시켰으며, 우리가 배우는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 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내용을 배웠다. 그렇다면 기계론적 자연관은 어떤지 기계론적 자연관에 대하여 알아보겠다.기계론적 자연관은 “세계와 자연의 모든 과정이 필연적이고도 자연적인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의 이성으로 그 기계적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관점”을 말한다. 여기에서 필연적이고도 자연적인 인과법칙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뉴턴의 사과나무로 예를 들어 보겠다. 이는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나무를 보며 중력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 것을 그린 것 인데 이처럼 중력의 법칙 즉, 사과가 줄기에서 떼어지면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는 것처럼 세계와 자연의 모든 과정이 필연적이고도 자연적인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다. 기계론적 자연관에 대한 주요 학자로 베이컨과 데카르트를 꼽을 수 있다. 이제 이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2. 본론먼저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해 알아보겠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경험론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베이컨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관을 신랄하게 공격함으로써 자연 지배 이념을 통해 기계론적 자연관의 초석을 다져놓았다. 또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의 업적을 가리켜 ‘논쟁을 일삼는 지식’일 따름이라고 일축해버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베이컨은 성장기에 칼비니즘(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여 부자가 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청빈의 교리를 내세웠다)의 영향을 받았다. 칼비니즘은 세속의 삶을 성스럽게 여겼고 ‘신비’보다는 ‘일상’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리스식 ‘관조’같은 태도보다는 실천의 ‘행위’를 중요시 했다. 또 베이컨은 기술은 오직 자연의 시녀이며, 자연이 이미 시작해 놓은 일을 완성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강하게 거부하였고 그는 기술이 자연을 기초로 하여 자연이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있도록 인간이 물체의 운동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베이컨은 과학기술의 도약은 자연에 대한 지식과 함께 자연의 지배가 동시에 이루어 질 때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의 신비를 발견하고 벗겨내는 방법은 실험을 통한 지식이며, 인간은 실험을 통해 지식을 증가시키는 한편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능력 이 두 가지는 실제로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기술이 자연이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있도록 인간이 물체의 운동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주장 한 것처럼 베이컨은 자신의 저서 ‘뉴 애틀랜티스’에서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것의 예로는 2008년에 베이징에서 올림픽 때 대기를 맑게 하고 기온을 낮추기 위해 인공 강우를 선보였고, 또 인공적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서 인공 관절, 전자 감지기 등에서 사용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기도 하다.이렇게 베이컨은 지식의 목적을 유용성에서 찾고 ‘인간의 생필품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유용성과 자연적 지배력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베이컨에게 있어 지식의 ‘존귀성’은 ‘유용성과 지배력의 작용’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나아가 그는 인간의 지식과 자연 지배력을 합일시키고 자연의 자궁에서 더 많은 비밀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그리고 베이컨이 말하는 것 중에서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바로 ‘박애’이다. 박애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함’이라는 뜻인데, 베이컨에게 있어 ‘박애’란 신의 숭배를 뜻하며 나아가 그리스도적 의무와 자선 행위의 실행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적 의무 및 자선행위란 생명 없는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자연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요리하고 이용하는 것이며, 또 이렇게 하는 것이 신의 명령에 부합한다고 말했다.또 베이컨이 지식의 목적을 유용성에서 찾고 인간의 생필품과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자연적 지배력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듯이 ‘인류가 곤경에 처해있는 것’에 무관심한 지식인들을 향해 ‘신앙심이 없고 경건하지 못한 사람’ 즉 박애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렇게 베이컨은 자기 나름대로의 성서 독해에 의거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지식과 지배를 정당화 하고 있는데, 베이컨에게 자연은 통제의 대상에 불과하였고, 그는 자연을 통제하기 위하여 그 구체적인 방법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었다.이와 같이 새로운 세계관의 문을 열기 시작한 베이컨의 뒤를 이어 데카르트 역시 자연을 통제의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그 기틀을 잡아 나갔다.이제 데카르트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데카르트는 자연에 대한 갈릴레오적 수학에 근거하여 우주를 거대한 기계로 이해했다. 갈릴레오는 철학의 대상으로서의 우주는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고, 그러므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데카르트 역시 수학이 모든 것의 원천으로서 인류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그 어느 것보다도 더 막강한 지식의 도구임을 확신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숫자와 도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으로 데카르트는 모든 물체의 움직임은 결정론적 인과관계 속에 있다고 보았다.데카르트에 의하면 자연은 ‘톱니바퀴와 피댓줄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서 신이 만든 정교한 장치였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한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이 지식을 넓혀감에 따라 인간에 의해 소유되고 지배받을 수 밖에 없는, 생기 없는 사물의 집적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자연을 인간과 확연히 구별되는 실체로 파악하였다.그래서 인간의 육체는 기계적 자연법칙의 지배 대상인 물질이고, 사유하는 정신만이 참 실재로 파악하여 자연으로부터 참 실재성을 앗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자연은 실재성이 없는 단순한 기계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사유를 본질로 하는 인간은 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즉,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되었다. 이렇게 데카르트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연관성을 부정하였다는 점이 데카르트의 이분법적 사고가 초래한 가장 심각한 결과였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자연 파괴와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뎀보스키는 생태학적 위기는 ‘인간을 자연의 주인과 지배자‘ 로 본 데카르트의 세계관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하였고, 일리에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과학은 인간의 생존 세계를 조작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냉담, 교만, 무경외를 낳게 하였다”고 하였다. 또 슈바이처 역시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코지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은 그 이후의 자연관에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고 저적하면서 이 명제를 비난하였다.이제 20세기로 가보겠다. 20세기 과학 이론에 나타난 가장 근본적인 변혁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의 등장이었다. 이 두 이론이 고전 물리학을 대체 하게 되면서 철학과 사상 전반에 걸쳐 인과론적/결정론적 시각은 비인과론적/비결정론적 세계관으로 바뀌었다.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실험자가 아무리 정밀한 기기로 정확하게 실험을 하더라도, 운동하는 전자의 속도와 위치를 둘 다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하는 관측의 한계를 밝혀냈다. 그 결과 초기조건이 주어지면 그로부터 최종 결과가 도출된다는 고전 물리학의 인과율과 결정론적 시각은 붕괴되었고, 20세기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탈바꿈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불확실성은 실험의 부정확성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본질이 그러하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이 때 카프라 라는 학자가 정신과 물질은 더 이상 두 개의 분리된 카테고리가 아니라 동일한 우주적 사건의 상이한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우주는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된 전체를 구성 하므로 기계론적 자연관은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