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서양의 교육사상의 정리한국교육사상제 1장 고대와 삼국시대 교육1.고조선(1) 홍익인간나라마다 고유의 신화가 있듯이, 우리나라도 고조선 건국신화인 단군신화가 있다. 이 단군신화야말로 우리 민족의 의식과 삶의 원형을 표현한 것이다. 신화의 내용 가운데 특히 주목할 것은 홍익인간인데, 환인이 환웅을 우리가 살아가는 한반도에 보낸 것은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함이었다. 이런 홍익인간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며, 고대 사회의 특징이 정치와 제사와 교육의 일치였다는 점에서 곧 교육이념 이기도 하였다. 교육기본법은 홍익인간의 정신 아래 추구해야 할 우리의 궁극적인 교육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은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2) 성년식고대 사횡서 생활은 교육과정이었고, 생활공간은 바로 학교였다. 이후 의식적인 형태의 교육이 생겼는데,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성년식이다. 성년식의 과정에서는 육체적인 고통이 따랐는데, 그 고통을 이겨내면 비로소 성인으로 인정받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행사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사횡서 성년식은 청소년들에게 신체적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여, 이들이 자신이 소속된 사회 집단의 생활양식과 기술을 배우고, 동일화를 이루게 하는 교육적 의의를 가진다.2. 고구려와 백제(1) 태학태학은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먼저 세워진 고등교육기관이다. 태학은 전진 등 중국 남북조와 교류를 통해 받아들인 한나라 교육제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교육을 받는 대상은 상류 계급인 귀족자제만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태학의 설립목적은 귀족 자제인 조의선인을 교육하여 고급관리로 등용하는 데 있다. 교육내용의 중심은 오경과 삼사 등의 경전과 역사서였다. 태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관학이고 고등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교육사적으로 의의가자의 직책이었다. 이는 오늘날의 교육부 장관에 해당한다고 한다. 사도부는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이었다. 박사는 관학인 태학에서 가르치는 교육 관직이다. 백제의 박사직제는 오경박사와 전업박사가 있었으며, 오경박사는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에 대한 전문식견을 가진 사람, 전업박사는 의박사, 역박사, 역박사를 말한다.3. 신라(1) 화랑도신라는 삼국통일 전 학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청소년 수련 단체인 화랑도를 통해서 국가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랑도는 비형식적인 생활교육이고, 문무일치 전인교육이었다. 화랑은 “꽃다운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행실도 아름다웠다”라는 평을 받은 바 있다. 화랑도는 청소년 수련 단체였으며, 학교가 따로 없었던 신라시대 화랑도는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훌룡하게 해냈다. 화랑정신의 바탕은 풍류이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서로 조화되고 융통할 때 참된 멋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화랑이 추구한 것은 아름다움 이었는데, 화랑의 아름다움은 신체와 의복의 아름다움과 인격적 아름다움 둘 다 가리킨다. 화랑은 인격자를 존중하고 본받으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었다고 한다. 화랑의 수련은 상호교육이었다. 화랑들은 함께 모여서 도덕성과 정서를 함양하였다.(2) 국학국학은 삼국 통일 후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당나라의 학제를 본받아 세운 관학이었다. 국학의 설립 목적은 국가가 필요한 관리의 양성이었다. 가망이 없는 자는 중도에 퇴학시켰고, 가망이 있는 자라면 9년 이상도 재학할 수 있었다. 국학의 교육내용은 유교 경전이 중심을 이루었다. 국학은 문묘를 갖추었다고 한다. 문묘란 대성지성문선왕묘의 줄인 말이며, 공자 사당이다. 왕은 장학을 위해 국학을 찾아와서 유생들의 학업을 격려하며, 녹음을 하사하였다.4. 교육사상가(1) 원효원효는 신라를 대표하는 불교사상가이고 민중교육자이다. 원효는 중생 제도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무엇보다 원효는 삼국 통일을 전후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황폐하기 이를 데 없던 때 나라 잃은 백제와 고구려 하고, 이두를 사용하여 학생들에게 강론하여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또한 설총은 왕에게 “화왕계”를 들려주며, 국왕에게 정직한 신하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유교의 정치이념에 따라 왕도정치를 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는데, 화왕계는 왕에게 바른 도리로 정치를 해야 함을 가르친 군왕교육서로서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제 2장. 고려시대 교육1. 학교제도(1) 국자감국자감은 고려 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관리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관학이다. 학식은 국자감의 구체적인 학규로서 상당 기간 시행되었다. 엄격한 신분 사회였기 때문에 각 학에 따라 입학자격에 차이가 있었다. 교육내용은 유학 과정에서 공통 필수과목으로 1년에 이수하는 효경과 논어가 있었다. 안향은 국자감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능한 교관 학보에 노력했으며, 섬학전을 통해 부족한 교육 재정을 확충하기도 했다.(2) 향교향교는 향학이라고도 하며, 고려시대 지방의 국자감이다. 향교도 국자감처럼 묘학제를 운용했다. 향교의 설립 목적은 유학을 진흥하고 지방민을 교화하며, 향풍을 순화하는 것이다.(3) 동서학당학당은 향교와 같이 고려의 중등 관학이다. 학당은 향교와 달리 문묘가 없다. 동서학당은 몽고와의 오랜 항쟁 등으로 불안 속에서 향교와 같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4) 십이도십이도는 고려시대의 12개 사학을 말한다. 고려시대 국자감과 향교의 교육이 부진할 때 과거시험 준비를 위한 학교로 설립되었다. 구재학당의 교육목적은 인격 완성과 과거 준비였다. 이상적으로는 경전을 통해 성인의 도를 배우는 일이고, 현실적으로는 벼슬자리로 나가기 위한 과거시험 공부였다. 대체로 십이도의 교육수준은 국자감에 뒤지 않았으며, 국학에 비해 우세하거나 대등하였다고 한다.(5) 서당고려의 역사 기록을 보면 초등 수준의 사학이 존재했음은 확실하다. 고려시대 서당은 지방 서민 계급의 자제를 대상으로 한 사립 초등교육기관이다.2. 과거제(1) 양대업고려시대 과거는 중국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실시되어 발전했는데, 과거제를 시행한 는 고려 사회의 암담한 불교의 문제와 그 해결에 있었다. 지눌의 해결방안은 수행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눌은 도반들과 정혜결사라는 수행 공동체를 만들어, 세속을 떠나 부처님 근본 가르침에 매진할 것을 촉구하였다. 지눌의 사상은 정혜쌍수, 돈오점수, 선교일치의 세 주제로 요약된다.(2) 안향안향은 고려 말 문신이자 주자학자로서 국학 진흥에 크게 공헌한 교육자다. 안향은 원나라를 왕래하며 그곳의 학풍을 견학하고 성리학을 국내에 들여온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자이다. 또한 부진했던 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바닥난 육영기금인 양현고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충렬왕에게 건의하여 섬학전을 설치하였다. 안향의 교육사상은 심성 수양을 중요시하는 실천적인 학문이었다. 그는 성인의 길은 일상적인 인륜 실천이라고 하였으며, 이런 점에서 불교는 부모를 버리고 윤리를 경시했다고 배척하였다. 안향으로부터 시작된 성리학은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으로 발전했다.서양교육사상제 1장. 고대 그리스의 교육1. 교육제도(1) 스파르타의 군인 교육스파르타는 전체주의, 군국주의, 통제주의이며 정복전쟁으로 국가를 유지시켜왔으며, 기원전 9세기에 확립된 리쿠르구스법이 국가제도와 교육제도의 토대가 되었다. 교육사적으로 볼 때, 스파르타는 최초의 국가와 교육의 긴밀한 관련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제도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교육목적으로는 극기와 엄격한 규율생활을 통한 용감한 군인을 양성하는 것이었는데, 이에 따라 구체적인 교육과정에 있어서는 체육과 군사훈련위주의 교육내용을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교육과정으로 귀족의 어린아이는 국립검사장에서 신체검사를 진행하고 엄격한 방식의 가정교육을 하며 7세에 병영학교에 입학시켜 집단생활을 통해 충성심, 군사훈련, 사냥, 춤, 예절 등을 익히게 하였다.하지만 피터스는 ‘스파르타는 군인을 만드는 훈련만 했을 뿐이고 교육을 하지 못했다.’라고 하였는데, 사실의 포괄적 이해, 인지적 능력이 결여되고 특정 사고방식과 제한된 기술 습득에만추구하였고, 인문교과 혹은 자유교양교과 영역에 해당하는 교육내용을 중심으로 개성을 존중하면서 자유주의적인 교육방법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현실생활에 관련되는 직업교육을 경시했다는 점이 있다.교육기관으로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세움과 같은 철학학교가 있었고,이소크라테스와 같은 수사학교가 있었다.2. 교육사상가(1) 소피스트아테네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논리학, 수사학, 문법 등을 가르친 서양 최초의 직업적 교사 집단이다. 또한 소피스트들은 진보적인 교육사상가들이다.(ex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트라시마코스, 이소크라테스 등..) 교육을 직업적 수단으로 삼았으며, 교육목적으로 입신양명을 택했다.(2) 소크라테스지덕합일설을 주장했는데, 지식은 덕이고 덕은 지식이기 때문에 악덕이란 무지함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하였다.교육목적으로는 지성적이고 윤리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택했으며인간관으로 학습회상설. 즉, 교수란 진리를 재발견하는 기억을 돕는 과정이며, 이에 근거한 교수법은 문답법, 대화법, 변증법이 있다고 하였다.(3) 플라톤철학학교인 아카데미아를 건립한 사상가이다. 교육목적으로는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적인 국가의 건설을 택했으며, 최고의 교육목적으로서 정의로운 생활을 하는 통치자 양성을 꼽았다.(4) 아리스토텔레스철학학교 리세움을 건립한 소요학파이다.교육목적으로 이성의 계바를 통해 지혜로운 사람과 교양인을 양성하고자 하였으며인간관으로 중용의 덕을 실천하는 사람이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하였다.또한 그는 일원론을 주장하였는데, 현상계 안에 이데아계가 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삶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은 행복이라고 하였다.제 2장. 고대 로마의 교육1. 교육제도(1) 로마의 역사와 문화로마인들은 실제적인 민족성을 가진 국민이었기 때문에, 건축, 군사제도, 법률과 같은 실제적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들은 준법정신과 도덕을 중시하였고, 일찍부터 법률사상이 발달했다.(2) 공화정 시대의 교육공화정 초기에는 가정이 학교 역할을 대신하였고, 비공식적인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