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소득 불평등의 원인2016291004 이혜승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정의로운 분배란 무엇인가?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다. 어떻게 나누는 것이 공정한가?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의 응분의 몫을 누리는 것이 공정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노력한 만큼을 얻는 것이 아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의 노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출생배경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구조이고, 개인의 행복이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결정된다.한국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나라 경제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한국 경제 발전의 기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2년 경제개발계획이다. 이때 우리나라는 사유재산은 허용했지만 시장경제는 아니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정하는 계획경제를 토대로 성장한 것이다. 그 결과 1962년 1인당 국민소득 180달러정도에서 1994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이루게 된다. 그러다 1995년,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계획경제를 그만둔다. 기본적인 소비재의 가격 자율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을 토대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주도로 발전한 것이다. 고로 우리나라는 자유시장경제의 역사가 짧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국민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국민 가계살림의 95%는 근로소득에 의존한다. 이렇게 소득이 곧 삶의 질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임금구조는 지속적으로 불평등해지고 있다. 90년대 초까지는 소득의 불평등이 완화되었지만 외환위기 이후로 소득의 불평등은 엄청난 속도로 심화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OECD회원국 중 소득 불평등 지수가 4번째로 높다. 왜 이렇게 되었나? 먼저, 경제성장과 실질임금의 격차를 보면 9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성장한 만큼 임금이 같이 증가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 부터 괴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그래도 간격이 유지되었으나 갈수록 이 격차가 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현재 저성장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고소득 국가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성장을 유지해왔다. 그 결과로 금융위기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24.5%의 성장을 했다. 하지만 임금은 5%도 채 증가하지 않았다.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은 새로운 부가가치가 생산되었다는 것이고, 새로운 소득이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왜 임금은 늘지 않았을까?한국 소득 불평등의 원인 중 첫 번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이다.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종업원 300명 이상) 임금의 60%이다. 특히 제조업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 임금의 50%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은 원래부터 임금이 적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80년대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 임금의 90%이상이었다. 그때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직원들 삶의 질은 비슷했다.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중소기업 임금은 대기업임금의 75~80%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임금의 절반이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자 비중은 이런 소득 불평등을 극대화시켰다. 1980년대에는 전체 근로자의 60%가 중소기업 노동자였고 40%가 대기업 노동자였다. 하지만 현재에는 80%가 중소기업 노동자이고, 20%는 대기업 노동자이다. 결국, 80%가 20%의 절반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또한 하청구조는 문제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든다. 1차 하청업체는 대기업 임금의 60%를 받는다. 2차, 3차 하청업체는 대기업 임금의 4분의 1, 3분의 1 수준이다.한국 소득 불평등의 원인 두 번째는 고용의 형태이다. 비정규직의 문제이다. 1990년대 초반에 처음 생겨난 단어인 비정규직은 근로 방식 및 기간, 고용의 지속성 등에서 정규직과 달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 직위나 직무이다. 쉽게 말하자면 2년간 노동력을 사용하고 바로 해고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정부통계에 의하면 전체 노동자의 3명 중 1명이 고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고, 노동계의 통계는 2명 중 1명이다. 여기서 문제는 비정규직은 고용은 불안정한데,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세대 3명중 1명은 첫 직장은 비정규직으로 시작할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다. 임시고용자의 비율 또한 높은 축에 속한다. 현재는 비정규직이고 임금이 낮더라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만 있다면 지금 조금 고생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개선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OECD국가들은 취업 1년 후 비정규직의 30~40%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취업 3년 후에는 비정규직의 60~70%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취업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10%정도이고, 취업 3년 후에도 20%만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세대는 비정규직을 기피하게 되고, 대기업만 고집하게 된다.
정보화시대의 검색엔진2016291004 이혜승1. 네이버 (www.naver.com)네이버는 인터넷을 항해한다는 의미의 Navigate와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의 합성어 로 인터넷의 가이드, 정보 바다의 항해사라는 의미를 갖는다. 네이버는 현재 우리나라 최대의 포털사이트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검색엔진에 있어서 약 86%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네이버는 국내 검색엔진 중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 소스로부터 정보를 축적 하고, 가장 자주 갱신되며, 가장 짧은 색인 주기 (한달 정도)를 갖고 있다. 검색결과를 출력해 줄 때는 문서 가운데 입력된 검색어와 가장 관련이 있는 문장을 동적으로 추출하여 하이라이트하여 보여준다. 검색어에 따라서 문서에 대한 요약 정보가 아닌 키워드와 같은 짧은 구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문서의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경우도 있다.검색 기술이 구글에 비해 떨어지고,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광고가 가장 위에 나타나고 블로그, 지식인, 카페등 자사 서비스가 주로 나오는 등 검색자를 네이버 내의 자료로만 이끄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사의 지식iN과, 블로그 등을 다른 검색사이트에서 검색이 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광고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이트 운영인 것이다.또한 네이버 내의 블로그, 카페가 다른 검색 엔진에서 검색되는 것이 제한되어 있으며, 지식iN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불펌을 방조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곳에서 이전에 답변한 것이 그대로 올라와 있거나, 몇 글자만 바뀌어 올라오는 등의 일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네이버로 수천만의 검색을 유입시키지만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네이버는 현재 인각종 검색 결과를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정치와 관련된 검색 조작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실제로 검색 조작 청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네이버가 검색 점유율 80%를 점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특정 정치세력이 네이버의 검색 통계를 일방적으로 이용할 경우 정치적으로 무기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그림 1 Naver 시작화면 (2016.04.07.)2. 구글 (www.google.com)구글의 이름은10 ^{100}을 뜻하는 구골을 고의적으로 변경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매우 큰 유한수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엄청난 규모의 검색엔진을 만들겠다'는 설립자들의 목표와 일치했으나 당시 이미 '구골'이라는 사이트가 존재하여 구글이 되었다.그림 2 페이지랭크의 알고리즘구글은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이고, 특히 영어권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특히 취약하다. (한국의 경우 2016년 현재 점유율 0.78%)구글 검색의 특징 중 하나는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의 링크를 분석하여 많이 연결된 페이지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인데, 이것을 페이지랭크(PageRank)라고 한다. 구글은 연관성이 높고 접속빈도가 잦고 신뢰도가 높은 링크를 우선시 하고, 특정 링크의 클릭률이나 특정 링크가 얼마나 많이 링크되었는지를 기록해 '연관성'점수를 부여한다. 구글은 이렇게 정량화된 값과 함께 최첨단 텍스트 검색 기술을 도입해서 검색 하나하나에 관련된 결과를 보여준다. 구글은 모든 성능을 매일 향상시키고 있지만, 페이지랭크는 여전히 구글의 핵심기능이다.하지만 구글은 이런 검색기능에도 불구하고 네이버와 다음에 밀려 국내에서의 점유율은 1%가 채 되지 못한다. 네이버의 경우 포털화를 통해 여러 서비스와 어마어마한 양의 광고를 동시에 제공하면서 우리나라 포털사이트 1위로 자리매김했고, 구글은 웹 검색과 광고를 분리해 검색 서비스를 단순화했다. 또한 구글은 현재 광고 외에도 많은 사업과 몇몇 수익원을 두고 있다.그림 3 Google 시작화면 (2016.04.07.)3. Bing (www.bing.com)빙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검색엔진으로, 2009년 6월 1일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출시이후 꾸준한 점유율 상승을 보였으며 2009년 11월 미국에서 검색엔진 점유율은 10.3%이다. 2009년 12월 Bing은 한국의 검색결과에 다음의 검색결과를 노출하기로 제휴를 맺었다. 2016년 현재, Bing은 한국에도 전세계와 같은 검색결과를 내보내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서의 점유율은 0.62%이다.Bing의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Bing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데, Bing은 매일 새로운 홈페이지 이미지, 비디오 또는 파노라마를 제공한다. 이 이미지는 없앨 수도 있으며 배경 화면을 클릭하면 배경화면과 관련된 링크로 넘어간다. 또한, 메인 화면 왼쪽 바로가기 창으로 비디오, 쇼핑, 뉴스, 지도, 여행, 보이는 검색 등을 제공한다. 50개 이상의 다양한 언어로 제공되고, 검색서비스 외에도 증시, 환율등의 실시간 정보와 건강, 문화와 관련된 정보도 제공한다. 또, 계산기, 달력, 사전과 같은 부가기능도 제공하고, 물건을 사면 빙 머니로 환급이 된다.그림 4 Bing 시작화면 (2016.04.07.)4. 다음 (www.daum.net)다음은 대한민국의 포털사이트로서, 한메일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웹메일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웹메일 서비스로 시작하여 검색, 아고라 등의 기능을 도입하며 포털사이트로 거듭났다. 00년대 초반까지 한국 포털사이트 시장점유율 1위였지만 2000년대 중반이후 '지식in'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에 밀려 현재는 약 10%의 점유율로 2위이다.다음 검색은 카페, 뉴스, 동영상 검색을 중심으로 한국의 검색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며, 2003년 3월 구글(웹 문서 검색)과 제휴를 체결하여 기능을 강화하였다. 2009년 5월에 구글 웹 문서 제휴계약 종료되었고, 이후 자체 웹 검색 결과를 노출한다. 또한 아고라와 티스토리등의 독자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4년 카카오와 합병했다.그림 5 Daum 시작화면 (2016.04.07.)5. ZUM (www.zum.com)줌(zum)은 이스트소프트의 계열사인 줌인터넷이 운영하는 포털 사이트이다. 2011년 8월 4일부터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여 2011년 9월 21일에 공개 서비스로 전환하였다.Zum은 꽤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높여왔는데(2016년 현재 1.3%), 이는 사실 알집, 알툴바, 알약 등등 자사의 무료 프로그램을 설치/업데이트할 시 줌으로 시작페이지를 변경하거나, 줌 검색창을 삽입하거나 새 탭 버튼 클릭시 줌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등 줌을 이용하게 만드는 옵션들을 넣어뒀기 때문에 잘 모르고 체크 끄는걸 잊은 사람들 때문이다.zum은 '사람 손 탄' 검색을 지향하고 있다. 타사 검색결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고, 광고가 적다는 장점도 있다. zum은 기존의 포털의 좋은 자료는 한번에 연결해주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좋은 사이트는 소개해 주는, 붙잡아두려고 하지 않는 개방형 포털이다. 개방형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민주화 과정에 관한 심층적 고찰담당 교수님: 김흥주 교수님제출일: 2016년 6월 23일소속(학번): 의예과 2016291004이름: 이혜승목차Ⅰ. 서론Ⅱ. 이론적 논의1. 민주주의의 정의2. 민주화에 대한 접근법3. 민주주의의 공고화Ⅲ.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민주화 과정1. 1945년 ~ 1953년2. 1954년 ~ 1960년3. 1960년 ~ 1979년4. 1979년 ~ 1986년5. 1987년6. 1987년 ~Ⅳ. 결론I. 서론2015년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은 full democracy에서 flawed democracy로 하락되었다. 민주주의 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에는 선거절차 및 다원주의, 정부의 기능, 정치참여, 정치문화, 시민의 권리의 5개 항목이 있다. 이중 한국은 선거절차 및 다원주의에서 0.42점의 감소가 기존의 완전한 민주주의라는 평가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평가받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민주주의, 그중에서도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우리나라에서 선거절차 및 다원주의에서의 퇴보가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수백년에 걸쳐 민주주의를 이룩한 서구에게서 민주주의를 학습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서구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모델의 이론적 적실성과 현실적 적용의 문제점 등에 부딪혀 한국은 민주화 과정에서 혼돈과 정체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1948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민주주의 제도를 경험한 적이 없던 국민들은 정치의식이 성숙치 않은 상태였고, 집권자들은 이 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권 연장을 위해 자의적으로 제도를 바꾸기도 했다. 대통령 선출방식을 간선제로 임의로 변경하거나 사사오입의 해괴한 논리를 적용하기도 했으며, 장기 집권을 위해 유신과 같은 반민주적인 체제를 만들기도 했다. 개발 독재라 불리는 경제개발을 내세운 권위주의와 독재, 그에 따른 정통성의 위기, 언론탄압, 노동계급에 대한 착 민주화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는 립셋(S.M. Lipset) 의 고전적 민주화 이론이 구조적 접근법을 택한 이론이다.이에 반해 과정적 접근법은 사회를 각 개인들의 합으로 파악한다. 사회적 행위자로서 개별적 행위자들 혹은 집단적 행위자들이 취하는 행위의 합이 사회를 움직이는 동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 따르자면, 민주화는 시민계급의 도전, 지배계급의 응전 등 행위자들의 행위에 의해 좌우된다. 행위자의 리더십과 타협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는 오도넬(G. O'Donnell), 러스토우(D.A. Rustow), 슈미트(P.C. Schmitter) 등의 이론이 '과정적 접근법' 을 택한 것이다.양자가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다. 구조적 접근법은 '결정론적' 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제반구조만을 너무 중시한 나머지, 행위자의 행위와 선택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정적 접근법은 주지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제반구조야 어떻든, 주요 행위자의 행위와 선택에 따라 민주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최근에는 구조적 접근법의 결정론적 시각이라는 약점과 과정적 접근법의 주지주의적 시각이라는 약점을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두 가지의 접근법을 전략적 상호작용론의 관점에서 통합할 것이 제의되고 있다. 전략적 상호작용론의 관점에 따르면 구조적 조건은 주요 행위자가 갖는 선택의 범위를 규정하고, 이 선택의 범위 내에서 민주화 여부와 그 패턴은 각 행위자의 선호와 세력, 행위자간의 연합관계 및 투쟁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제 3세계 국가들의 민주화를 분석할 때, 다음과 같은 결과가 산출된다.3. 민주주의의 공고화이러한 과정을 거쳐 권위주의적 체제가 민주주의적 체제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민주화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체제의 침식, 민주체제로의 전환 뒤에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과제가 남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공고화란, 구성원들이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 규범과 제도 등을 내면화 습관화 하고 민주주의의 규칙에한의 단독정부가 들어서고 북한 또한 독자적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한다. 해방 직후 한국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과 소련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남과 북에서 자신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한다. 결국 이러한 한국에서의 냉전체제는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비극을 불러온다.전쟁은 미처 아물지 못한 분단의 상처에 더해진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한국전쟁은 내전이기도 한 동시에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충돌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3년여에 걸친 전쟁은 약 450만 명의 사상자를 남긴다. 또한 인구 절반에 가까운 1000만여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고 정전에 들어갔다.2. 1954년 ~ 1960년1950년대의 대한민국은 전쟁이후 폐허가 된 상태였고 절대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이를 외면하고 무력을 동원해서 개헌을 하고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를 해 영구 집권하고자 했다. 이러한 정권을 끌어내린 첫 사건이 바로 4.19 혁명이다. 4.19혁명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그 첫 승리였다.대통령 이승만은 전쟁 중에 몰래 부산으로 피신하고, 녹음방송을 라디오로 내보낸다. 이에 국회에서 재선이 어려워지자 무력을 동원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킨다. 이승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통령 연임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개헌을 또 한 번 강행한다. 제 4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 부정한 방법은 극에 달한다. 공무원과 경찰동원, 그리고 3인조, 5인조 투표. 유권자보다 득표수가 많아 투표함을 불태우는 등 상상을 초월한 부정선거로 이승만은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국민들은 민주화운동 역사의 첫 번째 기록을 만든다. 마산에서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고등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학생과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부정선거 무효와 이승만 퇴진을 요구했다. 집권당은 정치깡패를 동원해 시위대를 폭행했고,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시위대는 1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180여명이 사망했다.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이 협정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박정희 정권은 의욕적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다. 국민들은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산업현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재벌위주의 경제성장은 지역과 산업 간의 불균형을 초래했고 농민을 도시빈민으로 전락시켜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밤낮으로 일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노력으로 한국은 단기간에 산업화 도시화의 고도성장이란 기적을 만든다.사회적으로는 박정희의 집권연장을 규탄하는 시위로 전국이 들끓었다. 대통령을 3번 연임할 수 있게 하는 개헌안을 박정희가 변칙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3선 개헌과 부정부패에 반발한 국민들의 거센 저항은 박정희 정권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했다. 결국 박정희는 마지막으로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라는 호소와 그의 부정선거를 통해 제 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1970년대에 들어서자 민주화의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71년 7월에 판사들이 집단 사표를 내는 사법부 파동이 있었고 정치적으로 도전을 받아 여당 내부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권존립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는 무장군인을 대학교에 배치시키고 반정부세력인 대학생을 강제로 군대에 보내는 등 더욱 강력한 사회통제수단을 강구하게 된다. 결국 박정희는 자신의 영구집권보장을 위한 유신헌법을 만든다. 유신헌법은 3권 분립, 경쟁적 선거제도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전면 부정하며 대통령 한사람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법률이었다. 박정희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이 법률의 논의를 금지시킨 가운데 유신헌법을 확정한다. 유신헌법 확정을 통해 박정희는 국회를 사실상 자신 개인의 권력도구로 전락시켰다.1972년 12월 23일, 단독 출마한 박정희는 유신헌법으로 조직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단 하나의 반대표도 없이 제 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해진 임기는 있지만 연임제한이 없는 유일무이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의 국제법학자협회에서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32년이 흐른 2010년이 되어서야 대법원 재심을 통해 무죄임이 밝혀졌다.1979년 8월 11일 제1야당 당사에서는 폐업철회를 요구하는 YH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야당당사에 진입해 이들을 무력으로 강제 연행한다. 이 과정에서 야당 총재인 김영삼과 의원들이 폭행을 당한다. 박정희는 사건직후 강도 높게 정권을 비판하던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시킨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 붕괴에 결정적 도화선이 됐다. 1979년 10월 16일, 한강에 11번째 다리가 개통되던 날,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는 박정희 독재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다. 이튿날, 시위는 부산시민들의 대규모 합세로 시민항쟁의 양상을 띄어간다. 박정희가 유신을 기념하던 시간에도 시위는 더욱 거세져 이튿날 부산 전 지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된다. 4.19이후 최대 규모의 반독재 투쟁이었다. 항쟁은 마산으로 번져갔고 이들의 투쟁은 계속돼 유신체제의 종말을 앞당긴 계기가 되었다. 부마민주항쟁으로 박정희 정권의 내부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10월 26일 오전 박정희는 여느 때와 같이 산업시찰을 나왔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행사였다. 그날 저녁 박정희는 시위 강경진압에 반대하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피살됐다. 집권 18년, 유신7년만의 일이었다.4. 1979년 ~ 1986년박정희 군사정권이 사라진 뒤 열렸던 민주주의의 희망도 잠시, 또다시 군인들이 한국사회를 점령한다. 그들은 민주화의 열기를 꺾고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다.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5.18민중항쟁의 희생정신을 이어받은 시민들의 반독재 투쟁은 계속되었다.18년 군사정권이 사라진 후 학교 내의 경찰들이 철수하고 민주인사들이 석방되는 등 시민들은 드디어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넘쳤다. 이른바 서울의 봄이었다. 그러나 서울은 다시 군인들로 점령당한다. 이들은 불법적인다.
위대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타미플루 개발자2016291004 이혜승1. ‘신종 플루’의 유행2009년 대한민국에는 ‘신종 플루’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인플루엔자A/H1N1이 대유행했었다. 이 인플루엔자의 전염을 막기 위해 특정 국가 방문이 지양되고, 학교 수련회가 취소되기도 하는 등 전국이 떠들썩했었다.그림 1 신종 플루 현황(2009.8.31.) 이렇게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인플루엔자A/H1N1은 타미플루라는 바이러스 치료제덕에 사그라들게 되었다. 중앙일보에서 제시한 질병관리본부의 자료에 의하면 2009년 8월 31일 기준 신종 플루의 전 세계적인 치사율은 0.95%였고, 대한민국의 치사율은 0.09%였는데, 타미플루와 리렌자 등의 인플루엔자 치료제가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 등에 비해 치사율이 그나마 낮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2. 인플루엔자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징인플루엔자(Influenza, 유행성감기)는 오소믹소바이러스과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감염성 질환을 뜻한다. 흔히 독감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는 A, B, C 타입이 있는데 인플루엔자 C는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고, A는 조류와 사람에게, B는 사람에게 감염된다. B형은 바이러스의 변이가 거의 없고 증상이 심하지 않은 반면, A형은 B형에 비해 변이가 3~5배정도 더 잘되고, 그 증상이 가장 심하다.그림 2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구조 신종인플루엔자 범 부처 사업단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소개에 의하면 인플루엔자 A, B, C는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비리온의 크기는 80~120nm 정도이고, 감염 초기에는 필라멘트 모양이지만, 후기에는 원형이 된다. 비리온 외부에는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제라는 당단백질이 위치하고 있는데, 헤마글루티닌은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하는 것을 돕고, 뉴라미니다제는 숙주세포 내에서 형성된 새로운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서 방출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러스 중앙부에는 RNA와 바이러스성 단백질이 존재한다.인라미니다제의 작용을 방해하는데, 뉴라미니다제를 숙주세포와의 결합을 끊어내는 가위로 비유했을 때 타미플루와 리렌자는 가위 사이에 무언가를 끼워 넣어 가위가 들지 않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이미 감염된 세포에 대한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감염의 확산을 막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인 것이다. 이때, 타미플루는 뉴라미니다제에 대해 경쟁적 억제제인 반면 리렌자는 효소에 직접 작용하여 타미플루에 비해 더 빠르게 작용한다. 하지만 중앙일보에 의하면 리렌자는 흡입식이어서 소아나 노인이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컸고, 그에 따라 현재는 타미플루의 시장 점유율이 90%정도라고 한다.앞서 소개했듯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RNA형태의 핵산을 갖는데, RNA는 단일가닥이어서 DNA를 핵산으로 갖는 바이러스에 비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가 매우 빠르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치료제 개발에 실패했고, 치료제를 개발했다 하더라도 바이러스에 변이가 일어나서 치료제가 더 이상 듣지 않게 되곤 했다.이때, 피터 콜먼 박사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뉴라미니다제 부분은 변이가 일어나더라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1990년에 그를 타겟으로 삼는 항바이러스제 리렌자를 개발했고, 1999년 미국 FDA의 허가를 받았다. 리렌자는 알약형태로 먹으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입이나 코로 분사해야만 했다.재미과학자 김정은 박사는 1994년, 네이처에 실린 리렌자에 관한 논문을 보고 타미플루의 개발을 생각했다. 리렌자는 흡입해야한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에 알약형태의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한다면 개발 시기는 좀 늦어도 충분히 승산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렇게 1996년에 김정은 박사와 그의 연구팀은 타미플루 개발에 성공했고, 스위스의 로슈가 특허권을 사들여 1999년부터 미국 등에 판매되기 시작했다.4. 김정은 박사의 일생과 길리어드 사이언스조선일보의 기사와 ACS Departure of Medical Chemistry에 의하면 김정은 박사는 일본에서 태어나 약 20년간을 가 리렌자 밖에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제약회사들은 타미플루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아직 작은 벤처 제약사였던 길리어드는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에 특허권을 넘겼다. 이때 받은 로열티로 길리어드는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또한 타미플루의 개발로 길리어드는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투자도 많이 늘었다. 늘어난 투자로 더 많은 연구를 한 길리어드는 수많은 신약을 개발하는 등 계속 발전하여 직원 수 7900명, 연간매출 10조원에 육박하는 세계적인 제약사가 되었다.5. 김정은 박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가?“Zanamivir was first synthesised in 1989 by scientists led by Peter Colman and Joseph Varghese at the Australian CSIRO, in collaboration with the Victorian College of Pharmacy, and the Monash University.” 이 문장은 Wikipedia에서 Zanamivir(리렌자의 주 성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내용 중 History의 첫 문장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백과사전에 리렌자를 검색해도 피터 콜먼이 나오고, 피터 콜먼 독자적으로도 위키피디아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만큼 리렌자의 개발자인 피터 콜먼은 훌륭한 의학자였다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하지만 Wikipedia에서 Oseltamivir를 검색했을 때 History의 첫 문장은 “Oseltamivir was discovered by scientists at Gilead using shikimic acid as a starting point for synthesis; shikimic acid was originally available only as an extract of Chinese star anise but by 2006 30% of the supply was manufactured recombinantly in E. co과가 나올까? 고려대학교에서 작성한 내용, 카이노스메드 홈페이지에 있는 김정은 박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 등 영문으로 작성된 국내의 자료가 대부분이고, 신빙성이 떨어지는 자료를 제외하면 Choung Un Kim PhD.에 대한 내용은 한 가지 밖에 남지 않는다. ACS Division of Medical Chemistry에서 이 모임의 일원인 김정은 박사에 대해 다룬 내용이다. 김정은 박사의 일생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한 페이지가 그것이다. 이 또한 아직 자료가 업데이트되지 않아 이 페이지에는 김정은 박사가 길리어드 사이언시스의 화학분야 부회장이라고 나와 있다. 현재 김정은 박사는 2012년 초부터 카이노스메드에서 연구개발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ACS Division of Medical Chemistry 홈페이지 확인날짜가 2016년 4월이니 최소한 4년간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것이다.또한, 타미플루를 개발 한 이후 부회장직(Vice President)을 맡았던 길리어드 사이언스에서도 김정은 박사에 대한 내용은 찾기가 힘들다.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Press Realeases에 있는 해외 언론에 딱 한 번 언급되어있는데, “These data will be presented today at the 36th Interscience Conference on Chemotherapy and Antimicrobial Agents (ICAAC) in New Orleans by Choung U. Kim, Director of Medicinal Chemistry at Gilead Sciences.”이 그것이다. 이는 김정은 박사가 타미플루라는 신약을 발표할 것이라는 내용이고, 김정은 박사가 타미플루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내용은 Director of Medicinal Chemisty라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이렇듯 김정은 박사는 모국인 대한민국에서나 저명한 화학자일 뿐, 세계적으로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이것이 과연 김정은 박사에게 합당한S에서 수여한 상뿐이다.반면에 위키피디아 및 각 시상기관 홈페이지에 의하면 피터 콜먼 박사는 1989년 FAA, 1996년 Australia Prize, 1997년 FTSE, 1999년 James Cook Medal, 2004년 Florey Medal을 수상했다. 또한, 콜먼 박사는 영국왕립학술원의 회원으로 2014년 발탁되었다.물론 김정은 박사와 피터 콜먼 박사는 아주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피터 콜먼 박사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도 유효한, 뉴라미니다제에 작용하는 최초의 치료제를 개발한 사람이라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노인과 어린아이는 흡입해야하는 리렌자를 투약하기가 힘들었고, 그에 따라 인플루엔자에 바이러스에 대비한 항바이러스제의 비축에 있어 타미플루가 전체 양의 90%정도를 차지했다. 또한, 타미플루의 개발 이후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었던 환자 중 대부분은 타미플루를 먹었을 것이고, 이는 김정은 박사의 타미플루 개발이 인류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경구용 약으로 대중이 거부감 없이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접할 수 있게 한 김정은 박사와 그의 연구도 충분한 가치가 있고, 이제는 그 가치가 인정받아야 할 때이다.물론 김정은 박사는 타미플루의 개발로 많은 돈을 벌었고 국내에서는 명예도 얻고 인정받았지만, 아직 세계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많은 상을 수상하지도, 큰 상을 수상하지도 못한 김정은 박사는 누구보다도 깊은 인류애와 뜨거운 연구열정으로 가득한 의학자이다.현재 김정은 박사는 하버드 대학에서 시기는 달랐지만 같은 교수(코리 교수) 밑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은 카이노스메드의 강명철 대표와 함께 일하고 있다. DailyMedi에서 김정은 박사와 진행한 인터뷰에 의하면 김 박사는 앞으로는 ‘에피지노믹스 암’에 대한 연구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에피지노믹스는 세포의 DNA 염기서열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염색질은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를 통해 부작용이 적은 새로운 암 치료제를 sp
연세대학교 글쓰기 YSCEC 과제 영화 감상문 초고파인딩 포레스터에서 찾은 프리라이팅2016291004 이혜승글쓰기 시간에 보게 된 는 꿈과 글쓰기에 대한 영화이다.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미국의 한 빈민가에 사는 주인공(자말 윌러스)이 단 한권의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포레스터라는 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을 계기로 자말의 문학적 천재성을 알아본 포레스터가 그를 문학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이다.다음은 영화의 대사이다.“글을 쓰는거야. 키를 두드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생각은 하지마. 생각은 나중에 해. 우선 가슴으로 초안을 쓰고 나서 머리로 다시 쓰는거야. 작문의 첫 번째 열쇠는 그냥 쓰는거야. 생각하지 말고.”“가끔은 타이프의 단조로운 리듬이 페이지를 넘어가게 해주지. 그러다 자신만의 단어를 느끼기 시작하면 쓰기 시작하는거야.”퓰리처상 수상자 포레스터가 제시하는 글쓰기의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쓰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오류가 생기진 않을까, 스토리가 뒤죽박죽이 되진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무조건 써보라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 방식은 ‘프리라이팅’이라고 하여 복잡하게 생각해서 차분하게 쓰는 방식이 아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글로 옮겨 쓰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작문방법 중에 하나이다. 창조적인 부분을 극대화시키고, 비판적인 부분은 극소화시키는 글쓰기 방법으로, 글쓰기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한 마디 표현이 천 단어의 가치가 있다.“포레스터가 자말에게 해준 이 말은 내게도 큰 교훈을 주었다. 나는 표현이 매우 서툰 편이다. 막상 말을 뱉고 나면 내 생각과 다른 의미로 전달되기도 하고,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난 생각을 정리하고 정확히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쓰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쓴 글을 보면서도 그 글에 만족했던 적은 없었다. 어딘가 미숙한 표현이 있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그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듯 했다. 내겐 아직도 천 단어의 가치를 담은 한 마디를 표현하기엔 글을 쓰는 능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프리라이팅을 통해 글쓰기를 연습하고 글 쓰는 능력을 단련시키다 보면 말 한마디고 천 냥 빚을 갚을만한 말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꿈에서 멀어져 간다.”위의 글은 의 명대사 중 하나이다. 자말은 문학적 천재성이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말의 불우한 배경을 보고 그의 재능을 의심하고 시기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무시 같은 외부의 장애물보다는 성공에 대한 두려움 등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꿈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이다. 자말처럼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