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만세전」 서평염상섭의 소설 중 「만세전」의 서평에 앞서,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의 문학관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해 살펴본 후 줄거리를 설명하고, 소설의 구조와 흐름에 바탕을 두고 그 속에 내포된 의미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만세전」에 대한 나의 의견을 토대로 종합적인 평가를 하도록 하겠다,염상섭은 1920년 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염상섭은 3·1운동 직후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염상섭은 자연주의 소설에 속하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주목받았으나 「만세전」을 통해 개성에 대한 자각을 통한 삶의 전체성에 대한 인식에 접근한 사실주의 작가로 주목 받고 있다. 「만세전」은 1922년 잡지 《신생활》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3회 연재도중 제지를 받았다가 1924년 《시대일보》에서 「만세전」이라는 이름으로 완결된 작품이다. 그리고 「만세전」으로 하여금 일본에게 민족의식을 표출하고자 했을 것이다. 염상섭이 살았던 1920년대 상황은 민족의식을 강조하며 반식민운동과 신문학 운동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3·1운동 이후 완결된 「만세전」또한 암울하고 미래가 없던 시기의 좌절과 피폐된 현실을 지식인 청년의 눈을 통해 꿰뚫어보는 작품이다.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 동경 W대학 문과에 재학중인 ‘나’ (이인화)는 기말시험 중도에 아내가 위독하다는 급전을 받고 급작스레 귀국하게 된다. 경역에서는 여급 정자와 이별을 하고 고베에서는 을라 라는 여자 친구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날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되면서부터 검색을 당하고 감시를 받게 된다. 이러한 수모를 겪으면서 대사회적인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다. 스물 두셋의 책상도련님인 이인화는 탁상공론이 아닌 실인생·실사회의 이면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인화는 부산의 거리 구경을 나섰다가 식민지 도시의 일제에 의한 경제적 침탈, 조선인의 몰락과 이주를 목격한다. 이러한 상황은 김천의 보통학교 훈도인 형님과 주변 인물들의 몰락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또한, 서울까지 가는 기차와 대전역에서 만난 군상들의 찌든 모습 속에서, 서울에서는 정치열과 명예욕에 들뜬 아버지와 이를 부추기는 김의관, 종손으로 무위도식하는 종형 등을 통하여 차례로 발견된다. 가족제도로 대표되는 봉건적 윤리 의식, 권력에 대한 열망과 굴종으로 나타나는 관료전제적 사고가 식민지 사회의 비리와 어울려 빚는 비극을 ‘무덤’으로 인식하면서 자전적인 성찰의 양상을 드러내게 된다. 아내가 죽자 냉연한 자신에게 가책하며 초상을 치른다. 그리고 아들 중기를 형님에게 맡긴 뒤, 정자에게는 마음을 정리하는 편지를 보내고 학업을 위하여 동경으로 떠난다.위의 줄거리에서 보듯 「만세전」의 이야기는 주인공 ‘이인화’가 동경에서 경성으로 귀환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부분에서 ‘그러나 일전에 온 편지의 말대로 위독하다는 말은 없고, 어서 나오라는 명령과 전보환을 보낸다는 통지뿐인 것을 보면,’ 이라는 문장을 보면 ‘나’는 나오라는 명령을 받고 귀국을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강제로 귀국 하게 되는데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한 여로에 따라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고,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민족적 의식이 전환되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처음의 이인화가 동경에서 출발할 때에는 민족문제, 정치적 문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고 무슨 일이건 소극적이게 행동했었다. 그러나 그가 전보를 받고 자의가 아닌 타의적 귀국을 함으로써 점점 적극적인 사고를 갖는 내면적 성숙을 이룩함으로써 당시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인화의 내면은 우울함과 고독감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이는 식민지 청년의 비애에서 오는 내면적 울분이었고, 이런 모습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인화가 시모노세키에서부터 부산에 오는 중간부분에서는 이인화가 민족문제나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동기가 드러난다. 일본인들의 계속되는 감시와 천시하는 태도, 연락선 목욕탕에서는 조선인들을 인신매매하며 일본 각지의 공장노동자로 팔아먹는 일본인의 이야기를 듣고, 부산에서는 황폐해진 조선의 현실을 보게 된다. 일제의 억압 현실 속에 놓여 위축된 조선인들의 구체적 생활상을 목격하고 경제적 착취로 인한 곤궁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또 부산에서 일본인들 중에서 국숫집 여급들에게 무시당하는 사건 등을 통해 이인화는 지식인으로서 민족문제를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의 모습에 여러 번 회의를 느낀다. 따라서 이런 의식의 확대가 일어나는 여로 구조에서 ‘길’은 식민지 현실을 잘 보여준다. 기차는 근대적 산물의 대표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부산에서 경성으로 기차가 가는 길은 문명의 길이라고 내세워지지만, 착취의 길이며 민족을 권력이나 폭력으로부터 꼼짝 못 하게 하는 길인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김천과 서울에서 가족들과의 만남이다. 작은 형수를 두고 이인화와 형의 대화, 술자리에서 나온 산소문제를 두고 절대 부모님을 공동묘지에 모실 수 없다는 형의 모습을 보고 이인화는 전근대적인 가족 윤리와 식민지 지배 권력 간의 관계를 비판하게 된다. 자신의 가족적 문제를 통해 이인화 당시 조선인들 전체에 대한 비판의 사고를 한다. 이렇듯 동경에서 경성까지 이동하는 귀환과정은 이인화의 의식이 개인적인 것에서 점차 사회적인 것으로 확대되는 과정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이런 구조와 흐름 속에서 염상섭은 이인화를 통해 말하려고 한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염상섭은 본인이 활동하는 1920년대 한국사회 전체를 나타내고 표현하기 위해 이인화를 설정했다. 염상섭은 이인화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반영 하면서 민족의식을 드러냈고, 동시에 지식인의 모습으로 봉건적 생각을 갖고 있는 조선인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중첩되는 모순을 밝히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1920년대 리얼리즘 소설들을 보면 대부분 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으나 동경 유학생 이인화라는 지식인의 삶을 통해 사회문제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인화는 조선의 근대화와 민족의식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며 염상섭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던져줌으로써 다음 나올 소설들과 작가들의 문학관에도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 본다.소설에서 ‘묘지’나 ‘무덤’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단락들이 자주 나타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에 대한 의미 또한 생각해보았다.‘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속에서 살면서 죽어서 공동묘지에 갈까 봐 애가 말라하는 갸륵한 백성들이다!’, ‘공동묘지 속에서 사니까 죽어서나 시원스런 데 가서 파묻히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하여간에 너도 구더기, 나도 구더기다. 그 속에서도 진화론적 모든 조건은 한 초 동안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겠지! … ’이인화는 조선을 묘지라고 표현하고 벗어나고 싶어하는 탈출의 의지를 보인다.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이인화의 절망감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직접 조선을 와서 현실을 보니 동경에서 이인화가 생각하고 추구하던 개인들의 삶이 보장되는 생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공동묘지처럼 일제의 억압과 폭력에 의해 획일 된 삶과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생활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죽음과도 가까운 조선인들의 생활을 보고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민족의식의 전환을 가지며 조선인들의 소극적 삶에 대한 비판밖에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저런 표현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작품에 표면적으로 이런 의지가 나타나면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현실의 반영으로 인해 3·1 운동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보여준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