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공학과 제4차산업혁명과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박 서 영4)신한대학교 자동차공학과4)?A Case Study on Speed Analysis of the Rear-end Collision AccidentSeoyoung Park4)?4)Department of Automotive Engineering, Shinhan University, gyeonggi-do 11644, Korea(Received / Revised / Accepted)Abstract: AI(Artificial Intelligence) is a sector leading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and robots, drons, autonomous vehicles etc. adopting AI are sectors supported by state over the world. Countries have tried to develop and commercialize autonomous vehicles, because the auto industry is the biggest market in the world, and is looked for great role as a industrial engine.Ketword : Autonomous vehicles (자율주행자동차), 4th industrial revolution (4차 산업혁명),AI (인공지능), Automobile Management Act (도로교통법), Road Traffic Act (자동차관리법)1. 서 론Transactions of the Korean 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 Vol. , No. , 해당연도한국자동차공학회논문집 제 권 제 호, 해당연도Transactions of KSAE, Vol. , No. , pp. - (해당연도) Copyrightⓒ해당연도KSAE/pISSN1225-6382/eISSN2234-0149*초록색 글씨 부분은 그대로 두시면 됩니다. DOIhttp://dx.doi.org/10.7467/KSAE4차 산업혁명은 기존 1∼3차 산업혁명과 달리 의식적인 산업혁명인 동시에 사회혁명이다. 경제 영역은 물론이고 정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이 새롭게 혁신해야 그 끝자락이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로드맵을 특정 부처가 아닌 범정부 차원에서 준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산업계의 자발적인 혁신 못지않게 범정부 차원의 국가적인 생태계 혁신이 결정적인 요소라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을 대응하면서 정치권과 정부의 변화 및 혁신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 부 부처 사이의 장벽 그리고 그들 간의 싸움과 정치권의 알력이 국가 혁신의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많은 사람이 느끼는 바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격의료 인프라와 서비스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기득권자들의 이해다툼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헛고생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법 개정안이 매번 상정되고 있지만 번번이 정치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의 반발 때문이다. 혁신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공감하지만 기득권자의 물리력과 정치권의 비협조로 조금의 진전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 혁신 또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이지만 전문가들조차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당수 학자들이 "우리 교육은 미래에 전혀 필요 없는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암기식 교육의 서열화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아무런 꿈과 희망도 갖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융합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관건이다. 때문에 국가 기술 산업이 혁신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기술과의 융합이 필수적이며 이를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부 부처 간의 협업 및 법제도의 혁신이 선행 또는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멀다. 4차 산업혁명과 자동차 공학의 융합은 그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된 사례가 없다. 대표적인 것이 십여년 이상 논쟁만 계속하고 있는 원격의료와 원격교육. u-시티는 스마트도시로 이름을 바꿨어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차 역시 제조와 통신사 간 기득권 경쟁이 한창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자동차 교통사고는 줄어들지 않으며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는 이중 추돌사고 중 대다수는 운전자가 판단이나 자동차 작동에 오류를 범하였기 때문이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운전행태를 개선하는데 중점을 두는 외에도 우선적으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동차 운행에 있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동화된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자동화된 기들이 집적되고 상호 조직된 완성체로 형성된 것이 바로 자율주행자동차이다. 자율주행자동차는 탑재된 인공지능(AI)이 도로상황, 주변 환경 등을 인식하여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이 주입됨으로써 안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계산하기 때문에 인간의 운행보다 안전하며, 상용화를 앞두고 현재시점에서 법과 규제 등의 제약이 없도록 조치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측면과 법제도적 측면에서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상의 안전 확보를 위한 검토 또한 수립되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자율주행자동차의 개요와 자율주행자동차 안전운행을 둘러싼 정책수립과 운행에 이르기까지의 관리단계별 입법적 대응의 필요성, 그리고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에 직면하여 조율되어야 할 현행법령 중 ?자동차관리법?과 ?도로교통법?에 대하여 검토한다.2. 본론2.1 자율주행자동차의 개요자동차는 사람이 원하는 장소로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의 이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원하는 장소로 재화를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여 경제적 부가가치의 창출에도 이바지한다. 이와 같이 자동차가 혁신의 시대를 거쳐 자율주행 자동차로 변화되며, 자율주행자동차는 기술단계에 따라 구분이 되나, 궁극적으로 운전자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를 지향한다. 현재 자율주행자동차는 레벨 3~4의 수준으로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국내외 자동차업계에서는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 시기를 빠르면 2020년부터 2030년 안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자동차관리법 제2조제1의3호에 따르면 운전자 또는 승객의 조작 없이 자동차 스스로 운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의미한다. 따라서 를 자율주행자동차로 정의하고, 자율주행자동차를 시험 ? 연구 목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임시운행 허가 제도를 신설함으로써 자율주행자동차의 개발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법률을 개정한다. 이 같은 법률상의 정의 외에도 자율주행자동차는 기술적으로 각종 센서나 카메라, GPS 등 각종 센서를 통해 얻은 영상이나 위치정보를 근거로 하여 경로를 추종하고 위험한 장애물을 피하고 최종적으로 목적지로 안전하게 이동해주는 자율형 로봇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자율주행자동차는 스마트 자동차, 지능형 자동차, 무인자동차 등과 혼용하여 사용되기도 한다.2.2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의 안전을 위한 공법적 검토 요소운전자의 개입이 없이도 자율주행자동차가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유형의 기술력들이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술영역들은 이용자와 자동차간의 인터페이스, 자동차 내부운행데이터 수집 센서, 외부도로에 대한 정보제공 센서, 인공지능 등으로 구분되고, 각각 법적 내용들이 호응하고 있다. 첫째로, 이용자와 자동차 인터페이스는 이용자와 자동차간의 상호작용에 핵심적인 법적쟁점은 법적책임에 관한 것이다. 시동스위치, 바이오 메트릭 센서, 그 외 시동조작부 등 사람은 기존의 운전자에서 운영자로 역할이 바뀌게 된다.두 번째로 자동차 내부운행데이터 수집 센서는 자동차내의 브레이크, 트랜스미션, 스티어링과같은 내부장치의 작동상황을 검토하는 센서들로 이 센서들의 용량과 구조는 자동차제조사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 또한 외부도로에 대한 정보제공 센서는 위치 및 외부도로환경 데이터를 제공하는 센서들로 수집된 위치정보 및 환경을 인식한다. 날씨로 인한 도로환경의 제공도 여기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은 내외부 정보가 센서로 수집된 후 이것을 통합하고 분석하여 기능하는 컴퓨터 프로세싱이다. 이 장치는 운영체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며, 최소한 인간 의지력보다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인공지능 부분이 정해진 인증 절차를 거쳐 인증 되어야 한다.2.3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 법률영역다양한 법률들은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의 인프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해당 자동차의 안전도와 사고 후 법적책임의 안정성 등은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사회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기반시설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자동차의 운행이 운전자, 자동차, 도로 상태에 따라 사고를 유발한 데 반하여, 자율주행자동차는 시스템이 자동차 제어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기존 자동차 및 도로상태의 완결도에 운전자의 역할이 제외되는 대신에 시스템 오작동, 오정보 제공, 경보 미발령 등 자동차 또는 시스템의 책임이 덧붙여지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고발생의 책임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가 안전운송 규제의 핵심이 된다. 기존의 운전자를 규제하는 방식의 행정행위이론을 그대로 적용할 때, 자율주행자동차 운행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부과되어야할 교통규칙을 준수해야 할 법상 의무의 주체가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차량을 운전하던 운전자에서 시스템으로 변경되게 된다. 이때 운전면허소지자가 자동차 소유자인지 아니면 자동차 시스템이 되는 것인지를 비롯하여 행위의 상대방을 자연인이 아닌 기계로 삼게 되는 것과 같아지므로 이른바 면허의 주체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식, 권력에 대한 성찰 : ‘타자성’에 대하여자동차공학과 3학년20151306 박서영나는 고등학교 국어 수업시간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문학작품을 접하게 됐었는데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알기에 제목만 들어도 그 때를 어렴풋이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 시는 식민치하의 민족적 상황의식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응결된 저항정신을 표출하고 있다기보다는 빼앗긴 국토에 대한 상실감에서 빚어진 영탄과 국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력을 형상화한 다. 이 시가 발표된 시기는 1926년 6월, 일제강점기로, 조선은 점점 식민지 사회가 정착화 되어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이 퇴폐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때였다.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한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는 “식민지”는 무슨 뜻일까? 식민지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자기나라에 속국으로 만들어 괴롭히고 착취하는 것을 말한다. 일제강점기라는 말로 미뤄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사회는 서구에 의해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았다. 같은 동양 국가에 의해, 그것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지배를 당한 경우이다. 그로 인해 당시 식민지배에 있어서는 적어도 서구 사회를 모방하는 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은 서구 열강에 대항하여 자주를 지켜낸 후 서구 사회를 적극적으로 모방함으로 개혁을 추진해갔다. 일본 제국의 지식인들은 서구 문명에 대한 콤플렉스로 심하게 시달렸으며, 끊임없이 서방 세계의 눈치를 살피며 근대화를 추진해 갔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기본 철학이나 방식이 서양의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도 일본이 취한 이런 적극적 모방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나친 서구 중심의 근대화로 인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야기되었다.서구 중심의 근대화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비서구 사회에 속하는 모든 존재를 타자의 범주에 넣고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근대화는 서구의 문명인들이 미개한 비서구인들을 경멸하고 배제하며 그 문화를 파괴하는 과정으로 자리 잡았고 서구적 주체를 내면화시켜가는 타자화 현상이 발생하였다. 타자화 된다는 것은 외부에 있는 초자아에 기대어 자신을 인식하고 그것에 기대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의 문제는 초자아에 기댄 자신의 삶을 자신이 살고 있는 상황에 맞게 계속해서 변화해 나갈 수 없는 현대인에게서 발생한다.조선의 정치적 특성은 왕권과 신권 사이의 세력 균형에서 찾아졌는데, 이 때 신하들이 왕권을 견제하고자 할 때 한문에 능하고 유가적 원리에 밝을수록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점을 이용했다. 타국의 언어를 절대화하는 경향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강하게 지식인 사회에 팽배해 갔다. 세종 때 우리말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한글이 만들어 졌어도 지식인들은 그것을 못 본 체했고 한문을 쓰는 방식에서도 우리말 화 하려는 것이 아닌 외국의 언어를 최대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라는 식민 지배를 받으며 급격한 혼란기를 맞았고 지식인들의 언어는 더욱 실제 삶과 동 떨어져 이중성을 드러내게 된다. 한글과 한문의 이분하는 글자와 말의 분리, 언어와 삶의 분리,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의 분리 현상을 초래했는데, 이런 분리는 본격적인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면서 극복되기보다 심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중세적 사대주의 지식인 문화가 미처 청산될 시간도 없이 제국주의적 침입과 식민지적 근대화 물결이 들이 쳤고 급격한 사회적 변동 과정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타자성이 생겨났다. 결국 타자화의 현상으로 인해 발생되는 언어의 상실은 그 나라의 백성만을 식민지화 시킬 뿐 아니라 문화까지도 타자화 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나는 이번 주제, 지식, 권력에 대한 성찰에 대한 내용을 계속 곱씹어보다 지난겨울, 우연히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의 강연을 들었던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극 사실주의라는 뜻으로,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사진처럼 극명한 사실주의보다 화면들을 추구하는 예술양식을 말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작품들은 그림이 사진과 너무 똑같아서 사진과 그림의 경계선을 혼동하게 되는 작품으로, 쉽게 표현하면 사실원본을 흉내 내는 복제품. 사이비, 짜가 이다. 이 작품들을 보고 난 뒤 나는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굳이 실제를 따라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그림을 그려내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하이퍼리얼리즘의 진짜 역할은 잠깐이라도 그 작품이 허구인지 실제인지, 혹은 사실인지 현실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복제품, 즉 가짜가 너무 똑같다보니 원본이 복제를 베끼게 된다.바로 이런 하이퍼리얼리티가 현대인의 삶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다. 이전에, SNS의 등장이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을 때에는 그저 예쁘고 좋은 곳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은 후 SNS 에 올렸었던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상이 먼저이고 그 후에 SNS 활동이 따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SNS에 올리기 위해서 그 장소에 가게 되었다. SNS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이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삶은 허구가 실재를 쫓아오는 것이 아니라 실재가 허구를 쫓아가게 된다. 결국 이러한 면을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복제품, 공산품이 되려고 노력하고 남들의 틀에 맞추게 된다.
잉투기, 잉여들의 투쟁자동차공학과20151306 박서영나는 우연히 지인을 통해 ‘잉투기’라는 영화를 추전받아서 보게 되었다. 영화 ‘잉투기’에는 믿기 힘들만큼 찌질한 잉여들의 짠내나는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결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는 아니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후일 이런 잉여에서는 벗어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영화 잉투기의 감상문을 써보려 한다.격투 갤러리에서 ‘칡콩팥’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잉여인간 태식은 자신을 포장하며 인증 샷을 찍어 올리는데 갑자기 나타나 태식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젖존슨’과 마주하게 된다. 최콩팥과 젖존슨은 그렇게 인터넷 상에서 혈투를 멈추지 않는데, 그 후 젖존슨은 태식을 현실로 불러내기 위해 태식의 게임 아이템을 구매한다며 접근한 뒤 태식을 급습한다. 이렇게 태식은 젖존슨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게 되지만 싸움을 하는 잉여들을 보고도 주위 시민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이 모습을 찍기 바쁘지만 오히려 말리거나 제지하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시민들로부터 찍힌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태식은 젖존슨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영상이 유포되는 바람에 또 다른 인터넷 안의 수많은 잉여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된다. 이런 이유로 태식은 젖존슨에 대한 치욕감과 분노에 불타고, 결국 젖존슨을 찾아내 같은 방식으로 복수하겠다는 결심에 까지 이르게 된다.그런데 태식의 이 방법은 사실 옳은 방법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째로 현피가 이뤄지는 것은 현실 세상이지만 현피를 뜨는 그 순간에도, 현피에 성공한 순간에도 태식은 인터넷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현피 뜨는 모습을 인증하는 영상을 올리는 곳도 인터넷이며, 젖존슨에게 복수에 성공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도 결국 인터넷에 불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애초에 태식이 무력감을 느꼈던 장소는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 안에서의 승리는 현실 어느 부분도 바꿔주지 못 한다 먹여줬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랬다면 영화의 제목이 바뀌었어야 했겠지만 말이다.그렇게 친구인 희준과 젖존슨에게 복수하기위해 젖존슨이 운동하던 체육관을 찾아가 종합격투기를 배우기로 마음을 먹는데, 이를 지켜보던 영자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영자는 격투기를 배웠던 전문 선수였었는데, 영자 또한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먹방 (먹방은 소위 말하는 먹는 방송을 지칭한다.) 으로 해소해나가는 평범한 잉여이다.그러던 어느 날 이런 태식에게 느닷없이 젖존슨의 위치를 알려주겠다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반신반의 하며 복수의 칼을 품고 젖존슨을 찾으러 가는 길에 느닷없이 영자가 나타난다. 그 이유는 영자가 ‘칡콩팥’, 즉 태식과 ‘젖존슨’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고 흥미가 생겨 젖존슨 찾기에 동참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영자는 젖존슨 찾기에 합류하게 되고 태식과 함께 젖존슨의 행방을 찾기 위해 잠복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젖존슨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수집해나가기에 이른다.그렇게 조금씩 젖존슨과의 거리를 좁혀 나가던 중 태식은 체육관에서 자신이 젖존슨과의 일로 트라우마가 되어 안면타격공포증이 생긴 것을 알게 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훈련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 체육관을 뛰쳐나가는데, 희준이 체육관 코치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사이 태식은 홀로 집에 가는 길에 왜 인지 모를 인기척에 두려움을 느끼며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이 모습이 무척이나 대조적으로 느껴졌다.한동안 태식에 대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던 태식의 엄마는 상위 1%를 위한 한국에서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살겠다며 태식에게 이민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태식에게 “너 여기서 뭐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라고 묻는 질문에 태식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며 그저 고개를 떨어뜨린다.사실 이 대목의 태식의 엄마의 말은 나에게도 비수가 되어 꽂혔다. 상위 1%를 위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내가 할 일이 과에 의해 고의로 더럽혀진 것을 보고 자신이 태식과 함께 젖존슨을 쫓느라 학교에서 왕따, 즉 잉여가 되어가고 있음을 뒤늦게 인지하게 된다. 또 다른 잉여인간 영자는 한껏 움츠러진 태식을 만나 젖존슨과의 싸움을 제대로 해보라며 이야기를 꺼내고, 태식 또한 이대론 안 되겠다며 정정당당한 복수란, 길바닥이 아닌 링 위에서 하는 거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태식은 인터넷에 영자와 함께 젖존슨에게 보내는 영상을 찍어 올리며 정정당당하게 격투기 승부를 제안하고 젖존슨을 한껏 도발한다. 이렇게 젖존슨과 드디어 다시 링 위에서 붙을 기회를 잡은 태식은 이민을 준비하려는 엄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쓴다. 그 편지를 확인하는 엄마에게 태식은 조심스럽게 이민을 가지 말자고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태식에게 “그래, 이제껏 같이 살았으면 됐지 뭐, 꼭 같이 살아야 가족인가? 얘, 너 살 데나 좀 알아봐.” 라며 오히려 따로 살자고 제안한다. 태식은 그런 엄마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근데 우리가 같이 살았던가?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같이 사는 것 같진 않은데. 내 생각엔 말이야.”라고 말한다.이 대목에서 나는 태식의 엄마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결코 태식에게만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태식의 엄마도 외롭고 무력한 잉여이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타파하는 것에 지쳐 이민이라는 도망을 가려는 엄마는 태식을 안아주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또 사실 영화를 보면서 태식의 대사가 마음에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요즘 나는 집에 들어가면 우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하루 종일 들여다본다. 심지어는 일주일에 고작 며칠밖에 안 되는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서도 이런 나로 인해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된다. 학교생활과 성적에 대해 잔소리하며 이야기하는 부모님보다는 핸드폰 속에 내 친구들과의 대화와 소통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태식의 대사가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건네는 마음의 소리처럼 다가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잉투기 대회’가 열리게 된다. 그렇게 잉투기 대회에 3번 째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젖존슨, 아니 욱한을 기다리던 태식을 욱한의 어머니가 찾아온다. 그러면서 욱한이 결국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태식에게 전하는데 사실 욱한이 태식을 때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자기랑 비슷하니까 맘에 안 든다.’는 것이었는데, 욱한에게 있어 태식은 자신의 무력함을 넘어 스스로의 못난 면을 없애고 싶은 감정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욱한은 스스로 자신을 없애는 것으로 답을 찾는다. 이 소식을 들은 태식은 복수할 상대가 없어져버렸다는 허탈함과 자기와 같은 잉여 욱한이 선택한 답에 혼란에 빠진다.태식은 영자에게 욱한이 자살한 이야기를 전한 뒤 영자에게 찾아가 좋아한다며 갑작스런 고백을 한다. 그러는 태식에게 영자는 그의 마음을 가볍게 무시하면서 왜 자신에게 처음에 접근했냐는 태식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그냥 존나 재밌을 거 같아서 그랬다, 왜! 젖존슨한테 쳐 맞은 칡콩팥이 복수한다고 설쳐대는 게 웃기잖아.”, “아저씨만 심각하지 다들 존나 비웃을 걸?”사실 이 대사에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의 노력이, 우리 잉여들의 노력이 어쩌면 상위 1%를 위한 대한민국에서는 그저 미개한 움직임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삽질이 누군가에게 이미 비웃음을 사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비웃는 노력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오히려 아무 것도 안하면서 비웃음을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영자는 이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태식을 비웃었지만 오히려 나는 흔히 말하는 욱한의 죽음으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태식에게 “어이구, 잉여자식 그래도 노력 많이 했네. 고생했다. 조금은 멋있었어.”라며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잉투기 대회 이후 태식은 그렇게 영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또 다시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수많은 악플에 둘러싸인다. 그러다 젖존슨을 사칭한 사람이 “내일 간석오거리 2번수를 마쳤다고 생각하는 영자에게 간석오거리에서 칡콩팥이 행인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려다 또 다시 일방적으로 얻어맞는다는 댓글을 보고 간석오거리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에게 또 다시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태식을 보며 영자는 이 장면까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생중계하며 영화의 막이 내린다.잉투기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답을 찾아가지만 끝까지 해답을 찾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태식이 변화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날아오는 주먹을 눈을 부릅뜨고 마주할 수 있을 만큼 안면타격 공포증만큼은 극복한 정도이다. 그렇다면 외롭고 무기력한 잉여들이 해야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저 숨어버리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일까, 그러면 잉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긴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처음에 느낀 감정은 결말에서 온 허탈함이었다. 사실은 나도 욱한, 태식과 같은 키보드 워리어에 불과하며 현실에서는 그저 잘난 것 없는 평범한 잉여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잉여인간인 태식은 복수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면서 탈 잉여인간이 되어가는 듯 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행인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해 그간의 모든 노력이 삽질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노력을 삽질로 전락시키는 잉여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허탈감을 느꼈다.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나왔듯 외롭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에 대한 답을 먼저 인터넷에서 로그아웃하고 현실로 로그인하라고 제시하고 싶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익명성이 보장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 상에서 서로를 폄하하고 자신을 포장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자기를 가꾸려고 하지 않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그야말로 잉여들이 판을 친다. 만일 태식과 욱한이 키보드 워리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자신을 가꾸려는 시도를 했다면 그들은 자신의 삶의 목표를 찾고 무기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듯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삶의 지향성을 찾으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