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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좌중국사 1권 제3장 요약(3쪽분량)
    목차머리말Ⅰ. 사학의 성립과 그 논증법Ⅱ. 인간의 발견과 그 한계Ⅲ. 사인의 학과 그 논리Ⅳ. 통일과 전쟁의 논리맺음말강좌중국사 제1권, 3장 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 요약머리말대격변의 시대마다 새로운 사상이 생겨나고 그에 따른 학문이 생겨났다. 그러나 흔히 제자백가라는 명칭으로 익히 알고 있는 지식인 들은 단순히 시대에 변화에 따라 등장한 지식인이 아니었다. 제자백가들의 사상은 최초의 체계적인 지적운동 이었던 것이다. 이들에 대한 연구는 선진 제자서 들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 아직 그들의 생존연대의 불분명성은 물론이고 실존까지도 의심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제자서의 내용, 각 유파의 중심사상 그들 상호간의 차이점 등에 대한 연구는 거의 대부분이 밝혀져 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따로 제자사상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하지 않는다. 다만 제자서를 읽거나 참고할 때 염두 해야할 몇 가지 측면에 대해서만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Ⅰ. 사학의 성립과 그 논증법춘추전국시기 제자학이 등장하기 이전, 상주시대에도 이미 씨족장로에 의한 성원의 교육이라는 방식으로 지식의 체계적인 전수가 행해지고 있었다. 그 내용은 크게 예, 악, 사, 어, 서, 수의 6예가 있다. 6예는 지배씨족에게 요구되는 전통적 기능, 지식을 총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서주가 멸망하고 시대가 격변하면서 종래의 씨족교육은 해체되었다. 그 후 지식의 습득을 통해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적 모색을 시도, 또는 지식을 제공해주는 선생을 찾아서 나서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개인이 사색해낸 학과 그것의 전수를 위한 학단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이러한 학과 학단의 형태는 논어에 보이는 공자와 제자의 관계를 통해 더욱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학단내의 생활, 규칙을 상세하게 언급해 놓은 관자의 제자직(弟子職)편에는 당시 학단의 수업과정, 청소 , 취침, 식사, 세면, 내방객 접대 등 생활전반에 걸친 기록이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학단의 형태는 당시의 지식 전수형태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사료된다. 독서가 아닌 개인의 강설에 의존하여 지식을 전수받는 것이 그 형태였다. 이러한 형태의 지식 전수 방법은 당시 종이가 없었고 그에 따라 책의편찬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타나게 되었다. 스스로 책을 이용해 독서를 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어려우니 멀리서 스승을 직접 찾아와 강설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관계가 사적, 정적이게 되면서 교사의 절대적인 권위가 확립 되었다. 학단의 법과 거자의 절대적인 권위에 의해서 군대식으로 통제된 묵가의 경우와 유가 학단의 규약으로 추정되는 제자직편 에서도 결국 제자의 순종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이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한편으로는 교사의 절대적인 권위 발현 이전에 교사의 자질, 수칙 또한 엄격히 요구된 면이 있다. 그러나 여씨춘추 등에서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을 실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제자의 일방적인 공순, 복종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 였을 것이다. 따라서 제자는 교사의 강론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러나 논어 등의 제자서들이 많은 경우 문답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 교사의 일방적인 강론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답식 서술에서의 문답은 진리에 목적을 두고 벌어지는 토론적 대화가 아니였다. 대부분의 질문과 대답은 스승의 어록의 형식으로 기록된 것이 사실이다. 문답체가 변증법적 실천의 논리로서 소소한 효과를 발휘 한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논리의 분석을 배제함으로써 결국 교사의 권위에 의해 제단될 수 밖에 없었던 한계또한 가지고 있다.그러나 당시의 교사는 자신의 주장을 개인적 권위만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권위로 정당화할 수 있었겠지만 타학파와의 논쟁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하여 교사들은 자신의 입론을 객관적, 논리적 형식으로 개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이러한 방법모색의 성과로서 알려진 것이 묵자의 경, 경설, 류의 개념, 고의 개념, 논증법 등이 있는데 이러한 많은 성과가 당시의 제자의 논리학적 관심과 수준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변증법은 형식논리학의 발전이 결여되어 대부분이 언어유희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제자들은 경험, 선례, 공례성을 입론의 준거로 삼은 것이 일반적이었다.그 중에서도 선왕의 선례를 강조한 고성왕지사가 입론의 준거로 자주 사용 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2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고대 성왕의 교, 법을 근거로 삼는 것은 그 시대의 것을 이상향으로 삼아 좇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복고주의의 경향을 보이며 진보, 발전의 저지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선왕의 법을 따른다는 것은 결국 단순한 이상적 가치가 아닌, 제왕이 재정한 가치를 따르는 것이다. 이는 가치를 재정하는 이가 즉 제왕이 된다는 논리와도 상통하며 전제권력의 견제, 완화에 크게 기여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권력의도덕화를 이루지는 못했고 도덕 이 권력에 속하여 권력에 의한 도덕의 지배를 유도 하는데에 그쳤다. 또한 자신들의 조사를 높이기 위해 왕의 위는 없으나 그 덕을 구비한 성인으로써 공자 등을 소왕으로 추숭한 소왕론을 보았을 때 선왕의 권위에 기초한 제자학은 결국 제왕에게 이용당하는 어용의 학으로 전락할 여지가 많이 있었다.Ⅱ. ‘인간의 발견’과 그 한계인간중심주의. 합리주의는 제자사상의 큰 특징이다. 문헌 중에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적극적 이해, 정복을 극명히 주장한 것은 순자의 천론편 이다. 이 문헌에서 순자는 ‘천’을 자체적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연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천은 인간사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순자는 길흉화복이 결코 하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주장하며 혼란에 빠진 세상을 타개해 나가는 것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점을 설파하였다.그러나 순자의 이러한 철저한 인간중심주의, 과학정신을 견지하기에는 당시의 과학지식을 통해 밝혀내지 못하는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결국 신화적 세계관, 주술은 공공연히 서술될 수 밖에 없었다. 화상석, 관벽, 의서 등 전국 각지의 유물 유적 등에서 무신신앙, 주술적 요법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제자들의 태도는 부정적 이었으나 당시 의식이 미신적, 주술적 이었던 것은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비명편 에서는 인간의 주체성, 능동성을 강조하여 인간책임론을 주장하였던 묵가가, 명귀편 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지상신 개념의 천을 주장한 것은 인간중심주의 사상을 말하면서도 결국은 신화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비슷한 한계는 순자에게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는 백성들이 신사를 믿고 기우제를 지내는 것의 무효용성을 말하면서도 백성들이 그것을 믿고 있으므로 정사를 꾸미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하였다. 순자가 백성들의 무신신앙 타파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는데 치중하였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제자사상에는 인간의 발견이라는 관점도 분명 존재 하지만 그 한계도 분명히 가지고 있다.Ⅲ. 사인의 학과 그 논리제자의 학은 사인들에게 있어 단순히 학문이 아닌 관직진출의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관료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학문의 내용은 점차 윤리, 정치 문제에 집중되어 갔다. 즉, 제자학이 사인의 학, 치자의 학으로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이 사인의 학은 이중성을 띄고 있다. 사인은 평민들에 대해서는 지배자, 지배층 사이에서는 피지배자 의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자신의 지배자로서 활동하는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만인의 무질서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천자를 세웠다는 묵자의 주장, 인간은 집단생활을 통해서만 자연을 이겨낼 수 있다는 순자의 주장이 그 예이다. 그러나 사인 층이 지배체제의 정당성과 군주의 전제지배에 기생하여 이를 탐하자 다른 많은 사인 층이 이에 저항하였다. 그들은 군권을 제약할 수 있는 ‘천하위공’의 논리를 통해 군주에 기생한 사인 층과 군주의 권리를 제약하려 하였다. 천하는 군주의 소유가 아닌 만인의 소유이며, 군주에게는 지배권을 수행할 능력과 자질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독후감/창작| 2017.05.18| 4페이지| 1,000원| 조회(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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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좌중국사 1권 제2장 요약(3쪽분량)
    강좌중국사 제1권, 2장 춘추전국시대의 국가와 사회 요약목차머리말Ⅰ. 춘추열국의 구조와 정치Ⅱ. 춘추 중기 이후의 제변동Ⅱ-1. 공실의 쇠퇴와 세족투쟁Ⅱ-2. 현의 출현과 씨족제질서의 해체Ⅲ. 전국국가의 형성과 그 과제Ⅳ. 변법과 제민지배맺음말머리말B.C. 771 견융의 침입으로 서주의 유왕이 피살되고, 주나라의 시대가 끝이 난다. 그 후 유왕의 아들 평왕이 일부제후의 도읍으로 천하의 동쪽 낙읍에서 주나라의 명맥을 이은 것이 동주시대 즉, 춘추, 전국시대의 시작이다. 춘추전국 시대 전체에 걸쳐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의 나라가 공존하는 열국체제가 지속 되었다. 초기 춘추시대 성읍국가에서 영토국가로 국가형태가 전환되는 등 큰 변화가 있었던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가르는 엄격한 분기점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보통은 편의상 진(晉)의 세족 한, 위, 조씨가 진을삼분(三分)한 B.C.453년을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잡고 있다.이때까지의 중국고대사 연구는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한제국의 성립, 그리고 그 구조의 설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 결과 춘추전국시대는 진한제국의 성립배경을 추적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구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연구가 목적이 아닌 대상화 되었고, 이와 같은 시각의 외재성은 춘추전국시대의 특수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와 같은 난관은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에 힘입어 크게 극복되고 1949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의 연구가 기존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이 기대되지만, 그 도약 또한 기존연구의 틀 속에서 진행된다는 것 역시 불가피한 현실이다.Ⅰ. 춘추열국의 구조와 정치은나라시대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중국사회 구성의 기본단위는 읍이었다. 읍의 형태는 소규모취락부터 도시 형태의 발달된 대 취락, 심지어 왕도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모여서 거주하는 곳은 모두 읍이었다.당시 화북에서는 이런 자립 자존적 읍이 고립적, 분산적으로 병존해 있었다. 이들이 점차 중앙권력에 예속되면서 훗날 전국시대에 중앙 직할 현으로 재편되어 간다. 이러한 읍으로 구성된 국가의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 성읍국가론인데 그에 대해서 도식적으로 살펴보자면 이러하다.고문헌에 보이는 읍은 대체로 국읍(지배층거주), 도읍(경, 대부의 본읍), 비읍(속읍, 보통의 읍) 이렇게 3단계로 구분된다. 당시 열국의 외면적인 전체구도를 조감해 보면 가장 큰 특징이 바로 국과 야의 엄격한 구분이다. 당시 사회구조를 이른바 국야제, 또는 향수제라는 이중체제로 규정하는 것은 당시 중국사회의 특수성을 엿볼 수 있다.우선 국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예전 서주시대에 각지로 파견된 제후 및 그 일족이 새롭게 성벽을 축조, 건설한 새로운 읍이다. 자연재해, 교통, 군사적 이점등을 고려하여 하천 주변의 구릉지대에 한정하여 위치했을 것이다.이러한 국을 둘러싼 성곽을 경계로 그밖에 펼쳐지는 모든 원야가 바로 ‘야(비)’로 칭해지는 지역이다. 이 원야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소규모 취락이 비읍 즉, 비의 읍이다. 또한 그 중에는 제후들의 분읍 으로써 도가 존재하면서 주변의 소 취락들을 속읍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또한 국과 야 사이에는 교라는 지역이 존재하고, 여기에도 읍이 설치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교가 국에 속하는 지역인지, 야에 속하는 지역인지 논란이 있는 실정이다.국읍의 최고 우두머리는 공(公)으로 통칭되는 국군 이었다. 국군은 국 구성원의 정신적 지주, 종교의 대표자로써 공동체의 수장에 가깝다. 이 것은 당시의 집단이 ‘융사공동체(군사공동체와 제사공동체의 결합)’였다는 통설과 견해가 일치한다. 공의 권위는 바로 제사에서 차지하는 공의 지위에서 비롯된다. 망명한 공이 타국에서 우대를 받았던 이유도 제사에 중심적 존재인 공이 해를 당할 경우 해당국의 조선신으로 부터 내려질 재앙의 두려움 때문이었다.공의 다음가는 신분이 경대부였다. 그들은 공으로부터 부여받은 비읍을 물적 기반으로 한다. 또한 부여받은 비읍의 일부를 본읍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바로 ‘도’이다. 대부 중 유력명문씨족의 장을 경이라고 불렀고, 그는 집정, 군 사령관직을 겸임했다.국 밖에 비읍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사실상 비읍에 대한 자료가 거의 부족한 실정이고 그저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추측을 할 뿐이다. 지리적 조건에 따라 비읍의 규모에도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천호이상의 대읍이 있는 반면 열채쯤 되는 작은 비읍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큰 규모는 100호, 평균적으로30~40호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견해이다.또한 비읍을 통해 공전의 형성배경을 엿볼 수 있다. 초기에 비읍에서 조선신에게 바칠 곡식을 마련하기 위해 족장주도하 전 씨족원이 공동 경작하던 신전이 경대부에 의해 정복된다. 그 후 그 수확물이 조선신이 아닌 경대부에게 바쳐지고 또한 경대부는 그 일부를 공에게 바치면서 공전이 형성되었다. 이상으로 성읍국가에 대해 도식적으로 서술해 보았고 이러한 성읍국가 체제는 춘추 중기를 경계로 급격한 사회 변동에 의해 해체하게 된다.Ⅱ. 춘추 중기 이후의 제변동Ⅱ-1. 공실의 쇠퇴와 세족투쟁B.C 600년경을 전후로 중국사회 모든 방면에 걸쳐서 변화가 나타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이 전쟁의 격화, 약소국의 멸망이다. 춘추 중기를 전후로 강대국들은 회맹적 지배방식에서 탈피, 소국을 멸하고 이를 현으로 삼아 점령하는 새로운 지배방식으로 전환 했다. 국읍의 지배자 공이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고, 세족투쟁의 최후 승리자가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다. 또한 춘추 중기 이후 유력세족은 비읍민에게 군역을 부과하여 자신의 무장조직을 편성함으로써 무력기반을 다졌다.사(士)들은 본래 자기일족의 경대부가 아니라도 자신을 후히 대접하주는 경대부에게 가서 자식을 의탁했는데 여기서 중국의 임협적 질서가 나타나게 된다.결국 무장조직을 편성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키운 유력세족 한, 위, 조씨와 공실을 수호하는 지백 세려간의 다툼에서 한위조씨가 이기게 되고 삼씨가 진(晉)을 삼분하여 제후로써 정식 승인된다. 이와 같은 극심한 세족투쟁을 결과로 춘추시대의 유력세족이 거의 몰락하게 된다. 반면 사들은 세족들의 공백상태를 메꾸어 나갔는데 전국시대의 주력계층으로 등장하게 된다.Ⅱ-2. 현의 출현과 씨족제질서의 해체춘추 중기이후로 씨족질서가 붕괴 된다는 것은 확고한 정설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강대국에게 약소국이 흡수되면서 등장한 것이 현이다. 현은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현의 출현은 전국 이후 확립된 군주에 의한 직접 지배방식의 선구로써 이같은 현이 춘추시대에 이미 일부 성립했음을 알 수 있다.현의 등장과 동시에 씨족제 질서의 해체가 나타났는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씨족적 읍공동체의 해체를 열국간의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읍공동체의 해체요인은 내부의 계층분화에서 찾아야한다는 비판이 제기 되었다. 그와 관련하여 주목되어온 대상이 ‘초세무(토지면적에 따라 일정량의 세금을 납부하는제도)’였다.초세무가 등장은 곧 자(藉) 즉, 노역에 의한 공동경작의 폐지를 의미했다. 다시 말해 노역으로 납부하던 세금이 실물세금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노역에 비해 실물세금은 자신이 효율적으로 일하기만 하면 본인의 몫을 많이 남길 수 있기에 신개간지의 확대,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다. 그 결과 토지점유의 불균등이 현저하게 나타나서 결국 경지면적에 따라 과세하게 된 것이 바로 초세무이다.그 결과 낮은 생산 수준 때문에 불가피하게 운영되던 씨족제적 읍 공동체 질서는 붕괴되었고 가족단위의 소농경영이 출현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Ⅲ. 전국국가의 형성과 그 과제이러한 변혁을 거쳐서 전국시대가 개막했다. 전국시대에 들어오면서 다수의 약소국이 멸국과정을 통해 정리된 후 몇몇의 강대국만이 남아 병존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전쟁의 횟수는 춘추말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각국의 전쟁규모와 전쟁의 장기화는 더욱 심화되었다.전국 이후의 전쟁양상은 종래의 차전에서 보병전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추측하기에는 산악거주 이민족과의 전투결과 확인된 전차의 비효율성 탓도 있지 강과 늪, 호수지대가 많은 오월지역에서의 보병 창시와 그것의 중원파급이 결과적인 원인이 되었다.
    독후감/창작| 2017.05.18| 4페이지| 1,000원| 조회(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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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이야기 기말시험공부( 역사산책, 역사학개론 등) 평가D별로예요
    7장1. 역사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특성은 ‘사실’에 기초한다는 것2.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일본 진무천황이 즉위한 해는 ‘기원전660년’3. 일본의 첫 번째 막부는 ‘1192년 성립된 가마쿠라 막부’4. 일본이 주장하는 세계 최초의 토기 ‘조몬토기’5.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 (300~500년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6. 일본의 무덤양식 전방후원분(열쇠 구멍형 무덤) 이 영산강 일대에서 발견7.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기전체 서술8. ‘아담 샤프’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5가지 측면에 대한 접근을 시도함9. 역사적 사실이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실, 그에 대한 서술 중에 그에 대한 서술을 포함하는 개념10. 모든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되지 않는다,11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 매우 중요한 인과관계(전체성)를 가질 때 역사적 사실이 된다.12. 카이사르는 B.C49년 루이비콘 강을 건넜다.13. 송의 명장 악비는 송의 재상 진회에 의해 죽임을 당함14. 카이사르 시저는 B.C 44년 브루투스등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함15. 카이사르의 상속자는 아들도, 오른팔 안토니우스도 아닌,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였다.16. 옥타비아누스VS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 악티움해전(B.C31)17. B.C27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초대황제로 취임하며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음18. 천자의 자리를 포기한 ‘허유, 변수, 무광’ 보다 ‘백이, 숙제’를 높게 쳐 준 것은 공자의 판단때문19.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로 인해서 1918년까지 진행된 전쟁이 제1차세계대전20. 1517년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음21.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8장22. 실증주의 역사관과 현재주의 역사관23. 송대에 완성된 성리학에 대한 반발로 명대에 양명학이 나타남24. 1644년 청나라에 의해 전 중국이 지배당함25. 경세학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고증학이 일어남26. 민족주의 사학은 일종의 현재주의 역사관의 입장27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 일으킴28. 일본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29. 일본의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재주의의 극단적 결과30. 동북공정에 대한 중국의 논리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 ‘ 금위고용론’31. 랑케의 실증주의 사학의 전제 1. 역사가와 인식대상은 상호 독립적이어야한다.2. 역사가는 비 당파성을 견지해야한다. 3. 역사가의 사실 인식은 기계론적 모델(사실 그대로를 보고 기계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것)과 일치해야 한다.32. 현재주의는 반실증주의 학파에서 나옴(미국의 듀이가 대표적 현재주의 학자)9장33. 역사주의와 반역사주의34. 달마대사는 인도 선불교 28대 조사35. 마르크스는 역사주의자이다36. 역사주의는 상대주의적 성향을 포함함37. 역사주의는 상대주의적 성격이 있지만 절대적 진실을 기반을 토대로 사유하는 역사가의 사관이 상대적일 뿐, 사실자체가 상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따.38. 반 역사주의는 역사주의가 상대주의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39. 상대주의는 세상에모든 것을 상대주의적 입장에서보며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하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는 이론이였다.10장.40. 역사인식을 위한 구분법41. 공간적 구분 , 시간적 구분42. 역사를 몇단계의 시기로 구분하여 인식하는 방법을 ‘시대구분’이라고 한다.43. 양적확대에 머무르는 일정시기를 하나로 묶고 양적확대가 진적되어 질적으로 상당히 달라진 일정시기와 구분하는 것을 ‘시대구분’이라고 한다.44. 시대를 나누는 단위는 통상 3분법. 4분법이 사용됨 이를 3시기구분법 4시기구분법이라고 함45. 시대구분의 중요한 기준은 ‘질적전환’46. 마르크스는 질적전환을 기준으로 시대를 가장 정확히 구분한 사람이다.47.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물사관에서 인류의 역사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함원시 공동체 사회(의미없으니 제외)-> 노예제 사회-> 농노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사회(미래의 모습이니 제외) ==> 노예제->농노제->자본주의 3단계로 구분48. 헤겔은 ‘자유’를 기준으로 역사를 동방사회->그리스사회->로마사회->게르만사회 4단계로구분49.실증주의 창시자 콩트는 역사가 신화적단계-> 이상학적단계->실증적단계 로이행한다고 생각50.이탈리아출신 철학가 비코는 역사과정이 나선형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그는 역사를 원시적, 신적인 시기-> 시적이며 영웅적인 시기-> 시민적이며 인간적인 시기 3단계가 계속 번갈아가며 출현한다고 주장 (순환론)51. 영국은 323년, 프랑스는 395년, 독일은476년을 중세의 시작으로 본다.52. 3분법에서는 당송변혁기(960)를 중세의 시작으로 본다. (일본 도쿄학파 주장)53. 4분법에서는 삼국시대의 시작(220년)을 중세의 시작으로 본다.54. 마르크스는 고대=노예제, 중세=농노제 사회로 보았다.55. 서양지역은 근대의 시작을 [프랑스혁명, 산업혁명]으로 본다, 비서양 지역은 [서양의 충격]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56. 3분법 = 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 편의적 설정), 4분법 = 고대 ? 중세 ? 근세 ? 최근세 - (현대, 편의적 설정)57. 우리나라는 1945 광복, 일본은 1945패전, 세계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을 현대의 기점으로 본다.11장 종교로 본 인간의 역사58. 대표적인 종교로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도교 + 유교가 있다.59. 1단계 : 인류초기의 다신교적 믿음 -> 2단계 : 다신교에 대한 도전과 세계종교 탄생 -> 3단계 : 종교개혁 으로 종교의 역사를 구분할 수 있다.60. 서양= 유일신 신앙(기독교, 이슬람교)에 의해 기존의 다신교적 신앙형태가 철저히 대체61. 동양= 다신교적 믿음이 유일신이 아닌 무신론(불교, 유교)에 의해 상당히 대체62. 다신교적 믿음에 도전한 대표적 인물 ‘석가모니’63. 석가모니의 명언‘ 천상천하 유아독존’ 은 이세상에 오직 내가 존귀하다는 뜻, 나는 이미 구원된 존재 즉, 신을 부정하는 말64. 석가의 가르침은 ‘삼법인’ 으로 대표된다. 삼법인이란? 일체개고(모든 것은 괴로움), 제행무상(모든 것에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제법무아(모든 진리의 핵심은 내가 없다는 것이다.)65. 석가의 삼법인에서 연관되는 개념이 ‘공(세상모든 것이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모든 것이 존재하다 사라지고 존재하다 사라진다.’ 그리고 ‘연기설(세상 무수한 존재와 나는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다)’66. 인류 정신사에서 기원전 500년경은 획기전 전환점 (석가, 공자가 인도와 중국에서 무신론을 전개,67. 불교는 크게 소승불교, 대승불교 두 개의 분파로 나누어진다.68. 대승불교는 석가를 신격화하며 ‘삼신론(법신, 화신, 보신의 삼위 일체적 존재인 석가를 주장)’을 내세웠다
    학교| 2017.05.18| 6페이지| 1,500원| 조회(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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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이야기 10장 1페이지 요약
    역사이야기 10장 한페이지 요약역사인식, 역사서술을 더욱 간단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공간적, 시간적으로 구분하고 인간 삶의 여러 가지 측면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구분한다. 먼저 공간적 구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2차적 의미의 역사란 과거의 사실 중 가치 있는 것을 서술한 것이다. 세계사, 국사의 구분이 있듯이 역사는 우선 지리적으로 구분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역사를 자기나라를 중심으로 구분한다. 국사를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세계사 안에 넣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사학과, 역사 교육과등의 전공과정으로 들어가면 역사를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구분한다.이 안에서 서양사는 유럽사, 아메리카사, 서유럽사, 영국사 등으로 세분화 되는 등 깊게 들어가게 된다. 이처럼 공간을 통해 역사를 구분하는 이유는 역사를 연구, 이해, 공부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역사를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전공하기 시작한 결과 역사를 통합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연구하는 전문가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다음으로 시간적 구분에 대서 이야기 해보자면 이러하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 서술에는 차이점이 많다.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도움을 통해 과거의 역사 서술과는 방법론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오늘날 역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적 구분법이 과거의 역사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과거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매일 반복되는 시대를 뚝 잘라서 구분할 수 없던게 현실이다. 현재에 와서 고대, 중세, 근세. 현대 등으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이렇게 시대를 나누어 구분하면 좋은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같은 행위라 할지라도 그 행위가 조선시대에 일어났느냐 현대에 일어났느냐에 따라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내를 집에서 쫓아내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당연한 일이였다. 그러나 현대에 그러한 일을 자행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법적으로 잘못되어 결국 큰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 사건은 시대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식 되어야한다.과거의 역사서술은 시대를 구분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 그저 초보적 단계의 시대구분, 3분법, 4분법 등을 통해 시대를 구분하려는 시도를 보여줄 뿐 이였다. 현대에서 이러한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기본적으로 양적 확대와 질적 전환에 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의 대표자로서 시대를 사회적 존재의 변화에 따라서 구분한다. 사회적 존재 즉 하부구조의 변화를 따라 상부구조는 종속적으로 변하는 것 그것이 마르크스의 유물론이다.
    독후감/창작| 2017.05.18| 2페이지| 1,000원| 조회(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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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이야기 9장 1페이지 요약
    역사이야기 9장 한페이지 요약역사주의란 용어는 모호하여서 논란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용어의 역사적 성격을 통해 통념적인 의미를 추출할 순 있다. 우선 계몽주의 시대에 반하여 역사주의가 나타났던 점을 미루어 보아 역사주의는 반 계몽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역사주의는 인간, 자연, 사회의 지속적인 운동, 변화의 과정을 통해서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선불교의 28대 계승자 달마, 6대 조사 혜능에 대한 이야기 또한 역사주의 적으로 보았을 때 허구성,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 헤겔의 변증법적 세계관, 다윈의 진화론 등이 역사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인간이 점차 변화해왔다고 주장하고, 헤겔의 변증법적 세계관은 현재를 변화로 설명하는 증거에 영향을 받았다. 자연계가 진화, 변화 한다는 생각은 사회를 분석하는데 에도 사용 되었다.사회도 유기체와 같이 운동하고 적응하고 도태된다는 생각이 극화되어 제국주의 등의 극단적인 결말을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역사주의적)은 이탈리아의 비코의 견해에서도 나타난다. 비코는 사회가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사회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마르크스의 역사주의에서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역사적으로 해석하고, 현실에 대한 분석까지 해내어야 한다. 모든 사물, 현상, 사유는 연계운동을 한다고 말한다.또한 그의 역사주의는 철저히 반 유심론적 존재론에 근거 했다. 세계의 모든 것을 단순히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인식하는 정신의 외부에 세계가 있고 세계는 독립된 물질로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역사주의가 잘못 해석된다면 그것은 상대주의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상대주의와 같이 역사주의 또한 절대적 가치, 규범, 판단 등을 모두 부정한다. 역사주의는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이러한 면에서 역사주의 또한 상대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상대주의는 철학의 상대주의와 다르다. 철학에서의 상대주의는 육하원칙에 따른 판단에 따라 판단의 진실성을 따진다. 그러나 역사주의에서는 이러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적 진실을 부정하는 점에서 역사주의와 상대주의간의 공통점이 있을 지라도 결국 진실의 객관성과 진실의 절대성이라는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둘은 같지 않다.
    독후감/창작| 2017.05.18| 1페이지| 1,000원| 조회(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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