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감상문- 연극 ‘안녕 히틀러’를 보고 -연극 ‘안녕 히틀러’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작품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을 재해석한 연극이다. 연극의 관람평을 키워드로 미리 언급하자면, 이는 ‘참신함’ 혹은 ‘유별남’ 정도가 되겠다. 브레히트의 원작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의 희곡(대본)을 보았을 때에도 역시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그 원작과의 연관성을 보다 자세히 조명해봄으로써 연극 ‘안녕 히틀러’의 내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문화생활을 즐겨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연극을 감상한다고 하면, 대체로 대략 두 시간 분량의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관람한 연극은 그러했고, 내가 기대하는 연극의 모습도 그러하였다. ‘안녕 히틀러’를 관람하기 전 연극의 배경은 알고 있었다. 독일어 문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활동한 시대는 이미 숙지하고 있는 바였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안녕 히틀러’는 히틀러가 통치하는 나치 정권하의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연극을 보기 전 내가 기대한 내용은 히틀러의 집권 과정에서 겪는 주인공의 고통과 혹은 그의 극복 과정 따위의 것이었다. 발단에서 절정으로 치닫고 마지막엔 갈등을 해소하는 서사구조를 가질 것이라 생각하였다.그러나 나의 예상은 다소 빗나갔다. 대략 한 시간 반 동안의 연극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무려 5번 이상 바뀌었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주인공의 이름이 여러 가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연극을 감상할수록 장이 바뀔 때마다 각 장마다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각 장면이 전부 독립적이었던 것이다. 연극이 이렇게 진행된 이유를 원작을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원작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은 27개의 독립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졌다. 27개의 단막극이 한 작품 안에 수록되어있는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에 대해 영화에서 개발된 ‘몽타주 기법’을 연극에서 실현했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원작 희곡의 각 장면들은 개별적 성격을 가지며 독일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단편들이 연결되면서 히틀러 독재하의 독일의 모습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것이다.‘안녕 히틀러’는 원작에서 몇 장면을 추려 구성되었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이름과 구성이 매 장면마다 달랐으며 장면별 연관성이 전혀 없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관람을 마치고 났을 때, 히틀러가 준 피해와 그 속에서 독일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고 있었다.연극은 또 다른 사회이다. 이번 연극에서도 한 시간 반 동안 나는 1930년대의 독일인이 되었고 그들의 삶을 경험했다. 그들이 되어 아픔을 느끼고, 나눴으며, 극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도 그 여운은 지속되었다. 나는 히틀러를 보다 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을 더 연민하고 있었다.그 때 또 다른 놀라운 점 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히틀러의 무자비함, 절대성, 폭력성, 공포감 등을 표현한 연극에서, 히틀러라는 인물은 단 한 번도 직접 등장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등장인물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종종 언급되었을 뿐, 그가 실제로 직접적인 폭력적 행동과 결단을 취하는 장면은 한 차례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연극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연극이 끝난 후엔 혐오감을 갖게 한 바로 그 인물이, 심지어 연극의 제목에도 속해 있는 그 주요한 인물이, 정작 단 한 장면도 등장한 적 없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너무 보편적인 틀 안의 연극에만 익숙해져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안녕 히틀러’는 다소 충격을 준 연극이었기에 브레히트의 원작을 보다 자세히 공부해보았다. ‘안녕 히틀러’는 원작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의 재현에도 충실했으며 이를 잘 구현해냈다. 원작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은 ‘표현주의 연극’이다. 표현주의 연극은 몇 가지의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첫 번째 특징은 장면단위로 분할된 구성을 취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플롯을 장면의 집합으로 대체하고, 그 장면들의 인과관계는 견고하지 않다. 이로서 ‘안녕 히틀러’의 구성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표현주의 연극의 형식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둘째로, 특별한 개성을 띄지 않으며 상징으로 기능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특징적 개인이 드러나지 않으며, 특정 상징(기성세대, 청년세대, 독립에 대한 갈망과 공포의 대립 등)을 보여주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안녕 히틀러’는 이러한 특성도 잘 담아냈다. 히틀러가 직접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가 상징하는 바, 나타내는 바, 그를 통해 말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 등은 아주 훌륭하게 표현되었다.다음으로, 비사실적인 대사가 많이 존재한다. ‘안녕 히틀러’에선 20분 가까이 등장인물이 독백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에 몰입 되면서도, 20분이란 긴 시간이었기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지루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기나긴 독백을 진행하는지 궁금했다. 이 역시 표현주의 연극의 특징이다. 표현주의 연극은 시적 독백, 기계적인 단음절 감탄사 등 비 사실적 대사를 많이 담아낸다. 이렇게 사실주의와 달리 일상 언어에 근접한 대사를 적어내는 것이 표현주의이다.표현주의 연극을 공부하며 표현주의의 발전에 임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공부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