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 임신 중절 합법화 시위가 열린다. 시위는 묵념으로부터 시작한다. 혼자 아기를 낳다 죽은 여대생을 위해, 아기를 낳고 동반 자살을 한 여고생을 위해, 그리고 법의 보호보다 사회적 뭇매를 맞은 사람들을 위해. 국가는 높은 출산율을 장려한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출산이란 축복보다 고통일 수 있다.는 고등학생 커플이 아기를 낳고 혼란을 겪는 이야기다. 그러다 어른들에게 발각되어 그들은 도망을 친다. 감독은 생명의 탄생에만 관심을 갖고 정작 양육을 해야할 이들에게 외면과 사회적 뭇매를 가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영화는 출산으로 인해 소외계층이 겪는 현실과 그들의 고단함을 표현하였다. 나는 이러한 성격이 보이는 몇 개의 장면들을 말해보고자 한다.첫 번째는 첫 장면이다. 아이들이 창문에 비치고 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컷 전환이되어 피 범벅인 아영의 손이 보인다. 아이들과 출산이라는 설정은 ‘탄생’을 의미하지만 마치 아영의 모습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상반되는 영화의 분위기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또한 전철 소리에 휴대폰 벨소리가 묻힌다. 이는 앞으로 아영의 목소리가 환경으로 인해 묵살당할 것을 보여준다.두 번째는 형규가 아영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다. 형규의 모습을 긴 호흡과 함께 풀샷으로 촬영하였다. 형규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고독한 분위기를 낸다. 두드러지게 볼 것은 지리적 특성이다. 화면의 상부에는 가로등의 불빛으로 환하고 높은 아파트들과 지나가는 차들이 보인다. 하지만 형규가 있는 하부에는 어두움만 깔려있다. 이를 통해 형규의 소외감과 고독감을 강조시켰다.세 번째 장면은 아영이 버스 종점으로 간 장면이다. 카메라는 핸드 헬드 기법으로 아영을 따라간다. 버스들 사이에서 서 있는 아영은 마치 높은 장벽에 갇힌 것만 같다. 얕은 심도로 그녀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강조한다. 겨우 문이 열린 버스 안에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바깥과 달리 버스 안에는 가로등의 불빛이 들어와 환해보인다. 마치 버스만이 그녀가 들어올 공간을 허락하듯이 말이다.네 번째 장면은 형규가 버스기사를 위협하며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버리는 장면이다. 애초에 그에게 죽이고 살리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도망가는 장면은 풀샷으로 촬영하였는데 화면 정중앙 상부에는 작은 가로등 불빛이 있다. 작은 불빛은 마치 그의 작은 희망같다. 그는 중앙에 놓인 불빛을 따라 달린다. 마치 필사적으로 희망을 쫓는 사람처럼.다섯 번째 장면은 둘이 신호등 앞에서 서있는 장면이다. 캔티드 샷으로 촬영한 풀샷은 신호등, 가로등 그리고 나무들을 휘어보이게 한다. 또한 화면의 중앙이 아닌 오른쪽에 배치 되어있는 인물은 비대칭적으로보여 그들의 심리를 더욱 불안정하게 보인다. 동이 트고 있을 무렵, 파란 빛을 내는 새벽녘은 그들을 더욱 창백하게 만든다. 그들은 빨간불 앞에 서있다. 감독은 초록불이 바뀌어 그들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을 밝혀주던 가로등 불빛은 꺼져 그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설정은 그들을 둘러싼 주변 상황은 둘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보호 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여섯 번째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다. 그들은 강물에 뛰어든다. 카메라는 그들의 처절한 표정을 클로즈업 하기 보다는 그들을 지켜보기만 하듯 멀리 떨어져 풀샷으로 그들을 담는다. 이러한 기법은 그들을 지켜보기만 할 뿐 정작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 사회적 시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한 전경에 나뭇가지들을 보이게 하여 화면의 공간감과 깊이감을 더했다. 이러한 기법으로 넓은 세상에 필사적인 그들을 작게 만들어 처지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도 구도적인 특징이 있다. 상부에는 아파트들이 즐비해있고 자동차들이 어디론가 향한다. 아침을 여는 상쾌한 분위기와 달리 하부에는 아기를 꺼내기 위해 강물에서 허우적 대는 아영과 형규가 있다. 이는 소외계층이 사회적으로 외면받고 소외당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출산이란 거대한 고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을 향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 소외감, 고립감을 보여주며 ‘출산’만을 강조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사회는 그들을 울지 못하게 만든다. 혼자 아기를 낳고 도망간 여성을 향해 욕을 하고 출산을 한 여고생에게는 학업의 길을 막는다. 감독은 그들을 외면하는 사회를 비판하며 영화를 통해 부탁하고 있다. 그들을 울게하소서.피드백장면에 대한 생각비판1. 외면하는 사회를 보여준다.보여주는것과 비판하는 것은 다름주장하는 것이아니기 때문에.비판은 - 다큐멘터리의 영역이지시대현실의 삭막함,위험한 표현이 될 수도 있음마지막 이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삭막하고 안타까운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마지막에대한 장면 구체적으로 쓸 것한 장면 한 장면에 의미가 있음어떤 이야기인지선택 진행되는가+특이했던 장면들인물이 왜 그런가강조하고 싶을 때 어떤 샷을 쓰는가미술, 편집.~영화처럼 보인다.어떤 감정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1단락 :접속사2단락 : 비판하는게 아님. 만약 비판하는 것 같으면 비판하는 듯하다비판 - 우리의 생각이므로.현실을 보여주어서 관객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태도를 취하지만비판은 걸린다.어쩔 수 없이 아이를 다시 키워야하는 두 젊은 남녀의 절망을 보여준다.영호속 사실을 인정할 것소리르듣고 달려간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죄책감보여주는 것 같다~ 내 생각이므로.3단락 - 핸드헬드로 따라간다- 거기서 파생되는 성격을 말할 것. 불안함얕은 심도 (구체적으로 사용할 것)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장면이었길래강조가 되었는지.얕은 심도 - 너무 당연한 말임.후경에는 십자가가 보이는데 아이러니한 요소개요1단락 - 단어2단락 - 단어매달 한 번, 임신 중절 합법화 시위가 열린다. 시위는 묵념으로부터 시작한다. 혼자 아기를 낳다 죽은 여대생을 위해, 아기를 낳고 동반 자살을 한 여고생을 위해, 그리고 법의 보호보다 사회적 뭇매를 맞은 사람들을 위해. 현재, 우리나라는 높은 출산율을 장려하는 제도를 법안으로 만들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출산이란 축복보다 고통일 수 있다.는 고등학생 커플이 아기를 낳고 혼란을 겪는 이야기다. 그러다 어른들에게 발각되어 그들은 도망을 친다. 감독은 생명의 탄생에만 관심을 갖고 정작 양육을 해야할 이들에게 외면과 사회적 뭇매를 가하는 현실을 비판하는듯 하다. 이 영화는 출산으로 인해 소외계층이 겪는 현실과 그들의 고단함을 표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우는 아이를 키워야 하는, 두 젊은 남녀의 절망을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성격이 보이는 몇 개의 장면을 말해보고자 한다.첫 번째는 첫 장면이다. 아이들이 창문에 비치고 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컷 전환이되어 피 범벅인 아영의 손이 보인다. 아이들과 출산이라는 설정은 ‘탄생’을 의미하지만 마치 아영의 모습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상반되는 영화의 분위기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또한 전철 소리에 휴대폰 벨소리가 묻힌다. 이는 앞으로 아영의 목소리가 환경으로 인해 묵살당할 것을 보여준다.두 번째는 형규가 아영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는 장면이다. 형규의 모습을 긴 호흡과 함께 풀샷으로 촬영하였다. 형규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고독한 분위기를 낸다. 두드러지게 볼 것은 지리적 특성이다. 화면의 상부에는 가로등의 환하고 높은 아파트들과 지나가는 차들이 보인다. 하지만 형규가 있는 하부에는 어두움만 깔려있다. 이를 통해 형규의 소외감과 고독감을 강조시켰다.세 번째 장면은 아영이 버스 종점으로 간 장면이다. 카메라는 핸드 헬드 기법으로 아영을 따라간다. 버스들 사이에서 서 있는 아영은 마치 높은 장벽에 갇힌 것만 같다. 얕은 심도로 그녀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강조한다. 겨우 문이 열린 버스 안에 들어간다. 어두컴컴한 바깥과 달리 버스 안에는 가로등의 불빛이 들어와 환해보인다. 마치 버스만이 그녀가 들어올 공간을 허락하듯이 말이다.
은 에너지가 엄청나다. 한번 보고나면 몰입감과 긴장감이 더 해지면서 다 보고나면 탈진을 할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 니나는 ‘흑조’ 배역에 자신을 동일시시키기 위해 뼈와 살을 깎는 듯 한 고통을 겪어 결국 흑조가 되는 이야기이다. 간단한 내러티브만 보자면 일종의 성공담처럼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는 빗나간 열정이 얼마나 개인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망가뜨리는지 보여준다.첫 장면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빵 부스러기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힌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블랙 스완에서는 짧은 공연을 보여주며 내러티브를 요약했다. 공연을 무사히 마치지만 니나는 시종일관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인물의 감정 선을 따라가던 관객도 마음이 편치 않은 채로 첫 시작을 시작한다. 마치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을 풀지 말라는 감독의 무언의 압박 같기도 하다.카메라는 니나를 바라보는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니나를 계속해서 연약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니나를 둘러싼 존,어머니,릴리와의 대화 장면을 주로 오버더 숄더 샷으로 잡는데 일반적으로 오버더 숄더 샷은 관계 지향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OS샷에서 니나는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그래서 인간 관계적으로 소극적이고 불안정한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또한 존 앞에서 오디션을 볼 때 회전하고 있는 니나의 시선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를 빠르게 원형으로 돌림으로서 관객들에게 눈의 피로를 주기도 한다. 이는 계속해서 니나를 불안하게 바라보게끔 하는 감독의 의도로 보였다.그런데 릴 리가 갑자기 니나의 오디션 중간에 들어온다. 니나의 집중을 흩뜨려 놓는다. 마치 릴리가 니나의 영역으로 쳐들어와 선전포고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카메라는 릴리를 주시하듯 계속 화면에 잡는데 앞으로 그녀를 계속 주시하라는 감독의 의도라 생각했다.이 영화의 미장센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우선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상징적 요소이다. 대사로만 영화를 전개시키면 관객은 지루함을 갖기 쉽다. 그런데 관객이 스스로 창조적이고 능동적으로 영화에 동참시키는 것이다. 우선 색채에 관한 상징이다. 백조 같은 니나는 흑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단순히 그녀의 능력 때문일까? 아니다. 감독은 계속해서 니나를 흑조와 거리가 멀어보이게 끔 만들었다. 바로 색상을 이용해서다. 니나는 백조의 깃털과 같은 하얀 목도리를 늘 매고 다닌다. 그리고 백조를 연상시키는 듯한 하얀 연습복, 분홍색 후드 집업이다. 흰색은 티 없이 맑아 보이기도하고 순결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른 색을 결합시켰을 때 가장 크게 반응하는 연약한 색이기도 하다. 흰색에 검은색을 탄다면 곧바로 본래 무슨 색이었는지도 모를 만큼 형체를 알아차리기 힘들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하는 색일 수도 있겠다.두 번째 색상은 검정이다. 니나는 계속해서 흑조가 되려고 했다. 흰색뿐인 그녀에게 검정을 입히고 싶었던 것이다. 흑조의 검정색은 어쩌면 니나에게 열망과 열정을 뜻했을 수도 있겠다. 존과 릴리 그리고 어머니는 항상 검은색과 함께 있었다. 그렇다면 니나는 그들에 대한 열망을 품었던 것이다. 존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열망, 흑조는 릴리와 더 잘 어울리는 열등감에서부터 오는 열망 그리고 어머니에게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열망 말이다. 하지만 열망을 집착을 하며 쫓다 스스로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게 된다. 니나에게 검정은 순수한 열망이 아닌 빗나간 열망이 된 것이다.색상 뿐만아니라 거울이라는 상징적 요소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주로 니나의 표정을 대신 보여주기 도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여러 개의 거울을 통해 여러 명의 니나로 만들어 감정을 배로 증폭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더 파생되는 거울의 역할은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니나는 자신이 흑조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참으며 흑조와 자신을 동일화 시키려고 노력한다. 괜찮다. 괜찮다 암시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니나는 관객들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다. 이러한 니나의 심리를 보여주듯이 니나는 뒤를 돈 채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관객은 거울에 비친 니나의 표정을 보고 심리를 예측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니나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보는 것이다. 부족한 자신을 들키지 않게끔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녀가 혼란스러울 때 쪼개진 거울들이 여러 명의 니나를 만들어 더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한다.하지만 존과 릴리는 거울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는다. 자신있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통제하지 않는다. 이는 니나와 대조적으로 보여 니나의 심리를 더 강조한다.사운드는 춤을 출때나, 인물의 강력한 충격을 받을 때 리듬을 절묘하게 살려내어 지치지않는 동력원을 만들어낸다. 시청각적으로 다채로운 이 영화는 볼거리들을 많이 주기도하여 눈과 귀가 호사를 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미운 입사 동기가 있었다. 나와 성향이 정 반대였던 동기는 공동 작업을 할 때마다 나와 의견이 갈렸다. 성과는 그 친구가 더 좋아 금세 주변인들의 호감을 샀는데 나와는 거리가 계속 멀어졌다. 하지만 점점 일이 고단해지고 현실을 향한 회의감이 들 때 그나마 내 편이 되어준 건 그 친구였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우리는 점차 의지하게 되었다.의 주인공 지영과 희진도 다른 성향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서로를 인정하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이야기이다.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연대하는 소시민의 삶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이 연출한 장면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들이 있었다.첫 번째는 지영과 희진은 결국 같은 소시민이라는 연출이 보이는 장면이다. 탈세를 하기위해 야근을 하다가 책상 위에 엎드리는 장면과 병원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두 인물을 동등한 구도로 배치시키고 같은 연기 연출을 시켜 결국 둘은 아무리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소시민이라는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했다.두 번째 장면은 지영이 칼을 차고 다니는 꿈 속 장면이다. 이 장면은 많은 인파 속에 섞여있는 지영을 풀샷으로 촬영하여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영의 스트레스와 부담이 가슴 속에 차있는 것을 가슴에 칼을 품은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러한 상징 묘사를 사용하여 관객들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작품 해석에 동참 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 만든 영화라는 것은 대사로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작품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상징 요소를 통해 관객에게 해석의 폭을 넓혀주었다.세 번째는 지영이 횡단보도에서 희진을 붙잡는 장면과 머리를 기대고 버스를 타는 장면이다. 횡단보도에서 지영이 희진을 부른다. 풀 샷으로 촬영된 이 장면은 크고 높은 건물들이 사방으로 펼 쳐져 보이는가 하면 둘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이것은 거대한 사회 속에서 힘이 없는 개인 즉 소시민의 삶을 대변한다. 횡단보도에서 만난 둘은 서로가 같은 처지라는 것을 깨닫고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버스에 타 머리를 맞대고 가는 장면은 이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보여준다.네 번째 장면은 불이 난 회사에 지영이 지갑을 찾기 위해 들어가는 장면이다. 모든 것이 타버리고 재밖에 남겨지지 않은 장소를 풀샷으로 보여주어 더 비참하고 공허하게 만든다. 하지만 감독은 이 장면을 사운드로 채우기 시작했다. 밖에서 들리는 앰뷸런스 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 소방관들의 대화 소리들을 넣음으로서 단조로울 수 있는 장면에 다양한 소리를 넣음으로서 현실감을 주는 동시에 영화 속 세상 분위기를 나타냈다.다섯 번째는 지영이 아버지와 통화를 하는 장면과 병원에서 쭈그려앉아 지영과 희진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이때 두드러지는 것은 지영의 연기연출이다. 지영은 서울말을 쓰다가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사투리를 쓰기 시작한다. 이 때 컷 편집 없이 원 테이크로 진행이 되는데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장면을 배우가 연기로 장면을 채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감정의 심리를 보다 강력하게 느낄 수 있고 인간미와 동정심을 느끼게 한다.
은 소외된 여자 아이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정서적 변화를 겪는 이야기를 보여준다.첫 인트로에서 여자 아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 동네를 내려다보며 슈퍼맨처럼 손을 번쩍 든다. 관객들은 이로 하여금 여자아이의 성격을 용감하고 활동적이라고 파악한다. 그리고 골목들을 롱샷으로 길게 보여주며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긴 골목에 내리쬐는 자연광,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장난감과 같은 서정적인 정보의 사용이다. 이러한 정보로 관객들은 골목은 아이들의 삶의 터전이나 놀이터라는 것과 그들의 놀이 행위를 통해순수함을 엿 볼수 있다. 초반부에 두드러지는 것은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으로 촬영한 ‘ 개 조심 ’ 문구이다. 초반부에 개 짖음 소리가 나긴 하지만 개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심하라는 문구는 긴장감을 부여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 사건이 등장할 것 같은 기대감을 부여한다.남자 아이들 사이에 낀 여자 아이는 성별로 인한 대립을 겪게 된다. 여자 아이를 향한 ‘기지배’ 라는 단어 사용은 직접적으로 남자 아이들이 여자아이를 하대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의상을 통해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을 구분 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자 아이는 빨간 망토와, 분홍색 옷을 입었지만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계통의 옷을 입으며 색채적으로 구분을 하고 있다. 감독은 직간접적으로 관객들에게 구분을 하도록 의도를 한다. 카메라가 여자아이를 향할 때는 보이지 않는 병아리 소리를 들려주며 여자 아이의 연약함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병아리 같은 여자 아이를 안쓰럽게 보게 한다. 사운드로만 나오던 병아리는 드디어 카메라 앞으로 나온다. 귀여운 병아리를 보자 두 명의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 자리로 가 병아리를 쓰다듬는데 이 때 세 명을 대칭적으로 배치시켜 시각적인 안정성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으로 병아리와 나머지 아이들을 하찮게 보는 한명의 남자아이는 비대칭적으로 촬영하여 아이가 가지는 불만족, 비아냥거림이 드러난다. 대칭적인 아이들의 장면과 비대칭적인 남자 아이의 장면이 교차적으로 편집 될수록 두 집단 간의 사이가 정서적으로 균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병아리를 쓰다듬는 아이들을 하이 레벨로 촬영하여 흘겨보는 듯한 남자아이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남자아이들은 병아리를 집어 던지며 다시 장난감 칼을 들었다. 달려가는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롱샷으로 잡아주었을 때는 그들을 바라보는 여자 아이의 소외감,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긴 골목으로 인해 긴 깊이 감으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이 더 멀어지고 있음을 느껴 여자 아이가 더 안쓰럽게 보이게 된다. 아이가 병아리를 밟을 때의 발자국소리를 극대화시켜 사건의 전환을 청각적으로 알린다. 그리고 여자아이의 달려가는 뒷모습을 풀샷으로 길게 잡으며 관객들이 느낄 충격을 길게 끌고 나간다. 인트로에서 보여주던 여자 아이의 성향과 대조적인 태도는 더 큰 충격을 안긴다.이 영화는 삶의 공간, 아이들 , 장난감, 병아리의 소재를 이용해 동심과 자연 친화성을 이용했다. 그리고 인위적인 조명이 아닌 자연광을 주로 사용해 서정적인 분위기를 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을 귀엽고 다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고민이나 갈등 자체는 가볍게 볼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트렁크 분석문의 첫 장면은 트렁크가 열린 차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달리는 차는 마치 입을 벌리고 누군가를 향해 달리는 것 같다. 이 차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여자 주인공인 경민은 초반부에서부터 누군가에게 쩔쩔매며 불안해한다. 사장은 경민에게 어디냐고 욕을 한다. 욕을 들어도 경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다 트렁크가 열린 검은 차를 발견한다. 이때 경민이 타고 있는 자동차 거울이 얼굴을 비춘다. 이는 곧 경민의 두 개의 자아가 충돌할 것을 암시한다. 욕을 먹어도 반격 하나 하지 못하는 경민은 마치 ‘선’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경민의 성격을 대변하듯 차까지 순결한 흰색이다. 트렁크가 열린 검은 차를 닫을 때 로우 앵글로 잡아 긴장감과 위압감을 주어 내러티브에 무게를 싣는다. 검은 차 주인은 경민에게 인간 말종에게 가지도 말고 참지 말라고 한다. 마치 경민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아는 듯 말이다. 검은 차는 경민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악’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침 차도 경민의 하얀 차와 대조적인 검은색 차다. 이러한 상징적인 요소들로 관객을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동참시키고자 의도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전개 될수록 경민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감독은 경민에게 ‘내가 참자,’라는 반복되는 대사를 시킴으로써 본연의 감정 즉 악을 억누르게 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흰 색차가 검은 차를 계속 피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주차장에서 위험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후진을 하며 검은 차가 달려오는 것인데 그렇게 내면의 ‘악’이 경민에게 다가가도 피하고 만다.이때 검은 차와 흰 차를 비스듬하게 촬영하여 불안함과 긴장감을 준다. 그리고 흰 차와 검은 차를 공간에 대치적으로 자리 잡게 함으로써 미경의 두 감정 즉 선과 악이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민은 드디어 차에서 나와 검은 차에 다가간다. 그리고 트렁크에 있는 캐리어를 조심스럽게 연다. 이는 경민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악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순간이기도 하다.구도 적으로 카메라 앞에 캐리어가 가장 가까이 있고 경민이 멀리 있다. 경민의 몸집보다 더 커보이는 캐리어는 원초적인 감정을 억누르기엔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낮은 피사계심도로 캐리어 뒤로 배경이 흐릿해 보인다. 경민은 한없이 약해 보인다.이는 본연의 감정 즉 자연의 섭리를 통제하거나 이해하지 못해도 수용해야 하는 약한 인간을 표현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