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士學位論文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釜山外國語大學校外交學科서인명學士學位請求論文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指導敎授 김호준이 論文을 學士學位請求論文으로 提出2016年 11月 26日釜山外國語大學校外交學科서인명이 論文을서인명의 學士學位 論文으로 認准함2016年 11月 26日審査委員 ______________ (印)審査委員 ______________ (印)釜山外國語大學校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서인명Ⅰ. 서론Ⅲ. 결론Ⅱ. 본론Ⅳ. 참고문헌1.공적개발원조(ODA) 정의 및 형태2.ODA 현황3.우리나라 ODA의 현황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ODA의 정의부터 시작하여 형태, 정의 현황 그리고 우리나라 ODA의 현황을 상세히 알아보았다. 본 연구는 한국 ODA의 이전 자료들과 현재의 자료, 더 나아가 국제 ODA의 자료까지 결합하여 향후 우리나라 ODA의 정책제언까지 해보았다.본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거 다른나라의 ODA 규모 분석 결과 우리나라의 ODA 규모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다. 한번이나마 우리나라는 규모의 ODA를 실시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 두 번째로는 ODA정책의 지지를 받으려면 우선적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과거보다 더 홍보를 실시하여야만 한다. ODA 교육기관 설치와 자격증시험등 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 왕성한 홍보활동과 전문가 양성에 노력을 하고 있으나 이는 이전부터 당연히 진행 되어야 하는 것들 이었고 현재에 들어서는 좀더 탄력적으로 시행해야될 필요성이 있다. 세 번째로는 우리나라 ODA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IATI에 2015년 말에 가입하여 2016년 처음 성과를 보고하였다. 하지만 39개항목 중 필수 공개 조건인 단 13개만 공개하였다. 한국 ODA의 선진화와 투명성을 위해서는 다음 IATI의 자료공개 시기에는 39가지 항목을 모두 공개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과거부터 현재 까지의 ODA가 많은 성장을 해왔지만 아직 많이 미흡하다는 점을 시사 하고 있다.주제어:ODA, IATI, 홍보정책, 공적개발원조이 있다. 국제협력이란 국가 간 및 국가와 국제기관의 모든 유 무상 자본협력, 교역협력, 기술, 인력협력, 사회문화협력 등 국제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교류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 경우 국제협력은 원조나 경제협력에 비해 더욱 상호주의적 이며 평등한 관계를 강조하고 아울러 협력분야를 경제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 문화 분야로까지 확대하고자 함이다. 경제협력은 보통 투자 및 자본협력 등을 일컫지만 광의로는 무역을 포함한 모든 경제교류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며, 때로는 대개도국 경제협력의 줄임말로 이해되기도 한다. 경제협력은 정부차원의 개발원조, 상업차관, 수출신용, 민간부문에 의한 직·간접투자, 해외건설, 무역, 해외이주 및 해외취업 등을 포함하며, 국가 상호간에 이전되는 재원을 포함한다. 따라서 선진국 간, 개도국 간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 경제 분야의 제반 협력관계를 경제협력이라 할 수 있다. 개발협력은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이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개발재원의 이전(transfer of resources for development)"을 말하며 주로 선진국이나 국제기구로부터 개도국에게 일방적으로 이전되는 재원을 말한다. 따라서 군수물자구매에 필요한 재정지원, 종교적 목적이나 예술 및 문화 활동에 필요한 원조, 다른 수출국에 비해 유리한 가격으로 개발도상국에 물품을 판매하는데 따른 비용은 개발협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적원조는 개발원조위원회가 ’90년대 들어 구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시장경제체제 이행 지원 등 새로운 원조 수요가 발생함에 따라 1996년 12월, 개발원조 대상국을 Part Ⅰ(일반 개도국)국가와 Part Ⅱ(구 사회주의 국가 및 선발개도국) 국가로 구분하게 된다. 이 경우 공적개발원조로 분류하되 특수 목적의 구 사회주의 국가 및 선발 개도국에 대한 원조는 공적개발원조와는 별도로 공적원조(OA : Official Aid)로 산정하고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으로부터의 자금의 흐름은 당연히 개발협력에서 제외된다.적 의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 외교적 동기는 과거 냉전 체계 하에서 공적개발원조의 정치적 목적은 공산화 방지 또는 국제질서의 안정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러한 정치외교적인 동기에 의한 원조의 대표적인 예로 서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2차 대전후 경제부흥계획인 마샬플랜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도 같은 이유로 과거 서방국가들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은 바 있다. 현재에도 많은 국가들이 국가안보이익 차원에서 전략적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적 동기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공여하여 그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면 수출시장이 확대되며 자국기업들의 해외 진출 발판이 되고 나아가 자원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국물품 및 용역으로 개발 원조를 실시하여 수출을 촉진시키는 것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관행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수원국 경제발전을 왜곡시키고 원조비용의 증가시키는 문제를 감안하여 공여국들은 이런 관행을 지양하는 추세이다.현실주의이상주의원조동기 및 목적국가안보 경제실익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 해소 인도주의 실천추구방법지원국의 독자적 결정 강조후진국 수요 반영효과평가단기 혹은 중기장기공여방식양자 원조국제기구 활용 양자 원조지리적 배분지원국의 국가정책상 필요에 따라 결정공평배분 최빈국강조 ODA에 대한 두 가지 시각상호의존의 인식은 1960년대에 대두되기 시작한 남북문제가 1970년대 제1차 석유파동, 신 국제 경제질서 선언 등으로 대두되어 남북대결 양상으로 심화되어감에 따라 생겨나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정보와 인구의 유동성이 높고 국가-지역 간 연계성이 높아지는 사회에서 한 지역이나 국가에서 발생한 사건이 다른 지역 및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는 환경파괴 및 질병의 기후변화와 질병확산 등 선진공업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빈곤과 정치적 불안정은 9,11테러와 난민사태 등 안보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변화된 지구촌 환경 속에, 선하였다. 공여국 중심의 원조에서 공여국과 수원국이 함께하는 원조정책 수립을 골자로 하는 파리선언은 향후 좋은 지표로 사용될 것이다.2) ODA의 규모DAC 회원국들의 원조 추이를 살펴보면, 양적 규모로 볼 때 1980년 중반까지는 미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다가 1990년 초반 이후에는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제1위의 원조 공여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미국의 원조 규모가 급상승 하면서 2006년 227.4억 불을 원조해 미국은 OECD 회원국 중 최대 공여자 이다. 2011년 기준으로 미국과 일본의 ODA 절대규모는 세계 1,3위 수준이나 GNI 대비 ODA 비율은 각각 0.20% 와 0.18% 정도이다. UN의 2015년 목표치인 0.7% 및 DAC 국별 평균 0.31% 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전 세계 ODA는 2000년 540억 달러에서 2010년 1,287억 달러로 확대 되었다. 특히 ODA의 경제 및 사회 개발 지원 측면이 강화되는 추세이다.3) 국제개발협력의 주체 DACDAC는 25개국이 가입되어 있는 개발원조위원회 OECD의 기구이다. DAC의 목적은 양자 간 원조 프로그램의 질 제고, 원조효율 제고를 위한 공론의 장 제공, 양자간 원조 공여국의 대변인, 개발을 위한 정책일관성 지원 이며 핵심활동에는 ODA규모 및 질, 내용에 대한 모니터, 원조효율개선, 동료심사(Peer review), 평가(Evaluation), 정책 일관성 지원 등이 있으며 핵심전략은 빈곤감소 및 새천년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 빈곤층 중심의 성장 및 개발에 대한 민간 참여 독려, 굿 거버넌스, 수원국의 주인의식 강화, 분쟁방지 및 평화구책, 지속가능발전, 성평등 등 이다. DAC회원국들은 대표적인 원조 공여국으로서 세계의 개발과제에 대응하여 무, 유상원조 기술협력 등을 수행하고 있다. 21세기 개발협력전략에 발맞추어 공동의 비전, 파트너십 강화, 질적인 기반 및 정책일관성, 개발원조에서 수원국 개발전략의 중요성, 원조의 성과 중심적 관리 등을 공동으로 추구하고하다. 두 번째로 비교적 발전된 정책적 환경 등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게는 예산지원과 섹터 프로그램을, 기본적인 정책 환경이 수립되어 있지 못한 개도국들은 기술원조 등에 의한 정책수립능력과 정책집행을 위한 제도개선에 필요한 지원을 강화해야한다. 또한 정책환경이 부제하거나 제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는 분쟁중 또는 전쟁중인 국가에게는 그들이 분쟁 또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외부적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국가들은 이러한 사태를 경감시킬 수 있는 원조를 필요로 해야한 다.3.우리나라 ODA의 현황1) 우리나라 ODA의 역사60년대 전후 복구 원조, 농산물 원조 및 군사 원조를 중심으로 소비재(비료, 석유, 의약품 등)를 중점으로 수원받았다. 60~70년대(개발연대 전기)에는 다양한 형태(ADB, IDA등)의 개발 원조 자금 지원 확대와 동시에 경제개발을 위한 재원을 뒷받침하는 원조가 주를 이루었으며 70년~90년대(개발연대 후기) 1976년 미국 AID로부터의 무상원조를 졸업하였으며, EDCF, KOICA 설립을 통해 공적개발원조 시행을 위한 토대를 형성하였다. 90년대(원조전환기) 이후에는 수원국에서 공여국의 전환에 성공하고 ODA 규모 확대와 함께, G20 개발 의제 주도, 부산 글로벌 파트너십 채택, ODA교육원을 설립하는 등 개발협력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 있다.2) ODA의 공여실적우리나라는 신흥 원조 공여국 으로서 개발도상국의 개발에 기여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ODA를 증대시켰다. 1991년 5,700만 달러에 불과하던 원조규모가 연평균 22.6%의 빠른 성장을 보이며 1997년 3배가 넘는 1억 8천달러, 2008년에는 약 8억 불을 기록하여 절대 규모면에서 크게 늘어났다. 2009년 11월에는 우리나라가 OECD 공여국 모임인 DAC 가입이 결정되었고 2010년부터 정식 활동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의 원조 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DAC가입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역사상 유일하게 최빈국에서 공여국으로 도약한 국가가 되었다. 이후 선진 원조공여국의 있다.
할랄음식과 이슬람釜山外國語大學校아랍어과서인명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유는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꾸란 경전중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고기도 먹지 말라. 그러나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는 죄악이 아니라 했거늘 하나님은 진실로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꾸란 2:173) 무슬림에게 종교란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에 꾸란을 일상의 계율로 삼는 무슬림은 이 규율을 꼭 지킨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신석기 시대 중동 지역의 마을들의 유적에서는 놀랍게도 돼지 뼈가 대량으로 발굴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중동 지역에서도 오래 전에는 돼지를 길렀지만, 어느 시점부터 돼지 사육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중동 지역에서 돼지 사육이 쇠퇴한 이유로 삼림의 황폐화와 인구의 증가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신석기 초기만 해도 돼지에게 그늘과 웅덩이뿐 아니라 도토리, 밤, 기타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너도밤나무와 참나무 숲이 있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여 농지 면적이 증가하고 올리브 나무를 심기 위해 너도밤나무와 참나무 숲을 베어 내자 돼지에게 알맞은 생태적 서식지가 파괴되었고, 결국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문화를 낳았다고 보고 있다. 한편, 모든 이슬람 사회가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 ‘꾸란’은 굶주렸거나 불가항력적인 경우를 인정하여 아무 고기든 먹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전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곳에서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이들은 민족의 문화나 자연조건에 따라서 금기가 달라지는 것이 이슬람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율법에 따라 허용되는 음식과 금지되는 음식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아랍어로 ‘할랄(halal)’은 '허용할 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할랄은 과일ㆍ야채ㆍ곡류 등 모든 식물성 음식과 어류ㆍ어패류 등의 모든 해산물과 같이 이슬람 율법 하에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이와 반대로 허용되지 않는 음식은 '하람(haram)'이라고 한다. 좁은 의미에서 할랄은 ‘허용된 음식’을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음식뿐만 아니라 금융, 화장품 등 허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하람 또한 넓은 의미에서 이슬람 율법상 금지된 모든 것을 말한다. 추가적으로 또한 동물의 피와 그 피로 만든 식품도 하람이다. ‘알라의 이름으로’라고 기도문을 외우지 않고 도축한 고기도 금기 음식이다. 이밖에도 도축하지 않고 죽은 동물의 고기, 썩은 고기, 육식하는 야생 동물의 고기 등도 먹을 수 없다. 메뚜기를 제외한 모든 곤충도 먹지 못한다. 육류 중에서는 이슬람식 알라의 이름으로 도축된 염소고기, 닭고기, 소고기 등이 할랄에 해당한다. 무슬림은 동물이 신의 창조물이고 영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도축 행위는 ‘알라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게다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엄격하게 규율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식용을 위한 도축 행위는 그런 규율을 따라야 한다. 한편, 모든 해산물은 할랄 음식이다. 다만 무슬림들은 오랜 유목 생활로 바다 음식이 문화적으로 친숙하지 않고, 해산물의 경우 쉽게 상해서 탈이 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비늘 없는 생선, 연체동물, 갑각류는 거의 먹지 않는다. 오늘날 할랄 산업은 식음료 분야에서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할랄 산업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화학 비료나 유지방을 사용했는지가 중요하고, 금융 분야의 경우 돈의 출처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마약, 술, 돼지고기 가공 등으로 번 돈은 사용이 금지된다.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에 무슬림이 아닌 일반인들까지 할랄 식품을 찾게 되면서, 세계 식품 시장의 약 16%를 할랄 식품이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은 이슬람국가에서는 식품의 경우, 할랄 인증을 받은 것만 수입하고 판매하도록 법을 만드는 등 할랄 인증 제도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하디스에 의해 식사의 집단주의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따라서 친구와 친척 등의 집을 식사 때에 갑자기 방문해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다. 또한 식사에 초대를 받은 경우에는 대답을 머뭇거리는 것은 실례로 여기며, 오히려 단식 중에 먹지 못할 때도 기쁘게 참석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초대받지 않은 채 따라온 사람이라도 손님으로서 맞이하는 것이 보통이다. 식사는 바스말라 ‘알라의 이름으로 잘 먹겠습니다’로 시작하여, 알함두 릴라히 ‘알라를 찬양하며 잘 먹었습니다’로 끝내야 한다. 불결한 왼손을 사용해선 안되고 오른손의 엄지·검지·중지의 세 개를 사용하여 먹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있다. 마루에 앉아서 먹을 때에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이 테이블에 둘러앉을 수 있도록 오른 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 무릎을 붙인 상태로 먹어야 좋다. 하디스에서는 과식과 사양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하고 있는데 주인은 손님에 대해서 성심껏 권유하고, 음료 등을 돌려 마실 때에는 오른 쪽에 앉은 사람부터 돌리게 한다. 금 또는 은으로 만든 식기·용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체로써 하디스는 초기 이슬람 시대의 검소하고 금욕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선행은 속죄행위와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맹세를 어긴 경우에는 10명의 가난한 사람에게, 또한 단식을 깨트린 사람은 60명의 가난한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해야만 한다.
요르단의 이슬람문화釜山外國語大學校아랍어과서인명요르단의 압둘라 2세 이븐 알-후세인(Abdullah II IBn al-Hussein) 국왕은 확고한 통치체제 속에서 중동지역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온건한 이슬람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군, 경찰 등의 치안유지 활동이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경제적 정치적 지원도 지속되고 있다. 정치와 사회적 안정이 요르단 국가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대해 리더십 및 일반 국민들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2005년 주요 호텔에 대한 폭탄테러가 발생한 이후 요르단 내에서 테러 발생이 전무하였다. 국제유가의 급락으로 일반 물가가 하락하면서 요르단 서민층의 생활고가 다소 완화되었으나, 향후 원유가 재상승 등 물가 상승요인이 발생할 경우에는 사회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2008년 유가가 급등했을 당시 압둘라 국왕 및 나데르 다하비(Nader Dahabi) 총리 등은 물가안정 및 서민생계보호에 정책역량을 집중하였다. 요르단은 국민의 60% 이상이 팔레스타인계인 특수성으로 인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상황은 요르단의 정세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르단의 인구 구성을 보면 토착 요르단인이 31%, 팔레스타인인이 60%, 기타 9%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분쟁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팔레스타인계 주민의 동요로 사회불안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008년 12월 27일 사태 발발 이후 지속적인 시위 발생, 의회에서의 대이스라엘 단교 촉구 등으로 요르단 정부의 정치적 부담도 증대되고 있다. 이제 요르단의 이슬람문화에 대해서 살펴보자 2016년 9월 페이스북에 이슬람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만평을 기재하여 재판을 받게된 유명한 요르단 작가 나히드 하타르가 법원앞에서 총격 3발을 받아 살해됐다. 이의 죄명은 이슬람을 모독하고 종파 갈등을 부추긴 혐의로 이날 법정에 설 예정이었다. 뒷 이야기로는 하타르의 체포를 명령하고 재판을 받게 한 요르단 총리가 암살을 선동한 것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볼 때 요르단은 기독교 또한 국교로 인정한 나라이지만 국민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인 이슬람 국가이며 종교적으로는 보수적인 아랍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명예살인 부분에 있어서도 아랍국가중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요르단의 경우 부족적인 습성이 있는데다가 외간 남자에게 여성들이 별 문제가 없었음에도 명예살인이 종종 일어나고 있고 중동 지역에서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예멘 등이 이러한 명예 살인이 심한 국가들이다. 이는 유목민적 문화가 결부된 것에서 유래되었다. 예전 요르단에서는 가족에 의한 "명예살인"을 가볍게 처벌했었다. 그 죄목으로 여자를 죽여도 6개월의 실형만 살고 나오면 됐었다. 감옥에서도 명예살인한 사람들은 영웅대접을 해주기도 했었다. 또한 가족 구성원들이 한 가정의 여성을 함부로 살해하고 나서 그것이 명예살인이었다고 핑계를 대는 폐해도 생겨 났다. 1998년에는 싸르한 압둘라가 임신한 언니를 도우러 갔다가 형부한테 강간당한 여동생을,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나오자마자 권총4발을 머리에 쏴서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압둘라는 6개월동안 실형을 살고 나왔으며 그는 자기의 여동생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관습이라고 했다. 이 시간에도 일부 국가에서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가 아내를, 딸을 죽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또한 요르단의 저널리스트 라나 후세이니는 명예살인에 대한 글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녀가 고발한 것만 해도 요르단에서는 매년 신문에 보도되는 것만 해도 20건 이상의 여성 살해가 명예살인이란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 한 예시를 더 들어 보자면, 1994년 키파야라는 16세 요르단 소녀가 오빠에게 강간을 당하여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부모는 그를 나이 많은 다른 남자와 혼인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이혼하자 가족들은 그녀를 살해했다. 요르단 법정에서는 살해자에게 경미한 처벌을 하였고 이를 지켜본 '요르단 타임스'의 라나 기자는 과거 13년간 자행된 명예살인의 원인을 조사했다고 한다.그 결과 1990년대 중반부터 요르단 여성들이 혼외 임신을 하였을 때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부러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무슬림 여성들에게는 부모가 사는 집보다 감옥이 더욱 안전한 보호 장소가 된 것이라는 웃지 못할 심각한 상황이 '명예살인'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명예살인이 이슬람과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만, 가난한 지역에서 살고 교육을 덜 받은 무슬림들일수록 명예살인을 더 많이 저질렀다. 1999년 명예살인 제도를 없애기 위하여 요르단 국가 위원회가 설립되었고 15만 4,000명이 4개월 동안 요르단 법 개정을 위하여 서명 운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요르단 하원은 이 법의 개정을 반대했다. 그 지역의 명예는 아랍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여성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정 때문이었다. 더구나 많은 아랍인들이 라나의 명예살인 취재가 아랍인들의 명예를 더럽혔다면서 그녀를 살해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형법 308조는 강간범이 피해 여성과 결혼하기로 합의하면 강간 혐의를 벗겨 줍니다. 대신 강간범은 5년내 자신이 강간했던 여성과 결혼을 하게 되면 이혼할 수 없습니다.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서 강간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 대개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들을 남자들이 납치해서 강간한 뒤, 가해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대개 피해자 가족과 결혼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요르단 형법 308조의 조항 때문에 그렇다. 요르단 여성연합의 나디아 샴루크 회장이 "이 형법 조항 때문에 범죄자가 도리어 결혼이라는 보상까지 받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면서 "이 같은 법적용은 또다른 범죄를 부른다. 미성년자인 14세 소녀가 도대체 자신의 강간범과 결혼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법원기록에 따르면 15세 미만의 소녀를 성폭행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요르단에서는 지난 2010년에만 379건의 강간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변호사 겸 인권운동가인 에바 아부 할라웨는 "한번은 강간범이 결혼을 원치 않는 18세 소녀 피해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며 "하지만 소녀의 아버지가 실업자인 강간범과 결국 합의를 봤다. 이 자는 이미 다른 여성과 결혼해 아이가 여섯이고 가족 생계조차 보장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아부 할라웨는 문제의 법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면서 폐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요르단 최초의 여성 검시관인 이스라 타왈베는 "피해 소녀의 입장에서는 형법 308조에 따라 결혼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부모나 친지에 의해 '명예살인'을 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법은 우리 사회 현실에 맞다. 가해자에게 결혼을 강제함으로써 피해 소녀를 보호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실제로 요르단에서는 해마다 15∼20명의 여성이 순결을 잃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당하며, 살인죄는 사형을 받을 수 있지만 명예살인의 경우 때때로 감형되기도 하며 '솜방망이 처벌'에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이렇게 전근대적인 여성학대 사례는 계몽되지 않은 지방 도시 지역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서구 인권 단체의 압력이 미치지도 않는데다가 이들 입장에서는 '왜 우리 국가 나 가정의 일에 외세가 끼어드는가?'라는 반응으로 대응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들을 물론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정상이고 이렇게 취급해서는 안 되는데 평화와 관용의 종교인 이슬람권에서 초기의 이슬람의 가르침대로 여성 억압적인 구태를 타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건 외부에서 압력을 준다고 해서 그들이 바뀌는 개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변화해야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면모도 있는 반면 다른 부드러운 면도 찾아 볼 수 있다. 요르단은 니깝, 히잡 등 이슬람 여성 전통복장에 대한 자유도가 꽤 높은 편에 속한다. 거리에서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히잡을 착용하였다고 하더라도 몸의 형태가 티가 나지 않는 질밥 이라는 전통 장옷을 입지 않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청바지, 블라우스 등등 여러 가지 현대 패션이 존재하며 백화점을 가도 형형 색색의 화려한 여성 의류를 구경할 수 있다. 이처럼 요르단은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극단적인 면모와 동시에 유연한 면모도 또한 보이고 있다.
요르단 경제 환경과 한국과의 문화경제 교류현황과 전망釜山外國語大學校아랍어과서인명요르단에대해서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남한과 비슷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인구는 950만명이며 수도는 암만이다. 정치현황은 입헌군주제를 취하고 있으며 의회는 양원제로 상원과 하원이 있다. 요르단의 경제 현황으로는 GDP 376억불 1인당 GDP는 4940불이다. 경제성장률은 2015년 기준 2.5% 정도를 유지중이며 무역규모는 수출 78억5천만불 수입 203억 9천만불로 무역 수지가 큰 차이가 난다. 요르단은 현재 실업률이 15.8%를 기록하고 있으며 마안지방에 경우 50%가 넘는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142억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며 채무는 352억불이다. 주요산업으로는 제약, 석유정제, 시멘트, 경공업, 관광업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요르단은 현재 개발도상국이며 전 세계로부터 원조를 통해 유지가 되고 있다. 최근 원조는 독일 정부로부터 1억 6천만유로의 무상원조를 받았으며 또한 미국에게 7억8천6백8십만미불 규모의 무상원조를 받았다. 요르단은 발전을 위해 최근 굉장히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 운송 인프라 개선을 위한 노력 그리고 세관 절차 간소화등 아까바 항구를 통한 원활한수출입 업무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기업환경평가 순위에서 190개국 중 118위를 기록하며 외국인들이 기업활동을 하기에는 아직까지도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동반하고 있다. 최근 2016년 4월 이후 투자자신뢰지수가 계속 하락세를 타고 있으며 요르단중앙은행은 외환보유 감소로 인해 통화제도 신뢰지수 및 증권거래소 신뢰지수가 감소하고 있다. 2015년 요르단은 경제개발계획 10개년을 발표하고 원자력 발전소 준공과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 에너지 자급률을 현재 2%수준이지만 2025년 39%까지 상승시킨다는 큰 목표를 세웠다. 요르단의 경제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체계적이지 않으며 아랍권 특성상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비리가 많은 나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리포트를 쓰기전 필자는 2년간의 요르단생활과 사업 준비, 수출, 수입 등 요르단에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도중 외국인들이 기업하고 요르단 내에서 사업적인 일을 행하려면 항상 제약과 법 그리고 세금등 높은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일에는 인맥과 뒷돈이 필요하고 현지어로 와쓰따 라는 브로커를 통해야만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만약 브로커를 통하지 않는다면 요르단인일 지라도 한참을 기다려야 문서1장이 통과되고 또 기다려야 한 장이 통과된다. 요르단대학교 북문 쪽에 위치한 비타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과일 주스 집은 가게를 계약하고 리모델리을 마치고 모든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에서 오픈까지에 기간이 6개월이 넘개 걸렸다. 현지 한국기업들도 이런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럼으로 한국기업들 또한 이러한 일이 생길때는 기업마다 그리고 분야마다 와쓰따 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곤 한다. 이러한 특성들로 볼 때 요르단정부는 규제등을 확실하게 명시하고 집행해야 하고 또한 현재 가지고 있는 규제들을 재정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요르단과 한국과의 문화교류현황에 대해서 서술하겠다.요르단에 있는 차들 중 80%이상이 한국 차다 핸드폰 또한 삼성 엘지를 대부분 사용한다. 현지 엘지 같은 경우는 요르단에 가족적 이미지를 심기위하여 고아원, 장애인 등 시설에 많은 기부와 광고를 하고 있다. 또한 한국제품들의 선호도가 굉장히 높고 메이드인 코리아라고 하면 대부분 믿고 구매한다. 이러한 상태로 볼 때 요르단은 한국을 굉장히 좋아하고 호의적으로 생각한다. 또한 요즘 케이팝 그리고 케이드라마가 굉장히 인기가 있으며 매일4시에 MBC드라마 채널에서는 한국드라마가 아랍어 더빙으로 방송된다. 요르단대학교 내에는 한국어과가 있으며(일본어과는 존재하지 않음) 한국어과학생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또한 코이카의 무상원조 봉사활동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현지 마을에 벽화를 그려주기도 하며 한국 의료팀의 진료활동 그리고 분기별로 사물놀이와 한글날행사 등 많은 행사를 하고 있다. 주한요르단 대사관도 또한 매년 10월 코리아 위크 행사를 진행하며 한국영화 그리고 한국어 말하기 대회, 케이팝콘서트 등 많은 한국을 알리기 위한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요르단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요르단이라고 말하면 위함한곳, 테러리스트, 폭탄 등 부정적인 단어들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요르단의 유명한 관광지 페트라도 요르단에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요르단은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만 한국은 요르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요르단은 한국에서 자신의 나라를 알려야 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은 현지에서 한국을 알리기위해 노력하는 행사들을 더욱더 많이하여 한국에대한 위상과 이미지를 더욱 높이고 알리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며 특히 이러한 일을 직적접으로 하는 코이카 단원들에 대한 신경을 더욱더 많이 쓰여야 할 것이다. 요르단은 아직까지 시민의식면에서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많다. 수도 암만에서는 그나마 치안이 좋은편이지만 대부분의 단원들은 시골로 파견되기 때문에 항상 맘편히 살고있지 않은 현실이다. 이러한 점들을 제언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