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생명과학의 이해‘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읽고 처음엔 유전자에 관련된 이야기 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읽고나서 알게 된 것은 ‘후성유전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고, 어쩌면 유전자 자체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분야는 ‘후성유전학’이라는 것인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런 분야가 있는 지도 몰랐으며 심지어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그래서 책에서 더 쉽게 설명해준 부분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컴퓨터라면 우리의 유전자는 하드웨어고, 소프트웨어를 해석하는 일들을 후성유전학자들이 하고 있다고 한다. 즉 수업시간에 배워 왔던 ‘유전자’ 자체에 초점을 두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세포에 영향을 준다는 ‘후성유전학’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후성유전적 영향에 의해 유전자를 조종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의 DNA암호를 알아내는 것 그 자체엔 기대했던 것 보다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DNA암호를 알아낸 것은 물론 중요한 발견이었지만, 알고 보면 생각보다 유익한점이 별로 없다고 한다. 하드웨어만 있으면 컴퓨터가 잘 돌아가 수 없는 것처럼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DNA암호를 알아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암호를 해석함으로써 인간의 대부분의 비밀을 밝혀내고, 엄청난 수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 개발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질병은 유전물질의 이유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엄청난 발견이라고 여겨졌던 유전자 지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 할 만한 결론을 가져왔다. 대신에 연구자들에게 후성유전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우리가 더 복잡하고 고등한 형태를 갖고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유전자 수는 식물이나 다른 동물보다 많지 않다. 식물 중에말해진다. 유전자 자동 조절 시스템이란 유전자의 수가 우리의 특성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이 어떤 식으로 생성될지 결정하는 네트워크라고 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이 유전자 수가 몇배로 많은 식물보다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심지어 같은 유전체를 갖고있다 해도 그 네트워크의 복잡성이 다양한 특징을 가진 인간들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한 체계를 만들 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후성유전적 스위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후성유전적 스위치는 유전자가 갖고있는 많은 성질들을 잠재울 수 도 있고, 더 활성화 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식습관, 운동, 생활방식 등의 후성유전 프로그램을 통해 암에 걸릴 확률을 대폭 줄일 수 있고, 반대로 암에 걸릴 확률이 낮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많이 먹는 등의 생활방식을 갖게 되면 암에 걸릴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후성유전체의 변화를 유발시키는 요인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예는 여왕벌에 대한 예인데, 나도 이 예를 읽고 이렇게 작은 차이가 엄청난 변화를 유발 시킬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신기하게도 암벌은 태어날 때 누가 여왕벌이 될 것인 지 정해지지 않고 태어난다고 한다. 나는 막연히 태어날 때 여왕벌이 될 벌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 외로 꿀벌은 매우 공평하게 태어난다고 한다. 어떤 벌이 여왕벌이 될지는 유충이 되고 나서 그들의 부모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 방식은 부모에게서 여왕벌로 성장하도록 선택 받은 유충에게만 특별한 먹이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들이 주는 로열젤리를 먹고 자란 유충만이 여왕벌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먹이’라는 작은 요인이 똑같이 태어난 생물을 확연하게 다른 방식으로 살게 만든다는 것은 후성유전적 조절이 얼마나 생물에게 중요한 부분인지 우리에게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또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콘라드 웨딩텅의 후성유전적 지형을. 그 골짜기는 구슬이 굴러가면 굴러갈수록 깊어지고 결국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면 골짜기 사이를 이동하기는 어려워진다. 이러한 현상을 해석하면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환경에 의해 변해버린 상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상태로 변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세 살 적 버릇 여든 간다’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만약 어린시절 환경에 의해서 한 버릇이 생긴다면 그 버릇은 나이가 들면 고치기 어려워 진다는 뜻으로, 우리는 후성유전학을 배우기 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고, 옛날부터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을 알고있었음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또 후성유전적 지형은 구슬이 굴러갈수록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새로운 골짜기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을 보여주면서 섬세한 변화들도 표현해준다. 환경의 영향이 너무 강하게 되면 그 힘이 깊은 골짜기 사이사이도 넘어갈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즉 환경의 변화가 너무 크게 되면 인간이 나이가 들면 변화하기 힘들지만 그 힘이 너무 강력해지면 어쩔 수 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환경의 영향과 생물이 특정하게 민감한 시기가 겹치게 된다면 생물은 변화되기가 더 쉬워진다. 나는 인간의 민감한 시기는 개인마다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나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등으로 그 시기는 천차만별이 될 거라고 생각된다. 저자도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인간이 민감한 시기가 있는데 바로 그 시기는 태아기, 유아기처럼 어렸을 때라고 한다. 섬유근육통을 앓는 여자들을 상대로 하는 실험으로도 증명이 되었는데, 섬유근육통을 앓은 다수의 여성들은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밝혀졌다. 산모의 스트레스가 조산을 유발하고, 예정보다 빠르게 태어난 아이들은 산모가 보내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을 과다하게 받게 된다. 그 코티솔의 영향으로 아이들은 섬유근육통을 앓게 되었고, 즉 다시 말하자면 섬유근육통이라는 병은 민감한 태아기때 산모가 태아에게 준 스트레스성 호르몬으로 생겼다는 것이다. 이 심을 많이 주었을 때 성격도 원만하고, 용감하다. 반대로 관심을 덜 받은 새끼들은 포악하고, 신경질 적이고, 불안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미가 핥아주지 않은 새끼 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가 더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쥐에 비해 작은 일에 스트레스를 크게 받게 된다. 이 실험을 보면 엄마의 애정도가 자식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성이 후성유전적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킨십을 할 때 매우 긍정적인 호르몬이 나오는데 그 호르몬은 우리에게 유쾌하고, 행복한 감정을 준다고 한다. 그런 감정이 우리의 인성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고, 방향도 올바르게 잡아준다고 볼 수 있다. 이 실험을 보면서 혈액형별 성격설은 속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최근까지도 혈액형별 성격설이 꽤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혈액형별 성격설을 믿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실제로 같은 A형의 친구들의 성격이 다 다른 것을 보면 후성유전적 영향으로 성격이 변함을 알 수 있다. 후성유전학에 대해 조금씩 배우다 보니 인간의 성격의 대부분은 유전자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닌 환경적 요인으로 정해진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심지어 환경의 프로그램이 직접적으로 DNA의 구조적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인성 외에도 후성유전적 영향은 건강에도 직접적으로 연관 되어있다. 이혼, 흡연,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수명이 짧아 진다고 한다. 심지어 산모가 먹은 음식들도 아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좋은 사료를 먹인 산모 쥐가 튼튼하고 날씬한 새끼를 낳았다. 안좋은 사료를 먹인 산모의 쥐가 낳은 새끼와 털 색깔도 다르게 태어났다. 즉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임신 초기에 풍부한 영양공급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풍부한 영양공급의 효과는 꽤 커서 유전적 질병을 갖고 태어날 아이들을 특정한 영양소를 섭취하면서 건강하게 낳을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산모가 엽산을 적당한 수준으로갖은 아이들보다 대사증후군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물론 과다한 영양을 공급받게 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균형 잡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잘 조절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부모의 건강상태가 그 아이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체중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아이도 저체중으로 태어난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후성유전학 암호도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물질 뿐만 아니라 후성유전학 암호도 유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의 건강상태는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과 파리는 매우 다른 생물이지만, 파리의 실험을 통해서도 후성유전학 암호의 유전 가능성이 충분함을 알 수 있다. 파리의 배아기 때 열충격을 가하면 파리의 눈이 빨간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신기한 부분은 이 변화가 1세대에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붉은 눈 파리들의 새끼들 또한 붉은 눈을 갖고 태어난다. 그 새끼들은 열충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빨간 눈의 새끼들만 가지고 짝짓기를 했더니 6세대 동안 붉은 눈의 파리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열충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세대의 후성유전적 영향에 의해 생긴 변화가 6세대까지 이어짐을 보면 후성유전학 암호도 유전될 수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후성유전적 영향으로 황금색으로 털 색깔이 변한 쥐는 황금색 털 쥐를 낳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리고 담배를 일찍 핀 사람들의 아이는 비만인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이러한 실험들의 사례를 보면 첫 세대의 환경유전적 변화가 다음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나는 우리가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서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 함은 분명하고, 다음세대들을 위해서도 균형 잡힌 삶을 살아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정해진 특성이라고 생각했던 성격이나 지적인 능력도 나의 노력으로 충분히 변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세포에 영향을 행사하고,
사랑할 자유와 도덕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1.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5.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이다..나는 1~6번 중 4 번의 남녀와 라는 말과 5번에 대해서는 동의 할 수 없다.나는 일단 기본적으로 사랑은 남녀가 아닌 동성의 사랑도 인정하자는 주의이고 이렇게 사전에서 남녀라는 단어를 쓰면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관용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가장 논의하고 싶은 문제는 5번 정의에 관한 것이다. 나는 상대방을 아끼고 귀중히 여기며 열렬히 좋아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지 않았었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인가 의문이 든다. 나는 누군가 사랑하더라도 그 사람과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그 이상의 스킨쉽을 하는데 있어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면 내가 느꼈던 감정은 사랑이 아닌 것일까?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지 않는 사람과 사귀는 것은 사랑이 아니기에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일인가 아니면 나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사랑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플라토닉 러브라고 불리는 비성적인 사랑이 사랑의 정의에 부합 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 모순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 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동의 할 수 없다. 상대방과 스킨쉽이 없더라도 그 사람을 아끼고 자신이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진정한 사랑이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녀’가 아니던 ‘노인과 아이’이던 ‘정신적 사랑’이던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좋아하며 그리워 한다면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정의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결혼을 해서 섹스 없이 아이 없이 산다 해도 그 결혼생활을 사랑이 없는 쇼윈도 부부처럼 취급해야 할 것이 아닌 정신적으로 사랑을 하고 있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문제가 있지 않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라고 생각 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바이다. 그래서 스킨쉽을 강요하거나 정신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지탄한다면 그 사람들은 나의 사랑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도덕적으로 비판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몰라라는 나라를 어떻게 경제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생산성은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생산성이 높을수록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생산성을 높이게 함으로써 몰라라는 나라의 경제성장을 도울 수 있다. 먼저 생산성은 4개의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첫번째는 근로자 1인당 물적자본으로,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투입되는 장비 등을 물적자본이라고 한다.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투입되는 물적자본이 많으면 많을 수록 생산성이 더 증가하게 된다. 두번째는 인적자본이다. 인적자본은 근로자들이 교육, 훈련,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과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적자본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의 생산 능력을 놓여준다. 세번째는 자연자원이다. 자연자원은 토지, 강, 광물 등 자연에 의해 제공되는 생산요소를 뜻하는 말이다. 자연자원이 없다고 해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자원 보존량의 차이는 세계 여러 나라의 생활 수준 격차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기술지식이다. 기술지식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사회의 이해로 기술지식이 진보한다면 생산력이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변수를 조절하기 위해 정부는 여러가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첫번째로 투자와 저금을 증가시켜야 한다. 어떤 경제가 미래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많은 자원을 투자해서 자본재를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자원은 희소하기 때문에 사회가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면 현재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저축과 투자를 장려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촉진하도록 해야한다. 하지만 국내 저축만이 신규 자본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외국 자본에 의한 투자도 하나의 대안이다. 해외 투자를 하면 투자의 과실이 일부 외국으로 돌아가지만 대상 국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자본량이 늘어나고 생산이 늘어나게 되며 실질임금도 상승한다. 또한 후진국에서는 해외 투자를 통해 선진국의 기술을 도입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후진국들은 해외 자본을 유치하도록 해야한다. 또한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좋은 학교를 만들고 국민들이 학교 교육을 받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교육은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로, 한 나라의 장기적 번영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시간동안 다른 일을 했을 때 얻게 되는 임금을 포기해야하지만 교육은 플러스 외부효과를 창출함으로 사회적 이득이 개인의 이득보다 크기 때문에 정부가 대대적인 지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영양에 신경을 써야한다. 국민 건강 증진은 한나라의 생산성과 생활수준을 놓이는 길로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상태를 개선하는데 기여해야한다.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재산권 보호와 정치적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재산권이란 사람들이 자기가 보유한 자원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저축이나 투자를 하지 않게 될 것이며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정치적 불안은 그러한 재산권에 대한 위협으로, 정치적 불안이 큰 나라는 재산권이 보호될지에 대한 불안이 상존하게 되고 저축, 투자, 창업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재산권을 보호하고 정치적 안전을 도모하기위해 노력해야한다. 자유무역도 생산성 증가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대외지향적 정책을 하게 된다면 무역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중요한 기술 진보에 따르는 경제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대내지향적 정책에 비해 효율적이고 생활수준을 상승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자유무역을 추구해야한다. 연구, 개발을 장려해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지식은 상당 부분이 공공재로 개인이 아이디어를 개발하게 되면 사회 구성원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공동 지식이 된다. 정부는 특허제도를 통해 연구, 개발을 촉진시킬 수 있다. 특허제도는 아이디어를 사유제로 변환하는 것으로 개인과 기업에게 연구를 수행할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구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인구 성장이 생산성 증가에 기여한다는 것은 논란이 많지만 전제 조건에 기술 진보가 있다면 인구 증가는 생산성 증가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무작정 인구를 증가시키는게 아닌 적절히 조절을 해서 나라에 맞는 인구 성장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정부정책들을 통해서 몰라라는 나라가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경제성장을 할 수 있다.
영웅영웅은 2002년에 개봉한 액션, 드라마, 전쟁 장르의 영화다. 감독은 장이머우로 1959년 생이다. 장이머우는 중학교 시절 예술이 매도되었던 문화 혁명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 국민군 대령의 아들이라는 출신때문에 그는 자신의 꿈과 관련 없는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978년에 베이징 영화학교에서 높은 점수로 통과하고 영화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1988년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유명한 영화들을 줄줄이 연출해왔다. 영웅은 그의 2002년작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여화상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한다. 주연은 이연걸이고 내가 아는 배우 중에 장쯔이도 월령 역으로 나왔다. 이연걸은 무명이라는 인물을 맡았다. 영웅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이 천하통일을 이루고 대륙 전체를 지배하려고 하는 시대이다. 이연결(무명)은 지방의 미천한 장수다. 하지만 진나라왕 영정을 암살하려는 포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끝내 암살은 하지 않는다. 장만옥(비설)또한 영정을 암살하고 싶어하는 자객 중 한명이다. 파검과 연인 사이이며 파검과 함께 영정을 죽이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양조위(파검) 전설적인 세명의 자객 중 한명이다. 영웅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전국시대에 천하통일을 하려는 영정(진시황제)를 암살하려는 무술 고수들의 이야기다. 영정(진시황제)진, 초, 연, 제, 한, 위, 조의 일곱 국가를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전쟁을 통해 민중의 삶을 망가트렸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그래서 이연걸, 양조위, 견자단, 장만옥은 황제에게 원수를 지게 되었고, 복수를 하기위해 암살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암살의 위협 때문에 자신의 100보 안으로 사람들을 접근시키지 않았다. 100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황제를 암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암살자들은 100보안으로 들어갈 궁리를 찾고있었다. 황제는 자신을 죽이려는 3명의 암살자를 다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십보안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했다. 그래서 이연걸이 저 셋을 잡아들이고 결국 황제의 십보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황제를 암살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를 죽일 수 있는 무술을 할 수 있었지만 양조위와의 만남을 통해 황제를 죽이면 안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황제를 암살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황제를 죽이게 된다면 세상은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진정한 천하통일의 뜻을 알게 된 것이다. 영정도 이연걸과 양조위가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암살하려던 자가 자신의 원대한 뜻을 알아준 것에 대하여 감탄하기도 한다. 결국 이연결은 암살을 포기하고 백만군대가 깔린 문밖으로 걸어갔고 수백개의 화살이 그에게 박히고 죽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천하통일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고, 마지막 이연결이 진시황제를 죽이지 않았던 모습을 보고는 조금 놀라웠다. 나라면 개인적인 감정으로 진시황을 바로 암살했을 것 같은데 천하통일을 해서 태평성대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했기에 암살을 안한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암살을 실패했을 경우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을 어느정도는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술과 로맨티시즘-로맨티시즘과 음악목차Ⅰ. 서론1. 들어가는 말Ⅱ. 로맨티시즘(낭만주의) 음악1. 로맨티시즘(낭만주의)의 정의와 특징2. 로맨티시즘(낭만주의) 음악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3. 로맨티시즘(낭만주의) 음악가 소개1)슈베르트(1)슈베르트의 생애(2)슈베르트 작품의 특징2)바그너(1)바그너의 생애(2)바그너 작품의 특징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1. 들어가는 말슈베르트(Schubert), 쇼팽(Chopin), 멘델스존(Mendelssohn) 등의 낭만주의(로맨티시즘) 음악가들의 노래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접했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멘델스존의 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낭만주의 음악의 쉬운 접근성에 비해서, 필자는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이나 음악가들의 생애, 그리고 그들 작품의 특징은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본 논문을 통해서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에 대해 깊게 조사하고 싶었고, 그렇기에 로맨티시즘과 음악이라는 주제를 고르게 되었다. 본 논문을 통해 로맨티시즘 음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한다.본 논문에서는 먼저 로맨티시즘의 정의와 특징을 알아본 뒤, 로맨티시즘 음악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자세하게 서술한다. 슈베르트와 바그너(Wagner)를 중심으로 그들의 생애와 작품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슈베르트와 바그너 작품의 특징을 비교 분석하고, 낭만주의 음악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하면서 결론을 내리도록 한다.Ⅱ. 로맨티시즘(낭만주의) 음악1. 로맨티시즘(낭만주의)의 정의와 특징로맨티시즘이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서 고전주의와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문학 운동이다. 한국어로는 낭만주의라고 불린다. 유럽 전역 걸쳐 전개된 문학과 예술상의 근대적 운동으로 자연스러움, 정서, 감정, 환상 등을 강조한다. 로맨티시즘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 자유정신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게 되었다. 로맨티시즘은 개인주의, 자연숭배, 이상주의, 자유사상과 종교적 신비주의에악의 본질이다. 극적 구성은 오페라와 교향시 등에 밑바탕이 되었다. 낭만주의 음악은 현실이 아닌 환상적 세계를 그리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또한, 사회적 불안은 종교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하였고, 결국 사람들은 종교에 의한 구원을 희구하게 되었다.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는 낭만주의자들은 그 공상의 세계를 종교적인 세계로 대치하기도 했다. 이처럼 낭만주의 음악은 공상적, 환상적, 종교적인 세계를 표현한다는 특징을 가진다.낭만주의 시대에는 기쁨, 슬픔 등 감정의 형태를 그려내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에 따라 악기들도 많이 개발되었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금관악기는 현대식으로 발전하였고, 목관 악기는 키 작동법이 생겨났다. 그에 따라 다양한 연주곡이 생겨났다. 화려한 연주기법으로 다양한 형식의 곡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이용한 곡들이 생기게 되었다. 교향곡 역시 고전주의 음악보다 규모가 더 커졌고, 길이가 길어진 표제 음악들이 많아졌다.낭만주의 음악은 크게 전기 낭만주의 음악, 후기 낭만주의 음악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전기 낭만주의에는 자유로운 사상과 섬세한 감정의 표현을 중요시했다. 또한, 융통성 있는 형식의 처리와 소품의 곡이 많아졌다. 서민을 위한 음악과 세속적인 음악이 급증했다. 예술의 내용을 암시하거나 묘사하는 음악이 많이 작곡되었다. 후기 낭만주의에는 개성과 자유가 강하게 표출되었다. 그리고 후기 낭만주의 시기에는 주관적인 음악 예술이 확립되었다. 표제 음악이 발달하는 시기이고, 교향시, 악극이 창시되었다.3. 로맨티시즘(낭만주의) 대표 음악가1)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출생: 사망 1797. 1. 31. ~ 1828. 11. 19.출생지: 빈직업: 작곡가, 가정교사사조: 독일 낭만파(1)슈베르트의 생애슈베르트는 빈(Wien) 태생인 오스트리아(Austria)의 작곡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음악에서 천재성을 보여주어, 부친과 형에게서 음악 교육을 받았다. 9세 장조, 최후의 가곡집 《백조의 노래》 등을 썼으나, 삶은 점점 궁핍해지고 병세도 나빠져서, 제대로 된 창작을 하기 힘들어졌다. 10월 말부터는 발진티푸스가 발병하여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국 슈베르트는 11월 19일에 31세에 요절하고 말았다.(2)슈베르트 작품의 특징슈베르트는 그의 짧은 인생에 비해 많은 곡들을 작곡했다. 600곡 이상의 가곡을 남겼고, 다른 장르의 음악을 포함해서 998곡의 작품을 작곡했다.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이라고 불리는 만큼, 가곡에 있어서 슈베르트가 후세에 남긴 영향은 매우 크다. 그가 작곡한 가곡은 분위기와 그 성격이 매우 다양하고 길이도 다채롭다. 시냇물, 밤 등의 자연을 소재로 하는 곡들이 많고, 반주는 풍부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구조적인 선율보다는 다양하고 서정적인 조성을 중시했다. 단조에서 장조로의 변화로 사랑의 상념, 햇빛이 비추는 모습들을 그려내기도 한다. 그의 음악에서는 반주가 노래의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가사의 의미를 보충하거나 대신하는 등의 이전보다 발전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슈베르트의 가극은 독일 가곡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는 독일 가곡 장르를 확립시켰다. 또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음악은 고전주의 형식과 낭만주의 서정성을 같이 보여준다. 그의 피아노곡은 미묘한 화성 변화를 통해 음색 효과를 보여주며,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주 특징이다. 그는 구조적인 조성보다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조성을 더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반주는 주로 화음과 아르페지오(arepeggio)로 구성된다. 리듬은 부점 리듬, 셋잇단음표, 당김음 등을 많이 이용했다. 슈베르트는 이러한 리듬을 자주 반복하여 작곡을 하였다. 하지만 리듬의 지속적인 반복은 단순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슈베르트는 화성, 이명동음을 이용한 반음계적 전조, 옥타브의 진행 등으로 그 단순함을 피했다. 또한, 불협화음을 쓰거나 대조적인 조성을 이용하여 그의 작품에 색채감을 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극적인 전개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다. 1848년 38세 때에는 혁명에 참여하여 국외로 망명했다. 1858년까지 9년동안 스위스 각지를 여행하면서 작곡, 지휘, 평론으로 활약했다. 그는 이 동안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의 대본을 완성하고, 그 중의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의 작곡을 완성했다. 1859년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작곡을 완성한다. 이후에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궁핍한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1862년에는 작센 왕국의 추방이 해제되었다. 그리고 1864년 51세 때 왕의 초청으로 뮌헨으로 갔고, 이듬해 왕립 가극장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게 된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도 완성하여, 명성을 크게 얻게 된다. 1866년에는 아내를 잃었지만, 1868년에 재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1876년에 바이로이트(Bayreuth)에 이상이었던 축제 극장을 세워 《니벨룽겐의 반지》,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 등을 성대하게 상연했다. 이후 1882년에 최후의 악극 《파르지팔》완성하고 초연하였다. 그 후에는 베네치아(Venezia)로 요양을 떠났다. 그 이듬해 70세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2)바그너 작품의 특징바그너는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인물로, 그는 19세기 독일 낭만파 음악에 있어 많은 혁신을 보여준 작곡가다. 그는 기악음악보다는 극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작곡한 기악음악은 극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 하지만 그의 반음계적인 화성이나 가사 구성에 관한 이론이 19세기 말 성악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반음계적인 화성의 사용은 음의 조성 붕괴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그는 오페라의 양식의 전통을 타파하여 음악, 연극, 문학을 종합하는 악극을 창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오페라의 특징인 레치타티보(Recitative)를 확장시켰다. 그래서 레치타티보 대신에 규정된 음정과 리듬 내에서 이야기 하는 듯이 노래하는 서창선율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음의 흐름을성을 같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주 특징이며, 자유로운 조성을 강조했다. 같은 리듬을 계속 반복하는 방법을 이용해 곡을 구성하였고, 반복에서 오는 단순함을 해소 하기 위해서 화성, 이명동음, 동적인 옥타브를 이용했다. 다채로운 화음과 대조적 조성을 이용해서 입체적인 작곡을 하였고, 그의 내면의 모습이나 감정을 담아서 표현한다.바그너는 기악음악보다는 극음악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는 오페라의 양식의 전통을 타파하여 음악, 연극, 문학을 종합하는 악극을 창시했다. 그의 음악은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섬세하고도 넓은 폭의 표현 되었다. 또한, 이야기하듯이 노래하는 서창선율을 발달시켜 극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반음계와 온음계를 사용하여 음악의 주제를 나타내기도 하고, 음의 강약으로 작품의 흐름을 표현한다. 그는 유도동기를 바탕으로 하는 서곡을 통해 작품을 그려낸다.슈베르트와 바그너의 공통점이자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은 크게 4개로 정리할 수 있다.1). 서정적인 선율을 선호한다.2) 선율을 뒷받침하기 위한 화성을 사용을 사용한다. (이명동음, 반음계 등등)3) 고전주의에 비해 자유로운 형식4) 극적인 표현력슈베르트의 합창곡은 낭만적이고 시적인 특징을 가짐으로써 멘델스존(Mendelssohn), 브람스(Brahms), 부르크너(Bruckner)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가곡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슈베르트는 가곡에 있어서 큰 공을 세웠다. 그의 가곡 작곡 기법은 슈만(Schumann), 브람스 등의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바그너 또한 악극을 창시한 사람으로서 음악을 중점으로 하던 오페라의 형식과 달리 음악과 극을 결합한 그의 시도는 음악사적으로 큰 공을 세웠다. 그의 악극은 현대적인 음악극으로 발전하게 되는 발판을 만들어 줬다. 낭만주의 음악은 그 전의 세기에 비해 자유롭고, 개성적이고, 이상주의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음악을 통해 경직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음악 형식이 더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96
중국 역사의 진실1. 중국의 사회 문제, 개혁개방의 그림자 농민공푯값 아끼려다 호랑이에 물려 숨진 농민공 사건, 中 빈부격차 '저격’중국에서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동물원 담장을 넘던 농민공이 호랑이에 물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유명 관광지의 입장료가 과도하게 매겨진 탓에, 농민공 등 저소득층이 부담하기 어렵다는 비판 여론과 함께, 극심한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중국 관영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9일 중국 저장성 한 동물원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숨진 장모씨 사건과 관련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응답자 4만 명 가운데 92.2%는 동물원에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장씨가 표를 사지 않은데 대한 댓가 치고는 너무 가혹했다는 주장에도 상당수가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신문은 그의 비극으로 중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유명 관광지의 비싼 입장료가 지탄을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장씨는 춘제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동물원을 찾았다가 표 값을 아끼려고 동물원 외벽을 넘었습니다. 춘제 연휴 가족과 동물원을 찾았던 장씨는 호랑이를 방사한 우리에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참혹하게 숨졌습니다.장씨는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으로 빈곤한 생활을 했고, 한 사람당 2만 2천원 상당인 입장료를 아끼려고 담장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출처 : SBS 뉴스농민공은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거주지는 농촌으로 되어있지만 일은 도시에서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농민공은 기본적인 사회보장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에 제한이 있어 대부분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농민공의 자녀들 ‘유수아동’ 또한 아무런 잘못없이 강압적이고 제한적인 제도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고있다. 이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만 2천원인 입장료를 내기 어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농민공을 볼 수 있다. 입장료를 낼 수 없어 호랑이에 물려 숨진 농민공을 보고, 중국의 빈부격차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이러한 극단적인 제도로 인해 많은 농민공과 저소득자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있다는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중국인 중 1%의 부자들은 중국의 엄청난 부를 보유하고 있는데 많은 중국인들이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도 없이 가난한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과거 중국정부가 실시한 호구제도에 의한 피해라고 생각이 된다. 빠른 시일 내에 이러한 불공평적인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현재 중국 정부도 호구제도를 개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지만, 나는 중국의 아주 큰 문제인 농민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정부는 전 보다 더 강력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정부가 완벽하게 해결하기 전에 유명관광지나 필수 생필품, 의료 문제 등은 농민공에게 할인을 해준다는 등의 정책을 마련해서 점차 해결해 나가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처럼 강대국은 자국민을 보호하고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중국은 경제 성장이나 외교문제보다도 자국민에 대한 권리보장을 먼저 해결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2. 중국의 정치, 대만과의 양안 관계[초점]쯔위, 양안관계 희생양…JYP는 새우등 터지고이재훈 기자【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17)가 '대만 독립운동가'라는 정치공방이대만에서 빚어지고 있다. 대만과 중국 네티즌은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쯔위와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희생양이 되고 있다. 대만의 첫 여성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59·蔡英文) 민진당 주석은 16일 승리 확정 연설에서 대만 대선을 앞두고 쟁점으로 부각된 쯔위 사태에 대해 언급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성장하는 16세 대만 연예인 여성이 중화민국 국기를 들고 있는 (방송) 화면 때문에 탄압을 받았다"며 "국가를 외부의 힘에 대해 단결시키는 것이 총통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쯔위는 지난해 11월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출신 국가를 밝히면서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 이 장면은 편집돼 본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뒤늦게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문제가 됐다. 중국 작곡가 황안은 쯔위를 대만 독립주의자라고 지목하며 여론을 자극했다. 쯔위는 15일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을 통해 "중국인으로서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한 발언과 실수로 회사와 네티즌에게 상처를 준 점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민진당은 그러자 쯔위의 사과를 대만의 탄압으로 해석, 대만 독립 논쟁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대만의 뉴스 검색포털은 이 사태의 폭로자인 황안의 관련 글을 삭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대만의 일부 네티즌은 쯔위와 함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가수 박진영이 중국에 직접 사과한 것에 반발, JYP 홈페이지를 다운시키는 등 감정이 격앙된 상태다. 대만의 해킹그룹이 적게는 수십 대, 많게는 수백만 대 컴퓨터를 이용해 특정 웹사이트에 동시에 접속하는 '디도스 공격'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 네티즌들은 쯔위와 박진영의 사과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는 쯔위 등의 검색이 차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쯔위와 JYP가 대만 총통 선거의 정치적인 희생양이 됐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든 것에 대해 특정한 의도가 없었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나라로 연예 산업의 중심지로까지 떠오른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국 연예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치고 있다. 트와이스는 쯔위에서 보듯 멤버 구성에서부터 중국어권을 포함한 아시아를 겨냥한 그룹이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JYP가 심혈을 기울인 그룹이다.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배제한 연예 산업은 한국에서 현재 가당치 않다. 실제 중국에서 JYP에 대한 보이콧 움직임이 일자 LG유플러스는 쯔위가 등장하는 중국산 화웨이 스마트폰 'Y6'의 온라인 광고를 일시 중단했다. 가요계 관계자는 "현재 한류스타는 음원과 공연 외에 여러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활약하며 기업의 해외 수익과도 큰 연관이 있다"며 "이러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JYP 입장에서는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대만의 미디어 역시 JYP가 중국 팬들을 상대로 사과한 것은 중국 내 수익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분석하고 있다.이 기사는 2016년 1월 우리나라에서 아주 큰 사건으로 일명 ’쯔위 사건’을 다룬 기사다. 쯔위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만과 대한민국의 국기를 들고 방송을 한 것이 화면에 잡혀 큰 문제가 되었다. 쯔위의 소속사 JYP도 중국인들의 반발이 너무 심하자 쯔위를 통해 공개 사과 영상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 공개 사과 영상에서는 “중국인임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발언을 했고, 그 발언은 대만인들의 심기를 자극하게 되어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 이 사건 이외에도 최근 프로듀스 101 시즌2라는 방송에서 라이관린이라는 한 연습생이 자신은 ‘중국대만에서 온 라이관린’이라고 소개한 것을 보고 많은 대만인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중국인들은 오히려 호감도가 상승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각각 다른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안관계가 시작되었다. 중국은 대만과 수교를 맺은 나라와는 외교관계도 맺지 않았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또한 과거에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중국에 의해 대만과의 외교관계도 끊고, 중국과 수교를 맺게 되었다. 이렇듯 중국과 대만은 사이가 매우 안 좋다. 중국과 대만은 정치적인 견해로 인해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3. 중국의 환경, 황사와 대기오염[올댓차이나]"중국 기업 3분의 2 이상 환경법규 위반했다"이재준【서울=뉴시스】이재준 기자 = 중국 환경보호부는 21일 자국 기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현행 환경법규를 어기고 있다고 발표했다.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에 따르면 환경보호부는 이날 극심한 환경오염을 개선하가 위한 대책 마련의의 일환으로 중국 기업에 대해 표본 조사한 결과 69%가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톈웨이융(田爲勇) 환경보호부 환경감찰국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조사 대상 4077개 기업 중 2808개사가 환경법규를 위반하는 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환경보호부는 관련 법규 위반으로 2016년 징수한 벌금 총액이 전년 대비 56% 급증한 66억3000만 위안(약 1조922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위반 건수는 34% 크게 늘어난 13만7800건에 이르렀다. 중국 당국은 환경에 관한 법률 시행과 준수에 철저를 기하면서 적발 건수나 벌금이 대폭 증대했다. 그간 중국 정부는 환경 법률과 규제를 강력히 시행하고자 7만명 이상의 감시 인력을 투입하는 한편 일반인에 대해 환경오염 사건을 신고하라고 장려했다. 베이징 경우 환경보호국이 유해 폐기물과 방사성 물질 폐기 등을 포함한 중대한 환경오염을 신고한 경우 5만 위안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환경 감시장치의 부적절한 사용과 부정조작을 행한 기업을 신고하면 3000위안을 주기로 했다.최근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으로 인해 미세먼지 피해를 많이 얻고 있다. 중국 3분의 2 이상의 현행 환경법규를 어기고 있다는 이 기사를 읽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중국 못지 않게 공기가 안 좋아 졌고, 70%이상이 중국의 영향으로 그런 문제가 나타난 것인데 중국 자체에서 이렇게 관리를 안 해왔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중국은 이전부터 스모그나 미세먼지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부터라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환경오염을 완화시켰으면 좋겠다.
도연명의 ‘귀원전거’도연명은 동진 말엽에서 송나라 초엽에 이르는 시기에 활동하던 중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서진에서 동진 사이의 시기에는 유미주의적 풍조가 매우 유행했다. 그 때문에 시들이 내용을 중시하기보다는 수사하는 것에 빠져서 시의 내용들이 대체로 형식적이었다. 하지만 도원명은 유미주의적 풍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진실한 마음을 담은 시를 썼다. 또한, 도원명은 속세를 싫어하며 자연과 술을 사랑했고, 결국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도연명은 그러한 자신의 진심을 담아 ‘귀원전거’라는 시를 썼다. ‘귀원전거’를 보면 ‘젊어서부터 속세에 어울리지 못했고 천성은 본시 언덕과 산 좋아했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를 통해 나는 그가 속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속세에서 지냈던 삼십 년을 허송했다고 표현한 것을 보아 그가 속세에서 겪었던 답답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또한, 도연명은 그의 천성을 졸박한 천성이라고 칭하며 자신의 소박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성품에 대해서 드러냈다. 또한, 속세에 있던 시절은 새장 속에 갇혀있던 시절이라고 표현하여 관직 생활 동안 느꼈던 답답함과 고통을 말하고, 자연 속으로 돌아와서 기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이를 시를 읽고 도연명이 관직 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 그리고 그의 소탈함과 속세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가끔 도시 생활이 답답하고 단조롭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나는 21년 동안 계속 도시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솔직히 도연명의 마음과 일치하진 않았다. 도시에 살면서 누릴 수 있었던 편안함에 익숙해져서 전원생활에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연명처럼 소박한 삶을 살고 싶다든가 자연을 느끼고 싶다는 등의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가끔 시골로 여행을 가거나 할머니 댁에 가게 되면 온통 밭 밖에 없고, 주위에는 집도 별로 없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심심하고 불편했었다. 또한, 시골은 화장실도 불편하고 벌레도 많아서 나는 시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시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도연명이 전원생활을 꿈꾸고 자연을 사랑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어렸을 때 느꼈던 시골의 밤이다. 도시에 밤은 밝은 빛이 끊이질 않고 시끄러운 소음이 계속된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 불빛과 소음이 익숙해져서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던 도중 한 번은 할머니 댁의 마당에서 여름 밤하늘을 보게 되었다. 서울과 달리 고요하고 어두웠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있었다. 도시의 밤하늘은 뿌옇고 까맣기만 한데, 시골의 밤하늘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 별들을 보는데 아주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 또한, 앞에는 치악산이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바람이 너무 상쾌해서 처음으로 시골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도시가 얼마나 답답하고 복잡한 공간이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도연명도 내가 시골 밤하늘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속세를 그렇게 답답해 하진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더욱이, 도연명이 관직 생활을 할 때 세상은 아주 어지럽고 불안했는데, 그는 그러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전원생활을 더 추구했던 것 같다. 그도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시골의 한적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치유 받고, 소박한 전원생활을 누리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음주를 좋아했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어지럽고 답답했던 속세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음주를 즐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자연 안에서 마시는 술은 어떤 약보다 더 효과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콩밭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이다. 할머니께서 농사를 하셔서 밭일을 도울 기회가 있었다. 마른 콩대와 지푸라기 같은 것들을 다 모아서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일을 하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일을 하고 난 뒤 먹었던 밥과 과일들이 너무 맛있게 느껴졌고, 힘든 일을 한 후 얻는 보람이 크게 느껴졌었다. 도연명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관직을 내려놓고 농사를 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유지해 갔는데, 이러한 보람과 충족감 때문에 그토록 전원생활을 꿈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귀원전거’에서 말했던 느릅나무, 버드나무, 복숭아나무, 오얏나무 등의 자연환경과 아득히 사람들 사는 마을,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등의 전원의 풍경이 할머니 댁에서 잠깐이나마 경험했던 순간들 때문에 눈에 선히 그려지고 그가 느꼈던 환경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도연명이 표현했던 솔직하고 소박한 감성 때문에 이 전에 배웠던 유미주의에 빠진 시들과 달리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가 이전에 배웠던 ‘상림부’라는 시와는 비교가 되었다. ‘상림부’는 특별한 뜻이 없고, 글이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에만 치중했다. 오직 임금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시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내용이 전부다. 그래서 그 시를 읽고 나는 큰 감명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귀원전거’는 도연명이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솔직하여 감명 깊게 읽을 수 있다. 그는 관직에 올랐던 사람이지만 자만하지 않고 소박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집안에 먼지 쓰레기 없으니 텅 빈 방엔 한가로운 여유 넘치네,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혀 있다가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온 것 일세’라는 구절에서 특히 그의 소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욕심내지 않는 그의 순수한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도연명의 시를 통해서 솔직하고 진심을 담은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문학은 도연명의 시처럼 진심을 담아야 그 마음이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도연명이 유미주의 풍조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문학을 만들어 냈기에 중국 시 발전에 큰 역할을 했고, 지금까지 문학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 같다.
중국의 ‘영화’중어중문학부 1615712 양혜원중국영화는 1905년 『정군산(定軍山)』이라는 경극 영화를 시작으로 중국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온다. 그래서 중국 영화를 논할 때 역사적 사건에 따른 영화 제작의 변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중국 영화는 세대를 나누어서 분류 할 수 있는데, 크게는 문화대혁명 이전의 세대, 문화대혁명 세대, 문화대혁명 이후의 세대, 현 세대 이렇게 네 세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중국 영화는 7세대로 구분한다. 문화대혁명 이전에는 제1세대(1905-1931), 제2세대(1931-1949), 제3세대1949-1966)로 구분할 수 있고, 문화대혁명 세대, 그리고 문화대혁명 이후의 세대는 제4 세대(1976-1982), 제5세대(1982-1990), 제6세대(1990-2000)를 구성한다. 제7세대는 2000년대 이후로 구성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문화 창작에 대해서 국가 정치적 영향이 크게 적용했기 때문에 예술적인 영화의 제작이 힘들었다. 그래서 중국의 영화사를 이야기 할 때 문화대혁명 시기의 영화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중국 영화 1~7세대까지 특징을 소개하고, 가장 인상깊었던 제 5세대를 ‘패왕별희’와 ‘인생’이라는 대표작을 통해서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제 1세대(1905~1931)중국의 제 1세대 영화는 1905년 『정군산(定軍山)』이라는 중국의 최초의 영화로 시작된다. 정군산은 베이징에서 경극 배우 탄신페이를 주연으로 한 영화이다. 이후에도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는데, 경극 같은 예술을 찍거나 간단한 풍경을 영상을 찍는 정도였다. 하지만 1913년 『철없는 부부(難夫難妻)』를 기점으로 중국영화에 드라마적 요소를 삽입하기 시작했다. 1922년에는 장스촨, 정정치우, 저우젠원이라는 영화감독들이 배우 양성 학교를 설립하고, 『고아 구조기(孤兒救祖記)』(1923)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이 후로 많은 영화사들이 설립되어 중국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화사들이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이사를 가서 영화를 제작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시대의 영화는 선시링의 『중국의 아들 딸(中華兒女)』(1939), 스둥산의 『우리의 땅을 지키자(保衛我們的土地)』(1936), 잉윈웨이(應雲衛)의 『800인의 용사(八百壯士)』(1938)등으로, 중일전쟁에 따라 애국심에 관한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화인들은 다시 상하이에 모여 영화제작에 힘을 쏟았다. 이어 국공내전으로 치닫는 과정에서도 스둥산의 『구름과 달 아래 팔천리(八千里路雲和月)』(1947), 차이추성의 『봄날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고(一江春水向東流)』(1947) 등 일제 침략기에 따른 중국의 비극과 사회문제에 초점을 둔 영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제3세대(1949~1966)중국의 제 3세대 영화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 되는 동시에 영화산업이 국유화가 되었다. 그래서 국가정책을 선전하는 방식의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영화들이 사회주의를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 링즈펑(凌子風)의 『중국의 딸들(中華女兒)』(1949) 등 중국공산당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래서 중국의 제3세대 영화는 혁명영화가 주를 이루게 된다. 그래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나타내고 중국의 민족성을 그려내는 영화가 주가 되었다. 수이화(水華)의 『백모녀(白毛女)』(1950)가 그 예다.문화대혁명 시기의 영화(1966~1976)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 운동으로, 모든 문화적 활동이 국가차원에서 관리가 되었다. 이 당시 영화는 보통 정치적 선전의 한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셰테리의 『지략으로 위호산을 취하다(智取威虎山)』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예술적 자유가 억압된 채 만들어진 것으로 예술적 의미 보다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제4세대(1976~1982)중국의 영화 제4세대때는 60년대 베이징영화학교의 졸업생들이 큰 활약을 한다. 이들은 문화대혁명을 겪어 그들의 꿈을 잠시 접어야 했던 불운한 운명을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 『말 도둑(盜馬賊)』(1984)의 톈좡좡(田壯壯) 감독이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중국의 역사와 민중의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려 노력하였다는 점이다. 제5세대 감독들은 특이한 방식을 이용해 영화를 제작하였는데, 화면과 색채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는 천카이거의 『패왕별희(覇王別姬)』(1993), 톈좡좡 감독의 『푸른 연(藍風箏)』(1993),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活着)』(1994)등이 있다. 중국영화의 아주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개인적으로 중국영화 중에서는 제5세대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화려한 색채가 주는 영상미도 좋았지만, 중국의 비극적인 역사를 담고 있는 영화가 여운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패왕별희’와 ‘인생’이라는 영화를 가장 좋아해서, 그 두 영화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패왕별희(1993)감독: 천카이거배우: 故장국영, 공리, 장풍의, 호대위, 지앙 웬리, 갈우, 오대유, 잉다줄거리: 청데이(장국영)와 단샬루(장풍의)는 어린 시절부터 경극을 같이 배워온 사이였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 그 둘은 가장 유명한 경극 배우가 되어있었다. 청데이는 단샬루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데, 단샬루가 주샨(공리)와 결혼하게 되어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서 청데이는 부유한 후원자 유안을 의지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물러났을 때, 청데이는 간첩으로 기소되었지만 국민당의 고위관리에 의해 풀려난다. 하지만 1949년 국공내전 때 국민당이 몰락하게 되자, 경극 배우 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또한,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단샬루는 인민 재판을 겪게 된다. 인민 재판을 통해 단샬루는 청데이와 주샨을 비난하는 마릉ㄹ 했고, 결국 청데이, 주샨과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결국,문화대혁명이 끝나갈 무렵 청데이와 단샬루는 패왕별희의 마지막 공연을 하고 자살한다.‘패왕별희’는 중국의 제5세대 영화의 대표작이다. ‘패왕별희’의 감독 천카이거는 화려한 화면구성과 감정을 통해 그 당시 배척 받았던 경극 배우들의 삶을 느낄 수 도 있었다. 또한, 도즈(청데이)가 우희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 같았다. 데이는 결국 현실과 극의 사이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그 모습은 문화대혁명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 같았다. 특히, 인민재판을 시키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이 맞고 틀리는 지의 개념을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데이의 혼란스러움과 비슷해 보였다. ‘패왕별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인민재판이었는데, 정치적 현실 때문에 경극에 자긍심이 있던 샬루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굴복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인민재판을 통해 데이와 주샨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고, 주샨은 자살까지 하게 된다. 사회적 배경 때문에 모든 걸 잃고 만 두 배우의 인생이 슬프면서도 안타까웠다.인생(1994)감독: 장예모배우: 공리(부귀의 아내), 갈우(부귀)줄거리: 1940년대 중국, 부귀는 부자였으며 아름다운 아내를 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박에 빠져 전재산을 탕진하고, 아내는 그런 그를 보고 자식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그러던 와중 부귀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숨을 거둔다. 부귀는 그 뒤로 완전히 도박에서 손을 떼고, 아내도 돌아와 같이 살게 된다. 부귀는 다시 한번 잘 살아 보기 위해 룽에루에게 돈을 빌리러 가지만, 그는 돈 대신에 그림자극 도구를 빌려준다. 부귀는 그림자극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그는 그림자극을 하다가 갑자기 전쟁에 끌려간다. 그는 공산군에게 그림자극을 보여주면서 살아남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공산당에게 협력했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고, 딸은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실력 있는 의사들이 감옥에 갇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아이를 낳다가 죽는다.‘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는 도박으로 얻은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사회적 사건 때문에 다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국공내전으로 인해 부인과 자식들과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되고, 그 사이에 딸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했고, 사회에 반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잃고, 결국 사회 때문에 딸까지 잃게 된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그가 가장 아꼈던 그림자극 도구를 태우면서 까지 사회에 응하려고 했지만, 결국 의사가 없어 딸의 출산과정에서 딸을 잃고 만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사회를 탓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에도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도박을 한 것도 자신의 잘못이고, 피곤해 하는 아들을 학교에 데려간 것도 잘못이고, 감옥에서 의사를 데려와 찜빵을 많이 준 것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한다. 그는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이 모든 것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시대상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자신의 탓을 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 시대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이 영화는 시대적 아픔을 그려 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주제는 한 사람의 희망과 삶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삶에도 희망을 잃지않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인 ‘인생’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세대를 뜻하는 병아리를 그의 인생과 함께했던 그림자극 도구 상자에 넣는 것을 통해, 옛날의 비극을 발판 삼아 새로운 세대를 희망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느낌을 받을 수 도 있었다.제6세대(1990년 이후)중국의 제 6세대는 톈안먼 사태를 겪고, 이전 세대의 감독들과 전혀 다른 뚜렷한 개성을 나타내며 등장했다. 이들은 기존 질서에 반하는 '지하영화' 또는 '6세대'라 불려진다. 대표적인 감독으로는 장위엔, 지아장커, 러우예, 왕샤오솨이, 왕취안안, 왕차오 등이 있다. 6세대 영화는 다른 세대에 비해 지나친 실험성으로 국가의 영향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