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201 전기전자과 박현준재벌 강화해야할까? 약화해야할까?재벌은 사전적 의미로 재계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 기업가 무리를 뜻한다.재벌구조의 가장 큰 장점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추진력(투자)이다. 또한 탄력적인 경영에 편리한 구조이며 소유주와 경영권자가 다른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부실경영을 방지할 수 있다. 실제 예로 애니콜, 현대자동차 등의 기업들은 재벌이 아니었다면, 이만큼의 성장을 이루어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이 역할을 하기 위해선 꼭 유능한 CEO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단점으로 유능한 CEO가 아닐 경우 부의 축척에 집중하여 경제성장을 저해하며 불투명한 경영으로 인한 미래의 불투명성이 가장 큰 단점이다. 또한 그 외로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나 비자금문제, 족벌경영 등이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내 생각에는 재벌은 합리적으로 규제하고 약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재벌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단어이고 해외에서는 없는 단어로 영어로 실제로 ‘chaebol’ 재벌의 발음을 딴 단어로 기재되어있다. 즉 어떠한 나라도 우리나라와 같은 재벌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대규모 기업진단이라고 우리나라와는 약간 다른 형태의 재벌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존재하는 재벌은 독점적 자본가 형태로 막대한 부를 쌓고 이를 세습하며, 점차 영역을 더 확장해간다. 해외의 경우 소유 및 경영권을 쉽게 물려줄 수 없는 구조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너무도 쉽게 물려주며,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고인물이 썩듯이 한곳에 집중된 부와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이를 입증하듯, 매년 시도 때도 없이 회장들이 뉴스와 신문 1면을 장식하곤 하는데, 특히 작년에는 최순실-박근혜 사건과 관련해서 정계와 대기업 재벌의 커넥션이 문제가 되었다. 그 사건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삼성의 하락세를 예상했으나, 그들을 비웃듯이 삼성전자의 주가는 계속해서 최고가를 갱신해가고 있다.위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재벌의 규모는 나라에 비해 너무 크고 또한, 국가의 기업의존도가 너무 높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정경유착이 비일비재 한다는 가장 큰 문제이다.또한, 재벌들은 기업의 기익이 곧 자신들의 이익으로 직결되므로 R&D(연구개발)보다는 단기간의 이익을 위해 외국의 기술을 수입해 이익을 늘리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기술개발보다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등 기업은 거대해지지만 국내 경제는 악화되는 부작용만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기업의 자생력은 계속해서 감소하며, 기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역시 같이 침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이러한 사태에도 재벌은 유능한 CEO를 고용하기보다는, 자기자식이나 친족들을 기업의 차기 경영자로 내세우며 세습해나가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재벌들의 현실이다.
나는 여수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도 전인 1993년 1월 8일 새벽 1시경에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다. 내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적에 나에게 형제는 없었다. 아버지는 LG라는 회사에 다니셨고 어머니는 나를 키우는데 전념하셨다고 한다. 1995년 9월 14일 내 첫째 동생이 나왔다. 남동생이었는데, 어머니 옆에서 같이 동생을 돌보며 아이에 대해 많이 배운 기회가 되었다. 어릴적의 기억이 거의 없지만 몇시인지 구분도 못할 나이에 부모님이 밤에 집에 안계신 것을 알고 부모님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4살 무렵이라고 기억하는데 그때부터인지 겁이 조금 없었는지 부모님이 집을 잃어버렸다고 윗집 아랫집 동네방네 찾아다녔다. 7살때엔 93년생 1월생이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조금 어린나이로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조그마한 체격을 가졌지만 잘 적응하며 현재까지 만나는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또 어머니가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시기에, 주말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만난 교회 형들을 따라 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다. 나는 남들보다 더 빨리 많은 경험들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PC방을 남들보다 훨씬 먼저 알게 되었다.. 7살 무렵 내가 살던 여수에 PC방이 들어왔고, 얼마 안되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들어왔다. 집이 조금 부유해 8살때부터 컴퓨터가 집에 있었고, 게임을 일찍이 자주 접했다. 6학년 때가 되서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하루종일 게임에만 몰두했었는데, 그 와중에 2002년 9월 첫날 막내 늦둥이 여동생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 동생 상민이를 돌봤던게 도움이 되었던 건지, 가은이를 낳고 허리를 다치신 부모님 대신 여동생을 보았고, 아이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게임에서 14위를 하며 꿈이 가까워지는 듯 했고 같이 프로게이머를 준비하던 친구들 중에는 대회를 통과하며 꿈을 이룬 친구들도 있었고, 프로게이머가 되어 세계대회를 나간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결국 고등학교를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 나아졌던 게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우울한 생각이 나거나 그런 기분이 들 때 이상하게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 없이 기분이 좋아지고 그 스토리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남들은 ‘바보상자, 헛시간을 보내는 것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되게 소중한 시간들 이었으며, 새로운 꿈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 드라마, 영화들에 흠뻑 빠져 있다가, ‘나도 그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도 남들의 아픈시간을 치유해 줄수 있는 힘이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자세하게는 처음엔 방송일을 테마구분없이 배우다가, 드라마쪽으로 가서 드라마를 찍다가 어느정도 여건이 마련되고, 나의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때가 오면, 나만의 영화를 찍는 것이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내가 배우들을 선택해 나의 영화를 찍는 것 말이다.그를 위해선 필요한 것들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첫째로 감각이었다. 예를 들면 화려한 CG를 사용하여 멋있는 액션을 뽑아내고,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받아 그 장면을 연출해 내는 것이 아닌, 평범한 장면도 재미있는 장면으로 만들 줄 아는 감각적인 부분이다. 이를테면 강형철 감독이다. 강형철 감독은 화려한 CG나 엄청난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수십업의 제작비로 액션 느와르를 찍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출연해 눈이 호강하는 영화를 찍을 무렵 강형철 감독은 아파트와 방송국만을 배경으로 하는 “과속스캔들”로 이른바 대박을 친다. 워킹맘이라는 소재는 옛날부터 많은 영화감독이나 드라마 감독들이 써왔던 주제인데 이를 재미있게 강형철 감독만의 감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 다음 나온 작품이 “써니”인데 이 영화 역시 잘나가던 왕년을 회상하는 뻔한 소재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처럼 감각을 기르기 위해 나는 수많은 영화들은 보았다. 이 때 보았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Catch me If you can"이라는 영화인데, 톰 행크스에게 잡히고 만다. 무기징역으로 감옥에서 복역을 하던 중 CSI에서 잡지 못하는 사기꾼들의 흔적들을 브루스 윌리스에게 보여주자 브루스 윌리스는 그 흔적들을 보고 사기꾼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부류인지 알아 맞추며 CSI수사에 도움을 준다. 그렇게 꾸준히 도움을 주다가, 브루스 윌리스는 감옥생활 대신 CSI수사대에서 봉사하는 형량으로 바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로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능력이라도 그 능력에서 최고가 된다면 그 능력이 무엇이든 훌륭한 것이다.’ 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으며 나는 그 영화를 기억하고 내가 무얼하던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다시 돌아와 내가 PD가 되기 위해 필요했던 두 번째는 공부였다. 방송국계는 아직 관습이 남아있고 학연이 뿌리깊이 박혀있는 직종이기에 관련 학과를 가기위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멋있어서 열심히 해두었던 수학덕분이었는지, 점수를 올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나는 영어를 빼고 나머지 과목에서 1~2등급을 꾸준히 맞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영어공부를 하고 학국 외국어대학교에 수시합격을 하고 수능 최저합격만을 기다린채로 수능을 보았다. 한국 외국어대학교는 외국어 대학교 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어만을 중시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3가지 과목을 선택해 1/2/2등급 안으로 받게되면 최저합격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합격하리라 생각했고 수능을 보았다. 그런데, 수능 첫시간 언어영역이 끝나기 1분전 답안지를 밀려 쓴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답안지를 그렇게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항상 100점을 맞던 수리영역에서도 흔들려 92점을 받게되고, 이어 모든 과목시험시간에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점수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집에오자마자 부모님앞에서 죄송하다고 엉엉 울었던 날이다. 아직도 이날을 후회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수능을 보기 직전 아버지가 주식으로 몇억과 집을 탕진해서 빚이 생아이들 사이에서는 게임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들 중 하나였기에 나는 소위 잘나간다는 무리사이에 있었다.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 무리들과 싸워 또 많은 친구들을 잃었다. 남자친구들을 많이 잃고 여자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그중 가장 친하게 지내던 여자애는 임유정이라는 친구이다. 이 친구는 중학교 1,2,3학년 내내 같은반이 되어 더 친하게 지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던 황동근이라는 친구와 정구민이라는 친구 프로게이머를 같이 준비하던 김승용이라는 친구들과 자주 만나며,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다시 구민이와 같은 반이 되었고, 거기에 허재욱이라는 친구와 장태훈이라는 친구들과 친해져 지금도 여수에서 자주만나 술도 마시고 힘든일이 있을 때면, 모여 얘기도 하고 내게 아주 보약같은 친구들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여자인 친구였던 임유정이라는 친구와는 대학교 때 연인사이가 되어 지금은 가장 오랫동안 만났던 친구이자 연인이 되어있다. 이친구와 나는 성격이 느긋한게 비슷해서 서로에게 불만이 없고 너무 오랫동안 알고지내 서로를 이해하며 믿음을 주고받는게 느껴지는게 가장 좋은 것 같다. 갑작스레 만나 설레였던 다른 연애들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연예인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친구와 동시와 오랜연인을 잃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친구로 오랫동안 지내면서 연인으로는 몰라도 결혼을 하게된다면 저런 성격을 가진 친구랑 하고싶다고 생각했던 친구인데, 그 이유로는 우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는 어릴 적 부유했다가,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많은 돈을 잃고 빚이 생기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생각 보다 철이 빨리 들었고, 철부지 같은 여자친구들을 싫어해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친구 역시 우리집과 같이 3남매이며 나랑 비슷하게 10살의 터울을 둔 늦둥이 동생이 있고, 중학교 시절 아픈시간을 보낸 나날도 있어서인지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해 있었고 그게 너무나 좋았다. 또, 몰랐었지만, 외모적으로도 되게 좋아하는 얼굴형에 키빠져버린탓에 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조차 잃어버린 것을 깨닫고 1학기를 다닌 후 휴학을 하게된다. 휴학을 하고 놀던 중에 나를 가르치던 과외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학원을 차리게 되었고 잘되어 학생수가 많아서 보조강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싫어하는 직업을 꼽으라면 선생님을 꼽을 정도로 싫어 했는데, 그 이유로 내가 어릴 적 봐왔던 학생들은 말을 잘듣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아닌 짖굳고 장난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학생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역시 말을 안듣는 학생 중 하나였다. 수차례 손사례 쳤지만, 많은 페이 때문에 그 일을 접하게 되었다. 싫어 하던일이었는데, 생각 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우선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보조강사이다 보니 학생들과 가깝게 교감하고 연락도 주고받는 원장님과 학생 사이의 매개체같은 역할도 하였다. 또 열심히 해 아이들 성적이 오르고 같이 밥도 사주고 내 주위 사람들이 하나 씩 늘어가는게 매우 기분 좋은 직업이었다.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몇몇의 학생들이 있으며, 나의 소중한 제자들이다. 그이후 군대를 통신병이라는 직책으로 다녀오게 되고, 고장난 모든 물건을 수리하는 괴상한? 좋은 능력을 배워서 나오게 된다. 14년 9월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14명의 친구들 모두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꿈을 위해 1학년 1학기 때로 돌아 갈 수 없었고 그 친구들 중 많은 친구들과 멀어졌다. 그 이유 중 큰 이유로 14명의 친구들 중 대부분의 친구들은 학업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학과가 다름에도 학점이 꼭 필요했는데, 그 친구들은 학점보다는 대학생활이 중요했고, 군대를 제대한 이후에도 수업을 매일 빼먹으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편이었다. 그 중 군 제대 후 공부에 재미가 들린 특이한 친구도 있었는데, 지금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박재성 이라는 친구이다. 이 친구는 1학년 1학기 때엔 가장 바보? 성적이 안나오는 친구였는데, 군제대 후 공부에 재미가 들렸는지, 매일 공부를 하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