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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어 15주차
    논어 15주차애공이문왈 하위즉민복인이잇고 거왕조저직이면 즉민불복인이다. 애공, 춘추시대 노나라의 마지막 임금이다. 애는 슬플 애로, 시호이다. 27년간 재위했다.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다. 자기나라의 임금인 것이다. 애공이 공자한테 물었다. 애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하위, 위하다. 하는 무엇 하이고 위는 할 위이다. 무엇을 하다, 어떻게 하다. 한자는 기본 어순은 영어와 같다. 어떻게 하면 곧 민복이니, 백성들이 복종합니까. 여기서 복종은 강압적인 복종이 아니라 열복, 불역열호아의 열이다. 기쁠 열이다. 기쁘게 복종하다, 기꺼이 복종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기꺼이 마음으로 따릅니까? 공자대왈, 보통 자왈이라고 하나 여기서는 공자대왈이라고 했다. 논어에서는 임금의 물음에 답할 때에는 공자대왈 이라는 표현을 썼다. 임금에 대한 공경의 표현이다. 뒷부분은 두 가지 풀이가 있는데 첫 번째는 우리나라가 따르는 주자의 풀이를 소개한다. 주자는 사실은 포함이라는 한 대의 후한의 학자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포함은 이렇게 보았다. 그는 거용하다. 천거하다, 사람을 등용하다의 뜻이다. 즉은 정직한 사람, 올곧은 사람이다. 조는 둘 조이다. 포함과 주자는 조를 버려두다로 보았다. 왕은 왕림하다이다. 저는 제로 읽으면 여러, 많은 이란 뜻이다. 포함과 주자는 여러, 많은 뜻으로 보았다. 그래서 올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올곧지 않은 사람은 등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곧 백성들이 민복,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라고 풀이했다. 이것이 첫 번째 풀이이다. 그러나 교재에는 다른 해설이 있다. 청대의 유보남이라는 논어 정의를 편찬한 학자는 조를 어떤 자리에 두다, 취하다로 보았다. 버려두다와 상반되는 뜻이다. 저는 저로 읽으면 지어의 합성어이다. 지어의 뜻이다. 왕은 왕림하다이다. 올곧은 사람을 등용해서 올곧지 못한 사람위에 그 사람을 두면이라는 뜻이다. 올곧은 사람을 등용해서 올곧지 못한 사람위에 두면은 백성이 곧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라고 보았다. 전자는 올곧지 못한 사람의 아예 버 그들도 깨우치고 바른 길로 돌아와서 노력함으로써 적은 힘이나마 보태게 하여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이끌면서 국가 발전에 도움을 주게 한다. 모두를 아울러서, 그렇게 하면 후자가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인을 존중하고 소인까지도 포용하는 큰 정치, 인정, 덕정, 덕치, 그거야 말로 민복하는, 백성들이 마음으로 기꺼이 따르게 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주자 한 마디를 보면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재를 등용해 자리에 배치함이 의에 맞으면 의는 마땅할 의이다. 마땅하고 올바르면 사람들이 마음으로 따를 것이다,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개강자문, 사민경충이권하되, 여지하이까. 자왈, 임지이장즉겸하고 효자즉충하고 거선이교불능즉권이니라. 개강자는 노나라 애공시절의 정경이다. 상경이라고도 한다. 오늘날의 국무총리이다. 노나라 애공 때의 최고의 권력자이다. 개강자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사민경충이권, 사는 하여금 사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경은 공경하는 것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위정자는 정치인, 위정자를 공경하고, 충, 위정자에게 충성을 다 하고, 인은 접속사이다. 경충하고 그리고 또 라는 뜻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위정자를 공경하고 위정자,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권은 권면하다의 권이다. 서로 권면하게 하고자 하려면 여지하, 여하지의 뜻이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라는 뜻이다. 영어에 보면 it이 대명사로 쓰인다. 지도 이와 마찬가지다. 여기서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대명사로 쓰였다. 공자 왈, 공자가 대답하였다. 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이다. 주님이 임하시다의 임이다. 임지, 백성들을 위한다. 백성을 아래로 내려다본다. 백성을 대한다는 뜻이다. 임지, 장으로써 한다. 장은 장엄하다의 장이다. 엄정하다는 뜻이다. 백성들을 대함에 엄정함으로써 하고, 엄정함을 지키고 백성들이 곧 그 위정자를 공경할 것이고, 존경, 공경할 것이고, 효자, 효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위정자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 자애하다. 만 백성에게 보면 장경구가 말했다. 장경구는 송 대의 이학자인데 이는 모두 위정자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백성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아니고 위정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위정자를 공경하고 충성을 다 하며 서로 권면케 하려고 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위정자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항목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만약 그와 같이 할 수 만 있다면 그 감흥은 아마도 그러하기를 기대하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될 것이다. 꼭 백성들로 하여금 이러이러하게 하게 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절로 그렇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좋은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공자의 정치사상은 덕치라고 했다. 위정편 3장에 도지이덕하고 제지이례,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한다는 말이 있었다. 결국은 기본적으로 위정자의 도덕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시작이다, 출발이다. 그렇게 하면 백성이 거기에 절로 감화되고 덕화를 받아서 치세로, 태평성대로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때 개강자는 도덕수양이 높은 위정자라 할 수 없다. 권세가 높은 집안의 사람으로 참내행위가 하늘을 찔렀다, 참내를 일 삼은 사람이다. 그래서 개강자의 이런 질문에 이런 답으로 일침을 가했다. 강력한 경고를 한 것 이라고 볼 수 있다.21장혹이위공자왈, 자는 해불위정이신이잇고 자왈, 서운 효호인저 유효하며 우우형제하야 시여유정이라하니 시역위정이려니 해기위위정이리요. 혹은 혹자, 어떤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공자께 말을 했다. 이르기를, 자는 공자가 아니고 2인칭 대명사이다. 그대, 당신이란 뜻이다. 선생께서는, 당신은, 어찌 해, 어떻게, 왜란 뜻이다. 위정, 정치를 하지 않습니까. 왜 벼슬자리에 올라서 정치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서는 서경이다. 시,서,예,악,춘,추의 6경에 속하는 서경이다. 유가의 경전이다. 서경에 이르기를, 현존하는 서경에는 이 문장이 없다. 이런 걸 일문이라 한다. 전해지지 않는 문장이란 뜻이다. 효호인저, 효도할 것이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것은 꼭 정치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만행의 근본이다. 군자는 무본이다 는 말이 있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말이다. 주자의 한 마디를 보면 아마도, 이것은 주자의 생각이다, 공자께서 벼슬하지 않은 까닭은 혹자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을 것이다. 효경이라는 고전에 보면 옛날 성군들이 이효치천하, 효로써 천하를 다스렸다는 말이 나온다. 어쨌든 결국은 수신제가이다. 인륜도덕의 기본이다. 수신제가라는 인륜도덕의 기본을 닦는 것이 직접 출사해서 벼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륜도덕의 정치사회적의 의의는 간과할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은 이러한 공자의 사상이 후세에 사서의 대학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관점이 나온다. 이렇게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맹자가 이런 말을 했다. 친기친이요 장기장이면 이천하평이니라. 친은 양친, 부모를 말한다. 그 부모를 친애하고 그 어른을 공경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기본 인륜도덕인 효제이다. 결국은 군자는 무본이다. 근본에 힘쓴다. 위정치국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근본을 추구해야 한다.22장자왈 인이무신이면 부지기가야로다. 대거무예며 소고무얼이면 기하이행지재리요.인은 사람이다. 이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오히려, 도리어라는 뜻이다. 이것은 신실함, 성실함이다. 사람이 신실함, 성실함이 없으면 이란 말인데 이가 왜 들어갔느냐 하면 사람은 당연히 성실함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오히려가 들어간 이유이다. 사람으로서 오히려 마땅히 있어야 할 신실함, 성실함이 없으면, 모르겠다. 그가 가할지 모르겠다. 입신처세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과연 입신처세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예를 든다. 대거소거, 큰 수레, 작은 수레로 큰 수레는 소가 끄는 무거운 짐을 싣는 수레고 작은 수레는 말이 끄는, 사람이 타는 작은 수레라고 되어있다. 예와 얼은 멍에걸이이다. 큰 수레에 멍에 걸이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 걸 하나라는 중국 최초의 왕조라 할 수 있다. 이 시대에는 장자가 아니라 현인에게 왕좌를 물려주는 시대였는데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물려주고 이 우임금이 세운 게 하나라이다. 기원전 21세기이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이 걸 왕이다. 우임금은 선군의 대명사이고 걸 왕은 폭군의 대명사이다. 걸 왕을 무찌르고 탕왕이 은나라를 세웠다. 은나라의 첫 임금이 탕왕이다. 여, 순, 우, 탕왕이 모두 선군이다. 은나라는 기원전 16세기에 세워졌다.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이 주왕이다. 걸, 주 왕은 폭군의 대명사이다. 주왕을 친 사람이 주 무왕이다. 무왕이 주나라를 세웠는데 이 때가 기원전 11세기이다. 주 무왕의 아버지가 문왕이다. 문왕이 나라의 기틀을 잡았으나 무왕이 임금에 오른다.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임금에 올랐으나 조조는 임금에 오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때 유명한 고사가 있다. 무왕이 주를 칠 때 만류한 사람이 백이와 숙제이다. 주나라는 서주, 동주, 서주는 춘추전국, 공자는 춘추시대의 노나라 사람이다. 주나라느 기원전 256년에 진나라 진시황에 의해 망한다. 진시황이 이 때 천하를 통일한다. 은나라는 처음에는 상이었다. 나라 이름이 상나라였는데 은이란 곳으로 천도를 하고 국호도 은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하-상-주, 혹은 하-은-주, 혹은 은상이라고도 한다, 은나라의 유적지가 은허이다. 여기서 갑골문자가 발견되었다. 자장이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은나라는 인습하다, 계승하다, 따라하다 라는 뜻이다,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법을 그대로 따랐으니 소손익을, 덜고 더한 것, 그 예법제도 가운데 폐지된 것, 더 확충이 된 바를 알 수가 있고,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법을 그대로 따랐으니 그 가운데 폐지되고 확충된 바를 알 수 가 있나니, 공자의 시대는 주나라이다. 혹, 혹시, 주나라를 이어가는 왕조가 있다면, 비록 백세라도 알 수 가 있을 것이다. 그 예법제도가 어떻게 돌아갈 지를 알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때 예법제도의 변천을 통해서 후대에 어떻게 예법제도가 변해갈 지도 알 있다.
    학교| 2017.06.16| 5페이지| 1,500원| 조회(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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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어 14주차
    논어 14주차자왈 학이불사즉만하고 사이불학즉태니라. 학은 배운다는 것이다. 사는 생각하는 것이다. 사색, 사고. 앞에는 긍정이고 뒤에는 부정이다. 이는 역접의 접속이었다. 학이시습지의 이는 순접의 접속이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그러면 곧 이런 폐단이 있다. 어떤 폐단이냐, 만의 뜻이 전통적으로 없다, 속이다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없다는 뜻으로 얻는 바가 없다, 만연히 없는 바가 없다고 하는 설이 있고, 속일 만으로 무만하다, 기만하다의 뜻으로 하여 속임을 당하기 쉽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주자는 전자, 즉 얻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보았고 우리나라 다산 정약용은 속임을 당한다, 기망을 뜻한다는 설을 뜻한다. 그런데 1980년대 대만의 왕희원 교수는 그물망의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물은 동물을 잡기 위해서 구속하고 얽매는 용도로 쓰인다. 여기서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배운 지식에 쉬이 얽매이게 된다고 보았다. 얻는 것이 없다, 터득하는 것이 없다. 없음으로서 남에게 속기 쉽다. 근본적인 원인은 지식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게 된다. 생각은 하지만 배우지 않으면 태는 위태롭다의 태다. 위험하게 된다. 시비선악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배워야 논리와 시비선악을 가릴 수 있다.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해 위험하다는 말이다. 결론은 학이사지, 배우면서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이는 순접이다. 생각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논어에서 태는 모두 위태롭다로 쓰인다. 무엇이든지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은 다 한다. 그러나 사하지 않으면 스승을 능가할 수 없다. 학이는 외부로부터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사는 그 내면적으로 이해하고 이치를 깨닫고 진리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그래야 자기만의 지적 세계를 창출할 수 있고 청출어람 할 수 있다. 온고지신은 이 과정이 없이는 할 수 없다. 공자도 생각만 했더니 아무 이익이 없더라하여 불여학이, 공부하는 것만 못하더라고 했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기관은 사고를 하는 것으로 사고를 하면 진리를 터득하나 사고를 하지 않으면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다고 했다. 순자는 소인의 배움은 귀로 듣고 입으로 내뱉는 것이다. 귀와 입 사이는 거리가 4척밖에 안되는데 7척의 몸을 어찌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의 요지는 학습과 사색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의 한 마디를 보면 정자를 인용했는데 폭넓게 배우고, 박학, 자세히 물으며, 심문, 깊이 생각하고, 심사, 명확히 변별하며, 명변, 돈독히 실행하다, 독행, 이 다섯 가지 중 하나만 빠져도 진정한 배움이 아니다.자왈, 공호이단이면 자새야이니라. 공, 공은 공격하다의 공이다. 전공하다의 공이다. 주자는 전치하다고 풀이했다. 오로지 그것을 탐구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호는 어조사이다. ~의 호이다. 이단, 이단시하다의 뜻이다. 이단, 서로 적대적이고 배척하는 관계로 보는 것이다. 유가가 아닌 다른 사상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환관이라는 학자는 양나라때 사람은 이단을 제자백가의 잡서라고 보았다. 주자는 성인의 도가 아닌 것이라고 했다. 위대의 하안이라는 학자는 선도가 아닌 것이라고 보았다. 이 세 견해가 모두 유가가 아닌 이단을 얘기하고 있다. 이단을 다른 제자 잡가의 학설에 오로지 전공하면, 다스려서 정통하고자 하면 주자는 양주와 목적은 세상 사람을 이끌어 무구무근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만약 그것을 전공해 정통하고자 한다면 그 폐해가 심각한 것이라고 했다. 사는 이 사이다. 그것은 곧 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곧 엄청난 폐해가 따른다. 해롭고 위험하다. 야는 긍정과 단정의 어조사이다. 그러나 이 풀이에는 문제가 있다. 과연 이단이 지금 말하는 이단인가 하는 것이다. 공자의 시대에는 제자백가가 크게 일어난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와 노자, 유가와 도가가 행해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보면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제 사상이 발전해가던 1시기였다. 제자백가가 논란이 되었던 것은 2시기이다. 그래서 이 때 말하던 이단은 서로 다른 양 극단이라는 것이다.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의 폐해를 부른다. 그래서 강조하던 게 중용, 중화, 중도 등이었다. 공자는 극단의 폐해를 알고 있었기에 이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공을 오로지 힘을 쏟는다, 집착하다, 고집하다로 이해할 수 있다. 양 극단에 집착하면 그것은 대단히 해롭다,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중용이란 양 극단의 상태를 아울러서 최적의 이상상태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중용이자, 중화, 중도이다. 제 3의 견해도 있는데 공을 공격하다의 뜻으로 본다. 이단 사설을 공격한다는 것으로 본다. 이단을 공격한다는 것은, 그리고 마지막 이 자는 말이 이다. 말다. 이미 란 뜻도 있지만 말다, 끝난다는 뜻도 있다. 이단을 공격하면 그 폐해가 끝난다는 말이다. 혹은 이단을 공격하면 해롭다는 뜻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문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공호라고 했는데 공 이단하면 이라고 풀이가 된다. 공이 동사이고 이단이 목적어가 된다. 이단을 공격하다 이렇게 되는데 이단에 공격하다고 하면 문법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양 극단에 오로지 힘을 쏟으면 그것이 해롭다는 뜻이다. 사람은 매사에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고 중용과 중도를 추구해야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129쪽을 보면 10장을 보면 공자는 군자는 천하만사에 있어서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없고 반드시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없다고 했다. 오직 의에 따를 뿐이다. 알맞고 마땅함에 따를 뿐이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아집과 편견, 고집은 심각한것이기 때문이. 그래서 합리적 타당성을 추구해야한다. 구동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가 융화, 타협, 조화, 중용으로 가는 하나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다를 때 이런 지혜가 필요하다. 같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서로 달라 보여도 동질성을 추구하고 다른 것은 그냥 둔다.17장자왈 유와 해여지지호인저 지지위지지요 부지위부지가 시지야니라. 유는 중유이다. 중유라는 공자의 제자인데 유명한 자로이다. 중유는 이름이고 자로는 이름으로 계로라고도 한다. 성격이 괄괄하고 힘이 좋고 덩치도 커서 거의 공자의 보디가드 같은 사람이었다. 나이차도 9살로 크지 않았다. 중국에 공자의 사당이 있다. 공자의 묘도 있고 집도 있다. 사당에 가면 자로가 심었다는 나무가 있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다. 해는 가르칠 해 이고 여는 너 여이다. 자로야 너에게 지지,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겠노라. 호는 의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너에게 아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랴? 하고 묻는 것과 같다. 지지위지지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부지위부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시지야니라,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니라. 논어 편에 자로 편이 있다. 자로가 공자한테 물었다. 선생님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정명을 하겠다고 했다. 명분, 명이를 바로 잡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부모가 부모다움 등 명분, 명이를 바로 잡아서 명시를 상부하게 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론이다. 그러자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 그걸 꼭 해야 합니까? 자로가 의아해했다. 그러자 공자 왈,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다. 정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로는 잘 모르고 대수롭게 여겼다. 공자는 자로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왈가왈부하지 마라고 질타하였다. 순자에 보면 군자는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나니 그것이 말하는 요령이라고 했다. 또 순자는 말을 해서 마땅하면 물론 지혜로우나 말을 하지 않아서 마땅하면 그 역시 지혜롭다고 했다.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안으로는 자신을 속이지 않고 밖으로는 남을 속이지 않게 된다고도 했다. 말 한 마디가 책 한 권 보다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이 세상만사를 다 알 수는 없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여 속이기보다는 겸허하고 솔직한 자세로 배움을 추구하고 앎을 증진시킴으로써 진정 앎의 길로 가야한다. 주자의 한 마디를 보면 자로는 용맹하기를 좋아하였으니 아마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안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그에게 내가 너에게 앎의 이치를 가르쳐주겠노라, 아는 것만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여라. 그렇게 하면 비록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을 속이는 폐단은 없을 것이요, 그 앎에도 폐단은 없을 것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면 제대로 알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해질 것이다. 계속 아는 척하면 진정으로 앎의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물며 이로부터 알기를 추구한다면 또 알 수 있는 이치를 깨닫게 되면 더 말 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런 자세로 계속 구학, 배움의 길로 나아가면 더욱더 알게 된다는 말이다.
    학교| 2017.06.16| 3페이지| 1,500원| 조회(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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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어 12주차
    논어 12주차위정편 7장자유문효한대 자왈 금지효자는 시위능양이니 지여견마하여도 계능유양이니 불경이면 하이별홀이요.자유는 공자의 제자이다. 이름은 언언이다. 오나라 사람이다. 자유, 자하, 자장 세 사람이 공자의 우수한 제자였다고 알려졌다. 자유가 같은 질문을 했다. 효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하기를 금지효자는 오늘날 효라는 것은 시는 책마다 다르지만 단지, 다만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위, 이르다, 말하다, 능양, 능히 양, 봉양할 수 있는 것을 말하나, 양은 무슨 뜻인가, 풀이를 보면 주자는 음식으로 공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약용은 가까이서 받들어 모시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는 의식주 위주의 물질적인 봉양이라고 보면 된다. 요즘 효라는 것은 단지 부모님을 물질적으로 잘 부양하는 것을 말하나, 지어, 지어는 어디어디에 이르다는 뜻으로, 화제를 바꾸어 관련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할 대 쓰인다. 견마, 개와 말에 대해서도 모두 양이 있을 수 있다. 불경,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면 하이, 어떻게, 무엇으로써, 구별을 하겠는가. 증자가 말했다. 효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가장 큰 효는 부모를 존경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요, 마지막으로 부모를 능히 부양하는 것이다. 주자의 한 마디를 보면 세상 사람들은 부모를 섬김에 단지 부양만 하면 족하다고 하여 부모의 은혜에 대해 함부로 하고 사랑만 믿어 불경으로 흐름을 알지 못한다. 이는 작은 잘못이 아니다.제8장자하 문효한데 자왈 색난이니, 유사어든, 제자복기로하고 유주사어든 선생찬을 증시이히효오아.자하가 질문했다. 이름은 복상이고 진나라 사람이다. 역시 효도에 대해 여쭈었다. 색난이다. 얼굴빛이 어렵다. 두 가지로 풀이된다. 자식이 부모를 공양함에 있어서 자식이 자신의 얼굴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또 다른 풀이는 부모의 얼굴빛, 즉 부모의 여러 가지 얼굴빛을 제대로 받들어 모시기가 어렵다. 유사어든, 일이나 할 일이 있으면, 제자, 한 집안의 어린 사람- 아우나 자식이 복, 그 노고를 맡아 힘쓰고 유주사어든, 사, 먹을거리가 있으면 선생, 어른이 찬, 섭취하다- 다산은 음식을 차려 먹게 하다로 풀이했다, 어른이 드시게 한다. 증시의 증은 바로, 곧바로, ‘설마’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시는 이시, 설마 그것이 곧 효라고 하겠느냐 라는 뜻이다. 이는 너무 상식적이라 효도라고 할 수 없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이다.
    학교| 2017.06.16| 1페이지| 1,500원| 조회(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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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과 문화사 6주차
    연극과 문화사제6주차 연극의 관습과 특성영국의 왕정복고기와 신고전주의시대를 중심으로먼저 왕정복고기의 사회적 시대17세기 초 흑사병으로 인해서 런던의 극장이 문을 닫는 일이 빈번해졌다.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극작가와 배우에게도 타격을 주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사후 후세가 없어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1세가 영국의 왕이 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튜어트가문에서는 최초로 영국의 왕이 된 제임스 1세는 스스로를 대영국의 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제임스1세는 영국 의회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의회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잦은 다툼이 일어났고 심지어 암살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임스1세 즉위기간에 영국의 연극은 주로 가면극이 유행했다. 당시 유행한 작가로는 벤 존슨을 꼽을 수 있다. 벤 존슨은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 신고전주의의 원칙을 중시했다. 본디 배우로 연극 활동을 했으며 글솜씨가 인정받으면서 극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당대에는 셰익스피어의 그늘에 가려서 작품이 빛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는 인간의 기질을 과장하여 공연하는 기질희극을 발전시켰고 1605년부터 25년까지 궁중 가면극을 주로 집필하면서 제임스 1세 시대의 최고의 가면극 작가라는 명성을 들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모든 사람은 자기 기질대로’, 말없는 여인, 연금술사, 개들의 땅 등이 있었다. 또 다른 인물로는 이니고 존스가 있었다. 그는 건축가이면서 무대 디자이너였다. 화려하고 기술적으로 발전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무대를 영국 궁정에 도입한 사람이다. 그는 지올리오 파르기와 세바스티아 세를리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인해 화이트 볼에 대 연회장을 건설하기도 했다. 존스의 첫 무대 디자인은 1605년 암흑의 가면극을 통해 알려졌는데 그는 무대 전환을 알려주기 위해서 열리는 무대 뒤 가리개의 장면스타일과 3차원의 배경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화려하고 변화무상한 무대 장치를 선호했으며 영국의 궁정 가면극은 이니고 존스에 의해서 화려한 무대 장치가 특성이 되었다. 거의 항상 궁 통해서 염세주의적 사상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헨슬로우는 당시 흥행업자이자 극장운영자, 제작자로 활동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인간의 폭력성과 사악함을 탐구하는 말피공작부인, 하얀 악마의 심판을 곱을 수 가 있다. 찰스 1세가 집권하던 후반기인 1642년에 영국에서는 시민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청교도혁명이라고도 알려졌는데 왕당파와 청교도사이의 싸움이다. 왕당파를 이끌던 올리버 크롬웰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공화국을 세운다. 그가 18년간 통치하면서 런던의 극장이 폐쇄된다. 배우들은 범법자 취급을 받아 숨어 지내기도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배우들은 비밀스러운 공간이나 테니스코트, 여관, 문을 닫아야 할 극장에서조차 연극 공연을 했고 관리자들에게 뇌물을 주기도 했다. 1658년에 크롭웰이 죽으면서 연극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영국의회는 프랑스의 망명가였던 찰스2세의 귀환을 요구했다. 이것이 바로 왕정복고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된다. 1651년에 프랑스로 망명했던 찰스 2세가 왕위에 즉위한 1660년을 기점으로 해서 17세기 말까지를 왕정복고기라 부른다. 왕정복고기에는 주로 가벼운 코미디가 공연되었고 전반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내용들이 많아진다. 이 시대의 관객들을 주로 상류층이 대다수였고 화려하고 흥겨운 소재가 많이 공연되었다. 초기에는 이러한 현상은 찰스2세가 왕정에 복귀하면서 의회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방탕한 내용을 다루는 연극만 진행했다. 초기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와 벤 존슨이 활동했던 앞 시기의 분위기가 연장되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방탕하고 퇴폐적으로 내용이 변질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찰스2세와 그의 가족이 망명했던 프랑스의 풍습과 취향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온 탓이 클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영국 왕정복고기의 스타일과 프랑스의 클래식 바로크 양식이 유사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건너온 건축, 실내장식, 생활가구, 회화, 연극 장식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화로운 건축물로 영국 건축사에서도 획기적인 디자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영국의 17세기 후반 영국 연극계에는 여러 변화가 생겨나는데 그 중에서 여배우의 출현을 들 수 있다. 17세기 중반에 프랑스와 스페인에 여배우가 등장하지만 영국에서는 17세기 후반 왕정복고기가 지나서야 여배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시대까지는 관객은 듣는 역할만 했다. 당시는 대사 중심으로 연극이 진행되었고 관객들은 듣는 걸 즐길 뿐이었다. 그러나 17ㅅ기 중반이 되면서 실내 극장이 등장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극은 청각적 요소와 함께 시각적 요소도 중요해 졌다. 그러다보니 무대 위에서의 남녀 감정을 묘사하게 되면서 여성적 면모를 남성 배우가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특히 이 시기에는 풍습 희극 등이 유행하면서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주종을 이루던 경우가 많았다. 여성의 지위도 상승하던 사회적 환경이 작용하기도 했다.당시 대표 여배우 중에는 엘리자베스 베리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당시 인기 남배우인 토마스 배터튼의 상대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었다. 또 다른 배우로는 앤 브레이스거들, 마가렛 휴스, 엘리노어 넬 귄이 있었다. 엘리노어 넬 귄은 1664년에 데뷔했는데 그가 찰스 2세의 정부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원래 엘리노어 넬 귄은 런던 빈민가 출신이다. 연극 무대를 통해서 스타가 되었는데 찰스 2세의 정부로서 자식을 둘 낳으면서 출세한 인물이다. 찰스 2세가 복귀할거라고 예상한 토마스 킬리그로우와 윌리암 데이브넌트는 각각 왕의 극단, 공작의 극단을 결성한다. 왕의 극단의 배우는 주로 경력자들이었고 공작의 극단은 젊은 신인배우를 중심으로 결성된다. 찰스2세로부터 독점권을 받은 두 극단이었지만 운영방법에 있어서는 매우 달랐다. 공작의 극단을 이끈 윌리암 데이브넌트의 뛰어난 행정 능력에 의해 공작의 극단이 더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왕의 극단은 킬리그로우이 행정적인 무능력을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682년에 왕의 극단이 공작의 극단에 합병된다. 처음에는 테니스 코트에서 되고 있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면 몰리에르의 작품들은 르네상스 시대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이 작품이 공연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몰리에르가 지방 순회공연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서 루이 14세를 위한 작품을 준비하면서 유명해진다. 1664년에 따르뛰프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3막에서 5막으로 변형이 되었다. 몰리에르의 작중 가장 인기작인데 종교적 위선ㅇ르 풍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1670년 발표한 서민귀족은 당시 귀족이 되기를 원하는 상인 주르댕과 주변인물을 묘사하는 희극이다. 주르댕은 자신의 딸을 귀족에게 시집보내려고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주르댕의 딸을 좋아하는 서민이 터키 왕자로 변장하여 주르댕에게 허위 작위를 수여하고 주르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 서민귀족은 당대 유행했던 발레 요소와 음악, 마임이 혼합된 희극으로 궁정 음악가인 몰리에르의 친구 장 밥티스트 륄리가 작곡을 맡는다. 프랑스 희극은 코미디가 인기 있었는데 비극만큼은 못했었지만 몰리에르가 등장하면서 그 인기가 비극에 맞먹을 정도였다. 동시대의 작가로는 장 라신느를 들 수 있다. 어린시적은 불우했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 전문적인 운문극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학공부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신고전주의 극작가가 되어 몰리에르, 코르네이유와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코르네이유가 발표한 대표작으로는 페드로를 들 수 있다. 신고전주의는 문학부터 시작하여 음악, 미술 등을 거쳐 연극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법칙이나 유형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고전주의 문학이나 예술을 부흥해보자는 취지에서 신고전주의, 네오클라시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이나 정신을 모델삼아 출발한 예술운동이다. 그래서 르네상스 출발과 함께 프랑스는 고전주의 작가들과 과거의 규정의 회개를 반대하는 논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은 프랑스 문학사의 틀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주의를 예술적인 일치를 주장하는 사상이다. 원래 고대 그리스 시대 활동했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근거를 발견하게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설명된 비극작품의 구조에서 유래된 사상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 그리스 시대에 관심을 가졌던 카스텔 베트로가 시학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칙을 삼일치 법칙으로 확장시켜서 소개한 것이 삼일치 법칙의 근본이 되었다. 시간의 일치는 극 행동이 대략 24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칙이다. 이러한 시간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 작품의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이다. 이는 관객들이 관람하는 동안에 극중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과 관객들이 느끼고 있는 현실의 시간이 가급적이면 일치가 돼야 진실성을 느끼게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이다. 물론 이러한 사상은 오늘날 현대연극에서는 전혀 불필요하다. 현대연극에서는 실제 공연시간과 극 중 사건이 벌어지는 시간이 달라도 관객들은 혼동을 느끼지 않는다. 장소의 일치는 시간의 일치와 유사하긴 개념으로 배경이 단일한 장소여야 하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그 안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 행동의 일치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이기도 하다. 행동은 단순하게 연기가 아니라 극 중 인물들이 갖고 있는 구조적 논리-중심플롯은 물론이고 부수적 플롯까지-가 하나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밝혔던 극작가가 작품을 쓸 때는 하나의 통일된 극 행위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 하에서 이러한 삼일치 법칙이 신고전주의자 사이에서 지켜야할 원칙처럼 이어지게 된 것이다. 코르네이유는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17세기 고전주의 대표 작가이며 로마의 역사에서 소재를 찾았으며 왕권과 귀족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코르네이유는 1674년에 은퇴한다. 창작활동을 중지하 코르네이유는 고향으로 내려가 총 23편의 희극과 7편의 코미디 작품을 남기고 죽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르 시드를 꼽을 수가 있다. 르시드는 스페인의 국가적 영웅인 엘시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연애스토리이다..
    학교| 2017.06.16| 5페이지| 1,500원| 조회(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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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과 문화사 10주차
    연극과 문화사 10주차조지 버나드 쇼는 20살에 런던으로 이사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홀아비의 집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 이듬해 워렌 부인의 직업이 완성되는데 이 작품은 여성의 입장을 변론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그 이후 그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희곡을 집필한다. 그의 대표작이자 최대작은 임관과 초임이다. 1903년 발표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쇼는 세계적인 극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교육과 결혼, 종교적인 이슈, 정부와 의료에 관련한 문제, 상위층의 특권 등에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경향이 강하다. 1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는 반전론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글쓰기를 멈췄다. 1905년 워렌부인의 직업이 미국에서 공연되었을 때 당국에 의해 출연배우 전원이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23년 발표한 성녀 조안으로 인해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자로 지목받았다. 스스로는 노벨상을 거부했다. 그러나 아내의 간청으로 인해 수상했다. 그는 노벨상과 부수적으로 들어오는 상금은 거부하고 아우구스 스트로베리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상금을사용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과 피그말리온의 영화작업에 참여했고 오스카 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노벨문학상과 오스카상을 둘다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화장한 시신은 아내의 재와 섞여서 뿌려졌고 묘비명으로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브라질의 아우구스 보알이다. 그는 리오데자네이루에서 1931년에 태어났다. 1950년대 중후반까지 활동한 사람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을 창시한 사람이다. 민중연극론을 주창했다. 반체제 인사로 지목될 정도로 정치적 영향이 컸다. 브라질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미국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1956년 브라질로 돌아와 상파울로에 떼아트로 데 아레나라는 소극장을 설립했다. 이 극장에서 그는 브라질의 실정에 맞게 쥐와 인간이라는 소설을 각색하여 첫 작품으로 공연했다. 사회 정치적 작품을 추구하는 보알은 구속도 여러 번 당하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망명생활동안 실험극을 하고 연극 메소드의 토대를 형성하고 발전시켰다. 1978년 이후 파리로 가서 대학 강의를 맡기도 하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욕망의 무지개라는 워크샵을 하면서 한국의 연극인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 연극은 3b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보알이고 나머지는 브레히트, 부에나벤투라가 있다.부에나벤투라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났다. 극작가, 수필가, 소설, 시인, 영화감독 뿐 만 아니라 배우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 고국에서 지역연극과 국민극을 했다. 칼리 실험극단을 창립했다. 새로운 콜롬비아 연극 운동을 통해서 사회 정치극을 추구하고 연극 학교를 개설하여 사회 개혁에 목적을 가진 연극을 전파하려고 했다. 그는 연극하는데 브레이트의 영향을 받았으며 민중을 중시하면서 사회제도의 모순이나 정치적 제도에 대한 반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콜롬비아의 정체성 찾기에 매진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확립되면서 부르주아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작품이 소련에서 추방된다. 1934년에 소비에트 작가들이 모스크바에서 첫 집회를 가지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결의했다. 이런 작품들은 민족적 성향을 보이고 사회주의적 사상을 가진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의 연출가 페볼르드 에밀레비치 메이에르홀드는 사회주의 사실주의를 그다지 안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연출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배우들의 기이한 동작을 위해 구성주의 무대를 선호했다. 그는 소셜 리얼리즘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되었다. 1955년 스탈린 사후 법정에서 명예가 회복되었다. 1934년 프랑스에서 파리떼라는 작품이 초연되었다. 독일에 점령된 파리에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고대 그리스 극작가인 아이스 퀼러스의 오에스티아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유럽에서는 1970년대 이후 까지 정치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과 연극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했다.리빙씨어터는 1946년에 미국에서 창단되었다. 줄리앙 벡과 주디스 말리나 부부에 의해 창단되었다. 1950-60년대에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실험단체이다. 미국과 유럽의 실험연극에 영향을 끼쳤다. 공연 자체가 즉흥성을 강조하고 시각적 충격을 주는 연출과 기법으로 무정부주의와 평화주의적인 주제를 다루는 극단이다. 이 부부는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에 파리의 극장에서 학생집회에 참가하고 극장을 폐쇄하는데 앞장을 설 정도로 기존 질서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연극운동가이다. 집회의 경험을 통해 일상과 연극을 동일시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순회공연을 위해 귀국한 부부는 극장의 관습적 연극의 허위와 가식을 추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에서의 공연을 통해서 부르주아를 위한 공연보다 노동자등을 위한 공연을 계획했다. 앙토완 아르토의 이론을 차용하였으며 요가 훈련과 탄트라 교리로 무정부적 신념을 작품에 적용,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잠의 고고학의 실패에 불구하고 리빙 씨어터는 전통적 극장 관례를 파괴하는 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시도하였다. 줄리앙 베크의 암 진단으로 리빙 씨어터의 활동은 급격하게 쇠락해졌다. 가면과 양식적인 제스처를 사용하고 화술과 무대 관습을 탈피하려 했다. 리빙 씨어터는 누구든지 공연 행위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리빙 씨어터의 작품들은 등장인물의 성격보다는 즉흥성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고 집단성과 즉흥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제도와 규범에 맞서는 그들만의 방식이었고 자유 연극은 프랑켄 슈타인과 지금 천국으로라는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고 그들의 사상은 유목 성향과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데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핵실험과 전쟁들 야만적인 상황에 대하여 무정부적이면서 비폭력적인 행동으로 맞서려고 노력한 예술가였다. 그들의 연극작업은 협동적이었고 비언어적이면서 관객의 참여를 권장하고 문제에는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형태였다. 공연작품은 제의 행사처럼 진행되었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며 비선형 구조로 내용을 전달하는 특성을 보였다. 연극의 미학적 요소를 실험적으로 적용한 활동은 미국 사회의 정치적 자극을 확장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 구성원들은 반주지주의의 사상을 품었고 공산주의같이 행동했다. 실제 공산주의자들은 아니었지만 당시 미국 정부가 보았을 때는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리빙 씨어터는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을 추구하기도 했고 격동의 정점에서는 빼놓을 수 없었다. 실험극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부부는 인간삶에 관계된 모든 것의 조화와 통일을 추구했으며 반자본주의적 사상은 리빙 씨어터가 캠페인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변혁을 원했지만 비폭력과 인간 자각의 확장이 수반된 행동으로 공연하고자 노력했다. 궁극적으로 실험연극의 테스터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활동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학교| 2017.06.16| 2페이지| 1,500원| 조회(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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