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건축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 생애라이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어머니 안나를 절대 빼먹을 수 없다. 라이트가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이 될만큼 위대한 건축가가 되는데에는 안나의 영향이 상당하다. 놀랍게도 안나는 라이트를 임신했을 때부터 그가 위대한 건축가가 되길 기원했다고 한다. 때문에 태교에 많은 신경을 썼다. 태교가 실제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안나는 태교의 힘을 굳게 믿고 있었던 듯 싶다. 방에는 좋은 그림이며, 아름다운 건축사진들과 조각품들을 두었고 클래식을 즐겨들었다고 한다. 라이트가 태어난 이후에도 라이트의 방에 대성당의 조각이나 사진들을 걸어두었고 먹는 것까지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라이트가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를 꿈꾼 안나는 라이트를 엄격히 교육했고 라이트는 그에 따라 성장하게 되었다. 안나가 라이트에게 가르친 놀이 중에는 '프뢰벨 게임(Frobel Game)'이라는 것이 있었다. 프뢰벨 게임은 프리드리히 프뢰벨의 발명품인데, 그는 독일의 교육가로 유치원의 창시자라고 한다. 이 게임은 애초에 목적이 어린이에게 자연과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는 개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놀이는 프뢰벨 블록으로 눈의 결정체, 조개 크리스탈, 꽃잎, 나뭇잎들에 대한 연구 하에 수학적 구조와 추상적 패턴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종류의 놀이었다. 이를 통해 자연에 있어서 하나하나의 단위(unit)의 원리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프뢰벨 게임의 경험은 라이트에게 기하학적인 체계와 그 디자인 특성에 대한 인식, 3차원적 매스(덩어리적인 느낌, 솔리드라고도 함)와 볼륨(무언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보이드라고도 함)에 대한 감각, 다양한 요소의 구성 능력을 길러주었다. 또 복잡한 2차원 패턴과 3차원적 공간을 엮어내는 것에대한 흥미를 돋구워주기도 하였다. 프뢰벨 게임은 생각보다 라이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여진다. 라이트의 작품에 적용된 주요 이론으로써 자리잡았다고 보여지고 있다. 그의 이론에서의 ' 1883년의 일이다. 라이트는 매디슨의 위스콘신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에 입학했다. 당시에ㅡ지금도 없다ㅡ 위스콘신 대학에는 건축학과가 없었다. 그래서 라이트는 건축에 가장 가까운, 또 실질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엔지니어링(engineering, 공학)반에 들어갔다. 아마도 토목공학인 듯 싶다. 라이트는 이 대학에서 공학부장이었던 앨런 코노버(Allen D. Conover) 교수를 만났다. 그의 밑에서 제도사로 일하면서 자잘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실질적인 경험을 많이 배웠다는 것이었다. 디자인 이전의 기본 구조 분야에 대한 기술적인 실습을 받을 수 있었다. 앨런 코노버 교수에게서 얻은 중요한 사실은 '구조는 수단이며 건축은 결과이다. 건축가가 구조 계획을 할 때 재료를 그 성질에 맞게 해야한다'라는 개념이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라이트는 앨런 코노버 교수 말고도 건축물에 대한 책임감 또한 배웠다. 정확히는 위스콘신 대학이라기보다는 그 대학이 있던 매디슨에서 배운 것이었지만 그가 재학 중일 때의 일이다. 그가 대학에 온지 3년이 조금 넘었을 때, 의사당이 붕괴된 사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그 사고의 원인은 건설을 전적으로 시공사에게 의존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때에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을 끝까지 돌보아야 한다'라고 생각햇다고 한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는 시카고로 이주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건축입문의 시작이었다.매디슨과 달리 시카고는 대도시였다. 현재에도 그러하다. 시카고로 이주하게 된 것은 라이트에게 운명적인 선택이었다고 본다. 시카고에는 '시카고 학파'라는 하나의 건축이념이 형성되어있어 그에게서 라이트가 많이 영향을 주고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안나만큼이나 라이트에게 영향을 준, 평생의 스승 루이즈 설리반(Louis H. Sullivan)을 만났기 때문이다. 먼저 시카고 학파는 보통 일컫는 경제학파와는 다르다는 개념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 '시카 유리의 디자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사용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 장식문양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 바로 실스비의 사무실이었다.1887년 라이트는 드디어 루이스 설리반과 만나게 된다. 그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시카고 오디토리움 빌딩(Chicago Auditorium Buliding)' 설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설계에 참여하게 되면서 라이트는 설리반의 본질적 건축사상, 유기주의와 기능주의를 이해하고 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앞서 말한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를 라이트가 후에 '형태와 기능은 하나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그의 사상을 이해하고 이행함으로 설리반의 신임을 받았고 주택설계에서 큰 역할을 맡게되었다. 함께 일을 하다가 결혼 후 1893년 자녀부양의 이유로 개인적 주택설계 문제로 설리반과 떨어져 개인적인 사무실로 독립한다. 그러나 이 일때문에 설리반과 관계가 틀어진다거나 그런 일은 아니었다. 1893년은 사무실 독립 외에도 시카고의 만국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년도이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만국박람회의 성공으로 도시의 건재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더 큰 도약을 하게 되었고, 라이트는 일본 건축을 직접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라이트는 일본건축의 단순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면에 매료되었다. 이 계기로 라이트는 일본의 미술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진 듯 보인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랫듯이(그 옛날의 고흐조차 그러했다.) 일본 목판화에 관심을 가져 수집하기도 하고 그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다. 사무실 독립으로 본격적 자기 설계를 하기 시작하면서 제 1의 전성기를 맞이했다.제 1의 전성기는 그의 핵심이론인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이른바 프레리 하우스(Prairie House) 작품의 시리즈들이 나왔다. 윈슬로우 하우스(Winslow House), 마틴 하우스(Martin House), 라킹빌딩(Larkin Building), 로비 하우스(Robi우러지는 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그녀의 제안에 따라 1932년부터 텔리에신 펠로십을 만들었다. 이 제도의 한 실습생의 아버지가 그 유명한 낙수장(Falling Water)을 의뢰한다. 1935년에서 1937년까지 제작된 낙수장은 그의 역작이다. 아래 작품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낙수장으로 온전히 재기한 라이트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유니티 교회(Unitarian Church) 등으로 세계 거장으로 거듭났다. 라이트는 전 생에에 걸쳐 1,141의 작품의 디자인을 남겼고 실제로 남긴 작품만 532개에 이른다.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수이다. 라이트는 다작을 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의 작품중 많은 작품이 역사적 작품으로 분류되었는데다가 민간인을 위한 이른바, 유소니언 하우스(Usonian House, 실용적 주택양식)를 300여점 넘게 남겼다. 라이트는 예술과 대중을 모두 아우르는 건축가로써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2. 대표적인 작품 분석2-1. 유니티 교티회(Unity Church)유니티 교회가 완공된 것은 1906년이었다. 당시는 이러한 교회 건축에서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모티브를 많이 얻었는데, 유니티 교회는 기존 서양 건축의 신전 모티브가 아닌, 남미 마야문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특히 장식에 관심이 많았던 라이트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건축이다.위의 두 사진은 마야문명의 건축물의 사진이고, 아래 두 장은 유니티 교회의 외관이다.마야문명의 건축은 종합예술의 의미였다. 불후의 건물을 짓는 것이 종교 행위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들은 다양하고 장해하고, 장식적인 도시를 건설해 신에게 바치는 것을 목표로 여겼다.전체적으로 높이가 낮고 기둥이라던가 외관이 비슷하다. 수평적인 요소들에 기둥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조형성에 있어서 정적이고, 각각 방향에서 많은 부분들이 분리되어 보여지지만 안정성이 느껴진다. 평행성을 강조했다. 기둥은 사각기둥이며 속이 비어져있고진다. 이 건물은 고객이 자기 의사를 아주 명백하게 밝혀 이 같은 건물이 나올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기도 하다. 고객은 내화성 자재의 사용과 실내 장식을 쓰지 말 것, 답답하게 막힌 공간을 없앨 것을 요구했다.당시의 대부분의 건축물은 코너와 코너 사이가 막혀있었는데 라이트는 고객의 요구를 충실하게 받아들여 코너를 뚫고, 또는 유리로 덮어 공간의 개방감을 주었다. 안과 밖이 유기적으로 통하는 연결적인 느낌 도 주고 있다.여기서도 장식에 관심이 많았던 라이트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커튼이라던가 카펫 따위의 실내 장식물을 모조리 없애는 대신 창문 장식에서 주력을 다한 것 같다. 그의 창문 디자인은 중세시대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디자인과 원색의 색감을 자랑한다.수평적으로 뻗은 건물은 로비 하우스의 독특한 점은 층간의 조명 설정을 다르게 했다는 것이다. 1층은 수평벽으로 둘러싸 어둡게, 2층은 빛이 들어와 밝도록 설계하였다.2-3. 낙수장(Falling Water)내가 생각하는 낙수장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 건물이 주택이라는 점이다. 낙수장은 Falling Water라는 이름에 걸맞게 계곡 위에 지어진 집이다. 자연적 재료ㅡ집터의 인근에서 채석하여 깎은 석판들이 주를 이룬다ㅡ들도 많이 사용하고 여러모로 그의 ‘유기적 건축’ 이념이 가장 잘 표현된 건축물이라고 본다. 조형적으로 길게 뻗은 캔틀레버가 구조적으로 파격을 주고 있다. 이 캔틀레버는 주거건축에는 이례적으로 사용된 콘크리트 캔틀레버이다. 집 주변의 바위라던지 흐르고 떨어지는 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점이 낙수장의 가장 아름다운 점이다. 낙수장 또한 수평적이다. 라이트는 초-중기의 건물은 수평적 요소가 지배하는 듯 보인다. 거대한 캔틀레버를 받치고 있는 수직의 벽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음으로 안정감 또한 준다.낙수장의 테라스이다. 유리로 벽을 조성하여 트이고, 연결된 느낌을 주고 중간에 중정을 형성하여 장녀친화적, 유기적 건축의 요소를 보이고 있다. 창틀의 색과, 암석의 느낌이 고스란다.
세 가지 관점에서의 는 초현실적인 영화로 비논리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일관성, 유사성, 반복의 논리를 가지고 전개되고 있다. 일관성은 공간의 일관성, 행위의 일관성으로 전개되고 유사성은 형태의 유사성이 중심이며 몇 가지 요소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영화는 크게 다섯 개의 시퀀스로 나뉘는데 면도칼이 나오는 시퀀스, 남자의 손에서 나오는 개미가 등장하는 시퀀스, 잘린 손으로 시작되는 세 번째 시퀀스, 낯선이가 여자의 아파트로 찾아오는 네 번째 시퀀스, 바닷가로 연결되는 마지막 시퀀스로 이루어진다.첫 번째로 일관성. 영화에는 ‘8년 후’. ‘새벽 3시’, 16년 전’, ‘봄에’ 등의 자막으로 시간을 제시한다. 시간은 뒤죽박죽이지만 중심적인 이야기는 시간을 배제하고 보면 공간의 일관성을 가진다. 처음, 마지막 시퀀스를 제외하고는 사건은 모두 여자의 아파트에서 일어난다. 마지막 시퀀스 또한 ‘봄에’로 연결되나 해변가라는 공간의 일치가 보인다. 또 시간을 배제한다면 행위 또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새벽 3시’와 ‘16년 전’으로 연결되는 쇼트들은 자막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행동이 자연스럽다. 같은 인물이 같은 자리에 위치한다. 동일한 인물들은 앞의 시퀀스에서의 맥락과 이어진다. 다그치는 남자는 계속해서 다그치고 벽에 서있던 남자는 계속해서 벽에 서있는다. 또한, 앞선 시퀀스가 아파트안에서 사건이 이루어졌고, 그 시퀀스에 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다음 시퀀스에서 여자가 등장할 때 문을 열고 들어와 등장하는 식이다.두 번째로 유사성이 가장 큰 요소이다. 자의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들의 병치들은 형태의 유사성이라는 논리로 존재한다. 첫 시퀀스에서 남자는 위쪽을 바라보고, 하늘에는 달이 떠있다. 여자의 상반신으로 장면이 전환되고 여자를 잡은 손은 그녀의 눈을 잡아늘려 면도칼을 든다. 하늘의 달을 구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러 지나간다. 면도칼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눈을 벤다. 달과 눈, 얇은 구름과 면도칼의 형태가 비슷하여 연속적으로 보여진다. 두 번째 시퀀스에서는 먼저 줄무늬 가방에서, 줄무늬 넥타이를 꺼내는 것으로 형태의 반복을 알린다. 중요한 유사성의 논리 씬은 남자의 손에 구멍이 있고 그 구멍에서 개미들이 나와 돌아다닌다. 개미들에 의해 까맣게 보이는 구멍 주위가 겨드랑이털의 거뭇거뭇한 부분으로 병치된다. 또 그 부분이 밤송이로 전환되는데 정확히 같은 부분에서 비슷한 검은 형태들을 중심으로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아주 유사한 형태들이 아주 유사한 위치에서 디졸브되며 형태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세 번째 시퀀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애무하는 장면에서 가슴과 엉덩이의 봉긋한 형태에 초점을 맞추어 연속적으로 디졸브된다. 네 번째 시퀀스에서는 남자가 손에 든 노트가 총으로 변하는데, 그림자를 보면 노트가 향해있는 방향이 앞쪽으로 길어, 총의 입구부분과 형태가 비슷한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마지막 시퀀스에서는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나방이 점차 클로즈업된다. 나방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방에는 얼굴모양같은 무늬가 있고 차례대로 여자의 얼굴, 나방의 얼굴무늬, 남자의 얼굴이 차례대로 전환된다. 역시 ‘얼굴’이라는 형태의 맥락이다.세 번째는 반복이다. 미장센 내부적으로는 방향성과 줄무늬 가방, 손의 형태, 하나의 형상이 반복되고 미장센 외부적으로는 카메라의 움직임의 반복이 있다. 방향성은 왼쪽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흐름이 왼쪽으로 향한다. 첫 시퀀스의 유명한 장면인 면도칼 씬은 구름이 지나가는 방향과, 면도칼이 긋고 지나가는 방향이 동일하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한다. 남자가 여자를 애무한 후 피아노, 두 명의 남자, 죽은 동물 등을 끌고갈 떄 또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끌고간다. 네번 째 시퀀스에서 총을 맞은 남자가 실려나가는 방향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다. 화면의 주체도 왼쪽에 치우쳐있는 경우가 많다. 첫 시퀀스의 달도, 세 번째 시퀀스의 문에 끼인 남자의 손도 왼쪽에 치우쳐있다. 네 번째 시퀀스에서 침상에 있던 남자와 낯선 남자가 마주해, 낯선남자가 물건들을 창밖으로 던지는 쇼트에서도 침상에의 남자는 왼쪽에 점점 치우쳐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마지막 시퀀스의 여자의 연인은 처음 등장할 때 왼쪽 화면 귀퉁이에 팔만 나온 채 화면이 나온다. 이처럼 화면에의 주체가 치우치거나 잘리는 것은 왼쪽뿐만이 아니라 하단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클로즈업되어 등장한 개미가 나오는 손도 밑부분이 많이 잘려 나오며, 세 번째 시퀀스에서 차에 치인 여자가 쓰러졌을 때도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여자의 시체는 하단에 반쯤 작게 잡힐 뿐이다. 이렇게 한쪽에 치우쳐 등장인물이나 오브젝트가 잘 보이지 않게하여 궁금함 또는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하고, 미장센의 특징을 잡아나간다. 소품중에서는 남자의 줄무늬 가방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처음 등장한 것은 자전거타고 등장한 수녀복을 입은 남자의 소지품으로써이다. 이 가방은 여자가 가지고 들어갔는지 여자의 아파트에서 그녀가 옷들을 정리할 때도 등장하고, 네 번째 시퀀스에서 침대에 누운 남자의 소지품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 가방은 반복적으로 등장함으로써 행위와 공간의 일관성에 일조한다. 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신체부위는 손이다. 손에서는 개미가 나오기도 하며, 잘린 채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자를 애무하는 도구로 강조되는 것도 손이다. 낯선 자의 등장을 알리는 종을 울리기 위해 구멍 안에서 손이 덩그라니 나와 종을 흔들고, 문에 끼어서 존재감을 더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미장센은 무리도 있다. 개미 떼들이 손바닥의 구멍에서 나와 어지러히 돌아다니는 형태는 후에 사람들의 형상으로 반복된다. 세 번째 시퀀스의 시작에서 잘린 손을 건드리는 여자 주위로 몰려는 사람들은 버드아이즈샷으로 촬영되어, 개미 떼들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동일 시퀀스에서 이들이 흩어지는 형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무리짓는 형상들은 네 번째 시퀀스에서 죽은 남자 주변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한번 더 되풀이된다.
회화적인 영화 을 보고 있자면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만큼이나 이 영화는 회화적이다. 여기서 ‘회화적’이라는 말은 정말로 ‘회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뜻이다. 에서는 두 화가를 찾을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와 르네 마그리트이다.무엇이 을 그토록 회화적으로 만들었는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회화적 이미지는 호퍼이다.일단 이 영화에서는 공간의 깊이감을 최소화하여 그림같은 미장센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두 번째 시퀀스인 미지의 사무실에서 그렇다. 방안에는 온갖 사물들이 채워져 있고 남녀가 좌우에 안정적인 구도로 앉아 등장한다. 그리고 그 뒤로 열려진 창문이 있는 데 인물들과 창문 너머의 도시 풍경들 간의 거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창문이 창문이 아니라 틀에 그림을 붙혀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다소 부자연스러운 매트효과를 내어 공간의 깊이감을 최소화했다. 또 세팅은 극히 사실적인데 조명이 강하게 비추어 인공적인 느낌을 주었고 이 또한 호퍼의 회화적 특징과 일맥상통한다. 남서쪽에서 주조명을 강하게 쏘아 그림자가 약간 길고 진하게 진다. 이는 그림자의 크기가 커져 화면 안의 공간을 더욱 협소해보이게, 깊이감을 줄인다. 호퍼의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인공적인 빛을 이용하여 강력한 그림자 또는 그늘을 형성해 자신만의 공간연출을 해냈다는 것인데 이러한 점도 영향을 주었다. 화면을 지배하는 색감은 따뜻하다. 따뜻함이 감도는 상아색, 갈색톤이 주요한 색이다. 호퍼는 고독한 이미지를 연출했지만 색감은 따뜻한 중성색을 많이 썼다.영화 전체적 이미지가 호퍼와 같다면 몇 가지 요소들은 마그리트의 그림이 연상된다. 처음으로 오프닝 시퀀스부터 그러하다. 의 오프닝 시퀀스는 여자의 눈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이 된 채 흘러간다. 여자의 눈에서는 소용돌이 모양이 나온다. 이는 캔버스에 크게 그려진 눈, 홍채 안에 하늘이 보이는 마그리트의 을 연상케한다. 모두 화면 크게 사람의 눈만이 잡히고 홍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두 번째로 존의 악몽에서 꽃다발이다. 그 쇼트에서 꽃다발은 위에서 찍은 것같이 정면상으로. 그림의 형태로 등장한다. 그리고 윤곽선과 면을 강조하는 형태로 바뀌더니 꽃들이 마구 피어나며 흩어진다. 그 꽃의 형태는 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존과 매들린의 키스신은 언제나 비슷한 구도로 연출되는데 마그리트의 과 꼭 닮은 구도이다. 게다가 마그리트의 그림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남자의 외형(중절모에 수트)은 존의 외형과 동일하다. 매들린의 죽음이 일어난 교회 종탑의 색감이나 외형도 마그리트의 회화적 느낌을 가지고 있다. 묵직하고 동화적이다.회화적이면서 재미있는 이미지의 흐름을 보여주는 시퀀스가 있다. 매들린이 샌프란시스코만에 빠져 존이 구해주는 시퀀스이다. 이 때 보여지는 장면은 분명히 호퍼의 가 떠오른다. 처음 다리가 등장하는 화면은 매들린이 서있는 돌바닥이 전경, 다리와 강물이 중경 너머의 산이 후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면의 왼쪽 중앙에서 뻗어나오는 구도와, 다리의 구조, 색감까지 비슷하다. 하늘은 너무나 정적이고, 다리의 색감은 매우 균질해 농도와 선명도 간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 따라서 광택이나 원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매들린은 저멀리 돌바닥에서 서성인다. 존이 서있는 곳에서 매들린이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그가 매들린을 숨어서 지켜볼 수 있을 만큼. 그래서 매들린은 화면에서 아주 작은 크기로 등장한다. 매들린은 서성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존의 얼굴이 번갈아 편집된다. 존의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존은 얼굴표정이 보이게 상반신으로 찍었고, 매들린의 실체를 감추기 위해 물에 빠지기 전까지 매들린의 얼굴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매들린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실 이 시퀀스에서 연기를 하는 중이고, 그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 ‘서프라이즈’를 유발한다. 그 때문에 매들린은 아주 멀리서 존의 시선으로, 실루엣과 뒷모습만이 보여진다. 존이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듯 움직인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존은 걸어가기에 화면에서 오른편으로 사라지며 오버랩으로 전환된다. 돌기둥 뒤에서 걸어오는 존, 뒤로는 바다가 보인다. 전 쇼트보다 가까이 왔다는 증거로 다음 쇼트에서의 매들린은 전보다 세네배 크게 등장한다. 그녀의 측면을 바라보며 서있으며 손에 든 꽃다발을 해체한다. 해체하는 손을 크게 잡아 화면 중앙에는 꽃다발이 크게 등장한다. 이 꽃다발은 에 있는,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그 요소는 칼로타의 머리스타일, 목걸이, 꽃다발인데 이 세 가지 모두 등장할 때 강조하기 위해 대개 클로즈업이 된다. 그녀의 손이 꽃잎 몇 개를 던지고, 다음 쇼트는 카메라를 위에서 잡았다. 수직으로 잡아 물 위에 떠가는 꽃잎을 보여주었다. 매들린의 시선에서 본 앵글이다. 다시 그녀를 지켜보는 존, 이제 매들린이 물 속으로 뛰어든다. 존은 깜짝 놀라 뛰어나가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는 고정, 존만 뛰어나간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뛰어나가 화면에서 사라진다. 꽃잎을 뜯는 매들린이 연출되었던 구도 그대로 존의 뛰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계단으로 내려간다. 바로 그 다음 쇼트에서 공간이 확대되어 바뀌는데 물로 내려갈 수 있는 돌계단이 등장한다. 처음 다리가 등장했던 쇼트에서 매들린이 서성거리던 돌바닥과 연결되는 계단이다. 이 쇼트에서 전경은 존과 돌계단이고 중경이 벽돌로 된 건물, 후경이 저 너머의 산과 하늘의 풍경이다. 이 쇼트는 아주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화면이 낯설기 때문이다. 전경인 돌계단은 번들거리는 광택이 있고 질감도 실제같이 보인다. 그러나 중경은 선명도가 떨어지지만 거리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후경인 풍경은 더욱 황당하다. 붓칠을 한 듯한 표면이 그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선명도 현저히 떨어지고 명암처리도 회화의 방식이다. 거의 삽화와 같다. 또 조명의 영향도 전혀 받지 않아 중경과 전경과 일직선 상에 놓여있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전경 중경 후경이 다 따로따로 합성한 것만 같은 독특한 미장센이 형성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시퀀스의 흐름이다. 이 쇼트 앞에서는 색채와 구도로 인한 회화적 장면을 연출해냈는데 또 이 쇼트 뒤에는 존이 매들린을 구하며 물이 첨벙이는 아주 사실적인 미장센이 등장한다.
나약함, 그대 이름은 햄릿?인간의 모습을 담은 주인공"나약함, 그대 이름은 여자" (Frailty, thy name is woman)는 다시 쓰여질 필요가 있다. 에서 가장 나약한 자는 햄릿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과 그 뒤에 숨겨진 사실들에 고통받고 죽음을 선택할 수 없음에 괴로워한다. 정신적으로 가장 나약한 인물이다. 햄릿은 결코 의로운 인물이 아니며 공경받을만한 인물도 아니다. 무고한 폴로니우스를 죽인 장본인이며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레어티즈에게 폭언을 퍼부은 인물이다. 사실 햄릿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이다. 그 점이 햄릿을 으로 만든다. 햄릿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답해보려한다.오필리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다른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정의된다. 오필리어와의 관계에서 햄릿은 남성이다. 햄릿은 여성과 남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이 보이는 흔한 행동패턴을 잘 보여주었다. 사실만 두고 보자면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사랑한다는 의미없는 말들만 나열했을 뿐,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남자가, 또 인간이 보여주는 패턴은 사랑을 고백하며 어떠한 행동도 그 말을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상황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햄릿은 폴로니우스를 죽였고, 폴로니우스의 죽음은 오필리어를 미치게 했다. 오필리어는 견딜 수 없는 현실에 죽음을 선택했다. 정신이 나갔어도 인간의 살고자하는 본능은 남아있기 때문에, 오필리어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폴로니우스의 죽음 이후에 햄릿이 자신이 주장한 '오빠들의 사랑을 모두 합친다 해도 나의 총량에 미치지 못하는' 그 대단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오필리어를 정서적으로 감싸줄 수도 있었다?과연 오필리어가 자살했을까.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결국 그도 사랑을 말로만 속삭인 남자에 불과했다. 이는 햄릿이 지극히 전형적인 남성의 패턴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지만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는 선왕의 죽음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의 형제와 결혼했다. 그 점을 본 햄릿이 내뱉은 대사가 "나약함, 그대 이름은 여자"이다. 이를 계기로 햄릿은 사랑을 믿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떠한 점이든, 햄릿의 행동은 어떤 남자라도 충분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오필리어와 이성관계 속 '남성'을 보여주었다면, 동성관계에서 햄릿을 보여주는 역할은 레어티즈이다. 키워드는 자존심이다. 이 작품에서 햄릿이 가장 비겁하고 몹쓸 인간으로 느껴지는(햄릿에 공감하고 이입하던 사람들이라면 이해가지 않을) 부분은 레어티즈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첫 번째는 5막 1장의 오필리어 장례식이다. "기도가 엉망이군"(Thou pray'st not well)이라든가 "자네는 여기로 와서 처량히 울고 그녀 무덤속에 뛰어드는 것으로 내 낯을 붉히려드는가?" (Dost thou come here to whine, To outface me with leaping in her grave?)란 대사는 너무나 무례하고 하지말아야할 말들이다. 제 잘못이 포함된 일에 사과는 커녕, 자기가 제일 사랑했다며 레어티즈의 애도를 깎아내린다. 저보다 지위가 낮은 레어티즈에게 절대 굽히지 않는다.두 번째는 바로 그 일들에 대한 사과를 진심으로 하지 않는 5막 2장이다. 결투를 앞두고 "그건 햄릿이 한 게 아냐, 햄릿이 그걸 부인하네. 그럼 누가 그랬지? 그의 광기야. 그렇다면, 햄릿은 나쁜 짓을 당한 쪽에 속하지. 그의 광기는 불쌍한 햄릿의 적일세."(Then Hamlet does it not. hamlet denies it. Who does it, then? His madness. If't be so, Hamlet is of the faction that is wronged. his madness is poor Hamlets enemy.)라는 대사를 한다. 명백하게 책임회피이며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다. 그는 레어티즈가 죽으며 용서를 교환하자고 말하고 나서야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는 왕자라는 지위에 얶매인 햄릿의 자존심으로 보인다. 인간은 종종 자존심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하는데, 특히 저보다 낮은 계급(그것이 실제 계급이든, 심리적 자의적으로 분류한 계급이든) 앞에서 약한 소리를 못하는 경우로 나타난다. 현재에도 저보다 어린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방어기재때문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햄릿은 아주 전형적으로 자존심의 폐해를 보여주고 있다.
무지한 여성들에 대한 비판, 제인 오스틴은 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음이 틀림없다. 그토록 완벽한 남편감을 그려놓았으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이 작품을 통해 평소에 그녀의 지론을 설교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은 안목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하는가, 어떤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인가에 대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리지)를 통해 그려낸다. 남녀를 불문하고 강조하는 가치는 안목과 성품, 특히 교양이다. 여기서 교양은 상류층의 규범같은 의미가 아닌, 분별력과 합리적 사유를 말한다. 무지 단순한 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교양의 부재라는 맥락이다.엘리자베스에 대해 말하자면, 똑똑한 여성이다. 합리적인 베넷 씨가 가장 편애하는 딸이다. 베넷 부인에 따르면 “미모는 제인의 절반도 안 되고, 성격은 리디아의 절반도 안되는데’, 머리가 좋기 때문에 베넷 씨는 리지를 편애한다고 밝힌다. 그 뿐이 아니라 다른 딸을은 무식하다며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실제로 리지의 동생들은 속물적이고 무식한 면모를 많이 보여준다. 그 예로 리디아는 위컴과 도망치며 보낸 편지에 “제가 없어진 것을 알고 놀라실 것을 생각하니 저도 웃음이 나서 못 참겠어요”라고 보낼 정도이다. 깊이 생각하고 훌륭한 책들을 많이 읽는 아가씨이며, 난생 처음 본 남자(다아시)가 저를 그럭저럭 괜찮지만 내 마음에 찰만큼 예쁘지 않다고 평하는 데에 쾌활하게 넘겨버리는 명랑한 아가씨이다. 캐서린 여사의 무례에 농으로 대응할 만큼 당당하며 그녀 “자기 주장이 아주 확실하구먼”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할 정도이다. 리지는 물론 안목도 있다. 초반에는 그녀의 편견과 오해 때문에 다아시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침내는 다른사람보다 먼저 그의 진면모를 알아채고 사랑에 빠진다. 결혼을 사회적 위신 때문에 결정하고 아내를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는 형편없는 콜린스를 형편없다고 판단하는 안목도 있다. 그런 아가씨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가장 훌륭하게 그려지는 다아시의 사랑을 받게 되고, 결혼하게 된다.인물들의 결혼에서 이 작품의 운명관과 작가의 지론이 드러난다. 제인 오스틴은 명백하게 운명이 우연보다는 필연의 지배이며, 성격이 운명을 형성한다는 암시를 한다. 또 교양있는 여자가 좋은 결말을 맞이한다는 메세지를 내비친다. 그 증거로 리지가 최고의 남편을 얻고, 나무랄 데 없는 언행에 누구를 나쁘게 평가하지 못하는 심성의 제인은 빙리와 결혼한다. 빙리가는 연간 5천 파운드의 소득을 벌어들이며, 재산만 거의 10만 파운드에 다다르는 부유한 집안이다. 빙리 또한 우유부단한 면이 있지만 활기차고 솔직하며 준수한 외모를 갖춘 남자이므로 괜찮은 결혼을 한 것이다. 반면 무식하고 속물적인 동생 리디아는 위컴과 결혼한다. 그것도 매년 100파운드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위컴이 겉만 번지르르하지 수중에 한푼도 없는 노름꾼이기 때문이다. 리디아에 어울리는 남자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바라는 것은 안락한 가정을 꾸리는 것뿐인 샬럿이 콜린스와 결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교양 없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은 인물들의 행로에서도 드러나지만 직접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특히나 이상적 인물로 그려진 다아시의 비판으로 그 효과가 강해진다.“당신 어머니 쪽 집안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 어머니의 경우 없는 처신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 어머니는 종종, 아니 항상 그렇게 처신하시는데, 그것은 당신의 세 동생분도 마찬가지이고 당신 아버지도 아따금 한몫하시지요.” (2권 1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