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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한국 불교 교단의 문제와 변화 방향
    한국 불교 교단의 문제와 변화 방향
    한국 불교 교단의 문제와 변화 방향학번 학과 이름불교는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전래된 이후 오랜 기간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된 종교이자 사상으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오랜 기간 한국인의 정신과 삶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것은 비단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일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교라는 종교를 지탱하고 있는 불교 교단 역시 한국 사회에서의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 교단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간단히 고찰하고자 한다.한국 불교 교단과 관련해서 제기된 여러 문제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안은 아마도 ‘종단의 난립’ 문제일 것이다. 이 종단의 난립은 문제는 대략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종단의 개수와 그에 따른 교단의 혼란이라는 문제를 낳았는데 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현재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사실 새로운 종단이 생기는 것 자체는 동아시아불교 교단의 역사에서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신생종단의 과도한 난립은 동아시아불교 교단의 역사 속에서의 그것과는 목적과 양상 자체가 다르기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종단의 난립이 야기하는 대표적인 문제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일반적으로 동아시아불교의 역사에서 신생종단이 설립될 때에는 새로운 구원론 내지는 사상 혹은 특정한 목표를 두고 설립되어왔다. 하지만 현재 필자가 지적하고 있는 현대 한국에서의 종단 난립은 뚜렷한 이유, 목적, 특별한 구원론이나 사상 없이 창단되고 있다라는 점이다. 이렇게 목적 없이 종단이 난립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첫 번째 문제는 ‘교단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불교는 특히 재가자 중심의 종교로 신도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문제는 이렇게 종단이 무분별하게 난립할 경우, 불교 신도의 입장에서 종단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유사 종단명을 사용해 기존의 교단과 혼란을 초래한 사례가 2000년대 초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2012년 불교신문에서는 이렇게 난립한 종단 가운데 정식 종단이 아닌 유사 종단이 이를테면 정치적 행보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라도 했을 경우(율장에 의하면 승려의 정치 활동은 금지된다.)를 예시로 들면서 이러한 종단 난립이 불교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은 불교 신도 혹은 미래에 신도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불교계 전체에 대한 신뢰성을 잃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고 필자는 생각한다.난립하는 신생종단의 두 번째 문제는 이러한 종단들이 대체로 ‘무속(巫俗)의 색채’를 많이 띄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종교가 원래의 발상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현지화, 토착화의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불교 역시 한반도에서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토속 무속신앙의 색채가 어느 정도 가미되었던 것은 아마 불가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근래에 들어서는 그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깨달음을 얻어 궁극적으로 붓다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불교의 기본 사상에 강한 무속적 색채가 침범하여 그 본질을 흐리고 종국에는 오직 기복신앙만이 지배하는 종파로 변질된 그러한 종파가 난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불교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되는 종교인 불교에 무속신앙의 기복적 성격이 지나치게 가미되는 것은 불교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사안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불교 교단에서 매우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난립하는 신생종단의 세 번째 문제는 교단의 분열로 인한 ‘세속적인 파벌 간의 심각한 갈등’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대 한국 사회의 불교계에서는 교리의 해석상의 견해 차이 혹은 수행 방법의 차이와 같은 일반적인 분파 생성의 이유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세속적인 이해관계에 근거해서 분열되는 경우가 잦았고 이러한 분열이 결국에는 종단의 난립 문제를 낳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전혀 불교적이지 않은 이유에 근거한 종단의 분열은 세속사회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한 갈등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동안 불교 교단의 역사 속에서의 분열은 수많은 선사들의 끊임없는 사상적 논쟁이나 혹은 수행 방법에서의 견해 차이에 의해 점점 더 풍성해진 부분이 상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적 접근과 관계없는 그야말로 세속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고 이것을 두고 갈등하고 대립하는 이러한 양상은 그동안의 역사 속에서 불교 교단의 분열이 형성해온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듯 의미 없고 심지어 유해하기까지 한 파벌 간의 갈등과 대립은 점점 고착화되고 고질적인 문제로 번져 현재는 도무지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려울 상황에 봉착한 것으로 파악된다. 세속의 사회를 깨끗이 만들고 앞장서야 할 교단이 오히려 이러한 세속적 가치에 따라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은 세속사회를 도리어 오염시키기만 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이상으로 필자는 한국 불교 교단의 문제로 ‘종단의 난립’ 문제를 중점으로 이것이 낳을 수 있는 문제점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그것들을 정리하면 ‘교단의 정체성 혼란’, ‘과도한 무속(巫俗)의 색채’ 그리고 ‘파벌 간의 심각한 갈등’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고 심각한 사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종단의 난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한국 불교 교단의 중대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다음으로 그에 대한 해결방안 혹은 앞으로 불교 교단이 나아가야 할 옳은 방향에 대해서 간단히 고찰해보고자 한다.사실 이 문제에 대한 많은 비판은 90년대부터 있었지만 2020년대인 현대에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차츰 시작된 한국 종단 난립의 역사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것만 생각해도 얼마나 이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지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간 제기되어왔던 문제들, 그리고 단순한 제시에 그쳤던 해결책들이 2020년대라는 시대의 특성을 이용하면 오히려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이 문제가 논의되었던 90년대와 2000년대 당시의 사회는 인터넷이 지금만큼 크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고 스마트폰을 통한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도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시대인 만큼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대중화되어 있기에 불교 교단도 그 어느 때보다 속세와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종단의 난립이 야기한 여러 문제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필자는 보기에 문제의 해결 또한 소통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종단의 화합이라던가 유사 종단에 의한 신도들의 혼란과 같은 문제들도 기본적으로 타 종단 혹은 신도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의 창구가 바로 이런 기술의 발전에서 기인한 스마트해진 소셜미디어와 같은 소통의 환경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교단도 스마트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단에서도 소셜미디어나 여러 영상매체 등 한국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스마트한 환경을 통해 소통의 창구를 여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정통 교단과 유사 교단을 확실히 구분 짓고, 무속의 가치를 걷어낸 불교 본연의 가치도 전달하며, 나아가 타 종단과의 갈등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하루빨리 종단의 난립으로 인한 여러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인문/어학| 2023.11.18| 3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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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티벳불교의 역사
    티벳불교의 역사
    티벳불교의 역사학번 이름7세기에서 12세기 사이의 티벳불교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7세기 초부터 9세 중반까지로 티벳불교의 1차 전성기(snag dar)이고 두 번째는 9세기 중반부터 약 100여 년간으로 ‘분열의 시대’ 혹은 ‘파편의 시대’로 불리는 티벳불교의 암흑기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10세기 중반부터 12세기까지로 티벳불교의 2차 전성기(phyi dar)이다.우선 1차 전성기(snag dar)는 토번제국 시대로 티벳의 3대 법왕이라 불리는 송첸깜포, 티쏭데첸, 티쭉데첸 왕이 다스리던 시기이다. 첫 번째로 송첸깜포 왕은 분열된 토번을 통일한 토번제국의 건국 군주로 인도에 퇸미 삼보타를 유학 보내어 티벳문자를 창제했으며 중국과 네팔의 공주와 결혼해 수도 라싸에 사원들을 건립했다. 이는 티벳이 초기에는 중국 불교와 인도 불교를 모두 수용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 두 번째로 티쏭데첸 왕은 791년 불교를 국교화하여 불교가 티벳 역사의 무대에 전면적으로 드러냈으며 산타락시타와 파드마삼바바를 초청해 삼예사를 설립했다. 티쏭데첸 왕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삼예사 논쟁으로 이는 인도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까말라실라와 중국 선불교를 대표하는 마하연 간의 792년에서 794년 사이에 3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도불교와 중국 불교 간의 대결이었다. 인도 불교 측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수행이 필요하다는 점수를 강조했고 중국 선불교 측은 이미 불성을 갖추고 있기에 단박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돈오를 강조했다. 이 논쟁에서 인도 대승불교가 승리하고 중국 선불교는 패배해 추방되어 티벳불교는 이후 인도 대승불교의 흐름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티쭉데짼 왕은 국가적 역경 사업을 통해 많은 불전을 티벳어로 번역했고 산스크리트어를 공식 불교 언어로 채택했다. 이후 랑다르마 왕 시기 대대적인 불교 탄압이 이루어졌고 랑다르마가 암살당한 후 토번제국이 붕괴되면서 티벳은 암흑기인 ‘파편의 시대’에 접어든다. 이 시기에는 재가불자들 사이에서 밀교가 성행하고 티벳의 민속신앙인 뵌교가 성행했으며 토번제국 멸망 이후 번역된 밀교 텍스트에 기반해 티벳불교의 4개 학파 중 가장 오래된 학파이자 파드마삼바바를 시조로 하는 닝마파가 형성되었다.정리하면 1차 전성기의 가장 핵심 된 이슈는 티벳 불교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에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를 모두 수용한 티벳불교는 삼예사의 논쟁에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결국 인도불교를 선택함으로써 그 방향성을 잡았기 때문이다.‘파편의 시대’를 거치며 분열되어 있던 티벳은 서쪽의 구게 지역의 왕 예셰 외가 역경승 린첸 샹포와 함께 그동안 티벳에 만연해 있던 밀교 전통을 정화하고 합리적인 형태의 티벳 불교를 부흥시켜 불교의 2차 전성기를 열게 된다. 이후 티벳불교는 1042년 예셰 외 왕의 조카인 장춥 외 왕의 초청으로 동인도에서 아티샤 스님이 오면서 계율과 수행 전통이 복귀된 새로운 티벳불교의 르네상스를 꽃피운다. 아티샤 스님은 보리도등론을 제작해 티벳에 설파하는데 보리도등론은 번뇌가 단계적인 수행을 통해 제거된다는 앞서 삼예사 논쟁에서도 보았던 인도 불교와도 이어지는 점오의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으며, 현교를 바탕으로 하되 밀교를 병행하는 가르침이 조화되어 있다. 이러한 아티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돔뙨은 까담파를 형성한다. 까담파는 이후 싸르마파(신파)로 불리는 사꺄파, 까규파, 겔룩파 등과 같은 새로운 학파들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사꺄파는 독미를 시조로 하는 학파로 원래는 밀교 중심이었으나 후에 현교와 밀교를 겸수하는 학파로 몽골의 불교 전통을 세우는 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사꺄파의 지도자였던 사꺄빤디따는 티베트를 침공한 몽골의 고댄 칸과의 교섭을 통해 평화적으로 티벳의 자치를 보장받게 만들고 티벳불교가 몽골의 비호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다음으로 까규파는 마르빠를 시조로 밀라레빠, 감뽀빠로 그 계보를 이어간 학파로 시조인 마르빠는 인도에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기존의 인도불교와는 다른 티벳 불교만의 색채를 형성했다. 또한 마르빠는 밀교 전통을 바탕으로 마하무드라 관상법을 강조했다. 마르빠의 제자 밀라레빠는 위대한 밀교 수행자이자 시인이었으며 밀라레빠의 제자인 감뽀빠는 밀교와 현교를 겸수하는 까규파의 학풍을 세운다. 이와 더불어 까규파 내의 까르마파는 환생불 제도를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겔룩파는 아티샤의 까담파를 이은 학파로 총카파를 시조로 하며 역시 밀교와 현교의 겸수하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다. 겔룩파는 모든 종파를 초월한 교학 체계를 가진 종파로 이후에 사꺄파보다 우세한 종파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겔룩파는 16세기에 몽골의 왕실의 지원과 비호를 받으며 티벳에서 가장 유력한 학파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앞서 언급한 환생불 제도의 정착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겔룩파는 몬람이라는 종교 축제를 만들었는데 이는 티벳에서 매우 중요한 축제로 다른 학파도 참여하는 축제이다.2차 전성기의 가장 핵심 된 이슈는 티벳불교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암흑기 동안 밀교가 만연했던 티벳불교는 인도 승려 아티샤에 의해 현교가 도입되어 밀교와 조화를 이루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학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티벳 승려들의 노력으로 티벳불교만의 정체성을 형성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를 모두 종합하면 티벳불교의 1차 전성기는 인도 불교 대 중국 불교의 구도에서 인도불교의 수용으로 요약할 수 있고, 2차 전성기는 밀교 대 현교의 구도에서 밀교와 현교의 통합, 그리고 인도 스승 대 티벳 승려의 구도에서 인도 스승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티벳 승려의들의 학파 형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시대에 걸친 과정을 통해 티벳불교는 그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23.08.05| 2페이지| 1,000원| 조회(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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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다이지 기행 보고서
    과목명보고서도다이지(東大寺)기행 보고서과목명교수명0000년0월학과 학번이름Ⅰ. 서론도다이지는 일본 화엄종의 대본산 사찰로 일본의 대표적 고도인 나라 시의 문화재로 나라 시의 사찰과 신사를 포함한 ‘고대 나라의 역사 기념물(古都奈良の文化財)’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이다. 특히 도다이지의 대불전(大佛殿)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며 내부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 대불로 그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사찰의 뒤편에 있는 쇼소인이라는 일본 왕실의 유물 창고는 소장하고 있는 유물의 높은 보존 상태와 다양성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외에도 도다이지는 슈니에(修二會)를 비롯하여 전통적인 불교 의례가 행해지고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필자는 일본 여행을 세 번 정도 다녀왔는데 정작 가장 일본적인 색채가 강한 지역인 간사이 지역은 아직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이번 가상 일본사찰 기행에서 사찰을 선정할 때 우선 간사이로 지역을 좁혀 알아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헤이안 시대보다 더 이전 시대인 나라시대의 대표 사찰인 도다이지가 좀 더 일본 불교문화를 이해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해 해당 사찰을 선정하게 되었다. 본 보고서에서는 도다이지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고 다음으로 도다이지의 주요 건물과 그곳에 소장된 주요 유물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도다이지의 역사도다이지(東大寺)는 쇼무천황(聖武天皇)의 황태자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하여 728년에 세워진 긴쇼산지(金鐘山寺)가 그 시초이다. 741년 고쿠분지(國分寺 옛 일본의 쿠니를 대표하는 사찰) 건립 발표 이후 야마토국(大和國) 긴코묘지(金光明寺)로 승격되었고, 이후 도다이지(東大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인 다이부츠덴(大佛殿:금 주축이 된 여러 주요 인물들은 모두 백제계 도래인이거나 도래인의 후손이었다는 점이다. 대불 조립에 직접 관여한 승정 로벤은 백제계 도래인 자손이며 그의 스승인 의연도 백제계 도래인이었다. 또한 권진승을 맡은 쿄기(行基)스님 역시 백제계 도래인으로 왕인의 후손 사문씨의 지족(支族)이었다.서영애(2003), 84.도다이지는 불교 연구와 학승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고쿠분지로 건설되어 남도(南都 : 奈良나라) 육종(六宗), 헤이안(平安)시대의 천태종, 진언종 등의 다양한 종파를 연구하는 학문 사찰이 되었다. 하지만 도다이지는 건립 이후 여러 차례 전소와 재건이 반복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헤이안시대에 855년 지진으로 대불의 머리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가고 화재로 강당과 삼면 서탑, 승방, 종각, 남대문이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고 1180년에 다이라노 시게히라(平重衡)의 군에 의해 대불전을 포함한 사찰 대부분이 전소되었다. 이후 슌조보 조겐(俊乘房重源)이란 스님에 의해 사원의 부흥이 시작되어 1186년 대불이 복원되고 1195년 재건이 끝나 이를 기념하는 법회가 열렸다. 재건 이후에 가마쿠라(鎌倉)시대에는 재개된 교학 활동으로 많은 학승이 배출되었다. 그러다가 전국시대인 1567년 미요시마츠나가(三好松永)의 난 도중에 니가츠도(二月堂 이월당)와 호케도(法華堂 법화당), 난다이몬(南大門 남대문)과 데가이몬(轉害門 전헌문), 쇼소인(正倉院 정창원)과 종각 등 약간의 건물만 남기고 전소되었다. 하지만 전국시대의 혼란으로 인해 훼손된 사찰에 대한 재건이 어려웠다. 제대로 된 재건은 에도(江戶)시대에 와서 시작되었는데 고케이쇼닌(公慶上人) 스님의 노력으로 1692년 대불이 복원되고 1709년 재건이 끝났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의 건물은 이때 재건된 모습이다. 이후 메이지(明治)시대의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과 사원 소유의 토지에 대한 몰수가 이루어지고 화엄종(華嚴宗) 사찰로 분류되는 등 사원 개혁이 강요되었지만 메이지, 쇼와시대를 거치면서 대불전의 대대적인 수리를 것이다. 1199에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렸으며 1203년에 문 양쪽의 인왕상을 배치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지붕의 양식은 팔작지붕이며, 정면이 다섯 칸 문이 세 개인 이중문으로 천정이 없이 위가 뚫려 있는 소위 지붕 구조이다. 문의 높이는 기단 위부터 25.46m이고, 바닥에서 지붕 안쪽까지의 기둥은 18개로 21m에 달해 일본 최대의 산문으로 자리매김한다.문 내부의 인왕상 혹은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으로 불리는 불상은 1203에 운케이(運慶)와 가이케이(快慶)라는 불상 제작자가 69일 만에 만든 목조상으로, 상의 높이는 양쪽 모두 약 8.4m이다. 금강역사상 두 구의 몸 안에서는 『보협인다라니경(寶印陀羅尼經)』을 비롯한 다량의 경전과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제작의 시작과 완료일 등을 알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조각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 불교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https://www.todaiji.or.jp/ko/information/nandaimon/(2022.05.13.검색)2. 다이부츠덴(大佛殿 대불전)다이부츠덴은 도다이지의 금당(대웅전)으로 나라시대에 처음 세워진 이후 1180년, 1567년 두 번 소실되었다가 재건된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에도시대에 고케이쇼닌(公慶上人) 스님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원래는 정면이 11칸이었지만, 에도시대 재건 당시는 재정 사정으로 인해 7칸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하지만 동서 57.012m, 남북 50.480m, 높이 48.742m 규모로 여전히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https://www.todaiji.or.jp/ko/information/daibutsuden/(2022.05.13.검색)다이부츠덴의 금동으로 제작된 대불은 높이 16m로 제작에 동원된 인원만 200만 명 정도이며 불상 전체에 금박을 입혔다.서영애(2003), 81.대불상의 정식 명칭은 비로자나(바이로차나)불로,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널리 비추. 대불철조의 책임을 맡은 쿠니나카노 키미마로(國中公麻呂)는 조부가 백제 관인 국골부(國骨富)였으며 대불전의 건축 책임자였던 이나베노모모요(猪名部百世), 대불의 색을 입히기 위해 황금을 모은 백제 왕족 경복(敬福)도 모두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이었다.서영애(2003), 85-86.도다이지에서 권고하는 다이부츠덴 주의사항으로는 단체 사진과 관련된 주의사항이 있다. 기념촬영 범위에서는 대불전 참배 경로에서의 촬영은 자유로우나, 단체 혹은 그룹의 집합사진 촬영 및 삼각대 사용에 대해서는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https://www.todaiji.or.jp/ko/information/daibutsuden/(2022.05.13.검색)3. 호케도(法華堂 법화당)호케도는748년에 세워진 건물로 본존인 불공견색관음(不空絹索觀音)의 건칠상(乾漆像)이란 작품이 눈여겨 볼만하다. 이 작품은 텐표시대(쇼무천황의 연호, 8세기) 불상의 정수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걸작으로 높이는 3.14미터, 볼과 눈썹 및 눈 모양이 날카롭고 입을 다물고 있는 선 등은 입체감을 풍긴다. 보관(寶冠)에는 은으로 된 화불(化佛)을 얹고 약 2만 개의 구슬이 온 등에 박혀 있다. 이 같은 장식은 하쿠호오(白鳳)시대(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반)부터 텐표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두드러진 하나의 경향이다.서영애(2003), 87.호케도에는 본존인 불공견색관음상 외에도 이를 중심으로 총 16구의 불상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중에 12구가 국보이고 4구가 중요문화재이다. 이 가운데 14구는 텐표시대에 제작된 것이다.https://www.todaiji.or.jp/ko/information/hokkedo/(2022.05.14.검색)대표적으로 일광, 월광이라고 하는 합장한 소상(塑像 : 찰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된 보살 입상이 있다. 표면에 채색한 모양만 남아 있지만 보기에도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몸매가 풍만하며 표정이 비장하다. 그 외에도 집금강신상(執金剛神像)이라는 소상도 있는데 이 작품은 텐표 초기의 작 불교용품을 수납하는 남창(南倉)으로 나누어져 있어 이를 三倉(삼창)이라고도 부른다. 현재는 도다이지가 아닌 궁내청(宮內廳) 관할이다.https://www.todaiji.or.jp/ko/information/shosoin/(2022.05.14.검색)쇼소인은 현재 일본 고대의 보고로 일컬어지는데 현재까지도 손상 없이 보존되는 수많은 유물들 때문이다. 이곳에는 총 9000여 점에 이르는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불교 관련 유물뿐만 아니라 악기, 도검, 병풍, 옷감, 양탄자, 마구, 서적, 문서, 무기 등 다양한 보물들이 있다. 특히 8세기 당나라와 한반도에서 건너간 물건들이 많으며 심지어 이 중에는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로마로부터 수입된 것들도 존재한다.서영애(2003), 89.쇼소인의 유물들은 1년에 한 차례 60여 점만 나라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공개된다고 한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2854415?sid=103(2022.05.15.검색)무엇보다도 이곳의 유물 중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삼국시대의 한반도에서 넘어간 유물들 다수가 발견되어 역사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유물로는 백제 의자왕이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적칠문관목주자(아름다운 나뭇결의 느티나무로 만든 붉은 옻칠 가구), 백제의 의자왕이 일본에 선물한 바둑판과 바둑알,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제작되어 백제에서 은으로 다리를 만들어 접합시킨 유리잔, 가야금의 일종으로 보이는 신라 악기 신라금, 신라의 유기그릇, 신라의 포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놋쇠 수저, 신라 먹, 752년 일본을 방문한 신라 출신 김태렴 일행에게 일본 관료들이 매입을 원하는 물건과 그 가격 등을 기록한 문서 ‘매신라물해’ 그리고 신라의 민정문서 등이 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2854415?sid=103(2022.05.15.검색)특히 이 가운데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
    인문/어학| 2023.08.05| 6페이지| 1,500원| 조회(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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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육조단경 감상문
    육조단경 감상문
    『육조단경』 감상문학번 이름우선 필자는 3학년 2학기에 ‘중국선사상’ 강의를 수강하면서 육조 혜능을 비롯한 여러 중국의 선사들과 저서, 그리고 그들의 기본적인 사상에 대해 간략하게 학습한 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요약된 내용을 피상적으로만 훑고 넘어갔고 실제로 그들의 사상이 집약된 저서들을 직접 읽어 보지는 못했다. 사실 중국선에 대해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직접 선사들의 저서를 읽어 보는 것도 중요한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읽어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학기 수강하게 된 ‘선의 이해’과목을 통해 실제 선사의 저서를 읽어 보게 된 것은 필자로서는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중국선사상을 담은 많은 선사들의 저서가 있었지만, 중국의 선사상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핵심 인물은 육조 혜능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필자는 육조단경을 택했다. 본 소감문에서는 저서에 담긴 육조단경의 내용 중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몇 가지와 그에 대한 소감을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필자가 육조단경을 읽으면서 사전에 배운 혜능의 사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 중 첫 번째는 우선 ‘돈오견성(頓悟見性)’이다. 육조단경은 중국 남종선의 시조인 육조 혜능의 자전적 일대기로 기본적으로 점수의 관점인 북종선과 대비되는 돈오의 관점에서 깨달음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은풍번문답(風幡問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움직이는지 깃발이 움직이는지 시비를 가리는 이들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 말하는 혜능의 발언에서 ‘바람의 움직임’이니 ‘깃발의 움직임’이니 하는 것은 자성 밖의 대상에 집착하는 마음으로 깨달음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종선 사상에서는 기본적으로 깨달음에 이를 가능성은 이미 자성 안에 원래 존재하는 것으로 이것이 자심 혹은 자성의 진짜 부처이고 내면에 있는 성불의 근거이다. 따라서 ‘바람’이냐 ‘깃발’이냐의 시비에 ‘마음’이라고 답한 것은 자성 외의 다른 방편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성만을 통해 견성한다는 의미의 돈오견성 사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그의 사상은 좌선법에 대한 견해에도 반영되었다. 필자가 육조단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상 그 두 번째는 ‘좌선법’이다. 혜능은 기본적으로 청정한 불성을 원래 누구나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고, 청정이라는 자세를 세우려고 하면 오히려 그로 인해 망념이 생기고 도(道)와 멀어진다고 보았다. 혜능은 진정한 좌선은 이러한 청정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 주장한다. 좌선에 대한 혜능의 이러한 관점은 돈오견성 사상이 수행법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불심이라든가 청정을 대상화하거나 그러한 것에 생각이 사로잡히는 것을 지양하는 태도는 깨달음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는 태도에 대한 지양을 추구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즉, 원래부터 청정한 불성을 직시하기 위한 수행으로 청정에 대해 집착하는 좌선이 아닌 오직 내면적인 마음의 자세를 추구하는 좌선은 오직 자성만을 통해 견성하려는 사상이 반영된 수행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육조단경의 좌선품에서 ‘내 본 성품이 원래 스스로 청정하다.’라고 한 것이나, ‘마음을 비우거나 하지 말아라, 이 마음은 본래 조촐하여 가히 취하고 버릴 게 없나니, 각각 스스로 애써 인연을 따라서 잘들 나아가라’라고 한 것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마지막으로 필자가 육조단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세 번째는 정혜불이(定慧不二)의 사상이다. 육조단경에서 혜능은 정과 혜를 구분해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육조단경에서 ‘정(定)과 혜(慧)가 다르다 하지 말라. 정과 혜는 하나라 둘이 아니니, 정은 혜의 본체요 혜는 정의 작용이라 곧 혜일 때에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일 때에 혜가 정에 있나니 만일 이 뜻을 알면 곧 이것이 정과 혜를 같이 배우는 것이니라.’라고 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정혜불이 사상은 북종선 신수의 선정발혜(先定發慧) 사상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정리하면 필자가육조단경의 내용 중 확인한 중요 사상은 ‘돈오견성’, ‘좌선법’, 그리고 ‘정혜불이’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사실 이외에도 여러 사상이 있겠지만 필자가 육조단경을 읽기 전에 배운 지식과 그를 바탕으로 육조단경을 읽어나갔을 때 가장 핵심적이라고 판단한 것은 대략 이렇게 세 가지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 사상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여러 선사가 있는 만큼 그에 따른 여러 사상이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른 견해도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육조 혜능의 사상에 동의하는 바이다. 실제로 필자는 불교종립 고등학교를 나왔기도 했고 템플 스테이도 여러 차례 참석한 경험이 있으며 ‘자아와 명상’ 수업도 모두 수강했기에 실제로 참선을 실천해볼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필자가 육조단경을 통해 확인한 혜능의 사상에 필자는 깊게 동의한다. 특히 좌선법에 대한 사상이 필자에게는 크게 와닿았다. 왜냐하면 혜능이 육조단경에서 주장한 좌선법 사상은 이를테면 ‘마음을 비우라’라던가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라던가 하는 등의 우리가 참선하면 흔히 떠올리는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참선을 하다 보면 오히려 집중이 안 되는 것을 필자는 참선 경험에서 분명히 느낀 바 있다. 그래서 그러한 혜능의 사상이 더 와닿았던 것일지도 모른다.혜능의 육조단경을 읽으면서 피상적으로만 배웠던 지식을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었고 또한 실제 참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그의 사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육조단경 이외에도 다른 선사들의 저서도 읽어 보면서 선 사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
    독후감/창작| 2023.08.05| 2페이지| 1,000원| 조회(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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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감상문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감상문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감상문학번 이름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이 있다. 이는 원래 삼국사기에서 백제 건축을 묘사할 때 사용된 표현인데, 필자는 주말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보고 온 후, 이 표현이 그곳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먼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는 않다는 뜻의 검이불루(儉而不陋)는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수수한 83호 반가사유상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으며, 다음으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의 화이불치(華而不侈)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78호 반가사유상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표현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83호 반가사유상은 전체적인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묵직한 깊이감이 돋보였고, 78호 반가사유상은 전체적인 디자인은 화려하지만 절제된 세련미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의 이러한 상반된 특징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주목할만하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인 6세기와 7세기에 제작되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좀 더 화려한 쪽에 해당하는 78호 반가사유상(6세기)보다 좀 더 수수한 쪽에 해당하는 83호 반가사유상(7세기)이 더 후대에 지어졌다는 것이다.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KakaoTalk_20221127_125304322.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80pixel, 세로 1440pixel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KakaoTalk_20221127_125306421.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80pixel, 세로 1440pixel78호 반가사유상(6세기) 83호 반가사유상(7세기)위 사진은 필자가 직접 찍어온 사진인데, 첨부된 사진에서 수수한 오른쪽이 83호이고 화려한 왼쪽이 78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술이 더 발달하기 때문에, 화려한 쪽에 해당하는 78호가 좀 더 후대에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실제로 나온 결과물은 그 반대이다. 이러한 사실은 언뜻 생각하면 다소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러한 흐름이 더 이치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과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게 만드는 것’ 중 실제로는 후자가 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예를 들 수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관점에서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생각해보면,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화이불치의 속성을 지닌 작품은 고려청자이고, 반대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검이불루의 속성을 지닌 작품이 바로 조선백자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화이불치가 검이불루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 점의 반가사유상 역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시기적으로 선대에 나온 78호 반가사유상은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디자인을 먼저 선보였고, 후대에 나온 83호 반가사유상은 그보다 기술적으로 더 어려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디자인을 선보임으로써 반가사유상 디자인의 정점을 찍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또한 이러한 검이불루 화이불치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필자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에서 마치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먼저 석가탑을 보면 디자인이 단순하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단단하며 강인한 모습이 돋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반대로 다보탑을 보면 디자인이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절제된 세련된 모습이 돋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83호 반가사유상에서는 석가탑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78호 반가사유상에서는 다보탑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필자는 여기서 석가탑과 다보탑이 제작된 시기가 이 반가사유상보다 후대인 8세기임을 고려해보았을 때, 석가탑과 다보탑이 앞선 반가사유상의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받았거나 혹은 기술적인 면에서 그 연장선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사실 필자가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한 것은 13년 만의 재방문이었다. 지난 2009년 처음 국립중앙박물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필자가 16살 때였는데 그때는 ‘사유의 방’ 같은 특별한 공간도 없었고 나이도 어릴 때라 깊이 있게 반가사유상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재방문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번과 같은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 국립중앙박물관을 다시 방문했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사유의 방이란 존재 자체를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방문을 통한 반가사유상에 대한 고찰은 더욱 의미 있다고 하겠다.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감상문학번 이름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이 있다. 이는 원래 삼국사기에서 백제 건축을 묘사할 때 사용된 표현인데, 필자는 주말에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보고 온 후, 이 표현이 그곳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먼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는 않다는 뜻의 검이불루(儉而不陋)는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수수한 83호 반가사유상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으며, 다음으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의 화이불치(華而不侈)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78호 반가사유상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표현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83호 반가사유상은 전체적인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묵직한 깊이감이 돋보였고, 78호 반가사유상은 전체적인 디자인은 화려하지만 절제된 세련미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의 이러한 상반된 특징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주목할만하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인 6세기와 7세기에 제작되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좀 더 화려한 쪽에 해당하는 78호 반가사유상(6세기)보다 좀 더 수수한 쪽에 해당하는 83호 반가사유상(7세기)이 더 후대에 지어졌다는 것이다.
    인문/어학| 2023.08.05| 2페이지| 1,000원| 조회(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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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