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자원관리 과제 ? 채용 과정의 인종 차별사회 각 분야에서 성차별 이슈가 뜨겁다. 채용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성별 때문에 낙방했다는 사례가 나오며, 실제로 특정 직종에 남성 혹은 여성만 모집한다는 공고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채용 인종 차별은 생각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전보다 외국인 근로자 및 학생 수가 증가했음에도 그렇다. 따라서 본인은 채용 과정의 인종 차별에 주목해보았다.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5월 13일, 홈페이지에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2019년 4월부터 10월까지, 한국 사회의 외국인 구성원을 상대로 설문조사 및 면접조사를 실시하고, 관련 보도 등을 수집해 분석하는 한편 해외에서의 인종 차별 금지 법안을 검토하며 해당 이슈에 대한 법제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 중 이주 배경을 이유로 일자리와 관련해서 겪는 차별이 있는지에 대해 약 304명의 외국인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는데, 이 중 채용 거부에 대해 11명(3.6%)의 외국인이 항상 있다고 응답했고, 자주 있다 22명(7.2%), 가끔 있다 55명(18.1%)으로 응답자 중 28.9%가 채용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다른 응답자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30% 가까운 외국인이 채용 과정에서 차별을 겪었다는 것은 결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사안임을 보여준다.구체적으로 어떤 채용 차별 사례가 있는지 언론 보도를 찾아보았다. 난민 자격으로 국내 체류 중인 수단 출신 A(34)씨는 모 호텔의 세탁실 직원 모집에 지원해 합격했으나, 호텔 측은 세탁 업무 특성상 의사소통과 협업이 중요하다며, 다른 지원자가 생겨 채용을 취소한다고 밝혔고, 미안하다며 세탁실 매니저가 A씨로 인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핑계를 댔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자신의 검은 피부를 이유로 한 고용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고, 인권위는 재발방지를 권고한 바 있다. 이외에도 영어 원어민 강사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흑인보다는 백인을 선호하는 세태를 찾아볼 수 있었다. 2013년의 보도를 보면,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이유로 채용합격이 취소당한 사람도 있었고, white person only 등 표현이 버젓이 공고에 올라와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No Black이란 무례한 표현을 적시한 고용주도 있었다 한다. 원어민 강사 채용 업체를 운용하는 김모 씨는, 아이들이 흑인 선생님이 무섭다며 백인 강사를 고집하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그렇다면 왜 채용 과정에서 인종 차별이 일어나는 것인가? 세계 어느 국가든 인종 차별이 문제가 된다. 다만 본인은 한국에서의 인종 차별의 원인을 다음 두 가지로 진단해보았다. 첫째로,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을 논할 만큼, 다인종 사회와 거리가 멀었다. 물론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 보도가 최근에 나왔지만, 상당수 국민은 우리가 그렇게 교육을 받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여기에 미국, 유럽 국가에 비해 인종 구성이 다양하지 않아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따라서 외국에서 정의되는 인종 차별 개념에 낯설어하며, 특정 언행이 인종차별이냐며 생각의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환경에 따른 인식의 차이 때문에 외국만큼 인종 차별을 심각한 이슈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외모 판단도 하나의 요인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겉모습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추세 속에서 흑인보다 백인을 선호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피부색이 어두울수록 다르게 생각하고, 밝을수록 호감을 느끼는 잘못된 관념에서 문제가 출발하였다고 본다. 본인이 초등학교 시절 본 장면도 그랬다. 인종 여부에 상관없이, 피부가 어두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에게 이목이 쏠리거나, 놀림이 가는 것을 심심찮게 보았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원어민 교사 채용 차별 사례에서도 이런 맥락이 작용한 것이라 본다. 교육청 관계자마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어민 강사 지원 자격 중 피부색 차별은 절대 없다"면서도 "현장에서는 일부 인종에 선호도가 남은 것도 사실"이라고 발언했다. 세탁실 매니저에 의한 차별 사건을 보면, 다른 업종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델이나 배우 등 특정 업종이 아닌 이상 외모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근로자의 업무 능력과 적응 능력 등이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개인적으로 해결 방안을 고민해보았다. 아이들에게 인종차별적인 생각을 고쳐나가도록 교육하자, 언론에 자주 보도함으로써 인식을 바꾸자는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일뿐더러,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란 쉽지 않다.그래서 채용 인종 차별에 대한 외국의 대응 사례를 참고했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미국 내 흑인 채용을 늘리고, 흑인사회에 2천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라 밝혔다. 지난해 채용과정에서 인종 차별 여부를 평가한 항목에 A-를 받은 미국 프로야구 사무국은 ‘최고인종문화책임자’를 임명함으로써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인종 다양성은 미국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일정 비율 외국인 의무적 채용을 발표한다면, 국민의 반발 가능성도 높다. 본인은 기업이 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에 접근해보았다.외국인을 채용하는 업무 분야에 특수 목적이 아니라면, 이력서 사진을 없애는 방법을 제안한다. 국내 취업 시장에서 몇몇 고용자는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 지원자의 업무 역량과 관계없는 부분을 평가에서 제외하는 추세이다. 이를 외국인 채용에도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서류 단계에서부터 특정 인종, 외모 등으로 차별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 본인은 어학 분야를 대표적 예시로 꼽아보았고, 원어민 교사 모집 공고가 올라오는 eslrok.com과 seoul.craigslist.org을 직접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공고는 지원자의 이력서와 더불어 사진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도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도, 인종차별적인 요인이 충분히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를 없애고, 순수하게 지원자의 강의력, 학력, 경험 위주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일부 국가에선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매체 CIC 뉴스의 셸비 테베노는, 이민자들에게 캐나다식 이력서 작성법을 소개하며, 이메일이나 전화번호를 기재하되, 종교, 결혼 여부, 나이 등을 쓰지 말고, 사진을 첨부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이력서의 성, 이름으로 유추하거나, 면접에서 특정 인종을 탈락시킬 수 있지 않은가? 링크트인 등 구직 사이트에 사진을 올릴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보자. 본인은 ‘인종 차별 없는 업장’ 인증 마크 및 스티커 도입하기를 제안한다. 1학년 당시 시민교육 수업에서, ‘아르바이트생의 권리를 보장하는 모범 가게’ 인증 프로젝트를 팀원들과 진행한 경험이 있다. 자체 제작한 설문지를 경희대 학우 일부에게 배포해 ‘모범 가게’에 대한 제보를 받고, ‘착한 가게’로 제보가 들어온 가게 몇 곳을 추렸다. 이어 해당 업체들에 전화로 사전 양해를 구하고, 사장님께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한 다음 직접 가게를 방문하였다. 아르바이트생의 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어떻게 대우해주셨는지, 어떤 미담이 나왔는지 알려드리는 등 준비한 질문 몇 가지를 여쭈었다. 인터뷰 종료 후에 ‘착한 가게’ 주황색 스티커를 입구에 붙였다. 시간상 회기 주변 모든 가게를 돌지 못한 것이 아쉽다.여기서 착안하여 ‘인종 차별 없는 업장’ 인증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본인의 제안이다. 처음 구상한 방안은, 인종 차별 업체에 스티커 및 인증을 일정 기간 달도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정적 낙인을 찍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일뿐더러, 악의적 제보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관점을 살짝 바꾸어 긍정적인 업체들에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이들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모범 업체 이미지에 따른 매출 상승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다른 업체들도 동참하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민교육 프로젝트와 달리 규모가 큰 만큼, 구체적 실행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대학생, 시민단체, 이익단체, 정부 등 실행 주체는 누가 될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대상 업종은 어떻게 선정할지, 채용 지원자 및 근로자들에게 물을 질문과 설문 방식, 거짓 제보를 걸러낼 방법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추가로 인증의 유효 기간과 갱신도 여건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탈북자와 고려인. 남북 분단. 아웃사이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는 키워드들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경계가 존재한다. 현대 문학 작가들은 상상력을 통해 이러한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이들의 모습을 세세히 그려왔고, 현실을 비판하는 거울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이번 인터뷰는 그러한 현실의 벽을 상상력으로 넘었던 작품들을 조명한 평론가 한 분을 만나보는 시간이다.본 기자는 비서구 세계의 소통과 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평론가이자 현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재직 중인 고OO 교수님을 인터뷰하였다. 고OO 교수님은 저작 <문학, 경계를 넘다>를 통해 현실의 장벽을 넘는 문학들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교수님의 생각을 파헤쳐보고, 탈북자와 조선족, 아프리카 문학과 같은 다양한 키워드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서론일본이란 나라는 오묘합니다.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고, 우리와 비슷한 만큼 다른 부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평소 일본 문화를 잘 안다고 자부했으나, 실제로 맞닥뜨렸을 땐 예상과 달라 당황스러웠습니다. 겸손한 태도로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문화 코드로 읽는 일본적 가치의 재발견] 수업을 통해 그 공백을 메꾸고자 하였습니다. 일례로 본인은 파친코를 한국의 카지노와 같은 부정적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도박형 레저 비즈니스 분야에서 국민 오락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학습하는 과정에서 이처럼 잘못 알고 있던 일본 문화에 대한 생각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학습했던 내용 가운데 일본을 설명할 다섯 가지 단어를 꼽는다면 저는 다테마에/혼네, 메이와쿠, 아니메와 망가, 야구 그리고 당고우를 선택하겠습니다. 상대방과 공동체를 의식한 다테마에/혼네, 메이와쿠, 당고우와 일본의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은 야구,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아니메와 망가는 각각 일본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특징을 갖습니다. 물론 이 다섯 개의 단어만으로 일본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다섯 개의 단어를 ‘퍼즐 조각’이라 부르려 합니다. 이 다섯 개만으로는 일본이라는 큰 그림을 맞출 순 없지만, 다른 조각들과 모일 때 퍼즐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1. 다테마에와 혼네사람들은 흔히 일본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다테마에와 혼네라는 일본어 표현이 사용됩니다. 다테마에(建て前)는 겉으로 드러나는 극히 형식적이고 원칙적인 말과 행동으로 풀이됩니다. 혼네(本音)는 본심으로 생각하고 느낀 그대로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본인은 친구의 지인이 실제 다테마에와 혼네를 경험한 일화, 그리고 외교무대에서 일본이 취한 자세 등을 근거로 이 두 단어가 일본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저의 중학교 동창의 지인 중 K라는 사람이 있는데, 현재 도쿄 모 대학에서 유학 중입니다.
시 속에 드러난 김수영의 솔직한 반응김수영은 진실을 추구한 시인이었다. 운문과 산문으로써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던 그는 때로는 자신의 숙취와 사창가에 다녀온 사실까지 솔직하게 드러냈다. 동시에 상주사심의 마음으로, 죽음을 짊어지고 살았다. 그는 화려한 기교보다 거칠지만 쉬운 말로 원고지에 시를 써내려갔다.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경험한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그 흔적이 남아있다. 그 흔적 속 현실 비판은 직설적이기도 하였고, 때로는 조용히 칼날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본인은 주요한 역사적 사건과 김수영의 작품 세 개를 연결 지어 그 속에서 김수영이 보인 특이하지만 솔직한 반응을 찾아볼 것이다.그에 앞서 김수영의 생애를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김수영 문학관에 정리된 공식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21년, 11월 27일 서울 관철동 아버지 김태욱, 어머니 안형순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적 부족하지 않은 집안 형편 덕택에 유치원과 서당에 다녔는데, 보통학교 진학해서도 성적이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질병으로 수년간 요양을 하였다. 그 뒤, 선린상업학교에 진학하여 공부하였고 태평양전쟁 발발 후엔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4년엔 만주로 옮겨가 가족과 상봉하였고, 한동안 연극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아내 김현경 씨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전쟁이 닥쳤고, 이는 김수영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종전 후엔 시와 산문을 쓰며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고, 다수의 문인과 교류하였다. 1957년에는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다. 김수영은 시와 산문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작품 활동을 하며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였다. 문단 추천제를 악용하는 문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이어령과도 란 글로써 적극적으로 논쟁했던 그는 어두운 시대 속에 깨어 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1968년, 안타깝게 버스사고로 진실함의 별은 떨어지고 말았다.김수영의 삶은 격동의 한국사 그 자체였다. 그래서 본인은 김수영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역사적 다 할 흔적을 남기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한국 전쟁과 4.19 혁명 그리고 5.16 군사 쿠데타는 분명 그 발자국을 김수영의 작품에 남겨놓았다. 이 세 가지 사건에 맞춰 그의 작품에 드러난 김수영의 특이한 반응을 탐색해보려 한다. 6.25 전쟁 직후 1953년에 썼던 , 4.19 혁명 직후에 쓴 , 그리고 5.16 군사 쿠데타 직후에 썼던 가 우리가 주목할 작품이다.6.25 전쟁 후 김수영의 정신적 상처는 작품 속에 나타난다. 에 그 양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애정’이다. 김수영이 사랑이나 그리움이란 감정을 그의 시에 드러낸 경우는 드물다. 그 상처와 충격이 얼마나 컸기에 이 시에서 고독함과 사랑을 논했던 것일까? 애정지둔을 간단히 살펴보자.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이란 제목을 풀이한다. 애정은 모두가 알다시피 사랑을 의미하고, 지둔은 ‘굼뜨고 미련하다’란 뜻이다. 애정지둔은 굼뜨고 미련한 사랑으로 풀이된다. 김수영은 조용한 시절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굵다란 사랑이 생겼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남이 볼 때는 우스운 이야깃거리이다. 1연 마지막 부분에 쓰인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재긍정하는 것이/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는 사랑에 대한 고독감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본인은 여기서 김수영이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고독함을 은근히 드러낸다고 파악하였다. 그 근거는 뒤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2연에서 김수영은 조용한 시절 대신 백골이 생기었다며, 자신의 몸도 없어지고, 그림자도 달아난다고 말한다. 시인의 마음이 불안정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답할 것이 없어져도 쓸쓸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반어법으로 보인다. 쓸쓸하지 않다고 보기엔 그가 사용하는 단어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3연에 언급되는 생활무한, 고난돌기, 백골의복, 삼복염천거래란 단어들을 살펴보자. 생활에 한이 없고, 고난이 (돌기처럼) 도드라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백골의복이란 시어는 뼈처럼 하얀 의복인지, 뼈가 드러나는이다. 그 감정의 불안정함은 한국전쟁 탓으로 돌릴 수 있다. 한국전쟁은 김수영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다. 전쟁 발발 직후 의용군에 끌려간 그는 이북에서 탈출하여 서울까지 내려왔지만, 권총으로 위협당하며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후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지는데, 여기까지의 과정에서 김수영은 여러 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이 기억은 그의 머릿속에 상주사심이란 네 글자를 새기고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는다. 석방 후엔 미 8군 수송관 통역관으로 취직하였으나 이 좋은 자리마저 거부하며 뛰쳐나왔다. 전쟁 통에 헤어진 아내와도 상봉하였는데, 아내는 김수영이 죽은 줄로만 알고 김수영의 선린상고 동기 이종구와 동거하였다고 한다. 그를 본 김수영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선을 넘나들며 정신적 상처가 가득한 그에게, 사랑했던 아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친구와 동거한다는 사실은 그를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 물론 아내 김현경 씨는 나중에 돌아오지만, 당시 김수영이 느낀 심적 고통, 감정의 혼돈과 함께 사랑에 대한 외로움을 드러내는 시가 이라고 볼 수 있다. 1연의 굵다란 사랑은 아내 김현경 씨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게 되면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재긍정하는 것이/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가 무엇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퍼즐이 완성된다. 김현경 씨는 김수영과 매우 각별한 관계로, 김수영의 원고를 직접 고치고 쓰기까지 했다. 문학으로 만난 두 사람이 전쟁 때문에 헤어지고 극적으로 상봉하였는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던 모습을 본 김수영의 감정은 어땠을까? 그가 분노와 불안, 슬픔, 고독함을 느꼈을 것은 당연하다.백골이라는 죽음의 시어도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그의 시 속에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렴풋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 이전 작품 에서 ‘나는 죽을 것이다,’ 라는 표현으로써 죽음이 언급된 적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죽음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사물의 발산한 형상 구하기를 포기할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였고,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본인은 김수영이 보였던 첫 번째 특이한 반응으로 이 을 꼽고 싶다.두 번째 작품은 이다. 김수영 시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1960년 4.19 혁명 이후 이에 대한 시가 여럿 보인다. 물론 해당 소재가 1959년~1961년 사이 그의 모든 작품을 대표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4.19를 전후로 김수영의 시에서 민주주의와 4.19, 혁명이란 시어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중에서 주목해야 할 시는 이다.이 시는 1960년 4월 26일, 4.19 혁명 이후 일주일 뒤에 쓰였다. 김수영이 4,19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은 뒤 처음 내놓은 작품이라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김수영의 시는 굉장히 난해하다. 그는 분명 일상의 언어, 쉬운 언어로 시를 썼지만, 그 속에 담긴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 이 시는 특이하게 난해한 그의 기존 작품들과 달리 해석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는 거칠지만 솔직하게, 가감 없이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임홍배 교수는 이란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 시를 소개하고 있다. ‘…60년대 김수영의 시에서도 대개는 여러 겹으로 얽혀서 서로 갈등하는 ‘나’의 목소리가 집단적 주체의 그것으로 고양되어 주저 없이 발산되는 절정의 순간들이 4.19 직후의 극적 정점을 노래하는 몇 편의 시에서만 확인되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다음 시편이 드물게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정권을 향한 그의 분노가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김수영은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 밑씻개로 하자며 시를 시작한다. 4.19 혁명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여기서 ‘그놈’은 이승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김수영은 이 시에서 독재로 인해 썩은 과거와 이별하고, 이승만의 동상을 없애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져 간 학생들을 위한 기념탑을 세울은 적극적으로 미소 짓는 이승만의 초상화를 ‘디스’한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로 민주주의를 실천하자는 김수영의 생각도 드러난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김수영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가 솔직하게 분노를 드러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은 작품이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분노에 차올랐으면, 어려운 시를 써오던 그가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솔직한 가 본인이 꼽은 김수영의 두 번째 특이한 반응이다.세 번째 작품은 연작시 이다. 김수영은 1961년 5.16쿠데타 직후, 란 연작시 9편을 발표한다. 1편부터 9편까지 작품이 쓰인 시기를 보면 6월 3일부터 8월 25일로, 짧은 시기에 많은 작품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9편의 시는 그간 김수영이 써온 작품들과 성격이 달라 보인다. 필자는 작품의 소재와 김수영의 독특한 표현 방식에 주목하였다.작품 소재는 대부분 가족이나 김수영 자신으로 한정되어 있다. 1편 이나 7편 처럼 제목에 공개적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그 외 2편 에선 ‘시원하다’고 표현하며 시 속에 자기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었다. 이들을 읽어보면, 이전과는 다른 낯선 느낌이 든다. 김수영이 전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신귀거래 9편에 도입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지식으로 여러 번 작품을 읽어보았을 때, 이전 작품에서 그가 은연중에, 혹은 직접 드러냈던 사회 비판 의식이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에서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작품 속에 시대를 반영하던, 특히 4.19 혁명의 진취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외쳤던 시인 김수영이 맞는지 누군가 질문할 수도 있겠다.주목하고 싶은 것은 김수영의 신귀거래 1~5편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특정한 시어를 반복하여 사용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반복되는 시어로 1편에선 ‘어린애’, 2편 ‘버리고’와 ‘편편하고’, 3편 ‘등나무’, 4편 ‘니야옹’, 5편에서는 ‘~이유, 모르지?’를 꼽을 수 있다. 신귀거래 6편부터 9편까지는 그 빈도가 줄어 대구법을 활용하는 수준에서 그다.
1. 기업 경영과 경영학은 결국 무엇인가?기업 경영과 경영학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영은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도구이다. 책임 경영이라는 과목을 접하기 전, 내가 생각했던 기업 경영은 금전적 부분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었다.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고민하는 학문이 경영학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기업 경영이라 생각했다. 물론 기업 경영과 금전적 부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돌아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초등학교 시절,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성공 신화를 그린 [영웅 시대] 라는 드라마를 접한 적이 있다.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이때부터 기업의 리더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많은 경영인의 서적을 탐독하며 그들의 일대기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성공한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에는 경영 동아리에 가입하여 기업인과 경영학자들의 사례를 조사하고, 프레젠테이션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가장 닮고 싶었던 기업가는 홍콩의 리자청이었다. 유년 시절, 매우 어려웠던 자신의 환경을 이겨내고 아시아 최대의 갑부 중 한 명으로 거듭난 리자청은, 검소와 기부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었고, 그의 내면 속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와 같은 기업가가 되고 싶었다. 성공한 기업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스스로 그려왔던 기업 경영은 고객의 마음을 얻고, 직원들과 소통하며 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이 거둔 이익은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우리가 배운 책임 경영의 내용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것은 이해관계자 경영이 아닌 ‘금전적 이익’과 ‘명예’ 였음을 고백한다. 금전적 이익을 내면서 동시에 좋은 뜻으로 기부 사업도 하고, 사회적 명망을 얻는 것이 기업 경영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 금전적 이익이 제 1목표라고 생각했고, 내가 꾸어왔던 꿈도 이러한 모습과 비슷했다. 이해관계자 경영을 공부하면서 배운 협력 업체와 환경 등의 요소들은 생각하지 못했고, 고객의 마음을 얻는 마케팅 전략을 판매 수익을 늘리며 기업가로서 명예와 부를 얻고 싶었다.하지만 책임 경영 과목을 수강하고 난 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진정한 기업 경영과 경영학은 다름 아닌 ‘사람을 위한 경영’을 키워드로 삼아야 한다. 성찰일지를 작성하며 내가 제일 많이 고민하고 던졌던 물음은 ‘기업 경영과 경영학이 왜 존재하는가? 기업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책임 경영이 왜 필요한 것인가?’였다. 내가 얻은 나름의 답은 ‘기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였다. 기업은 소비자와 기업 내의 임직원뿐만 아니라, 협력 업체, 사회 심지어 자연 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과 이익을 주고 받고 있다. 본질적으로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기업은 임직원들에게 생산에 따른 경제적인 보상을 지급하고, 소비자들로부터 비용을 받아 서비스와 재화를 제공하며 협력 업체에는 원자재 및 부품 제공에 대한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고, 자연 환경으로부터 자원을 얻기도 한다. 기업은 또한 그들이 소속된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고 되돌려 주기도 한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어떤 전략을 바탕으로 수익을 더 많이 창출할까 라는 고민보다는, 내가 소속된 사회를 어떻게 풍족하게 가꿈으로써 나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인가? 라는 사고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업 시간에 배운 계몽된 자기 이익의 개념이 있지 않은가? 이해관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이들을 돕는 것은 결국 기업에게도 도움이 되며, 모든 ‘사람’ 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상생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 현 시대에 책임 경영은 기업이 꼭 갖춰야 할 모습인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경영과 경영학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식하고 책임 경영 시대에 발맞춰 발전해나가야 한다. 기업 경영과 경영학은 인간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2. 한 학기 동안 학습한 책임 경영의 내용을 바탕으로 나는 앞으로 경희대 경영대학에서 경영학의 어떤 분야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어떤 과목을 선택할지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다. 이전부터 향후 학습 계획을 고려함에 있어 본인은 마케팅과 인사 분야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과목을 수강하든 책임 경영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의 실천적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다. 마케팅을 공부한다면, 본인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이고 정당한, 도덕적인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인사 분야를 담당한다면, 본인은 앞장서서 책임 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내에 많아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중요한 것은 어떤 분야를 선택하느냐라는 고민보다, 책임 경영 정신을 기본 토대로 삼아 어떻게 응용해 나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3. 경희대 경영대학을 졸업한 후 나의 계획은 무엇인가? 20년 후, 나는 학교에 어떠한 모습으로 Homecoming Party 2036에 참석할 것인가?성공한 모습으로 홈커밍 파티에 온다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홈커밍 파티에 참석을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석하기 싫어서? 아니다. 본인은 아마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어렸을 적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아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던 본인은, 글로벌 시대로 나아가는 현 시대 속에서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다. 부모님도 이러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셨다. 사실, 글로벌 시대와 관계 없이 본인은 이전부터 외국 문화와 언어에 관심이 많았고, 외국어를 사용함으로써 현지인과 소통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때문에 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싶었다.아직까지 본인은 진로 탐색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앞선 질문에 답을 하면서 기업 경영의 꿈을 어렸을 적부터 안고 왔다고 말하였지만, 사실 이것을 두고 고민 중이다. 진로 선택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는가? 본인은 국제기구에 지원하여 근무할지, 외국 회사에 취업할지, 국내 회사에 취업하여 파견 근무에 지원할지 고민하며 여러 가지 정보를 탐색해오고 있다. 교내 교환 학생과 여타 국제 교류 프로그램, 대외 활동도 여럿 찾아보며 나름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본인은 해외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것이다. 때문에 경희대 재학 중, 제 2,3외국어를 습득하고, 최선의 준비를 다할 계획이다. 문화와 거주 환경, 언어 등의 차이점 때문에 해외 근무에는 어려운 요소가 굉장히 많다. 때문에 본인은 만반의 준비를 다할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책임 경영 정신을 바탕으로 직업에 상관 없이 책임 의식과 계몽된 자기 이익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겠다.4. 교수님께 드리는 편지교수님! 먼저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학기 초 책임 경영 수업을 시작하면서 과제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힘든 만큼 얻은 것도 굉장히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의 사례를 조사하고, 때로는 번역 과제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배운 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신기한 것은 성찰 일지를 통한 저의 사고 방식과 태도의 변화입니다. 사실 성찰 일지를 쓰면서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과제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일 주일마다 제 자신을 돌아보고, 제가 배웠던 내용을 복습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 평소에 성찰 일지를 써가며 자신의 생각이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학기 초와 달리, 기업은 책임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좀 더 명확해졌고, 이제 어디를 가도 사람들 앞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제 마음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됐습니다. 교수님께서 주신 책, 정말 감사 드리고 방학 동안 꼭 읽어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성찰 일지에 대한 상을 받을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좋은 조원들을 만나 열심히 팀 프로젝트 활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이전에 다녔던 대학에서 저 혼자 일을 도맡아 했던 경험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경험담들 때문에 팀 프로젝트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원들 모두 활동 하나 하나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했고, 이번 ㅇㅇ 전자 CSR 전략 발표에서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음에 매우 뿌듯함과 감사함을 느낍니다.이제 저는 확고한 목표 의식을 바탕으로, 책임 경영과 그 정신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3번에서도 말씀 드렸듯, 세계 어느 곳에서든 책임 경영을 실천하는 경희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한 학기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책임 경영 학기말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