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역정책의 발전과정에 따른 무역상사의 변화과정 ** 학과 201****3 아무개Table of Contents 01 시대에 따른 무역정책이 필요한 이유 02 시대별 무역정책에 따른 무역변화과정 -1960 년대 -1970 년대 -1980 년대 -1990 년대 -2000 년대 -2010 년대 - 현재 03 무역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할 점01 시대별 무역정책이 필요한 이유 01 시대별로 육성하고 보호해야 하는 산업이 다르기 때문에 시대에 맞는 무역정책이 필요 02 03 과거에는 보호무역이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는 다양한 협정을 통해 자유무역으로 변화함 . 이런 세계에 흐름에 맞게 대응하기 위해 시대에 맞는 무역정책이 필요 무역은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각 나라의 외교력이 점점 중요해짐 . 여러 국가와 상황에 맞게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시대별로 외교와 관련된 정책이 필요무역의 특징 무역상사의 변화과정 ① 1961 년부터 지속적으로 증대되어온 수출이 1964 년 사상 처음으로 1 억 달러의 초과목표를 달성 ② 풍부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노동집약적인 수출제품 생산에 비교우위가 있어 대부분 비내구재 제품을 수출 ③ 경제발전을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해 공장을 짓고 거기서 해외에서 수입한 원자재로 제품을 만들어 다시 해외에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여 경제를 성장시키는 수출주도형 경제로 성장함 02 시대별 무역정책에 따른 무역변화과정 - 1960 년대 무역정책 ① 수출진흥을 통한 고속 공업화 정책 시도 ② 직접 수출지원방식에서 간접 수출지원방식으로 변경 ③ 수출목표 달성을 위한 수출환경의 조성 및 체계 확립무역의 특징 무역상사의 변화과정 ① 1972 년에는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100 억 달러의 수출목표가 달성 ② 수출 특화산업은 원자재의 국내공급이 가능하고 투자효율이 높은 산업으로 생사 , 견직물 등이 선정되었고 , 수출전략산업은 연관산업에 대하여 파급효과가 큰 전자제품 , 자동차 등이 선정됨으로써 특정 산업을 육성함 . ③ 당시 오일쇼크로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이 변화하던 와중에 석유 의존도가 높던 우리나라는 큰 충격을 받음 . ④ 중동국가와의 외교를 통해 건설사들이 중동에 많이 진출해 우리나라의 인력을 수출함 02 시대별 무역정책에 따른 무역변화과정 - 1970 년대 무역정책 ① 장기수출계획 수립 ② 수출자유지역의 설치 ③ 수출입 절차의 간소화무역의 특징 무역상사의 변화과정 ① TV 등 전자부문에 새로운 산업을 육성 ② 수출의 안정적 확대 , 국제수지흑자 기조의 조성 , 수출채산성의 확보 등을 도모하기 위하여 수출품의 질적 혁신시책이 실시됨 . ③ 1979 년 발생한 제 2 차 석유파동에 따른 세계경기 침체로 보호무역주의가 만연했으며 , 선진국은 한국 수출품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를 강화 02 시대별 무역정책에 따른 무역변화과정 - 1980 년대 무역정책 ① 중공업제품의 수출촉진 ② 대외 무역법 의 제정 ③ 수출지원체제의 개편무역의 특징 무역상사의 변화과정 ① 1997 년 외환 위기 때 대한민국의 무역기조를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전환 ② 품질 , 독자브랜드 등 비가격경쟁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독자적인 해외마케팅 체제를 갖추어 나감 ③ 수출상품구조를 중화학 , 기술집약적 제품위주로 고도화하며 , 경공업 제품도 고부가가치화를 모색 ④ 1995 년 첫 반도체 호황 02 시대별 무역정책에 따른 무역변화과정 - 1990 년대 무역정책 ① 무역관련제도를 국제규범에 일치 ② 수출승인제도나 수출추천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 , 통관절차를 대폭 간소화 ③ 칠레와 최초의 FTA 협상개시 선언 ( 발효는 2004 년 )출처 : 한국무역협회 무역의 특징 무역상사의 변화과정 ① 완제품 수출구조에서 부품 및 부분품 수출구조로 빠르게 변화 ② 해외시장 정보수집과 마케팅 능력 등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밀착지원은 중소기업의 수출경쟁력을 강화시킴 . ③ FTA 를 통해 지역 내 무역 증가 02 시대별 무역정책에 따른 무역변화과정 - 2000 년대 무역정책 ① 수출금융 ( 무역금융 , 수출보험 ) 지원 ② 해외시장조사 및 해외마케팅 지원 ③ 자유무역협정 (FTA) 을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통합이 활성화출처 : 중소벤처기업부 무역의 특징 무역상사의 변화과정 - 세계 7 위의 수출국 (WTO 발표 ) - 우리나라의 수요 수출품은 전자 , 공업 , 철강 등 - 문화 콘텐츠 수출의 비중이 커지며 3 년 연속 100 억달러 달성 - 중소기업 수출지원 정책을 기반으로 중소기업 수출액이 점점 증가 중 -RECP 으로 관세 우대를 받기 위해 원산지 증명절차를 이행 할 것 02 시대별 무역정책에 따른 무역변화과정 -2010 년 ~ 현재의 무역정책 ① 중소기업의 수출역량 강화 ② RCEP 협정 최종 타결 ③ 경제외교강화 ④ 동북아 중심국가 실현의 협력체제 강화무역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할 점 01 무역정책의 주체는 국가로서 교역상대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 02 무역은 국민경제의 대외경제활동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향이 국민경제 전반에 미친다는 점 을 고려해야 한다 . 03 무역마찰 등을 비롯한 각종 국제경제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회계학과 (숭실, 단국, 동국, 덕성) 경영학과(성균관, 경북)1.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에 대해,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1,000자 이내)주도적인 학습법을 실천하며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은 학업을 진취적으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확률과 통계 과목에 흥미를 잃던 중 교과서에서 본 탐구활동의 “확률을 이용한 보험료 산정”이라는 글에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수학선생님의 직접 탐구해보라는 제안에 흥미를 느꼈고 심화탐구를 결심했습니다. “확률을 이용해 어떻게 보험료를 산정할까?”라는 주제로 보험료 계산에 사용되는 이상적인 원칙, 한계, 사용된 법칙, 사례, 확률을 사용하는 이유를 조사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며 대수의 법칙이 사용된 다는 것을 알았고, 내용을 더 확장해 이 법칙이 학교에서 배우는 이항분포를 정규분포로 근사시키는 성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프를 그리고 내용을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했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우들 앞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지나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궁금증을 가지고 실생활에 적용해 탐구하며 문제를 객관적이고 통찰하며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또 저는 다양한 기업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싶은 꿈을 위해 영어의 필요성을 느껴 학우들을 모아 영어스터디를 만들었습니다. 백악관 연설문을 함께 해석하며 영단어를 이해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사전을 찾고 해석하며 해석력이 능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 지원, 탄력근무제등의 주제에 대한 연설문은 미국의 현 상황, 경제 정책등 사회전반에 대한 상식을 넓혀주었습니다. 또한 연설문을 보며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며 설득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느낄 수 있었고 글 맥락의 전반적인 이해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수업시간에 회계사에 대해 작문한 경험과, 외국기업에 대한 정부의 경제 정책 등의 지문을 요약한 경험은 배운 영어문법과 단어를 적용한 기회였습니다. 실제 사용되는 표현들을 자연히 익히며, 영어의 흥미가 높아졌고 더불어 성적도 향상되었습니다.제 좌우명인 매출액은 회사의 이익을 견주는 자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매출총이익을 비교해보니 10배 이상 차이 났던 매출액은 매출총이익을 분석함으로써 순식간에 뒤집어졌습니다. 또 영업이익을 비교하며 B카페는 수십억 원의 적자를 A카페는 이익을 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필요한 부분을 찾아 비교하며 두 카페의 실적을 알 수 있었고 재무제표로 회사의 현 상황파악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의 추세를 비교하며 앞으로의 전망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회계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브렉시트를 주제로 모의 UN대회에 독일대표로 참가해 현 세계경제 상황을 파악하고 직접 만든 연설문과 정책을 제시하는 과정은 사고의 유연성과 통찰력을 키워주었습니다.유럽에서 일어난 브렉시트를 독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독일의 입장에서 영국과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를 조사하며, 두 나라간 물적 교역뿐 아니라 인적 교류 또한 활발했다는 점에 크게 주목해 Free Movement Policy, 관세를 적정선으로 낮추고 인적교류 제한을 완화하자는 정책을 제안하였습니다. 또, 모의 UN에서 정책을 체결하기 위한 소통과정에서 각 나라를 이해하며 영국뿐 아니라 일본 등 다른 나라와도 성공적으로 조약을 체결해 브렉시트로 인한 독일의 경제적/인적 손실을 줄이고자 노력했습니다.브렉시트라는 한 주제에 대해 여러 나라들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3년 동안 맡은 회계일은 제가 회계사로서의 뚜렷한 신념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모두가 예민할 수밖에 없는 돈을 다루다보니 급우들에게 신뢰감을 받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나만 알고 나만 관리하는 돈으로는 투명한 회계가 어렵다고 판단했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학급비를 운영할 수 있을까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신뢰성에 중점을 두어 학급비를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장부를 작성해 날짜별로 표기했고 장부를 모두가 볼 매출액을 확인했을 때, 실적악화로 적자를 기록했다는 B카페가 상승세인 A카페보다 매출액이 10배 이상 많음을 알고 놀랐습니다. 의구심이 생겨 책을 찾아보니 매출액은 회사의 이익을 견주는 자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매출총이익을 비교해보니 10배 이상 차이 났던 매출액은 매출총이익을 분석함으로써 순식간에 뒤집어졌습니다. 또 영업이익을 비교하며 B카페는 수십억 원의 적자를 A카페는 이익을 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서툴지만 하나씩 항목을 비교해가며 직접 가격을 계산해보고 필요한 부분을 찾아 비교하며 두 카페의 실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재무제표로 회사의 현 상황파악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의 추세를 비교하며 앞으로의 전망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회계와 더불어 기업경영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브렉시트를 주제로 모의 UN대회에 독일대표로 참가해 세계경제를 파악하고 직접 만든 연설문과 정책을 제시하는 과정은 사고의 유연성과 통찰력을 키워주었습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독일의 입장에서 영국과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를 조사하며, 물적 교역뿐 아니라 인적교류 또한 활발했다는 점에 주목해 Free Movement Policy, 관세를 적정선으로 낮추고 인적교류 제한을 완화하자는 정책을 제안하였습니다. 정책체결을 위한 소통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영국과 협약을 체결했고 일본과 입장을 주고받으며 영국에 많은 기업을 둔 일본이 브렉시트로 관세혜택을 받기 힘든 상황임을 예측해 이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에 있는 일부 일본의 기업을 독일로 이동하는 조건으로 관세혜택을 유지시키되 독일의 노동자를 고용하자는 타협안을 체결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독일의 경제적·인적 손실을 줄이고자 노력했습니다.브렉시트를 조사하며 한 나라의 정치적결정이 여러 나라의 경제,정치,외교적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타국의 입장에서 타국을 이해하는 방법은 다양한 관점과 배경지식을 필요로 했고 쉬운 니다. 작은 의견이라도 같이 생각해보며 고민했습니다. 또 저희 팀끼리 토론연습을 할 때면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존댓말을 사용하며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늘 대화하며 타협점을 찾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대회에 임하자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준결승전 토론 때, 상대를 존중하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상대팀이 저희의 주장을 비난하는 말투와 태도에 화가 났고 주장에 대한 비판이 아닌 비난은 감정을 상하게 했습니다. 토론이 끝나고 저희의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대팀과 마찰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승패 판정 후 서로의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태도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자 갈등은 심화되었습니다. 저희는 각자의 입장만 내세운 채 이견을 좁히지 못 했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입장을 정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제 기분만을 생각해 상대의 태도를 지적했던 제 모습을 돌아보며 먼저 사과하고 상대팀의 태도에 불편했음을 전달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상대편도 저희를 이해하며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했습니다.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고 다투며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는 제가 내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토론대회전에는 토론의 가치는 승패가 결정한다고 생각해 상대주장에 있어서 우위를 점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토론 대회를 하면서 논리성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태도에 임하는 자세, 존중하는 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협력과 존중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며 서로가 득이 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4. 동국대-자신의 노력과 역량을 바탕으로 해당 전공에 대한 지원동기 및 진로계획을 구체적으로 기술 (회계학과)직업인과의 만남이라는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전공 교수님의 회계학 강의를 듣고 몇 장의 재무제표로 기업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고 회계사를 꿈꾸게 되었습니다.사회 흐름에 빠르게 대처하는 회계사가 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지적목표를 가지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회계학과에 진학해 회계의 전문적 소양을 배우겠습니다. 또한 동국대학교의 공인회계사 반에 들어가 공부해 전문성 있는 인재로 발 돋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세계 공용어인 영어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지속하며 세계 경제를 이해하겠습니다. 차후 회계 법인에 들어가 공인회계사로서 나라의 경제를 바로잡는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회계는 기업의 언어다” 회계사를 꿈꾸는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회계사로서 기업과 소통하며 공인회계사로서 자질을 키우겠습니다. 제 3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의 지침이었던 극기상진, 나를 이기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를 실천하며 더 나아가겠습니다.4. 숭실대-지원동기와 대학 입학 후 학업 계획 및 진로계획에 대해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회계학과)어릴 적 자주 가던 집 앞의 은행은 저에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어릴 때의 저축경험은 성장하며 돈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은행은 늘 안전한 곳인 줄만 알았던 저에게 새마을금고의 분식회계는 충격이었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소수의 이익 때문에 빚어진 분식회계, 경영부실 때문에 다수의 서민들이 피해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축의 즐거움과 저축하면서 가졌던 희망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에, 더 안타깝고 화가 났습니다. 이를 보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다고 다짐했고 직업인과의 만남이라는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전공 교수님의 “회계학 강의”를 들으며 관심 있던 회계학에 대해 알고 싶었고 재학기간동안 꿈을 구체화 시켰습니다. 공인회계사가 된다면 경제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분식회계의 부조리함을 바로잡아 사회적 신뢰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깨끗한 국가 경제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회계는 기업의 언어다” 회계사를 꿈꾸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입니다. 회계사로서 기업과 소통하며 세상의 빠른 변화에 발 맞춰나가는 공인회계사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가겠습니다. 공인회계사인 제 꿈을 이루기 위해 회계학과에 습니다.
나의 감사나는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의 행운이나 능력을 과시하기 바쁘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세대이다. 하지만 한경직 목사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감사하는 자세로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본다. 제목에서부터 한경직 목사님이 살아온 일생에서 얻은 깨달음을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살아오면서 느낀 감사는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사람에 대한 감사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던 것은 그의 삶의 배경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는 수많은 고마운 인연을 주시고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도록 이끄신 하나님에게 일일이 감사드린다. 그가 먹고 자고 배울 수 있던 모든 것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가장 먼저 한경직 목사님 즉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보살피고 키워 주신 가족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운 지인들과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감사이다.이 책은 한경직 목사님의 유년시절, 그리고 미국 유학시절, 목사로 활동한 시절의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의 일생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하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책의 첫 시작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그의 유년은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훌륭한 부모님에게서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그는 하나님의 큰 은혜덕에 정직하고 부지런하신 부모님을 모셨다고 말한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 구절을 볼 때마다 한경직 목사의 존경심과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힘들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그가 나는 단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그는 어린시절 자작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했다. 한경직 목사님은 교회덕에 어린시절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이른 나이지만, 그는 평생의 동반자를 맞이하게 된다. 힘든 형편 속, 어디 의지 할 곳 하나 없었지만 하나님은 이들 가족을 붙들고 위로하며 좋은 길로 이끌어 주셨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통 그 자체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줄 뿐더러 우리를 위로해주며 신앙으로 견딘다면 고통을 통한 참된 기쁨을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유년시절이 발판이 되었기에 모든 시련을 하나님과 함께 이겨낸 그가 지금 이토록 존경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그의 자취를 따라가보면 부모님, 아내, 형제자매, 선교사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보살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감사가 있기에 한경직 목사님은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그의 유년시절의 사람에 대한 감사는 배움에 대한 감사로 이어진다. 그는 진광 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학교를 다녔고 평양 숭실대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한경직 목사님은 윤치호 선생의 도움을 빌려 미국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미국 엠포리아 대학을 거쳐 프리스턴 신학교를 졸업한다. 배움에 있어서 그의 삶을 본다면 그가 작은 것에 감사하고 겸손했기에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끈기를 보며 절로 존경스러워졌다. 한경직 목사님은 이 시대를 살아가야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탓하지 않는다. 그는 주변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갔기에 이겨낼 수 있었노라 라고 말한다. 한경직 목사님은 배움을 함께 하며 만난 주변사람들 모두를 감사로 대하고 있다. 학업을 병행하며 고된 상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말한다. 이 주변의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주신 천사라고 그렇게 그는 또 감사하고 있었다. 이런 그가 프리스턴 대학교를 졸업할 년도에 미국 개신교 전체를 흔들어 놓은 커다란 신학적 논쟁이 있었다. 역사적인 신조를 고수하려는 보수파와 진보 성향의 신신학파가 그것이다. 이 치열한 논쟁 속에서 불행히도 역사적인 프리스턴 신학교는 분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경직 목사는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말하며, 그 누구도 감히 자기주장을 전적으로 따르라고 말할 수 없다 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이 구절을 읽고 놀랐다. 나는 그가 성경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인정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그이기에, 대대로 내려오는 역사적인 신앙을 고수하는 보수파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에 대한 해석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서로 다른 환경과 교육 성품을 가진 사람이 어찌 성경을 읽고 느끼는 바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준다. 다만 그가 큰 의미를 두는 부분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앙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는 점이며 다른 사람의 의견차이는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한경직 목사님의 겸손함과 관용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말을 주변사람들에게 듣는다. 나는 스스로 개성이 강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합리화시켰고 딱히 나의 단점이라 생각치 않았다. 하지만 한경직 목사님께 겸손과 관용의 정신을 배우니 그동안 나의 주장이 마치 고집처럼 느껴졌다. 한경직 목사님은 언제나 겸손히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알아 나보다 다소 다른 의견이나 사상도 용납할 수 있는 관용의 정신을 가질 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또 겸손하고 겸손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옳아도 상대를 정죄하고 분열을 가져와서는 안된다. 내 의견을 타인에게 설명하고 설득시키는 일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늘 겸손히 생각할 줄 알아야하며 다른 의견도 포용할 수 있어야함을 깨달았다. 한경직 목사에게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옳은 신학사상과 겸손한 태도, 사랑이다. 나도 그의 정신을 본받아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아집을 버리고 나를 낮출 수 있는 자세를 가질 것이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한경직 목사님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니 이 책을 읽는 동안이 나에게는 큰 감사다.한경직 목사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폐결핵에 걸려 부득이 미국에서 요양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을 고비를 겨우 하나씩 넘기며 한경직 목사는 낯선 곳에서 우울증에 빨려 들어갈 때면, 독방에 누워 하나님께 고백했다. 자신을 돌아보며 죄를 반성하고 참회한 것이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상황속에서도 자신을 반성하며 용서를 구했던 한경직 목사, 우리는 어찌 그의 위대함을 모르고 살 수 있을까. 건강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더 이상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져버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 따위는 상관없이 고국에 돌아가 무엇이라도 해야겠노라 다짐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양에 돌아와 짧게 숭인 상업교사로 활동하다 목사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키로 결심했다. 평양과 신의주를 고민하던 한경직 목사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할 일이 많은 신의주로 떠나 목사활동을 하게된다. 그곳에서 한경직은 여러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한경직은 자신이 희생했지만 문제 당사자들 두명 다 만족하지 못하고 일이 종결되었다. 한경직은 이 일이 마음에 걸려 동료 변호사에게 털어놨지만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쌍방이 불만이라면 조정을 잘한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나라면 한명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을텐데, 둘 다 불만있는게 무슨 잘한 조정이라고 얘기하는걸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료변호사는 만일 한쪽은 불만이고 다른 한쪽은 기뻐했다면 공정하지 못한 해결이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지난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둘 다 이익이 될 수 없는 거래라면 한쪽만 손해를 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지난날들에 어떤 선택을 해왔는가. 어느 누군가가 손해를 보진 않았는가? 어느 누군가는 이익을 보았는가? 그렇다면 내가 내린 결정은 누군가의 눈물이 되진 않았을까? 이렇게 “나의 감사”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시니 나는 오늘도 반성하며 또 생각한다. 한경직 목사님은 그 후 신의주 보린원을 설립했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실천했다. 보린원 설립에는 한경직 목사님의 공헌도 컸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닿은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공헌도 컸다. 목사님이 사회 공헌을 위해 진심으로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물심양면으로 도운 사람들 덕분에 보린원이 무사히 설립할 수 있었다. 내가 알지못하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내가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겠지만 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그리고 나도 타인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다짐한다. 한경직 목사님은 한평생을 타인을 위해 한 몸을 바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셨다. 한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득과 실을 따지지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줄 알기에 더욱더 그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그 무렵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은 점점 심해졌고 한경직 목사는 그럴 때 일수록 마음을 더 굳게 먹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믿었다. 이후 일본은 항복했다. 그 뒤 목사님은 공산당에 맞서는 조직이 필요하다는데 합의를 보고 사회민주당을 조작했다. 하지만 공산당의 압박으로 목사님은 삼팔선을 넘어 서울까지 왔다.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레포트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나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만물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을 뿐더러 살면서 진지한 고찰과 호기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단순히 고등학교 때 윤리를 좋아했다는 이유로 철학 강의를 듣게 된 나에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너무 어려웠다. 만물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도 난해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만물에 무지했던 내가 우둔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지적인 호기심을 한 번도 가지지 않은 나를 자책하는 시간이었다.다시 이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봤을 때 진정으로 나는 만물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을까? 정말 나는 이 만물의 근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까? 다시 고찰하고 또 고찰했을 때 나는 번득 깨달을 수 있었다.나는 죽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많다. 내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으면 무엇이 될지, 어떻게 살아가는 건지, 아니 근본적으로 “나”라는 자신이 존재할 수는 있는지 큰 질문들을 많이 던졌던 것 같다. 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깨달은 것은 결국 죽음도 근본적으로 만물에 대해 생각한 것이 아닐까? 사실 죽음에 대한 관심도 근본적으로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사실 철학이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왜 고대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에 관심을 가졌을까? 왜 우리는 지금도 철학에 대해 사색하고 고뇌하는가? 결국에는 만물의 근원을 알고 싶은 욕망은 자신을 알고 싶은 욕구가 아니었을까? 아마 인간이라면, 모두 한 번씩 내가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나도 마찬가지이다.나는 죽으면 사후세계가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죽는다고 “나”라는 자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고대의 철학자들도 이런 나와 같은 본인을 알고 싶은 욕망에서 철학을 시작하고 만물의 근원에 대해 고찰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고찰로부터 시작 된 물음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철학이라는 큰 학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닐까?“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 라는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만물의 근원을 탈레스와 같이 “물”이라고 생각했다. 탈레스의 주장을 들었을 때 모든 사물의 양분이 습기로 되어 있고 따뜻함 자체도 습기 있는 것으로부터 생기며 이것에 의해 존속된다는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나에게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정말 만물의 근원은 물인가?” 정말 그것은 내가 생각한 만물의 근원에 대한 답이 맞는가? 유명한 철학자의 사상에 따라가려는 건가? 나는 정말 그의 주장에 공감한 것인가? 나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생각했나? 질문을 던졌을 때 사실 나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결론에 당착했다. 탈레스가 주장한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는 결론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답은 내가 생각한 답이 아니다.철학 강의를 들으며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주장한 철학자 탈레스나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 크세노파네스와 파르메니데스 등 많은 철학자가 있었다. 물, 불, 공기, 흙, 원자, 신, 씨앗, 배설물 등 여러 가지를 계속 떠올려 봐도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답은 없었다. 본질적으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며 태초의 생명은 어디서 왔을 까? 무엇이 그것을 탄생시켰으며 번시하게 했을까 고민해보았다.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한 답은 만물의 근원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마 탈레스나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스 등 여러 철학자들이 내가 만물의 근원이 사랑이라 말한다면 비웃을 수도 있겠다. 위에 언급한 철학자뿐 아니라 모든 과학자들도 날 비웃을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닌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양분이나 물이나 불, 배설물 등 실용적이고도 눈에 보이는 것을 만물의 근원이라 말할 것이다. 어쩌면 과학적으로도 그게 옳은 말일 수 있겠다. 그리고 논리적인 증거가 더 많을 것이다.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생각하는 만물의 근원은 사랑이다. 애초에 사랑이 있었기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생물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은 사랑이다. 누군가의 관심이 있었기에 태초에 무언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인류의 사랑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 즉 누군가의 관심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고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 지켜주고 싶은 마음, 관심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인류에 작은 생명이 싹틀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이 생명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남을 위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고 그 사랑 때문에 작은 생명은 싹 틔울 수 있었고 번식할 수 있었고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인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태초에 인류가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니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믿음으로 이루어진 사랑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고 태어날 수 있었다. 이 인류가 번영하고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의지, 믿음, 신뢰라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랑으로서 우리는 태어났고 이 사랑으로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었다.
한경직, 그 삶의 여정 (2019.5.1 수)역사적 인물 연구방법론?세가지 탐구 : 삶,사상,사역(무슨일을 했는가?)?한경직 ‘삶’의 여정0.‘배움’의 여정 : 유학 전/유학 중/유학 후0.(‘사역’의 여정: 은퇴 전/은퇴 후)0.‘마침’의 여정: 사명의 마침*선교사가 들어온다=학교,병원이 생긴다한경직 (5.8)‘리더십’의 정의?앵글로 색슨어의 ‘레단(ledan)에서 나온 것으로 ‘리탄(lithan)을 어근-‘간다’(to go) 라는 뜻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적 성격?’지도자(leader)’란 단어는 13세기까지는 나타나지 않았고, ‘리더십’(leader-ship)이란 말은 1800년경까지도 사용안됨?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정의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후에 걸쳐서 소개되기 시작?쿤츠와 오돈넬, “조직 성원들로 하여금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데 따라 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것”?플레이시맨, “어떤 목표나 목표 달성을 지향하도록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서 개인산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스토그딜, “목표 설정과 목표 달성을 하도록 집단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파이퍼너&프레스튜스,“요구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개인 및 집단을 조장하고 동작케 하는 기술”?쇼우쳐크,“주어진 상황하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개인이나 그룹 활동에 영향을 주는 과정”*리더십들 : 리더군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리더십은 행동양식과 사람들로 나누어져있음리더십의 유형?황의영(지도자의 개성이나 특성에 따라)>권위주의 유형, 보수주의 유형, 민주주의 유형,자유주의 유형, 무간섭주의 유형?엥스트롬>독재적 관료형, 호의적 관료형, 조작적 고무형, 민주적 참가형, 방임형가장 일반적 , 보편적 지도자 유형이론?1939년 레빈,리피트 화이트에 의해 제시-4가지요소 : 결정, 목표, 지도자의 참여,위치?세가지 유형 구분법>전제형, 민주형, 자유방임형유형전제형민주형자유방임형결정지도자가 결정강요지도자의 도움을 받아 토의에 의해 결정구성원들이 자유롭게 결정목표지도자에 의해 목표수립 지시된특징-첫째, 신과의 기본적인 관계성 정립에 유의-둘째, 신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신조-셋째, 규칙적인 자기 부정을 통하여 신의 뜻을 실천-넷째, 겸손을 통하여 인간들과의 관계를 유지-다섯째, 지역의 확장을 통하여 지도력을 이어감?성서적 리더십의 표준적 모델: 왕-종 모델->한경직:’종’ 모델의 리더십‘종’ 모델 리더십의 ‘동기’?가장 큰 동기: 사랑-그리스도인의 리더십과 봉사를 일으키는 근원적인 요소-예수가 요구하는 봉사는 바로 사랑에 의해서 결정-교회 지도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나 자신과 함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겸비((((*죄(선교),무지(교육),가난(봉사)->한경직이 말하는 3가지 외현))))‘종’모델 리더십의 ‘방법’?리더십의 방법: 섬김-자발적 섬김,자발적 종-부득이 함으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순종-교회 지도자는 주인이신 신의 영광과 뜻을 이루기 위하려 절대적인 순종으로 섬기는 종의 길을 걸어가야함이 요구-성공적 리더십의 원리는 예수처럼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것‘종’모델 리더십의 ‘목표’?예수와 같은 삶을 살아감: 구원-성경의 교훈,훈련,봉사,사욕이 모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교회 지도자는 결코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리더십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리더십의 목표를 그리스도의 목표와 동일하게 맞추어 ‘사랑’을 가지고 ‘섬기고 봉사’하며,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가는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리더십이 요구한경직 리더십의 ‘핵심’?’성서적 리더십’으로부터 영향?성서적 리더십의 표준적 모델: 왕-종 모델한경직 : ‘종’ 모델의 리더십(동기: 사랑,방법:섬김 , 목표:구원)->청지기 영성->사명의 리더십->”섬기는 지도자(servant leader)” 개념-가장 성서적이며,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모델-오늘날의 사회와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모델한경직 리더십, 그 구조와 의미 3(05.15 수요일)리더십 연구의 역사방법론?’내연/외연’ :속에서 타면 저절로 밖으로 튀어나온다.?한경직의 내연과 외연기 양심으로 판단0.신(하나님)의 판단한경직과 목회자 자격 윤리1.목회자 자신의 ‘새로워짐(새 사람)’?’새 사람’의 두 가지 의미-‘참 회개와 신앙을 통한’ 영적 의미-그 자신의 생활이 일치되는 삶의 의미2.소명감에 대한 확신?소명감 타진법1.내가 목회를 진정으로 ‘원하’는가2.그 목회를 감당할 수 있는 ‘재능’을 주셨는가3.일정기간 후 목회의 ‘열매’가 있은가4.목회지에서 목회자 자신을 ‘환영’하는가5.목회의 진정한 ‘기쁨’이 있는가3.영적인 비전의 소유?공동체에 ‘목표’를 제시?초대교회의 교회됨-신앙을 서로 나누고 증거-물질 서로 나누고 도움4.계속적인 자기 성장?성장은 곧 삶의 법칙?성장해야 하는 네 차원1.개인적인 차원2.교회적인 차원3.사회적인 차원4.성경적인 차원?성장해야 하는 네 영역0.영적인 면에서 성장0.도덕적인 면에서 성장0.지적인 분야에서 성장0.사회적인 분야에서 성장한경직 목회윤리의 전망 및 비판1.목회자상을 계승시키지 못한 한계“한경직의 윤리적 유산은?종말을 고해야 할 목회자상0.기업 회장형 목회자0.정치 보스형 목회자0.이권과 감투 지향형 목회자0.가난 콤플렉스형 목회자0.권력 콤플렉스형 목회자0.성적 방종형 남성 목회자0.은총 장사형 목회자0.권력 참여형 목회자2.한국 교회와 원로목사 직의 한계?보수화, 현실 안주적 경향의 목회자 양산?노쇠화?배타적인 공동체3.한경직 향수로부터의 탈피?과거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전통의 창조?종교개혁 교회의 본질“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한경직의 설교론1.개신교에서 설교의 위치 및 중요1)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2)개혁교회의 정체성3)목회자의 정체성2.한경직의 설교 원칙1)성경적 설교-성경적=예수 그리스도 중심적2)구원론적 설교“상한 심령을 위로할 수 있고, 절망에 빠진 이들을 새로운 소망으로 일으킬 수 있다.”3)목표가 뚜렷한 설교-단순하고 분명한 하나의 주제를 가져야-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누구나 이해하도록4)실존적 설교(F 걸친 장로교분열-신사참배 문제로 고신측이 분열(1951)-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장로회의 분열(1953)-WCC의 견해차이와 용공주의 시비로 통합/합동의 분열(1959)?공포와 가난에 지친 대중을 유혹하는 사이비 종교?4대 신앙지도원칙을 세우게 됨1)복음주의 신앙2)청교도적인 생활3)에큐메니칼(연합) 정신4)올바른 사회봉사와 사회참여외연2: 한경직의 ‘교육’사상과 사역-형성,구조,0.교육사상 ‘형성’의 장1)가정생활?근면성?배움에 대한 결핍과 욕구 정서2)학교생활?교육철학: 애국심, 신학문, 기독교 신앙?교사의 본 :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오늘날이라고 이 세 가지보다 더 중요한 교육이 있을까 싶다. 나라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존경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는 사람, 현대 모든 학문과 기술과 과학을 배워 현대문명에 뒤지지 않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한경직,[나의 감사]3)유학생활?선진 교육 시스템?장학제도, 아르바이트, 채플, 동아리등0.교육 사상의 ‘구조’1)교육의 목표: 인재양성?민족이 처한 현실의 이유: 죄,무지,가난?죄: 전도, 무지: 교육 , 가난:봉사*제일 중요한 일은 언제나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옳은 신앙을 가진, 그리고 현재 온갖 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귀한가? -한경직,[사도바울에게 배운다]2)교육의 자세: 정원사 의식?사회의 변화 영락중학교, 영락상고로 인가(1959)?숭의여자중학 재건 (1950)?보성여학교 재건(1950)?오산학교 재건(1953)?숭실대학 재건(1954)?장로회신학대학 분립 (1960)?영락여자신학원 (1969)?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립(1974)5.교육사상의 ‘의미’1)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전인교육*(영육혼 / 인간의 3분설)건강,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세계보건기구, WHO)2)성육신적 교육의 본보기 구현3)인재양성으로 국가에 공헌4)통전적 교회교육?’교회. 그러나 그 실패로 인하여 마냥 주저 앉아 절망하고 있으면 죄가 됩니다.”-[무산자의 복음] (1947년 9월)-2)윤치호 선생과의 만남->은혜의 되물림 사상3)요양생활->전문적인 무료요양 서비스 경험->사회적 봉사체계와 시설의 필요성 인식->앨버키키 요양원 총무의 봉사의 모델0.한경직 사회봉사 사상의 신학적 토대1)인간이해-> 인간은 피조물 : 제한, 목적->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인간은 영적인 존재->인간은 회복이 필요한 존재“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입증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인간에게 증거할 사명을 지닌다” - 독일 사회선교 규약 서문-2)구원이해: 영혼구원&사회구원“예수님이 오신 것은 물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지만, 영혼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체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구원받은 인간이라면, 그 인간은 내가 사는 사회를 살만한 사회로 만들어야 할 사회적 사명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1968년3월24일)3)교회이해: 초월적&현실참여적“거룩한 교회의 구별성은 세상과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질서와 정의와 평화와 번영이 있는 명랑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자선사업, 의료, 문화의 각 방면으로 협력을 해야 한다.”4)이웃이해:-게이톤, 페리오이코스,플래시온-가까이 있는 이웃, 사회적 약자가 대상5)고난이해: 목적론적 고난-인간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관점-고난과 약함을 통해 새로운 소명과 삶의 긍정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0.한경직 사회봉사 사상의 구조1)내연이외연 구조2)복음적 사회봉사 구조3)교회-국가-하나님사랑 일체구조0.한경직 사회봉사 사상의 가치1)생명의 존엄성 회복2)전인구원: 교회, 병원, 학교, 기관이 함께3)사회적 연대4)평등(비차별성)5)개인적 가치성:마이크로시스템한경직의 사회봉사사상과 사역 ||2019.6.5(수)5. 한경직 사회봉사 실천의 원리1)사회봉사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다.2)사회봉사는 개인의 가치, 존엄, 온전성을 깨닫고 지지지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