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본능』 스티븐 핑커, 20141958 홍현선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카산드라의 거울』에는 어린 시절에 언어와 완전히 차단된 시기를 지내고 그 결과 초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나온다. 언어 없이 자란 아이는 언어와 보편적인 규칙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자라고 그 결과 언어를 익힌 다른 이들은 잃어버린 어떤 감각을 잃지 않고 온전히 키워냈다는 설정이다. 꽤나 오래전에 읽은 소설인데 이 부분이 흥미로웠기에 『언어본능』을 읽던 도중 생각이 났다.어린아이가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세상이 재단되어 나가기 시작한다고 한다. 언어는 그저 사람들이 의사소통하기 편하게 고안된 수단에 불과해 모든 감정이나 느낌을 담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단되어 나간 부분은 결핍이 되어 남게 되는데, 언어로 세상을 재단하기 시작한 우리는 결핍이 무엇인지 수가 없어진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립스틱인지, 나아가서 아름다움을 갖고 싶은 건지, 혹은 아름다움 너머의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정한 언어로 어떤 특별한 감정이나 생각을 온전히 표현해 낼 수 없기에 시인이 생겼고 시인은 독창적인 언어로 사람들이 잃은 어떤 감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평생 노력한다는 얘길 수업시간에 들은 적이 있다. 환상, 판타지는 우리가 언어를 배우며 잃은 무언가를 다시 일깨워준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이란 판타지 소설, 영화에 나오는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이지 않은 상상속의 무언가를 일컫는다.) 환상은 그저 허무맹랑하거나 유치한 상상일 뿐이 아니라 재단되어 결핍된 무언가를 다시 되찾기 위한 것으로 우리가 갖고 싶거나 가지고 있었어야 하지만 없는 무언가를 채워준다. 이 일련의 이야기들을 들어오며 나는 언어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어떤 규칙으로 이해하게 되었다.『언어본능』에 쓰인 많은 예시들은 거의 영어문장으로 되어있었는데 내가 워낙 영어에 젬병이라서인지 아 니면 그냥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이해가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내용 요약을 위해 여러번 읽어본 결과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한 바로는 언어란 배움의 산물이라기보단 인간의 본능으로 보이며 인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내가 그간 수업시간과 다른 책들에서 봐온 내용과는 상충되는 부분이 좀 있었는데 내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개념을 잘못 이해해서일지 읽는 내내 약간 혼란스러웠다. 이 책은 문법적인 부분에서의 자연생성을 말하는거고 원래 내가 알던 위의 내용은 언어 체제에 대한 개념인지도 모르겠다.위의 의문점에 더해 언어란 것이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교류 없이는 생길 수 없는지,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의 모방이 들어가야 생길 수 있는지, 최초의 언어는 그럼 어떻게 생겼을지 책을 읽어가며 꼬리를 문 의문들이 점점 생겨났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남태평양 농장 노동자의 어린 자녀들은 피진어를 사용하며 단편적인 단어열을 재생산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전에는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복잡한 문법을 도입하여 완전히 새롭고 표현이 풍부한 언어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하나의 피진어를 그들의 모국어로 받아들여 만들어 낸 언어인 ‘크리올어’는 초기 이주자들의 피진어에는 없는, 그리고 단어의 발음 말고는 식민지 개척자의 언어와도 상당히 다른 규격화된 어순과 문법적 표지들을 갖춘 진정한 언어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의 토대가 되는 피진어가 없더라도 규격화된 어순과 문법적 표지들이 있는 완전한 하나의 언어를 창조해낼 수 있을까? 이 책은 언어 회로의 구성에 관여하는 특정한 유전자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구 최초의 사람인 원시인들도 우리처럼 규격화된 어순과 문법적 표지들을 갖춘 언어를 사용했을 거란 말인가? 아니면 점점 문명이 발전하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점차적으로 이어져가면서 언어라고 할만한 것이 규격화된 걸까?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작가가 대학생에게 강의하기 위한 용도로 쓴 책이라 그런지 꽤 쉽게 읽히는 편이다. 작가는 이 책의 첫 장에서 미술은 근대의 발명품이라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위대한 작품들은(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근대에서야 이 시대의 문화에 맞게 차용된 미술품이란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다양한 제도들에 의해 형성되고 정의된다. 제도는 사물들의 경계와 관행을 설정해 준다. 이는 액자틀이 그 안에 있는 것을 회화로 보이게 만들고, 좌대가 그 위에 있는 것을 조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간 미술사에 대해 많은 교육을 받아왔다. 특히나 미대에 다니는 나는 거의 4년 내내 미술사에 대한 이론 수업을 하나씩 들어왔는데 1,2학년 때만 해도 미술이 무엇인가 누군가 물어본다면 어딘가 뭉뚱그려진 답밖에 내놓을 수 없었다면 3,4학년쯤 되어 현대미술에 대한 강의로 접어들어서야 드디어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뒤샹의 ‘샘’은 예술이란 작가의 ‘선택’이며 보여줄 만한 가치를 선별하고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역사적으로 미술 창작은 어떤 특권 아래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천재 예술가들 가운데서 여성이나 흑인을 찾아보긴 힘들다. 회화 작품들에서 여성은 항상 벗은 몸으로 표현된다. 전통적으로 미술사에서 여성들은 이성인 남성 창작자들과 관객들에게 시선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전에 현대 문학 강의에서 한국 문학에서의 여성은 성녀(순수한 누이, 헌신적인 어머니) 또는 창녀(육체의 마돈나, 타락의 상징)로만 표현되며 그저 평범한 하나의 인간상으로 표현되는 작품은(여성 작가들이 떠오르기 전까진) 매우 소수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간 어릴 적부터 쭉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여성인물 형상들을 떠올리곤 조금 배신감이 느껴졌더랬다. 사실 이는 최근에 와서도 딱히 엄청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이진 않은데, 물론 문단이 걸출한 여성 작가들을 계속 배출해왔긴 하지만 최근까지도 여성의 생리를 엄청나게 비현실적으로 그린 부분이 있는 작품이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곤 했다는 말을 듣고(참고로 리얼리즘 소설이라 한다.) 기가 찼던 적이 있다. 이는 비단 문학과 미술에서뿐만이 아니다. 최근 영화 관련 기사에서 요즘 들어 많은 여배우들이 역할이 없어 쉬고 있다는 이야기를 봤다. 이는 한국 영화가 산업적으로 크게 발전하고, 흥행이 될 만한 영화에 투자·기획이 쏠리면서 시작된 현상이라 한다. 여성 중심의 영화도 많았던 70~80년대와는 달리 최근 몇 년간 영화의 스토리나 캐릭터가 장르적으로 획일화되면서 점점 더 남성 중심적인 액션·스릴러가 남성 감독들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점점 알면 알수록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쓸데없는 우려로 보이진 않지 않은가.
영화 -차가운 벌판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1. 영화 선택 이유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그간 나에게 제주도는 그저 대표적인 휴양지나 피서지, 아름답고 평화로운 남쪽 섬이라는 정도로 매우 단편적으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그간 국내 휴양지로 대표되는 제주도에 대해선 어느 정도 관심이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제주도의 역사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이 이란 영화를 사전조사하면서 제주도에 공산주의/민주주의 체제의 갈등으로 인한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4.3사건은 역사교과서/참고서에도 큰 비중 있게 실리는 내용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이 20살이 다 되서 같은 나라에 일어난 잔혹한 학살사건을 처음 알았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처절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이에 대한 영상물을 접해보고 싶어서 영화 을 선택했다.2.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2-1.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실이 담긴 영화 올해 4월3일은 제주 4.3 사건 발발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주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하며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겠다”고 약속했다. 70년이 지난 사건을 두고 ‘완전한 해결’을 언급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 4.3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법 하다.문 대통령의 발언은 제주 4.3 사건이 아직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미완의 과제임을 상기시킨다. 문인들이 되살리기 시작한 4.3의 기억은 학계,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역사 속에 묻히지 않고 재평가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많은 오해를 겪고 있다.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주 4.3 사건은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아닌 이념 대립에 따른 정치적 사건이라는 오해 속에 놓여있다. 좀 더 가까운 역사인 5.18과 6.10이 얼마 전 발의된 헌법개정안 전문에 포함된 것과 비교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식에서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제는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은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던 제주 4.3 사건을 재조명하며 가장 약한 개인들의 죽음을 비춤으로써 역사적 사건으로 인한 평범한 개인들의 수난에 초점을 맞춰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 사건을 바라보는 이들의 인식을 깨부순다.영화 은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 나오는 시점은 10월 17일 제주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이라는 표고문을 발표한 때이다. 이 당시 마을의 95% 이상이 불에 타 없어졌으며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이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산으로 들어가 무장대의 일원이 되는 피난민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영화 은 제주도 한 마을의 피난민이 제주도경비사령부를 피해서 마을을 떠나 다 같이 동굴 속에 숨어 지내는 모습과 군대 안에서의 모습을 담아내었다.이 영화는 단지 제주도민에 대한 군인의 무자비한 폭행만을 담아내고 있진 않다. 영화는 삭막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걱정하고 챙기는 제주도민들의 모습을 크게 조명하고 있다. 피난민중 한명인 상표는 총기를 든 군인들을 유인할 때 자신이 위험에 처해도 자신은 말다리라며 걱정할것 없다 말하고, 피난민들은 몸을 숨기기 위해 동굴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린 심각한 상황에서도 서로 사투리와 구수한 욕을 하는 해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유머를 주나 한편으로는 위태롭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과 대비되어 더 슬픈 분위기를 심화시킨다. 또한 이런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수평적인 공동체성과 그에 대비되는 군인들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속성을 강조시켜 보여준다.2-2. 바다 건너편,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이 영화에서 ‘지슬(감자)’은 단순히 굶주린 주민의 배를 채우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진 않다. 제주도에서 흔하게 나고 자라는 지슬은 무동의 어머니가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챙기곤 하는 것이며 군인 상덕이가 밤에 울고 있는 덕순이에게 전하려한 것, 또 제주도민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다가 다친 군인에게도 나눠주는 것, 즉 제주도민의 정을 나타낸다. 영화의 제목인 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서로를 걱정하고 챙기는 그런 따뜻한 인간의 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지슬’은 한자어로 땅에서 나오는 열매란 뜻인 '지실'(地實)이라고도 한다. 오멸감독은 영화 맨 마지막에 나오는, 죽은 엄마와 살아 있는 어린 아이, 그 장면에서 아이를 지슬로 나타냈다 한다. 우린 그렇게 이 땅으로부터 자라난 후손들이며 우리 역사가 그런 역사란 것이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그런 역사를 관통해왔으며, 그 아이가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영화 속 주민들의 투쟁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많은 이들이 군인의 총에 죽고, 상표는 군인들에게 동굴의 위치를 알려주어 마을 주민들을 배신한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군인 세력에 굴복하거나 항복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동굴에서 군인들은 접근하기도 힘들어하는 마른 고추연기를 바로 앞에서 견뎌내며, 그들의 삶의 터전을 다 같이 지켜나가고 저항했다. 영화는 이를 통해서 감자와 같이 마른 고추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항복하지 않고 꿋꿋이 저항하는 제주도민의 의지를 보여준다.영화에서 군대의 상황은 중간에 덕순의 반항으로 인해 2,3명 정도의 사상자만 있을 뿐 큰 인명피해 없이 몹시 성공적으로 흘러간다. 그들은 정부의 명령대로 제주도의 마을을 불태우고, 동굴에 숨었던 제주도민도 찾아낸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서 군대에서 물을 뜨던 어린 소년(주정길)이 군대에서 높은 지위에 있던 김병장을 돼지 삶는 가마솥에 넣어 태워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정길은 김병장에게 ‘이제 그만 죽이세요.’라고 한다. 감독은 왜 군대에서 낮은 계급에 있는 사람이 병장을 죽이는 이런 비현실적인 장면을 넣었을까? 이 장면은 김병장을 짐승과도 같다는 것을 넌지시 나타내며, 정길이를 통해 당시의 제주도민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대신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금 허구적인 요소를 넣어서라도 군대의 우두머리가 비굴하게 죽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복수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감독의 제작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감독은 정치적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기보단 희생당한 제주도민을 치유하기 위해 이 영화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마지막에 복수와 제주도민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해 일종의 위로를 보낸 것이다.실제로 영화에서는 4.3사건으로 인해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씻김굿적인 요소를 볼 수 있다. 영화는 신위-신묘-음복-소지의 네 개의 장으로 나뉘고, 마지막에는 죽은 이들을 위해 지방을 태우며 그들의 넋을 추모한다. 신위(神位: 영혼을 모셔 앉히다), 신묘(神廟 : 영혼이 머무는 곳), 음복(飮福: 영혼이 남긴 음식을 나눠 먹음), 소지(燒紙: 신위를 태우며 염원함)라고 이름 붙여진 네 개의 장은 오멸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제사를 지낸다는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제의가 갖는 애도의 기능은 죽은 자의 원혼을 떠나보냄으로써 산자들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애도의 메시지도 결국 4.3사건으로 죽은 이들과 남아있는 산 자들에게 보내는 애도와 진혼의 메시지다.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 감상문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 -감상문우리 할머니는 올해로 연세가 팔순이시다. 어릴 적에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아시는 얘기가 없어서 맨날 같은 동화책만 반복해서 읽어주시던 할머니가 6·25를 겪은 세대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옛날 얘기 대신 전쟁 났을 적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강원도에서 대가족과 살던 중 초등학교 다닐 즈음에 6·25를 맞았다. 50년도 더 된 얘기라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면서도 더듬더듬 어린 시절의 할머니가 갓난쟁이 동생 하나는 등에 업고 5살배기 동생 하나는 손을 잡고 산을 타서 피난을 가던 얘기를 해주곤 하셨다. 이야기를 듣던 당시 나와 비슷한 나이 대였을 할머니가 엄마 젖이 먹고 싶어 우는 갓난애한테 고드름을 따서 물려주던 얘기, 먹을 게 없어서 뱀을 잡아 먹던 얘기들은 다른 옛날얘기들보다 큰 흥미를 일으켰고 중독성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뭔가 현실감이 없게만 느껴졌고 전쟁을 생소하게만 느끼던 어릴 적의 나에게 그 얘기들은 공상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무용담처럼만 느껴졌다.할머니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얘기를 넌지시 해보면 아직도 우리 할머니는 공산주의는 빨갱이고 아주 나쁜 거라며 펄쩍 뛰신다. 6·25 전쟁은 할머니의 정신 일부를 제약하는 일종의 정신적 외상이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할머니에게 공산주의란 집을 잃게 하고 가족을 잃게 한 끔찍한 존재인 것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북한 공산주의체재 및 정권을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계시며 북한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김정은 저 죽일 놈’하시며 북한은 언제 망하냐며 혀를 끌끌 차시곤 한다.박완서 작가는 작가의 개인사가 충실하게 재현되는 자전 소설에서 전쟁기의 체험 등의 비슷한 체험을 반복해서 다룬다. 박완서에게 있어서 상처의 원형을 이루는 것은 한 때 좌익에 관여했다가 전향한 오빠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목격한 인간의 존엄과 기품을 용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잔혹함이었다. 박완서는 그녀의 체험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과거의 체험과 상처를 회상하며 심지어는 그 기록을 통해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포착해내는 경지에 이른다.예전에 어느 현대미술 전시에서 작가의 분노의 경험을 물건에 바느질로 새기는 작품을 본 적이 있다. 보통 분노의 경험은 스트레스 해소 행위를 통해 잊거나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정말 큰 분노나 트라우마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자양분이 될 수 있고 그 작가는 이것을 바느질이란 행위를 통해 새겨 발표한 것이다. 그것을 보니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께 혼나거나 싸운 일을 일기장에 적어놓던 일이 기억났다. 그 시절의 나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분노를 친구들과의 수다 혹은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등으로 풀어내는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그 일을 일기에 적어놓고 잊지 않도록 꼭꼭 새겨두려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다보니 분노와 상처를 치유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되었다. 상처받은 경험을 글로 풀어내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내 자신이 위로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는 박완서의 작품과 박경리의 『불신시대』나『암흑시대』같은 작품들 또한 분노와 트라우마를 글로 정리해가는 치유의 글쓰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김원일은 소설을 구성하고 추동하는 문제의식의 중심에 아버지를 증오와 부정의 대상으로 놓는다. 김원일은 살면서 심각한 사건들을 많이 겪었던 유년시절의 체험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성인이 된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새롭게 해석해내고, 이 과정을 통해서 과거의 한과 상처를 씻어낸다. 사적인 체험을 민족사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점이 일기장에 한풀이를 하는 초라한 나 같은 사람과는 다른 이들 작가들의 대단한 점이라 하겠다.남북한은 현재 휴전상태에 있으며 북한의 도발과 전쟁에 대한 뉴스가 종종 흘러나와도 사람들은 이젠 점차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하지 않는다. 이는 계속되는 도발에도 아직 전쟁이 일어나진 않았으며 관련 뉴스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나왔기에 이에 대해 무감각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는 분단 극복의 의지를 내세우기보다는 그것을 외면하는 경향이 늘고 있고, 특히 1990년대 이후의 문단에서는 분단 현실에 대한 고민의 흔적조차 찾기가 힘들다. 우리는 은연중 지금 우리나라가 휴전상태임을 잊고 산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북 전쟁이 우리의 목숨을 위협함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보통 당장 눈앞에 닥친 중간고사나 취업 등의 일에만 총력을 기울인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나 잠시 분단 상황에 짧은 관심을 가질 뿐이다. 이호철의 단편『판문점』의 화자 진수는 판문점이 사라지고, 고어가 되어버린 판문점이라는 단어는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을 그런 때를 상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판문점은 아직 건재하다. 분단 60년이 경과한 지금, 분단의 상처와 질곡은 여전히 우리의 정상적인 삶을 가로막는 두꺼운 벽으로 존재한다.오늘날 우리에게 분단문학은 분단 상황이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나게 상기시키고 남북 관계에 대한 이해와 고찰을 하게끔 하는데 의의가 크다. 어릴 적에 내가 처음 읽게 된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은 구드룬 파우제방이 쓴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었다. 이 소설은 통일 전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아동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라 하는데 어른이 돼서 보아도 충격적일 정도로 전쟁의 처참한 민낯을 샅샅이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 접하게 되었는데 잔인한 묘사와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난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의 순간과 인간을 마치 물건보다 못한 존재로 보이게끔 하는 전쟁의 비정함을 간접 체험한 최초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 반공주의와 자전소설의 형식 -박완서를 중심으로6·25 전쟁은 사회 구성원 전부를 제약하는 일종의 정신적 외상으로 현대문학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제재이며 문학 작품과 긴밀한 상관성을 갖는다. 한국 전후 사회를 지배한 이념의 하나는 반공주의인데 반공주의는 우리의 경우에 북한 공산주의체재 및 정권을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하는 전재 하에 그것의 철저한 제거의 붕괴를 전제하는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논리와 정서를 뜻했다. 작가들은 반공주의라는 시대 분위기를 무의식적인 억압기제로 받아들이면서 창조적인 예술 활동을 방해받아 왔다.박완서(朴婉緖,1931~2011)는 해방과 전쟁기를 살아오면서 반공주의의 폐해를 몸소 겪었고 1990년까지도 그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자전소설은 작가의 개인사가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된다는 특징이 있으며 반공주의와 현대소설의 상관성을 그녀의 자전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완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반공주의의 압력과 그로 인한 자기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화운동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겪으면서 점차 그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박완서 소설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전쟁기의 체험 등의 비슷한 체험을 반복해서 다룬다는 데 있다. 박완서에게 있어서 상처의 원형을 이루는 것은 한 때 좌익에 관여했다가 전향한 오빠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목격한 인간의 존엄과 기품을 용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잔혹함이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만행의 주체로 남한을 지목한다는 것은 자칫 현 체제를 비난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었던 당시 상황 때문에 박완서는 그녀의 작품에서 오빠의 죽음을 인민군의 소행으로 처리하였다. 박완서는 소설을 쓰면서 남북한 모두가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어 저지른 비인간적인 만행을 증언하고 싶지만 그것을 정직하게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든 죽음을 빨갱이가 반동이라고 해서 죽인 것”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런데 그것은 단지 개인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를 갖는 것은 고향에 대한 담담하고 중립적인 대상으로서의 비극적 체험과 관계될 것이다.『그 여자네 집』은 ‘특정 인물’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특정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작품이고, 그렇게 보자면 소설에서 만득이가 압록강 선상에서 통곡했던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바로 지척에 있으면서도 갈 수 없는 고향 산천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을의 화초이자 꿈이었던 곱단과 만득을 비극적인 이별로 몰아간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징병과 정신대, 그리고 해방 이후 굳어진 분단체제는 그들을 영원한 이별로 몰아갔고, 그들의 순정이 비극적인 결별로 변화되었듯 공동체로 표상되는 마을의 운명도 변화되었다. 순수했던 고향 마을도 역사적인 변화와 함께 훼손되고 결국은 회복할 수 없는 공간이 된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고향은 단순한 향수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에서 복원해야 할 미래이다. 현대소설은 분단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서 특유의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 왔다. 박완서는 1990년대에 들어 과거사를 단순히 회고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그것을 현재의 문제와 연결해서 제시하였고, 한편으로는 현재의 근원이자 미래의 꿈으로 그려내었다.하지만 작품에는 ‘북한’에 대한 퇴영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화자가 회상하는 북한은 현실의 북한이 아니라 노년에 반추하는 젊음과 더불어 존재하는 미화된 공간이다. 분단 현실을 극복한다는 것은 북한을 일정한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규율 속에 놓여 있는 삶의 현장으로 보는 시각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반공의 공포와 작가의 자기검열 -『남과 북』의 개작을 중심으로6·25전쟁 이후 일상생활을 사로잡고 규율하는 반공주의는 작가들에게 자기검열의 기제로 내면화되어 작품의 구성과 서사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반공주의의 통제는 박정희 집권 이후 한층 심각해져서, 한국전쟁을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 전쟁의 절반을 담당한 북학 쪽 이야기를 빼버리거나을 비판하고 있으며 그가 궁극적으로 강조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작가는 휴머니즘을 동반하지 않은 이념이란 오히려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것, 그래서 모든 행위의 앞머리에는 휴머니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좌우의 이념을 넘어서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김원일의 소설이란 유년기에 각인된 원죄와도 같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자 그로 인해 고통 받은 가족들의 한을 승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농촌 사회에 온존했던 전통적인 미풍이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왜곡, 변질되는 광경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탈분단의 과제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시사해준다. 분단 극복이 남과 북이라는 이질적인 시스템을 조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엄을 회복하고 그것을 사회적 가치로 정착시키는 일이라 하겠다.▷ 사대부의식과 반공주의 -『영웅시대』를 통해 본 보수 이념의 존재방식『영웅시대』는 이문열이 겪은 불행한 개인사와 가족사를 작품화한 것이다.『영웅시대』에서는 유가의 사계층 중심의 덕치사상과 평등의식이 공산주의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작용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작품에서 이동영이 온몸으로 확인한 진실은 이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거나 실제 현실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환멸과 거부감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 소설에서 이동영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가 사회주의자의 좌절과 몰락을 통해서 반공주의가 구축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노모와 정인을 중심으로 한 서사는 반공주의의 억압적 규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통스러운 입사 과정이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좌익이라면 그 가족 친지까지 무조건 검거, 처단하는 상황에서 노모와 정인은 반공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민중에게 중요했던 것은 생존이었지 어느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라든가 정통성의 문제는 아니었다. 노모와 정인은 종가의식과 기독교에 투신하며 이들은 궁극적으로 허무주의라는 이념에 도달하게 된다.『영웅시대』를 통해서 보고자 했던 있을 뿐이다. 『변경』은 작가 이문열이 갖고 있는 보수적 가치와 이념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고백의 서사라 할 수 있다.▷ 반공 사회의 규율과 문학의 증언 -이호철의 『심천도』를 중심으로반공주의는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멘탈리티가 되기까지 하였다. 반공주의는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단순한 이념을 넘어서 분단국가 수립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동의와 억압의 장치로 기능해 왔다. 이호철의 『심천도』는 우직한 성격의 이원영을 통해서 근대화 정책을 주도하는 공무원 사회를 비판하고,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반공주의의 허구를 예리하게 파헤친 거의 최초의 작품이다.이호철이 『심천도』에서 문제 삼은 것은 박정희 정권 초창기인 1965년을 전후의 시대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공무원 사회이다.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당시 공무원 사회에서 흔히 있을 법한 사소한 사건인 ‘공필예산 처리문제’를 놓고 한 부서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이다. 이 작품이 생동감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도 공무원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파노라마처럼 배치해서 공무원 집단의 특성을 실감나게 포착한 데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타성적 행위가 단순히 이들 개개인의 가치관이라든가 습관 때문만은 아니며 궁극적으로 공무원 사회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 말한다. 또 작품에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주목한 것은 ‘근대화 병’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허위의식이다. 주인공이 맞서는 공직 사회란 단순한 공무원 집단이 아니라 당대 사회를 구조적으로 혁신코자 했던 근대화 주도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다.당시 반공주의는 모든 이념을 압도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국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주장 이외에는 어떤 구체적인 내용이나 가치를 갖고 있지 못했다. 반공주의는 뚜렷한 내적 체제를 갖추지 못한 채 지배집단의 생존 도구로 활용되었고, 그래서 그 내용은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규정되었다. 소설의 인물들은 이원영의 정당한 공세를 피해 엉뚱하게도 상대를 ‘빨갱이’라고 매도함구하는 시각의 역사적 확장을 보여준다. 이들에 의하면 분단의 실질적 원인은 이데올로기의 대립뿐만 아니라 과거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구속해온 경제적·신분적 파병에 있다. 대표적인 분단소설가로 평가받는 김원일, 조정래, 현기영 등에게서 보이는 일관된 주제는 분단의 자기화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이다. 문학사에서 좌익, 특히 빨치산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고 그 실상이 종합적으로 조망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였으며 1970년대 소설은 체험의 개별성에 폐쇄되어 개인적 체험과 역사적 사실의 두 영역을 유기적인 전제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천착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객관화하고 나아가 공산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체의 상대화를 꾀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 의거하자면 분단 극복의 진정한 길은 민족 내부의 갈등요인을 제거하고, 누구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문학사에서 민족 주체성의 시각에서 외세를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은 1960년대 이후였다. 미국은 우리를 공산화로부터 지켜주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던 상황에서 미국과 외세의 문제를 조망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소설에서 외세에 대한 인식은, 『분지』에서 보인 문제의식이 한층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심화되어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정래 작가가 이런 현실에 대해서 강한 비판의식을 보였던 것은 『거부반응』에서 제시된 것처럼, 미국은 우리에게 결코 긍정적인 존재만은 아니라는 역사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진상국이 쓴 『아베의 가족』에서 작가의 관심이 모아진 곳은 외세로 인해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산스러운 삶이지만, 거기에는 외세에 대한 고려 없이는 결코 분단문제를 풀 수 없으리라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분단의 비극은 이렇듯 단순히 남과 북의 대립에서만 연유한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개입에 의해서 더욱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