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과 교육사회학과목교육사회교수학과이름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 처음으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만났다. 독후감을 쓰기위해 읽던 때와는 다르게 교육사회학을 배우고 그 관점에서 이 책을 이해해야한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과는 다르게 얕은 지식이지만 배운 내용을 토대로 생각하니 그들의 삶이 또 다르게 느껴졌다.가난한 식민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괭이부리말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판잣집이라도 한 칸 얻어 살려는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어와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인천 만석동에 있는 가난한 동네로?그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가난을 함께 하며 살아온 김중미 작가의 30년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작가 김중미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면 작가는 아동문학가인 동시에 지역운동가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고스란히 반영해 책을 써내려갔다고 볼 수 있다. 누구도 가난을 선택해서 태어난 아이들은 없는데 가난 때문에 상처받고 살아가는 아이들과?그 아이들을 어떻게라도 부여잡고 힘을 보태고 위로의 손을 내밀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려 애쓰는 저자라는 것을 느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흔히 아는 '봉사'나 '행복', 그리고 '희망'의 소중함을 근본적인 면에서부터 생각하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난하지만 누가 왔을 때 늦은 시간이라도 꼭 밥을 함께하는 모습도 정겹게만 느껴진다. 현대 사회가 되어 조금은 각박해졌지만 서로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고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기에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은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나는 이 책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김명희 선생님’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았다. 김명희는 숙자와의 비밀이야기로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준다. 명희의 아버지는 한 살 때 돌아가시고 남은 명희의 가족들은 괭이부리말로 오게 되었다. 괭이부리말은 그들에게 정류장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명희는 선생님이 되어 괭이부리말에 발령받은 것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어릴 적 명희의 눈엔 괭이부리말은 날마다 술 먹고 싸우는 사람, 허구한 날 화투장 만지는 사람들이 가득해 구질구질하게 보였고 이곳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가족들과 생각을 공유하였다. 명희는 자신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닫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판단해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거나 누군가에게 이 동네에 산다고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없이 지내왔다. 그렇기에 선생님이 되어 괭이부리말에 발령받았을 때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안 된다고 생각이 박혀있던 것이다. 명희는 영호가 ‘너도 똑같구나’라고 한 말을 듣고는 어릴 때 선생님들한테 하도 들어 영향을 받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고 자각한 후 명희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다시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마음을 잡은 뒤 명희는 단단한 빗장으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자신을 깨닫고 자신이 봐왔던 구질구질한 부분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따뜻한 희망을 갖고 사는 괭이부리말 사람들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녹아들게 된다.
교육철학 및 교육사, 동학을 만나다과목교육철학 및 교육사교수학과이름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사상과 종교는 혼란기를 통한 위기의식의 조성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건설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등장하는 것이다. 세도 정치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기성 종교인 불교와 유교가 종교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던 틈을 이용하여 외래 종교인 천주교가 점차 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서양 종교인 천주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시하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금지하는 등 우리의 고유한 풍속을 해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천주교의 확산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지배층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많았다. 바로 이러한 때, 경주의 몰락한 양반인 최제우가 새로운 사회건설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민간 신앙과 유교, 불교, 도교를 융합하여 1860년에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학’이다. 동학이 만들어져 포교되던 1860년대는 서양 세력의 침략 위협과 천주교의 확산으로 서양에 대한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고조되던 때여서 이러한 때에 최제우는 우리 것을 지키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동학을 창시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적 모순 속에서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주장했기에 동학은 빠르게 민중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동학’이라고 하면 중학생 때에 배운 동학농민운동이 가장먼저 떠오른다.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동학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이 지내왔던 나에게 동학과 교육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동학에 대해 검색하고 책을 읽어 보았다. 교사가 되는 것에 동학이 나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처음 시작할 때엔 알고 있는 지식이 너무 얕아서 동학에 대해 간과하고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과제를 위해 마냥 ‘동학과 교육사상’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레포트를 쓰고 있는 지금의 나를 한층 더 참된 교사의 길로 이끌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교사로서 내가 지향해야할 방향, 가져야 할 사회를 꿈꿀 수 있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최수운은 부친과 자신의 현실적 불운을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함께 연관 지어 생각하며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는 현실의 모순된 삶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을 위주로 사상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것이 봉건제도에서의 신분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함께 사회개혁사상과 외세 침입에 대항하는 민족의식인 자주사상까지 생각을 미치게 했다. 현재생활에 유익한 것에 가치를 두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는 이러한 사상이 역사상 잊지 못할 동학혁명과 3.1운동을 일어나게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 동학의 시간관은 과거 지향적 시간관념을 벗어나 현재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적 시간관념,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관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시간관이 지금의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수운이 동학을 창시할 때 타락한 계급적 봉건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질서와 인간관계를 요구함으로써 인간성 회복을 주장한 시천주사상은 인간간의 평등한 인격적 관계로의 회복이 전제되어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바로 남성과 여성, 상하, 존비를 막론하는 인격존중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동학은 나와 상대의 진정한 상호 인격적 관계를 중요시 한다. 동학의 이러한 인간관계관을 생각해보면 교사가 되어 교육환경에 있을 때 나와 학생 간, 나와 다른 교사 간 등의 관계를 맺는데 필요한 가치관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교육자로서 가장 기본으로 내재해야 하는 가치관이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중학생 때 권위주의적인 선생님이 계셨는데 학생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 주기보단 상하 관계로서 학생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교사였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나와 같은 생각은 하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동학을 통해 교육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이 단순히 동학의 교육전통 사상과 제도를 재현시킨다는 것이 아니고, 동학의 교육사상과 전통이 현재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를 생각하며 동학의 교육사상에 대해 자 학생들을 보면 인성 관련된 이야기나 수업 외의 다른 이야기를 하는 교사의 수업을 아예 듣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도 딱 지식만 전수하며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단순히 수단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현대의 모습이 교육상황에서도 만연하니 나는 교사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단순히 지식전달만이 교사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인격교육, 인간성 회복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그립고 좋았던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선생님이라고 대답한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지식전달보다는 사람과 사람간의 상호존중이 우선시되고 인격교육 등이 우선시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생님도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나를 나 자신으로 대해 주셔서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여 기억에 남은 선생님이신 것 같다. 이런 점들을 동학은 교육이 인간에 대한 상호존중성이 먼저 있어야한다 라고 시사 한 것 같다. 교육적 인간화에는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해방적 인간화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인간은 사회구조 속에 현존하는 제도, 가치, 지식의 부적절함을 찾아내고 비판함으로 사회는 발전 가능성을 갖게 된다. 동학은 당시 봉건사회의 절대적 권위와 모순된 제도를 비판하고 대항하는 혁신적인 발전을 도모했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사회에 내재하는 뿌리 깊은 절대적 권위와 모순된 제도를 비판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두 번째로 동학의 평등교육사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유와 평등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기본이념이다. 그 중 평등은 전통사회에서 주장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평등의 사전적 의미는 1)양, 정도, 가치, 지위, 능력 따위의 동일, 균등, 동등, 동격, 대등한것, 2)균일성, 일양성을 뜻한다. 평등이란 사회적, 도덕적 철학으로 신분, 남녀, 노소에 관계없이 만인은 만인 앞면 부정입학과 부정 처리된 성적들로 문제가 되고 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체육교육과 진학을 목표로 하면서 이화여대의 입시제도도 알아보고 했는데 승마부가 새로 생겼다는 것은 알았지만 누군가만을 위해 생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모두가 똑같이 노력하는데 교육이 평등하지 못하고 누군가만을 위한 것이 된다면 학생들은 그 안에서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할 지 갈피를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동학의 평등사상에 대해 공부하니 현대 사회가 물질적으론 옛날보다 많은 발전을 했지만 옛날에 비해 사상적인 면에서는 하나도 발전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정말 많은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부정을 저지른 당사자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그렇게 될 수 있게 묵인한 교육사회 역시 큰 문제이다. 교육사회에서 진정한 평등은 무엇인가? 평등하게 교육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며 더 평등하고 나은 교육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동학의 평등사상 중에 여성의 입장인 나는 무엇보다 여성평등교육에 제일 먼저 눈이 갔다. 기독교의 경우 구약성서에 여자는 뱀의 꼬임에 속아 넘어갈 만큼 열등한 존재라고 나타냈고, 불교 경전 역시 여성은 부정한 것이고 성불 할 수 없다고 했다. 가부장적 의식이 강한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두 시대적? 사회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학은 유???? 불? 도 삼교를 합일 하면서도 평등사상은 강하게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도 많이 남아있는 여성 차별이 봉건사회에서는 얼마나 심했을지 가늠할 수도 없었을 때에 동학은 이러한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은 한 인간으로 받아들였다. 부녀들도 입도수련하면 도성덕립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남녀 평등관을 갖고 있었다. ‘대인접물’에 있어 ‘누가 나에게 어른이 아니며 누가 나에게 스승이 아니라 하리오 나는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배울만한 것은 배우고 스승으로 모실만한 것은 스승으로 모시노라’라고 하며 여성이나 어린이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며 모든 인간에 중이기에 여전히 차별의 모습들이 남아있다. 우리는 동학의 양성평등적 인간관을 계승해 교육환경을 점차 점차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동학은 여성의 평등과 함께 아동의 평등교육도 주장하였다. 아동을 평등하게 개한 것은 교육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수운은 ‘갓난아기의 어리고 어림이여, 말도 못하나 그 부모를 알아낸다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이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지 못하겠는가?’라고 말하며 아동은 신비한 존재이며 인간, 한울님이다 라고 표현했다. 아동 평등에 관해선 아동 체벌에 관해 중요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 동학에선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고 여긴다. 서양 속담 중에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라는 말이 있지만 내가 교사가 된다면 나는 동학처럼 체벌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 해와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하는 전래동화의 이야기를 보면 강한 바람을 불었을 때 옷이 조금씩 벗겨지나 나그네는 옷을 꽉 붙잡고 있고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쬘 때 비로소 옷을 벗는다. 체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는 강한 바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체벌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체벌 후에 더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지만 일시적일 뿐 동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아동교육 사상가를 말하자면 방정환을 주저 없이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정환은 어린이들이 자유롭고 재미로운 가운데 기운껏 뛰면서 자라는 환경에서 새 세상의 창조가 있다고 말했다. 방정황은 장유유서 로 억압받고 구박받은 어린이들의 생활을 정신적, 현실적으로 고쳐야 된다고 주장하였고 그의 주장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어린이를 위하고, 어린이를 어른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여기고, 우리나라의 장래는 어린이에게 있다는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 정말 대단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지금의 꿈인 체육교사가 되고 싶기 전에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지금도 유아체육을 고려할 정도로 아동교육에 관심이 많이 있다. 그런 나에게 아동의 권리를.